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세대 선정작 리뷰]일상이란 이름의 폭력에 대하여

 

[2014년도 차세대 예술인력육성 문학분야 선정작 리뷰 ]

 

 

일상이란 이름의 폭력에 대하여

― 박성준, 「소문」 외 3편

 

 

기혁(시인/문학평론가)

 

 

 

 

    실정법이 불합리하게 집행될 때, 우리는 법 외부의 폭력을 정당화하고 수단의 정당성보다 목적의 정당성을 우위에 두는 경향을 보인다. 가족의 복수나, 특정한 분쟁을 끝내기 위해 동원되는 폭력은 단순히 묵인되는 것이 아니라 선의의 주인공에 의해 미화된다. 이러한 미화는 국민 정서에 맞지 않는 법집행을 비판함으로써, 경우에 따라 실정법의 수정을 야기하기도 한다. 벤야민이 지적한 바와 같이, 법은 개인의 합목적적인 폭력을 금지하고 나아가 헌법에 보장된 파업이나 집회마저도 (궁극적으로는) 불법으로 규정함으로써, 법 외부의 폭력에 의한 법의 수정을 가능한 유보하려 한다. 따라서 폭력은 새로운 법을 수립하는 법정립적(lawmaking) 성격과 법적 목적을 수행하는 법보존적(law-preserving) 성격을 동시에 지닌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목적의 정당성을 우위에 두는 폭력은 자연법에 근거를 두고 있다. 약육강식의 세계에서 포식자의 폭력이 고려의 대상이 아닌 것처럼, 자연의 섭리를 거스르지 않는 폭력은 윤리적 판단을 유보한다. 벤야민은 자연법을 우선 제외하고 실정법과 폭력의 관계에 주목했지만, 실상 자연법적인 폭력 역시 배제할 수 없다. 우리의 경우를 보면, 넓게는 식민지 지배를 위해 동원되는 제국의 폭력이 그러하고, 작게는 군대 내의 폭력이 그러하다. 열강의 식민지가 된 조국에서 친일파가 되지 않을 수 없었다는 주장이나, 선임병의 폭력을 피하기 위해 후임병에게 동일한 폭력을 행사할 수밖에 없었다는 주장 등은 자신들의 폭력을 자연법적인 차원에서 변호하는 것이다. 나아가 조국의 근대화, 군 기강의 확립 등을 업적으로 재평가함으로써, 가족의 복수나, 특정한 분쟁을 끝내기 위해 동원되는 폭력과 구조적으로 유사해 보이도록 만든다.
    이러한 견지에서 박성준의 시편에 드러나는 폭력의 양상은 자연법적 차원에서 정당화되는 ‘폭력’과 관계된다. 벤야민은 정치색을 지니지 않은 노동자들의 파업(폭력)을 통해 탄생하는 법안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그러나 시인의 눈에 비친 세계에선 권력자들(입법자들)과 가해자들에 의해 행해진 실정법상의 위반(폭력)이 정치적으로 정당화되는 반면, 희생자(폭로자)들이 위반자로서 고립되는 상황이 빈번하게 발생한다. 대한민국이라는 지정학적 특수성과 그에 따른 좌우이데올로기의 대립은 차선에 놓더라도, 그러한 폭력의 정당화는 역사와 윤리의 기준점을 흔들리게 한다. 인터넷 게시판, SNS 등을 통한 소통이 보편화된 시대에 그러한 흔들림은 곧 텍스트의 흔들림으로 이어지게 되는데, 언어에 대한 시인의 믿음이 희박해질수록 텍스트는 “소문”으로 존재할 수밖에 없다. 특히 네 작품 모두가 ‘이야기’의 형식을 띠고 있다는 점은 폭력의 합리화를 형식으로 재현하는 일종의 대응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선임이었던 김은 포박당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토끼를 들에 던지며, 토끼는 비탈 아래쪽으로 쫓는 거라고 그럴 수밖에 없는 신체구조에 대해 설교했다 (……) 용기란 얼마나 우리에게 익숙한 경고인가 (……) 선임들의 낄낄거리는 소리는 사람의 것이었다 그런 행동들이 처음에는 그럴듯한 우연 같았지만 죄다 필요에 의한 처사였다 그때 나는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양의 귀를 붉혔을까 그 선임이었던 김은 시를 쓰는 사람이었다

-「소문」 부분

 

