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고기들

 

 

물고기들

 

 

 

이태형

 

 

삽화-물고기들

 


 

 

 

 

    작은 물고기들은 천적에 대항하여 무리를 이룬다. 무리는 한 마리의 살아 있는 거대한 개체처럼 일사불란하게 움직인다. 가장 먼저 포식자를 발견한 물고기들은 살아남기 위해 무리 속으로 파고든다. 포식자는 아랑곳하지 않고 거대한 무리의 허리를 물어뜯는다. 무리는 폭죽처럼 흩어진다. 살아남은 물고기들은 재빨리 다시 모이며 무리를 이룬다. 무리가 커질수록 포식자는 물고기들을 놓치지 않고 쉽게 따라온다. 다른 물고기들의 희생으로 목숨을 담보 받은 물고기들이 할 수 있는 일은 단 하나뿐이다. 무리를 이룬 모든 물고기들이 전부 포식자들에게 잡아먹히거나 포식자들이 만찬을 끝낸 뒤 포만감을 느끼고 자리를 뜰 때까지, 소용돌이치듯 무리의 중심으로 끝없이 파고들어가는 것이다.

 

 

    가파른 산비탈의 초입에서 우리를 호송하던 붉은 옷을 입은 남자 중 하나가 나를 향해 말했다.
    “넌 여기서 내려. 여기서부터는 혼자 가도록 해.”
    그는 해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저 해가 떨어지는 방향을 따라가. 부지런히 가면 오늘 밤에는 도착할 거야.”
    혼자 호송마차에서 내렸다. 마차에 같이 갇혀 있던 다른 사람들과 눈으로 작별인사를 했다. 나만 덩그러니 남겨두고 마차는 지체 없이 서둘러 사라졌다. 남자가 손으로 가리킨 방향에는 높이를 짐작하기 힘든 산등성이가 양쪽으로 뻗어 있었다. 나는 서둘러 발걸음을 옮겼다. 산비탈에 사람이 다녔을 만한 길은 없었다. 처음에는 나무를 잡으며 조금씩 올라가다가, 나중에는 거의 네 발로 가파른 비탈을 기어올랐다. 우회할 생각은 하지 못했다. 자칫 산에서 길을 잃을까 두려웠다. 땅을 짚고 가는 양손에 상처가 늘어 갔다. 오랜 시간 쉬지 않고 비탈을 올랐지만, 산등성이는 전혀 가까워지지 않았다. 땅거미가 지기 시작하자, 어디선가 늑대 울음소리가 들렸다. 산을 오르는 속도는 점점 더뎌졌고, 늑대 울음소리는 가까워졌다. 쉬고 싶었지만, 머뭇거릴 여유는 없었다. 이제 와 길을 되돌아 비탈을 내려갈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늑대 울음소리가 나는 쪽을 주의 깊게 살펴봐도 나무와 늑대의 모습이 구분가지 않았다. 한참을 오르자 눈앞에 돌비알이 나타났다. 돌비알은 마치 내가 가야 할 목적지를 막고 있는 담장 같았다. 나는 심호흡을 하고 마지막 힘을 다해 돌비알을 오르기 시작했다.
    돌비알을 오르자 산등성이였다. 비탈 아래로 안개가 가득 차 있는 거대한 호수가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산등성이는 해안을 따라 가파른 절벽을 이루다가 호수를 둥글게 감싸고 다시 해안을 따라 뻗어 나갔다. 호수와 바다가 이어진 지점에는 양쪽으로 깎아지른 절벽이 마치 거대한 문처럼 우뚝 솟아 있었다. 그 문틈으로 석양의 마지막 빛이 사라지려는 참이었다. 뒤를 따르던 늑대 울음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하지만 늑대들의 집요함을 생각한다면, 돌비알을 우회해서 따라오고 있을지도 몰랐다. 나는 서둘러 비탈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해가 바다 속으로 완전히 떨어지자, 나는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 물안개 속에 갇혔다. 비탈은 점점 심해졌다. 뒤돌아 손으로 나무를 잡고, 발로 디딜 곳을 더듬었다. 비탈을 내려갈수록 안개는 비로, 땅은 진흙으로 변했다. 젖은 바지는 두 다리를 무겁게 진흙 속으로 끌어넣었다. 발이 계속 미끄러졌다. 상처 입은 양손과 무릎은 진흙투성이가 되어 쓰렸다. 빗물이 자꾸 눈으로 흘러들었다. 빗물을 닦아내려 할수록 손에 묻은 진흙까지 눈으로 들어갔다. 빗줄기 너머 희미하게 보이는 막사는 너무나 멀게 느껴졌다. 무릎이 떨렸다. 막사 너머로 보이는 검은 호수는 마치 막사를 삼키려는 거대한 짐승처럼 보였다. 호수에 떨어지는 빗물들이 바다와 이어진 문으로 빠져나가지 못하고, 호수는 계속 덩치를 불렸다. 비탈을 내려갈수록 호수가 나를 지켜보는 것 같은 시선이 느껴져 두려워졌다. 지금이라도 되돌아가는 것이 나을지 몰랐다. 산등성이 위에서 늑대 우는 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돌리려는 순간, 호수에서 썩은 생선에서나 풍길 법한 비린내가 불어오며 얼굴을 감쌌다. 간신히 다리를 지탱하고 있던 마지막 힘이 빠졌다. 발을 헛디뎌 미끄러지며 정신을 잃었다.

