[2014_차세대3차_소설] 해변생활자

 

[2014년 2차 차세대예술인력육성 문학분야 선정작 ]

 

 

해변생활자

 

 


양선형

 

 

    세상의 모든 해변에는 그와 같이 파견을 나온 사원들이 많았다. 해변은 그들에게 삶의 터전이었다. 그는 물결 아래서 그가 임의대로 분할해 놓은 해변의 구획들을 투시할 수 있었다. 그래야만 했다. 해변을 교차하는 선들이 그물처럼 바다 밑에서 술렁거린다. 그물이 바다를 감금한다. 그때 해안은 유실물을 기르는 양식장 같았다.

 

삽화_해변생활자

 

 

    해수욕장이 폐장했다. 무수한 발자국이 모래톱 위에서 허물어져갔다. 바람이 미장 삽처럼 백사장을 평평하게 쓸고 다녔다. 그동안 그는 해안 맞은편에 위치한 여관에 틀어박혀 있었다. 성수기는 끝물이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일제히 밀려들었고 갑작스레 빠져나갔다. 그들은 날짜에 쫓겼으며 휴가에 어울리는 기억을 차지하기 위해 웅성거렸다. 사진을 찍었다. 뒤쳐진 아이들이 저절로 미아가 되었다. 유실물 보관소에는 하루마다 무수한 물건들이 경매 품목처럼 등장했고, 앞 다투어 폐기되었다. 그러나 그들은 잃어버린 것들에 대해 생각하지 않았다. 시간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는 날짜를 헤아리며 해변이 한산해지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부유물들이 게으르게 떠다녔다.
    성수기가 지나자 그는 슬그머니 여관 밖으로 나갔다. 해변을 거닐었다. 환경미화원 복장을 한 인부들이 널브러진 쓰레기들이며 부유물들을 치우고 있었다. 파라솔을 철거하고 있었다. 그는 샌들을 벗었다. 모래톱 위에 맨발을 올려놓았다. 모래가 달아오른 석판처럼 뜨거웠다. 그는 발로 모래를 헤집은 다음 모래 속에 발을 집어넣었다. 그대로 덮었다. 모래의 안쪽은 서늘했다. 해변에는 인부들을 제외하고는 사람의 자취를 찾을 수 없었다. 해변은 버려질 준비를 서두르고 있었다.
    그는 한손으로 지팡이 모양의 장비를 쥐고 있었다. 해변이 뙤약볕을 난반사했다. 눈앞으로 해변의 잔상이 번쩍거렸다. 그는 모래 사이에서 깨진 유리병을 발견했다. 투명하고 푸른 색유리였다. 그는 베이지 않기 위해 발가락으로 모래를 헤치며 조심스럽게 걸어갔다. 그러나 모래 자체가 곱게 빻은 유리가루를 연상시켰다. 그는 눈을 찡그렸다. 모래톱이 쏘아붙이는 빛 때문에 눈이 따가웠다.
    그리고 그는 그러한 불편들을 기꺼이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었다. 빛이 눈을 할퀴고 지나갔다. 시야가 캄캄해졌다. 그는 양 손으로 눈을 훔쳤다. 그러자 눈의 통증이 가라앉았다. 여관에 칩거해 있을 때 그는 밤새도록 텔레비전을 켜놓았다. 심야에 텔레비전은 요란한 소음과 함께 검고 흰 빛의 얼룩들을 어지럽게 재생하고 있었다. 그것은 일종의 적응 훈련이었다. 그는 화면을 뚫어져라 쳐다보며 모든 현기증을 길들이고 싶었다. 그리고 때가 되어 해변을 응시했을 때 그는 눈의 피로를 느끼지 못했다. 눈이 빛에 익숙해진 것이다. 해변과 바다 모두가 시야의 저변에서 잔잔하게 머물러 있었다.

 

*

    해변을 샅샅이 뒤지는 것이 그의 일이었다. 해변은 막막하게 이어졌다. 그는 지팡이로 위장된 금속 탐지기를 앞으로 밀면서 갔다. 장비가 짧은 기계음을 내면 모래밭에 구덩이를 팠다. 동전들은 마치 아주 오래 전부터 거기 묻혀 있었던 것처럼 거무튀튀하게 착색된 채였다. 해변은 동전의 광맥이었다. 몇 보를 떼기도 전에 한 줌의 동전이 출토되었기 때문이다. 해변은 고갈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그는 주변을 살핀 이후 남몰래 동전을 주워 허리춤에 동여맨 소가죽 힙쌕에 담았다. 이때 그는 마치 동전을 수확하는 것처럼 보였다. 볕을 가리기 위해 쓴 밀짚모자며 목덜미에 두른 수건이란 영락없이 파종하는 농부를 연상시켰다.
    해변에 묻혀 있는 것은 비단 동전만이 아니었다. 금반지나 목걸이, 다이얼에 마크가 세공되어 있는 시계 따위의 값비싼 귀금속들이 가득했던 것이다. 그는 하염없이 해변을 걸었고 여러 물건들을 확보했다. 가죽 가방 안에서 그것들은 분실물도 장물도 아닌 어중간한 입장이 되었다. 종종 깡통 뚜껑, 망가진 샤프, 쓸모를 알 수 없는 쇠붙이, 녹슨 폐품 따위의 물건들이 채굴되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그러한 작은 허탕에 대해서 별반 동요하지 않았다. 해변은 마치 그 앞으로 배달되어 온, 발신인 불명의 택배상자 같았다. 그리하여 그는 더 없는 기대감에 부풀어 해변이라는 봉인을 뜯어냈고, 내용물이 설령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고 하더라도, 해변은 무한히 펼쳐져 있었으므로, 하루에도 그는 수백 개의 상자를 열어야 했으므로, 실망할 필요는 없는 것으로, 단지 몇 걸음 전진하기만 하면 되었다. 그때마다 금속 탐지기가 윙윙거리며 진동했다.

