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화]나는 까마귀였다

 

[아르코 창작기금 – 동화]

 

 

나는 까마귀였다.

 

 

 

장경선

 

 

 

 

    “아버지, 우리 일본이 전쟁에 진 거 맞아요?”
    “그렇다는구나.”
    “왜요? 우리가 왜 져요?”
    “우리가 전쟁에 진 게 조센징들이 소련의 스파이 노릇을 했기 때문이라는구나.”
    바깥소식을 가져온 아버지 입에서 떨어진 말이 마쓰야마의 심장을 쿵 눌렀다. 마쓰야마는 옆집에 사는 아사코 집을 바라보았다. 아사코가 쓰러진 엄마를 발견하지 않았다면 엄마는 지금쯤 감자밭에 쓰러진 채로 죽어버렸을지도 모른다. 그날 쓰러진 엄마는 여전히 누워 계신다. 그런 엄마를 위해 아사코 엄마가 폐에 좋다는 자작나무 껍질 달인 물을 가져왔다. 뿐만 아니라 하루에 한 번씩 집에 들러 엄마의 병환과 살림살이도 둘러보았다. 그때마다 한 입에 쏙 들어가는 알감자 졸인 것이며 연어 절인 것을 가져왔다.
    “마쓰야마, 엄마를 데리고 피난지구로 먼저 떠나야 한다.”
    “아버지는요?”
    “남자들은 처리할 게 있어서 남아야 한다는구나. 곧 소련 군대가 마을을 폭격할 거야. 소련군은 모두 미친 개여서 보는 대로 우릴 모두 죽여 버릴 게다. 이제 사할린은 소련 땅이 되어버렸어……. 망할…….”
    아버지가 거친 말을 토해 내며 방으로 들어갔다.
    “아사코네도 알고 있어요?”
    “…….”
    아버지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아사코네도 우리랑 함께 일본 본토로 가나요?”
    마쓰야마도 방으로 따라 들어가며 물었다.
    “아사코네는 조센징이다.”
    아버지 대답에 심장이 멎는 줄 알았다. 조금 전 아버지가 말한 우리 일본이 전쟁에 진 게 조센징 때문이라는 말이 되새김질하듯 떠올랐다.
    “가시와바라 아저씨, 가시와바라 아저씨…….”
    호소가와 다케시 형이 숨을 헐떡이며 뛰어 들어왔다. 숨을 고르지도 못한 채 두 손을 무릎에 얹은 채 허리를 잔뜩 굽힌 형이 말을 토해 냈다.
    “구리야마 어르신 댁으로 지금 당장 모이랍니다.”
    “무슨 일인가?”
    “처리해야 할 임무가 급히 생겼나 봐요. 지금 당장 모이라는 모리시타 대장님의 명령이에요.”
    아버지가 들고 있던 옷가지를 내팽개치고는 허겁지겁 신발을 신었다. 미처 신지 못한 신발을 질질 끌며 담장에 세워진 날이 선 죽창을 들고는 서둘러 집을 떠났다. 아무래도 대일본제국이 전쟁에 졌다는 소식만큼이나 충격적인 일이 곧 벌어질 것 같았다. 아버지 뒤를 따라가야 할지, 아니면 아사코네로 가봐야 할지 갈팡질팡하는 사이 마쓰야마의 발걸음은 아버지 뒤를 뒤쫓고 있었다.
    구리야마 어르신 댁에는 이미 많은 사람이 모여 있었다. 미즈호 마을의 최고 부자답게 널찍한 마루는 많은 사람이 앉기에 충분했다. 마루 가운데에는 집주인인 구리야마 어르신이 아닌 모리시타 대장이 앉아 있었다. 비록 퇴역군인이지만 미즈호 마을을 이끄는 지도자이며, 모리시타 대장의 한 마디 한 마디는 모두 천황폐하의 말과도 같았다. 그 옆에는 미즈호 청년단의 교련 교관으로 있는 호소가와 히로시 형이 군도를 옆에 세워 놓은 채 앉아 있었다. 아버지를 부르러 온 다케시 형보다 세 살 더 많은 히로시 형은 미즈호 마을의 청년단을 이끄는 총책임자다.
    모두 얼굴빛이 딱딱하게 굳어 있는 게 긴장감이 돌았다. 중요한 말을 주고받는 것 같았다. 마쓰야마가 몸을 숨기고 있는 곳간 옆까지는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좀 더 가까이 가기 위해 어른들 눈치를 살피며 마루 옆까지 갔다. 다행히 어른들은 얘기하느라 마쓰야마 따위는 신경도 쓰지 않았다.
    “이곳 사할린의 모든 조선인들이 소련군 사령부를 위한 스파이로 활동하고 있으며, 일본인을 배반하여 적에게 넘기려 하고 있습니다.”
    모리시타 대장 얘기에 반대 입장을 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어제만 해도 아사코 아버지와 동네 몇몇 사람들과 함께 루타카 강으로 연어를 잡으러 갔었다. 연어는 알을 낳기 위해 자신의 고향을 찾아온다고 한다. 이곳 루타카 강은 연어들의 고향이다. 그러면서 “우리도 연어들처럼 고향으로 돌아가야지.” 하는 말을 정답게 주고받았다. 이어 이 강이 바다로 흘러 들어가고, 그 끝에 우리들의 고향이 있다는 말도 덧붙였었다. 그런 조선인들이 어떻게 소련의 스파이가 될 수 있다는 것일까. 아니지, 몇 시간 전까지만 해도 아사코와 아사코 엄마가 미음을 들고 왔었다. 힘없이 누워 있는 엄마를 일으켜 세우고는 천천히 미음을 먹였었다.
