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의 화원 외 6편

 

 

 

비밀의 화원

 

 

장순익

 

 

 

    건너실 산 밑에 아줌니는 생전 마실도 안 다녀 자기가 안 다니니까 남들도 그 집에 안 가 어쩌다 비탈밭에 수건 쓰고 앉아서 밭 매는 거나 볼까 뭘 먹고 사는지 장에도 안 다녀 남정네가 있나 품앗이를 하나 가을이면 온 동네 지붕 새 이불 덮은 것 같은디 그 집 하나만 시커멓고 움푹 꺼져도 이엉 엮어 줄 사람이 있나

 

    겨우내 눈 쌓이고 녹아 내려 더 납작해진 그 집
    봄 되면 아주 사라졌다
    크나큰 팔이 포옥 감싸듯이
    늙은 벚나무와 살구나무가 꽃을 피워
    아주머니도 초가지붕도 다 감춰버렸다

 

    먼빛에서 볼수록 궁금증이 뒤꿈치 들썩거리는 봄
    나물 뜯으러 갔다가
    뒤꼍 울타리 사이로 보았다
    두 딸이 꽃그늘과 햇빛을 반반씩 걸친 돗자리에 앉아
    머리를 빗겨 땋아 주는 것을
    늙은 벚나무와 살구나무 사이에 줄을 맨 바구니에서
    아기가 주먹을 빨며 가만가만 흔들리는 것을

 

    해마다 봄이 되면 꼭 그 집만
    아들 아홉 둔 집도 아니고
    바깥마당에서 풍물패 놀이하던 부잣집도 아니고
    산밑에 아줌니 집만
    크나큰 꽃품에 안기는 비밀
    이 세상 하루만 허락된 소풍처럼
    친정집 뒤꼍으로 소풍 오실 각별한 딸들이 있기 때문

 

    이 세상 가장 환한 그늘
    꽃그늘 아래 주먹을 빨던 아기
    지금쯤 사십이 훌쩍 넘었겠다

 

 

 

 

 

 

 

그까짓 양평해장국 쇠고기 건더기가 뭐라고

 

 

 

아무리 눈물은 아래로 흐르고
숟가락은 위로 올라간다지만
무슨 입맛이 땡길 거라고
음식 깨작거린다구 미어 박는 소리 허구 있어

 

머리로 부딪고 손으로 쳐도 끄떡없는
차디찬 통유리
누군가의 뿌연 흔적 위에 얼굴을 뭉개며
불구덩이로 들어가는 엄니를 본 지 몇 시간이나 지났다고
막 낳은 애기처럼 따뜻한 유골함
자장자장 우리 엄니
잠깨면 놀라실까
찬바람에 추우실까
잠바 속에 품어 쓰다듬고 토닥토닥
몸은 장지로 가면서
집으로 가자 집에 가서 살자
간절히도 젖 물려 키우고 싶은 엄마
대리석 무덤에 넣고
쇠줄 채워 자물쇠 잠가 놓고
봉분 같은 밥 헐어
꾹꾹 말아 삼키지 않는다고

 

그까짓 수입 쇠고기 건더기 좀 남긴 게
뭐 대수여?

 

도대체 오 년 동안 삭지 않은
이 밥알
어느 구석에 있다가 치미는 건가

 

 

 

 

 

 

임명장

 

 

 

 

헐거워진 항문이 방귀 놓치는 줄 모르는
정년퇴직 앞 둔 분교 교장 선생님과
“얼른 쉽게 얘기해서”를 말머리에 다는 늙은 관리인

 

아이들 다 집으로 가고 난 저녁나절
교문 앞에 쭈그려 앉았다
교통사고 난 아들이 남긴 손주 이야기
딸의 남자 친구가 꽃바구니 해온 이야기
위로와 축하의 말 시들해지고
노을 진 하늘에 백로 몇 마리 날아가나
눈으로 세어 본다

 

나는 주간 교장 할 테니
당신은 야간 교장 하슈

 

어둠이 백로 발목을 채어 갈 때쯤
엉덩이 흙을 털고 일어선 주간 교장은
마나님이 불 켜둔
학교 뒤 사택으로 퇴근하고
방금 임명장을 받은 야간 교장이
텅 빈 학교로 출근한다

 

개구리 소리
가갸거겨
교문으로 밀려들기 시작한다

 

 

 

 

 

 

밥을 먹다가 문득

 

 

 