 

*

    그는 머릿속으로 해변을 여러 단위의 큰 구역으로 나눴고, 구역을 다시 쪼개 해변에 무수한 라인을 표시했다. 그것은 일을 용이하게 하기 위해서였다. 한 구획은 하루분의 일과에 해당했다. 그는 수차례 자신의 동선을 확인했다. 그리고 무료한 사람이라도 되는 것처럼 주변을 얼쩡거렸다. 대양의 끝을 멍하니 치어다보았다. 말하자면 그는 완벽히 할 일 없는 인간을 연기했고 실제로 성수기가 끝난 이후 해변에는 이렇다 할 일 없이 모래사장을 떠도는 사람들을 종종 발견할 수 있었다. 그는 그들과 분간되지 않았다.
    세상의 모든 해변에는 그와 같이 금속 탐지기를 질질 밀며 해변을 수색하는 이들이 있었다. 회사는 매번 여러 지역으로 사원들을 파견했다. 그는 회사를 신뢰하고 있었다. 일정한 기간이 지나면 그는 회사와 함께 한 지역에서 벌어들인 수입을 결산할 것이었다. 그리고 또다시 다른 해변으로 파견을 떠나게 될 것이다. 회사는 해변의 유실물이라는 비정기적인 수익을 도처에서 끌어 모으고 있었다. 그는 노동에 대한 대가로 매달 세상의 모든 해변에서 나오는 수익 중 일부를 배당받게 된다. 그는 세상의 모든 해변에서 허리를 구부정하게 숙인 채 모래를 파헤치고 있을 여러 동료들을 상상했다. 그리고 그러한 상상에서 자신의 노곤한 해변 생활을 이어나갈 수 있는 위안을 구했던 것이다.
    햇볕이 그의 정수리를 향해 수직으로 떨어졌다. 그는 탈진할 것만 같았으며 개처럼 혀를 내밀고 있었다. 더위가 가시지 않았다. 그는 한 구역의 테두리를 꼬리잡기를 하듯 맴돌았다. 모래톱은 출처 모를 자취들을 무작위로 뒤섞고 있었다. 그는 계속해서 지나쳤던 자리를 다시 지나치기를 반복했다. 물론 이 반복이 매번 무익했던 것만은 아니었다. 분명히 지나쳤다고 여겼던 자리에서 의외의 수확을 얻기도 했기 때문이다. 반복하는 식으로 구역을 닦달하고 추궁하고 나면 구역은 언제나 새로운 쇠붙이들을 토해냈다. 금속 탐지기는 이전까지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던 지대에서 더더욱 크게 반응하여 그를 놀라게 했다. 그러나 모래란 언제나 산포되고 이동하며 흩날리기 마련이다. 그는 해변을 납득할 수 있었다.
    문제는 다른 곳에 있었다. 이 일의 가장 큰 위험이란 자칫 폭염, 비산하는 모래, 햇볕의 환란이 불러일으키는, 이를테면 착각, 또는 어이없는 실수로 말미암아, 구역의 어느 자리를 빠트린 채 다음 구역으로 이월하는 일로, 그것은 빠트린 부분만큼의 끔찍한 손해를 초래할 것이었다. 그것은 그가 가장 두려워하는 일이기도 했다. 그는 엄밀한 주의를 기울였다. 해변은 누락되지 않았다. 가끔, 그의 몸이 의지와 무관하게 자꾸만 아래로 기울어져서, 어느 순간 지팡이로 위장된 금속 탐지기가, 그럴 듯한 지팡이처럼, 지팡이로서, 그의 몸을 지탱하게 될 때가 있었다. 그는 완전히 지쳐버렸고 거대한 불도저로 백사장 전체를 한꺼번에 갈아엎고 싶었다. 그러나 일을 소홀히 할 수는 없었다. 사소한 게으름이 인생을 망친다. 그는 생각했다. 사소한 오류가 공든 탑을 무너트린다. 그는 다시 생각했다. 사소한 구멍이 모든 것을 빨아들인다. 걸음마다 생각이 저절로 증식했다. 그는 사소한 모래 위를 걷고 있었다.

 

*

    퇴근한 이후 그는 종일 수거한 물건들을 여관방 서랍 속에 모조리 쏟아냈다. 그리고 침대 위에 누웠다. 침대는 눅눅했다. 붙박이용 소형 에어컨이 퀴퀴한 냄새를 풍기며 돌아가고 있었다. 그는 천장을 바라보았다. 시야로 모래톱이 반사하던 빛의 잔상들이 끓는 기름처럼 튀고 있었다. 눈을 감자 잔상들은 심해어처럼 불길하게 발광했다. 어쩌면 눈이 멀지도 모른다. 그는 오싹해졌다. 용접공들은 용접봉의 번쩍거리는 불빛으로 인해 빈번하게 시력을 잃는다. 뾰족한 철침이 절점에 닿을 때, 쇠는 어쩌면 그들의 눈 속에서 녹는다. 잔상은 처음에 귀퉁이에 곰팡이처럼 피어난다. 그것은 떨어지지 않는다. 그리고 점차 세를 넓힌다. 그것은 암세포가 전이되는 과정과 흡사하다. 결국 그들은 양손으로 눈을 감싼 채 소리를 지른다. 그러나 이미 때는 늦은 것이다. 방은 허름했다. 벽지의 끄트머리마다 거무튀튀한 곰팡이가 슬어 있었다. 그것은 두려움의 단초가 되기에 충분했다. 그는 코를 킁킁거리며 기침을 했다. 그리고 텔레비전을 켰다.
    여관의 로비에는 투숙객들을 위해 마련된 간이 비디오 숍이 있었고, 그는 심심함을 달래기 위해 여러 비디오를 대여했다. 비디오들은 대개 삼류 포르노 영화이거나 촌스러운 서부 영화, 색감이 칠흑같이 어두운 SF 영화들이었다. 그는 비디오 꽂이에 진열되어 있는 테이프들 중 가장 눈에 띄는 것을 골랐다. 텔레비전을 바라보며 헝겊으로 장비를 닦거나 무력하게 자위를 했다. 그러고 나면 피로가 몰려왔다. 그는 잠을 놓치지 않았다. 서둘러 잠 속으로 헤엄쳐갔다. 비디오에서는 언제나 몇 명의 남자와 여자가 출현했고, 그것은 수월하게 괴물이 되거나 다시 사람으로 변모했으며, 죽거나 죽지 않거나 했다. 그는 텔레비전을 켜놓은 채 잠들었으며 꿈에서 남자와 여자를, 죽거나 죽지 않는 괴물과 사람을 다시 만났다. 그들의 윤곽은 모래로 이루어진 것처럼 화질이 일그러져 있었다. 그는 눈을 혹사했다. 또는 눈만이 번번이 혹사당한다. 눈동자에 해변의 미립자가 달라붙어 있었다. 그것은 너무 작거나 매우 가까웠기 때문에 볼 수도 찾을 수도 없었다. 그는 수시로 눈을 비벼야 했다.

