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_차세대3차_시] 서른이 되어도 이해할 수 없는 건 좋아하지 않는 사람과 밥 먹고 웃고 수다 떠는 것 외 3편

 

[2014년 3차 차세대예술인력육성 문학분야 선정작 ]

 

 

서른이 되어도 이해할 수 없는 건 좋아하지 않는 사람과 밥 먹고 웃고 수다 떠는 것

 

 


권민자

 

 

 

처음은 육하원칙으로.
놀이 같은 것으로.

 

어떤 날은 담아 두고 싶지 않는 것을 말하는 방식으로.
가령, 바람이 불지 않는 동안 바람을 생각했던 것.
가령, 멍들지 않는 플라스틱 같은 것.

 

이름은 굴림체처럼 생일은 얼음처럼
성별은 트럭 같은 것으로 장소는 주저앉은 낙오자로
행동은 에필로그에 중독되어 왜? 자꾸 파고드는 거니?

 

계속되는 충고는 이국적이다. 치즈처럼 녹여 먹기 좋다. 목각처럼 깎인 혓바닥이다.
잘리다 만 혓바닥을 더 부러뜨리자. 죄책감처럼 갈수록 뭉툭뭉툭해지자.

 

마지막 밤. 너무 많은 입이 있던 방.
생각나?

 

어떤 종류의 다정함도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이라고 말한 것.
사람처럼 핥을수록 뾰족해지는 말이라고 말한 것.

 

그러니까 시작하지 말았어야 했다.
육하원칙처럼 묻고 또 묻는 놀이, 같은 것.

 

 

 

 

 

 

알코올

 

 

 

    빛은 필요 없지만 아버지가 “죄송합니다.”라고 말하는 순간 물은 필요 없어지지. 아버지가 “다음부터는,”이라고 말할 땐 귀가 감쪽같이 사라져. 무심코 밟았을 뿐인데, 얼굴. 시도 때도 없이, 발. 떡갈나무 재질의 장롱을 열었지. 옷걸이에 목과 어깨를 걸고, “이제 괜찮은 기분입니까?” 궁금했지. 아버지는 뚜껑을 열면 몸통부터 튀어나오는 용수철처럼

 

    재밌어!

 

    나는, 기도 안에 옥수수를 넣고 가지를 넣고 닭발을 넣고 먹어도 먹어도 배가 고프고
    나는, 알코올처럼 투명해서 정신없이 키득거리며 주전자를 쏟고 길 잃어버리고 물구나무서고

 

    설탕 같은 도마에서 칼처럼 자란 코는 오줌처럼 축축하고

 

    장롱의 입은 다물어라.
    장롱의 귀는 벽이 되어라.
    장롱의 눈은 최대한 커다랗게 감아라.

 

    장롱에서 나를 자궁처럼 꺼내야지. 알코올처럼 키득거리는 어둠을 열면 탯줄을 끊듯 스타카토의 폭력이 발에서부터

 

    덜컥덜컥 떨어져 있지만 붙어 있는 입술로
    덕지덕지 이마 옆의 귀 앞의 코를 붙이며

 

    아버지의 방법으로, 방법적인 아버지로

 

    쿵!
    찧고, 뭉개진 무지개처럼 아름다워졌지. “무지해서 그랬습니다.”라고 말할 때 아버지는 밖이었지. 장롱에 알코올을 쏟아 부으며 아버지는 아버지처럼

 

    끔찍해!

 

 

 

 

 

 

반의반

 

 

 

호두는 여러 개의 닫힌 문으로 만들어졌으므로 동굴이다
당신은 동굴을 오해처럼 깨뜨리거나 여러 개의 문 앞에서 여러 번 서성거릴 수 있다

 

당신은 여자처럼 말하는 것은 반인반수를 반신불수라고 말하는 것
그렇게 말하는 당신 역시 갈비뼈를 씹듯 말할 것

 


는 호두지만
호두는 호두가 아니다

 

“소나기가 내리는 밤에는 나를 삼등분 했다.”라는 내 말을
반의반半-半 화법이라고 오독하면 곤란하다

 

 

 

 

 

 

0

 

    제라늄이 피기 전의 나뭇가지 앞에서 나는 매달리는 그림자
제라늄이 피고 난 후의 나뭇가지 앞에서 나는 저의를 확인하고 싶은 마음

 

 

 

까맣고 하얗다
길고 깊고
짧다

 

목이 없다
가시도 없다

 

보라색 스타킹을 신는 저녁을 배경으로
허벅지는 젤리처럼……

 

너는 위독하게 초인종을 누르고
나는 있는 힘껏 계단을 밟고

 

눈이 녹기 전의 모습으로 복원시킬 것!