    “조센징들이 폭동을 일으킨다는 정보도 들어왔소. 밤이 되면 붉은빛과 푸른빛 전등으로 신호를 보내고 있으니 조선은 소련의 스파이가 틀림없어요.”
    “그럴지도 모르죠. 조센징들은 우리가 자기 나라를 식민지로 삼았다고 무조건 소련 편을 들 테니.”
    “그러니, 아무 죄 없는 우리에게 죄를 뒤집어씌워 죽이려 들겠지.”
    “하루빨리 소련군이 들어오기만 기다리고 있겠지. 어림없어.”
    호소가와 히로시 형이 쥐고 있는 군도를 쿵 소리가 나도록 쳤다.
    “우리가 여기 모인 이유는 그 때문이오.”
    잠자코 사람들의 말을 듣고 있던 모리시타 대장이 입을 열었다.
    “일본군 당국의 명령이오.”
    숨소리마저 잦아들 만큼 긴장감이 돌았다. 일본군 당국의 명령은 곧 천황폐하의 명령이라는 뜻이기 때문이었다. 모두 뒤에 이어질 다음 말이 뭔지 듣기위해 모리시타 대장을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마쓰야마도 떨어지는 말을 놓치지 않으려고 귀를 쫑긋 세웠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미즈호 마을의 조선인을 모두 처단하는 것이오.”
    “벌써 우리를 배신할 몇몇 조선인들은 처단되었습니다. 나머지 조선인들도 그대로 둬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히로시 형이 자신에 찬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렇소. 이 일은 일본군 당국의 명령이오!”
    “곧 이 일을 실행해야 합니다. 늦어도 21일 내일까지 달성하고, 우리도 피난지구로 떠나야 합니다. 서둘러야 합니다. 점점 우리를 죽이기 위해 소련 군대가 다가오고 있습니다. 서둘러야 합니다.”
    “그럽시다. 서두릅시다.”
    “조센징들을 다 죽이자!”
    어른들 목소리가 한층 거칠어졌다.
    마쓰야마는 이제 자기가 해야 할 일이 뭔지 알 것 같았다. 정신없이 마당을 빠져나왔다. 발걸음은 저절로 아사코 집으로 향했다. 아사코! 하고 여러 번 불렀는데 대답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뒤꼍으로 갔다. 아사코네 뒤꼍은 하얀 자작나무가 작은 숲을 이루고 있다. 아사코는 자작나무 껍질을 벗긴 후 그림을 그리거나 글씨를 썼다. 아주 오래전, 조선에서도 자작나무 껍질을 이용해 그림을 그렸다고 한다. 조선의 옛날 이름 중 하나인 신라라는 이름을 가진 나라에서는 죽은 왕의 무덤에 천마가 구름을 헤치며 하늘로 향하는 모습을 그렸다고 했다. 이 그림을 <천마도>라고 불렀는데, <천마도>의 재료가 자작나무 껍질이었다고. 물론 자작나무 꽃말이 ‘당신을 기다립니다’라는 것도 아사코가 알려주었다. 아사코가 앵두처럼 붉은 입술로 이 말을 할 때 마쓰야마의 가슴은 이유 없이 콩닥콩닥 뛰었고, 얼굴이 화끈거렸다. 그 뒤로 마쓰야마도 자작나무를 좋아하게 되었다. 자작나무는 아사코의 다리처럼 가느다랗게 하늘을 향해 쭉쭉 뻗었다. 홀로 떨어져 있는 자작나무는 왠지 키만 껑충하고 깡마른 게 불쌍해 보이는데, 아사코네 뒤꼍처럼 숲을 이루고 있으면 늠름해 보인다. 아사코네처럼 조선 사람들은 자작나무 같았다. 혼자 있으면 불쌍해 보이는데, 함께 모여 있는 조선인들을 보면 힘이 느껴졌다.
    뒤꼍에도 아사코는 없었다. 뒤꼍에 파놓은 방공호 입구에서 아사코를 불렀지만 대답이 없었다. 벌써 피난을 간 걸까? 뒤꼍으로 난 창문으로 방 안을 살펴보니, 피난 간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 분명 밭으로 갔을 것이다. 조선인들의 부지런함은 하늘 아래 아무도 따를 자가 없다고 엄마와 아버지는 입버릇처럼 말했다. 그러니 밭에서 감자를 캐고 있을 것이다. 마쓰야마는 서둘러 앞마당으로 뛰어나오려던 발걸음을 멈추었다. 아사코 아버지와 다른 두 명의 조선인들이 호소가와 히로시 형과 다른 일본인들과 함께 얘기를 나누며 마당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대나무로 만든 죽창을 손에 들고 있었다. 아버지도 함께였다.
