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1980년 4월 20일 출생 ~ 2004년 5월 20일 사망

 

 

6. 1980년 4월 20일 출생 ~ 2004년 5월 20일 사망

 

 

 

박주현

 

 

삽화-박주현-1980년

 


 

 

 

 

    나는 갖고 싶은 게 많았다.
    예쁜 얼굴, 날씬한 허벅지, 길고 반짝이는 손톱, 잘생기고 능력 있는 남자 친구, 돈 많고 관대한 부모, 내 이야기를 잘 들어주면서도 질투하지 않는 친구들, 샤넬 핸드백과 디올 향수, 정년이 보장되는 정규직 직장, 나이가 들어도 괜찮은 표정과 몸가짐, 뭐 그런 것들. 아무튼 예쁘고 여유 있고 좋은 것들. 패션잡지 속의 여자들은 가졌지만 나는 갖지 못한 것들이었다. 또 이런 것들이 갖고 싶었다. 나만의 방, 비밀스러운 애인, 몸을 노곤하게 만드는 섹스, 며칠이나 계속되는 길고 깊은 잠, 긴 털을 가진 고양이, 패밀리 사이즈 아이스크림, 밀크 초콜릿, 달콤한 칵테일과 멘솔 담배. 역시 나는 갖지 못한 것들이었다. 나는 가끔 내가 갖지 못한 것들 때문에 울었는데, 내가 너무 가난하거나 무엇인가 불공평하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은 아니었다. 단지 너무 멀리 떨어져 있다는 생각이 들면 말할 수 없이 슬펐다. 아득한 기분이 들면서 나도 모르게 눈물이 터지는 것이다.
    그리고 6이 있다. 나는 6이 얼마나 좋았는지 모른다. 예쁘고 귀여운 6. 대학에 다니는 6. 남자들이라면 누구나 호감을 가질 6. 돈을 모아 배낭여행을 가고 싶다는 6. 어느 날 갑자기 모습을 감춘 6.
    자신의 이름을 6이라고 소개했고, 사장도 그 애를 6이라고 불렀지만 6이 그 애의 진짜 이름인지 아닌지는 모르겠다. 그곳에서 진짜 이름 따위는 무의미했으니까. 나는 그때 이름이 몇 개였는지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매일 새로운 이름, 새로운 직업, 새로운 나이를 만들어 말하기도 했다. 하루에도 몇 번이나 전화를 하는 손님을 상대하려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우리는 걸려온 전화를 많이, 오래 받아야만 돈을 벌 수 있었고 남자들은 되도록 많은 여자와 통화하고 싶어 하기 때문이었다. 어느 날에는 자꾸 전화를 걸고 끊길 반복하는 똑같은 남자와 세 번 통화했는데, 다 다른 여자인 척 전화를 받았다. 한 번은 여대생이었다가, 다른 한 번은 백수였다가, 또 가정주부였다가. 나는 여대생인 척할 때 나를 6이라고 말했다. 학비를 벌며 공부하느라 졸업이 늦어진 스물네 살 여자라고, 나는 나를 예쁘다고 생각해 본 적 없지만 다른 사람들은 나를 예쁘다고 한다고. 이야기를 나눠 보니 좋은 분 같은데, 원한다면 핸드폰으로 사진을 보내줄 수도 있다고. 일단 전화로라도 친해졌으면 좋겠다고.

 

    그해 여름은 무더웠다. 십 년 만에 겪는 기록적인 폭염이었다.
    오늘은 어제보다, 내일은 오늘보다 훨씬 무더웠다. 유례없이 더운 여름은 사람들을 불행하게 만들었다. 어떤 남자들은 오로지 더운데 눈이 마주쳤다는 이유로 서로 치고 싸우고 죽였다. 냉방장치도 통풍장치도 없는 골방에서 더위를 못 이겨 죽는 노약자도 있었다. 한밤에도 내려갈 줄 모르는 수은주는 시민들을 강가로 바닷가로 내몰았다. 그 뜨거운 여름, 가장 충격적인 뉴스는 한 남자의 연쇄살인 행각이었다.
    어쩌면 그 남자의 행각도 더위 때문이었을지도 몰랐다. 한 남자가 열 달 동안 21명의 사람을 죽였다. 대부분 전화방과 보도방에서 일하는 여자들이었다. 남자는 그 뜨거운 여름 막바지에 잡혔다. 지열이 푹푹 올라오는 더운 날씨에도 범인은 한사코 마스크와 야구 모자를 쓰고서 현장검증에 나섰다. 서른 중반의 몸집 작은 남자가 수갑 찬 두 손을 가지런히 앞으로 모으고 변두리 야산으로 기자들과 경찰들을 끌고 다녔다. 남자는 서울 변두리 야산에서 시체를 묻은 곳은 여기, 또 저기, 그리고 여기라고 가리켰다. 경찰은 21구의 시신을 찾았지만 남자는 모두 26명의 사람을 죽였다고 자백했다.
    뉘우치지 않습니다. 나는 벌 받아 마땅한 여자들에게 벌을 준 겁니다.
    기자가 범인의 담담한 고백을 받아 적고 물었다. 어째서 마스크를 벗지 않는 거죠?
    부끄러워서요.
    모자의 챙이 드리우는 그늘 때문에 남자의 눈빛은 보이지 않았다.

