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혼1 외 1편

 

 

청혼 1

 

 

 


백은선

 

 

 

 

 

    돌아보는 순간 혼자 남겨진 남자의 이야기를.
    예감할 수 없는 예감을 기록하는 사람의 숙명을.
    이 빛은 지운다.
    첫 줄에서 지시하는 것과 같이
    병들기 전에 했던 병에 대한 발화는 진실을 거느릴 수 없다고.

 

    눈금이 달린 커다란 유리병에 투명한 액체를 쏟아 부으며,
    이제 겨울이다.
    멀리서 눈이 공중을 휘젓는 냄새가 난다.

 

    나의 피는 정확한 청력 아래 흐른다.
    팔이 끝나는 곳에서부터 빛이 시작된다.
    마른 땅에서 한 사람이 다른 사람들을 데려갈 때.
    모래 언덕 너머로 둥근 것이 총력을 다해 달려갈 때.

 

    커다란 파열은 생겨난다. 피아노 줄이 뚝 끊어지는 것처럼.
    나무가 초록을 밀어내는 간지러움.
    깃털 아래서 깃털이 돋아나는 고통.

 

    당신은 누구시죠. 나는 가늠할 수 없는 시야를 확보해요. 이것은 내가 가진 첫 번째 질문. 끝내 알아차릴 수 없을 마지막 질문. 창문을 닫으며 나는 완고한 사람이 됩니다. 창문을 열면 바람. 완고함은 행위를 통해 강화되지만 행위를 통해 소거될 수 없어요. 당신은 누구시죠? 가장 비열한 질문. 자정의 눈 감은 천사들. 내게 물어 주세요. 당신은 누구냐고, 그럼 나도 묻겠어요. 멈출 수 없을 거예요.

 

    쓴다.
    사랑에 대해 말하려는 두 입술에 관하여.
    막 벌어지려는 열 개의 손가락들.

 

    사라진 책의 스무 번째 장에서는 리듬과 비리듬 사이
    불안에 관해 말하였다고 전해진다.
    움직이지 않은 순간부터 두 발은 깊어진다.

 

    조용히 내 안의 사물들이 자리를 바꾸는 것.
    그것을 지킬 것이다.

 

 

 

 

 

 

 

 

병원 손님 의자 테이블

 

 

 

 

 

    당신은 여기 앉으세요.

 

    생각에는 함정이 필요한 법이라 우린 모두 죄를 가져야 하죠.

 

    안전하고 따듯한 곳에서 다정한 얼굴들이 내내 웃는 동안.

 

    나는 잃어버린 것들을 이야기해야 한다는 생각도 하지 않고.

 

    책 읽지 않고 음악 듣지 않고 오로지 누워서 천장 보고 돌아누워 벽 보고.

 

    손님을 대하는 마음으로 나를 돌봐요.

 

    마지막은 더 커지고.

 

    모든 게 게임 같아요.

 

    당신의 똑똑함을 증오하고.

 

    정황이 필요하지요. 아무런 구체성도 없지요.

 

    병원 손님 의자 테이블 병원 손님 의자 테이블 계속 생각해요.

 

    바보 같다고 얘가 대체 왜 이러냐고 할 텐데.

 

    병원의 기구들은 건강과 무관해 보여요.

 

    나는 물속에 칼을 떨어뜨렸다고 썼지요.

 

    나는 병원 침대에 누웠지요.

 

    한 마리가 토하면 다른 한 마리가 그걸 먹고.

 

    아무것도 아닌 것을 열렬히 생각하다 보면 우주 같아서.

 

    병원 손님 의자 테이블.

 

    당신은 여기 앉아요.

 

    앉아서 차가운 것들을 만져 보세요.

 

    이별의 무능력.

 

    종달새는 나무 위에 있겠고 가을에는 복숭아가 사라지겠지요.

 

    어디서 들은 말인지. 드로파 드로파 계속 생각나서.

 

    노인들은 아침 일찍 일어나 돌아가며 섹스를 하고.

 

    계속 쓰면 부서질 것들도 부서질 듯 모이고 참 이상하죠?

 

    이상하게도 그런 생각은 하루하루 사는 데 도움이 됩니다.

 

    쌀쌀 쓸쓸 쌀쌀 쓸쓸 바람이 불어요.

 

    릴케도 이런 생각을 했을까 하다가 요즘은 페소아가 인기가 많지 하고.

 

    참 무서울 것도 없어서.

 

    이 모든 건 당신이 선택한 일이야.

 

    병원 손님 의자 테이블 그리고.

 

    물속을 떠다니는 수중식물들.

 

    함정은 움푹할 것 같지만 그렇지도 않아요.

 

    두 시가 네 시가 되는 동안.

 

    가루약처럼 생각이 생각을 뒤덮는 동안.

 

    나는 아주 오래된 돌멩이 같다고.

 

    당신이 앉지도 서지도 못하고 울음을 터트리는 동안.

 

    병원 손님 의자 테이블.

 

 

 

 

   《문장웹진 10월호》

 

kakao

댓글남기기

  Subscribe  
Notify o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