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_차세대2차_동화] 해파리 선생님

 

[2014년 2차 차세대예술인력육성 문학분야 선정작 – 단편동화]

 

 

해파리 선생님

 

 


조희애

 

 

 

 

 

    1.
    깜빡 깜빡.
    교실 안 형광등이 두어 번 깜빡거렸다. 곧이어 문이 열리며 교생 선생님이 등장했다. 선생님 손에는 반 아이들이 먹을 아이스크림 서른다섯 개가 든 묵직한 봉지가 쥐어져 있었다. 아이들은 와아 환호하며 달려들었다.
    나는 책가방에서 파란색 수첩을 꺼내 방금 벌어진 일을 연필로 적었다.

 

    △△년 △월 △일 낮 12시 37분.
    이번에도 역시 교실 형광등이 깜빡거림.
    이유는 알 수 없으나 교생 선생님이 외계인이라는 증거는 확실함.

 

    ‘확실함.’을 쓸 때는 일부러 더 꾹꾹 눌러썼다. 교생 선생님은 하얀 이가 드러날 정도로 활짝 웃으며 아이들이 원하는 아이스크림을 꺼내갈 수 있도록 봉지를 벌려 주고 있었다.
    “아! 어쩜 저렇게 완벽할까? 인간적으로 너무한 거 아니니?”
    나와 유치원 때부터 친하게 지낸 단짝 조아라가 내 옆에 앉으며 말했다. 교생 선생님이 우리 반에 온 날 첫눈에 홀딱 반한 아라는 그날 이후 매일 학교에 치마만 입고 오고 있었다.
    “나 꼭 선생님이랑 연애할 거야. 몇 년만 지나 봐. 그땐 선생님도 날 다시 보게 될걸?”
    아라는 긴 생머리를 한쪽으로 쓸어 넘기며 의욕을 불태웠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어떻게 하면 교생 선생님이 외계인이라는 증거를 확실히 잡을 수 있을지에 대한 생각뿐이었다.
    “쏭, 너 정말 선생님이 외계인이라고 믿는 거야?”
    교생 선생님을 쏘아보고 있는 내 눈앞에 아라가 얼굴을 들이밀며 말했다.
    “응, 확실해.”
    나는 눈을 가늘게 치켜떴다. 그러자 아라가 내 얼굴을 가만히 보더니 갑자기 후, 하고 입으로 바람을 불었다.
    “악! 뭐 하는 짓이야!”
    나는 눈에 들어간 먼지를 급히 닦아냈다.
    “내가 어디서 읽었는데, 눈을 오랫동안 깜빡거리지 않으면 건강에 안 좋다고 그러더라?”
    “이씨…… 거짓말 마. 너 내가 교생 선생님 싫어해서 그런 거지?”
    나는 몸을 홱 돌려 벌게진 눈으로 아라를 쏘아보며 씩씩거렸다. 아라는 진지한 표정으로 내 어깨에 손을 얹었다.
    “쏭, 나는 송은하스러운 엉뚱함이 좋아. 근데 이번엔 정도가 좀 지나친 것 같아. 우리, 선생님 괴롭히지 말자.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잖아. 응?”
    나는 머리를 세게 맞은 기분이었다.
    ‘정도가 지나치다고? 괴롭히지 말자고? 그럼 내가 거짓말이라도 하고 있다는 거야?’
    나는 진심을 알아주지 않는 아라에게 서운한 마음이 들었다. 조금 밉기까지 했다.
    그 사이 아라는 교생 선생님에게 달려가 귀에 뭐라고 속닥거리더니 나를 가리켰다. 교생 선생님은 아이스크림 하나를 꺼내들고 가져가라는 손짓을 했다.
    ‘참 나. 뻔뻔하기도 하지.’
    물론 나도 아이스크림이 먹고 싶었다. 하지만 혹시라도 저 외계인이 아이스크림에 무슨 짓을 했을지 몰라 꾹 참을 수밖에 없었다.