 

    나는 6을 전화방에서 알게 되었다. 그렇다고 우리가 따로 밥이라도 먹으러 다니는 사이는 아니었다. 우리의 우정은 전화방 안에서만 유효했다. 우리는 쉬는 시간에 함께 잡담을 하거나 손님들 험담을 하면서 꽤 친근하게 굴었지만, 전화방 밖에서 만났다면 서로 모르는 척했을 것이다.
    5년이나 집에서 아이만 키우다가 아르바이트를 하기로 결심했을 때 남편은 비웃었다. 누가 너 같은 걸 써주기나 한데? 거울 좀 봐라. 아무리 애를 키운대도 그렇지, 나는 코끼리랑 같이 사는 기분이야. 그래서 코끼리는 생활정보지를 뒤적인 끝에 전화방에 도착했다. 일하는 시간을 마음대로 조정할 수 있고 시급은 식당 설거지보다도 높은 데다가 내가 코끼리여도 상관하지 않는 곳이므로 나는 고민하지 않고 전화방에서 일하기로 마음먹었다. 별로 죄책감도 없었다. 몸을 파는 것도 아니잖아. 진짜로 남자를 만나는 것도 아니잖아. 나중에 전화방에는 손님들을 만나러 다니는 여자들도 있다는 것을 알았지만, 나는 아니었다. 그것도 어리거나, 예쁘장하거나, 날씬하거나 적어도 이 가운데 하나는 해당되는 여자들이나 가능한 거니까.
    처음 전화방에서 내가 일할 방을 안내 받았을 때, 나는 관을 떠올렸다.
    한 평도 채 안 되는 방에는 모니터 하나, 전화기 하나가 놓여 있을 뿐이었다. 플라스틱 의자를 가로로 놓으면 다리 뻗을 공간도 없는 좁은 방이었다. 검은색 방음용 스펀지가 천장과 문짝에까지 꼼꼼히 붙어 있었다. 방 안에서 문을 닫자 음소거 버튼을 누른 텔레비전 화면 같은 불편한 정적이 찾아왔다. 사장이 나의 등 뒤로 몸을 기울여 모니터를 손으로 짚어 가며 설명을 해주었다. 자, 상단에 반짝이는 번호가 보이시죠? 저건 여기 룸 번호예요. 그 아래 불이 들어오면 전화가 걸려온 거니 받으면 돼요. 아줌마가 안 받으면 다른 룸으로 연결되기는 하겠지만, 손님들은 기다리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아요. 뭐, 이 일에 요령이랄 거는 없고 그냥 손님들이 오래 통화할 수 있도록 시간을 끌면 돼요. 아시죠? 여기 오래 앉아 있다고 돈을 벌어 가는 게 아니에요. 통화한 시간에 따라 시급이 지급되는 거예요. 통화한 시간이 다섯 시간이면 오만 원, 한 시간이면 만 원. 전화 많이 받는 게 돈 버시는 거니까 손님들 안 떨어지게 달래 가면서 통화하시면 돼요. 어려울 거 없죠?
    사장이 나가자마자 모니터에 불빛이 들어왔다. 수화기를 들자 남자의 숨 가쁜 목소리가 들렸다. 여보세요? 응, 자기 지금 뭐 입고 있어? 혹시 팬티 벗고 거기 만지는 소리 좀 들려줄 수 있을까? 내 자지가 아까부터 커져서 그래.
나는 뭐라고 답할지 몰라 수화기를 내려놓았다. 도망치듯 방에서 나와 마주친 첫 번째 사람이 6이었다. 6은 담배연기를 길게 뿜으면서 나를     향해 생긋 웃었다. 하나 드릴까요? 나는 얼떨떨해져서 고개를 저었다. 나는 한 번도 담배를 피워 본 적이 없었다. 6이 나른한 손길로 담배를 비벼 껐다. 가늘고 긴 손가락이 우아했다. 나도 모르게 물었다.
    그런데 아가씨는 이렇게 예쁜데 왜 여기서 일하는 거예요?
    6은 대답 대신 크고 명랑하게 웃음을 터뜨렸다.

 