 

    나는 거의 일주일 넘게 의식이 없었다. 막사 근처에 쓰러져 있던 나를 이 양식장의 총관리자가 발견했다고 했다. 그로 인해 행여 다른 사람들이 나를 약골이라 생각하고 얕볼까 봐 두려웠다. 양식장에 부역꾼들로 있는 사람들은 모두 나처럼 본국에서 죄를 지은 사람들일 것이다. 그런 사람들에게 시작부터 얕보이면 무엇보다 피곤한 생활을 하게 될 것이다. 몸은 쉽사리 좋아지지 않았다. 폐 속에 끈적거리는 비린내가 가득 차 있는 것만 같아 숨쉬기 힘들었다. 나무로 만들어진 막사는 습기가 가득했다. 더구나 음식으로 주는 것들은 먹을 수 없을 정도로 역한 비린내가 진동하는 어포뿐이었다. 이곳에는 항상 비가 내렸다. 햇빛은 전혀 들지 않았다. 그렇게 습기에 부패한 생선들은 지독한 냄새를 풍겼다. 오로지 살기 위해서 숨을 참고 어포를 삼켰다. 목구멍 깊은 곳에서는 냄새가 계속 올라왔다. 어포를 넘기기 위해 공업용 알코올 냄새가 진동하는 싸구려 럼주를 들이켰다. 싸구려 럼주 때문에 목이 완전히 헐어버렸지만, 럼주 없이 어포를 삼키는 것은 상상할 수 없었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마치 음미하듯 어포를 질겅질겅 씹었다. 럼주도 어포를 넘기기 위한 것이 아니라, 그 자체의 향을 즐기는 듯했다. 어느 정도 몸이 호전되어 침대에서 일어난 후에도 한참이나 설사를 했다. 설사를 하는 것이 당연하게 느껴질 때가 되자, 조금은 럼주 없이 어포를 먹을 수 있을 것도 같았다.
    나는 아직 양식장의 총관리자를 만나 보지 못했다. 그는 막사 2층에 있는 자신의 방에서 나오지 않았다. 이곳에 있는 사람은 총관리자를 제외하면 열여섯 명이었다. 그중 나를 포함해 열두 명의 남자들은 막사 1층에 있는 커다란 방에서 같이 생활했다. 남자들 몸에서는 생선 비린내가 진동했다. 그래서 처음에는 그들과 생활하는 것이 곤혹스러웠다. 더구나 나는 그들을 잘 구분하지 못했다. 그들은 모두 표정이 비슷했다. 얼굴에 감정을 드러내지도 않았다. 그들은 대부분의 시간에 낮잠을 자거나 럼주를 마셨다. 다행히 그들은 나를 얕보거나 괴롭히지 않았다. 아니 정확하게 이야기하자면 나에게 관심이 없었다. 우리를 관리하는 것은 영감이라고 불리는 머리가 하얀 남자였다. 오로지 영감만이 나를 신경 써 주며 이러저러한 이야기를 해주었다.
    “지금은 비수기라 일이 없다네, 얼마 있으면 노예들이 올 거야. 그때까지는 충분히 쉬어 두도록 하게.”
    막사 뒤뜰에는 조금 거리를 두고 작은 움막이 하나 있었다. 그곳에서는 인상이 날카로운 남자 넷이 생활했다. 그들은 우리와 섞이지 않았다. 항상 자기들끼리만 어울려 럼주를 마시며 눈빛만 주고받았다. 그들은 온몸을 가리는 검은 우비를 뒤집어쓰고 있었는데, 허리춤에 언뜻언뜻 보이는 날카로운 회칼에 빗물이 타고 흐르곤 했다.
    우리는 네 명이 한 조가 되어 사흘 간격으로 호수의 선착장에 위치한 초소에서 보초를 섰다. 총관리자는 2층의 자기 방에서 가끔씩 초소를 내다봤다. 창틀에 그의 그림자가 보였지만 빛을 등지고 있어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초소에서는 막연히 호수만 바라보았다. 비가 주변 자갈에 떨어지며 수군거리는 소리가 났다. 몸은 항상 끈적끈적했다. 매순간 몸이 녹아내리고 있는 기분이 들었다. 더구나 빗줄기가 잠시 약해질 때면, 어김없이 코가 마비되지 않는 것이 신기할 정도로 역한 비린내가 불어왔다. 냄새가 강하면 강할수록 빗줄기 뒤로 느껴지는 시선은 역겨워졌다. 시선은 내 온몸에 끈적끈적하게 들러붙어 코와 입속으로 비집고 들어왔다. 나는 구토가 올라오는 것을 간신히 참았다. 그 시선에서 벗어날 수 있다면,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는 잠들어 있었다. 몸은 움직이지 않았지만, 의식이 또렷했다. 적막이 흘렀다. 희뿌연 안개 너머 사람들의 그림자가 보였다. 다시 잠들려고 노력했지만 잠들 수 없었다. 창살 사이로 희뿌연 빛이 들어왔다.
    불침번이 모두를 깨웠다. 방에는 짙은 안개가 가득했다. 사람들의 그림자만 보였다. 그들은 일사불란하게 옷을 입었다. 나는 영문도 모르고 그들을 따라 옷을 입었다. 그들을 따라 밖으로 나갔다. 비는 그치고 그 자리에 안개가 가득 차 있어 낯설었다. 안개는 호수에서 불어오던 역한 비린내를 더 강하게 품고 있었다. 냄새가 두피로 직접 스며드는 것만 같아 머리가 아파 왔다. 차라리 비가 오는 쪽이 나았다. 비가 오면 조금이나마 냄새를 씻어 줄지도 몰랐다. 바로 앞에 걷고 있는 것이 누구인지 알 수 없었다. 단지 동료라고 생각되는 그 그림자만 믿고 따라갔다. 그리고 비린내도 내 그림자를 끈질기게 따라왔다.