 

*

    하마터면 당신을 알아보지 못할 뻔했어요. 캔버라의 해변에서는 그런 취미를 갖고 있는 사람이 많아요. 그런 걸 도굴이라고 부르지요. 제 얘기를 할까요. 사실 저는 여름철 내내 제가 그것을 잃어버렸다는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었어요. 대뜸 저는 호주머니를 뒤지고 있었는데, 그것이라면 호주머니 안에 있을 테니까, 호주머니가 해변이라도 되는 것처럼 말이에요. 실제로 호주머니에는 모래가 가득했지요. 모래뿐이었어요. 해변에서 구르고 난 다음이었어요. 해변에서 계속 굴렀죠. 머리를 부드러운 모래 위에 처박고 모래를 움켜쥐는 거지요. 모래를 온 몸에 끼얹으며 우물우물 씹으며 퉤퉤 뱉으면서 게처럼 모래를 덮고 누우면 몸이 해변이 몸의 너비로 분해되고 몸이 해변의 너비로 펼쳐지는 느낌이 들지요. 그럴 수밖에. 해변에서 저는 모래와 다를 바가 없어요. 자신이 모래라는 것을 깨닫게 되는 거지요. 혹은 자신이 지금까지 사람이었는데 해변에 들어선 순간 이미 모래가 되었고 시간을 되돌리기엔 너무 늦었다는 것을 불현듯 느끼게 되는 거예요. 해변은 바다의 변두리라는 뜻이에요. 저는 바다를 좋아하지만 바다의 변두리를 좋아하지는 않아요. 하지만 누구나 바다를 위해 바다의 변두리에 머물러야 하지요. 저는 제가 잃어버린 물건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거예요. 저는 당신처럼 무언가를 찾고 있어요. 저는 제가 무엇을 잃어버렸는지 알지 못해요. 그것을 되찾고 나면 제가 지금까지 그토록 되찾고 싶어했던 물건의 정체가 무엇인지 알게 되겠지요. 그러나 저는 그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기 때문에 그것을 찾을 수 없을 거예요. 어쩌면 오랜 시간 동안 말이에요. 만약 요행으로 그것을 발견한다고 해도 고개를 좌우로 휘저으며 지나치고 말겠지요. 무언가 익숙한 느낌으로 그것을 매만지다 어느 순간 그대로 내팽개치고 말겠지요. 그런 일을 상상하면 벌써부터 겁이 나요. 온몸에 힘이 빠져서 아무것도 할 도리가 없지요. 결국 저는 그것을 저버리고 말겠지요. 그것을 저버리고도 저버린 줄 모르고 해변을 두서없이 방황하게 되겠지요. 모래 속에는 모래밖에 없어요. 모래를 파헤쳐도 모래를 발굴하게 되는 것이 모래의 이치예요. 혹여 무언가 다른 것을 발견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모래와 하등 다를 바가 없지요.

 