    “소련군이 나타나면 이 죽창으로 없애야 해요.”
    호소가와 히로시 형이 친절한 말투로 설명을 했다. 그러자 모인 사람들이 죽창을 흔들며 큰 소리로 대답했다.
    그때 감자 자루를 수레에 싣고 아사코와 아사코 엄마가 마당으로 들어섰다.
    “아사코?”
    마쓰야마는 자기도 모르게 큰 소리로 아사코를 불렀다. 죽창을 든 아버지가 뒤꼍 쪽에 서 있는 마쓰야마를 보고 벌린 입을 다물지도 못한 채 달려왔다.
    “엄마가 가슴이 아픈지…… 곧 죽을 것 같아요.”
    마쓰야마는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표정을 지으며 다급한 목소리로 말했다. 자기도 모르게 나온 거짓말이었다.
    “가자, 마쓰야마.”
    아버지가 마쓰야마의 팔을 끌었다.
    “아니에요. 꼭 요코 아줌마를 데려오랬어요.”
    “요코 아줌마는 안 돼.”
    아버지는 더 우악살스럽게 마쓰야마의 팔을 잡아끌었다.
    “자, 마쓰야마 말은 신경 쓰지 말고, 요코 아주머니는 아사코를 데리고 지금 당장 산으로 피하세요.”
    “감자를 더 캐야 하는데…….”
    “지금 감자 타령 할 때가 아니야. 소련군이 근처까지 왔다는데…….”
    아사코 아버지가 퉁바리를 주듯 말했다.
    “맞아요. 서둘러 방공호가 있는 산에서 다른 사람들을 기다려야 합니다. 곧 소련군이 우리 미즈호에 들이닥친다는 정보가 있어요.”
    요코 아줌마는 아사코 손을 잡고 뒷산을 향해 서둘러 떠났다. 마쓰야마도 아버지 손에 끌려 집으로 돌아왔다.
    “조선인들을 다 죽일 건가요? 아사코와 요코 아줌마도요?”
    마쓰야마는 아버지에게 물었다.
    “절대 소련 스파이가 아니라는 건 아버지가 더 잘 알고 있어요.”
    “명령을 거역하는 건 배신행위야.”
    “그럼, 왜 조선인과 우리 일본은 하나라고 하셨죠? 백성을 함부로 죽이는 건 정당한 일이 아니에요. 천황폐하는 절대 그런 명령을 내리지 않았을 거예요.”
    마쓰야마는 지지 않고 소리를 질렀다. 바로 그때였다. 찢어지는 비명소리가 나더니 두 사람이 아사코 집을 뛰쳐나오고 있었다. 그 뒤를 히로시 형과 다른 누군가가 따라붙었다. 그러고는 히로시 형이 들고 있던 군도를 휘둘렀다. 그리고 또 다른 누군가가 다른 한 명에게 죽창을 휘둘렀다. 아버지가 마쓰야마의 부릅뜬 눈을 손바닥으로 가렸다. 까오옥…… 까오옥……. 피 냄새를 맡고 날아온 까마귀 소리는 밤이 깊도록 멈추지 않았다.
    아버지는 밤이 늦도록 술을 마셨다. 마쓰야마는 아버지가 주는 약을 먹고 엄마 옆에 누웠다. 아사코는…… 생각을 하다가 이내 잠이 들어버렸다. 눈을 떠보니 아침이었다. 자신이 겪은 일이 지난밤 꿈처럼 느껴졌다. 어쩌면 꿈인지 모른다. 엄마가 아픈 후로 자주 꾸는 악몽.
    “마쓰야마, 괜찮니?”
    구리야마 어르신의 막내인 이치로 형이었다.
    “너의 엄마가 갑자기 호흡이 가빠져서 병원으로 가셨어. 혹시 몰라 널 우리 집에 데려다 놓으셨어.”
    “아사코네는?”
    “……피난 가지 않았을까. 우리도 곧 떠날 거야.”
    역시 악몽이었다. 어쩜 그리 생생하게 긴 꿈을 꾸었는지 모르겠다. 마쓰야마는 흉측한 꿈 이야기를 이치로에게 들려주었다. 이치로가 그런 일은 절대 일어나지 않을 거라며 마쓰야마를 위로했다. 아침을 먹고 어른들이 오면 피난지구로 떠날 거라고 했다. 엄마와 아버지는 병원에서 그곳으로 바로 간다는 말도 덧붙였다.
    “형, 나 집에 가서 꼭 가져올 게 있어.”
    “소련 군대가 우리 마을에 나타났다고 함부로 다녀서는 안 된다고 하셨어.”
    “눈에 띄지 않도록 조심해서 다녀올게.”
    “아버지가 알면 큰일 나는데……. 그것만 가지고 얼른 와야 해. 곧 떠날 테니까.”
    마쓰야마는 어른들 눈에 띄지 않도록 조심해서 다녀오겠다고 약속하고는 급히 집을 빠져나왔다. 주위를 살피며 집으로 뛰었다. 아사코 집 앞에 도착하도록 어른들은 한 명도 만나지 않았다.
    아사코네는 피난을 갔는지 텅 비어 있었다. 악몽이 틀림없었다. 서둘러 집으로 갔다. 방으로 들어가 장롱 속에 넣어 둔 상자를 꺼냈다. 가끔씩 아사코는 자작나무 껍질에 그린 그림을 마쓰야마에게 선물하곤 했다. 하늘을 날아오르는 천마와 고향 조선의 앞개울에서 고기 잡으며 노는 아이들과 봄날 나물 캐는 저고리 입은 여자 아이들의 모습이 담긴 그림은 언제나 마쓰야마의 마음을 기쁘게 해주었다.