    뒤따라가던 그림자가 갑자기 멈췄다. 그림자에 부딪치며 나도 걸음을 멈췄다. 안개 속에서 거대한 범선이 다가왔다. 서서히 다가온 범선은 호수의 선착장에 정박했다. 영감은 두건을 쓴 남자 옆에서 등불을 들고 있었다. 범선에서 키 큰 한 남자를 따라 짜리몽땅한 그림자들이 줄지어 내려왔다. 키 큰 남자는 영감 옆에 서 있는 두건을 쓴 남자에게 다가왔다. 그들이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그림자가 앞에 정렬했다. 한 남자가 그림자들의 숫자를 셌다. 숫자를 센 남자가 두건을 쓴 남자에게 가서 이야기를 했다. 키 큰 남자와 두건을 쓴 남자는 종이에 서로 사인을 하고 나눠 가졌다. 키 큰 남자는 사인을 교환하자 지체 없이 배에 다시 올랐다. 범선은 천천히 움직이며 안개 속으로 사라졌다. 나는 저 커다란 범선이 바다로 이어지는 절벽의 틈을 무사히 빠져나갈 수 있을지 걱정이 되었다. 영감이 옆에서 등불을 들고 있는 것으로 보아, 두건을 쓴 남자가 양식장의 총관리자일 것이다. 두건을 쓴 남자는 주위를 둘러보다 나와 눈이 마주쳤다. 그는 나를 향해 다가왔다. 그는 나에게 커다란 열쇠를 건네며 말했다.
    “자네가 가서, 창고 문을 열도록.”
    그의 목소리는 낮고 끈적였다. 더구나 열쇠를 건네는 그의 손목은 파충류의 비늘처럼 끈적끈적한 윤기가 흐르는 것 같았다. 안개가 워낙 짙어 잘못 보았을 수도 있지만, 무서운 기분이 들었다. 다리가 떨려 왔다. 무거운 다리를 이끌고 서둘러 창고로 향했다. 창고라면 막사에서 산비탈 쪽으로 조금 떨어진 거대한 목조건물일 것이다. 하지만 나는 안개 속에서 길을 잃었다. 산비탈 어디쯤에 창고가 있는지 전혀 찾을 수 없었다. 내가 향하는 곳이 어디인지 짐작할 수 없었다. 자갈들은 역겨운 습기를 먹고 내 발을 잡았다. 몇 번인가 자갈 위에 미끄러져 넘어졌다. 자갈 사이에 깔려 있던 모래가 손바닥에 박혔다. 얼굴의 땀을 닦자 비릿한 모래가 거머리처럼 얼굴에 들러붙었다. 나는 구역질이 올라왔지만 간신히 참았다. 뒤에서 사람들 소리가 들렸다. 나는 창고 문을 열지 못한 것이 걱정되면서도, 이 근처에 창고가 있다는 생각에 안심이 되었다. 무릎을 꿇은 채 주위를 둘러봤다. 거대한 창고는 바로 눈앞에 서 있었다. 창고문은 마치 나를 삼키려는 거대한 입처럼 보였다. 창고로 기어가 문을 짚으며 몸을 일으켰다. 문을 더듬으며 자물쇠를 찾기 시작했다. 사람들 소리는 점점 가까워졌다. 심호흡을 했다. 스스로 무엇에 쫓기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나는 잡생각을 털어내려 애썼다. 더듬던 손에 자물쇠가 잡혔다. 이렇게 큰 자물쇠를 그리 찾기 어려웠다는 것이 이상했다. 떨리는 손은 열쇠를 구멍에 집어넣지 못하고 바로 앞에서 미끄러졌다. 어느 순간 뒤에 다가온 차가운 손이 내 손목을 잡았다. 순간 몸이 굳어버렸다. 마치 파충류의 피부 같은 그 손은 경직된 내 손을 이끌고 열쇠를 자물쇠에 넣는 것을 도와주었다. 열쇠는 잘 돌아가지 않았다. 낡은 열쇠가 부러지지나 않을지 걱정이 되었다. 내 손목을 잡고 있던 손이 직접 열쇠를 잡고 돌리자 끼기긱 거리는 낡은 쇳소리와 함께 자물쇠가 열렸다. 나는 그때까지도 경직되어 두건을 쓴 남자를 멍하니 바라만 보았다. 뒤에서 몇 명의 사람들이 앞으로 나서 큰 문을 양쪽으로 열었다. 쇠가 긁히는 커다란 소리가 났다. 안에서 곰팡이 냄새가 밖으로 풍겨 나오며 창고 밖을 둘러싸고 있는 비린내와 섞였다.
    문이 열리자 두건을 쓴 남자는 창고로 들어갔다. 그를 뒤따라 영감이 창고 안쪽에 등불을 걸었다. 짜리몽땅한 그림자들이 창고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가까이에서 본 그림자들은 피부가 가무잡잡한 어린아이들이었다. 아이들은 한결같이 머리카락이 없었다. 고개를 숙이고 앞으로만 걸어 들어갔다. 조금도 한눈을 팔지 않는 것으로 보아, 여기에 올 때까지 엄격하게 관리되었음을 쉽게 짐작했다. 영감은 문 앞에서 하나씩 들어갈 때마다 숫자를 불렀다.
    “하나, 둘, 셋…… 아흔셋, 아흔넷. 이상 없습니다.”
    아이들이 전부 들어가자 등불을 다시 빼고 문을 닫았다. 총관리자가 예의 끈적끈적한 목소리로 말했다.
    “여섯이라. 손실이 큰데.”
    동시에 누군가가 자물쇠를 채웠다. 우리는 다시 막사로 돌아왔다. 아무도 입을 열지 않았다. 오로지 나만 잠들지 못했다.

