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사白蛇 외 6편

[ARKO 선정작가]

 

 

백사白蛇

 

한영수

 

 

 

    마주친 후 산죽 밭으로 들어간 백사가 나오지 않는다 바위틈에 산조팝 희고 두 해째 봄이다

 

    사라지면서 멀어지지 않는 것이 있다 지난겨울은 나에게도 겨울이었다

 

    하얗게 마른 중산간中山間을 지나며 돌아본다 산죽 잎의 이슬만 먹고 산다는 백사와 그런 이야기 끝에
    산죽 밭에 바람이 희면 난리가 난다는 말을

 

    고독의 독을 물고 죽는 대낮이 있다 독백이 긴 동굴은 희지도 어둡지도 않다

 

 

 

 

 

 

 

툇마루

 

 

 

    즈이아베와 즈이어매가 겸상을 했다 좌우 손을 고루 쓴다 오래 씹는 밥알에선 단맛이 난다 그걸로 충분한 얼굴 그대로다 앞산이 스민다 산을 기대 깜박, 앉은잠을 잔다 새가 운다 마당이 시끄럽게 개가 짖는다 덜어내서 더해진 집 비바람이 번진 채로 안을 안이라 고집하지않는다 오래 모인 것들이 무늬를 만든다 물 한 사발을 마시고 나는 즐거워했다

 

    손으로 강을 그리고 강물을 만지작거린다 떠내려가는 것이 전부는 아니다 물돌이 땅 무심마을 같은 데 툇마루를 데려온다 오후의 툇마루를 데려오고 있으면 강이 여울을 만든다 여울이 모래톱을 만든다 옛날 일이다 꿈은 위험하다 그것은 말이 없으려 하고 꿈을 꿀 때마다 나는 목소리를 낮추는 버릇이 있다

 

 

 

 

 

 

기억 나무

 

 

 

 

흰나비 떼가 앉는다
때죽꽃이 즐비하다

 

뻗쳐오르던 나무는 높이를 비웠다
하나의 속도가 식는 동안
사라지는 것들에게 이유를 내주었다

 

때죽나무는 뒤란이 너른 집
그늘을 사는 것들로 붐빈다
한 곳 한 곳 저지대를 향한다
꽃은 높이가 아니라는 것을 받아들인다

 

한번은 부정하고
한번은 긍정하면서
알아채는 높이가 있다
뒤척거리다가

 

키를 흔든 거다
그곳으로
그곳의 나무는 날아왔다
흰나비 떼를 데리고

 

 

 

 

 

 

삽시도

 

 

 

    팔수록 검은 소리가 난다 지난 일이다 너무 깊이 파지 않는 것이 좋다 구멍만 커진다 바다로 나간 남편은 돌아오지 않았다

 

    고쳐서 호미질을 한다 물때가 되면 예쁜 장화를 신고 나와 아빠를 기다리는 아이의 발소리다 뻘을 뒤집어쓴 조개가 둥근 어깨를 드러낸다

 

    과일 속에 웅크린 씨앗 같다 조용한 다짐이 흘러나온다 뻘로 범벅된 목장갑에도 늘어뜨린 수건모자에도 몸뻬에도 모두가 갖고 있는 것이다

 

    막배가 멀어진다 섬은 하나의 절벽이다 보내야 하는 것이 생긴다

 

    마당에는 찢어진 돛폭처럼 빨래가 날린다 빨래집게는 속옷가지를 묶고 이곳에 그녀를 묶고 누구나 섬이 될 기회를 갖는다 쓰러지면서 파도는 배치하고 재배치하는 것이 있다

 

 

 

 

 

 

강아지풀

 

 

 

바람의 식민지
바람하고 논다 포정의
칼날처럼 빈곳을 파고든다
웃고 간지럼 탄다
결과 켜에 스민다 번진다
무게도 부피도 잊고

 

끌려가며 춤을 춘다
춤을 춰야 하는 하루 위에서
풀이 되기 위해 풀을 포기한다
바람의 표정으로 그러니까
바람소리로 차오르는
호흡의 속도로

 

바람의 끝을 구부린다
강아지풀을 뚫는다 해찰하듯
순간을 낚는다 바람을 휘몬다
꼬리를 흔들며
큰 바람을 들어 올린다

 

 

 

 

 

 

마당에 밝힌 독방

 

 

 

바람이 터져 나온다 오늘이라고 말하듯
분홍이 한바닥 엎질러진다
최후의 꽃은 최후의 꽃과
한 걸음을 사이한다
1막의 행인 1
혹은 주인공
비껴 나가며
꽃을 반복한다
비탈은 배경이다
부딪치면 멍드는 살
부서지며 가늘은 살 냄새
빛 가운데를
어둠의 가장자리를
빨아들인다 머금고 있다
어둠과 한통속이 되는 순간
좌표 너머 풍경을 완성한다
꽃나무는 암전 중이다
마당에 밝힌 독방으로부터
소품처럼 떨어지는 찬물소리로부터
더는 어쩔 수 없는, 으로부터

 

 

 

 

 

 

빈 생각

 

 

 

턱을 괴고 이마를 조금 내려뜨리자
생각이 시작 된다

 

약간의 시간이 필요해
얼마 동안의 거리가
자꾸 생각하게 될 때
약간의 빈터가 필요해
빈터의 질문 같은 것

 

불균형한 생각이
폐교의 운동장을 전진한다
제 이름을 부르며 여름풀이 뻗쳐오른다
보는 위치를 바꿔야
의외의 얼굴이 나타날 텐데

 

여러 방향에서 비가 내렸다
빗방울처럼 아이들은 흩어졌다
생각이 흘러내리는데
시멘트 덩이
형상은 치열해

 

생각은 또 시작 된다
당신이 쳐다보지 않을 때도
망루의 깃발을 들고
점 연기에 몰입하는 조연과도 같이

 

 

 

   《문장웹진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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