 

    2.
    일주일 전이었다. 아침 당번인 나는 빠뜨린 숙제도 할 겸 평소보다 한 시간 일찍 학교에 갔다. 새벽이라 그런지 학교는 조용했다. 교문 앞 수위실도 ‘순찰 중’이란 팻말만 걸린 채 비어 있었다.
    나는 운동장 가장자리를 따라 이어진 보도를 향해 가다가 걸음을 멈추고 옆을 바라봤다. 운동장이 텅 비어 있었다. 학교 규정에 따르면 학생들은 반드시 보도로 다녀야 했지만 그 순간엔 규정을 어겨도 뭐라고 할 사람이 없었다. 나는 괜히 기분이 좋아져서 일부러 운동화를 질질 끌며 휘줄휘줄 운동장을 가로질러 갔다. 내가 지나간 자리마다 부옇게 일어난 흙먼지가 바람에 실려 춤을 추다 흩어졌다.
    나는 아무도 없는 교무실에 들러 기록부를 작성하고 5학년 2반 열쇠를 찾아왔다. 우리 반은 건물 맨 위 3층에 있었다. 나는 책가방을 달그락대며 터벅터벅 계단을 올라갔다. 그리고 마지막 계단에 올라섰을 때 3층 복도에 찍힌 물걸레 흔적을 발견했다.
    ‘누가 벌써부터 청소를 하지?’
    그렇게 생각하며 벽 모퉁이를 도는 순간, 나는 믿기지 않는 광경을 목격했다. 어둑한 복도 한가운데에 거대한 해파리 한 마리가 푸른빛을 내며 공중에 둥둥 떠 있던 것이다. 해파리의 촉수 끝에는 죽은 것처럼 보이는 수위 아저씨가 몸이 축 늘어진 채 둘둘 감겨져 있었다.
    ‘으악!’
    나는 비명이 나오려는 입을 손으로 막으며 재빨리 벽 뒤로 숨었다. 하지만 불쌍한 내 실내화 가방은 미처 숨지 못했다. 내가 손으로 입을 막을 때 모르고 바닥에 떨어뜨린 것이다.
    ‘어, 으, 어떡하지!’
    심장이 터질 듯이 쿵쾅거렸다. 해파리에게도 얼굴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내 머릿속엔 해파리가 공포영화 속 귀신처럼 스윽 고개를 돌리는 장면이 재생되고 있었다.
    나는 발소리가 나지 않게 까치발을 들고 허겁지겁 계단을 내려갔다. 그때였다.
    “송은하!”
    누군가 등 뒤에서 내 이름을 꽥 불렀다. 나는 그 자리에 돌처럼 굳어버렸다. 그러고는 살살 고개를 돌려 뒤를 쳐다봤다. 그곳엔 죽은 줄 알았던 수위 아저씨가 멀쩡한 모습으로 내 실내화 가방을 든 채 계단 앞에 서 있었다.
