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술지도 외 6편

 

 

 

구술지도

 

 

권기덕

 

 

 

    미시시피 강을 따라 동쪽으로 4Km쯤 멤피스 신전이 보이고 그 언덕에서 바람을 타고 벼랑 끝으로 가면 지도에 없는 길이 있다 북미 인디언에 의하면 그 길은 말하는 대로 길이 되는데 되돌아올 수 있는 방법은 오직 죽음뿐이라고 한다 말할 때마다 피는 꽃과 나무는 밴쿠버를 지나 알래스카까지 변화무쌍하게 변형 된다 갈색펠리컨이 말했다 소리에 축척이 정해지면 풍문이 생긴다고 풍문의 높낮이는 산지와 평야를 만들고 때론 해안선을 달리며 국경 부근에선 적막한 총소리마저 들린다 말에 뼈가 있는 것, 수런대는 말은 지형의 한 형태다 낭가파르바트의 눈 속에 박힌 새가 말의 시체라는 설은 유효하다 하지만, 완성된 독도법이 알려진 바는 없다 단지 찢어진 북소리 같은, 언술 너머 죽은 바람을 꽃으로 데려다줄, 음운이 춤을 춘다 죽은 자들이 남긴 것은 결국 어떤 지도에 관한 연대기일 것이다

 

 

 

 

 

 

 

창고 속 창고 속 창고 속 창고

 

 

 

    창고에서 몇 달 전의 구름을 죽였어
    내 손은 빛과 빛 사이에 떠도는 흰 손수건처럼
    몸이 없었지
    구름을 톱으로 자르고 망치로 두드려
    작은 의자를 만들었는데
    금세 흘러내렸지

 

    난 그늘의 농도가 낮다고 판단했어 창고의 창문을 검은 마분지로 가리고 창고 속에 다시 창고를 만들었어 없는 팔다리가 도와주었지 목은 없었지만 목이 늘어난 티셔츠에서 피 냄새가 났어 트램펄린 위에서 박쥐가 보였지 작은 창고 속은 더 어두웠어 물속에 두고 온 눈동자가 떠올랐지만 고독한 고안자 *가 되어야만 했지 남은 구름은 점점 사라지고 있었어

 

    못 박는 소리가 한 차례 총성처럼
    울려 퍼지고
    아주 작은 의자가 만들어졌어
    사라진 내 몸에서도 빛이 났지
    울림 속 울림에서 이름들이 흩어졌어

 

    잠시 뒤,
    여분의 구름은 사라졌고 의자만 남았어
    의자는 무중력자처럼 둥둥 떠다녔고 나를
    살인자라고 놀렸지
    작은 창고 속에 더 작은 창고가 필요했어
    아주 작은 창고를 만들고 의자만 밀어 넣었어
    의자는 점점 직사각형으로 변해 갔지

 

    창고 속 창고 속 창고 속 창고처럼 말이야

 

   * 바타유에서 빌림.

 

 

 

 

 

 

피리 속 교실

 

 

 

 

아이들의 지친 귀를 모아 우주로 떠난다

 

피리를 부는 동안
우주에는 비가 내리고
귀들이 가득한 교실
태양에서 죽은 새들의 노랫소리가 들린다

 

(귀를 쪼아 먹지 마세요)

 

귀 하나가 손을 들고
나는 발표기회 대신
붉은색 분필로 눈동자를 칠해 준다
몰래 스캣을 한다

 

(얘야 너는 눈이 없단다)

 

먼별을 넣었다 빼본다
창밖으로 빗물은 점점 쌓여 가는데
꽃잎은 찢어지고 찢어져
이명耳鳴은 나에게 보내는 추상화

 

귀에서 검은 나비가 날아오른다
그림자가 없는,
없는 얼굴과 없는 몸 주위를 맴돈다
교실에서 또 귀들이 가득한 교실이 생기고
지구는 점점 멀어져 간다

 

귀 먼 아이들이 하나둘씩
눈동자를 씻기 위해
가시나무에 내려앉는다

 

죽은 새들이 내 눈을 쪼기 시작한다

 

 

 

 

 

 

아상블라주를 위하여

 

 

 

    압정을 몰래 밟습니다
    책상 곳곳에서 포스트잇이 날갯짓을 하고
    거울이 하나 둘 생겨납니다
    거울 안 거울에서 찢어진 꽃잎이 찾아옵니다

 

    칸막이 너머로 페트병 같은 놈, 서류철 같은 놈이 보인다 공중에 물방울 스티커를 붙여 본다 나는 존재하지만 없다

 

    오래된 간판이나 유리문, 반짝이는 글씨들이 달라붙습니다
    나는 내가 아니라
    상품의, 소리의, 시간과 시간 사이의 공유물
    삐걱대는 뼈를 눈물이 마르지 않는
    나무의 그림자라 불러 봅니다
    하이브리드 자동차가 달려옵니다

 

