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_차세대2차_소설] 스크류바

 

[2014년 2차 차세대예술인력육성 문학분야 선정작 ]

 

 

스크류바

 

 


박사랑

 

 

 

삽화_스크류바

 

    아이가 없어졌다. 버스에서는 안내 방송이 나오고 있었다. 나는 빈 의자를 멍하니 쳐다봤다. 나윤아, 하고 크게 불러보았지만 어디에서도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다. 눈앞이 흐릿했다. 손을 내밀어 빈 의자를 더듬었다. 버스에 있는 모든 자리를 기웃거리며 아이를 불렀다. 나윤아! 우리 나윤이 못 보셨어요? 다섯 살짜리 여자 애인데요, 키는 이만 하고 하얀 원피스를 입었는데. 내가 정신없이 쏟아내는 말에 사람들은 모두 고개만 가로저었다. 버스 앞으로 달려 나가 기사를 붙잡고 물었다. 기사는 아까 혼자 내리는 애를 본 것 같기도 한데, 하며 말을 흐렸다. 어디쯤에서요? 다그치듯 물어도 대답은 바로 오지 않았다. 기사의 입이 떨어지는 몇 초가 고장 난 비디오를 재생하듯 길게만 느껴졌다.
    결국 기억나지 않는다는 기사에게 휴대폰 번호를 메모해주고 버스에서 내렸다. 콘텍트렌즈가 들떴는지 앞이 희뿌옇게 보였다. 나는 숨을 잘게 쪼개어 내쉬며 눈을 감았다. 친정에 다녀오는 길이었다. 그곳에서 광역 버스를 타고 고속도로를 달리는 동안 잠이 들었었다. 아이는 계속 칭얼댔지만 이상하게 눈이 떠지지 않았다. 아이의 손을 꼭 잡자 아이는 귀찮은 듯 손을 잡아 뺐다. 엄마 십 분만 잘 테니까 조용히 있어. 그 말을 끝으로 나는 아이 반대편으로 고개를 돌렸다. 얼마쯤 지나 아이는 다시 칭얼대며 내 팔을 잡아당겼다. 언제 내려, 엄마, 응? 제대로 대답을 안 해주면 몇 번이고 물어볼 것이었다. 게다가 많이 남았다고 하면 지금보다 더 칭얼댈 것이 분명했다. 나는 눈을 감은 채 두 정거장만 가면 돼, 하고 적당히 대답했다.
    눈을 떴다. 주위를 둘러봤지만 여기가 어딘지 알 수 없었다. 표지판에 있는 글씨도 희뿌옇게 보이기만 했다. 눈이 뻑뻑하게 말라 있었다. 문질러 보았지만 여전히 렌즈는 겉돌았다. 지나가는 사람을 붙잡고 여기가 어디쯤인지 물었다. 까만 비닐봉지를 든 할머니는 **병원 근처라고 답했다. 나는 다시 멍해졌다. 그러다 문득 아이에게 걸어준 목걸이가 생각났다. 남편과 나의 휴대폰 번호가 적힌 은목걸이.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냈지만 부재중 통화는 없었다. 나윤아, 나는 허공에 대고 아이의 이름을 불렀다. 어디선가 들려오는 매미 소리만이 길게 이어졌다.
    남편에게 연락해야 하나, 아니면 실종 신고를 먼저 해야 하나. 남편 생각을 하자 숨이 막혀왔다. 남편이 입버릇처럼 달고 사는, 애나 잘 보지, 뭐 했어? 하는 환청이 들려왔다. 주먹을 꽉 쥐었다. 그때 휴대폰이 진동했다. 화면에는 처음 보는 번호가 떠 있었다. 나는 다급히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목소리가 떨렸다. 안녕하세요, 무담보 무서류 대출 아이러브론입니다! 하이톤의 기계음이었다. 후들거리던 무릎이 힘을 잃고 꺾였다. 나는 주저앉아 기계음이 이어지는 휴대폰만 붙잡고 있었다.
    가까스로 정신을 차리고 112를 눌렀다. 수화기 저편에서 무슨 일이십니까, 하고 묻는데 왠지 입이 열리지 않았다. 다시 한 번 무슨 일이냐고 경찰이 물었다. 아이를 잃어버렸어요, 하고 말하자 숨이 가빠왔다. 경찰은 실종아동 신고센터로 넘겨 드리겠습니다, 하고 말했다. 나는 아무 소리도 나지 않는 전화를 꼭 쥐고 숨을 가다듬었다. 곧 실종아동센터입니다, 하는 말이 들려왔고 손에는 축축하게 땀이 고였다. 경찰은 아이의 이름을 물었지만 바로 대답할 수가 없었다. 아이의 이름도 얼굴도 한 순간 하얗게 지워지는 듯했다. 태양은 머리 위에서 나를 녹여버릴 듯 빛을 쏘고 있었고 매미 소리는 길고 시끄럽게 이어졌다.