    남자가 살해한 여자들은 작고 예쁜 여자들이었다.
    전화방에서 일하는 여자들, 매매춘을 하는 여자들, 혹은 그냥 여자들.
    남자는 이따금 그 여자를 스케치하곤 한다. 그 여자의 이름이 뭐였더라? 남자가 어려서부터 그림에 재주가 있었으나 가난해서 예고에 다니지 못했다는 기사, 지금도 틈틈이 스케치와 데생을 한다는 기사가 신문에 실리자 누군가 드로잉노트, 미술용품 따위를 보내왔다. 남자를 응원하는 사람들, 지지하는 사람들, 불쌍히 여기는 사람들이. 남자는 두껍고 질 좋은 스케치용 종이를 한 장 한 장 넘기다 그대로 엎드려 종이의 냄새를 맡는다. 이건 여자들이 보내온 것일까. 이것들을 공장에서 만들고 포장한 건 여자들일까. 그렇다면 여기서 여자의 냄새를 맡을 수 있을까. 부드러운 냄새. 기분 좋은 냄새. 하지만 종내는 마구 흐트러뜨리고 문질러 없애버리고 싶은 냄새. 그는 숨을 깊이 들이마신다. 종이 냄새는 쓰고 메마르고 역겨웠다.
    사각, 사각. 볼펜이 움직이는 소리만 난다. 독방의 장점이다. 이곳의 시간은 아주 느리게 흘러간다. 무엇을 해도 시간이 남는다. 남자는 볼펜을 들고 스케치를 시작한다. 드로잉노트를 보낸 사람들은 연필도 함께 보내는 것을 잊었다. 어쩌면 남자가 연필을 갖는 걸 위험하게 느껴졌는지도 모른다. 연필을 깎으려면 칼이나 연필깎이같이 날카로운 것이 필요하니까. 그러나 마음만 먹으면 볼펜도 충분히 날카롭다. 그는 수감된 이후로는 어떤 마음도 먹지 않기로 했다. 이미 사형을 선고받았다. 변호사는 항소를 제안했지만 남자는 고민 중이다.
    그림이 좀처럼 만족스럽게 그려지지 않는 것은 연필이 없기 때문일까. 어쩔 수 없지, 볼펜으로 만족하는 수밖에. 남자는 그 여자를 다시 한 번 떠올리려 애쓰고 있다. 그 귀여운 입술, 부드러운 허벅지, 가늘고 연약한 양 어깨. 세게 안으면 으스러질 것만 같았지. 남자는 그 여자 위에 올라갔을 때 조심스레 몸을 움직였다. 깔아뭉개거나 아프게 하면 안 돼. 벌은 벌이고, 섹스는 섹스니까. 여자는 살려달라고 울면서도 남자의 요구를 기꺼이 따랐다. 다리를 들어, 좀 더 밑으로, 이제 입으로 해, 움직이지 마, 그대로 있어, 그대로. 심지어 섹스가 끝나자 친근하게 남자의 어깨를 붙들었다. 땀에 젖은 여자의 머리가 남자의 턱에 닿았다. 기분 좋은 냄새가 났다. 여자의 샴푸 냄새, 화장품 냄새, 땀에 젖은 여자 냄새. (동물의 냄새, 유혹의 냄새). 남자는 그 여자를 똑같이 그려낸다고 해도 그를 기분 좋게 했던 냄새만큼은 똑같이 그릴 수 없을 것이다.
    사람들의 생각과 달리 남자는 다정한 로맨티시스트다. 남자는 (죽여 버린) 여자를 안을 때마다 생각하곤 했다. 이 여자는 살려 줄까. 이런 생각을 할 때 따뜻하고 축축한 젖가슴이 남자의 가슴에 닿았다. 이 여자와 영원히 이럴 수 있다면. 그럼 나는 너를 살려 둘 텐데. 그러나 그 여자가 다시 흐느끼기 시작했다. 제발, 살려 주세요. 시키는 대로 다 할게요. 살려만 주세요. 남자는 무참한 기분이 들었다. 남자는 원래 관대한 사람이건만, 기회를 주는 사람이건만, 어째서 여자들은 이렇게 멍청할까.

 

