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_차세대3차_시] 시에스타 외 3편

 

[2014년 3차 차세대예술인력육성 문학분야 선정작 ]

 

 

시에스타

 

 


김준현

 

 

 

    1
 
    방 안에서 웅덩이가 자랐다
    그곳으로 이끼가 옮았다
    불면이 숨소리를 듣는 습관이라면
    지금은 모든 펜이 곤두선 안테나가 되는 순간
    불청객들의 귀 움직임을 중계했다

 

    2
 
    편지지와 허공을 몇 번이나 해부했지 혼잣말로 못 쓰게 된 몸과 몸들에서 땀 냄새가 나고 인도인 친구는 방을 옮겼어 없어도 되는 장기와 없어도 되는 신앙 같은 거, 있다면 숨기지 마 어둠에 가까운 피부색으로 나는 가끔씩 없는 사람 동양 남자가 내 손목을 쥐고 202호, 203호, 오늘은 204호…… 좁은 방을 국적으로 둔 사람들 나는 몇 번 방의 선물일까

 

    포장과 속옷은 색깔을 맞춰야 해 나는 좀 더 깊어진 웅덩이에 손을 담그지 손 하나가 다 들어가지 않는 깊이가 나의 음부의 깊이 이 시간이면 거울은 자주 성격이 변하지

 

    깜박이는 것들은 모두 맥박을 닮은 것들

 

    남자의 차 룸미러, 눈꺼풀 아래로 기른 검은 손톱
    깜박거리는 신호등 세 가지 빛
    따로 떨어지려는 빗방울, 떨어지는 소리들
    쿠마리 출신 후배가 길들인 별들

 

    빛에 취해 돌아오면 몇몇 이불과 여자들은 웅크린 공동묘지 누가 그들의 눈동자를 훔쳤을까 주사 놓을 혈관을 찾을 줄 안다면 그곳은 구름으로 가는 통로일까 종이가 모자랄 때까지 몸을 다 쓰고 나면 나는 자주 물을 마셔 커튼 사이로 빛이 새면 나는 무릎을 접고 웅크리는 하수도 몸 밖으로 물이 새는 소리……들리니?

 

    노을이 지고 핏기가 빠진 허공으로부터 나는 천천히 얕아지고 있는 중이야

 

 

 

 

 

 

시간여행자

– 수화

 

 

 

나는 취미삼아 휘파람을 기르고 있어요.

 

그러나 예각을 이해한다는 건 연필을 깎는다는 거, 흑심이 드러나고
좀 더 머무를 수는 없나요, 아직 장미가 될 자격이 필요한데

 

사람들이 얘기합니다.
사람들의 눈빛과
사람들이 입을 벌릴 때마다 드러나는 빨강과 검정
웃음과 이빨의 관계에 대해 아시나요?

 

그렇다면 꽃봉오리는 영영 입술의 잠복기예요

 

칼끝은 때로 손가락 끝을 스쳐 입을 벌리게 만드는데
그게 끝에서 끝으로 다가가 본 경험이었죠.
새어 나가는 것들은 참 조용하답니다.

 

그게 신기해서 당신은 몇 번이나 선을 그었는지
나도 당신을 흉내 냈는데, 알아요?

 

편지란 편지는 찢어도 비명조차 나지 않고

 

묵언도 수행이라면 우리는 태생부터 바람이었을까요, 몇 가지 손짓과
눈빛으로 허공이 따뜻해질 때
고개를 뒤틀다가 꽃이 피었고
침대 시트를 물들이는 노을 젖가슴을 드러낸 여인들이
물 밖으로 걸어 나오는 시간

 

이건 꿈에 대한 음모
흰 천으로 덮어 놓은 풍경들

 

연등이 떠다녀요.
강가에서 몸을 씻는 사람들과 시체들 사이로 흐르는
휘파람의 국적은 어디인가요?

 

내가
끝까지 벗겨진 꽃이라면 당신의 숨소리와 여백에 임할 거예요.