    실종 신고는 허무할 정도로 금세 끝났다. 직원은 아이의 인상착의와 잃어버린 장소, 장애 여부 등을 확인한 뒤 곧 찾을 수 있을 거라는 말을 끝으로 전화를 끊었다. 까맣게 변한 화면을 쳐다보다 남편에게 전화를 걸었다. 몇 번 신호음이 가다 갑자기 뚝 끊겼다. 다시 전화를 걸자 전원이 꺼졌다는 안내음이 나왔다. 문자를 보내려 했지만 손이 떨려서 계속 버튼을 잘못 눌렀다. 포기하고 취소 버튼을 눌렀다. 아이를 찾을 수만 있다면 연락을 하지 않는 편이 훨씬 나았다. 이마에 맺혀 있던 땀이 눈으로 흘러내렸다. 따가운 눈을 비비며 깜박거렸다. 그런데도 눈물은 전혀 나오지 않았다.
    나는 버스가 달려온 길대로 걷기 시작했다. 내가 잠든 시간은 기껏해야 이십 분 정도였고, 그 사이에 아이가 버스에서 내린 게 분명했다. 엄마를 잃어버렸을 때에는 아무 데도 가지 말고 한 자리에 있으라고 수백 번 가르쳤다. 아이가 그걸 잊지 않고 버스 정류장에 서 있길 바라는 수밖에 없었다. 땀을 닦던 손수건이 축축했다. 새 손수건이 가방에 있을 텐데, 하며 손을 들어 올리다 멈칫했다. 가방은 없었다. 버스에서 정신없이 내리느라 챙기지 못했다. 멍하니 서서 다시 휴대폰을 보았다. 수신 내역은 하나도 없었다. 아이도, 가방도 없이 휴대폰만 들고 있는 내가 한심해 견딜 수 없었다.
    저 편으로 버스 정류장이 보였다. 나윤아, 하고 크게 외쳤다. 버스 정류장에 도착해 벤치에 드러눕듯 앉았다. 온몸의 기운이 땀으로 다 빠져 나가는 것 같았다. 무릎을 두드리는데 휴대폰 진동이 느껴졌다. 재빨리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 “바●카●라 사장님 1000만 원 쏴드려요~” 휴대폰을 바닥에 내던졌다. 둔탁한 소리를 내며 휴대폰이 바닥을 굴렀다. 나는 떨리는 손으로 다시 휴대폰을 주워들었다. 이렇게 앉아 있을 시간이 없었다. 서둘러 일어나 다음 정류장을 향해 걸었다.
    땀은 쉴 새 없이 흘렀다. 살면서 이렇게까지 땀을 흘린 건 처음이었다. 이제 손수건은 짜면 물이 떨어질 정도로 젖어 있었다. 목이 말랐다. 하지만 주머니에는 천 원짜리 한 장도 없었다. 편의점이 보였지만 그대로 지나쳐야 했다. 걸음은 점점 느려져 갔다. 아이를 부르는 목소리도 작아졌다. 억지로 발걸음을 옮기며 습관적으로 아이 이름을 불렀다. 그때 건너편에 스타벅스가 보였다. 바로 두리번거리며 횡단보도를 찾았다. 사거리 끝에 있는 횡단보도로 걷는데 신호가 바뀌었다. 나는 뛰기 시작했다. 방금 전까지 삐걱대던 무릎이 아무렇지도 않게 움직였다.
    스타벅스에 들어서자마자 얼음물을 허겁지겁 마셨다. 목구멍을 꽉 막고 있던 열 덩어리가 밑으로 내려가는 느낌이 들었다. 나는 그 자리에 서서 얼음물만 몇 잔을 마셨다. 한 숨 돌리자 다시 무릎이 쑤셔대기 시작했다. 자연스레 옆에 있던 의자에 앉았다. 에어컨디셔너의 바람이 머리 위로 불어왔다. 눈을 감았다. 등줄기를 따라 흐르던 땀이 멎었다. 이마에 맺혀 있던 땀도 말랐다. 이대로 자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 생각과 동시에 내가 미쳤나보다, 하는 생각이 스쳤다. 아이를 잃어버린 엄마가 스타벅스에 앉아 자고 싶다는 생각이나 하다니 미친 게 분명했다. 나는 얼른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무릎은 여전히 쑤셨지만 그런 걸 신경 쓸 때가 아니었다. 어디선가 아이 울음이 들려오는 것만 같아 귀가 아팠다. 실제로 들리는 건 매미 소리뿐이었는데도.