 

    날이 밝자 영감이 나를 불렀다.
    “오늘부터 비도 그치고 노예들도 왔으니 일을 시작하게 될 걸세. 딱히 어려운 것은 없고, 최대한 빨리 저것들이 잠수만 할 수 있게 만들기만 하면 된다네.”
    나도 잠수를 해본 적이 없었지만, 딱히 영감에게 말할 필요성은 느끼지 못했다.
    “저것들이 잠수를 할 수 있게 되면, 우리는 네 명씩 배를 나눠 타고 호수로 나갈 거야. 노예마다 위치를 알려주는 부표를 발목에 묶어 놓을 거니, 우리는 부표만 잘 챙기면 된다네. 이미 이야기했지만 딱히 어려운 건 없다네.”
    영감은 거기까지 말하고 잠시 생각하는 듯 말을 멈췄다가 다시 말을 이었다.
    “뭐, 자네는 처음이니 우리가 하는 걸 보고 잘 따라하면 된다네. 물론 자네도 다음을 위해 잘 익혀 둬야겠지. 저것들이 가지고 오는 어패류는 뒤뜰에 가져다 두면 그들이 알아서 관리할 거야. 뭐 더 궁금한 것 있나?”
    나는 그의 말만 듣고 정확히 무엇을 하는 것인지 알 수 없었지만, 더 물어볼 수 있는 것도 없었다. 그냥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좋아. 일을 시작하도록 하지.”
    나는 영감을 따라 막사를 나왔다. 여전히 안개 때문에 흐렸지만, 그래도 새벽에 비하면 앞이 보이는 편이었다. 사람들은 거의 백 명에 달하는 아이들을 호수 앞에 정렬시켜 놓았다. 아이들은 아무것도 입고 있지 않았다. 그들은 아이들의 몸을 구석구석 점검하는 중이었다. 영감과 나오는 나를 흘낏 보기만 하고, 자신들이 하던 일에 다시 집중했다. 영감은 나를 아이들 가까이 데려갔다. 우리가 무슨 짓을 하든, 아이들은 미동도 없이 서 있었다. 하지만 겁에 질린 눈빛은 감출 수 없었다. 영감은 나에게 아이들을 점검하는 법을 알려줬다. 하지만 점검이라고 해봐야 팔다리가 잘 달려 있나 하는 정도였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중요한 것을 확인해야 했다. 아이들은 비육우처럼 모두 거세되어 있었다. 비교적 최근에 잘렸는지 흉터가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영감은 만약 거세되지 않은 아이가 있으면 여기서 거세를 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아이들의 점검이 끝나자 남자들은 옆에 놓인 작대기를 하나씩 들었다. 작대기는 내 키보다 훨씬 길었고 끝이 뾰쪽했다. 우리는 그 작대기로 아이들을 호수로 밀어 넣기 시작했다. 아이들은 저항할 생각은 하지 못하고 주춤거리며, 조금씩 밀려들어갔다.
    “오늘은 목까지 잠기게 해놓을 거야. 나오려고 하면 찔러도 돼. 죽이지만 마.”
    영감이 소리쳤다. 나는 아이들과 눈이 마주쳤다. 그들이 우리와 같은 인간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그건 누가 봐도 겁에 질린 눈이었다. 나처럼 아이들은 아마도 이렇게 넓고 깊은 물을 처음 보았을 것이다. 더구나 안개 자욱한 검은 호수는 그 크기를 가늠하기 힘들었다. 하지만 나는 아이들의 겁에 질린 눈을 외면하고, 사람들에게 뒤처지지 않기 위해 누구보다 열심히 아이들을 깊은 안개 속으로 밀어 넣었다. 눈앞에서 유난히 왜소한 체구의 아이가 안개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발이 미끄러진 것이라 추측만 할 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 수 없었다. 비명소리는 물속에서 울리지 못했다. 비명 대신 한 뭉치의 기포가 수면으로 올라왔다. 다른 아이들 모두 누군가가 안개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느꼈을 것이다. 아이들은 자신도 그렇게 되지 않기 위해 온 힘을 다했다.
    며칠 뒤 우리는 아이들에게 잠수를 가르쳤다. 아이들은 물속으로 머리를 집어넣는 것에 두려움을 느꼈다. 아이들이 숨을 못 참고 머리를 내밀면 다시 눌러 수면 위로 올라오지 못하게 했다. 나는 짐이 되지 않기 위해 누구보다 의욕적으로 아이들 머리를 눌렀다. 한 아이가 유난히 숨을 참지 못하고 수면 위로 머리를 내밀었다. 그 아이에게서 눈을 뗄 수 없었다. 다른 아이들을 살피는 것까지 지장이 가자, 나는 조금 신경질적이 되었다. 그 아이 앞으로 갔다. 그리고 두 손으로 온 힘을 다해 아이의 머리를 물속으로 눌렀다. 아이는 버둥거렸지만, 나는 어떤 광기에 사로잡힌 듯 아이를 놔주지 않았다. 어느 순간 아이는 버둥거리는 것을 멈췄고, 몸이 수면으로 떠올랐다. 나는 불길한 기분과 함께 아이의 머리에서 손을 뗐다. 아이는 수면 위로 다시 머리를 내밀지 못했다. 주위를 둘러보았다. 안개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잘 보이지 않았다. 익사한 아이를 조용히 호수 중앙으로 밀었다. 아이는 천천히 안개 속으로 미끄러지며 사라졌다. 아무도 보지 못했지만, 모두가 알고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아무도 그 일에 대해 입을 열지 않았다. 그날 저녁 아이들을 다시 창고로 집어넣을 때 숫자가 몇 개 부족했지만, 아무도 그 사실을 지적하지 않았다. 아이들이 하나씩 사라질수록 기분 나쁜 시선은 노골적으로 강해졌다. 나는 점점 더 잠들기 힘들어졌다.