*

    그는 고개를 아래로 떨어뜨리고 있었다. 바다가 뒤척이고 있었다. 만조였다. 그는 장비를 백사장에 말뚝처럼 박았다. 결산 날짜가 가까워지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할당된 금액을 달성하지 못했다. 할당된 금액이란 세상의 모든 해변에 파묻혀 있는 유실물의 최솟값이었다. 회사는 사원들에게 성실함을 요구하고 있었다. 금액을 달성하느냐 마느냐는 해변에 내장된 유실물의 양에 달려 있지 않았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사원들의 몫이었다. 사원들이 더욱 더 열정적으로 모래를 파헤치는 일에 임한다면 해변은 반드시 그에 상응하는 보상을 내놓을 것이다. 그것이 회사의 방침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초조해하지 않았다. 해변의 어느 지대에는, 부족한 성과를 단번에 만회할 수 있는 어떤 물건이, 기필코, 매장되어 있을 것이다. 그는 그렇게 믿었다. 오래 전부터 장비는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 그는 처음에 장비의 성능을 의심했다. 그러나 침묵을 지키고 있는 것은 장비가 아니라 해변이라고 생각하는 편이 타당했다. 그는 해변이 스스로 제 침묵을 포기하기를 기다리는 것 말고는 딱히 할 일이 없었다.
    수천 평에 이르는 모래사장은 유실을 배양하는 데 적합한 환경이었다. 유실물들은 해변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제 유실을 완성한다. 유실물 위로 모래가 덮이고, 매몰된 자리마다 모래가 넘쳐난다. 모래와 그것을 구별하는 일은 이미 불가능하다. 사람들은 잃어버린 물건을 도로 되찾을 엄두를 내지 못한다. 해변에서 모든 노력은 헛된 일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가령 사람들은 모래의 표정을 바꾸지 못한다. 그저 백사장 표면을 부단히도 기어 다닐 수 있을 뿐이다. 그리하여 유실이 온전히 무르익었을 때, 아무도 그것을 기억하지 않고, 풍향과 풍속의 변덕에 의해서만 꺼내지거나, 다시 감춰지거나, 녹슬어갈 때, 그는 해변에 나타난다. 그에게 모래는 불가피한 착오의 다른 이름이었다. 그리고 장비란 이러한 착오의 베일을 걷어내는 데 주요한 역할을 했다. 해변의 값어치는 모래에 있지 않았다. 그것은 언제나 모래 너머에 있었다. 그는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모래에 눈이 멀어 더 큰 이익을 놓치는 일은 해변 생활에서 가장 쉽게 범할 수 있는 실책이었다.
    해변에 그늘이라고는 그의 그림자밖에 없었다. 그것은 바다 쪽으로 길어졌고 어느 순간 검푸른 바닷물에 상반신을 담그고 있었다. 그림자가 지팡이로 바다를 둥글게 저어댔다. 지팡이 주위로 동심원들이 회오리쳤다. 무더위가 이어졌고, 땀에 젖은 수건이 그의 목을 죄여 왔으며, 그는 금방이라도 장비를 내버리고 바다 속으로 뛰어들고 싶었다. 그러나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밀물은 저녁 무렵이 되면 해변의 절반을 먹어치웠다. 그는 발치까지 손을 뻗는 포말로부터 슬금슬금 뒷걸음질하는 식으로 밀물과 일정한 거리를 유지했다.
    밀물은 언제나 해변을 넘어서지 못한 채 되돌아가거나 되돌아왔다. 설령, 수면이 상승해 대부분의 육지가 바다에 의해 침수된다고 하더라도, 해변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바다의 테두리를 아우르는 공간으로서 반드시 존재할 것이다. 그리고 세상의 모든 해변에는 그와 같이 파견을 나온 사원들이 많았다. 해변은 그들에게 삶의 터전이었다. 그는 물결 아래서 그가 임의대로 분할해 놓은 해변의 구획들을 투시할 수 있었다. 그래야만 했다. 해변을 교차하는 선들이 그물처럼 바다 밑에서 술렁거린다. 그물이 바다를 감금한다. 그때 해안은 유실물을 기르는 양식장 같았다.

 

*

 

    눈부신 해변에서는 당신보다 당신의 그림자가 더 잘 보여요. 그림자는 개성이 있군요. 당신은 눈이 멀지 않았지만 당신의 그림자는 눈이 먼 것처럼 보이지요. 당신은 당신처럼 보이지만 당신의 그림자는 맹인처럼 지팡이를 더듬거리고 있는 것처럼 보여요. 지팡이가 해변의 어느 자리를 짚을 때 맹인은 주저하며 망설이듯 물러서지요. 지팡이는 어둠 속에 파묻힌 세계를 발굴하지요. 지팡이가 그것에 다다르지 전까지 그것은 형체를 알아볼 수 없는, 예컨대 희미하게 박동하는 점액질 같은 것과 다르지 않았겠지요. 그러나 지팡이가 그것과 접촉하는 순간 그것은 어둠 속으로부터 발작적으로 돌출되는 거예요. 마치 홀연히 밝아지는 빛처럼 말이에요. 이해하시겠어요. 그리하여 건드린 그것이 꿈틀 경련할 때 맹인은 막 탄생하려는 세계 앞에 경의를 표하려는 것처럼 멈춰 서지요. 아니면 막 탄생하려는 세계 앞에서 불안스레 경직되어 있는 것인지도 몰라요. 그렇다면 지팡이는 맹인의 성기일 수도 있고 맹인의 꼬리일 수도 있지요. 저는 저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싶어요. 결정적인 이야기 말이에요. 돌이킬 수 없는 이야기 말이에요. 그것에 관한 이야기 말이에요. 저는 아무것도 잃어버리지 않았는지도 몰라요. 오히려 이제부터 모든 것을 잃어버릴 준비를 해야 하는지도 모르지요. 사실 저는 그것을 소유했던 적이 없어요. 그것을 가질 수 있다면 어떤 짓이라도 하겠어요. 저를 헐값에 처분할 수도 있을 거예요. 저를 팔아치우고 받아든 헐값을 기꺼이 지불할 수 있을 거예요. 그 돈은 저에게 더 이상 헐값이 아닐 테지만, 그래도 헐값은 헐값이겠지요. 그것을 잃어버린 순간 저는 제가 모든 것을 점진적으로 잃어버릴 운명에 처한 듯이 여겨졌어요. 그것은 신호탄 같은 거예요. 단말마 같은 거, 심장의 막을 수 없는 전진 같은 거, 돌아가기 시작한 톱니장치 같은 거지요. 누군가 열어서는 안 될 상자를 연 게 분명해요. 열어버린 순간 저는 없고 엎질러지는 방향만 존재하지요. 그때 저는 벌거벗은 리듬에 가깝지요. 말하자면 해변에서 저는 벌거벗은 리듬에 불과하지요. 물론 여름의 해변에서 벌거벗지 않고 배길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어요. 벌거벗는다는 것은 그것을 잃어버릴 각오가 되어 있다는 뜻이지요. 그러나 저는 그렇지 못했어요. 모래가 저를 덮칠 때 저는 황급히 모래인 척을 해야만 했지요. 마치 이해할 수 없는 리듬에 휩쓸린 듯했어요. 예전에 그것은 저의 일부에 지나지 않았어요. 그러나 지금 저는 그것 없는 저를 상상할 수 없어요. 당신은 모래가 없는 해변을 상상할 수 있나요. 모래로 이루어지지 않은 해변을, 모래를 박탈당한 해변을 말이에요. 그것은 해변이 아니라 다른 이름으로 불리겠지요. 그러나 그곳은 언제까지나 해변이겠지요. 해변은 바다의 변두리라는 뜻이니까. 그러나 그곳은 더 이상 해변이 아니겠지요. 또는 해변은 해변이 아닌 것처럼 존재하겠지요.

