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세대 선정작 리뷰]이웃의 이방인

 

[2014년도 차세대 예술인력육성 문학분야 선정작 리뷰 ]

 

 

이웃의 이방인

― 서동찬의 「A Stranger」에 관해

 

 

노대원(문학평론가)

 

 

 

 

    서동찬의 「A Stranger」는 치밀하게 설계된 스릴러 단편소설이다. 작가가 만들어낸 이 작은 서사세계는 오로지 독자의 심장을 두근거리게 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처럼 보인다. 독자가 다른 어떤 잡념도 틈입시키지 못할 만큼, 소설은 두 사람의 작중인물이 빚어내는 하나의 이야기에 철저히 집중한다. 「A Stranger」의 시각적 묘사가 생성해 내는 탁월한 현장감과 긴박감은 연극적이거나 영화적이라고 해야 이 소설을 읽는 독자의 독서 체험을 정확히 전달할 수 있을 정도다. 간결한 현재 시제의 서술은 물론 이러한 극도의 긴장감을 조성하기 위해 의도된 서사 전략의 일환일 터다.
    조용한 주택가에서 두 사람의 작중인물이 만나 벌어지는 일이 이 단편소설이 보여주는 이야기의 전부다. 그런 만큼 소설은 예상보다 매우 단순하다면 단순하다고 할 수 있는 길지 않은 이야기를 보여준다. 그런 짧고 몰입감이 강력한 이야기 속에서 소설에 힘을 주는 것은 인물의 아이러니한 설정이다. 마을로 들어서는 낯선 남자의 외양은 사이렌 소리를 울리며 순찰하는 경찰차와 절묘한 화학반응을 일으키면서 독자로 하여금 그를 쫓기고 있는 범죄자로 의심하도록 하기에 충분하다. 피로 붉게 물든 얼굴과 연신 주위를 살피는 불안한 눈동자……. 이 모든 것이 낯선 이 남자의 등장을 적대시하게 만든다. 이에 반해, 마을의 꼬마는 순진한 어린아이의 전형이다. 이 꼬마는 저 낯선 남자의 그악스런 손아귀 속에, 범죄와 그리고 어쩌면 살인의 위협에 노출된 것이리라.
    그러나 소설의 끝까지 빠르게 페이지를 넘겨 가며 이 소설이 제공하는 괴롭고도 즐거운 서스펜스의 향연을 맛본 독자들은 잘 알 것이다, 이 꼬마가 어떤 위협적인 존재인가를. 잘 알려진 것처럼 아이러니(irony)는 그 어원상, 그리스 희극의 전형적인 인물인 에이론(eiron)과 그 상대역인 알라존(alazon)과 관련된다. 에이론은 작고 약하지만 자신의 재치와 기지로써 약자를 괴롭히는 허풍선이 알라존을 언제나 이긴다. 여기서 에이론은 자신의 능력과 자질을 숨기기 때문에 ‘에이로네이아(eironeia)’ 즉 숨기기 또는 은폐에, 알라존은 자신의 능력을 과장하기 때문에 ‘알라조네이아(alazoneia)’ 즉 가장(假裝)에 해당한다. 낯선 남자는 스스로 범죄자임을 숨기고 있으나 서술자는 이 인물의 특징으로 피와 칼을 제시함으로써 그가 쫓기는 흉악한 범죄자일 수 있다는 근거를 독자들에게 대놓고 암시한다. 하지만 정말로 악행을 숨기고 있었던 자는 꼬마였다.
    이 소설이 지닌 아이러니의 인물 구도 속에서 우리는 고전적인 아이러니 서사 형식에서 느꼈던 카니발적 전도, 즉 약자의 승리와 강자의 패배가 안겨다 주는 짜릿한 통쾌함을 느낄 수 없다. 낯선 남자가 드디어 자신의 정체를 드러내며 꼬마를 해치려는 순간, 꼬마는 발랄한 기지를 발휘한다. 보통의 이야기에서라면 우리는 이 꼬마에게 박수를 치며 안도할 것이다. 그러나 소설은 거기서 그치지 않는다. 꼬마는 의기양양하게 “이 동네에 무서운 사람”이 자신임을 밝히며 남자의 목숨과 함께 그의 돈 뭉치를 전리품으로 앗아간다. 이 순간 꼬마는 더 이상 골리앗을 이긴 다윗이나 선량한 승리자 에이론이 아니다. 꼬마는 친숙한 이웃의 가면을 벗은 낯선 괴물이 된다.