 

생각 위에 얼굴을 펼쳐 놓고
혀 안의 보라를 꺼내 스타킹 속에 넣을 것!

 

그대로 멈출 것!

 

장난을 좋아하는구나
골목이 골목을 잃어버리듯

 

나는 나도 모르게 상냥해진다

 

 

 

< 선정평 >

 
자기만의 화법으로 시를 길게 이끌어나가는 힘이 있는 시인이다. 탄탄한 기본기가 느껴진다. 그런데 군데군데 좋은 표현도 많은데, 시의 서사가 머리에 쏙 들어오지 않는다. 가슴을 울리지도 않고. 왜 그럴까? 말을 쏟아내는 힘에 긴장감 없이 시가 실려 안주하기 때문일까. 전하고자 하는 바가 명료하지 않거나 사소해서일까. 파토스적인 시인의 강한 개성이 핵심을 향해 탄력 있게 모아지면, 그리고 매너리즘에서 벗어나 어휘나 소재의 세계를 넓히면 참으로 매력적인 시가 태어날 것 같다.
    황인숙(시인)

 

===== 작가와 6문6답 =====

 

1. 우선 선정된 소감을 간단히 밝혀주세요.

  누군가에게 편지를 쓰고 싶습니다. 여기에서의 누군가는 현재 저도 모르는 (어쩌면 이미 만난 적이 있을지도 모르는) 사람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누군가에게든 편지를 쓰고 싶다는 의미가 정확할지도 모르겠지만 그렇다고 아무 사람은 아니기 때문에 누군가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2. 이 시에 대한 간단한 시작 메모를 좀 부탁드릴게요.

  싫은 사람과 밥을 먹은 적이 있었습니다. 혐오할 정도로 싫었던 사람이었기 때문에 두고두고 불쾌했던 기분을 잊지 못합니다. 그 잊지 못하는 기분을 묵혀 놨다가 결국엔 시로 쓰게 되었습니다. 저는 인간관계를 잘 맺지 못하는 편인데, 그래서 좋은 사람은 좋고, 싫은 사람은 싫은 식입니다. 싫은 사람에게도 웃으며 대하는 것을 잘 못하는 편이어서 그런 제가 싫기도 합니다. 싫은 사람을 혐오하는 동시에 그런 저를 혐오하는 것을 바탕으로 시를 썼습니다.

 

3. 글을 쓸 때 특별히 듣는 음악이 있다든가, 자기만의 습관이 있다면요?

  저는 다른 곳에서는 글을 잘 쓰지 못합니다. 특별한 일이 있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집에서만 글을 씁니다. 그것도 습관이라면 습관이랄까요.

 

4. 동인 활동을 하신다든지, 글을 막 완성했을 때 가장 먼저 읽어 주는 1차 독자가 있으신가요?

  없습니다.

 

5. 일평생 작가로 살면서 이것만은 꼭 쓰겠다, 라고 다짐한 주제나 소재가 있으신가요?

  가장 관심 있는 주제는 “관계”와 “죽음”입니다. 지금까지 그 주제들을 파편적으로 써왔다면, 지금부터는 생각을 정리하고 써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발표한 작품들을 한데 묶어서 보고 있는 중입니다. 한동안 어쩌면 앞으로도 계속 “관계”와 “죽음”에 관한 글을 쓸 것 같은데, 생각이 정리되고 나면 그것을 말하는 방향이나 방식이 달라질 것 같습니다.

 

6. 향후 작품 활동 계획을 좀 부탁드립니다.

  늘 생각하는 마음이지만 쓴 작품을 발표할 수 있는 지면이 있다면 감사합니다.

 

 

권민자 (시인)
 

1983년생. 2012년 《문학사상》 등단.
동국대학교 문예창작과 졸업. 동국대학교 대학원 국어국문학과 박사과정 재학.

 

 

   《문장웹진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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