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라 가는 길 외 1편

 

 

몰라 가는 길

 

 

 


김해자

 

 

 

 

 

ㅇ이 깎여 ㅁ이 된 길
몰라도 올라갔지
물 아래 오래 헤엄쳐온 아가미로 숨 쉬는 발 따라
어젯밤에도 난 물밑을 다녀왔어,
거긴 통증관리실이란 게 없더군,
내일도 살아 아침밥을 먹을 수 있을까,
모레도 깨어나 아침이불을 개야 하나,
유통기한을 알 수 없어
몰라도 가는 길 몰라서 가는 길
이번 생은 아흐, 통증저장소 다시 또 태어나야 한다면
다음 생엔 상추 씨앗으로나 태어나 빨리 솎아져 버리고 싶어,
세상과 기-일게도 불화한
에움길에 동백꽃
떨어져서도 곱구나, 한 줌의 붉음
겨울 발치에 묻어 주고 몰래 그대 등에 몇 잎 바치며
올라선 길 끝은 바다,
더 이상 딛을 곳이 없어졌어,
길 너머 길
길이 아닌 길
어쩌면 우리가 나란히 바라보는 풍경 건너까지도
길인지 몰라 저 길 밖에
아흐 님아, 짙푸른 바다의 문으로 들어가
그 눈이 되어 오소서

 

 

 

 

 

 

 

 

경계선 장애

 

 

 

 

 

순전히 통증 때문에 시작되었을 것이다
경계를 건너뛰어 버리는 내 몽상은

 

11살 무렵 배가 아파 조퇴하고 집에 가는 길
길속에 길을 말아놓은 듯 걸어도 걸어도
땡볕은 걸어온 만큼 앞으로 밀려 나왔다
집들이 미웠다 들어갈 수 없으므로
눈앞에 보이는 쌍둥이 같은 일본식 목조건물들 하나하나 지나가며
우리 집도 미웠다 너무나 멀리 있으므로

 

오 리 남짓한 그 길은 영영 도달하지 못할 것 같았다
창자를 뒤트는 뱃속에서 꿈꾸듯 생각들이 미어져 나왔을 것이다
저 집 문을 열고 들어가면 엄마가 있다면
아무 집이나 들어가면 내 새끼 소리가 뛰어나온다면
진땀 흘리며 길에 주저앉으며 내 앞에 있는 집으로 들어가고 싶었다
왜 똑같은 집인데 들어가면 안 되나
왜 우리 집만 집인가
왜 우리 엄마만 내 엄마인가

 

그로부터 40년을 더 살았어도 이 지상의
법에 좀체 익숙해지지 못한 나는 11살
그림과 숫자 몇 그려진 돈
모든 걸 사고 팔 수 있는 이 세계가 날마다 낯설다
저렇게 많은 집들이 있는데 왜 누군가는 들어갈 곳이 없는가
저 혼자 우뚝 서 있기만 잘하는 산에 왜 임자가 따로 있나
너는 배고파 허덕이는데 왜 나는 배불러 헉헉대고 있나

 

이것이 내 것과 네 것을 경계 짓지 못하는 병이라면
아직도 아픈 탓
이 몽상이 혹 위험하다면 모든 아이들을 체포해야 하리라
아이들의 꿈에는 사회주의가 묻어 있기 마련이니
이것이 혹 근절해야 할 불순한 사상이라면
아픈 배와 머리와 부러진 팔다리에게 책임을 물어야 하리라
이미 오래 삐그덕거린 뼈와 관절 낱낱이 절단하여 처벌해야 하리라

 

경계도 금도 없는 갯벌이여
물과 뭍 사이 철퍼덕 누운 너는 어디까지가 너인가
도대체 어디까지가 너의 것인가

 

 

 

 

   《문장웹진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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