 

    어느 날 창고 문을 열었을 때, 나는 너무 놀라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저 멍하니 서서 홀린 듯 그 모습을 보았다. 어떻게 매달았는지 몰라도 입구 반대쪽 천장에 아이 하나가 목과 양팔이 묶인 채 매달려 있었다. 다른 아이들은 모두 그 매달린 아이를 향해 무릎 꿇고 절을 하듯 엎드려 있었다. 나를 제외한 사람들은 조금의 주저도 없이 채찍을 들고 아이들의 등짝을 사정없이 내리쳤다. 아이들의 등에 붉은 줄이 하나둘 그어졌지만, 아이들은 일어나지 않았다. 아이들의 등에는 검은 피가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그 모습은 기괴하면서도 익숙했다. 두 발이 바닥에 뿌리를 내린 듯 나는 꼼짝할 수 없었다. 영감은 내 등짝을 세게 치며 말했다.
    “멍하니 서 있지 말고 뒤뜰에서 사다리를 가져오게.”
    영감의 말을 듣고 그 자리에서 도망치듯 뒤뜰로 향했다. 발걸음이 무거웠다. 뒤뜰에는 검은 우비를 입은 남자들이 한가롭게 앉아 있었다. 비가 그쳤음에도 아직 우비를 입고 있는 그들이 이상하게 생각되었다. 하지만 지금은 사다리를 찾는 게 더 중요했다. 서둘러 커다란 사다리를 찾아 들었다. 사다리는 생각보다 무거웠다. 땅에 질질 끌면서 사다리를 옮기기 시작했지만, 그들은 나를 도와줄 생각이 없어 보였다. 창고에서 사다리를 가지고 왔을 때, 영감은 나를 도와 사다리를 벽에 세웠다. 그리고 움직이지 않게 아랫부분을 잡았다. 사람들은 아직도 아이들을 채찍질하는 중이었다. 나는 아이를 내리기 위해 사다리를 타고 올라갔다. 묶여 있는 아이에게서는 생선 썩는 냄새가 진동했다. 서둘러 아이의 양손에 묶인 줄을 끊었다. 미끈거리는 줄은 해초류 같았다. 양쪽 손을 묶고 있던 줄을 끊어버리자, 아이의 목에 온몸의 무게가 실리며 목뼈가 부러지는 소리가 났다. 목만 매달린 아이는 천장에서 뱅글뱅글 돌았다. 지금까지 살아 있었을지 모를 아이를 방금 내 손으로 죽인 것 같았다. 주저하는 나에게 영감이 아래에서 소리쳤다.
    “뭐 하고 있나. 빨리 끊어버리게!”
    숨을 크게 들이마시고 목을 묶고 있는 줄을 끊어버렸다. 아이는 땅으로 곤두박질쳤다. 아이는 머리가 박살나 뇌수가 흘러나왔다. 뭉개진 얼굴은 더 이상 알아볼 수 없었다. 그와 동시에 엎드려 있던 아이들은 모두 일어났다. 아이들은 잠시 떨어진 아이를 보고는 아이가 묶여 있던 천장을 봤다. 하지만 그것은 잠시였을 뿐, 아이들은 고개를 숙이고 줄을 서기 시작했다. 나는 죽은 아이의 다리를 잡고 끌어내려고 했다. 하지만 아이의 피부는 점액질로 뒤덮여 손에서 계속 미끄러졌다. 영감은 밧줄을 가져와 아이의 몸통에 묶었다. 나와 한 남자는 영감을 도와 아이를 끌어냈다. 영감은 뒤뜰로 향했다. 우리가 아이를 끌고 가는 것을 보고 뒤뜰에 있는 남자들은 그냥 거기 두고 가라는 듯 손짓을 했다. 아이를 그곳에 두고 나오며 나는 알 수 없는 나쁜 기분이 들었다.
    “저들은 무슨 일을 하나요?”
    나는 영감에게 물었다.
    “저들은 아직 일을 시작하지 않았어.”
    영감이 대답했다.
    “이제 시작할 수 있겠지.”
    같이 온 다른 남자가 대답하며, 우리는 그 자리에서 멀어졌다.

