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_차세대2차_소설] 24시간

 

[2014년 2차 차세대예술인력육성 문학분야 선정작 ]

 

 

24시간

 

 


임재영

 

 

 

삽화_24시간

 

 

    8월 19일 pm 2:13

 

    사건 발생

 

 

    8월 19일 pm 3:19

 

    “기어코.”
    “네. 아저씨. 기어코.”

 

    자신이 어떤 일을 항상 예감하고 있었음을, 그 일이 터진 후에야 깨닫는 경우가 있다. 그리고 그때서야, 사소하게 넘겼던 많은 일이 사실은 징조였음을 알게 된다. 마치 추리 소설을 읽는 중에는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하다가, 마지막에 범인이 드러나고 나서야 힌트들이 이렇게 많았다는 것에 놀라는 독자처럼 말이다. 선이가 차웅의 어머니를 죽인 것이 그러했다. 돌이켜 보면 심상치 않았던 오늘 아침 식사부터, 얼마나 많은 징조가 있었던가? 경찰은 오랫동안 꾸어왔던 악몽이 이루어진 것 같았다. 그는 이를 악물며 차웅에게 물었다.

 

    “몇 시였니.”
    “2시요.”

 

    경찰은 무릎을 꿇고 현장을 살폈다. 그러나 한 눈에 봐도 모든 게 노골적이었다. 흉기로 사용된 지팡이 칼은 피로 얼룩진 채 주검 곁에 나란히 놓여 있었다. 머리 장식이 해골 모양이었다. 더 자세히 볼 것도 없었다. 경찰은 저 칼을 알고 있었다. 저 칼을 사기 위해 선이가 얼마나 고생했던가? 몇 푼 안 되는 용돈을 모으고, 도검소지허가증을 받고……. 그리고 드디어 칼을 샀을 때, 또 얼마나 좋아했던가. 표정이 별로 없던 선이가 저 칼을 받고 머쓱하게 짓던 그 웃음이 아직도 생생했다. 경찰은 두 눈을 한 번 꾹 감았다가 뜨고는, 이어서 시체를 살펴보았다. 그녀는 칼보다 낯이 익었다. 차웅의 어머니는 무척 평온한 얼굴로, 배꼽에 양손을 가지런히 모은 채 잠자듯 누워 있었다. 경찰은 차웅이 마치 살아계신 어머니를 편히 모시듯, 아주 정성스레 그녀를 정돈했을 광경이 눈에 훤했다. 덕분에 그녀는 낯빛이 약간 창백한 것만 제외하고는 여전히 살아 있는 것만 같았다. 그러나 그녀의 등 뒤로 고여 있는 피 웅덩이와 앞섶에 물들어 있는 피 얼룩이 그녀의 죽음을 알려주고 있었다. 상처는 왼쪽 젖가슴 아래에 하나뿐이었다. 등에 난 구멍까지 합하면 두 개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칼이 길어 등까지 뚫렸다. 즉사였다. 살인은 빠르고 주저 없이 일어났다. 상처는 아직 굳지 않았고, 손으로 누르니 피가 조금 새어 나왔다.

 

    경찰은 자리에서 일어나 주변을 둘러보았다. 이곳은 양재 코스트코 부설 주차장이었다. 주차장이라고는 하지만, 산 아래에 펼쳐진 넓은 공터에 양철 울타리를 친 것에 불과했다. 주차선도 그어져 있지 않았고, 차들은 저마다 알아서 듬성듬성 주차해 있었다. 사건 현장은 주차장의 산 쪽 귀퉁이였다. 입구는 멀었다. 쇼핑하러 온 이들은 당연히 입구 근처에 차를 주차하고는 곧바로 코스트코를 향해 떠났다. 쇼핑하고 온 이들 역시 산 물건을 싣고 집으로 가기 바빴다. 아무도 이렇게 구석진 곳, 큰 나무 그늘에 뭐가 있는지 신경 쓰지 않았다. 이런 열기 속에서는 더욱 그랬다. 실제로 차웅과 경찰이 서 있는 동안 몇 대의 차가 오갔지만, 이곳을 잠깐이라도 쳐다보는 이는 없었다. 이곳은 사각이었다. 선이가위치는잘골랐구나……. 경찰은뒤에서있는차웅을돌아봤다.

 

    “왜 막지 못했니? 그 비실거리는 놈을.”

 

    차웅은 키가 큰 편은 아니었지만, 어깨가 무척 넓었고 가슴이 잘 발달해 있었다. 견고하고 균형 잡힌 몸이었다. 그는 불필요한 동작은 일절 하지 않았으며, 움직일 때는 산 같았다. 곰 한 마리를 돌 안에 구겨 넣고 사람 꼴로 다듬으면, 그게 바로 차웅이었다. 그런데 선이는 겨울나무처럼 깡마른 아이였다. 차웅이 손만 휘둘러도 가랑잎처럼 날아갈 몸뚱이였다. 경찰은 그런 선이가 차웅을 제쳤단 게 믿기지가 않았다. 차웅이 뚝뚝 끊어지는 말투로 답했다.