 

    결혼한 지 육 년이 지나도록 아이가 생기지 않았다. 피임을 하고 있었기에 당연한 결과였다. 아무 것도 모르는 남편은 혹시 불임일지도 모른다며 걱정을 했다. 산부인과에 함께 가 진단을 받았지만 별다른 문제점은 찾을 수 없었다. 남편은 병원을 나서며 목덜미로 흐르는 땀을 닦았다. 나는 남편의 뒤를 따라 걸으며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그때 내 눈에 화승장이라는 세 글자가 새겨진 아크릴 간판이 보였다. 나도 모르게 걸음을 멈췄다. 앞서 가던 남편이 뒤를 돌아봤다. 여기……, 하며 말끝을 늘이자 남편이 고개를 돌려 낡은 모텔을 쳐다봤다. 여기 들어가자고? 남편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었다. 나는 고개를 숙여 발등을 보았다. 남편에게 그런 식으로 무언가 제안한 건 처음이었다.
    남편은 고개를 갸웃거리면서도 일단 안으로 들어갔다. 접수대에 앉아 있던 건 열 다섯 살 쯤으로 보이는 여학생이었다. 학생은 스크류바를 빨던 빨간 입술로 쉬는 거면 삼만, 자는 거면 오만이에요, 하고 말했다. 남편은 말없이 삼만 원을 내밀었다. 학생은 빨간 혀로 입술을 핥으며 301호 열쇠를 건넸다. 남편이 열쇠를 받아드는 순간 녹은 스크류바가 물이 되어 뚝 떨어졌다. 학생의 하얀 교복 셔츠에 분홍빛 동그라미 하나가 선명히 박혔다. 하얀 셔츠에 퍼져나가는 분홍빛 동그라미. 학생은 그런 건 아무 상관도 없다는 듯 계속 스크류바를 빨았다. 분홍빛 동그라미가 또 하나, 톡.
    301호에는 침대 없이 두꺼운 요 하나만 깔려 있었다. 남편은 괜찮겠느냐 묻지도 않고 셔츠를 벗었다. 나는 원피스를 걷어 올리고 팬티만 벗었다. 남편은 나를 스윽 봤지만 별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 내가 치마를 뒤집어 가슴 위로 올리고 눕자 남편은 내 위로 올라왔다. 그렇게 남편이 몇 번의 사정을 하는 동안 나는 습관적으로 신음을 냈다. 사실 남편과의 섹스는 거북하기만 할 뿐 아무 느낌이 없었다. 치마 끝을 쥐고 천장을 봤다. 흰 천장 위로 조금 전에 봤던 스크류바의 분홍빛 동그라미가 떠올랐다. 톡, 톡 퍼져가던. 그 순간 온 몸의 감각이 곤두서며 한 곳으로 모이는 느낌이 들었다. 차갑고 단 스크류바가 내 속을 휘젓고 있는 것만 같았다. 나는 스크류바를 빠는 상상을 하며 남편의 정자를 받아들였다.
    그날의 일이 수정으로 이어진 것은 놀라운 일이었다. 그날도 피임약은 먹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아이가 들어섰다. 임신 내내 남편은 습관적으로 아이가 아들이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나는 아이가 딸이라는 것을 온 몸으로 느끼고 있었다. 그냥 뱃속에 있는 생명에게서 딸이라는 신호가 왔다. 그러나 아들을 바라는 남편에게 굳이 그런 말을 할 필요는 없었다. 나는 조금씩 부풀어 오르는 배를 문지르며 스크류바를 먹었다. 뒤늦은 입덧으로 물조차 제대로 넘기지 못하는 내가 유일하게 먹을 수 있는 음식이었다. 스크류바를 이리저리 돌려서 빨면 입 속에는 딸기향이 가득 차올랐다. 그럴 때면 나는 뱃속에 아이가 있는 것도 잊을 만큼 편안해졌다.
    그렇게 열 달이 지나고 아이는 예정일보다 하루 늦게 태어났다. 그때 나는 열일곱 시간의 진통을 겪고 거의 탈진한 상태였다. 울음을 터뜨리는 갓난아이를 간호사가 내 앞에 내밀었을 때 나는 그저 힘들다는 생각뿐이었다. 내 몸에서 아이가 빠져나간 것이 다행스럽게 여겨졌다. 산후조리를 하는 열흘 동안은 아버지가 함께 있었다. 아버지는 없는 엄마를 대신해 내 곁을 지켰다. 뿌듯한 얼굴로 아이를 안기도 했다. 아버지가 안아줄 때는 얌전하던 아이는 내가 안기만 하면 울었다. 네가 불편하게 안아서 그래, 곧 익숙해질 거야. 아버지는 아이를 어르며 내게 말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그뿐이었다.
    어렵게 낳은 아이인데도 불구하고 별로 예쁘지 않았다. 아들이기를 바랐던 남편도 아이가 가끔씩 보여주는 미소에 내 딸이 최고라며 끌어안는데 나는 그럴 수가 없었다. 아이를 안고 있으면 그 높은 체온에 정신이 아찔해지는 듯했다. 때로는 숨이 막혔다. 가슴을 파고드는 아이의 머리를 밀어내고 싶기도 했다. 젖을 물리고 있을 때면 답답함은 더 심해졌다. 가끔 아이가 젖꼭지를 깨물면 아이의 고개를 밀어내고 손으로 가슴을 감쌌다. 아이가 울며 다시 젖을 찾아 파고들어도 감싼 손을 치우지 않았다. 내 가슴을 물어뜯는 아이에게 더 이상 가슴을 내어주고 싶지 않았다.

 