    CCTV를 피해 어젯밤 꿈속을 떠올린다 자책감이 메아리친다 자석처럼 귀찮은 놈, 찢어진 청바지보다 찢어진 놈, 볼펜처럼 흔한 놈, 놈, 놈……

 

    무릎에서 철사소리가 들립니다
    걸음 속의 그림자 속의 검은 그림자 위에 내려앉습니다
    니퍼를 든 채 나는 잘라지고 또 잘라집니다

 

    A4로 가득한 수납장에서 오래된 라디오 소리가 흘러나온다 귀에서 검은 조화造花가 쏟아지고 티슈처럼 버려진다 나는 커다란 넥타이 뒤에 숨는다

 

    오늘은 모래 위에 얼굴을 씻기로 합니다
    혀들이 날름거리고
    몸 밖의 몸은 사라진 얼굴을 찾습니다
    모래 위에서 얼굴은 다시 사라지고
    얼굴과 얼굴로 둘러싸인
    흑백사진 속, 바람을 기다립니다
    목 없는 인형이 지나갑니다

 

    건물 밖으로 수없이 많은 내가 빠져나간다

 

 

 

 

 

 

모래시계

 

 

 

모래 속에 나무를 묻는다
까마귀가 날아든다

 

물어뜯는다

 

까마귀 속에 양 한 마리를 묻는다
구름이 몰려온다

 

쏟아진다

 

빗속에 여자의 창문을 묻는다
날마다 우는 소리가 멀리 간다

 

(여자의 깨진 귀가) 둥둥 떠다닌다

 

바닷바람이 달려든다
피 흘리는 시계 한 쌍이 보이고

 

시계 속에 시계를 묻는다

 

시계바늘 위로 잘린 손가락들
숫자와 길항하는 눈동자들

 

눈동자 속에 죽은 고양이를 묻는다
검은 피가 흐른다

 

할퀸다

 

핏속에 나무가 자란다

 

 

 

 

 

 

아맛나

 

 

 

    아버지는 팥을 씹다가 러시아하늘로 떠났다 모스크바 광장을 꼭 보고 싶다고 말했다 무더위는 죽음에 관대했고 동네슈퍼에선 빙과류가 쉴 새 없이 팔려 나갔다

 

    고양이 목을 물던 개가 죽자 아이들은 골목에 몰려 나왔다 서열을 정한 건 멍의 크기였다 이웃집 아주머니는 멍든 다리가 참 예뻤다 땡볕이 줄줄 흘러내렸다

 

    갈증을 참지 못해 북극여우는 북극을 탈출했다 뼈를 발견하고도 지나쳤다 빗방울에 적응하기 위해 혓바닥을 늘였다 얼음이 먹고 싶었지만 살인을 할 순 없었다

 

    옥상에 늘어놓은 빨래는 종종 사라졌다 북극여우를 본 아이들은 담벼락 사이에서 발견되었다 빙과류 막대기가 즐비했다 철거 중인 건물에서도 팥 냄새가 났다

 

    집집마다 아이들은 아버지에게 마구 욕을 해댔고 빙과류에선 거짓말 냄새가 진동했다 그해 여름, 누나는 이웃집 토끼와 도주했다

 

    아이들의 혓바닥은 점점 길어졌다

 

 

 

 

 

 

리베이트

 

 

 

    나는 막대그래프 속 막대, 아버지 외투에서 담배 한 개비를 훔쳐오면 한 칸씩 늘어나죠 아직 내 순위는 6위에 불과하므로 각진 몸 흔드는 게 중요해요 종종 점심시간, 본관 건물 뒤편 주차장에서 상위 순위 친구 향해 이유 없이 달려들어요 오로지 멍을 잘 팔기 위해서죠

 

    순위에 들기 위해선 거짓 학용품비를 활용해야 해요 거짓은 알을 낳죠 알 속에서 눈동자는 점점 검어져요 눈빛은 항상 버려진 필라멘트처럼 가늘게 떨리구요 하지만 나는 마구마구 멍을 팔아야 하죠 빼앗겨야 하죠

 

    아버지는 맞아야 인간이 된다 했어요 막대는 춤추듯 따라다녔죠 종종 그림자가 나를 때리기도 했어요 나는 나에게 사육을 강요했죠

 

    마일리지포인트도 잘 적립해요 사서 선생님에게 대들기 10점, 교장 선생님 욕하기 20점, 담임선생님에게 거짓말하기 40점, 학교 국악실에서 칼로 장구 찢기 50점, 고발을 고발하지 않기 100점, …… 막대는 점점 길어지고 단단해질 거예요

 

    칠판교실창가단층옥상세숫물침대꿈속이밀어요피를흘려요피터지게쫓아가야죠모든게멍을잘팔기위한일이니까요X축과Y축이갑자기사라지진않겠죠?

 

    20년이 흐른 뒤, 나는 피사체처럼 웃을 거예요 그때도 막대그래프가 잘 관리해 주겠죠 막대는 정말 정직하니까요

 

 

 

   《문장웹진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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