    “어? ……해파리…… 해파리는…… 요?”
    “뭐라고? 뭐라고 중얼거리는 거냐, 하나도 안 들린다. 얼른 와서 이거나 가져가. 5학년 2반 송은하. 네 거 맞지?”
    수위 아저씨는 내 실내화 가방을 높이 들고 유성매직으로 써진 내 이름을 또박또박 읽었다.
    나는 방금 내려온 계단을 다시 올라가며 내가 잠이 덜 깬 건지 아니면 잠시 상상을 한 건지 헷갈려 하고 있었다.
    “학교엔 왜 이렇게 일찍 왔어?”
    수위 아저씨가 실내화 가방을 돌려주며 물었다.
    “오늘 당번이라서요.”
    “그랬구나. 그래도 너무 일찍 왔네. 그래, 그럼 수고해라.”
    “네, 고맙습니다.”
    나는 꾸벅 인사를 한 뒤, 우리 반 교실로 가려고 수위 아저씨 옆을 지나쳤다. 그러자 수위 아저씨가 양팔을 펼치고 급히 앞을 막아섰다.
    “잠깐! 이, 이쪽은 안 돼. 반대편으로 돌아가거라.”
    “왜요?”
    “어 그게…… 그러니까…… 많이 걸으면 건강에 좋으니까?”
    “아니에요. 저 빨리 가서 숙제도 해야 돼요.”
    “아니, 아니, 앗! 잠깐만!”
    나는 수위 아저씨의 포위망을 뚫고 벽 모퉁이를 돌았다. 그 순간 나는 또다시 거대한 해파리와 마주하고 말았다. 해파리는 수위 아저씨 등에 촉수를 꽂고 있었다.
    “으…… 어…… 으…….”
    이때 나는 알았다. 사람이 엄청난 공포를 느끼면 살려달라는 말 대신 괴상한 신음이 흘러나온다는 것을.
    해파리는 수위 아저씨 등에 꽂고 있던 촉수를 후루룩 거둬들이더니 붕 날아올라 눈 깜빡할 사이에 반대편 복도로 사라졌다. 동시에 정신을 잃은 수위 아저씨가 봉제인형처럼 힘없이 털썩 앞으로 고꾸라졌다.
    “아저씨!”
    나는 쓰러지는 아저씨를 붙잡으며 바닥에 넘어졌다. 잠시 후 수위 아저씨는 정신을 차렸다. 그렇지만 해파리와 관련된 것은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하셨다. 그저 학교를 순찰하다 과로로 쓰러진 걸로만 알고 있었다. 나는 아저씨에게 일어난 끔찍한 일을 말할 수가 없었다. 만약 내가 사실대로 말했다고 해도 아저씨는 끝내 이해하지 못하실 것 같았다. 나중 일이지만, 며칠 뒤 수위 아저씨는 건강을 이유로 일을 그만두셨다.