    시인은 리듬을 염두에 둘 만큼 언어를 밀고 나갈 수 없으므로, 과거형의 문장과 환유를 통해 시편들을 구축한다. 문장과 문장이 아니라 전체 문단의 맥락을 통해 파악되는 인접성은 개별의 문장들이 어긋날 수 있음에도 전체 구조를 통해 정당하게 결합시킨다. 작위적인 환유의 의도는 그러므로 자연법을 실정법에 우선하는 것으로 놓고서 정당성을 확보하려는 제국주의자들의 발상과 유비적이다. 제국주의자들은 근대화의 요구나 계몽의 필요성을 들어 식민지의 지배(식민지와 식민본국의 일체)를 정당화하지만, 실제로는 약육강식에 의한 자연법에(국제정세에 따른 전체주의적 맥락) 근거해 식민지에 가해지는 폭력을 정당화하기 때문이다. 내용상으로도 부대 내부는 물론 주변 정세까지 꿰뚫고 있는 “선임”은 “그럴 수밖에 없는 신체구조”를 가진 “토끼”에게 가하는 자신의 폭력을 정당화한다. 그리고 “선임”의 하위에 속한 주체들 역시 “처음에는 그럴듯한 우연 같았지만 죄다 필요에 의한 처사”라는 걸 인식하면서도 폭력을 지속하게 된다. ‘군대’라는 특수한 상황에서 “선임”이 정한 규칙은 실정법이나 군법의 입안 여부와 무관하다는 점에서 목적의 정당성에 대한 의심 자체를 불허한다. 그러한 규칙은 정당성에 대한 “용기”를 “익숙한 경고”로 만들 만큼 강한 공포를 선사한다. 따라서 언어적 상상에서나 가능한 폭력을 실현(정당화)할 수 있는 “선임”은 역설적인 의미에서 “시”인이다.
    하지만 박성준의 시적 전략은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양의 귀를 붉혔”는가에 맞춰져 있지 않다. 오히려 시인 자신의 윤리적 판단을 유보한 채, 전체주의적(환유적) 폭력의 메커니즘 속에서 점점 더 무뎌지는 시적 화자의 일상을 서술한다. 「아름다운 재료」는 “그”의 죽음과 정체를 알 수 없는 “엄지”가 “식욕”을 느끼는 두 가지 사건을 결합한다(“그가 바로 어제 죽었다는 사실이 엄지의 식욕을 더 돌게 했을 것이다”). 그러나 죽음이라는 극한상황에서 원초적인 식욕이나 성욕을 드러내는 사실주의적 방식이 아니라, 둘의 관계와는 무관한 배경을 끊임없이 호출하면서 “그”의 죽음과 “엄지”의 “식욕”이 갖는 관계를 도덕적·윤리적 차원이 아니라 자연법적인 차원으로 환원시킨다. “엄지”는 동물이 아니지만, 그로 인해 “엄지를 알던 사람들 중 이제 하나가 죽었으니/ 여러 명의 엄지들 중에 단 하나의 엄지가 죽은 셈”이라고 판단할 수 있는 것이다. “그”의 죽음은 단지 생김새가 같은 종(種)의 죽음일 뿐이며, 인간의 모성이 사라진 황량한 세계는 “늘상 고아이거나 많은 아버지들처럼/ 대낮은 환”한 곳이다. 폭력이 역치를 넘어섰을 때, 이 세계는 평화롭고 “아름다운” 풍경으로 그려질 수 있는 것이다.
    박성준이 표상하는 폭력은 결국 「건강한 질문」이 불가능한 세계에서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무엇’에 대한 탐구와도 같다. “그 아름답던 중국 여자는 도망을” 가게 된 이유는 우리가 떠올릴 수 있는 거창한 시나리오에 있지 않다. 오히려 “전원도 켜지 않는 텔레비전을 오래 보고 있던 여자와 인사를 나눈다거나 간이 센 김장김치의 밀봉을 푸는 날처럼 그렇게 시작”되는 생각지도 못한 일상에서 비롯된다. 찰나의 어긋남들이 평화롭게 조화를 이루고 있는 일상은 어떤 실정법도 개입할 여지가 없지만, 그럼으로써 너무나 끔찍한 이면을 감추고 있다. “너무 예의가 바른 물들이 돌이 되곤” 하는 세계를 한눈에 알아보기란 쉽지 않다.
    「백색의 단호」에 나탄 것처럼 “남자”가 “그림을 그만두”는 것은 결코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실정법에 위배되는 것은 단지 “여자”가 “무허가로 이 동네 대다수 여자들의 머리를 해줬”다는 것뿐이지만, 실상 “자식을 잃은 부모”인 이들에게 가해진 폭력은 드러나지 않는다. 앞에서 언급한 대로, 역사와 윤리의 기준점을 흔들리게 하는 정당화된 폭력, 텍스트의 흔들림을 야기해 “자식 잃은 부모”를 “소문”으로 존재하게 하는 일상의 폭력이 우리로 하여금 “좀 더 절실해지기 위해서는 속마음을 들키지 말”도록 몰아세우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시인은 일상의 이면에 도사리는 폭력을 통해 무엇을 말하고 싶었던 것일까? “믿음은 신뢰에서 비롯되지 않는다/ 그 강력한 경고에도 불구하고 아무도 애원하지 않았다”는 문장의 의미는 실존주의적인 인간에 대한 염원일까, 아니면 완전한 체념을 가리키는 것일까?
    물론 선택은 개별 독자의 몫이다. 평화로운 일상의 모습으로 혹은 ‘서정적 호러’의 느낌으로 읽어도 좋다. 다만 평자로서 첨언하자면, 끝 간 데 없는 폭력의 풍경, 풍자가 아닌 악의 풍경 그 자체를 극단으로 몰고 나갈 수 있기를 바란다. 평화로운 일상에서 악을 말할 수 있는 용기는 부조리한 일상에서 진실을 폭로하는 쪽보다 무겁기 때문이다.

 

 

 

   《문장웹진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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