 

    “스턴건. 선이가 이리로 우리를 불렀어요. 잔뜩 차려입고 있었습니다. 해골 후드티, 지팡이, 은반지들, 목걸이……. 저는 어디 공연 가느냐고 인사했고, 선이는 제게 스턴건을 먹였습니다. 전 쓰러졌지요. 그러나 의식을 잃진 않았습니다. 그래서 모든 걸 볼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차웅이 양팔을 벌리는 것으로 뒷말을 대신했다. 마치, ‘그래서 그렇게 된 겁니다.’라고 말하는 듯이. 하지만 그 순간에도, 그의 눈앞에서는 바로 그 말하지 않은 장면이 계속해서 맴돌고 있었다. 그는 그 장면을 말로 할 수 없었다. 그건 찰나의 순간이었다. 선이가 칼을 빼 든다. 그리고 엄니가 겁에 질리기도 전에, 그녀의 가슴을 찌른다. 칼이 늑골을 지나, 등으로 빠져나온다. 엄니의 몸은 기괴한 각도로 꺾인다. 엄니의 짓눌린 신음이 들린다. 선이는 칼을 빼지 않는다. 엄니는 무척 불편한 자세로 쓰러진다. 그리고 선이는 떠난다. 이 짧은 광경은 다음 날 부산의 락 페스티벌에서 선이를 발견하기 전까지, 차웅의 눈앞에서 한 치도 바뀌지 않은 채 무수히 되풀이되었다. 그 정경은 불덩이가 되어 그의 가슴 속에 자리 잡았고, 너무 커서 목구멍으로 나올 수가 없었다. 그래서 차웅은 침묵했다. 그렇게 불덩이는 불똥 하나 튀기지 않고 안으로만, 깊이로만, 타오르고 있었다. 경찰은 차웅의 눈에서 그 열기를 느낄 수 있었다. 어지러웠다. 몸에 중심을 잡기 힘들어 나무에 기대었다.

 

    “죽일 거냐.”
    “네.”
    “어디 간 줄 알고.”
    “글쎄요.”
    “날 믿지 못하는 구나.”
    “네.”
    “경찰에…… 맡기면 안 되겠니. 약속하마. 꼭 잡을 테니, 그래서 정당한 심판을…….”
    “이건 제 권리입니다.”

 

    경찰은 잠시 차웅을 바라보았다. 그는 호주머니에 두 손을 찔러 넣고, 죽은 어머니의 머리맡에 서서, 그녀의 얼굴을 물끄러미 내려다보고 있었다. 표정도 몸짓도 없었다. 입술도 움직이는 것 같지 않았다. 그는 무덤 앞에 서 있는 묘석 같았다. 바위에 새겨진 글자들은 천 년을 간다. 경찰은 그를 막을 수 없었다.

 

    “2시 정각, 확실한 거지? 목격자로서 말해야 한다.”
    “여기 들어올 때 2시가 좀 안 됐었으니까, 아마 그쯤이겠죠.”
    “그럼, 명심해라. 내일 2시까지다. 법이 허락한 시간이다.”
    “알아요.”
    “2시가 넘어가면…….”
    “그런 일은 없을 겁니다.”
    “…….”

 

    그에겐 권리가 있었다. 법적인 권리가. 24시간 이내에 선이를 죽이면 복수법에 따라 그는 무죄다. 차웅의 말대로, 복수는 그의 정당한 권리행사였다. 도리어 권한이 없는 건 자신이었다. 그는 신입 경찰을 뽑는 면접 자리에서, ‘가족이 범죄를 저지르면 어떻게 하겠는가?’라는 질문을 즐겨 하곤 했었다. 면접자들은 저마다 인정과 법 사이에서 합격에 이르는 답을 모색하였지만, 경찰이 원하는 건 언제나 ‘전 권한이 없습니다.’라는 답이었다. 그것이 정답이었으니까. 그러나 지금, 운명이 경찰에게 똑같은 질문을 던졌다. 그는 삶으로 대답해야 했다. 법에 따르면, 그는 이 수사에 아무런 권한이 없었다. 정답은 이미 주어진 셈이었다. 게다가 그는 한평생 법을 어긴 적이 없었다. 그렇다고 법을 맹목적으로 기계처럼 따랐다는 것도 아니다. 그는 법이 정의로 향하는 유일한 길임을 의심한 적 없었지만, 동시에 법이 장님이란 걸 알고 있었다. 그는 평생 자기 일이 눈먼 법을 올바른 길로 인도하는 것이라 여겼다. 그리고 이제껏 그런 신념에 비추어 부끄러웠던 적이 없었다. 그러나 지금, 그가 그토록 헌신했던 법이 차웅에겐 권리를 주면서, 그에게는 가만히 있으라고, 여기에서 시신을 수습하고, 상황보고를 하고, 집에 돌아가, 술이나 마시며 아들의 생사가 걸린 밤을 지새우라고 명하고 있었다. 경찰은 그럴 수 없었다.

 

    “나도 따라가겠다. 경찰로서가 아니다. 방해는 않으마.”
    “예. 안 오시면 끌고라도 가려 했어요. 가죠.”

 

    차웅은 발걸음을 옮겼다. 당황한 건 경찰이었다.

 

    “지금? 네 어머니를 여기 내버려두고?”
    “방해하지 않겠다며요.”
    “아니, 차웅아. 이건 방해가 아니라, 이 날씨에, 말이 되니? 최소한 병원에 안치라도…….”
    “엄니의 몸은 아저씨 부하들이 알아서 하라 그래요. 난 엄니의 넋을 위로하러 갈 겁니다. 시간이 없어요.”

 

    차웅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차로 향했다. 몇 번이나 뒤를 돌아보며 머뭇거린 것은 경찰이었다. 그는 이 폭염 속에서 개처럼 홀로 버려지는 그녀를 떨치기 힘들었다. 그러나 차웅은 벌써 차에 시동을 걸고 있었고, 경찰은 이를 악물고 차에 탈 수밖에 없었다. 차웅은 곧장 차를 경부고속도로로 몰았다. 둘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차는 침묵 속에서 달렸다. 8월의 하늘은 뜨거웠다. 차에는 그늘이 없었다. 차 안으로 불길 같은 햇빛이 고스란히 쏟아졌다. 그들은 산 채로 타들어가는 느낌을 받았다. 창밖에도 아지랑이가 일렁이고 있었다. 그러나 차웅은 에어컨을 틀지 않았다. 냉기가 죄스러웠기 때문이다. 이런 날에는 부패가 빠르다. 차웅은 버려져 있을 어머니의 몸을 떠올리고 있었다. 넋보다는 못하다 하여도 어머니의 몸 역시 어머니이다. 그는 차마 에어컨을 틀 수 없었다. 그렇게 삼십여 분이 지났을 때, 경찰이 부하의 연락을 받았다. 시체를 근처 병원에 안치했다고 했다. 긴장하고 있던 차웅의 어깨에 힘이 빠졌다. 그가 에어컨을 틀며 말했다.

