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_차세대3차_시] 서정 외 1편

 

[2014년 3차 차세대예술인력육성 문학분야 선정작 ]

 

 

서정

 

 


김연필

 

 

 

    무언가가 팔락인다
    큰 나무 아래서 팔락인다

 

    팔락이는 것을 보면서 우리는 말했다 저것은 꽃이야 아니 보자기야 아니 새야 새의 날개야 아니 비닐봉지야 아니 귀신이야 도깨비야 나뭇잎이야 나뭇가지야 아니 우리를 보고 웃고 있는 어떤 사람이야

 

    어떤 사람이 우리를 보고 웃고 있었다 아무렇지 않게 웃고 있었다 얼굴이 희고 그림자가 흐리다 그 사람을 보며 우리는 말했다 귀신이야 도깨비야 아냐 나뭇가지야 아냐 비닐봉지야 그래도 그 사람은 우리를 보며 웃고 있었고 우리는 계속 그 사람을 보며 말했다

 

    팔락이는 것이 사람을 닮았다고 쫓아가서는 안 된다 그 뒤에 얼마나 깊은 심연이 있는지 모른다 어느 나무나 그 뒤에는 심연이 있다 사람을 닮은 것이 팔락이는 나무는 더 그렇다 따라갔다가 다시는 돌아오지 못한다 우리도 그렇게 돌아오지 못하고 어떤 심연에 가라앉아 있다

 

    심연 속에서 무언가가 팔락인다 나비다 벌레다 귀뚜라미다 아니 바퀴다 바퀴는 팔락이지 않아 하지만 우리는 팔락이는 것에 대해 여러 벌레 이름만 붙인다 심연 속에서 팔락이는 것은 벌레여야 마땅하다 우리는 어차피 돌아오지 못할 길을 들어왔다 팔락이는 것에 대해 생각하며 너무 먼 곳으로 들어왔다

 

    큰 나무가 팔락인다
    팔락이며 멀리 떠나간다
    우리는 계속 심연에서 팔락이는 나무만 바라본다
    팔락이는 나무 위에서 팔락이는 사람의 표정을 바라본다

 

    우리는 돌아오지 못할 곳에서 팔락이는 얼굴에게 말한다 팔락이는 얼굴은 아무 표정 없다 아무 대답 없다
    어떤 숲 속에서 우리는 계속해서 팔락인다 큰 나무에 걸려서 팔락인다 팔락이며 웃는다 너를 보며 웃는다 너는 대답하지 않는다

 

    조금씩 너의 얼굴에서 그림자가 사라진다 숲 속에 해가 뜨지 않는다

 

 

 

 

 

 

철학 없이

 

 

 

    날아가자. 저 비행기가 날아가는 곳으로. 저 바다 너머로. 저 바다 너머에 보이는 어느 섬의 너머로.

 

    그리고 날아가자. 어느 섬 너머에 있는 어느 오래된 사막과, 어느 오래된 사막 너머에 있는 어느 오래된 유적으로.

 

    유적을 건너서 날아가자. 유적의 안으로 날아가자. 유적의 안에는 오래된 시계탑이 있고, 기둥이 있고, 기둥에 새겨진 그림이 있고, 그림을 읽는 당신이 있고. 그리고 다시 날아가자.

 

    당신의 안으로 날아가자. 보이지 않는 곳으로 날아가자. 비행기 없이 날아가자. 날아가다 보면 당신의 마음이 보이고 당신의 소리가 들리고 당신의 하얀 촛불이 보이고 날이 선 하얀 칼날이 보이고.

 

    날아가자. 저 비행기도 없는 곳으로. 멀리. 멀리 가자. 멀리 가서 아무것도 되지 말자.