    마쓰야마는 상자를 챙긴 후, 서둘러 방문을 열고 나왔다. 갑자기 아사코 집에서 시끄러운 소리가 들려왔다. 꿈속에서 본 그 죽창이 보였다. 가슴이 벌렁거렸다. 살금살금 담장으로 가 마당을 살폈다. 호소가와 히로시와 그의 동생 호소가와 다케시, 그리고 청년단원을 비롯한 여러 명의 어른들이 서 있었다. 그리고 피를 흘린 채 쓰러진 사람들이 보였다. 소련 군인인가? 하고 마쓰야마는 생각했다.
    “여자와 아이는 어떻게 할까요?”
    “나중에라도 우리가 한 일을 알고 함부로 지껄일지 모르니까 그 싹을 잘라버려야지.”
    “그렇다면…… 없애버리겠습니다.”
    “일을 말끔히 처리하고 피난지구로 가면 된다.”
    “네.”
    우렁찬 목소리로 대답을 마친 청년단원과 몇 명의 어른이 급히 아사코 집을 나섰다. 남은 어른들은 널브러진 시체들을 도랑과 수풀에 던져버리고 어딘가로 몰려갔다. 마쓰야마는 모두 떠난 아사코 집으로 가서 시체가 던져진 수풀을 헤쳐 보았다. 그러고는 뒤로 벌러덩 엉덩방아를 찧고 말았다. 자기가 본 건 틀림없는 건너 마을 오우라시마의 곤베 아저씨 집에서 일하는 조선인 가족이었다. 다섯 명의 아이와 아이들의 엄마가 함께 엉켜 누워 있었다. 마치 살아 있는 듯 두 눈을 부릅뜬 까만 단발머리의 여자 아이는 아사코의 동무였다. 아사코와 단짝으로 자주 어울려 다녔다.
    그렇다면 누군가를 죽이기 위해 간 곳에 아사코와 요코 아줌마가 있을지도 모른다. 마쓰야마는 아픈 심장을 움켜쥔 상자로 누르며 서둘러 방공호가 있는 산으로 향했다. 뒷산으로 가는 길에 키 작은 관목들이 어지럽게 꺾여 있었다. 벌써 이 길을 지나간 모양이었다. 뒷산은 그리 높지 않아, 산 밑에는 황톳빛 밭들이 많았다. 부지런한 조선인들이 그곳에 무, 파, 감자 등을 심어 놓았다. 감자꽃이 하얗게 피었다. 잠깐 한눈 판 사이 산으로 간 사람들이 내려오는 소리가 들렸다. 마쓰야마는 순간적으로 관목 속으로 몸을 숨겼다. 사람들이 자기 앞을 지나갈 때 구역질이 나오는 걸 얼른 손으로 막았다. 사람들이 모두 사라진 후 방공호로 올라갔다. 오늘따라 감자밭에 까마귀가 저리 많을까. 까오옥 까오옥……. 떼를 지은 까마귀들이 감자밭에 앉아 연신 부리질을 하고 있었다.
    방공호에 도착한 마쓰야마는 어두운 방공호를 향해 아사코를 불렀다. 대답이 없었다. 조심조심 방공호 안으로 들어가며 주위를 더듬거렸다. 어둠에 익숙해지자 주위를 살폈지만 아무것도 눈에 띄지 않았다. 아사코와 요코 아줌마는 여기 있지 않은 모양이었다. 다행이었다. 허겁지겁 방공호를 나와 주위를 살피며 산을 내려왔다.
    “까오옥…….”
    “까오옥…….”
    감자꽃이 하얗게 핀 밭에 까마귀들이 여전히 몰려 있었다. 몇몇 까마귀들은 망이라도 보는 듯 하얀 자작나무에 앉아 있었다. 자작나무를 보자 다시 아사코 생각이 났다. 마쓰야마는 곁에 있는 돌멩이를 집어 힘껏 던졌다. 산을 오를 때도 웬 까마귀가 저리 모여 있을까 하고 생각했다. 돌멩이에 놀란 까마귀들이 푸드덕 날아오르더니 이내 그 자리에 내려앉았다. 마쓰야마는 다시 돌멩이를 던졌다. 이번에는 뭔가 물고 늘어진 까마귀가 날아오르지도 않았다. 마쓰야마는 기다란 나뭇가지를 들고는 휘휘 저으며 감자밭으로 걸어갔다. 황톳빛 흙이 어지럽게 덮여 있는 사이로 뭔가 보였다. 마쓰야마는 더 세게 나뭇가지를 휘두르며 까마귀들을 쫓아냈다. 그건 분명 아사코의 검정 광목치마였다. 노랗게 핀 민들레가 아사코의 얼굴처럼 치마저고리 끝에 매달려 있었다. 아사코가 그린 민들레꽃이었다.
    “으아악……. 까오옥…….”
    “까오옥…….”
    마쓰야마는 참을 수 없는 분노와 슬픔을 토해 냈다. 이상하게도 자작나무 가지에 앉아 울어대는 까마귀 소리가 터져 나왔다.
    “마쓰야마…….”
    아버지였다.
    “까오옥…….”
    “마쓰야마, 정신 차려라.”
    “까오옥…….”
    여전히 마쓰야마 입에서는 까마귀 소리만 나왔다. 그런데 아버지가 하는 말도 마쓰야마에게는 까마귀 소리로 들렸다. 마쓰야마는 두 손으로 귀를 막았다.
    “정신 차려라. 꺄오옥…….”
    아버지 입에서는 날카로운 까마귀 울음소리가 다시 들렸다. 당장이라도 아버지의 날카로운 부리가 마쓰야마를 쪼아대기라도 할 듯 마쓰야마는 온몸을 부르르 떨며 울부짖었다.
    “까오옥…….”
    “까오옥…….”
    슬픈 까마귀 울음소리는 오래도록 울려 퍼졌다.