 

    “고맙습니다.”

 

 

    8월 19일 pm 4:53

 

    복수법이 시행된 지 벌써 6년이 지나고 있었다. 처음에는 말썽도 많았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세칙도 상당수 조절되고, 판례도 많이 쌓여서, 최초의 낯섦과 기이함을 거의 사라진 상태였다. 사람들은 이 법을 좋아했다. 이 법이 만들어지기 전, 사람들은 너무 많이 살해당했고, 법은 아무것도 풀어주지 못했다. 법은 자신의 관심사가 체계뿐이며, 사람 따위에는 아무 관심도 없다는 것을 자꾸만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강력범죄에 대한 처벌은 만족스럽지 않았고, 법에 대한 비판은 끊이지 않았으며, 법을 어기면서까지 복수하는 내용의 드라마와 영화들이 쏟아져 나왔다. 결국, 법은 희생자의 가족들에게 하루를 주기로 했다. 단 하루. 복수의 시간. 그 24시간 동안은 희생자의 가족이 살인자를 직접 찾아내 죽여도 무죄가 되었다. 옛날 험준한 산맥 사람들의 일상을 지배하던 복수의 관습이, 현대에 와 다시 부활한 셈이었다. 물론 실제로 이 ‘권리’를 행사하는 건 힘든 일이었다. 까다로운 조건들이 많았다. 살인 시각이 정확해야 했고, 복수 당시가 정확히 몇 시였는지 입증할 증거나 증인도 필요했다. 게다가 이 법은 희생자 가족들에게 ‘권리’만을 주는 것뿐이어서, 공권력의 도움은 일절 받을 수 없고, 하루가 가기 전에 범인이 검거되면 현실적으로 ‘권리행사’는 불가능해졌다. 하지만 이런 모든 난관에도 불구하고 ‘권리행사’는 생각보다 빈번히 이루어지곤 했다. 대중들은 그때마다 환호했는데, 특히 가난한 이가 부자나 권력자에게 ‘권리행사’에 성공하면 영웅 대접을 받았다. 결국, 모두가 이 법을 좋아했다. 희생자들은 복수의 분출구가 있어서 좋고, 정부는 법체계의 비인간성을 은폐할 수 있어서 좋고, 정치가는 인기몰이 구실을 하나 얻어 좋고, 대중들은 여흥과 희망을 얻어서 좋았다.

 

    경찰은 복수법에 대해 잘 알았다. 관련 세미나가 많기도 했지만, 그는 혼자서도 이 법을 화두 삼아 상념에 잠긴 적이 많았다. 이 법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그는 나름의 결론을 내렸었다. 비록 복수법이 법적 모순을 내재하고 있지만, 그 안에 분명 희생자들의 슬픔, 분노, 그리고 법을 향한 깊은 불신이 담겨 있는 바, 복수법도 인간을 향할 수 있다고 말이다. 그러나 지금 이 순간, 그는 이제까지의 결론은 모조리 지워버렸다. 그는 완전히 새롭게, 그리고 그 어느 때보다도 깊게 복수법을 생각했고, 생각해야만 했다. 차가 달린 지 한참이 지나서야 경찰이 중얼거리듯 말했다.

 

    “안다. 네게 권리가 있는 거. 선이를 죽여도 적법하단 거.”

 

    차웅은 그런 경찰을 힐끗 쳐다보았다. 그는 단호하게 말하였지만, 목이 가늘게 떨리는 게 보였다. 그는 늙은 뱃사람처럼 주름이 많고 깊었다. 뱃사람이 격랑 속에서 잘 보이지도 않는 북극성에만 의지하며 바다를 헤쳐 나가듯, 경찰 역시 ‘올바름’ 하나만을 움켜쥐고 인생의 풍파를 모질게도 버티어 왔다. 그리고 그 올바름이란 사람이었다. 그는 언제나 법은 장님이라고, 그래서 이끌어주지 않으면 사람으로 향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정의’란 단어가 들어갈 자리에, ‘사람을 향한다’라는 단어를 사용했었다. 그는 평생 법과 인간 사이에서, 곡예사보다도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해왔다. 즉, 법을 행하면서도 사람을 미워하지 않았고, 사람을 사랑하면서도 법을 잊지 않았다. 그건 참으로 위태로우면서 피곤한 삶이었으나, 떳떳한 삶이었다. 그러나 그런 그가 지금 흔들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 길만 있는 건 아니잖니. 설사 네가 시간을 넘겨도…….”
    “그런 일은 없습니다.”
    “그래도 선이는 죗값을 치를 거다. 내가 그렇게 하마. 웅아, 오직 네 손에 죽어야만 정의가 이루어지는 게 아니다.”
    “재판으로 말이죠.”
    “그래. 적어도 15년 이상의 징역을 받을 거다. 사형이 아니니 네겐 흡족하지 않겠지. 하지만 생각해봐라. 선이는 이제 26살이다…….”
    “형량은 상관없어요. 사형이든, 15년이든, 훈방이든……. 그래서, 그 재판에서 제 역할이 뭔가요?”
    “목격자가 되겠지.”
    “재판 과정의 목격자 말인가요? 울 엄니 얼굴도 모르는 이들이 울 엄니 복수를 하겠다고 설치는 꼴을 구경하란 소리죠.”
    “…….”
    “울 엄니 장례식에 제가 쫓겨나는 꼴입니다. 기회를 줬는데도 죽이지 못했으니, 꺼지란 거죠.”