 

*

 

    「A Stranger」의 본래 제목은 ‘A Kid’로 알고 있다. 작가는 어째서 제목을 바꾼 것일까. 아마 추정할 수 있는 몇 가지 이유가 있을 것이다. 첫째는, 제목을 변경함으로써 독자가 관심 혹은 의심의 시선을 던지게 되는 대상 인물이 꼬마보다는 남자가 되면서 더욱 강화된 아이러니의 효과를 얻게 된다는 점이다. ‘A Kid’라는 제목은 소설에서 남자보다 꼬마의 위상이 강조되기 때문에 소설의 엔딩에서 반전의 효과가 다소 감소될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 한 마디로 지금의 제목은 본래 제목보다 서스펜스와 서프라이즈의 역동적인 서사 게임에 기여한다.
    두 번째는, 제목을 변경함으로써 해석상의 함의가 훨씬 풍부해졌다. ‘A Kid’라는 제목에서 독자는 꼬마라는 인물의 중요성을 감지하고, 이 인물에게서 아이러니하고 불가해한 공포를 느끼겠지만, 낯선 남자와 관련해서 어떤 해석상의 의미망을 구축하기는 쉽지 않다. ‘A Stranger’라는 제목은 소설을 읽기 전과 읽어 나가는 도중에는 낯선 남자에게 대입되는 특성이지만 소설의 끝에 이르러서는 꼬마의 공포스러운 진실과 대면해서 저 말을 쓰지 않을 도리가 없게 된다. 이방인(A Stranger)의 낯설음이란, 바로 프로이트적인 의미에서 ‘두려운 낯설음(uncanny)’과 다르지 않다. 가장 친숙한 것으로부터 두려운 낯설음이 찾아오기 때문이다. 이방인이라는 표제는 칼을 소지하고 피를 흘리는 낯선 남자를 지칭하다가 순진해 보이는 꼬마의 낯선 괴물성을 지칭하게 된다. ‘A Stranger’라는 소설의 제목은 서사상의 아이러니를 인물을 중심으로 한 소설 전체적인 해석과 긴밀하게 연동될 수 있게 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소설을 통해 결국 이웃과 이방인(A Stranger)의 문제에 도달하게 된다. 우리는 다른 국가, 다른 도시로부터 ‘우리’에게로 온 낯선 타자들에 대한 의심과 공포, 심지어는 적대적인 감정을 지니고 있다. 타자와 이방인에 대한 다문화주의적인 환대와 친절의 문제가 우리 시대의 정치적ㆍ윤리적 과제가 된 지 오래다. 우리는 이 어려운 ‘이웃 사랑’의 과제 앞에서 곤혹스러워한다. 서동찬의 「A Stranger」에서 꼬마는 처음에 심지어 이 낯선 타자가 흉악한 범죄자나 의심스러운 침입자로 보일지라도 그런 적대의 마음을 누그러뜨리고 그를 환대한다. 꼬마는 타자의 윤리에 충실한 ‘선한 사마리아인’으로 보였다. 그러나 꼬마는 낯선 남자와의 대결에서 승리했을 뿐만 아니라 그의 돈을 챙긴다. 꼬마는 선량한 환대자의 가면적인 얼굴 뒤에 본래 이웃과 이방인 모두를 해하고 이익을 취하는 공격적인 본성을 숨기고 있었다. 이것은 어쩌면 이 시대의 윤리적 곤경을 보여주는 한 장면이 아닐까. 타자의 윤리와 관용의 다문화주의는 ‘인간은 인간에게 늑대다(Homo homini lupus).’라는 오랜 명제와 더불어 사유되어야만 한다. 만인에 대한 적대와 공포 속에서 우리는 어떻게 서로에게 좋은 이웃이 될 수 있을까. 스릴과 반전 서사 게임을 즐기고 난 뒤에 남는 질문이다.

 

 

 

   《문장웹진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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