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의 색깔

 

[편집위원 노트]

 

 

문학의 색깔

 

 

김미월 (소설가, 본지 편집위원)

 

 

 

 

    《문장 웹진》 편집회의를 하러 가는 길에 명동 한복판을 지나가다가 우연히 한 의류회사에서 행인들을 상대로 이벤트를 벌이고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가장 한국적인 색이 무엇인지 묻고 응답자에게 선물로 태극 문양 티셔츠를 주는 식이었는데, 잠시 지켜보았을 뿐이지만 어느 푸른 눈의 외국인 청년이 내놓은 답변이 퍽 인상적이었습니다.
    그는 망설이지 않고 초록색을 꼽았습니다. 이벤트 진행자가 이유를 묻자 청년은 한국 대표 술인 소주병이 초록색 아니냐는 기막힌 대답을 내놓았지요. 행인들이 웃음을 터뜨렸지만 그는 진지한 얼굴로 제 답변의 근거를 늘어놓기 시작했습니다. 하필 시간 여유가 없던 차라 저는 이어지는 그의 설명을 더 듣지 못하고 그 자리를 떠나야 했습니다. 그러면서 새삼스레 한국적인 색이 무엇일까 자문해 보게 되었지요. 그런데 뜻밖에도 그 외국인 청년의 말마따나 초록색이 정말 한국적인 색들 중 하나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남산 위에 저 소나무 철갑을 두른 듯…….
    나라마다 오랜 세월 동안 운명을 함께해 온 나무가 있습니다. 유럽의 떡갈나무, 지중해 일대의 올리브나무, 일본의 편백나무, 그리고 한국의 소나무. 누구나 알다시피 우리 민족에게 소나무는 단순한 나무 그 이상이었습니다. 건축에 쓰이고 먹을거리로 쓰이고 공예, 문학, 회화 등 다양한 예술 분야에서도 주요 소재로 쓰였으니까요. 우리 조상들은 태어날 때 생솔가지를 꽂은 금줄로 보호받았고, 살아서는 소나무로 지은 집에 기거했으며, 죽어서는 소나무로 짠 관에 들어갔으니, 소나무는 문자 그대로 ‘삶’이었습니다. 그것의 특징 중 하나가 바로 초록색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사시사철 푸른 그 절개와 기상이 소나무의 본질이니까요.
    그런가 하면 고려청자는 또 어떻습니까. 특히 상감청자의 경우 투명한 듯 불투명한, 독특하고 오묘한 그 초록빛의 아름다움을 어떤 형용사로 표현할 수 있겠습니까. 당대의 양반들이 백자보다 청자를 선호했기 때문에 청자가 더 많이 만들어졌고 현존하는 자기도 청자가 훨씬 더 많다고 하는데, 이는 초록빛에 대한 우리 민족의 은근한 애정을 짐작케 합니다.
    게다가 서양에 에메랄드가 있다면 동양에는 비취가 있다고 하던가요. 옛 여인들의 장신구를 만드는 원료로 널리 쓰였던 반투명한 초록빛 보석. 취옥이라고도 하고 경옥이라고도 하는 비취는 한복과 가장 잘 어울리는 보석으로도 알려져 있는데, 옛날 어머니들이 딸을 시집보낼 때 비취로 만든 비녀를 대대로 물려주었을 정도로 우리네 여인들의 삶에서 특별하게 취급되어 왔습니다.
    그 외에도 하나 더 꼽자면 녹차를 이야기할 수 있을 것입니다. 초의선사나 다산 정약용, 추사 김정희를 들먹이지 않더라도 여러 문헌이나 유물들을 통해 잘 알려져 있다시피 우리 선조들의 차 문화는 그 역사가 유구하지요. 특히 장수식품으로서의 효능이 입증된 후 건강을 최우선으로 삼는 현대인들의 삶에서 녹차는 일상 깊은 곳까지 뿌리내리고 있습니다.

 

    이렇듯 여러 사례들을 늘어놓고 보니 소나무나 청자, 비취, 녹차와 우리 선조들의 삶을 떼어놓고 생각하기가 어려운 만큼, 초록색이 우리 민족을 표현하는 색들 중 하나라는 사실 또한 부정하기가 쉽지 않으리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론 그렇다고 가장 한국적인 색이 초록색 하나라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백의민족의 표상인 흰색도 한국적인 색일 것이고, 월드컵 때마다 온 세상을 뒤덮곤 하는 붉은 악마 티셔츠의 빨간색도 한국적인 색일 것이며, 우리 전통옹기의 질박한 흙색이나 음양오행의 오행을 나타내는 오방색도 한국적인 색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제가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이제껏 가장 한국적인 색은 당연히 흰색이라고만 생각해 온 저에게 실제로 한국적인 색이 무엇인지에 대해 고민해 볼 수 있었던 시간이 무척 값지고 흥미로웠다는 사실입니다. 어쩌면 가장 한국적인 것에 대해 가장 잘 아는 사람은 한국인인 우리의 내부가 아니라 우리 외부에 있는지도 모르겠다는 깨달음을 얻었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말이지요.

 

    《문장웹진》 9월호에는 가장 문학적인 것들, 아니, 문학적인 것이 아니라 가장 ‘문학’ 그 자체인 작품들이 실려 있습니다. 송기영, 김연필, 김경후, 함기석, 정우영, 이성미, 임곤택, 이상 일곱 분의 신작시와 엄창석, 이승은, 김정남 세 분의 신작 단편소설이 그것이지요. 문력이 깊은 중견 작가와 신선함을 앞세운 신인 작가의 작품이 한데 어우러져 있으니 다채로운 문학의 색깔을 감상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어디 그뿐인가요. 2회에 걸쳐 연재된 조재룡의 에세이 ‘패자의 숭고함’은 여러 편의 시를 오가며 승자 아닌 패자를 사랑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시적인 언어로 풀어 놓고 있습니다. 꼭 읽어 보십시오. 마지막으로 《문장웹진》이 8월에서 9월 사이 네 차례에 걸쳐 야심차게 진행했던 황현산 평론가의 문학 특강 【황현산과 함께하는 문학행 야간특급열차】가 성황리에 끝났음을 알려드립니다. 청중의 시에 대한 사유를 깊게 해주고 미적 감각을 일깨워준 황현산 평론가의 명품 특강, 참석 못 한 분들은 그것을 듣지 못했음을 아쉬워하고, 참석한 분들은 그것이 이미 끝났음을 아쉬워한 자리였습니다. 곧 영상이 올라올 예정이니 기대해 주십시오.

 

 

 

 

   《문장웹진 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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