 

    3.
    교생 선생님이 왔다는 소식에 반 아이들은 모두 들떠 있었다.
    “앞으로 2주 동안 우리와 같이 지낼 김해남 선생님이에요. 여러분들이 학교생활을 어떻게 하는지 알고 싶어 오셨대요. 김해남 선생님도 우리 반 선생님이니까 선생님 말씀 잘 들어야 돼요. 알았죠?”
    담임선생님의 말에 아이들이 고개를 젖히고 “네에!” 힘차게 대답했다.
    “선생님도 한 마디 하세요.”
    임신 8개월째인 담임선생님은 허리를 손으로 받치고 자리를 비켜 줬다. 교생 선생님은 큼큼 헛기침을 하며 교탁에 나와 섰다.
    “여러분 반갑습니다, 저는…….”
    “선생님! 결혼하셨어요?”
    맨 뒷자리의 아라가 손을 번쩍 들고 물었다. 결혼이라는 말에 다른 아이들도 호기심이 생겼는지 순식간에 교실이 소란스러워졌다.
    “어허! 조용! 조용!”
    하지만 담임선생님의 한 마디에 불길은 곧바로 진화되었다.
    “어…… 결혼은 아직 안 했습니다. 하하.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2주 동안 좋은 추억 많이 쌓으며 친해지고 싶네요. 음, 여러분들이 제게 별명 같은 걸 지어 줘도 좋고…….”
    “해파리! 김해남 선생님이니까 해파리!”
    반에서 제일 까부는 남자애가 교생 선생님의 말을 끊고 외쳤다. 그러자 주변 애들이 한마디씩 했다.
    “야, 해파리가 뭐야 선생님한테.”
    “맞아. 괜히 나대지 마라.”
    “선생님, 얘 욕했대요!”
    “웃기시네. 나댄다는 건 욕 아니거든?”
    교실 안이 또다시 소란스러워졌다. 이번에는 교생 선생님이 분위기를 수습하려 애를 썼다.
    “그래! 해파리! 어…… 해파리…… 하하. 좋네요. 좋아요. 아주 좋은 별명 같아요. 혹시 뭐 다른 의견 있으면 얘기해 주시고요. 어…… 어…… 아무쪼록 잘 부탁해요.”
    교생 선생님이 이마에 흐르는 땀을 손등으로 닦으며 겨우 말을 끝내자, 여기저기서 큰 박수가 터져 나왔다. 새 식구의 등장이 다들 반가운 모양이었다. 특히 조아라는 좋아 죽겠단 표정이었다. 실은 나도 조금 설레고 있었다. 잘생긴 얼굴을 맨 앞자리에서 보니 더 잘생겨 보여서 그런 것도 있었다.
    그런데 이상한 점 하나가 눈에 띄었다. 교생 선생님이 서 있는 발아래에 어떤 물기가 둥그렇게 번지고 있었던 것이다.
    “그럼 수업 시작할게요. 국어 교과서 꺼내세요.”
    담임선생님의 말에 아이들은 저마다 교과서와 필통을 꺼내 책상 위에 올려놓았다. 그러는 사이, 교생 선생님은 교실 뒤에 놓아 둔 자기 의자를 향해 걸어갔다. 그러자 선생님이 지나간 자리마다 물걸레로 닦은 듯한 흔적이 생겨났다.
    나는 휘둥그런 눈으로 교생 선생님을 쳐다봤다. 자리에 앉은 교생 선생님은 긴장해서 몸이 더웠는지 창밖을 내다보며 손으로 연신 마른 부채질을 해댔다. 그러다 해파리 촉수 하나가 소매 밖으로 불쑥 튀어나왔다.
    ‘으헉! 외, 외계인!’
    당황한 교생 선생님은 재빨리 촉수를 소매 안으로 쑤셔 넣고 누가 봤을까 주위를 둘러봤다. 나는 얼른 고개를 앞으로 돌렸다. 그러고는 옆자리 짝꿍을 조심스레 콕콕 찔렀다.
    “왜?”
    “이것 좀 봐봐.”
    나는 내 옆 바닥에 난 물 묻은 자국을 가리켰다. 짝꿍은 고개를 길게 빼들고 바닥을 내려다봤다.
    “뭘 보라는 거야?”
    “이거.”
    “뭐.”
    “이거! 여기 바닥에.”
    “바닥? 아무것도 안 보이는데?”
    “뭐? 에이, 장난치지 말고.”
    “장난 아냐.”
    “거짓말. 이게 안 보인다고?”
    “어허! 거기 두 사람. 조용히 안 해? 벌써 수업 시작했어.”
    담임선생님은 칠판에 우리 이름을 적었다. 첫 번째 경고였다. 두 번째 걸리면 벌점 스티커를 받아야 했다. 짝꿍은 원망의 눈빛으로 나를 째려보더니 등을 돌려버렸다. 나는 몸을 돌려 해파리를 째려봤다.
    ‘이게 다 저것 때문이야.’
    나와 눈이 마주친 교생 선생님은 내가 자기 정체를 모르고 있다고 생각하는지 환하게 웃어 보였다.
    그 순간, 찰나였지만 분명하게 교실 형광등이 깜빡거렸다.

 