 

*

    그는 회사의 전화를 받았다. 막바지에 이른 여름은 발악하는 식으로 더위를 쥐어짜냈다. 가끔 바다 쪽에서 물먹은 바람이 불었다. 바람에 날린 모래들이 회초리처럼 그의 얼굴을 후려쳤다. 그는 두 손으로 눈을 감쌌으며 손바닥 아래에서 만들어지는 깜깜한 두꺼비집을 응시하고 있었다. 회사는 결산 기한을 늦춰달라는 그의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유실물을 은닉하고 있는 것은 해변이었다. 어쩌면 해변이 자신을 상대로 시위를 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어쩌면 자신이 해변을 상대로 고문을 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는 생각했다. 해변은 무엇에도 굴하지 않은 채 완강하게 버티고 있었다.
    그는 호주머니에서 동전을 꺼냈고 해변 여기저기에 뿌려댔다. 떨어진 동전들이 해변의 빛깔로 번쩍거렸다. 그는 동전 위에 장비를 들이댔다. 장비가 진동하면 다시 동전을 주워 호주머니에 넣었다. 그는 종일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는 장비의 성능을 곧잘 의심했고 똑같은 행동을 몇 번이고 다시 했다. 성능은 언제나 입증되었다. 오히려 그는 자신이 던진 동전을 잃어버리기 일쑤였는데 동전들이 해변으로 날아가는 순간 순식간에 자취를 감췄기 때문이다. 마치 그와 해변의 중간에 동전을 가로채는 손이 있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는 언제나 사람과 해변의 중간에서 유실물을 횡령하고 있었다. 그는 스스로를 해변 아래 파묻힌 모든 유실물들의 주인이라 여겼다. 그러므로 유실물들을 실종된 장소로부터 또다시 잃어버리고 있는 이도 바로 그였다. 해변은 말 그대로 텅 비어 있었다. 값나가는 물건은커녕 고물 한 조각도 찾을 수 없었다. 장비는 무용지물이었다. 그가 회사에 이러한 상황을 보고했을 때, 회사는 애매한 태도를 보였고, 업무에 매진하라는 식의 하나마나한 지침을 하달했다. 성과는 노력에 대한 보상으로 반드시 주어질 것이다. 해변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은 회사였다. 그는 장비를 질질 끌고 다녔다.
    주인을 잃어버린 물건이 주인 없는 물건이 되어가기까지, 어떤 미아가 자신이 이미 미아가 아니라 고아가 되었음을 이해하는 순간까지, 휴지(休止) 혹은 약간의 유예가 있었고 해변은 그 시간 속에 자리했다. 그리고 그는 그 시간을 통과하며 방심한 유실물들을 낚아채고 있었다. 그는 무작정 해변에 도착했다. 그의 눈앞에는 해변이 융단처럼 깔려 있었다. 그는 무작정 해변을 뒤져야만 했고 모래를 들쑤시는 일이 그가 치러야 할 일과였다. 모래가 술렁이며 해변을 걸어 잠근다. 그는 해변의 문을 열지 못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변이란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는 실제로 온갖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모래톱이 그의 발자국을 평평하게 지워가지 않았더라면 그가 지나친 궤적은 해변 위에 새겨진 방대한 미스터리서클처럼 보였을 것이다.

 

*

 

    해변에서는 바다가 몸 아래로 들락거려요. 저는 잠자코 누워 있었지요. 그림자들이 빽빽한 간격으로 해변을 에워싸고 있었어요. 사실 그림자는 이차원이지요. 그러나 저는 종종 스스로가 이차원으로 계속해서 낮아지는 기분이 들어요. 윤곽이나 두께가 소실된 채 명암이나 점선의 뒤엉킴 같은 것으로 말이에요. 곳곳에 그림자로 이루어진 말뚝이 박혀 있었어요. 아니에요. 누군가 말뚝에 망치질을 하는 듯했지요. 말뚝은 단정하게 고정되지 않고 모래 위에서 힘없이 기울어지기만 했어요. 저는 어스름이 먼 바다를 잠식하며 천천히 다가오는 것을 바라보고 있었어요. 호흡이 가빴고 몸이 몇 차례 위로 튕겨져 오르는 것이 느껴졌지요. 어스름은 가까워지지 않은 채 묵직하게 해역 저편에 뭉쳐져 있었어요. 땀이 났는데, 땀으로 눅진해진 살갗에 모래가 엉겼어요. 온 몸이 거친 수세미가 된 듯했지요. 누군가 저를 밟고 지나가는 느낌이 들었고 그러나 아프지는 않았어요. 오히려 저를 밟고 지나가는 사람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지요. 몸을 움직일 때마다 사각거리는 소리가 났어요. 어스름이 해변으로 상륙했을 때에야 저는 드디어 그림자들에게서 놓여날 수 있었지요. 어스름에 의해 형체를 빼앗긴 그림자들이 하릴없이 요동을 쳤고 그것은 제게 해방이었을 수도 있었을 거예요. 그때 저는 일어날 수 있었겠지요. 일어서서 아무렇지도 않게 걸을 수도. 해변을 말이에요. 아무렇지도 않게 된다는 것은 그런 것이니까, 가령 멍하니 퍼져 있다 단순하고 맹목적인 의지로 허리를 곧추세우는 일 같은 것 말이에요. 발목까지 바다가 다가와서 발을 좌우로 첨벙거려야만 했어요. 물장구를 쳤지요. 누워서 다리를 벌린 채 말이에요. 바다 쪽으로 해를 낳듯이 말이에요. 거무스름한 사타구니 쪽으로 하얀 거품이 소용돌이치고 있었는데 짭짤한 냄새가 났지요. 그것은 엄밀하게 말해 비린내 같았고 비린내라기 보단 염분을 토해내는 부패의 냄새였어요. 구멍 주변으로 모래 섞인 거품들이 뚝뚝 떨어졌고 자꾸만 사타구니가 가려웠지요. 저는 요의를 느끼는 사람처럼 다리를 흔들며 흔들리듯 누워 있었어요. 다행히 어스름이 저를 감싸고 있었지요. 거기서 저는 끊임없이 저에 대해 생각했어요. 저라는 사람에 대해서, 저라는 사람이 누구인지에 대한 것이 아니라 저라는 사람이 누구였는지에 대해서, 저는 저라는 사람을 생각하기 위해 저를 버려야만 했어요. 그제야 저는 구르기 시작했지요. 모래톱이 얼굴을 썰었어요. 자꾸만 얼굴이 모래 쪽으로 처박혔지요. 저는 구르는 힘으로 그대로 굴러가고 있는 듯했어요. 멈추지 않으려는 힘이 멈추려는 힘을 앞질렀지요. 저는 그것을 챙길 시간이 없었어요. 그리고 모든 것이 재빨리 변해갔지요.