 

    경찰은 대답하지 않았다. 차웅도 더는 말을 잇지 않았다. 그들은 각자 차갑고 어두운 생각에 잠겼다. 차는 완전한 정적 속에서 한참을 달렸다. 무더운 여름날이었다. 고속도로에는 차가 없었다. 그들은 빠른 속도로 남하했다. 차웅은 목적지에 대한 어떤 말도 하지 않았다. 그는 선이가 어디 있는지 분명히 알고 있는 듯 거침없이 차를 몰았다. 선이가 어떤 힌트라도 흘린 것일까? 경찰은 목적지를 가늠할 수 없었다. 그는 아들의 도주로를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자료가 없었다. 생각할수록 뚜렷해지는 것은 선이에 대한 자신의 무지뿐이었다. 아버지는 아들에 대해 아는 게 없었다. 자신은 결국 살인을 저지를 수밖에 없었던 아들의 마음조차 전혀 눈치 못 챈 아비다. 자괴감에 가슴이 콱 메여왔다. 경찰이 한숨처럼 중얼거렸다.

 

    “결심이야 4년 전 그 날에 한 것일 텐데, 어떻게 그동안 내색 한 번 없었다니……. 그리고 난 또 그걸 어쩜 이렇게 까맣게 모르고 있었을까…….”
    “말 없는 아이니까요. 그렇지만 돌이켜보면 기미가 없었던 것도 아닙니다. 선이가 지난주에 친구들을 모두 불러 모아 술자리를 열었습니다. 많이 왔지요. 저도 있었습니다. 선이는 웃고, 술을 마셨습니다. 그리고 어느 정도 취하자, 사람마다 안녕, 고마웠어, 잘 있어, 등의 인사를 하기 시작했고, 곧 뻗어버렸죠.”
    “…….”

 

    경찰은 당장에 장례식이 연상됐지만, 애써 머리에서 지웠다. 선이의 죽음은 아직 결정된 것이 아니다. 차웅 역시 그 술자리에서 선이가 자기 목에 팔을 두르며, 다음 주에 있는 부산 비치락 페스티벌에서 보자고, 차웅이 그날은 시간이 없어 가지 못한다고 아무리 말해도, 자꾸만 끝내줄 것이라고, 그곳에서 보자고 되풀이했다는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그것은 취중에 새나온 말이 아니었다. 그날 어쩌면 선이는 전혀 취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차웅은 지금 부산으로 가고 있었다.

 

    “아저씨는, 뭐, 별다른 일 없었나요?”
    “있었지. 오늘 선이가 아침을 먹었어.”
    “별일이네요.”
    “별일이지.”

 

    선이는 아침을 먹지 않았다. 사실 그는 거의 아무런 음식도 먹지 않았다. 그는 혼자 내버려두면 게임하면서 집어먹는 젤리나 땅콩으로 하루를 보내기도 했다. 그래서 선이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원래도 앙상했던 그는 보기 안쓰러울 정도로 야위었다. 게다가 그는 항상 새벽까지 게임을 하는 터라 아침에 일어나는 일이 거의 없는데, 그런 그가 아침 식사를 했단 것은 확실히 별일이었다.

 

    “뭐라던가요?”
    “아침은 참 초라했어. 밥에 김치찌개밖에 없었지. 이럴 줄 알았더라면, 좀 더 애가 좋아하는 걸 차렸을 텐데……. 선이는 말도 없이 깨작이다가, 알잖니. 선이 말투. 웅얼거리는 거. 뭐라고 말하는데 잘 듣질 못했어. 그래서 똑바로 좀 말해보라고 했더니, ‘아빠. 역시 미안한 거로 계속 살긴, 좀 그래.’라고 하더구나. 내가 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그냥 고개를 끄덕이며 그러냐고 했고, 그릇을 개수대에 넣었지. 그 뒤에 선이가 또 웅얼거렸지만, 그건 듣지도 못했다. 어제 못 한 잔업이 있어서 일찍 출근해봐야 했거든. 이제 와서는 아무 의미도 없는 그따위 업무를 하겠다고, 집을 나왔던 거야. 그게 마지막이었어.”
    “그리고, 이렇게 되었군요.”
    “그래.”

 

    차웅은 선이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그를 이해할 수 있었다. 누구나, 더 이상은 버틸 수 없는 순간에 자신을 말리기 위해 빈 공책에 죽으면 안 되는 이유를 하나하나 써 내려가 본 사람이라면 모두 이해할 수 있으리라. 가장 먼저 쓰는 건 제 죽음으로 슬퍼할 사람들의 이름이다. 부모, 형제, 연인, 친구…… 그러나 그 이름들을 아무리 적어보아도, 그것만으론 안 된다. 모자라다. 아니, 도리어 그 이름들을 곱씹을수록 좀 더 비참해질 뿐이다. 정말인가? 내가 이 모진 고통을 감내하며 살아가는 이유가 미안함뿐이란 말인가? 그런 인생에 대체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 삶은 타인의 슬픔에만 매달아 두기엔 너무 무겁다. 그건 어디까지나 타인의 것이다. 삶이 내 것인 것처럼, 하루를 살아가는 이유도 내 것이어야만 했다. 미안한 것만으로 계속 살긴, 좀 그렇다.

 

    ‘그래도 오래 버텼구나.’

 

    그래도 선이는 4년 동안이나 견뎌왔다. 아무 내색도 하지 않고, 다만 아버지에 대한 미안함만으로 삶을 버텼다. 끝까지 그럴 수는 없었지만 말이다. 그리고 어느 날 아침, 그는 결국 작별 인사를 한 셈이다. 뚱한 표정에 가려져 잘 보이진 않았지만, 선이는 효자였다. 다만 어머니를 좀 더 사랑했을 뿐. 그리고 그 순간, 차웅의 머릿속에 어떤 생각이 퍼뜩 떠올랐다.

 

    갑자기 차가 뒤흔들렸다. 경찰은 놀라 안전띠를 움켜잡았다. 차웅이 차를 급하게 갓길에 몰아댄 것이다.