 

 

 

 

 

 

낯선 곳

 

 

 

    1
 
    너와 비를 오해했다 오늘 알았다
    집시와 달팽이는 습기에 취해 움직인다는 거
    멈춰 서서 그들과 대화해 본 적 있니?
    그들의 살을 만져 본 적 있어?
    한국에서 너는 늘 검은 속옷과 상처를 입었지
    그런 날

 

    무작정 버스를 탔고
    나와 창문에 비친 나를 외면했다
    목적지를 지나치고 나서야
    우리는 더 낯선 곳을 찾아 지도를 펼쳤고
    나는
    너에게 아름다운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이를테면
    "이 마을에 있는 묘비 없는 무덤이란 무덤은 전부 제 애인과 기타를 치다가 기타에 맞아 죽는 경우의 수래" 같은 거
    너는 자주 눈을 감고
    기도했다 나는 너의 기도를 듣기 위해
    기도했다

 

    2
 
    너에게 배운 거라면
    쓰레기들을 담은
    봉지의 끝을 묶으면 한 쌍의 귀가 된다는 거
    우리

 

    밀봉된 것들엔 뼈가 없다는 거

 

    달팽이집
    묶인 책
    낮달
    카레
    그리고 시계

 

    저 열두 개의 숫자들은 무엇을 중심으로 공전할까?
    너에게 물었다
    대답이 없어서
    나는 조용히 저녁을 준비했다

 

    냄비의 호흡이란
    물이 끓으면 열 받는 것들을 생각하는 걸까
    금세 안경이 흐려졌다
    풍경이 흐려졌다
    결국 우리는 냄새에 취하는 체질이고
    카레는 영원히 밝은 음식이지

 

    너에게도 입이 있다면 좋을 텐데
    ……대답 좀 해줄 수 있니?

 

    침묵과 아가미에도 차이가 있을까

 

    3
 
    문을 열자
    네가 사라진 풍경이 밀려들었다

 

 

 

 

 

 

남미의 아이

 

 

 

    이불에 달이 옮았어 너와 얼룩의 나이를 알기 위해 바이스를 당겼어 공장의 보일러실에서 읽는 너의 편지는 무너진 계단 같은 거 갈 때마다 보일러는 늘 고혈압에 시달리고 있고 나는 귀를 번갈아 갖다 댔지 들려? 매춘부는 몇 마리의 고양이를 낳았는지 핏자국이 낭자하고 냄새가 나는 게 이런 내용들 때문일까 마야인은 말의 모가지에 칼을 박을 때마다 침묵을 배운다는, 죽은 새끼를 안은 원숭이는 원숭이끼리 소리를 나눈다는 매일 밤 너의 집 열쇠구멍에다 귓속말을 한다는 이야기 잠을 잘 수 없는 날들 여러 사람의 꿈 장면에 동시에 출연해 본 적 있니? 이를테면 기숙사에는 여섯 명이 함께 살고 함께 숨 쉬고 함께 고요해서 누구 한 사람 텔레비전을 켜놓으면 저녁의 밀도는 더 높아지는데 그런 날 살인사건이 발생한다는 이야기 빨랫줄에 널린 이불은 누구의 것일까 누구의 북소리일까 바람에도 가죽이 있다면 다 벗겨내서 덮고 자고 싶은 밤 그런 밤들을 거쳐 너에게도 변성기가 올 거야 개구리도 많이 죽일 거야 때리거나 맞을 때는 끝까지 침묵할 거야 아침이면 장미 화단마다 짙은 그늘이 아스팔트로 옮아가는 것처럼 이불 속에서 함께 숨죽인 사람들처럼 그렇게 태어나는 순간 바로 알게 될 모음에 대해서

 

 

 

< 선정평 >

 
밑줄 그은 문장들이 가장 많았던 시편들이다. 감각적이면서도 구체성까지 획득하고 있는 언술들에 오래 눈길이 머물렀다. “불면이 숨소리를 듣는 습관이라면” “깜박이는 것들은 맥박을 닮은 것들” “그렇다면 꽃봉오리는 영영 입술의 잠복기예요” 등의 언술들이 그렇다. 사실 이 언술들은 자칫 방심하면, 약간 멋을 내려다가 최악의 경우 촌스러워질 수도 있는 비유들이다. 그러나 한 편의 시 속에서, 반지 위에 박힌 보석처럼 은은하지만 존재감 있게 반짝이는 구절로 박혀 있다. 그것은 편편의 시적 완성도가 낱낱의 이미지들로 훌륭하게 조율되고 있다는 뜻도 된다. 특히 「시에스타」와 「시간여행자―수화」가 그렇다.
    김중일(시인)

 

===== 작가와 6문6답 =====

 

1. 우선 선정된 소감을 간단히 밝혀주세요.