 

*

    비가 내렸다. 비가 여름을 씻어냈다. 그는 유실물들의 행방을 걱정하고 있었다. 비가 해변을 뒤집어엎었기 때문이다. 해변은 오염된 그리스처럼 탁한 빛깔을 띠었다. 그는 여관 복도 창가에 서서 해변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물이 고인 자리마다 집채만 한 손이 할퀴고 지나간 것처럼 보이는 깊은 고랑이 패여 있었다. 그는 여관을 나서지 못했다. 노란 우의를 입은 채였다. 노란 우의는 갓 말린 듯 윤이 났다. 난간에 반응한 장비가 그를 다그치듯 울어대고 있었다. 그는 장비의 스위치를 내렸다. 손이 저렸다. 그는 자신의 방으로 돌아갔다.
    그는 우천으로 인한 손해를 생각하고 있었다. 무더기로 바다 쪽으로 쓸려 내려가던 진흙을, 끝끝내 회수되지 못하고 망망대해 속으로 가라앉을 유실물들을 떠올렸다. 우천이 지나가고 물기가 말라 더없이 투명해진 해변이 눈앞에 어른거리는 듯했다. 손해는 그뿐만이 아니었다. 결산 기한이 코앞이었다. 그는 직장을 잃게 될 것이었다. 더 이상 세상의 모든 해변에 대한 권리를 주장할 수 없게 될 것이었다. 그런 절망적인 생각을 하는 와중에도 그는 주섬주섬 우의를 벗고 있었다. 텔레비전을 켰다. 전파 상황이 불량이었다. 어지러이 일렁이는 화면만이 시끄러운 소음과 함께 나타났다.
    그는 전날 빌려다 놓은 비디오테이프를 집었다. 오래된 SF 시리즈물이었다. 비디오를 재생하고 되감기 버튼을 눌렀다. 뒤로 걷고 위로 추락하며 말을 되삼키는 사람들, 흉측한 괴물들을 바라보았다. 총알이 총구를 향해 되돌아왔고, 포환이 엎질러진 폭발을 주워 담았으며, 시체들이 황홀하거나 애틋한 표정을 지으며 자꾸만 태어났다. 그것은 흥미롭지는 않았지만 주목을 끌 만한 광경이었다. 그는 영화의 내용을 기억하고 있었다. 그러나 되감기는 장면들이란 기억의 역순이 아니었다. 그것은 기억의 역행 또는 역전에 가까웠다.
    그때 불현듯 텔레비전이 꺼졌다. 동시에 온갖 것을 두드리는 빗소리가 방안으로 밀려들었다. 방은 북을 감싼 가죽과 가죽 사이의 텅 빈 드럼처럼 생각되었다. 정전이었고, 그는 어찌 할 도리가 없었으며, 텔레비전을 응시하던 자세 그대로 침침한 방의 어느 어둠을 응시하고 있었다. 간혹 졸음이 찾아들기도 했는데, 그는 자신이 눈을 감고 있는 것인지 뜨고 있는 것인지 어떤 쪽에도 자신이 없었다. 목이 뻐근하게 느껴질 때쯤 침대에 누웠다. 그는 비를 맞고 있지 않았지만, 비를 맞고 있는 누군가를 상상할 수 있었으며, 실제로 여관 밖에서는 그러한 일들이 횡행하고 있었다. 동공이 수채통처럼 벌어지고 있는 것 같았다.

 