 

 

 

 

 

 

제웅

 

 

 

    어느 날부터 우리는 놀이를 시작했다. 서로를 만나는 놀이를 시작했다. 서로를 사랑하고 서로를 위하는 놀이를 시작했다. 그러다가도 우리는 서로를 미워하는 놀이를 시작했다. 우리의 놀이는 계속됐다. 이제 우리는 서로를 그리워하는 놀이를 시작했다. 서로를 그리워하는 놀이를 계속했다. 서로가 그리워지는 놀이를 계속했고, 놀이는 이제 놀이가 아닌 우리가 되기 시작했다. 우리는 모두 슬퍼했다. 모든 것이 우리가 되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모든 것이 죽은 것처럼, 모든 것이 죽은 채로 굿을 하는 밤에 서 본 것처럼, 굿을 하는 이의 얼굴을 본 것처럼, 그 어떤 둥글고 매끈한 얼굴에 구멍을 뚫는 우리가 되기 시작했다.

 

 

 

 

 

 

죽은 이들을 위한 노래

 

 

 

가을비가 내리면

 

죽은 사람들이 말 거는 그런 아침이 오고

 

가을비가 내리면

 

죽은 사람은 아무도 없는, 아무도 없는 차가운 공기 속에
아무도 말 걸지 않는 그런 아침이 오고

 

가을비가 내리면

 

모든 사람들은 죽은 사람이 되고
죽은 사람들은 모두 입을 다무는, 그런 아침에
고양이만 시끄럽게 떠들어대는 아침

 

가을비 내리는 그런

 

그런 아침에는 아무것도 먹지 않으며
아무런 이름도 적지 않으며, 아무 낙엽도
아무 잎새도 떨어지지 않는
옆집 감나무에서 감만 떨어지는

 

가을비 내리는 아침에는

 

옆집 감나무에서 떨어지는 감을 보며
겨울 감나무를 보며
감 다 떨어지고, 잎 다 떨어지고
이태껏 붙어 있는 귀신을 보며

 

가을비 그치고 나면

 

귀신을 생각하고,
귀신에게 노래를,
춤을 출 수 있게 노래를 들려주며
귀신도 떨어지는 겨울을 생각하며
가슴 아프게, 마지막 잎새에 이름을 적고.

 

 

 

< 선정평 >

 
무엇보다 과감하고 거침없는 언술 방식이 인상적이다. 감각적이고 세밀한 언어적 터치보다는 선이 굵은 언술을 통해 조금씩 그러나 점점 뚜렷하게 커다란 시적 형상을 완성해가는 저력이 돋보인다. 그런 미덕을 특히「서정」이란 작품은 많이 가지고 있다. 세부적으로 말하자면 이 시인은 상이한 이미지들의 끝단을 잇고 계속해서 겹쳐나가며 확장해가는 언술 방식을 구사한다. 마치 뜨개질처럼. 문장과 문장, 이미지들과 이미지들이 다 팔짱끼고 긴 대열을 만드는 장관을 줄곧 보여준다. 그 긴 담장을 따라가면 역시나 낯선 풍경이 펼쳐진다. “한 달 내내 비가 내리는 어떤 숲이 있다 바다 위로 자란 어떤 나무가 있다 나무라는 어둠이 있다 어둠만이 뿌리를 내리며 조금씩 자라간다” 등의 언술 방식이 그렇다. 모든 응모작들 속에서 유독 뚜렷한 개성을 보여준다.
    김중일(시인)

 

===== 작가와 6문6답 =====

 

1. 우선 선정된 소감을 간단히 밝혀주세요.

  매우 반갑고 감사합니다. 지난 12년 여름에 운이 좋게 등단하게 되었지만 아직 실력이 충분치 못해서 발표 기회를 거의 얻지 못했는데, 이번 기회에 4편을 더 발표할 수 있다는 자체만으로도 기쁘고 감사합니다. 써둔 시는 많은데, 발표할 기회들이 제한되어서 항상 답답하고 안타까웠는데, 이번에 좋은 소식으로 발표하게 되었습니다.

 

2. 이 시에 대한 간단한 시작 메모를 좀 부탁드릴게요.