  이번이 두 번째입니다. 누군가가 나의 가능성을 믿어 준다는 건 늘 감동적인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처음에도 그랬듯, 기쁘고 감사한 마음입니다.

 

2. 이 시에 대한 간단한 시작 메모를 좀 부탁드릴게요.

  시의 영감이 오는 곳이 어디인지는 모르지만, 써놓고 난 후에 그 시를 되짚어 가다 보면 때로 짐작 가는 곳이 있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 질문이 좋은 점은 시인에게 그 되짚은 과정을 요구한다는 점에서 시인으로 하여금 언어를 위해 놓아버린 의식을 한 번쯤 점검하게 해준다는 점입니다.
  모든 시가 그렇지만 「시에스타」도 예상하지 않은 지점에서 왔습니다. 우리 사회의 하위주체(서발턴)가 외국인 노동자들로 이루어진 현재 그들의 삶과 세계관을 수용하는 문학에 대해 좀 더 관심을 가져야 하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공부하는 사람의 자세로 이것저것 알아봤는데 그보다는 시적 순간-입장이 변하는 지점에 자꾸 시선이 가닿았습니다. 실패한 말하기-글쓰기까지도 수용하는 유일한 공간이 문학이라면 이들의 목소리를 내가 빌려도 되지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 썼던 것 같습니다.
  「시간여행자」는 성(聖)과 속(俗)의 이야기입니다. 갈색 빛 흙탕물 같은 갠지스 강이 가장 성스러운 것의 상징이 될 수 있는 현실에서 성과 속의 구분은 인간만이 만들어낼 수 있는 의식의 경계지점이라는 것. 그 상징체계가 현실에서 발휘하는 힘에 대해 쓴 게 아닌가, 스스로 추측합니다.
  「낯선 곳」은 "너"라는 존재와 "낯설다"라는 말 사이의 긴장관계 내에서 만들어지는 어떤 현실을 쓴 시입니다.
  「남미의 아이」는 잔혹동화의 서사를 누군가에게 들려주는 마음으로 썼습니다. 비이성적인 공동체 내에서 인간은 어떤 성장을 하게 되는지, 잔혹한 진실이 위장된 현실 바깥으로 넘쳐흐를 때 가장 보호받아야 할 존재인 아이의 존엄성조차 지켜줄 수 없다는 일말의 이야기입니다.

 

3. 글을 쓸 때 특별히 듣는 음악이 있다든가, 자기만의 습관이 있다면요?

  음악이 나오지 않는 이어폰을 끼고 씁니다. 등단 전에도, 후에도 밤에 쓰는 습관은 그대로입니다. 어둠의 높은 밀도가 필요할 때가 많습니다.

 

4. 동인활동 혹은, 글을 막 완성했을 때 가장 먼저 읽어 주는 1차 독자가 있으신가요?

  동인 활동은 하지 않습니다. 평소엔 혼자 읽고 혼자 씁니다. 이 부분은 제 의지와 태도를 넘어서는 환경의 문제입니다. 자기-침잠이 될 수도 있고, 편협해질지도 모르죠. 그래서 가끔은 제 또래의 시인에게 보여주고 코멘트를 들을 때도 있는데, 그 역시 좋다고 생각합니다. 나의 언어든, 읽어 주는 사람의 언어든 많은 언어를 경험하는 게 좋죠.

 

5. 일평생 작가로 살면서 이것만은 꼭 쓰겠다, 라고 다짐한 주제나 소재가 있으신가요?

  매체에 발표되는, 공적 언어인 시를 특정한 개인을 위해 쓰고 싶다는 사욕이 생길 때가 있습니다. 어머니, 아버지나 존경하는 선생님처럼, 제가 특별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을 위한 헌시를 몇 편 쓰고 싶습니다. 물론 그 시들이 한 편의 시로서도 제각각 독립성을 가질 수 있을 때의 이야기이므로, 먼 훗날의 이야기가 될 것 같네요.

 

6. 향후 작품 활동 계획을 좀 부탁드립니다.

  많은 시를 쓰는 편은 아니지만 오래 쓸 수 있도록 천천히 경험하고 천천히 생각할 계획입니다.

 

 

김준현 (시인)
 

2013년 서울신문 신춘문예 당선

 

 

   《문장웹진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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