 

    “무슨 일이냐? 왜 그래?”

 

    차웅은 이맛살을 찌푸리고 잠시 멍하니 있다가, 내비게이션을 켰다. 그리고 주소를 쳤다. 지금 가려는 곳은 그가 가본 적 없는 곳이었기 때문이다. 경찰은 차웅이 치는 주소를 보고는 놀라 말했다.

 

    “네가 어떻게 여길……?”
    “알고 있었어요. 한 번도 가보진 않았지만.”
    “그럼 선이도?”
    “네. 가보진 않았겠지만요.”

 

    경찰이 의자에 푹 기대면서 차 천장을 쳐다보았다. 깊은 한숨이 새어 나왔다.

 

    “그래…… 선이가 어떤 앤데, 인사도 없이 갈 애가 아니지…….”

 

    그들은 다시 출발했다. 목적지는 대구였다.

 

 

    8월 19일 pm 7:42

 

    그들이 대구에 진입했을 때, 이미 해가 저물고 있었다. 산에 가까운 하늘은 주홍빛이 잔열처럼 감돌고, 달에 가까운 하늘은 서늘한 보랏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그러나 대구는 한낮의 열기를 고스란히 품에 안은 채 여전히 무더웠다. 다행이 그들의 목적지는 대구 시내가 아니었다. 묏자리는 대구시 외곽의 어느 산 중턱에 자리 잡고 있었다. 산으로 깊이 들어갈수록 길이 구불거리고 거칠어졌으며, 공기는 서늘해졌다. 차웅은 에어컨을 끄고 창을 열었다. 시원한 숲 바람이 차 안으로 흘러들어왔다. 길은 점점 좁아졌다. 산길을 올라가던 중 내려오는 택시 한 대와 만나 공간을 내주느라 애를 먹기도 했다. 그들은 산길이 끝나는 곳에 차를 댔다. 경찰이 말했다.

 

    “여기부턴 걸어야 한다.”

 

    그들은 길 아닌 길을 헤치고 묘를 찾았다. 묘에는 묘석도 없었다. 그저 묘라는 것만 간신히 알아볼 수 있는 봉분 두 개에 잡초만 무성했다. 초라하고 버려진 묘였지만, 다만 둘이어서 외로워 보이지는 않았다. 무덤들을 구분할 수 있는 표식은 전혀 없었다. 그리고 그 사이 정 중앙에 웬 국그릇 하나가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벌써 다녀갔군요.”

 

    차웅이 그릇을 집어 들었다. 국이 가득 담겨 있었다. 맛을 보았다.

 

    “추어탕이네요.”
“제 어미가 좋아하던 거다.”

 

    추어탕은 무덤 사이 정 중앙에 놓여 있어 딱히 누구에게 바친 거라 볼 수 없었다. 차웅은 선이가 이 무덤들을 보고 얼마나 어처구니없어했을지 눈에 선했다. 그는 제 어머니에게만 추어탕을 드리고 싶었을 게다. 그러나 그는 묘를 구분할 수 없었고, 어쩔 수 없이 추어탕을 정 중앙에 놓은 것이리라. 차웅에게도 이렇게 무덤들이 구분도 없이 나란하고 다정히 있는 것은 충격이었다.

 

    “왜 이렇게 나란히 묻으셨나요? 울 엄니는 어디에 묻히시라고.”
    “네 어머니도 차라리 외로운 게 나은 삶을 살아오지 않았니.”
    “하긴, 엄니는 항상 화장해 달라고 하셨으니……. 어느 쪽이 선이 엄마죠?”
    “나도 모른다. 일꾼들이 매장할 때, 나는 이곳을 바라보고 있지 않았어. 그때 난 차 안에서, 살아 평온치 못했으니 죽어 평온하라고, 치밀어 오르는 분노를 꾹꾹 눌러 담으며, 그렇게 생각하기에 바빴다.”
    “아저씨답네요.”
    “지난 일이다.”
    “왜 하필 여기죠? 연고 없이 외진 곳인데.”
    “네 부모님과 우리 내외가 함께 놀러 왔을 때, 네 아버지가 이곳에 묻히고 싶다고 지나가듯 말한 적이 한 번 있었다. 참 좋다고.”

 

    차웅은 잠깐 눈을 돌려 산 밑을 내려 보았다. 대구 시내가 한눈에 보였다. 하늘빛이 거의 사라져가고, 모든 것이 어슴푸레한 시간이었다. 불빛들이 반짝이고 있었다. 별들이 움푹한 그릇에 담겨 옹기종기 빛나고 있는 것 같았다.

 

    “좋은 곳이네요.”

 

    차웅은 그릇을 제 자리에 정중히 돌려놓았다. 한 방울도 흘리지 않았다. 국은 따뜻했다. 그렇다는 건 선이가 여기 온 지 얼마 안 되었다는 소리일 텐데……. 그는 오면서 마주쳤던 택시가 퍼뜩 떠올랐다. 이렇게 외진 곳에 택시가 올 리 없다. 그곳에는 분명 선이가 타고 있었다. 차웅이 급히 몸을 돌렸다.

 

    “서둘러요. 감상에 젖어 바보가 됐었네요.”

 

    차웅은 올라올 때보다 훨씬 거칠게 차를 몰아 산에서 내려가기 시작했다. 경찰이 물었다.

 

    “짐작 가는 곳이라도 있는 거냐?”
    “선이는 더는 대구에 볼일 없어요. 떠나겠죠.”
    “그럼?”
    “동대구역이요. 아마도.”

 

 

    8월 19일 pm 8:54

 

    대중교통 수단을 이용해서 대구를 벗어나거나 들어오려면 어쩔 수 없이 동대구역을 거쳐야 했다. 그곳에는 동대구 기차역, 지하철역, 그리고 3개의 버스 터미널이 몰려 있다. 차웅이 가장 먼저 뒤지기로 한 곳은 기차역이었다. 그는 역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차를 세웠다. 그가 차에서 내리려 할 때, 경찰이 그를 불렀다. 경찰은 오는 내내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무언가를 생각하고 있었다.