*

    대기는 을씨년스러웠다. 먹빛 안개가 바람이 부는 방향으로 나풀거렸다. 그는 종종걸음으로 해변까지 뛰어갔다. 비가 그친 지 얼마 되지 않았던 탓에 해변은 늪처럼 황폐하게 젖어 있었다. 그는 신고 있던 샌들을 도보 위에 가지런히 놓았다. 해변에 맨발을 디뎠다. 바다가 발치였다. 해안은 이렇다 할 경계 없이 삐뚤빼뚤하게 넘쳐 있었다. 그는 해변을 대중없이 기웃거리기 시작했다. 진흙에 찍힌 그의 발자국이 찹찹하게 아물어갔다. 해변은 넓었고 아무것도 없었다. 모래로부터 무언가를 기대할 수 있다는 생각 자체가 우습고 부질없게 여겨질 정도였다. 그것은 확률의 문제였다. 차라리 그 시간 동안 해변의 모래 전부를 삽으로 떠서 골재상회 같은 곳에 팔아먹는 편이 더 그럴 듯한 일이었을 것이다. 더군다나 그의 손에는 장비마저 들려 있지 않았다.
    바다 저편에 검은 물체가 떠 있었다. 검은 물체는 회색 하늘과 잿빛 바다 사이에서 솟구치거나 가라앉고 있었다. 그것은 해역을 표시하는 부표 같았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해변 쪽으로 떠밀려오는 듯했다. 궂은 날씨로 인해 부표들을 서로 잇대 놓은 줄이 끊어진 모양이었다. 그것은 좀처럼 육지와 가까워지지 않았고, 조류에 따라 좌우로 허정거릴 뿐이었다.
    그는 부표를 하염없이 주시하지는 않았지만, 간혹 고개를 쳐들어 그것을 확인했다. 부표가 눈에 보이지 않으면 당황해했다. 그는 바다를 눈으로 샅샅이 훑으며 부표를 찾았다. 그것은 어느 방향으로든 꾸준하게 이동하고 있는 듯했다.
    어느 순간 부표가 근해에 다다랐다. 그것은 이제 검은 물체가 아니라 말갛고 창백한 빛을 띠는 플라스틱 기름통 같았다. 사방에서 불규칙한 물결들이 부표의 접안을 방해했다. 그것은 종종 수중회전을 하듯 물속으로 사라져갔고, 잠시 후 파도의 마루에서 번뜩이는 광채와 함께 모습을 드러냈다. 부표는 좀처럼 해안까지 도달하지 못한 채 저조한 움직임을 되풀이하고 있었다. 이때 그는 애가 탔고, 화가 났는데, 바다가 자신을 골리듯이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부표에 대한 관심을 누그러트리지 못하는 자신이 이상하게 여겨졌다. 어서 빨리 부표가 육지에 도착해 모든 기다림이 끝나기만을 바라는 심정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여전히 닿을 듯 말 듯한 거리를 굼뜨게 부유했다.
    그는 짐짓 모르는 체로 괜스레 해변을 후벼댔다. 이윽고 바다로 뛰어서 들어갔다. 그는 서투르게 허우적거렸으며, 고개를 곧추세운 채 헤엄을 치기 시작했다. 그는 부표만큼 느리게 부표에게로 접근해갔다. 부표에 근접했을 때, 그는 부표의 정체가 부표가 아니라 다른 무엇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힘이 달렸고 숨이 턱까지 차올랐던 까닭에 부표를 건지거나 해안으로 끌어올릴 수 없을 것 같았고, 튜브처럼 부표에 몸을 의지한 채, 잠시 쉬고 싶었지만, 그것은 부표가 아니었다. 그러므로 그는 경악했고 고함을 질렀으며 물먹은 고함은 수면 아래로 무겁게 깔리는 듯했다. 그녀는 처참하게 늘어져 있었다. 물결에 실린 그녀가 수그린 고개를 주억거리고 있었다. 해초와 뒤섞여 범벅이 된 머리카락이 익사체의 온 몸을 휘감고 있었다. 물에 불어 탄력을 잃은 살점이 해수면 사이에서 투명하게 반들거렸다. 사체는 심하게 훼손된 채였다. 그럼에도 그는 사체의 신원이 여자라는 사실을 알았다.
    해변에 도착한 그는 그녀를 똑바로 눕혔다. 물에 불은 그녀는 굉장히 육중해 보였고, 미끄러웠으며, 잘 뒤집혀지지 않았다. 뭉개진 얼굴에 입술만이 비대해져 넓적하게 부풀어 있었다. 그는 그녀의 호주머니를 뒤지고 싶었지만, 그녀는 벌거벗은 채였다. 그 사실은 그를 알 수 없는 감정으로 몰아가는 것이었다. 시체는 아무것도 지니고 있지 않았다. 설령 무언가를 지니고 있었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이미 바다의 몫이었다. 그는 낙담했다. 해변 곳곳에 검게 고여 있던 웅덩이가 하나둘 줄어들고 있었다. 그는 웅덩이에 발이 빠지지 않게 주의하며 샌들을 벗어둔 자리로 돌아갔다.

 

*

    그는 해고통지를 받지 않았다. 회사는 이 사태를 난국이라고 표현하기도 했고, 가뭄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물건의 수확량이 터무니없이 곤두박질쳤다는 이야기였다. 회사에서는 지금의 사태가 이전부터 예고된 일이었으며, 자연스러운 변화의 추세 중 하나이고, 그에 대한 만반에 준비를 끝마친 이후라고 떠들어댔다. 동요하는 것은 현명한 태도가 아니라고도 했다. 그는 묵묵히 듣고 있었다. 회사는 다음 일터의 위치를 하달했고, 그가 벌어들인 물건들을 수거해갔다. 그것은 한 해변에서 그가 발견할 수 있는 유실물의 전부였다. 회사는 이 같은 금속 무더기에서 돈이 될 만한 물건을 처분하고 쓸모없는 물건들을 솎아내 최종적인 수익을 통지할 것이었다.
    그가 떠난 해변에서 그가 떠날 해변까지는 여러 시간이 소요되었고, 그 시간만큼 그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여관은 이전부터 그의 이름으로 예약되어 있었다. 그는 방에 짐을 풀기만 하면 되었다.
    그가 해변에 서 있다면 시계 방향으로 회전하는 그림자가 있었다. 시계 방향으로 경과하는 시간이 있었다. 그는 저녁이 되자마자 여관으로 퇴근했고 다음 날에 다시 일터로 갔다. 그림자는 정오에 가장 첨예했으며, 해가 질 때쯤 죽은 나귀 모양으로 변했다.
    어떤 해변에서 그가 마지막으로 발견했던 물건은 놋쇠 조각이었다. 그것은 원래 열쇠였다가, 점진적으로 요철이 닳고 끄트머리가 구부러져 열쇠의 기능을 상실한 다음, 어떤 쓸모도 갖추지 못한 채 해변 아래 유기되어 있었다. 그것은 유실물이 아니라 폐기물이나 고물의 범주로 분류될 것 같았다. 그러나 엄밀히 말해 폐기물이나 고물 또한 유실물의 일종이었으므로, 결정적으로 그에게는 물건의 가치를 판단할 권한이 없었으므로, 그는 일단 그것을 간직하게 되었다. 그리고 어느 순간 그 사실을 잊어버렸다. 그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것이 있을 수 없는 일이었기 때문에 그는 오래도록 그 사실을 기억하지 못했다. 열쇠의 존재는 그의 해변 생활에 있어 유일한 오점으로 남을 것이다. 만약 그가 자신의 오점을 기억해낼 수만 있다면, 모든 오점이 그러하듯이, 그것은 지겨운 해변 생활을 청산할 좋은 기회가 되어줄 것이다. 틀림없이 그랬다. 그러나 그는 이미 열쇠를 기억의 밑바닥에 유기하고 말았다.