 

    며칠이 지났다. 우리는 처음으로 배를 타고 호수로 나갔다. 배는 세 팀으로 나뉘었다. 모두들 석궁을 하나씩 챙겼다. 나는 영감과 같은 배를 타게 되었다. 아이들의 발목에 묶여 있는 부표는 배 후미의 고리에 한꺼번에 연결되어 있었다. 애초에 배에는 아이들이 탈 수 있는 자리가 없었다. 아이들은 부표에 매달려 수영하며 배를 따라왔다. 우리는 뱃머리에 횃불을 피워 서로의 위치를 파악했다. 멀리 떨어지지 않고 불빛이 간신히 보일 정도로 거리를 유지했다. 닻을 내렸다. 그리 멀리 나오지 않았음에도 닻은 하염없이 물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아이들은 깊은 곳에서 여러 가지를 주워 올리기 시작했다. 우리는 아이들이 주워 올린 것들을 모두 배에 실었다. 작업이 끝날 때가 되면 선미에 불을 하나 더 피워 작업 종료를 알렸다. 아이들은 횃불 두 개를 보고 다시 물속으로 들어가지 않고 대기했다. 우리는 물 위로 올라온 아이들의 머리를 셌다. 아무리 세도 숫자가 하나 부족했다. 그 부족한 하나는 끝까지 올라오지 않았다. 물고기가 아닌 이상 이렇게 오랜 시간 물속에 있을 수는 없을 것이다. 우리는 주인 없는 부표를 끌어올렸다. 부표의 줄은 당겨지다가 어느 지점에서 꼼짝도 안 했다. 억지로 줄을 당겨 보아도 요지부동이었다. 갑자기 물속에서 부표를 강한 힘으로 당겼다. 부표를 잡고 있던 나는 물속으로 빠질 뻔했다. 부표는 다시 수면에 떨어졌다. 아이들도 모두 갑작스러운 파장에 놀란 듯 자신의 부표를 끌어안았다. 파장이 가시고 우리는 다시 부표를 건져 올렸다. 부표에 연결된 줄은 아까와 달리 쉽게 당겨졌다. 그 줄의 끝에는 검은 피가 뚝뚝 떨어지는 작은 발목이 매달려 있었다. 발가락 사이에 물갈퀴 같은 얇고 투명한 피부가 붙어 있는 것처럼 보였다. 영감은 아무 말 없이 그 발을 물속에 집어 던졌다. 아무도 물갈퀴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다. 나는 그것이 해초류가 발에 붙은 것이라 생각하려 애썼다.
    우리는 뭍으로 돌아와 아이들이 주워 온 것들 중 쓸모 있는 것을 분류하며, 아이들에게 알려줬다. 나는 문득 아이들의 눈빛이 좀 더 이상해졌다고 생각했다. 어디를 보고 있는지 전혀 알 수 없는 초점 없는 눈이었다. 아이들의 눈을 자세히 보았다. 아이들의 눈알은 얇은 막에 싸여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 눈을 더 자세히 보려는 순간 영감이 내 어깨에 손을 얹으며 사람들에게 말했다.
    “다들 분류 끝났으면, 뒤뜰로 나르기 시작해.”
    뒤뜰에 있는 남자들은 여전히 그곳에 두고 가라는 듯 손을 까딱거렸다. 이전에 느꼈던 나쁜 기분은 들지 않았다. 다행이면서도 꺼림칙했다. 나는 이전과 지금의 차이가 무엇인지 생각하지 않으려 애썼다.