    6은 사회학을 전공하는 대학생이다. 스물넷인데, 학비와 생활비를 벌면서 다니느라 졸업이 늦었다. 파트 타임 학원 강사부터 서빙, 설거지, 행사도우미까지 갖은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다가 전화방에 도착했다. 6은 전화방을 두고 ‘나름 파라다이스’라고 했다. 언니, 적어도 앉아서 일하잖아요. 6은 두 학기를 파트 타임으로 전화방에서 보내고 괜찮게 돈을 벌었다. 공부할 시간도 생겼고 셋이서 나눠쓰던 자취방에서 혼자 쓰는 원룸으로 이사도 했다. 졸업까지 한 학기를 남겨 두고 휴학한 이유는 빡세게 돈을 모으기 위해서다. 졸업 전에 남들처럼 해외로 배낭여행을 가고 싶다고 했다. 6은 스스로 예쁘다고 생각해 본 적은 없기 때문에, 사람들이 예쁘다고 하면 기분이 묘하다. 6은 언니, 내가 정말 예뻐요? 묻고 미소 지었다. 나는 예쁘다고, 열렬히 고개를 끄덕였다. 고맙습니다. 나는 핸드폰을 꺼내 6의 웃는 얼굴을 찍었다. 깜짝 놀라는 6에게 말했다. 그냥 찍는 거야. 네가 예뻐서 그래. 6은 또 명랑하게 웃었다. 나는 6에게 6이 묻지도 않은 말을 털어놓았다. 나는 대학에서 피아노를 전공했어. 졸업하자마자 결혼해서 애만 키우고 살았는데, 애들이 어린이집에 다닐 나이가 되니 집에서 심심하더라고. 그래서 전화방 아르바이트를 하는 거야. 6이 그러시구나, 고개를 끄덕였다.
    다 거짓말이다. 대학은커녕 그 흔한 피아노 학원도 다녀 본 적 없었다.
    전화로는 무슨 말이든 할 수 있다. 나는 내가 능숙한 거짓말쟁이라는 사실에 놀랐고, 남자들이 이토록 쉽게 속는다는 사실에 놀랐다.
    나는 올해 스물여덟이에요. 간호사인데, 병원을 옮기려고 잠깐 쉬고 있어요. 그런데 몇 살이에요? 마흔다섯? 그럼 오빠라고 부를까요? 자랑 같아서 내 입으로 말하기 쑥스럽지만, 밖에서 예쁘다고들 해요. 키는 162센티미터고, 몸무게는 48킬로. 딱 좋죠? 사실 전 남자 친구가 있는데, 항상 그래요. 안기 딱 좋은 사이즈라고. 아뇨, 남자 친구는 미국으로 한 달이나 출장을 갔어요. 그래서 말인데, 외롭더라고요. 그래서 여기 전화해 본 거예요. 혹시 또 알아요? 좋은 분 만나서 친구처럼 지내게 될지? 원래는 레이스가 달린 속옷을 좋아하는데, 오늘은 원피스 안에 아무것도 안 입고 있어요. 집에 혼자 있거든요.
    외롭다는 말만 빼면, 전부 거짓말이다.
    나는 서른이 훌쩍 넘었고, 대형마트에서 묶음으로 사들인 속옷을 입는 데다 두 번의 출산으로 망가진 몸매는 좀처럼 원상복구 될 것 같지 않았다. 그러나 출산 전에도 남자들에게 예쁘다는 말을 들어 본 적도 없었다. 남편과는 9년이나 연애한 끝에 결혼했지만, 내가 남편에게 매달리지 않았다면 결혼이나 할 수 있었을까?
    나는 점점 전화방 일이 좋아지기 시작했다. 여기서 전화로 속삭이는 동안 나는 무엇이든 될 수 있으니까. 무엇이든 가질 수 있으니까. 그중에서도 나는 6인 척할 때가 가장 좋았다. 중년의 남자들이 외롭다고 징징대면 나는 6을 불러냈다. 저는 6이라고 해요. 방학을 맞아 아르바이트하러 다니는 대학생이고요. 아르바이트로 학자금과 배낭여행 비용을 모으고 있어요. 일이 힘들 때면 여기 전화 걸어서 좋은 분들과 대화하면서 스트레스를 풀어요.
    그래? 기특한데? 그럼 오빠한테 사진 한 장 보내줄 수 있어? 여기 번호 말고 네 핸드폰 번호를 주라. 오빠가 바로 전화할게. 오빠가 너한테 맛있는 거 사주고 싶어서 그래. 답답하면 교외로 드라이브 나가도 좋고. 얼굴이나 익힌다고 생각하자고. 지금 있는 곳이 어디야?
    그래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나는 6의 사진을 내 것처럼 전송했다. 나를 6이라고 말하고, 6의 사진을 내 사진이라고 보낼 때면 나는 6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내가 6이라면 어떨까. 저렇게 젊다면, 예쁘다면, 똑똑하다면. 그랬더라면 나는 좀 더 사랑받을 수 있었을 텐데. 대학에서 공부도 많이 하고 괜찮은 남자를 만날 수도 있었을 텐데. 이런 관을 닮은 방에서 돈을 벌지 않을 수 있었을 텐데. 동시에 나는 6이 미웠다. 예쁘면 뭘 해, 어차피 여기서 알바나 하는 신세인 건 나와 마찬가지인데. 똑똑한 척 해봐야 똑같은 놈들 전화 받는 거잖아. 종종 굳게 닫힌 룸에서 6이 전화를 받는 모습을 상상했다. 팬티를 내리고 폰섹스를 하는 6. 남자와 같이 헐떡이는 6. 지저분한 단어를 속삭이는 6. 그러나 이건 전부 나에게 벌어지는 일이다.

 

    남자는 기자의 질문을 떠올렸다. 왜 여자들을 토막 냈습니까. 주로 작고 몸집 작은 여자들을 골랐다는데 특별한 이유가 있었나요? 남자가 구치소에 있을 때부터 사형이 확정된 지금까지 줄곧 붙임성 있게 쫓아다니던 주간지 여기자였다.
    작은 여자만 죽인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몸집 작은 여자를 선호했다. 그건 작은 여자가 큰 여자보다 토막 내기 쉬워서였다. 그리고 여자를 옮기는 것보다 토막을 옮기는 편이 훨씬 쉬웠다. 그는 여자를 죽이는 것만큼이나 토막 내는 일도 좋았다. 살인은 그림을 그리는 일과 다르지 않았다. 그는 한 편의 그림을 완성하듯 여자를 죽이고 자르고 분해했다. 엄청난 기술과 체력, 그리고 집중력이 필요한 일이었다. 때때로 어떤 여자들은 죽어서 더 아름다웠다. 입을 다물고 침묵하기 때문에 아름다웠고, 남자가 다루는 대로 고분고분하기 때문에 아름다웠다. 진작 이랬더라면. 처음부터 이랬더라면 남자는 아무도 죽이지 않았을 텐데.
    남자는 사형이 두렵지 않았다. 그는 이제 잃을 게 별로 없었다. 사형이 아니라고 해도, 교도소에서 나가는 일은 요원할 것이다. 교도소에서 오래 살아남는 일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여기는 여자도 없는데. 여자들, 작고 부드럽고 고분고분하고 귀여운 여자들. 남자는 다시 그 여자의 이름을 기억하려 애쓴다. 뭐였더라? 뭐라고 했더라? 여자는 전화방에서 일하는 주제에 도도하게 굴었다. 대학에 다닌다나, 어쨌다나. 외국으로 여행을 떠날 계획이라고도 했지. 사진은 흔쾌히 보내주었으면서 막상 만나자는 이야기에는 이리 빼고 저리 빼면서 비싸게 굴었다. 남자는 자꾸 약속을 잡았다 취소하는 여자가 짜증스러웠다. 죽여 버리고 싶을 만큼. 하지만 오래 매달리지 않고 잊어버렸다. 여자는 많으니까. 죽어도 싼 여자들. 여자와 마주친 것은 우연이었다. 그는 종로에서 낯익은 얼굴의 여자와 함께 지하철에 올라탔다. 저 여자를 어디서 봤지? 누구지? 그는 핸드폰에 저장한 사진을 불러냈다. 그 여자다. 비싸게 굴던 전화방 여자. 대학에 다닌다고 잘난 척하던 여자. 심심해서 전화를 걸었다고? 지랄하네. 그는 돈이 필요한 여자들이 전화방에서 전화를 받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전화방에서 괜찮은 여자를 찾는 놈이 있다면, 그게 병신인 거다. 남자는 다시 한 번 여자가 같은 여자인지 확인한 다음, 독립문에서 내리는 여자를 따라 내렸다. 남자가 여자 뒤를 따라 어둑어둑해진 공원을 함께 가로지르는 동안 가벼운 바람이 불어 나무 이파리들을 흔들었다. 그는 함께 산책하는 기분이 들었다. 사랑하는 여자와 공원을 거니는 장면은 텔레비전이나 영화에서만 봤지, 한 번도 여자와 이렇게 걸어 본 적이 없었다. 그런 걸 두고 운명이라고들 하던데, 이것도 운명이라고 하지 뭐.
    여자는 길고 좁은 골목을 한참 걸어 낡은 원룸 건물에 도착했다. 여자가 유리문을 밀고 미끄러지듯 사라지고 이층 작은 방에 불이 켜졌다. 남자는 망설이지 않고 불 켜진 방으로 향했다.