 

    “웅아.”
    “예.”
    “선이 말이다. 만나면, 뭐로…….”

 

    차웅은 대답 대신에 주머니에서 나이프를 꺼내 보였다. 그리 길진 않았지만, 심장까지 가기에는 충분한 길이였다.

 

    “아프겠구나.”
    “금방 끝날 겁니다. 울 엄니처럼.”

 

    경찰은 제 가슴이 선뜩하여 가슴 언저리를 더듬었다. 차가운 칼날이 가슴팍을 비집고 들어오는 게 상상됐다. 차가운 것이 온몸에 퍼지며 죽겠지. 자기라면 견딜 수 있을 것 같은데, 선이는 견딜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리고 선이의 그 아픔을 자신이 견딜 수 없었다.

 

    “그래도 아프겠구나.”

 

    차웅은 문을 열었다. 경찰은 미동도 없이 자리에 앉아 있었다. 그는 창백했다.

 

    “안 오세요?”
    “난 여기 있으마. 못 찾으면 돌아오너라. 찾는다면…… 일이 끝나고 돌아오너라.”

 

    경찰은 남고, 차웅은 기차역으로 향했다.

 

 

    8월 19일 pm 9:09

 

    지원 병력은 경찰이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늦었다. 차웅에겐 미안하지만, 경찰은 이대로 아들이 죽는 꼴을 볼 수 없었다. 판례에도 있지만, 복수법은 차웅에게 ‘권리’를 인정하고 있는 것이지, 그렇다고 경찰 수사를 하루 동안 멈추라는 것이 아니었다. 경찰이 경찰로서 살인 용의자를 잡는 것이 법적으로 문제될 것은 없었다. 그래서 경찰은 현지 경찰에 지원을 요청했다. 사정이 된다면 차웅이 동대구역에 도착하기 전에 선이를 체포하고 싶었다. 정말 선이가 그곳에 있다면 말이다. 하지만 그들은 차웅이 기차역으로 떠난 후에야 도착했다. 게다가 지원 병력이란 게, 정년퇴직이 몇 개월 남지 않은 늙은이와 이제 갓 견장을 단 풋내기 둘뿐이었다. 이건 좀 너무 심했다. 그들 역시 마땅찮은 표정이었다. 늦은 시간에 타 지역 경위가 와서 명령을 내리는 게 기꺼울 리 없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경찰은 그들과 함께 기차역으로 들어갔다. 차웅이 벌써 기차역 수색을 마치고 터미널 쪽으로 나가는 게 보였다. 쫓아갔다. 차웅은 금호 고속 터미널로 들어섰다. 경찰은 차웅의 눈에 띄지 않도록 조심하며 한 눈으로는 차웅을, 한 눈으로는 선이를 찾았다. 사정도 모르는 경찰들은 멀뚱히 서 있는데, 영 불만스런 눈치였다.

 

    “뭡니까. 지원 요청 하고 용의자 설명도 없이.”
    “잠시만요…….”

 

    차웅은 서두르지 않았다. 그러나 그의 수색은 신속하고 확실했다. 그는 허둥대다가 실수하면 일이 훨씬 더뎌진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는 놓치는 게 없었다. 어지간히 숙련된 경찰도 차웅만큼 하기 힘들었다. 그에 반해 경찰은 선이를 찾으며 차웅도 신경 써야 하고, 동시에 대구 경찰들도 간수해야 하는지라, 훨씬 운신의 폭이 좁았다. 이런 상황에서 경찰이 선이를 먼저 발견한 것은 정말로 큰 행운이거나 아버지로서의 직감이었다고밖에 말할 수 없었다.

 

    선은 이 안에 없었다. 차웅이 수색을 거의 끝내갈 때, 경찰은 창밖에서 선을 발견했다. 그는 길 건너편에 있는 동대구 터미널 앞에서 무언가 사고 있었다. 멀어서 얼굴을 식별할 순 없었지만, 찰나에 알아볼 수 있었다. 날 때부터 보아온 아들이다. 실루엣과 걸음걸이만 보고도 단박에 알 수 있었다. 가슴이 콱 메어왔다. 그러나 감상에 빠질 틈도 없었다. 차웅이 수색을 마치고 동대구 터미널로 향하고 있었다. 시간이 없었다. 경찰들이 그를 뒤쫓아 나갔다.

 

    금호 터미널과 동대구 터미널은 왕복 8차선 도로를 사이에 두고 있다. 차웅은 건널목에서 신호를 기다리고 서 있었다. 선이는 터미널로 들어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차웅이 선이를 잡는 건 시간문제였다.

 

    경찰은 자기를 뒤따라오고 있는 ‘지원 병력’을 다시 한 번 보았다. 본래 생각은 그들이 차웅보다 먼저 선을 연행하는 것이었으나……. 지금 상황에서는 도리어 차웅을 돕는 꼴이 될 수도 있었다. 이들이 선이를 포박한 상태에서 차웅이 나이프를 들고 달려든다면? 실제로 경찰에 연행되고 있는 살인자가 피해자의 친족에게 살해당한 사건이 몇 번 있었고, 모두 무죄 방면되었다. 법원은 복수법에 따라, 그들에게도 정당한 ‘권리’가 있음을 인정했다. 이 늙은이와 풋내기는 웅이를 막을 수 없다. 나이프를 쥔 그는 발톱을 세운 곰과 다를 게 없었다. 그들은 도리어 선이의 처형대가 될 가능성이 높았다. 지금 이대로라면 선이는 죽는다.