 

 

 

 

 

 

 

 

나는 까마귀였다.

 

 

 

    74일,
    한국으로 돌아갈 날이 아직도 이렇게나 많이 남았습니다. 학교 안 가면 진짜 좋을 줄 알았는데, 하루 종일 펑펑 놀다 보니 너무 심심해서 차라리 학교 가는 게 더 좋다는 느낌마저 듭니다. 러시아 사할린에 오기 전에는 새로운 것을 체험한다는 기대감에 마음이 몹시 설레었지요. 학교도 안 다니고 공부도 안 하고……. 친구들이 얼마나 부러워했는데요. 얘들아, 나 부러워하지 마. 학교 안 가니까 진짜 심심하거든. 진짜 진짜로.
    “오빠, 우리 풍선 배구 할래?”
    “그래.”
    너무 심심해서 오빠와 내가 개발한 놀이입니다. 거실 가운데를 경계선으로 해서 배구를 하는데 엄청 재밌습니다. 물론 운동도 되고요.
    오빠가 서브를 넣었습니다.
    “얼굴을 왜 맞히는데?”
    오빠는 항상 이런 식입니다. 내가 약하다고 일부러 풍선을 내 얼굴에다 맞힙니다. 그래 놓고는 실실 웃습니다. 그게 더 기분 나쁩니다.
    “오빠도 똑같이 당해 봐야 돼.”
    “내가 뭘? 난 그냥 서브 넣은 거야.”
    “내 얼굴 일부러 맞혔잖아.” “일부로 맞힌 거 아니거든!”
    “일부로 그런 거 다 알거든.”
    나는 너무 화가 나서 오빠 얼굴을 향해 풍선을 힘껏 쳤습니다. 오빠가 날렵하게 피해버렸습니다. 더 화가 나서 악을 써대며 소리를 질렀습니다.
    “너희들은 아침에 눈 뜨면서부터 밤에 눈 감을 때까지 싸우냐. 계속 싸워라. 말로 싸우지 말고 치고받고 싸워라.”
    엄마가 내 편을 들어줄 줄 알았는데 더 싸우라고 하니까 더욱더 속상합니다.
    “난 일 보러 나갈 테니, 심심한 너희 둘은 남아서 계속 싸워라.”
    엄마가 외출 준비를 하며 말했습니다.
    오늘도 엄마는 일제 강점기 때 사할린으로 끌려온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가족들을 만나러 가는 모양입니다. 엄마와 오빠, 내가 이곳 사할린에 온 목적은 엄마가 하는 역사 공부 때문입니다. 엄마는 매일, 일제 강점기 때 강제로 사할린으로 끌려온 조선인들을 만나 얘기를 나눕니다. 물론 일제 강점기 때 강제로 끌려와 일했던 탄광이며, 제지공장 등을 둘러보기도 하지요. ‘미즈호’와 ‘가미시스카’ 마을에 있었던 일본인에 의한 조선인 학살 사건의 현장도 살펴봅니다. 이런 곳은 차도 오래 타야 하고, 많이 걸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가기 싫다고 해도 엄마는 강제로 끌고 갑니다. 눈으로 보는 것만큼 확실한 역사 공부는 없다고요. 어떨 땐 엄마가 마치 일본이고, 우리는 사할린 한인들처럼 강제로 끌려온 조선인 같습니다.
    “전 엄마 따라갈래요.”
    오빠는 당장이라도 나갈 깜냥입니다.
    “밖에 비 오니까, 너희 둘은 그냥 집에서 계속 싸우세요.”
    “아닙니다. 따라가겠습니다.”
    오빠는 실실 웃으며 엄마에게 알랑방귀를 껴댑니다.
    사실 엄마가 할아버지나 할머니와 얘기를 나누는 동안 나와 오빠는 할 일이 거의 없습니다.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부르거나 스마트폰으로 게임을 하거나 내가 좋아하는 노래를 듣는 일 외에는. 그런데도 일부러 엄마에게 잘 보이려고 아부를 떠는 오빠입니다. 일본 앞잡이가 따로 없습니다.