    길을 건너 다시 걷기 시작했다. 몇 걸음 걷지 않았는데 땀은 금방 흘러내렸다. 이 더위에 어딘가에서 헤매고 있을 아이를 생각하면 마음이 급했다. 숨을 헐떡거리며 걸었다. 나윤아, 하고 불러보았지만 큰 소리가 되지 못하고 입가에서 사라졌다. 저 편으로 버스 정류장에 보였다. 이번에는 분명히 아이가 있을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그러나 그곳에도 아이는 없었다. 나는 다시 실종아동센터에 전화를 걸었다. 아까 전에 아이 실종 신고한 사람인데요, 아직 아무 연락도 없나요? 떨리는 내 목소리 뒤로 침착하게 경찰이 대답했다. 실종 아동이 발견되면 바로 연락드리겠습니다. 지금은 들어온 정보가 없으니 조금 더 기다려주세요. 무슨 말을 더 할 틈도 없이 전화가 끊겼다.
    나는 벤치에 멍하니 주저앉았다. 물을 마시고 싶었다. 아니, 그것보다 더 시원하고 달콤한 것. 아니 아니, 스크류바. 갑자기 스크류바가 먹고 싶어 견딜 수가 없었다. 입덧을 할 때처럼 스크류바가 너무나도 먹고 싶었다. 나도 모르게 눈에 보이는 편의점으로 달려갔다. 아이스크림 냉장고를 열어 마구 뒤졌다. 스크류바는 없었다. 빈손으로 편의점을 나왔다. 만약 있다고 해도 살 돈이 없었으니까 결과는 마찬가지일 터였다. 아이를 잃어버린 엄마가 편의점에서 스크류바를 찾는 게 말이 될까. 그런데 지금 이 순간에는 아이보다 스크류바가 더 나에게 필요했다. 누구에게도 이해받지 못할 테지만. 사실 나 자신조차 이런 나를 이해할 수 없었다.
    괜히 애꿎은 휴대폰만 만지작거렸다. 그때 전화가 왔다. 발신번호 표시제한, 이라는 글자가 화면 위로 떠올랐다. 통화 버튼을 누르는 손이 떨렸다. 여보세요? 다급히 받았지만 저 편에서는 말이 없었다. 다시 한 번 여보세요? 하고 말했지만 여전히 아무런 대답도 들리지 않았다. 대신 옅은 숨소리가 느껴졌다. 며칠 전부터 걸려오던 전화였다. 장난 전화로 여겨 그냥 끊으려다 갑자기 온 몸의 털이 곤두서는 느낌에 손을 멈췄다. 혹시 아이가 누군가에게 유괴된 건 아닌지. 지금까지 한 번도 해보지 않은 가정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아이 이름을 불러보고 싶었지만 아무 소리도 낼 수 없었다. 여보세요, 조차 입에서 나오지 않았다. 그렇게 한동안 휴대폰을 쥔 채 숨도 크게 내쉬지 못했다. 상대방도 말없이 전화기를 들고만 있었다. 그 침묵의 시간이 나를 한없이 짓눌렀다.
    내가 가까스로 소리를 내려했을 때 전화는 툭, 끊겨버렸다. 수신 내역이 휴대폰에 떴다. 통화 시간 2분 49초. 나는 그대로 주저앉았다. 손에는 땀이 흥건했다. 어지러워 앞이 잘 보이지 않았다. 급하게 남편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여전히 전원이 꺼져 있다는 기계음만 나올 뿐이었다. 다시 실종아동센터에 전화를 걸었다. 아무래도 저희 아이가 유괴된 것 같아요! 협박 전화가 왔습니까? 네, 왔어요. 아니, 아닌가. 아무튼 발신 번호가 없는 전화가 왔어요. 며칠 전부터 계속 왔다고요! 돈을 요구했습니까? 아니오. 무슨 말을 했습니까? 아무 말도 안 했어요. 아무 말도 안 했다고요? 네, 아무 말도 안 했어요. 삼 분 동안 계속 아무 말도 안 했어요. 조금 전의 공포가 다시 밀려들어 부들거리는 손으로 휴대폰을 쥐었다. 하지만 경찰은 다시 차분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단순한 장난 전화일 확률이 높습니다. 아직 아이가 실종된 지 한 시간밖에 안 됐어요. 유괴 사건일 가능성은 매우 낮으니까 침착하세요.
    너 같으면 침착할 수 있겠냐, 하는 말을 겨우 삼켰다. 그리고 대답 없이 전화를 끊었다. 주저앉은 채 나윤아, 하고 크게 불렀다. 지나가던 사람들이 힐끔거렸지만 소리 높여 몇 번이고 아이를 불렀다. 지나가던 할머니가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나는 할머니의 손을 부여잡고 아이를 잃어버렸다고 우리 나윤이 좀 찾아 달라고 두서없이 말을 늘어놓았다. 할머니는 내 등을 쓸어주며 무슨 말을 했다. 하지만 그 말이 잘 들리지 않았다. 그저 조금 전 전화를 통해 들었던 침묵만이 계속 귀에 머물러 있었다. 귀를 막고 고개를 흔들어 보았지만 소용없었다. 할머니는 떠나지 않고 줄곧 내 등을 쓸어주었다.
    “혹시 아이 잃어버리셨어요?”
    등 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나는 벌떡 일어났다. 에메랄드 색 치마를 입은 이십대 여자가 바로 앞에 서 있었다. 아까 저쪽에서 여자애 하나가 있던데. 무슨 옷 입었어요? 흰색 원피스 맞아요? 원피스인지는 기억이 안 나는데, 아무튼 흰색 옷을 입었던 거 같긴 해요. 어디서, 어디서 봤는데요? 여자는 돌아서서 손가락으로 어딘가를 가리켰다. 저쪽, 버스 정류장쯤에서요. 고맙다는 말을 대충 던져놓고 나는 여자가 가리킨 방향으로 뛰기 시작했다. 버스 정류장 쪽이라면 나윤이가 맞을지도 몰랐다. 흐르는 땀을 손등으로 닦아가며 계속 뛰었다. 정수리 부근이 점점 더 뜨거워지고 있었다. 귓가에는 옅은 숨소리와 매미 소리가 번갈아가며 맴돌았다.
    버스 정류장에 도착했다. 아이는 보이지 않았다. 숨이 차올랐다. 헐떡이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누구든 붙잡고 묻고 싶어도 주위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때 횡단보도 건너편에 아이 하나가 보였다. 흰옷을 입은 아이! 좀 더 정확하게 보고 싶었지만 렌즈가 들떠서 초점이 맞지 않았다. 눈을 비비자 오히려 초점이 더 흐려질 뿐이었다. 인공 눈물이 필요했다. 그러나 지금 내게 그런 것이 있을 리 없었다. 길만 건너면 돼, 건너서 확인하면 되는 거야. 나는 신호등과 흰 옷의 아이를 번갈아가며 쳐다봤다. 손수건을 꼭 쥐자 물방울이 뚝 떨어졌다.
    신호가 바뀌자마자 달려갔다. 흰옷을 입은 아이를 불렀다. 아이는 돌아보지 않았다. 나윤아, 나윤아! 하며 아이의 어깨를 잡았다. 누구세요? 아이는 나윤이 아니었다. 앞 건물에서 나온 흰옷 아이의 엄마가 아이를 끌어당기며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대답을 할 수가 없었다. 이제 정말 말을 꺼낼 힘도 남아 있지 않았다. 통증이 날카롭게 무릎을 찔렀다. 무릎이 꺾였고 무너지듯 주저앉았다. 아이는 어디에 있는 건지 내가 다시 아이를 만날 수 있을지. 울고 싶었지만 눈은 여전히 뻑뻑하기만 했다.
    휴대폰 진동이 느껴졌다. 서둘러 확인 버튼을 눌렀다. 아이의 소식을 기대했던 나는 다시 고개를 떨어뜨렸다. 문자는 한 문장, 잘 지내니. 발신 번호는 모르는 번호였다. 요즘은 스팸문자가 이런 식으로도 오는구나, 넋을 놓고 멍하니 휴대폰 화면을 쳐다봤다. 그때 다시 한 번 진동이 왔고 새 문자 그림이 떴다. 발신 번호는 방금 전과 같았다. 확인 버튼을 누르자 다시 한 문장, 엄마야. 나는 정지 화면처럼 굳어진 채 화면에 뜬 문장을 읽고 또 읽었다. 엄마야, 엄마야.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봐도 엄마, 아니 그녀의 얼굴이 기억나지 않았다.