 

    다들 이렇게 살아.
    6은 갑자기 사라졌다. 무단결근으로 시작해 연락두절 되었다. 놀라운 일은 아니었다. 여기서는 많은 여자들이 갑자기 나타나지 않는 식으로 일을 그만두니까. 사장과 실장이 다른 여자들에게 6의 소식을 묻기도 했다. 그럼에도 전화방의 누구도 두 번 이상 전화해 보지 않았을 것이다. 전화방의 여자들은 쉬지 않고 바뀌니까. 어떤 전화를 받아야 하는지 알지도 못하고 왔다가 몇 시간 만에 사라지는 여자들도 있었다. 우리는 뒤에서 그런 애들을 욕했다. 순진한 척하고 있네. 대체 뭐 때문에 전화만 받고 시간당 만 원을 쳐주겠어. 나는 6을 별로 걱정하지 않았다. 6이 들어 있던 방에는 며칠 지나지 않아 다른 여자가 앉아 있을 테고, 6은 분명 여기보다 좋은 일자리에서 돈을 벌고 있을 테니까. 적어도 남자의 술주정이나 빨아 달라는 말을 듣기 위해 수화기를 들지 않아도 되는 곳에서. 아니면 벌써 돈을 충분히 모아 배낭여행을 떠났거나. 6은 서유럽을 가고 싶다고 했는데, 나는 서유럽이 정확이 어디를 말하는지도 모르고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6이 이국적인 풍경을 배경으로 나른하게 담배를 피우는 모습을 상상할 수 있다. 나는 6이 걱정되지 않았다. 부러웠다.
    다들 이렇게 살아.
    남편이 자주 하는 말이고, 엄마가 살아 있을 때 자주 한 말이기도 했다.
    엄마는 내가 욕심이 많다고 했다. 송충이는 솔잎을 먹는 거다. 황새 쳐다봐야 뱁새 가랑이 찢어지는 법이다. 엄마는 그렇게 평생 솔잎만 먹고 황새에 눈길도 주지 않고 살았는데, 그 결과 송충이처럼 뱁새처럼 죽었다. 마트에서 종이박스를 정리하고 수거해서 파는 일을 해 생활비를 벌다가 재작년 겨울, 물건을 내리러 온 냉장트럭에 받혀 죽었다. 엄마는 빙판 위에서 줄줄 미끄러지는 트럭에 깔려서 몇 미터나 끌려갔다고 한다.
    마트의 연락을 받고 병원으로 달려갔더니 엄마는 이미 사망한 다음이었다. 털썩 주저앉으며 생각한 것들 가운데 하나는 다행이라는 점이었다. 엄마가 수술을 받아야 했다면, 또는 중환자실에서 며칠이나 머물렀다면 병원비를 감당할 수 없었을 테니까. 적어도 이제 장례비용만 생각하면 되니까. 남편이 벌어오는 180만 원으로는 매달 월세 보증금 이자 내기도 벅찼다. 엄마의 임종을 지키지 못한 아쉬움보다도 경제적인 안도감이 더 크다니. 장례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나는 대성통곡을 했다. 남편이 위로라고 건넨 말은 이랬다.
    다들 이렇게 사는 거지.
    사라진 6 대신 추가근무를 시작하면서 전화방에서 보내는 시간이 길어졌다. 콜이 많은 저녁시간까지 일하자 섭섭지 않을 정도로 돈이 들어왔다. 딸들은 어린이집 오전반에서 종일반으로 옮겨갔고, 나는 종종 토요일이나 일요일에도 전화방에 일하러 나왔다. 또 쉬는 날이면 미용실에 들러 머리를 하거나 백화점에서 옷을 사기도 했다. 6의 조언대로 다이어트에도 돌입했다. 남편은 나를 코끼리라고 불러. 둘째 낳고는 같이 자본 게 언제인지 기억도 안 나. 6은 문제를 간단히 정리했다. 언니도 살을 빼면 되잖아요. 살 빠지면 언니도 예쁠 거 같아요. 그다음에 남편이 뭐라고 하나 봐요. 6은 담배를 꺼내 물며 물었다. 피울래요? 나는 6이 건네는 담배를 받았다.
    하지만 남편은 나의 변화를 하나도 달가워하지 않았다. 오히려 길길이 뛰면서 화를 냈다.
    그는 내가 돈을 벌면서 버릇이 없어졌다고 했다. 돼지가 찍어 바른다고 돼지가 아니냐고, 쓸데없는 짓 하지 말고 도로 애나 키우라고 했다. 집 안이 엉망이라고, 아이들도 꼴이 말이 아니라고, 집에 돌아오면 좀 쉬고 싶다고 했다. 정작 남편은 그동안 내가 어디서 일을 하는지, 어떻게 돈을 벌어오는지조차 궁금해 하지조차 않았다. 알고 싶지 않았던 걸까, 아니면 내가 돈을 벌 수 있는 곳이 빤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일까. 남편이 다이어트 보조제를 패대기치자 알약이 방바닥에 알알이 흩어졌다. 병신아, 이걸 먹는다고 살이 빠지겠냐. 그냥 하던 대로 하고 살아. 옷장을 뒤져 내가 새로 산 옷과 핸드백도 던져 놓고 밟았다. 이럴 돈이 있으면 빚을 갚아, 이 정신 나간 여편네야. 아이들이 남편의 서슬에 놀라서 방 한쪽에서 바들바들 떨고 있었다. 나는 바닥에 떨어진 알약을 주섬주섬 주우면서 말했다. 당신이 사준 거 아니잖아. 당신도 당신이 번 돈으로 당구 치고 술 먹고 하잖아. 남편이 코웃음을 치며 내가 주워 올리려던 핸드백을 걷어차서 방 저쪽으로 보냈다.
    핸드백이 손에서 멀어지는 것을 보면서 나는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억울하거나 불공평하다는 생각 때문이 아니었다. 걷어찬 가방이 그렇게 비싼 것도 아니었다. 단지 내 가방이 내 손에서 멀어지는 것이 싫었다. 화가 나고 슬펐다. 말할 수 없이 슬펐다. 야, 유난 떨지 마. 다들 그렇게 살아. 남편이 다시 한 번 가방을 걷어찼다.
    그다음에 일어난 일은 몇 번이나 다시 떠올릴 수 있다. 마치 비디오테이프를 되감아 같은 장면을 보고, 보고 또 보는 것처럼. 어떻게 그런 일이 벌어졌는지는 지금도 잘 모르겠다. 남편만큼이나 나도 놀랐으니까.
    나는 남편을 밀어 넘어뜨린 다음, 목을 조르기 시작했다.