 

    한여름인데도 비 오는 날은 춥습니다. 비에 젖은 흙길은 진흙투성이입니다. 덜 진 땅을 골라 걷는데도 샌들에 자꾸 흙이 달라붙습니다. 발까지 흙이 들러붙어 사할린 한인 문화센터에 도착하자마자 물로 깨끗이 씻어냈습니다.
    우리들은 약속 장소인 2층에서 할머니를 기다렸습니다. 오빠는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불렀습니다. 오빠의 꿈은 가수입니다. 그래서 어딜 가도 기타를 가지고 다닙니다. 다른 날 같으면 오빠 옆에서 같이 노래를 부를 텐데, 오늘은 그럴 마음이 눈곱만치도 없습니다. 난 엄마의 스마트폰으로 이것저것 검색했습니다.
    “연주를 잘하는구나.”
    언제 오셨는지 할머니께서 웃으시며 말씀하셨습니다. 나와 오빠는 일어나서 할머니께 인사를 드렸습니다.
    “오누이가 다정하기도 하지. 보기가 좋구나.”
    “매일 싸워요. 싸우는 오누이예요. 조금 전에도 싸우다 왔어요.” 엄마가 굳이 하지 않아도 될 말을 합니다.
    “전채련 어르신이시죠? 하필 비 오는 날 이렇게 뵙자고 해서 죄송해요.”
    엄마가 할머니에게 의자를 빼주며 말했습니다.
    “사할린 날씨야 변덕이 죽 끓듯 하지요. 괜찮습니다. 사진을 가져오긴 했는데 한번 보세요.”
    할머니가 사진첩을 펼쳤습니다. 사진 한 장 한 장마다 할머니의 어린 시절 추억이 담겨 있습니다.
    “우리 오빠가 일했던 나이부치 탄광이에요. 탄광 일은 사람들이 아주 싫어했어요. 그러자 왜놈들은 제지공장이나 비행장 건설 현장에서 일한다고 속여 사람들을 데려왔어요. 대부분 거짓말에 속은 거죠.”
    “오빠 분이 잘생기셨네요.”
    엄마가 웃으며 맞장구를 칩니다.
    “그런데 어르신은 어떻게 사할린에 오시게 되었어요?”
    “왜놈들이 전쟁을 치르기 위해 석탄이 필요하니까, 조선 사람들을 강제로 끌고 왔어요. 우리 오빠도 열다섯 살 때 강제로 끌려왔지요. 한 일 년 탄광에서 일하다 이듬해, 가족을 데려오게 해줘서 우리 가족은 오빠를 따라 사할린에 오게 되었어요.”
    “가족을 데려오게 하다니 믿기지 않네요.”
    엄마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습니다. “탄광 일이 힘드니까, 가족을 데려오면 도망 안 가고 일도 잘할 것 같아 데려오게 한 거지요.”
    “그럼, 식구가 다 오셨어요?”
    “몸이 아픈 아버지는 치료가 끝나는 대로 뒤따라 들어오신다고 해서 엄마와 나, 남동생만 사할린으로 먼저 왔어요. 급히 떠난 건 지금 당장 떠나지 않으면 한겨울에야 사할린에 도착하기 때문이었어요. 고향을 떠날 때 홑저고리에 홑바지를 입어도 춥지 않았는데, 사할린에 도착해서 배에서 내리는데 뼛속이 얼얼할 정도로 추웠어요. 뼛속까지 춥다는 말을 그때 알았으니까요. 이런 배를 타고 왔어요.”
    할머니가 사진 한 장을 보여주며 말했습니다.
    “아버님은 뒤따라 들어오셨어요?”
    “아니에요. 그게 마지막이 되고 말았어요. 전쟁이 심해지면서 일본과 사할린 사이에 배가 뜰 수 없게 되었거든요. 연합군이 보는 대로 폭탄을 떨어뜨리니 사람은 아예 못 오고, 전쟁 막판에는 사할린에서 캐낸 석탄도 일본으로 실어 나르지 못하게 되었어요. 그러자 사할린 광부들을 일본으로 데리고 가 석탄을 캐게 했어요. 그 바람에 다시 이산가족이 생겨나게 된 거예요. 전쟁 때문에 가족이 뿔뿔이 흩어지고 말았어요.”