 

 

    안개는 며칠간 이어졌다. 우리는 매일 호수로 나갔다. 날이 갈수록 더 깊은 곳에 배를 정박했다. 아이들은 점점 물속에서 나오지 않았다. 오랜 시간 동안 아이들은 한두 번만 수면으로 올라왔다. 아이들의 잠수 시간은 날이 갈수록 길어졌다. 하지만 아이들이 건져 올리는 어패류의 양은 현저하게 줄어들었다. 하루에 실종되는 아이들이 두세 명 정도 된다는 것을 감안해도 비정상적으로 적은 양이었다. 나는 아이들이 물속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궁금했다. 하지만 나는 그 안개가 깔려 있는 검은 호수 속으로 들어갈 용기는 없었다.
    아이들의 모습은 눈에 띄게 변해 갔다. 아이들의 눈은 이제 더 이상 포유류의 것이라고 보기 힘들었다. 그들의 눈은 지나치게 커지고 머리 양쪽으로 벌어졌다. 그 큰 눈은 어둡고 깊은 동공으로 가득 차 있었다. 넓게 벌어진 두 눈 사이에는 거대한 입이 자리 잡았다. 그 큰 입은 쉬지 않고 뻐끔거렸다. 피부는 점액질로 뒤덮여 미끈거렸다. 손가락과 발가락 사이에 얇은 물갈퀴가 언뜻 보였다. 아이들은 짧은 시간 동안 덩치가 엄청나게 커졌다. 무거워진 아이들은 뭍에서 움직이는 것이 힘들어 보였다. 땅 위에서 아이들은 거대한 지느러미를 허우적거리듯이 팔다리를 끌며 움직였다. 아이들이 지나간 자리에는 지독한 냄새를 풍기는 점액질이 쓸리듯 묻었다. 하지만 아무도 아이들의 변화를 의식하지 않았다. 나는 갈수록 아이들이 수면으로 머리를 내미는 것이 두려워졌다.
    아이들이 절반 가까이 줄었다. 호수의 시선은 견딜 수 없을 정도로 강해졌다. 배를 타기 시작한 이후로 하루도 마음 편히 잠들지 못했다. 사람들이 아무렇지 않은 것을 이해할 수 없었다. 아이들이 변해 가는 것이 오로지 내 망상 속의 일은 아닌지 의심했다. 영감에게 상담도 해봤지만, 영감은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으며 피곤해서 그런 것 같다고 말을 돌렸다. 그 이후 나는 다른 사람에게 아이들이 물고기처럼 보인다는 말과 호수의 시선에 대한 말은 하지 않았다. 더 이야기해 봐야 나만 이상한 사람이 될 것이다. 나는 점점 사람들과 대화하지 않았다. 잘 때도 석궁을 품에 안고 잠들었다.
    나는 안개만이라도 좀 걷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이제 남은 아이는 열 명도 되지 않았다. 세 척으로 나가던 배는 어느덧 한 척씩 사흘에 한 번 돌아가면서 나갔다. 수확량은 전혀 없다고 봐도 무방했다. 얼마 전부터 배를 타고 나오면 거대한 눈동자 위에 떠 있는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사람들과 이야기하지 않은 지도 며칠이 지났다. 정적 속에서 아이들은 물에 들어가기 전에 입을 뻐끔거리며 이상한 소리를 냈다. 아이들의 덩치는 비정상적으로 커졌다. 나는 아이들에게서 눈을 돌렸다. 맨정신으로는 도저히 버틸 수 없었다. 일할 때도 남들 몰래 럼주를 마셨다. 영감은 분명히 내가 럼주를 마시는 것을 알고도 모르는 척했다. 아이들은 물속에서 한 번도 올라오지 않았다. 철수를 위해 선미에 횃불을 걸었다. 안개가 걷혔다. 하늘에 보름달이 보였다. 산등성이에서 내려다보았던 그때 이후 처음으로 거대한 호수가 한눈에 들어왔다. 잔잔한 수면 위로 반사된 달빛이 반짝였다. 횃불을 걸었지만 아이들은 올라오지 않았다. 뒤에서 석궁이 발사되는 소리가 들렸다. 우리는 소리가 난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 자리에는 주인 없는 석궁만 바닥에 떨어져 있었다. 나는 일어설 용기가 없었다. 물속을 들여다볼 용기는 더더욱 없었다. 영감은 닻을 끊어버리며 나와 다른 남자에게 노를 저으라고 단호하고 침착하게 명령했다. 우리가 노를 젓는 동안 영감은 아이들이 묶여 있는 부표도 모두 끊어버렸다. 우리는 쉬지 않고 노를 저었다. 우리는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뭍에 도착하자 영감이 말했다.
    “자네는 여기서 잠시 보초를 서게. 무슨 일이 있으면 바로 알리고.”
    그는 내 대답을 듣지도 않고, 다른 남자를 데리고 막사로 뛰어갔다. 나는 선착장 옆에 있는 초소에 들어가 벌벌 떨며 호수를 바라봤다. 수면은 검고 잔잔했다. 가운데 떠 있는 보름달이 마치 거대한 짐승의 눈동자 같았다.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영감은 돌아오지 않았다.
    수면에 떠 있는 달이 흔들렸다. 그 뒤로 무엇인지 알 수 없는 수많은 그림자들이 떠올랐다. 그것들은 나를 향해 아주 천천히 다가왔다. 가지고 있던 횃불을 껐다. 다가오던 그림자들이 주춤하듯 멈췄다. 이로써 그들이 나를 향해 오고 있다는 것을 확신했다. 막사에 알려야 했다. 고개를 돌렸다. 막사에는 불이 꺼져 있었다. 다시 호수를 바라보자 그림자들은 노골적으로 빠르게 나를 향해 다가오기 시작했다. 초소에서 뛰쳐나와 막사를 향해 뛰었다. 내 모습은 달빛 아래 훤히 드러났다. 안개가 있었다면 내 모습이 가려졌을 것이다. 안개가 그립다는 생각을 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하지만 그들에게 훤히 드러나 있다는 사실이 무서워 참을 수 없었다. 막사의 문은 잠겨 있었다. 나는 뒤돌아봤다. 그것들은 벌써 뭍으로 올라오기 시작했다. 나는 비명을 지를 뻔했다. 달빛을 등지고 있는 그것들의 모습은 어디서도 본 적 없는 기괴한 형태였다. 둥근 덩치는 커다랬고, 뒷다리는 짜리몽땅했다. 앞다리는 바다거북 앞발처럼 길게 늘어져서 땅에 끌렸다. 다리 사이의 거대한 꼬리가 간신히 서 있을 수 있도록 몸통을 지탱해 주었다. 나는 그것들을 보고 부정하듯 고개를 저었다. 그들이 땅 위로 올라오자 호수에서 불어오는 비린내가 한층 더 강해졌다. 나는 막사에 들어가는 것을 포기하고 숲을 향해 뛰기 시작했다.
    풀 밟는 소리가 내 위치를 온 세상에 알려줬다. 비린내는 지치지 않고 따라왔다. 그 뒤로 끈적끈적한 짐승의 소리가 울렸다. 나는 뒤돌아보지 않았다. 소리들은 점점 더 많아졌고 가까워졌다. 숨이 차올라 쓰러질 것 같았다. 나는 지쳐 갔다. 비탈을 두 손으로 짚으며 올라갔다. 하지만 나를 따라오는 소리는 떨어지지 않고 사방으로 감싸 왔다. 그들이 나를 사냥하듯 몰아가며 즐기고 있다는 것을 알았을 때, 그것들에게서 절대 도망칠 수 없을 것이라 생각했다.
    나뭇가지에 발이 걸리며 그 자리에 쓰러졌다. 아니 단순히 무릎에서 힘이 빠진 것일지도 몰랐다. 쓰러진 내 주위로 조금의 간격을 두고 수많은 지독한 냄새들이 둘러싸듯 멈췄다. 바로 등 뒤를 쫓던 놈이 넘어진 나를 위에서 내려다봤다. 그 끔찍한 얼굴과 마주했다. 그건 마치 거대한 메기 같았다. 이제 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순간 어디선가 날아온 날카로운 바람소리와 함께 그놈은 내 위로 쓰러져서 펄떡거렸다. 그 역겨운 것을 밀어내고 싶었지만, 온몸이 미끈거려서 벗어날 수 없었다. 그놈을 밀어내려고 버둥거릴수록 점액질이 온몸에 묻으며 미끄러졌다. 그놈의 머리에 박혀 있는 화살이 만져졌다. 나를 둘러싸고 있던 놈들은 나무들 사이에 숨어 주위를 살피고 있을 것이다. 나무 사이사이 달빛에 비쳐진 놈들이 하나하나 쓰러지는 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는 마치 음악처럼 느껴졌다. 나는 너무 피곤했고, 이내 정신을 잃었다.