 

    남자는 일이 끝나고 그 여자를 그렸던 일을 생각한다.
    그는 한동안 여자의 배를 베고 누워 있었다. 여자에게 정사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비릿한 정액 냄새, 시큼하고도 들척지근한 여자의 분비물 냄새, 화장품 냄새와 뒤섞인 가벼운 땀 냄새, 여자의 머리통에서 흘러나온 피 냄새. 갑자기 다정한 마음이 몰려와 남자는 몸을 일으켰다. 피에 젖은 방금 산도를 빠져나온 아기의 얼굴을 닮았다. 붉게 젖은 고통의 얼굴. 남자는 여자의 얼굴을 손으로 쓸어 피를 닦아냈다. 오빠처럼, 남편처럼, 아빠처럼. 다음에 남자는 종이에 여자를 정성들여 스케치하기 시작했다. 남자가 그리는 여자는 피도 없고, 고통의 표정도 없었다. 말쑥하고 세련된 차림으로 남자를 바라보며 웃고 있었다. 애교가 넘치는 눈가와 살짝 팬 보조개. 어깨까지 흘러내린 머리칼. 남자는 완성된 그림을 보면서 생각했다. 귀여워, 너무나 귀여워. 확실히 살아 있는 편이 낫군. 남자는 감탄하는 동시에 자신이 죽인 여자 때문에 상실감을 느꼈다. 그런 생각을 하다가 그만 남자는 종이를 놓쳐 떨어뜨렸다. 재빨리 주워 올렸지만 이미 피가 스케치 위로 흠뻑 묻은 뒤였다. 비로소 그림 속의 여자와 그림 밖의 여자는 똑같아졌다. 그 그림은 대체 어디로 갔을까. 왜 다시 그렇게 그릴 수 없는 것일까.

 

    남편의 익숙한 얼굴이 일그러지자 낯설었다. 남편이 사지를 버둥대면서 두 팔을 마구 휘저었다. 나를 치고, 할퀴고, 흔들었지만 소용없는 짓이다. 둘째를 낳은 뒤부터는 내 몸무게가 더 많이 나가니까. 나는 남편을 가슴부터 단단히 깔고 앉아 움직이지 않았다. 온 힘을 다해 목을 졸랐다. 그는 얼굴이 크고 붉게 부풀어 오르는 와중에도 나를 똑바로 쏘아보았다. 화가 났다기보다 당황한 얼굴로. 정말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나는 이렇게 약하고 형편없는 남자와 함께 살아왔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나는 정말 이 남자와 몸을 섞고, 입을 맞추고 그랬던 걸까? 이 남자와 닮은 아이를 둘이나 낳았단 말인가? 내가 너를 그렇게 원했단 말이야?
    얼마나 남편의 목을 조르고 있었는지 잘 모르겠다. 한 시간? 두 시간? 어쩌면 하루 종일? 그러나 나는 인간의 목숨을 빼앗는 데 걸리는 시간이 그렇게 길지 않다는 사실 또한 알고 있다. 길어야 몇 분이었겠지. 나는 아이들의 울음소리를 듣고서야 정신을 차렸다. 다섯 살짜리 큰 아이가 세 살 먹은 동생을 세게 끌어안고 자지러지게 울고 있었다. 아이들의 눈물을 보면서 나도 울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나는 두 딸을 끌어안고 달래기 시작했다.
    걱정하지 마, 괜찮아. 이제 다 끝났어.