 

    사할린은 러시아의 가장 동쪽에 있는 섬. 1905년 러시아가 러일전쟁에 지면서 북위 50도를 기준으로 사할린 위쪽은 러시아가, 남쪽은 일본이 차지하게 되었다. 우리나라는 1910년 강제로 일본의 식민지가 되면서 통치권은 완전히 일본에 넘어갔다. 우리나라는 일본이 2차 세계대전에서 승리하기 위해 중요한 곳이었다. 우리나라 사람들로 하여금 보충되는 노동력, 그리고 대륙에서 유리한 전투를 하기 위한 반도가 바로 우리나라의 조건과 딱 맞았기 때문이다. 아이들에게는 식민지식 교육을 시켜 일본은 무조건 강하고, 조선은 열등하다는 것을 인식시켰다. 사할린은 전쟁에 필요한 석탄이 풍부한 곳이다. 그래서 우리나라 젊은이들과 남자들을 강제 징용으로 끌고 왔다.

 

    어느새 내 눈은 사할린에 대한 검색 자료를 읽고, 내 귀는 엄마와 할머니가 주고받는 이야기를 향해 있습니다. 오빠도 가져온 책을 읽는 척하면서 얘기를 듣고 있는 것 같습니다.

 

    “하루 종일 탄광에서 일하고 돌아온 오빠 얼굴은 시꺼먼 탄으로 뒤덮여 있었어요. 아버지가 안 계신 우리 집은 오빠가 다 먹여 살려야 했거든요.”
    할머니의 목소리가 떨렸습니다.
    “우리를 먹여 살리기 위해 아버지 대신 쉬지 않고 일했어요. 그런 오빠가 그만…….”
    갑자기 할머니가 눈물을 흘렸습니다. 엄마도 따라 웁니다.
    “오늘처럼 비가 오는 날이면 오빠는 다친 다리가 아파서 비명을 지르며 짐승처럼 울부짖었어요. 얼마나 아팠으면…….”
    할머니가 손수건으로 눈물을 찍어냈습니다. 엄마도 휴지로 눈물을 찍어냅니다.
    할머니의 오빠는 탄광에서 탄을 캐내다 탄광이 무너지는 바람에 다리를 심하게 다쳤다고 합니다. 병원에서 치료를 받았지만 피를 너무 많이 흘려 비 오는 날이면 다리가 쑤시고 아파 몹시 괴로워했다지요.
    “그때 우리 오빠 나이가 열여섯이었어요.”
    나는 오빠를 쳐다보았습니다. 우리 오빠도 열여섯 살이거든요. 전채련 할머니의 오빠는 식구들을 위해 일하는데, 우리 오빠는 나만 괴롭히고……. 달라도 너무 다르네요. 오빠가 날 보고 ‘뭘 봐’ 하는 눈길을 보냅니다.
    “오빠는 나를 아주 예뻐했어요. 우리 집이 너무 가난해서 학교를 못 다니는 거 알고, 사할린에 와서는 2교대 3교대 쉬지 않고 일한 돈으로 나를 학교에 보내주었어요. 나는 열심히 공부해서 항상 1등만 했지요.”
    “그래서 조선학교 선생님도 하셨군요. 오빠에게 감사해야겠네요.”
    엄마가 아는 체를 합니다.
    “그럼요. 당연히 감사해야죠. 지금도 한겨울 그날을 잊을 수 없어요. 그날은 눈이 어찌나 많이 내리고, 바람도 어찌나 심하게 부는지 밖에 나오니까 숨이 턱 막혔어요. 그런데 갑자기 ‘채련아’ 하고 부르는 거예요. 오빠였어요. 오빠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던 거예요. 그러더니 내 앞에 등을 대고 앉으면서 업히라고 말했어요. 나는 오빠 등에 얼른 업혔어요. 오빠 등에 얼굴을 묻고 가는데 하나도 춥지 않았어요. 오빠의 든든한 등이 어찌나 따스했는지…….”
    할머니는 그날로 되돌아간 듯 잠시 말을 멈췄습니다.
    “오빠는 나에게 채련아, 돈 많이 벌어서 어서 고향에 가자고 했어요……. 그런 오빠가…… 하늘나라로 먼저 떠나셨어요. 열다섯 살에 광부가 되어 스무 살에 하늘나라로 떠나고 말았지요. 장가도 못 가고……. 오늘처럼 비 오는 날이면 우리 오빠가 더 생각나요.”
    할머니는 오랫동안 할 말을 잊고 손수건으로 눈물을 찍어냈습니다. 엄마도 덩달아 눈물을 흘렸습니다.
    오랜 침묵을 깨고 할머니가 말문을 다시 여셨습니다.
    “그렇게 힘들게 번 돈을 한 푼도 못 받고 있어요.”
    “그때 안 받으셨어요?”
    “그 당시 회사에서는 은행에 저축을 하라고 했어요.”
    “그럼 생활은 어떻게 하셨어요?”
    “가게에 가서 이름을 대고 물건을 사면 자동으로 회사로 보고가 되고, 월급에서 돈이 빠졌어요. 그래 놓고 해방이 되자 돈 한 푼 안 주고 쏙 빠져나가 버렸어요. 돈을 받고 싶으면 그때 통장을 가지고 본인이 와야 돈을 내준다고 하는 거예요. 당사자들은 대부분 죽고 없고, 살아 있는 사람들도 90살 100살이 넘어 제대로 움직일 수도 없는데 본인이 직접 와야 돈을 준다는 게 말이나 됩니까? 안 주겠다는 거지. 이제 살아 있는 사람들도 거의 없는데 말이에요.”
    흥분한 할머니의 목소리가 커졌습니다.

