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주곡 외 1편

 

 

간주곡

 

 

 


김이듬

 

 

 

 

 

어둠이 다시 퍼지면
너는 방에서 나온다
골목에서 기다릴게

 

저만치 네가 걸어오는 복도 내려오는
계단 불빛이 켜졌다가 꺼지는 동안
몇 개의 건반으로 만든 무한한 음악이

 

너와 걸으면 내 몸에서 리듬이 분비된다
느리고 평안하게
차가워져

 

마치 이 세상에 다시 올 것처럼
그때는 드러내어 사랑할 수 있을 듯이
몇 줄의 소리로 온 세계에 알릴 듯이

 

왜 넌 나를 선생님이라 부르는 거니

 

밤의 카페에서 책에 홀린 너를
그 둘레를 감싼 따뜻하고 투명한 막을

 

마치 내 몸이 내 몸인 것처럼
마치 우주를 느끼는 것처럼
소름과 시름 따위 구름이라고 불러도 되는 것이다
썰렁하지

 

우리 사이에 흐르는 빙수
검은 건반 아래 새하얀 날의 살결

 

얼음이 녹기 전에
긁는다 숟가락은 왜
손가락이 아닌가 부딪친다
간신히 나는 희박하게 우리는 있다
스테인리스 드레스 팬시 성에 다이아몬드 결빙 만발한 정원
유리창 너머
손을 들어 흔드는 너

 

나는 간주된다 울리지 않는 전축
이 신음이 노래인 줄 모르고
마저 이 세상을 사랑할 것처럼

 

 

 

 

 

 

 

 

광기의 다이아몬드에 빛을 *

 

 

 

 

 

그러나
애인의 손에 죽지 않았어요
차가 벼랑에서 떨어지지 않았고요

 

우리가 가까스로 어른이 아니었을 때

 

담을 넘어온 남자가 문을 열고
제 발로 나갈 때까지 타일렀거든요
내일도 있고 내년도 있어 내게도 가슴이 생길 거야
발로는 엉덩이를 걷어찼죠
술 취했기 때문에
제정신은 없는 거니까

 

내 광기는 오만과 참을성에 감싸여 쇳덩이로 변했고
내 영혼은 다이아몬드처럼 실마리조차 없어졌어요

 

그리하여
숨은 신은 계속 숨어서 살피시고
여비가 바닥나서 길바닥에서 죽든가
타인의 목걸이를 훔친다 해도

 

눈을 꽉 감고 오늘도 하루를 살아냈습니다, 아멘
숫자는 안 돼요, 출금액을 쓸 때는 한글로 쓰세요, 도둑년
강도 새끼 인연의 철조망 타고 넘어와서 뺏어간 것은 일백 캐럿 거짓과 저주, 조롱
더 이상 서술할 불행이 없는 나날

 

광기가, 가득한 우울이 철학의 환한 숯 되지 않게 하소서

 

그가 잠든 내 머리칼을 만질 때
전신으로 번지는 소름과 감촉은, 이 흥분은 뭐죠?
머리칼에 발톱에 신경이 없다던데
어묵 같아
더 이상 포도밭에선 살 수 없어요

 

10월은 1월의 뒤집힌 버전
어제는 내일의 데칼코마니
오늘 수면제 과용으로 죽지 않을 거예요
혁명가에게 피살될 일은 없겠죠

 

다시 젠장 1월이 오고
깊은 새벽 술에 취해 찾아온 남자가 내 빨간 발닦개에 토사물을 쏟아도
초콜릿처럼 달고 까만 그의 눈알이 흘러내릴 때까지
벌써 잠옷용 추리닝은 벗겨졌으나
그래도 더러운 팬티나마 그러쥐고

 

그 사이, 포도만 한 눈물 뚝뚝, 매각

 

꺼림칙하게 우리는 죽습니다
보석상은 다이아몬드를 커트하며
현금을 세며 나도 단두대로 가는 중이죠

 

가장 섬세한 손은 돈을 세는 손
궤짝째 포도를 팔며 외삼촌은 말했어요
나는 초콜릿을 까먹었죠 깜깜한 밭에 앉아
포도를 감싼 흰 종이처럼 너울너울 우박이 쏟아져서
다 망할 날을 기다렸어요

 

담을 넘어와 벌거벗던 그 남자
아이도 어른도 아닌 지금 다시 온다면
넌 커서 뭐가 되고 싶니?
머리카락 만지며 한 번 더 묻는다면

 

   *   Shine On You Crazy Diamond
   -Pink Floyd

 

 

 

   《문장웹진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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