 

    교도소는 수감자들에게 완전한 어둠을 선물하지 않는다.
    어둠 속에서 교도관들이 모르는 사이에 어떤 일을 벌일까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병신들, 머저리들. 밝거나 어둡거나 상관없이 벌어질 일들은 벌어지기 마련이야. 그는 아까 팽개친 드로잉노트를 집어 들었다. 그는 며칠째 전화방 여자를 그리려고 하지만 실패했다. 여자를 몇 토막을 냈더라? 남자는 살인을 거듭하는 사이 거의 기술자처럼 살과 뼈를 발라낼 수 있게 되었다. 스무 토막? 서른 토막? 그렇게 해체된 여자들을 가져다 묻었다. 이제 다른 것을 그려 보자. 여자 말고, 여자가 있던 곳.
    남자는 촉이 두꺼운 볼펜으로 그 여름의 야산을 그린다. 소나무와 아카시아 나무와 벚나무들, 성성해지기 시작한 가지와 이파리들, 무성한 잡풀들, 축축이 젖은 공기, 매미 우는 소리, 부서진 바위, 어깨에 짊어졌던 가방의 여자, 노랗고 붉었던 이름 없는 꽃들, 뜨겁고 무거운 공기, 멀리서 들리는 개 짖는 소리. 남자는 거기에 열다섯 구의 시체를 묻었다. 거기 묻지 않은 희생자들에겐 다른 식으로 장례를 치러 주었다. 어떤 집엔 불을 질렀고, 머리를 부순 가족에겐 그들의 이불을 덮어 주었다. 이 호젓한 장소는 남자가 잘 아는 곳이었다. 낮에는 사람들의 발길이 제법 끊이지 않는 장소인데, 가까운 곳에 약수터가 있었다. 사람들은 약수터로 향하느라 이 호젓한 장소를 그냥 지나쳤다. 봄이면 개나리, 진달래, 벚꽃이 차례로 흐드러졌다. 장관은 아니나 흐뭇하게 보기에 적당했다. 남자는 봄부터 꽃도 볼 겸, 시체들도 버릴 겸해서 이곳을 찾았다. 식목하는 사람처럼 차리고 산을 찾아 덩치 좋은 벚나무를 중심으로 여자들을 묻었다. 왜 하필 밤에 식목하는 겁니까, 누가 물으면 그렇게 말할 작정이었다. 낮엔 직장에 나가야 해서요. 그러고도 남자가 묻은 것을 궁금해 하면, 삽으로 후려치면 되었다. 그러나 여름에 잡히기 전까지, 아무도 남자를 보지 않았고 누구도 남자가 묻은 것을 파헤치지 않았다.
    그는 벚나무를 먼저 그린다. 여자를 묻은 건 여름이 시작되기 직전이었지. 꽃이 지고, 산벚나무가 늦게까지 간간이 마른 꽃잎을 달고 있었다. 바위들, 그리고 부서진 바위들. 파헤치면 축축하게 젖어 썩고 있는 검은 낙엽들. 누가 알겠어, 이 낙엽들이 전에는 사람이었는지. 남자는 삽으로 낙엽을 퍼내면서 생각했었다. 남자처럼 정의로운 사람들은 남자 이전에도 존재했을 것이고, 남자처럼 심판하고 벌을 주고 했을 테니까. 남자는 검정색 륙색에 연장을 챙겨 넣어 다니곤 했다. 건설 일용직으로 일할 때 쓰던 가방이었다. 그 익숙한 검정색 가방도 그려 넣는다. 밟으면 갈짝대는 소리가 나던 마른 나뭇가지들, 솔방울 따위도 그린다. 아마 보름은 아니고 보름 가까웠을 거야. 그는 한쪽이 살짝 이지러진 동그라미도 나무들 위로 그린다. 동그라미를 반쯤 흐릿하게 덮은 구름도 그린다.
    이제 뭐가 빠졌지?
    죽은 여자와 죽은 여자를 묻는 한 남자.

 