 

 

    나는 방에서 깨어났다. 마치 이곳에서 처음으로 눈을 떴던 그날이 생각났다. 긴 꿈을 꾸고 일어난 것 같았다. 온몸의 상처는 단지 비탈에서 굴러 생긴 것일지도 몰랐다. 다리에 힘을 주고 막사 밖으로 나갔다. 햇볕이 정면에서 내리쬐었다. 이곳에서 처음 보는 해였다. 햇볕을 받은 호수는 푸르고 투명하게 반짝였다. 사방을 뒤덮고 있던 비린내는 모두 사라졌다. 맑은 공기에 숨이 탁 트였다. 막사 주변에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나는 뒤뜰로 향했다. 다가갈수록 비린내가 강해졌다. 나는 그것들을 보고 걸음을 멈췄다. 뒤뜰에는 어젯밤 그것들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개중 몇 마리는 아직도 꿈틀거리고 있는 것만 같은 느낌마저 들었다.
    숲에서 사람들이 수레를 끌고 오는 것이 보였다. 수레에는 그것들이 한가득 실려 있었다. 영감은 나를 지나치며 무사해서 다행이라는 듯 어깨를 두드렸다. 원망의 말을 하고 싶었지만 하지 못했다. 막사 뒤 움막에서 검은 우비를 입고 있는 남자들이 나왔다. 그들은 수레에서 물고기를 내려 한쪽으로 쌓고 있는 남자들을 보고 가만히 구경만 했다. 막사 2층에서 총관리자가 뒤뜰을 내려다보고 서 있었다. 그는 나를 한 번 힐끔 보고 나서 예의 그 끈적한 목소리로 우비를 입은 남자들에게 소리쳤다.
    “빨리 내장 빼고 소금에 절이도록 해. 생선은 빨리 썩으니깐 말이야.”
    나는 그 말을 듣고 지금까지 참아 왔던 구토를 할 수밖에 없었다.

 

 

 

   《문장웹진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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