    4.
    “사실 난 선생님이 외계인이라고 해도 상관없어.”
    그렇게 말하며 아라는 그네를 하나 잡고 앉았다. 그네가 앞뒤로 움직이자 아라의 꽃무늬 치마가 바람에 팔랑거렸다. 나는 그 옆에 서서 시계추처럼 움직이는 아라를 눈으로 좇았다. 아라가 말을 이었다.
    “외계인이면 뭐 어때? 외계인도 사랑은 할 거 아냐.”
    “바보 같은 소리 하지 마. 널 사랑해, 하고는 긴 촉수로 기절시킨 뒤 꿀꺽 삼켜버릴 수도 있다고.”
    “쏭. 너는 왜 선생님을 못 잡아먹어서 안달이야? 선생님이 외계인이든 아니든 뭐가 중요해. 지금 우리한테 피해 주는 것도 없는데.”
    “아니, 있어.”
    “뭔데?”
    “그건…….”
    말문이 턱 막혔다. 수위 아저씨 사건이 생각났지만 그걸 말할 순 없었다.
    “그건 지금 말할 수 없어. 나도 아직 조사 중이니까 나중에 정리되면 말해 줄게.”
    어찌 된 일인지 모르겠지만, 교생 선생님이 외계인이란 걸 알려줄 증거들은 나에게만 보이는 듯했다. 이를테면 교생 선생님이 긴장할 때 발밑에 물기가 생겨난다든가, 선생님이 나타날 때마다 주변의 형광등이 꼭 한두 번씩 깜빡거린다든가, 남자 손이 매끄럽다 못해 미끄럽다든가, 치아가 가짜처럼 유난히 하얗다든가, 밥을 너무 조금 먹는다든가 하는 것들 말이다.
    흠, 물론 이 중에는 별로 이상해 보이지 않는 증거들도 있다. 하지만 뭔가를 조사할 땐 사소한 것도 놓쳐선 안 된다. 결정적인 증거는 발밑에 숨어 있곤 하니까.
    “쏭! 쏭! 송은하!”
    “어, 어?”
    잠시 생각에 잠겨 멍 때리고 있던 나는 아라의 목소리에 정신을 차리고 앞을 바라봤다. 내 바로 앞에 편한 운동복 차림의 교생 선생님이 허리를 굽힌 채 개구쟁이처럼 킥킥 웃고 있었다.
    “으악!”
    나는 깜짝 놀라 뒤로 물러섰다.
    “으하하 미안. 내가 놀라게 했니?”
    “아니에요, 선생님. 원래 은하가 자주 저래요. 상상력이 풍부해서 그런가 봐요.”
    아라가 두 팔을 배배 꼬며 수줍은 듯이 말했다. 어떻게 남자 하나 때문에 저렇게 변할 수가 있는 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짜증나는 마음에 그냥 확 절교를 선언할까 싶기도 했지만 그만두기로 했다. 내가 교생 선생님의 진짜 정체를 밝혀내면 그땐 아라도 미안하다고 사과할 테니까 말이다.
    “네 생각은 어떠니 은하야? 선생님이랑 같이 숨바꼭질 하고 놀래?”
    교생 선생님은 굽혔던 몸을 바로세우며 허리에 양손을 턱 얹고 말했다.
    “글쎄요, 전 별로…….”
    아라가 내 운동화를 발로 퍽 쳤다. 거기엔 ‘이런 황금 같은 기회를 너 때문에 놓치게 되면 절대 용서하지 않을 거야’라는 의미가 담겨 있었다.
    “음…… 그냥 하면 심심하니까 진 사람들이 ‘못 찾겠다 꾀꼬리’ 두 번 얻은 사람 소원 들어주기 할까? 어때, 얘들아?”
    나는 소원 들어주기라는 말에 귀가 솔깃해졌다.
    “아무 소원이나 다 되는 거예요?”
    “그래. 안 되는 것 빼고 다 들어주기.”
    그렇다면 내가 꾀꼬리로 이겨서 ‘선생님이 외계인이라는 정체를 밝히고 지구를 떠나는 게 제 소원이에요!’라고 하면 모든 일이 한방에 해결될 터였다.
    “할래?”
    교생 선생님이 주먹을 내밀더니 엄지를 척 들어 올렸다.
    “……좋아요.”
    나는 결연한 표정으로 교생 선생님의 엄지를 꽉 붙잡았다.

 

