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위원 노트] 바람이라는 감각

 

[편집위원 노트]

 

 

바람이라는 감각

 

 

이영주(시인, 본지 편집위원)

 

 

 

 

    감각을 통해서 2차적으로 만져지는 것이 있습니다. 존재하지만 그 자체로는 눈에 보이지 않는 것. 그 자체로는 만져지지 않는 것. 기후의 종류를 생각해 보면 고개가 끄덕여지지요. 그중에서 비나 눈은 내 피부의 접촉에 의해 실감나게 느껴지고 나의 눈에 직접적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공기나 바람 같은 것은 그야말로 2차적인 체험이라고 볼 수 있지요.
    보이지는 않지만 반드시 존재하고, 그 있음이 불러일으키는 상상력은 얼마나 매혹적인가요. 저는 어릴 적부터 ‘바람’이 불러오는 소소한 상상들이 대단한 힘을 가지고 있다고 여겼던 것 같습니다.

 

    따뜻한 바람이 불면 우리는 겉옷을 벗습니다. 그리고 마음이 간질간질해지고요. 계절이 지나가고 다가오는 것도 바람의 기운 때문에 예감으로 만나기도 합니다. 가을에는 바람의 존재가 더 실감이 납니다. 머리칼을 흐트러뜨리고, 옷깃을 여미게 하고, 손을 비비게 하는 서늘한 기운. 세찬 바람이 불면 얼굴 표정이 달라지고, 눈빛도 함께 스산해지는 느낌. 그렇게 바람은 휘감는 감각, 둘러싸는 감각 같은 것들로 우리를 변화시켜 놓습니다.
    그러한 변화는 엄청난 파장을 불러옵니다. 음식의 선택을 바꾸고, 패션을 바꾸고, 걸음걸이를 바꾸고, 삶에 대한 소소한 질서들을 변화시킵니다. 바람이 없으면 인간의 생활양식도 지금과는 달라졌을지도 모릅니다. 우리가 먹는 양식의 형태도 다른 것이 되었을지도 모르고, 우리가 사는 집의 형태도 다른 모양이 되었을지도 모릅니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놀랍지요. 기후라는 것. 인간의 삶의 형식들을 만들어내고 결정하고 다시 변화시키는 힘.
    그리고 가을바람은 추운 겨울에 대한 이상한 기대감까지 불러오는 것 같아요. 쨍한 날씨. 쨍한 공기. 추위에 대한 공포. 그러나 그 공포를 넘어서는 설렘. 겨울이 다가오면 한 시절을 보내는 무형의 의식들이 시작될 겁니다. 무엇보다 크리스마스 연휴! 그리고 한 해가 저물어 가는 송년의 밤들! 그런 날들에 대한 기대감이 추운 바람이 짓는 청명한 표정으로 곁에 와 있습니다.

 

    바람, 이라는 단어에는 ‘기압의 변화 또는 사람이나 기계에 의하여 일어나는 공기의 움직임’ 이라는 뜻과 함께 ‘어떤 일이 이루어지기를 기다리는 간절한 마음’이라는 뜻도 있습니다. 공기의 움직임과 마음의 기대감은 같은 움직임일까요? 어쩌면 2차적으로 체험되는 바람의 운명 같은 것이 너머에 있는 간절함을 불러오는 소망과 같은 운명인 것일까요? 이 바람은 서로 다른 뜻인 듯하지만 아주 비슷한 얼굴을 하고 있습니다. 한 사람을 사랑하고 또 다른 사람을 사랑하게 되는 일도 왜 ‘바람을 피우다’가 되었을까요? 언어는 아주 재미있는 세계입니다.
    이런 생각들은 사실 살아가는 데 효용성은 딱히 없는, 다른 종류의 생각일 뿐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일상의 근본에서 우리의 마음과 형식을 결정짓기도 하는 중요한 것이기도 합니다. 마치 문학처럼. 마치 시처럼.

 

    11월이 되었습니다. 11월에는 바람에 대해서 쓰고 싶다고 생각했습니다. 제 안에 들어 있는 바람에 대해서 1할 정도도 얘기하지 못했지만, 그래도 불어오는 바람을 맞으면서, 바람 때문에 주머니에 손을 넣으면서, 조금이라도 바람에 대해서 이야기할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제부터 시작이겠지요. 제가 원하는 ‘바람’에 대해서 말입니다.

 

    서늘하고 아름다운 바람의 기운을 담고 《문장 웹진》 11월호가 여러분 곁으로 다가갑니다. 닫혀 있는 마음에 한 줄기 투명한 바람이 스며든다면 《문장 웹진》은 그야말로 바람의 유혹,이 되겠습니다.^^

 

    〈 나는 왜 〉기획 특집은 손미 시인을 모셨습니다. 독자들과 한층 가까이에서 나눈 시인과의 대화는 따뜻한 가을밤을 내밀하게 만들어준 시간이었습니다. 손미 시인의 어린 시절과 시에 대한 궁금증들을 다정하게 들을 수 있는 자리였지요.
    김민효, 황시운 작가의 밀도 있는 단편소설들도 준비되어 있습니다. 날카롭게 벼린 시선들로 삶의 세세한 세목들을 들여다보는 뜨거운 작품들입니다. 정익진, 이재훈, 이기성, 조기조, 조말선, 안상학, 구현우 시인의 작품들도 올라와 있습니다. 독특하고 개성 있는 작품들이 시에 대한 새로운 갈증을 시원하게 해결해 드릴 것입니다. 에세이 테라스는 조재룡 평론가의 사랑에 대한 산문이 두 번째로 선보입니다. 외국 작품과 우리나라 작품을 넘나들며 매혹적인 사유를 보여주는 시간이 펼쳐집니다. 에세이 테라스에는 황현산 평론가의 특강 후기들도 올라와 있네요. 젊은 작가들이 각자의 개성 넘치는 문체로 써내려간 후기가 인상적입니다. 특강과 관련한 동영상도 올라와 있습니다. 뜨거운 관심 부탁드립니다.

 

 

 

 

   《문장웹진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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