 

    그녀는 동화책에 나올 것만 같은 사람이었다. 내가 학교에 다녀오면 늘 같은 얼굴로 나를 맞아주었다. 그녀의 얼굴은 늘 온화해보였다. 적어도 그때의 나는 그렇게 느꼈다. 그녀는 단정했으며 말이 많지 않았고 작은 소리로 웃었다. 화를 내거나 소리를 높이는 적도 없었다. 주말에도 늦잠을 자지 않았고 하루도 빠짐없이 새 밥에 새 반찬을 식탁에 올렸다. 지금 생각해보면 오히려 그것이 이상한데, 아버지와 나는 당연하게만 여겼다. 평화로운 홈드라마를 찍는 집처럼 우리 집은 조용했고 간간히 웃음소리가 새어나왔다. 그런 평화에 균열이 시작된 것을 눈치 챈 이는 아무도 없었다. 어쩌면 그녀는 조금 변했을지도 몰랐다. 자신의 변화를 나와 아버지에게 알리려 했을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 몸짓은 누구에게도 닿지 않았다. 나에게는 그저 단 하루의 기억으로 남아 있을 뿐이었다.
    그날은 단축 수업이 있어서 평소보다 학교가 일찍 끝났다. 나는 언제나처럼 집으로 달려가 벨을 눌렀다. 아무런 대답이 없는 인터폰을 물끄러미 쳐다보다 열쇠로 문을 열었다. 집은 어두웠다. 우리 집이 그렇게 어두운 건 처음이었다. 낮에는 항상 창으로 빛이 가득 들어왔고 밤에도 어둠을 싫어하는 나 때문에 간접 조명이 켜져 있었다. 그런데 그날은 달랐다. 모든 커튼이 빛을 막고 있었고 사방은 고요했다. 어둠이 내 팔에 끈적하게 달라붙는 것 같았다. 나는 팔을 문질렀다. 아직 식지 않은 땀이 손바닥에 묻어났다. 엄마, 하고 불렀지만 목소리는 크게 나지 않았다.
    그때 어디선가 흐느끼는 듯한 소리가 들렸다. 어깨가 움츠러들었다. 따라서 발도 멈췄다. 소리는 잠시 끊겼다가 좀 더 날카롭고 높은 비명으로 바뀌었다. 그러고는 작은 숨소리로 이어졌고 숨소리는 거칠어지며 곧 신음이 되었다. 마치 짐승이 내는 소리 같았다. 잠시 뒤 소리가 잦아들자 용기를 내어 한 발자국을 떼었다. 안방의 문은 조금 열려 있었다. 나는 그 틈으로 캄캄한 방 안을 들여다보았다. 바닥에는 알 수 없는 여자가 몸을 둥글게 말고 앉아 있었다. 그리고 옆에는 벗어놓은 옷이 아무렇게나 구겨져 있었다. 여자는 조금 전과 같은 신음을 냈다. 고개를 숙이고 몸을 웅크리던 여자는 탄성을 지르며 고개를 뒤로 꺾었다. 나는 숨 쉬는 것도 잊은 채 여자의 얼굴을 쳐다봤다. 그 환희에 찬 여자는 엄마였지만 엄마가 아니었다.
    그것이 자위행위였다는 것은 중학교에 들어가서야 알았다. 그날 그녀는 그대로 집을 나가버렸다. 내가 방에서 귀를 막고 있는 사이, 내 방문은 열어보지도 않은 채. 내가 있는 걸 몰랐을까. 아니, 아마 알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때 그녀에게는 이미 나의 존재 따위는 아무 상관이 없었겠지. 아버지는 갑자기 사라져버린 엄마를 미친 듯이 찾아다녔고 나를 다그쳤다. 나는 대답할 수 있는 말이 하나도 없었다. 그녀의 열띤 숨소리나 찡그리는 얼굴을 어떻게 이야기해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그렇게 그녀가 집을 나가고 난 뒤, 아버지는 내게 집착하기 시작했다. 아버지는 곧잘 ‘네 엄마는 바람이 들어 집을 나갔다.’고 이야기했다. 바람이 든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모호했다. 그러나 굳이 물어본 적은 없었다. 아버지는 내가 정숙한 여자가 되기를 바랐다. 바람 들 틈이 없기를 바랐다. 나는 어느 틈으로 내게도 바람이 들까, 생각했다. 바람이 들면 모두가 그녀처럼 갑자기 떠나버리는 걸까, 하는 생각도 해보았다. 우스울 정도로 진지하게 바람이 든다는 의미에 대해 생각했다. 그러면서 스스로 바람이 들 틈을 막고 있었다. 막연히 두려웠기 때문이었다. 무엇이 두려운 건지는 생각하고 싶지도 않았다.
    대학을 졸업하고 처음 다닌 직장에서 지금의 남편을 만났다. 그는 친절했고 다정했지만 고집스러운 사람이었다. 어쩌면 아버지와 비슷한 사람인지도 몰랐다. 연애 경험이 없던 나로서는 그가 내게 다가오는 것 자체가 신기하고도 무서웠다. 그와 반년쯤 사귀었을 때, 여행을 떠났다. 아버지한테는 회사 워크숍이라고 말해두었다. 그와의 섹스는 자연스럽게 이루어졌다. 나는 그의 몸을 받아들이며 터져 나오는 소리를 억지로 삼켰다. 울지도 않았고 신음하지도 않았다. 좋은지 나쁜지도 알 수 없었다. 조금 답답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에도 그저 받아들일 뿐이었다.
    그날의 섹스는 바로 임신으로 이어졌다. 임신 테스트기에는 빨갛고도 선명하게 두 줄이 그어져 있었다. 그와 사귀고는 있었지만 결혼 이야기는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다. 게다가 혼전임신을 했다는 사실만으로도 나는 고개를 들 수 없었다. 아버지도 그도 다 소용 없었다. 결국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고 수술대에 올랐다. 마취를 하기 전, 뱃속의 아이를 갈기갈기 찢어 빨아들인다는 다큐멘터리의 한 장면이 떠올랐다. 사라져버린 그녀와 내 모든 구멍을 막으려는 아버지, 내 안을 파고들었던 그, 그리고 내 안에 머물다 찢기게 될 아이. 그 모든 것이 몰려들어 구역질이 났다. 수술대 옆에 신물을 토해낸 뒤 마취제를 맞았다. 곧 잠들었고 모든 게 끝이었다.