    5.
    나, 아라, 교생 선생님 그리고 철봉에 매달려 놀던 모르는 남자애 두 명까지, 우리 다섯 명은 소원을 걸고 숨바꼭질을 시작했다. 숨바꼭질에 허용된 구역은 학교 건물 뒤편의 쓰레기 분리수거장에서 수돗가, 부레옥잠이 있는 연못, 주차장까지였다.
    첫 번째 술래는 아라였다. 가위 바위 보에서 진 아라는 입을 삐죽 내밀고 벽 쪽을 향해 돌아섰다.
    “꼭꼭 숨어라 머리카락 보일라. 꼭꼭 숨어라 머리카락 보일라.”
    우리는 후닥닥 흩어졌다. 나는 아까부터 생각해 놓은 쓰레기 분리수거장을 향해 달려갔다. 폐지를 묶어 담아 두는 커다란 수거함에 숨으면 아무도 못 찾을 것 같았다. 그런데 나와 같은 생각을 한 사람이 또 있었다. 철봉에서 만난 남자애 중 하나가 벌써 거기에 숨었던 것이다.
    “여긴 내가 먼저 찜했어. 다른 데 알아봐.”
    나도 어떻게든 같이 들어가려고 했지만 공간이 비좁아 어쩔 수 없었다. 분한 마음에 나는 수거함 뚜껑을 일부러 쿵 닫고 수돗가로 달려갔다. 수돗가엔 마땅히 숨을 만한 공간이 없었다. 수돗가와 땅바닥 사이에 내가 누울 수 있는 틈이 있지만 금방 들킬 것 같았다.
    ‘어쩌지? 어디에 숨어야 되지?’
    마음이 조급해지기 시작했다. 나는 작전을 변경해 주차장에 가기로 했다. 차 뒤에 숨어 있다가 술래가 자리를 비웠을 때 처음 있던 곳으로 달려가 “땡!” 하고 벽을 칠 생각이었다. 그럼 ‘못 찾겠다 꾀꼬리’를 얻은 사람은 아무도 없고, 나는 두 번째 기회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으흐흐 찾았다!”
    어디선가 귀신처럼 나타난 아라가 내 어깨를 덥석 붙잡았다.
    “뭐야, 벌써 100을 다 셌다고?”
    나는 이 말도 안 되는 상황에 항의하며 펄펄 뛰었다.
    “내 미모를 걸고 맹세하는데 양심적으로 다 셌어. 송은하, 너 또 생각에 빠져 있었지? 하여간 정말 못 말려.”
    계획대로 되지 않아 분한 마음이 들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두 번째 판이 시작되었다. 이번에는 내가 술래가 되어 눈을 감고 초를 세기 시작했다.
    “일…… 이…… 삼…… 사…….”
    술래가 되어 숫자를 세고 있으려니 지루하고 외로웠다. 이쯤 되면 다 숨었겠지 싶어 70부터는 남은 숫자를 속사포로 해치워버렸다.
    “나 이제 찾는다!”
    그렇게 말하고 몸을 돌린 순간, 나는 숨이 멎어버릴 것 같았다. 그날 보았던 거대한 해파리가 수십 개의 촉수를 움직이며 내 앞에 다시 나타난 것이다. 해파리는 긴 촉수로 내 몸을 감싸더니 번쩍 들어 올렸다.
    “으악, 이거 놔! 놓으라고!”
    나는 해파리의 머리를 사정없이 발로 찼다. 그러자 온몸에 찌릿한 느낌이 뻗치더니 눈앞에 어떤 영상들이 휙휙 스쳐 지나갔다. 우주선에 오르는 자기를 배웅해 주는 수많은 해파리들, 까만 우주를 수놓은 아름다운 별들, 우주선과 운석이 부딪힐 뻔했던 아찔한 상황, 지구를 처음 본 장면, 해변에 널브러진 해파리 시체를 보며 꺼이꺼이 울었던 기억, 차갑고 부드러운 아이스크림이 입에 들어올 때의 감촉, 지구 어린이들의 해맑은 웃음, 아이들과 함께 지낸다는 생각에 아침 일찍부터 들뜬 마음으로 돌아보던 학교, 자기를 보고 놀라 쓰러진 수위 아저씨를 고쳐 주려 했던 시도, 돌아갈 날이 멀지 않음을 알리는 시계, 나를 경계하고 싫어하는 한 어린이의 텔레파시, 숨바꼭질에서 이기면 아이들과 같이 타러 가려고 했던 트램펄린 같은 것들이었다.
    “……죄송해요, 선생님. 전 정말 몰랐어요.”
    눈앞에 영상이 펼쳐지는 동안 마치 나는 해파리와 하나가 된 듯 그의 감정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었다. 해파리는 나를 조심스레 땅에 내려놓고 스르륵 촉수를 풀었다. 그러고는 아까 내가 발로 찬 곳이 많이 아팠는지 촉수를 뻗어 그 부위를 뽀득뽀득 문질렀다.
    그때 화단 쪽에서 부스럭 소리가 나며 머리가 헝클어진 아라가 모습을 드러냈다.
    “에이, 아무도 없을 줄 알았는데 들켰네. 선생님도 잡힌 거예요?”
    나는 홱 고개를 돌려 해파리를 쳐다봤다. 해파리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잘생긴 김해남 선생님이 씩 웃으며 머리를 긁고 있었다.