 

    사거리의 차량 신호등이 노란 불로 바뀌었다. 곧 신호가 바뀐다. 언제나처럼 지금 이 순간에도 법은 그에게 올바른 길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런데 그 길 위에는 심장에 칼이 박혀 있는 선이가 쓰러져 있었다. 경찰의 삶은 이제껏 법과 조화를 이루어 어긋나지 않았었다. 차웅과의 약속을 어기면서까지 지원 병력을 부른 것도, 그것이 법에 어긋나지 않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법은 정의를 향하고, 정의는 그의 신앙이었다. 하지만 언제나 그의 길을 밝혀 주던 정의라는 광휘가, 지금은 선이의 시체를 선명하게 비추고 있었다. 그래서 경찰은 처음으로 법 아닌 길에 눈을 돌렸다. 그곳에는 살아 있는 선이가 있었다. 한쪽에는 법이, 다른 쪽에는 선이가 있는 셈이었다. 경찰은 지금 자신이 법의 길을 따르면 어떻게 될지 자문해보았다. 선이의 시체를 밟고서도 삶은 계속될 것이다. 그의 여생은 이제까지처럼 정의로울 것이다. 하지만 빈껍데기가 되어 걸어가는 정의의 길에 무슨 영광이 있을까? 자신은 언제까지고 선이의 주검에 머물러 있을 것이었다. 정의는 세상의 것이요, 선이의 죽음은 온전히 자신의 것이었다. 한쪽에는 삶의 이상이, 한쪽에는 삶의 이유가 있었다.

 

    경찰이 머뭇거리는 사이, 파란불이 켜졌다. 차웅이 움직였다. 빠른 걸음걸이였다. 경찰은 엉겁결에, 그러나 자신이 무슨 말을 하는지 분명히 이해하며, 말했다.

 

    “저기. 하얀 티 건장한 남자, 보여요? 키가 그리 크지 않은데. 네, 맞아요. 저 잡니다. 조심하세요. 주머니에 나이프가 있습니다.”

 

 

    8월 19일 pm 9:37

 

    터미널은 좁고 사람이 많았다. 바닥에 깔린 좌판들 때문에 특히 더 비좁았다. 선이는 번데기 한 컵을 들고, 대기실에 서 있었다. 그는 TV를 보고 있었다. 그래서 스크린에 반사된 차웅을 볼 수 있었다. 그는 나이프를 들고 빠르게 다가오고 있었다. 선이는 반사적으로 뒤로 돌면서, 뜨거운 번데기 국물을 차웅의 얼굴에 부었다. 차웅은 그래도 두 눈을 감지 않았다. 그는 선을 향해 팔을 뻗었다. 나이프를 쥔 손은 등 뒤로 한껏 당겨져 있었다. 그가 선의 어깨를 움켜쥐기 직전, 경찰 둘이 차웅을 덮치지 않았더라면 선은 꼼짝없이 심장에 칼이 박혔을 것이다. 선은 바로 도망가지 않고 잠시 망설였다. 그는 두 명의 경찰을 매달고도 자신에게 다가오는 차웅을 보면서, 무언가 결심한 듯 말했다.

 

    “여긴 아냐.”

 

    선이는 전력으로 도망치기 시작했다. 차웅이 달라붙어 있는 경찰들을 거머리 털어내듯 내던졌다.

 

    “선.”

 

    그들은 달렸다.

 

 

    8월 19일 pm 9:40

 

    경찰은 터미널 근처에서 서성이고 있었다. 갑자기 사람들의 비명이 터미널 안에서 터져 나왔다.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기어코.”

 

    그는 초조하게 계속 서성였다. 안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건지, 잠깐 사람들의 고함이 나더니만 곧 조용해졌다. 그는 차마 들어갈 수 없었다. 벌써 공정함을 버린 몸이었다. 안에서 어떤 상황에 마주하더라도 제대로 대처할 자신이 없었다. 그는 그저 계속 건물을 살펴보는 것밖에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그는 터미널 건물과 주차장 사이에 난 좁은 골목 근처에서 배회하고 있었다. 그 골목은 어두워 안쪽이 보이지 않았는데, 갑자기 누군가 불쑥 튀어나왔다. 온통 땀으로 젖어 있고, 낯익은 얼굴이었다. 경찰은 얼어붙었다.

 

    “선아.”
    “아빠.”

 

    그들은 잠깐 멈추어 서로를 보았다. 경찰의 가슴은 형용할 수 없는 만 가지 감정으로 터질 것 같았다. 그러나 선은 감상에 젖을 틈이 없었다. 그는 다급했다.

 

    “비켜. 나 죽어.”

 

    경찰은 그제야 자신의 위치를 알 수 있었다. 그는 좁은 골목의 출구 쪽에 서 있었다. 그는 의도치 않게 선이를 막고 선 꼴이었다. 경찰은 반사적으로 비켜서며 길을 텄다. 선이 뒤쪽, 어둠 너머에서 차웅의 매우 빠른 달음박질 소리가 들려왔다. 그는 덩치에 맞지 않게 빠르다. 선이는 왜소한 체격에 맞지 않게 발이 느리다. 선은 그를 스쳐 지나갔다. 아버지를 다시 한 번 쳐다보지도 않았고, 뒤를 돌아보지도 않았다. 그는 8차선 도로로 뛰어들었다. 경찰은 그가 차에 부딪히려 할 때마다 감전 된 것처럼 듯 깜짝깜짝 놀라다가, 건너편에 도착해서야 긴장을 풀 수 있었다. 하지만 바로 다음 순간 차웅이 어둠 속에서 불쑥 튀어나왔다. 땀 냄새와 번데기 냄새가 뒤섞인 채 훅 끼쳤다. 그는 거대한 괴물 같았다. 경찰은 감히 그의 길을 가로막을 수 없었다. 차웅은 사방을 살폈다. 그는 경찰에게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신기하게도 선이가 사라진 바로 그 골목에 시선을 고정했다. 선이가 지나간 흔적을 물결에서처럼 알아보는 것 같았다. 그의 눈이 가로등 불빛에 반사되어 주황빛으로 번뜩였다. 그가 다시 선이를 쫓으려 움직일 때,

 

    탕!