 

    작년 여름이었습니다. 우리 가족은 서울에 있는 일본대사관으로 갔습니다. 일본군위안부 할머니들을 위한 ‘수요 집회’에 참석하기 위해서였지요. 광복절이어서 그런지 사람들이 어찌나 많은지 발 디딜 틈조차 없었습니다. 그날도 비가 억수같이 쏟아져 우산을 썼지만 이미 옷은 다 젖어버렸습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점점 늘어났지요. 누군가가 마이크를 들고 말했습니다.
    “일본대사관 좀 보세요. 오늘도 역시 커튼이 쳐져 있군요.”
    그 얘기에 나는 일본대사관 창문을 바라보았습니다. 검은 커튼이 내려져 있었습니다.
    “수요 집회가 보기 싫어서일까요? 아닙니다. 자신들이 한 행동이 부끄러워서 아닐까요? 할머니들처럼 더 확실한 살아 있는 증거가 있으니 부끄러운 거지요. 할머니들 오래오래 사십시오. 일본이 우리에게 무릎 꿇고 잘못을 비는 그날까지 100년이고 1000년이고 살아 계셔야 합니다.”

 

    갑자기 그때 일이 생각났습니다. 사할린에 끌려온 할아버지 할머니 역시 오래오래 살아야 할 텐데요.
    “난 일본이 왜 이렇게 뻔뻔스럽게 굴고, 역사를 왜곡시키는지 알아요. 일본이 이러는 걸 무조건 일본 탓만 할 수 없어요.”
    엄마가 할머니를 바라보았습니다. 무슨 뜻이냐고 묻는 겁니다.
    “우리나라 사람들도 반성해야 돼요. 우리나라 안에서도 얼마나 많은 진실이 왜곡되고 있습니까. 자신에게 불리한 사실은 왜곡시켜 버리잖아요. 그러니 일본에서도 대한민국은 거짓말을 잘하는구나, 우리도 거짓말해도 되겠구나 하고 거짓말을 밥 먹듯 하는 게 아니겠어요. 나라 안의 거짓말부터 바로세우는 게 필요해요.”
    할머니 말씀을 듣고 보니 저절로 고개가 끄덕여졌습니다.
    “오빠가 있어 좋지?”
    갑자기 할머니가 나를 보고 물었습니다.
    “아! 예…….”
    “사할린에 아빠가 안 오셨으니까, 오빠가 엄마랑 동생을 책임져야겠구나. 네가 고생이 많다.”
    “아…… 예. 감사합니다.”
    오빠는 예의바른 사람처럼 공손히 인사를 했습니다.
    할머니와 헤어져 집으로 돌아오는데 비는 멎었습니다. 언제 비가 왔느냐는 듯 해가 반짝 나 긴팔 옷을 벗어야 했습니다. 사할린 날씨는 하루에 열두 번도 더 바뀐다더니, 그걸 증명이라도 하는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비에 젖은 길은 여전히 진흙으로 질퍽거립니다. 샌들과 발에 흙이 자꾸 달라붙습니다. 걷는 것조차 힘듭니다.
    “업혀.” 갑자기 오빠가 내 앞에 등을 내밀었습니다. 메고 있던 기타를 엄마에게 건네줍니다.
    “진짜로 업혀도 돼?”
    “빨리 업히라니까.”
    나는 오빠 마음이 변하기 전에 얼른 업혔습니다. 오빠가 조심조심 걷습니다. 오빠 등에 업히니까 기분이 참 좋습니다. 아빠 등에 업히면 나도 모르게 졸린데, 오빠 등은 이상하게 기분이 좋아지네요. 그러더니 내 마음에 하트가 막 생겨나는 게 아니겠어요.
    “오빠, 아까는 미안해.”
    나도 모르게 이런 말이 나오고 말았습니다.
    “아니야, 나도 미안해.”
    “나 무겁지?”
    “아니, 하나도 안 무거워.”
    그러더니 오빠가 막 달립니다. 그런 우릴 보고 엄마가 소리쳤습니다.
    “너네는 금방 싸웠다, 금방 노는 게 꼭 사할린 날씨 같구나.”

 

 

 

 

   《문장웹진 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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