 

    6.
    교실은 그야말로 눈물바다였다. 곳곳에서 훌쩍이는 소리가 들렸다. 우는 애들은 전부 여자애들이었다.
    “5학년 2반 학생들과 함께한 시간은 제게 정말 소중한 추억이었습니다. 여러분들이 많이 보고 싶을 거예요. 다시 만날 수 있으면 좋겠지만 만나지 못하더라도 너무 슬퍼하지는 맙시다. 넓게 보면 우린 우주라는 한 공간 안에 함께 있는 거니까요. 그동안 여러모로 고마웠습니다.”
    교생 선생님은 여러모로 고마웠다는 말을 할 때 교탁 앞에 앉은 나를 다정한 눈길로 내려다보았다.
    선생님이 떠난 뒤, 나는 학교 쓰레기 분리수거장으로 내려갔다. 내 손에는 교생 선생님이 외계인이란 증거가 적힌 파란색 수첩이 쥐어져 있었다. 나는 파란색 수첩을 바라보다 작작 찢어 수거함 속에 던져버렸다.

 

    7.
    나는 바닷가 근처에 사는 외할머니네 집에서 여름방학을 보냈다. 할머니와 함께 텃밭의 고추를 따거나 대웅전에서 낮잠을 자다 스님에게 혼나곤 했다. 밤에는 마당 평상에 누워 별과 별 사이를 손가락으로 이어 보기도 하고 할머니가 진돗개라고 우기는 똥개를 약 올리며 수박을 먹기도 했다.
    그렇지만 대부분의 시간은 바닷가로 나가 수영을 하고 놀았다. 종종 모래 위에 죽어 있는 해파리를 보면 좋은 곳으로 가길 기도해 줬다. 예전에는 해파리를 보면 징그럽단 생각밖에 안 들었는데 이제는 불쌍하단 생각이 들었다. 내 말을 들은 할머니는 뜨신 밥 먹고 쉰 소릴 한다며 해파리가 얼마나 어장에 피해를 주는지 아느냐고 역정을 내셨다. 그래도 나는 해파리에게 드는 짠한 마음을 지울 수가 없었다. 그럴 때마다 저 우주 어딘가에 있을 교생 선생님은 잘 지내고 계실지 궁금해지곤 했다.
    개학날이 되어 다시 모인 아이들은 새까맣게 타 있었다. 방학 동안 어딜 다녀왔는지, 뭘 먹었는지 서로 떠드느라 교실 안은 시장 통처럼 시끄러웠다.
    갑자기 교실 문이 드르륵 열리며 대머리 교감 선생님이 들어오셨다. 그러자 교실 형광등이 수명이 다한 듯 깜빡깜빡했다.
    ‘어라?’
    나는 본능적으로 교감 선생님이 지나온 자리를 쳐다봤다. 하지만 바닥에 물기 같은 건 보이지 않았다.
    “자, 모두 조용히 하고 자리에 앉으세요. 전할 말이 있습니다.”
    제자리로 돌아간 아이들은 궁금한 표정으로 교감 선생님을 바라봤다.
    “에, 아마 여러분도 짐작하겠지만 담임선생님께서 여름방학에 아기를 낳으셨어요. 그래서 앞으로 두 달간 김지민 선생님을 대신해 여러분을 가르쳐줄 새로운 선생님을 모셔 왔습니다. 들어오세요, 선생님. 다들 박수!”
    아직 이 상황에 어리둥절한 아이들은 미적미적 박수를 쳤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교실 문이 열리자 아이들이 “와아!” 함성을 터뜨리며 힘차게 박수를 쳤다. 나는 나도 모르게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시 만나서 반갑다 여러분! 우선 아이스크림부터 먹고 시작할까?”
    교생 선생님, 아니, 김해남 해파리 선생님이 아이스크림이 잔뜩 든 봉지를 치켜들고 서 있었다.
    그 순간, 교실 안 모든 형광등이 해파리 선생님을 반기듯 일제히 깜빡거렸다.