 

    그날의 기억이 떠올라 다시금 구토가 날 것만 같았다. 나는 두 손으로 입을 막고 속이 가라앉기를 기다렸다. 버스에서 잃어버린 아이와 뱃속에서 잃어버린 아이가 한꺼번에 나타나 나를 덮쳐왔다. 또한 아버지와 남편, 그리고 실루엣뿐인 그녀가 차례로 떠올랐다. 그들은 일그러진 채 내 앞에 나타나 내 주위를 빙빙 돌고 있었다. 어디선가 매미 소리가 들려왔다. 시끄러워서 참을 수가 없었다. 크게 소리를 질러버리고 싶었지만 목소리를 낼 수가 없었다. 나를 둘러싸고 있는 모든 것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이 시끄럽고 소란한 도시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전화가 왔다. 전화의 진동과 함께 나를 둘러싸고 있던 것들이 흔들리다 사라졌다. 전화는 경찰에게서 온 것이었다. 지금 ##지구대에서 실종 아동을 보호하고 있습니다. 5~6세 가량 되어 보이는 여자 아이입니다. 찾으시는 아이가 맞는지 와서 확인해 주시기 바랍니다. 전화를 끊자마자 무작정 뛰기 시작했다. 뛰는 것 말고는 달리 방법도 없었다. 순찰차를 부탁했어야 하는 걸까, 하고 생각했지만 이미 지난 일이었다. 서둘러 가면 이십 분 안에 도착할 수 있었다. 걸으면서 자꾸만 따라붙는 옛 생각을 뿌리쳤다. 아이만 찾으면 이런 생각 따위는 할 필요도 없었다.
    늦은 오후가 됐는데도 햇살은 여전히 뜨거웠다. 땀은 멈출 줄을 몰랐다. 어느새 속옷까지 다 축축하게 젖어 버렸다. 자꾸만 들러붙는 속옷 때문에 걸음이 느려졌다. 목이 말랐다. 이제 정말 한계였다. 주변을 둘러봤지만 그 흔한 카페 하나 보이지 않았다. 대신 눈에 들어오는 건 편의점이었다. 나는 편의점으로 다가갔다. 아이스크림 냉장고를 열고 그 안에 얼굴을 넣었다. 냉기가 순간적으로 땀을 말려 주었다. 나는 가쁜 숨을 내쉬며 눈을 떴다. 눈앞에 스크류바가 보였다. 생각보다 앞서 나간 손이 이미 스크류바를 쥐고 있었다. 하지만 다시 놓을 수밖에 없었다. 몇 번이나 스크류바를 쥐었다 놓았다 했다. 매장 안에 있는 점원이 미간을 찌푸리며 나를 내다보았다.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점원이 걸어와 출입문을 열었을 때 나는 냉장고 문을 닫고 돌아섰다.
    그 뒤로 걷는 동안 내내 스크류바 생각뿐이었다. 아이 생각보다 스크류바 생각을 더 하고 있는 내가 우스웠다. 극단적인 상황에 이르면 오히려 어이없는 생각을 하곤 한다는데 그런 건가, 싶기도 했다. 오늘은 내 인생에 있어 가장 말도 안 되는 하루였다. 아이를 잃어버리고 그 때문에 가방까지 잃어버리고 오래 전 사라졌던 엄마에게서 연락이 왔다. 믿을 수 없을 만큼 많은 땀을 흘렸고 이 더위에 몇 시간을 쉬지도 못하고 걷기만 했다. 나는 극도의 피곤 속에서 가까스로 걸었다. 여전히 눈은 뻑뻑하고 흐릿했다. 아이를 찾으면 눈물이 날 거야, 막연히 그런 생각을 했다.
    파출소에 들어서자 시원한 에어컨디셔너 바람이 머리 위로 쏟아졌다. 나는 그 자리에 가만히 서서 그대로 바람을 맞았다. 앞에 있던 경찰 하나가 무슨 일이시죠, 하고 물었다. 실종 아동을 보호하고 있다는 말을 들었는데, 하며 주위를 둘러봤다. 어디에서도 아이는 보이지 않았다. 경찰은 따라 오라며 나를 데리고 방으로 들어갔다. 숙직실처럼 보이는 방 안에는 하얀 원피스를 입은 여자 아이가 잠들어 있었다. 나는 나윤아, 하고 부르며 아이의 흐트러진 머리를 넘겼다. 그러나 아이는 나윤이 아니었다. 이제 막 잠에서 깬 여자 아이는 눈을 비비다 울음을 터뜨렸다. 경찰이 무언가 물었지만 들리지 않았다. 아이의 울음소리만이 들려올 뿐이었다. 귀를 막았다.
    여자 아이는 곧 다시 잠들었다. 나는 잠든 여자 아이를 가만히 쳐다보았다. 하얀 원피스를 입긴 했지만 나윤이가 입은 것과는 아예 디자인 자체가 달랐다. 키도 나윤이보다 조금 더 큰 것 같고 머리도 더 길었다. 여자 아이의 작은 발이 더러워져 있었다. 엄마를 잃어버린 채 어디를 헤매고 다녔을까. 휴지로 여자 아이의 발바닥을 닦아주었다. 여자 아이는 피곤한지 몇 번 뒤척이기만 할 뿐 깨지는 않았다. 그때 문이 열리고 누군가 들이 닥쳤다. 머리가 헝클어진 여자였다. 여자는 누워 있는 여자 아이의 얼굴을 확인한 뒤 울기 시작했다. 여자 아이가 깨어나 엄마, 하며 여자의 목을 끌어안았다. 여자는 아이를 나무라면서도 그 작은 등을 꼭 안고 있었다.
    갑자기 목이 꽉 막히는 기분이 들었다. 정수기의 물을 마셨지만 넘어가지 않았다. 나는 그 자리에서 물을 뱉어내고 밖으로 나왔다. 하늘이 붉게 물들어 있었다. 또 다시 어디선가 매미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목청을 돋우며 길게 빼는 매미의 울음소리가 내 목을 조르는 것 같았다. 나는 달리기 시작했다. 막힌 목을 뚫어줄 무언가가 필요했다. 있는 힘껏 숨을 들이마셔 보았지만 나아지는 건 없었다. 잠시 말랐던 땀이 다시 흐르기 시작했고 눈은 여전히 뻑뻑했다. 아무렇게나 눈을 비볐다. 렌즈가 눈 속에서 돌다가 결국 빠져버렸다. 흐릿한 눈을 깜박이는데 전화가 왔다.