그 쬐끄만 체격에 어디로 다 들어가나 몰라
목구멍이 잡아 댕겨 씹을 저를 웂이
침만 발라 생켜두 소화가 잘 된다나
고봉밥 뚝딱 해치우구
자갈 무너지는 소리로 트림 한 번 허면 그만이여

 

새 엄니 밑이서 클 때
설움 많이 받었지
맨주먹 쥔 남자 만나서
고상 징그럽게 혔지
논밭으로 뛰어다니며
손톱발톱 자랄 틈 웂이 동당거리구 살었지

 

자식새끼 여우살이 시키구
밥숟갈이나 먹을 만허니께
왜 해필이면 못 먹을 병에 걸리냔 말여

 

아줌니 아줌니
목구멍에 뭐가 걸린 것 같어서 물도 못 생켜유

 

아가리 세 개나 달린 귀신
암(癌)에게 잡혀
퀭하게 꺼진 눈

 

 

 

 

 

 

별이 내리는 밤

 

 

 

술 취한 아버지의 귀가를 기다리다가
별이 참 지저분해
물보다 쓰레기가 많은 개천에
깡통 차 넣듯 한마디 하고 하늘을 올려다보던 친구
내 발등의 신발도 안 보이는
어둠 속으로 배구공처럼 튀어 갔다
아버지 팔짱을 끼고 오다가 문득
잘 올라가지 않는 바지 지퍼를 올려 주느라
아버지 앞에 무릎을 접던 여고생

 

은하수가
모래내 천변에 늘어서 있던
판잣집으로 보였을까

 

마누라 없이는 살아도 장화 없이는 못 산다던 모래내
은좌극장 *은
별이 뜨는 게 아니라
늘 비가 내린다는 소문이었다

 

새벽하늘의 별보다도
새벽까지 꺼지지 않은 연탄불 구멍이 아름답던
모래내

 

   * 은좌극장(銀座劇場) : 서울 서대문구 남가좌동에 있던 극장.

 

 

 

 

 

 

부부

 

 

 

허우대 멀쩡헌 것만 보구 델구 왔더니
시집 온 다음 달부터 이빨 해박는다고 나댕기질 않나
완전 피박을 뒤집어쓴 거여

아 딸린 홀애비가 처녀장가 들었으면
호박이 덩굴째 굴러온 거지
배부른 소리허구 자빠졌네

겹친 사기대접처럼
깨박살 낼 수 없어
그럭저럭 삼십여 년

환갑이랴
사위 보고, 외손주도 생겼디야
손주가 말 배우면
함무니 하부지 커서 뭣 될라고
그렇게 말 안 듣는 거에요 하게 생겼어
징햐!

그 꼬락서니에
남의 부부싸움에
훈수 두기는 또 일등이라니께

 

 

 

 

 

 

뻥치기

 

 

 

테레비가 안 나와서 옆집 진희 아부지를 불렀는디 안 되구
진희 엄마가 만져 봐두 안 되니께
냅다 써비쓰루 전화를 걸더라구
명절이라구 빨리 못 온다구 허더라나
당신들 말여 이 할머니 아들이 대우에서 높은 자리에 있는디
빨리 안 오면 밥줄 끊어질 줄 알어 그랬다는구먼
시상이나 그런 뻥이 워딨어

 

뻥이야 갸들이 먼저 쳤쥬
우리가 쌀 튀기구 강냉이 튀길 때
갸들은 우주적으로 튀겼잖유
삼성 금성 칠성 대우

 

우리야 사실 말이지 튀긴 게 뭐 있남유
엄니 큰아들은 태평양이다 발 담그구 있으니께
맨날 하늘이랑 맞장 뜨잖유
맏손자는 엄니 세대가 밀어 올린 현대판에 있구유
둘째 아들은 상식도 뒤엎을 수 있는 중장비를 허구유
막내아들은 돌아야 사는 것들 취급허는 베어링 굴리구유

 

사람을 생산한 엄니가 대우보다 더 큰 집이잖유
탯줄 젖줄 핏줄 꽉 잡고 기셨잖유
엄니, 쩔릴 거 * 웂슈
대우가 엄니 대우 잘 안 해 주믄 밥줄 짤르야 많어유

 

갸들 엄니두 아닌디
테레비 바꿀 때 된 거 아는디

 

   * '쩔리다'는 충청도 말로 '기죽다'의 뜻.

 

 

 

   《문장웹진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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