 

*

    그는 결국 해변 생활을 그만두지 못할 것이다. 해변에 뼈를 묻게 될는지도 모른다. 어느 날 그는 다리에 힘이 들어가지 않는다. 자신의 다리가 무너지는 모래성과 다를 바 없이 느껴진다. 그 순간 그는 잠시 해변 위에 엎어져 있을 수도 있다. 그에게도 그럴 시간이 있을 것이다. 이때 그는 손끝에서 진동하는 금속 탐지기를 힘주어 쥐어본다. 마치 붙잡는 힘으로 그것을 잠잠하게 만들려는 듯이. 또는 암벽타기를 하려는 것처럼 해변에 매달릴 것이다. 그러나 모래는 움켜지지 않고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갈 뿐이다. 해변이 그의 윤곽을 지우기 위해 멀리서부터 모래를 끌어온다. 시간이 지나 모래가 모든 구멍을 틀어막으면, 그는, 귀지처럼 먹먹하게 쌓인 모래 안에서, 자신을 방치하는 식으로 가만히 쓰러져 있을 것이다. 이윽고 그는 최후의 힘을 다해 일어나려 하지 않고, 대신 최후의 힘을 다해 돌아누우려 할 텐데, 그 모습은, 그뿐만 아니라 해변 전체가 한꺼번에 뒤척이는 것처럼 보일 것이다. 회사에서는 종적을 감춘 그를 대신해 다른 사원을 해변으로 파견할 것이다. 그리하여 다시, 그가, 의욕적으로 해변을 탐사하면서, 그가 찾으려 했던 것은 전임자가 아니라, 어떤 값진, 성과가 될 만한 물건이었겠지만, 어이없게도 그를, 혹은 풍화된 해골을 발견하게 되어, 해골의 곱아든 손가락뼈로부터 이어진 금속 탐지기가, 그치지 않은 채 진동하는 것을 보고, 놀란 가슴을 쓸어내린 다음, 떨리는 손길로 그곳을 파헤치는 것인데, 그곳엔 아무것도 없고, 아니, 아무것이나 있고, 어쩌면 아무것도 되지 않거나, 아무것이나 되면 다행인, 그러한 물건을 자신의 목록에 추가한 이후, 스스로의 최후가 될 것이 확실한 어떤 뼈다귀를 지나, 다음 구역으로 이동하려 하다가, 잠시 뒤를 돌아볼 텐데, 그때, 해변은, 표가 나지 않을 정도로 빠르게, 본래의 모습을 회복하고 있어, 마치 그 모습이란 해변이라는 광막한 공간 위에, 모래라는 무한한 시간이 겹쳐져 있는 것처럼 느껴지기까지 하고, 그러나 그런 느낌이 일에 도움이 되는 것은 아니어서, 더욱이, 일을 훼방하는 나쁜 느낌이 분명할 텐데, 나쁜 느낌을 떨쳐버리기 위해 그는, 해변으로부터 해변에 이르기까지 줄곧 나아가기만 하면 되는 것으로, 사실, 그가 나쁜 느낌을 버리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오직 나아가는 것밖에 없기 때문이다.

 

 

 

< 선정평 >

 
해변생활자」는 제목에서부터 알 수 있듯, 폐장한 해변에서 살아가는 한 사람의 이야기다. 금속 탐지기로 해변을 샅샅이 뒤지는 것이 일인 남자. 그리하여 회사에 제출해야 할 유실물들을 횡령하는 남자. 이 작가의 등단 작품을 읽었을 때처럼 몽환적이면서도 쓸쓸한 느낌은 이 소설에서도 여전했다. 인위적으로 만들어 놓은 시공간에 현실과 환상을 튼튼히, 개성적으로 지어낼 수 있는 솜씨는 숙련돼 보이는 문장의 힘 때문일까, 주제(중심부)를 밀고 나가는 묵직함 때문일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편소설에 있어야 할, 있으면 더 좋을 어떤 결정적인 것들이 ‘누락’되어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아쉬움은 이 작가에 대한 기대 때문이다. 심사위원들로부터 가장 높은 평점을 받은 작품은 「해변생활자」였다.
    조경란 (소설가)

 

===== 작가와 6문6답 =====

 

1. 우선 선정된 소감을 간단히 밝혀주세요. ^_^

  기쁘고, 감사합니다.

 

2. 이 작품을 처음 떠올렸을 때 어디서 무얼 하고 계셨나요?

  군 복무 중이었고 해안감시 초소를 드나드는 운전병이었습니다.

 

3. 글을 쓸 때 특별히 듣는 음악이 있다든가, 자기만의 습관이 있다면요?

  왼쪽에 애장하는 책 몇 권을 놓아둡니다.

 

4. 작품을 발표하기 전(혹은 퇴고를 하신 후)에 가장 먼저 보여주는 사람이 있나요?

  그때그때 다른 것 같습니다. 고마운 사람들.

 

5. 평생 또는 두고두고 써야겠다고 마음먹은 주제가 있다면 소개해 주세요.

  사람이 아무도 등장하지 않는 소설을 쓰고 싶어요.

 

6. 지금 막 쓰고 있는 (또는 품고 있는) 작품의 예고편을 들려주실 수 있나요?

  표범이 사람에게 얻어맞는 소설을 쓰고 있습니다.

 

 

양선형 (소설가)
 

1990년 광주 출생. 제 14회 문학과사회 신인문학상으로 등단.

 

 

   《문장웹진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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