    일단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했지만 또 대답이 없었다. 나는 잔뜩 긴장한 채 침을 삼켰다. 곧 수화기 저편에서 엄마야, 하는 낮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허탈했다. 유괴범이 아니라는 생각에 안심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것과 동시에 화가 났다. 갑자기 사라져버릴 땐 언제고 거의 이십 년 만에 전화라니. 늘 궁금한 게 많았다. 왜 나를 버렸는지, 지금까지 어디서 무얼 하며 살았는지 묻고 싶었었다. 그러나 지금은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 이미 꼬여버린 내 인생 따위를 굳이 따지고 싶지도 않았다. 지금까지는 원망해본 적이 없었는데 오늘은 모든 원망이 그녀에게로 쏟아졌다. 다 그녀 때문이라는 생각에 휩싸였다.
    “전화 잘못 거셨습니다.”
    그 말로 끝이었다. 그래도 목에 무언가 걸린 것 같은 기분은 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더 심해져 갈 뿐이었다. 이 답답함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다시 전화가 걸려왔다. 나는 신경질적인 목소리로 전화를 받았다. 정나윤 어린이 보호자 되시죠? 실종아동센터에서 걸려온 전화였다. 지금 정나윤 어린이를 지구대에서 보호하고 있습니다. 경찰은 나윤이를 바꿔주었다. 엄마, 하는 나윤이의 목소리를 듣자 온몸의 힘이 빠져나가는 것 같았다. 전화를 끊고 잠시 멍하니 서 있었다. 갈증이 일었다. 불안과 초초, 걱정과 혼란이 다 빠져나간 자리에는 갈증만이 남아 있었다.
    무작정 근처 편의점으로 갔다. 편의점 앞에 있는 아이스크림 냉장고를 열었다. 손은 잠시 망설이듯 허공에 떠 있었다. 더는 망설이면 안 돼, 나는 스크류바 하나를 꺼냈다. 그리고 무작정 달리기 시작했다. 쪼그라들었던 심장이 풍선처럼 부풀어 오르는 것만 같았다. 언제 터질지 모르는 불안을 안고 계속 뛰었다. 얼마쯤 뛰다 뒤를 보았다. 나를 따라오는 사람은 없었다. 숨을 고르면서 골목길로 들어갔다. 도로에서 조금 떨어졌을 뿐인데도 큰 길보다는 훨씬 조용했다. 골목길 구석에 앉아 스크류바를 뜯었다. 빨간 스크류바에 가루같이 흰 얼음이 붙어 있었다. 혀끝으로 그 얼음을 핥았다.
    찬 스크류바가 혀끝에 닫는 순간, 휴대폰 진동이 울렸다. 남편이었다. 스크류바를 입에 문 채 화면을 쳐다봤다. 번쩍거리는 화면을 보다 나는 종료 버튼을 꾹 눌렀다. 휴대폰 화면 속 남편의 이름은 Good Bye, 라는 글자와 함께 사라졌다. 전원이 꺼진 휴대폰을 주머니에 넣고 스크류바를 한 입 크게 베어 물었다. 이것만 먹으면 목에 무언가 걸린 것 같은 이 답답함도 사라지겠지. 하지만 내 예상과는 달랐다. 스크류바를 먹었는데도 목이 꽉 막힌 것 같은 기분은 여전했다. 갑자기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 수 없는 상태가 되어버렸다. 녹아가는 스크류바를 망연히 쳐다볼 수밖에 없었다.
    어디선가 또 다시 매미가 맹렬한 기세로 울어댔다. 이제 귀를 막을 힘조차 없었다. 매미 소리와 함께 흩어진 기억들이 내 주위를 감쌌다. 그녀의 전화와 남편의 전화, 뱃속에서 찢겨진 아이와 버스에서 놓쳐버린 아이. 한낮의 지독한 햇볕과 스타벅스에서의 물 한 잔. 그 모든 게 뒤엉켜 나를 짓누르고 있었다. 그때 녹은 스크류바가 발끝으로 톡, 떨어졌다. 분홍색 동그라미가 발끝에서 터지자 그리로 무언가 스멀스멀 모이는 기분이 들었다. 톡, 톡 퍼져나가는 분홍색 동그라미, 달콤하고 끈적한 그 흔적. 나는 발끝으로 감각을 집중했다. 마치 전기가 오른 것처럼 발끝이 찌릿했다. 그리고 그 감각은 점차 다리 위로 오르기 시작했다. 온 정신을 모아 그 감각만을 따라갔다. 무릎을 지나 사타구니에 그 찌릿함이 전달되자 몸에 있는 모든 혈관에서 빠른 속도로 피가 돌기 시작했다.
    문득 그날의 그녀가 떠올랐다. 그녀의 찌푸린 표정에는 환희와 고통이 섞여 있었다. 그 기분은 어떤 건지 궁금했다. 그 생각이 든 순간, 내 몸의 구멍이 열리는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나는 서둘러 가까운 건물의 화장실로 들어갔다. 낡은 화장실 문은 끼익거리며 열렸다. 나는 망설임 없이 바지를 내렸다. 수치심 같은 건 느껴지지 않았다. 팬티까지 마저 내리고는 내 성기를 잠시 들여다봤다. 숨을 쉬고 싶어하는 내 성기를 손으로 더듬어 구멍을 찾았다. 어디선가 바람이 불어와 그곳으로 들어간 듯한 느낌에 잠시 몸을 떨었다.
    녹아가는 스크류바를 한 입 베어 먹었다. 베어 문 것보다 손으로 흘러내리는 게 더 많았다. 톡, 톡 바닥에 분홍색 동그라미가 박혔다. 나는 스크류바가 잔뜩 묻은 손을 들여다보았다. 잠시 뒤 그 손으로 내 몸을 감싸 안았다. 지금껏 느껴보지 못한 감각이 나를 휩싸고 돌았다. 그것은 아주 차가웠지만 안으로 갈수록 점점 뜨거워졌다. 목으로 치밀어오는 기운에 목을 뒤로 꺾었다. 참지 않고 숨을 뱉었다. 내가 엄마라고 부르던 그녀와 나를 엄마라고 부르던 아이. 정숙한 딸을 바라던 아버지와 조신한 아내를 바라던 남편. 그들이 짜놓은 틀에 갇혀 있던 나는 지금 이 순간, 존재하지 않았다. 차가운 손이 점점 더 내 안으로 파고들었다. 알 수 없는 신음이 터져 나왔다. 그리고 그 소리를 끝으로 세상은 온통 고요 속에 잠겼다. 톡, 톡 분홍색 동그라미가 내 안에 퍼져나가고 있었다.