  「서정」의 경우는 특별한 영감 없이 적은 시입니다. 다만, 어릴 적부터 벌레를 잡으러 돌아다니는 것을 좋아했기에 숲을 뒤지며 옹이구멍을 바라보는 일이 많았습니다. 주로 한밤중에, 사슴벌레를 잡으려고 참나무의 수액이 흐르는 옹이를 뒤지곤 했지요. 이 당시의 경험과 감정이 의도치 않게 글 속에 들어가게 된 것 같습니다.
  「철학 없이」의 경우는 2012년에 쓴 시입니다. 그 당시 여러 장면에 집착해 글을 쓰는 습관이 있었는데 그때 모인 여러 장면을 한 편에 모아 본 시 정도가 될 듯합니다.
  「제웅」의 경우는 학창 시절에 들은 수업과, 노장의 이야기들이 섞여 나오게 된 글입니다. 대학 수업에서 제웅의 어원이 처용일 수 있다, 라는 이야기를 듣고 난 뒤부터 그 이미지가 머리에 강하게 남았고, 이 제웅의 이미지가 도덕경에 나오는 “하늘은 사람을 짚으로 만든 개처럼 여긴다”라는 구절을 떠올리게 하면서 장자의 우화로 연결된 것 같습니다. 개인사적인 측면에서, 오래 사귄 애인과 헤어진 직후에 쓴 글이기에 그런 내용 또한 묻어 나왔다 생각됩니다.
  「죽은 이들을 위한 노래」는 이전 살던 집 뒤편의 감나무를 보며 느낀 감정을 적어 본 글입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당시 그 나무를 보고 이 나무에는 귀신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신기 같은 것과는 전혀 인연이 없긴 하지만요. 대충 이 정도가 이번에 응모한 시들에 대한 설명이 될 것 같습니다.

 

3. 글을 쓸 때 특별히 듣는 음악이 있다든가, 자기만의 습관이 있다면요?

  보통 새벽에 자다 깼을 때 글을 씁니다. 아니면 글을 써야 된다는 생각이 들 때 씁니다. 음악 같은 건 듣지 않고, 오히려 음악이 들리면 시를 못 쓰는 편입니다. 보통 단번에 몰두해서 10분 이내에 한 편을 쓰고, 그날 따라 감이 좋으면 서너 편 정도를 연달아 써냅니다. 생각을 깊이 하는 것보다는 전체적으로 매끄러운 글을 쓰려 애쓰는 편이며, 작법에 집착하며 글을 씁니다.

 

4. 글을 막 완성했을 때 가장 먼저 읽어 주는 1차 독자가 있으신가요?

  없습니다. 그냥 혼자 내킬 때 쓰고, 한번 쓴 글을 다시 보는 일은 잘 없습니다. 가끔 한 번씩 제가 쓴 글을 제가 보고 살짝 고치기는 합니다만, 이 정도가 전부입니다.

 

5. 일평생 작가로 살면서 이것만은 꼭 쓰겠다, 라고 다짐한 주제나 소재가 있으신가요?

  특별히 그런 주제나 소재는 없으며, 평소 글을 쓸 때도 어떤 소재나 주제를 중심으로 글을 쓰기보다는 갑자기 떠오른 문장이나 이미지를 중심으로 글을 씁니다. 다만 특별하지 않은 소재만으로, 특별한 내용도 담지 않고, 특별한 수사법을 쓰지 않으면서도, 읽는 것만으로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시를 쓰는 것이 목표입니다.

 

6. 향후 작품 활동 계획을 좀 부탁드립니다.

  작품은 계속 마음이 가는 대로 쓸 생각입니다. 시를 쓰는 순간 자체가 일종의 즐거움인지라, 그를 위해 계속 쓰게 될 것 같습니다. 당장의 목표나 계획이라면 빠른 시일 내로 시집 한 권을 내겠다는 것 정도 아닐까 합니다. 책으로 완성된 제 글을 읽어 보는 것이 당장의 소망입니다.

 

 

김연필 (시인)
 

2012년 《시와세계》 등단

 

 

   《문장웹진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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