    남자는 이제 그가 잘 아는 한밤의 산 속에 있다. 그는 그림을 통해 여기로 왔다. 여자들을 가져다 묻은 곳, 남자가 종이에 옮겨 그린 곳. 그러나 이곳은 전에 본 적 없는 새로운 곳이고, 남자가 그리지 않은 어떤 수풀 속이다. 그는 방금 그가 원했던 것을 발견했다. 네이비 컬러의 커다란 여행용 가방. 이 가방을 꺼내기 위해 남자는 두 손으로 한참이나 땅을 파헤쳤다. 그는 연장으로 가득한 검정 륙색을 그려 넣었던 사실을 까맣게 잊었다. 손등이 까지고 부러진 손톱 밑으로 자잘한 흙과 돌멩이들이 파고드는 것도 아랑곳 않았다. 여기엔 온통 남자가 묻은 여자들. 남자가 꾸민 새롭고 비밀스러운 정원. 남자는 가방을 앞에 두고 전화방 여자의 이름을 기억해 낸다. 여자의 이름은 6이다. 6을 몇 개의 비닐봉투에 나눠 담았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았다. 뼈는 뼈끼리, 살은 살끼리. 6이라는 여자는 현장 감식에서 발견되지 않았다. 남자는 자백하고 경찰은 발견하지 못한 다섯 구의 사체 가운데 하나였다. 그렇다면 6은 아직 여기 있다. 남자는 손이 너덜너덜해지는 것도 깨닫지 못하고 땅을 파헤친다. 그는 6을 다시 찾고 싶다. 머리라도 꺼내 본다면 6의 초상화를 완성할 수 있을 것 같다. 다 썩어 버렸을까? 완전히 문드러졌을까?
    가방은 아주 오랜 시간을 버티기라도 한 것처럼 아주 낡아 있었다. 그럴 리가 없잖아. 겨우 석 달, 아니 넉 달 가까이 되었을까. 부서지고 뒤틀린 플라스틱 가방 고리들, 너절하게 흙물이 든 지퍼와 가방 손잡이, 이제는 도저히 알아볼 수 없을 만큼 지워진 영문 장식 프린트. 가방을 타고 자라기 시작한 풀뿌리와 나무뿌리들은 도저히 깨끗이 걷어낼 수가 없다. 도대체 얼마나 여기에 있었던 걸까. 남자는 묵묵히 가방을 바라보았다. 그는 무릎을 꿇고 가방 앞에 앉아 가방을 부드럽게 쓸어 흙과 잔가지를 털었다. 여기에 있었나. 가방을 열자 잘게 토막 낸 여자의 살점들이 한꺼번에 피어난 꽃처럼 보였다. 한껏 흐드러진 진달래, 핏빛 진달래, 상한 고기 냄새를 풍기는 진달래. 그는 6의 머리를 찾기 위해 가방을 거꾸로 흔들었다. 하지만 아무리 털어도 머리는 나타나지 않았다. 대신 살점이, 핏물이, 뼈가 떨어진 곳마다 이파리가 돋기 시작했다.
    그건 설명하기 힘든 식물이었다. 커다란 꽃이었고, 꽃나무이면서 여자였다. 처음엔 평범한 식물의 새순 같은 것이었다. 이파리는 느릿느릿 그러면서도 쉬지 않고 자랐다. 팔과 다리를 펴듯 줄기가, 가지가 뻗어 올랐다. 남자는 훅, 숨을 들이쉬고 뒤로 물러났다. 남자가 그려 넣은 달이 구름을 벗어났다.
    이제 가지마다 봉오리가 달리기 시작했다. 이쪽에 저쪽에, 또 여기에. 남자는 지금 자라는 식물이 6이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6이 남자를 기다려 왔다는 것도. 6은 봄비 맞은 식물처럼 무럭무럭 자란다. 춤추듯 자란다. 흔들리듯 자란다. 이렇게 부드러운 나무둥치를 본 적이 있었나. 그는 가까이 다가가 나무를 끌어안고 싶다.
    기다려.
    6은 좀 더 자라야 한다. 아직 꽃도 피우지 않았으니까. 남자는 이제까지 견뎌 온 기다림을 망치고 싶지 않다. 6은 남자의 것이다. 누가 여기에 여자를 심었나. 여기는 누구의 정원인가. 내 거지. 봉오리가 목련꽃봉오리를 닮았다고 생각하는 순간, 꽃망울이 터졌다. 가장 먼저 피어난 꽃은 6의 손이었다. 핏기 없는 손가락이 하얀 꽃잎처럼 벌어졌다. 그런가 하면 6의 다리도 있고 남자의 이빨 자국이 남은 목덜미도 있었다. 연갈색 유두와 귀고리가 아직도 달려 있는 한쪽 귓불도. 반쯤 감은 눈꺼풀에 길고 검은 속눈썹. 아, 남자는 피어나는 눈꺼풀을 보면서 감탄했다. 저렇게 예쁜 속눈썹을 가진 줄은 미처 몰랐는데. 비로소 남자는 6이라는 여자를 구석구석 깨닫기 시작한다. 꽃나무에서 여자의 파편이 뒤엉켜 피어나고 있었다. 창백한 입술이거나, 찢어진 한쪽 뺨이거나, 완전히 열린 엉덩이, 붉고 반짝이는 음부의 속살이 전부 활짝 피어났다. 그랬군. 그는 6의 머리를 망치로 부쉈던 것도 기억해 낸다. 또 6을 다시 그릴 수 없었던 까닭도 이해한다. 어떻게 이 여자를 그릴 수 있겠어. 그는 한 번도 이런 나무를, 여자를 본 적이 없는데. 만난 적 없는데. 가진 적 없는데. 상상조차 못 했는데.
    당신을 기다렸어요.
    남자는 어떤 목소리를 듣지만 그것이 정말로 6의 목소리인지 6을 향한 자신의 욕망이 만들어낸 목소리인지 잘 알 수가 없다. 그는 6을 쓰다듬고 싶다. 가까이 다가가 안고 안기고 싶다. 이전에 맡았던 기분 좋은 냄새를 다시 한 번 맡아 보고 싶다. 그러나 이건 꿈일까, 내가 다가가는 순간 나무는 부서지고 꽃들은 흩어져 사라지는 건 아닐까.
    그가 가까이 다가가자 꽃나무가 남자를 세게 끌어안는다.
    아주 세게, 완전히 으스러질 정도로.

 

 

 

   《문장웹진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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