 

 

 

< 선정평 >

 
여성은 태어나는 것일까, 만들어지는 것일까? 생물학적인 여성은 태어나는 것이겠지만 사회적 의미에서의 여성은 만들어진다. 하물며, 엄마는 어떨까? 「스크류바」는 여성, 여성성, 모성, 욕망이라는 문제를 근원적으로 파고든다. 그녀는 아이를 원하지 않던 그 ‘순간’ 엄마가 된다. 성욕과 생물학적 생산성 사이의 긴장은 스크류바의 질감으로 변주된다. 엄마가 되었지만 그녀에게 아이는 그저 뜨겁고 답답한 것에 불과하다. 이 낯선 도래에 대해, 여성은 어떤 입장을 취해야만 하는 것일까? 엄마가 아닌 여성으로, 내 몸을 침범한 이 낯선 타자를 말이다. 침범의 성격은 오히려 아이를 잃을지도 모르는 순간에 더 분명해진다. 아이, 여성, 엄마 그리고 누군가의 딸이기도 한 그녀. 여성의 생산성과 파멸적 에로티즘에 대한 질문이 주목을 끈다.
    (강유정 / 문학평론가)

 

===== 작가와 6문6답 =====

 

1. 우선 선정된 소감을 간단히 밝혀주세요. ^_^

  작품을 발표할 기회를 얻게 되어 무척 기쁩니다. 신인 작가들을 위한 고마운 프로그램인 것 같아요.

 

2. 이 작품을 처음 떠올렸을 때 어디서 무얼 하고 계셨나요?

  버스에 타고 있었어요. 창밖을 쳐다보며 길 잃은 아이를 떠올렸습니다. 그러고는 몇 시간 내에 일어나는 일만으로 한 편의 소설을 쓰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3. 글을 쓸 때 특별히 듣는 음악이 있다든가, 자기만의 습관이 있다면요?

  음악은 듣지 않습니다. 조용한 것을 좋아해요. 고요한 가운데 타자 소리가 들릴 때 가장 집중이 잘 됩니다.

 

4. 작품을 발표하기 전(혹은 퇴고를 하신 후)에 가장 먼저 보여주는 사람이 있나요?

  늘 서로의 작품을 읽어주는 고마운 문우들이 곁에 있습니다. 칭찬도 비판도 그들에게 받는 게 가장 좋아요.

 

5. 평생 또는 두고두고 써야겠다고 마음먹은 주제가 있다면 소개해 주세요.

  사람과 사람의 부딪힘, 그 사이의 긴장, 그것이 만들어내는 힘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6. 지금 막 쓰고 있는 (또는 품고 있는) 작품의 예고편을 들려주실 수 있나요?

  누군가가 죽었습니다. 그 죽음에 대해 사람들은 여러 추측을 내놓습니다. 모두가 다른 추측을 내놓는데요, 왜 그들은 다르게 생각할까요. 그 틈에 대해 말해볼까 합니다.

 

 

 

   《문장웹진 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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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미미있는 삶

잘 읽었씁니다 !!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