 

 

 

< 선정평 >

 
인기 좋은 교생 선생님이 외계인일지 모른다는 의심을 품은 채 정보를 모아가는 은하와 외계인이라도 좋다고 선생님을 흠모하는 친구들의 캐릭터가 비교적 생생히 살아 있다. 또한 짧은 글임에도 긴장감을 놓치지 않은 채 미스터리를 무난히 소화해냈다. 그러나 이 글은 이야기 자체의 재미보다는 읽고 난 뒤 마음에 남는 어떤 따뜻한 느낌 때문에 작가에 대한 신뢰를 갖게 해준다. 좋은 글은 소재에 대한 흥미를 넘어서서 작가를 느끼게 해주는 법이다.
  사실 ‘외계인 선생님과 그 점을 의심해서 추적해가는 아이’의 이야기라면 나올 수 있는 이야기가 무궁무진하리라. 장편 동화에 담으면 훨씬 좋을 이야기이니, 다시 한 번 마음먹고 긴 글로 고쳐 써보기를 권하는 바이다.
    (이경혜 / 소설가)

 

===== 작가와 6문6답 =====

 

1. 우선 선정된 소감을 간단히 밝혀주세요. ^_^

  이래도 괜찮을까 싶을 정도로 기쁩니다. 제게 응원을 보내주는 친구들과 좋은 기회를 주신 심사위원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2. 이 작품을 처음 떠올렸을 때 어디서 무얼 하고 계셨나요?

  첫 아이디어가 떠올랐을 때는 기억이 나네요. 제가 어딜 가면 그곳 형광등이 깜빡거리던 때가 있었어요. 비유가 아니라 정말로요. 그런데 이 우연이 비현실적일 정도로 계속되다 보니까 어느 순간 제 머리(?)를 의심하게 되더라고요. 그때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이 상황을 갖고 뭔가 쓰게 되겠구나.’ 그게 동화가 될 줄은 몰랐지만.

 

3. 글을 쓸 때 특별히 듣는 음악이 있다든가, 자기만의 습관이 있다면요?

  글을 쓸 땐 아무 것도 듣지 않습니다. 정신이 산만해서 그런지 소음이 있으면 글을 쓰기가 어렵더라고요. 음… 물론 소음이 없어도 글쓰기는 어렵습니다만.

 

4. 작품을 발표하기 전(혹은 퇴고를 하신 후)에 가장 먼저 보여주는 사람이 있나요?

  없습니다. 아, 동화는 아니지만 최근부터 쓰기 시작한 청소년 소설들은 <폭포동 조기축구회> 멤버들에게 제일 먼저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름과 달리 정체는 소설 모임인데, 개인적으로 많은 공부가 되고 있어요.

 

5. 평생 또는 두고두고 써야겠다고 마음먹은 주제가 있다면 소개해 주세요.

  재밌는 거. 무조건 재밌는 이야기를 쓰고 싶습니다. 그게 어떤 색깔을 가진 재미이든지간에.

 

6. 지금 막 쓰고 있는 (또는 품고 있는) 작품의 예고편을 들려주실 수 있나요?

  무전여행을 계획한 그. 여행 도중 뜻이 맞는 사내를 만나 목적지까지 동행하기로 한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사내의 수상한 점이 하나씩 드러나기 시작하는데…….

 

 

 

   《문장웹진 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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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꾸는펜

캐릭터의 행동이 생동감 있게 묘사되어 있어서 좋았어요. 정말, 장편으로 쓰여지면 더 좋을 것 같아요.^_^ 파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