 

    총소리가 그를 막았다. 공포탄이었다. 늙은 경찰이 어둠 속에서 그를 총으로 겨누면서 나왔다.

 

    “두… 두 손을 머리 위에 놓고 엎드려. 이번엔 실탄이야!”

 

    총을 든 두 손은 무서워서인지, 수전증 때문인지, 덜덜 떨고 있었다. 풋내기가 주춤거리며 다가오고 있었다. 차웅은 경찰을 바라봤다. 그는 어쩐지 비웃는 것도 같았다.

 

    “적법하다면서요.”

 

    경찰은 그의 눈을 피했다. 차웅은 순순히 손을 들고 무릎을 꿇었다. 풋내기가 그의 양손에 수갑을 채웠다.

 

 

    8월 20일 am 2:34

 

    “저 친구, 계속 경위님만 찾고 암말도 안 하는데, 거, 어지간하면 좀 들어가 보지요? 아니, 뭣이든 간에 이름은 따야 할 거 아뇨. 거, 우리도 계속 저 치에게 매달려 있을 수도 없고. 지금 시각이 몇 시요. 시각이. 뭐 하는 것도 없어 보이는구만. 협조를 받았으면 사람이 고마운 줄 알아야지……. 에잉.”
    “죄송합니다. 제가 들어가 보지요.”

 

    밥 먹는다, 씻는다, 보고한다, 이젠 변명 거리도 떨어졌다. 더는 시간을 끌 수 없었다. 결국, 경찰은 취조실로 들어갔다. 좁았다. 철제 탁자와 의자 두 개가 놓여 있었다. 차웅은 수갑 찬 손을 다리 사이로 늘어뜨리고 바닥만 내려다보며 앉아 있었다. 경찰이 앞에 앉자, 그가 고개를 들었다. 환한 형광등 아래서 그늘진 그의 얼굴에는 아무런 표정도 없었다. 차웅이 말했다.

 

    “풀어 주세요.”
    “미안하다.”
    “전 결국 풀려납니다.”
    “안다. 나도 내 잘못을 안다. 나는 피해자에게 누명을 씌워 살인 용의자의 도주를 도왔지. 게다가 그게 아들이고. 이제 난 공범자다. 옷을 벗고 정당한 처벌을 받겠다. 하지만 24시간… 아니, 12시간 후에 받으마. 난 너를 서울로 송치시키고, 일을 복잡하게 만들고, 갖은 핑계를 대서 자리를 비우고, 지연시키고, 절차를 꼬고, 서류를 빼먹고…… 평생 내가 그토록 경멸했던 야비한 짓들을 죄다 써서라도 시간을 끌 거다. 이해해 달라고 하진 않으마.”
    “전 결국 풀려납니다.”
    “상관없어. 12시간만 지나면, 난 널 일주일이라도 붙잡아 둘……”
    “그래도 전 결국 풀려납니다. 아저씨. 모르시겠어요?”

 

    경찰은 차웅을 보았다. 차웅은 눈빛에 깃든 것은 차라리 연민에 가까웠다. 경찰은 소스라치게 놀랐다.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는 가능성이 머리를 스쳤다.

 

    “너, 설마.”
    “약속을 먼저 어긴 건 아저씨예요. 그리고…….”
    “웅아!”
    “제 권리가 적혀 있는 법전은 두 시가 지난다고 사라지지 않아요.”
    “아니다. 어림없는 소리다. 내가 선이를 잡을 거다. 네가 풀려나기 전에, 내가…….”
    “선이도 결국 풀려납니다. 15년이든, 20년이든 결국에는.”

 

    경찰은 알고 있었다. 많은 사람이 자신의 감정을 세월에 녹여 흘려보내지만, 어떤 사람은 그렇지 않다는 걸. 그런 이들의 감정은 세월에 마모되지 않는다. 격정은 식지 않으며, 사랑은 줄지 않고, 증오는 영원하다. 그 사람의 인생이란 감정의 부산물에 불과해진다. 차웅이 그랬다. 그는 30년이 지나도 오늘과 완전히 똑같은 집요함으로 선이를 쫓을 것이다. 나이프를 쥘 힘만 있다면, 그는 결국 선이를 죽일 것이다. 경찰은 덜컥 겁이 났다. 그는 차웅의 가슴 속에 들어 있는 것의 크기와 지독함에 짓눌렸다. 차웅은 지금 협박이나 엄포를 놓고 있는 게 아니었다.

 

    “하지만 그렇다면…… 네가 정녕 그렇다면, 왜? 왜 풀어달라는 거냐? 지금이나, 15년 후나 네겐 아무런 차이도 없는 거 아니냐?”
    “제가 하는 게 복수가 아니라 정의이길 바랐습니다. 엄니에게 예의를 지키고 싶어서. 언제나 법을 지키라 하신 분이니……. 저만 가지고 있는 법전을 따르고 싶지 않았습니다.” 차웅은 고개를 들어, 낮은 천장과 형광등 너머 무한히 뻗어 있는 하늘을 보았다. “정의란 아마도 이 한 몸에 갇힐 만큼 작은 것은 아닐 테지요.”

 

    그는 고개를 내려 경찰을 보았다.

 

    “풀어주세요.”
    “그 말은, 내게 기회를 주겠단 말이냐? 지금이라도 풀어주면, 2시 넘어 선이를 죽이지 않겠단 말이냐?”
    “…….”
    “대답해!”
    “제가 그걸 약속하면 풀어주시겠습니까?”

 

    경찰이 의자 등받이에 몸을 기대었다. 그는 얼굴을 가렸다.

 

    “널 지금 풀어주는 건, 선이의 죽음을 허락하는 거겠지…… 2시까지.”
    “법이 허락하는 것처럼.”
    “법…….”
    “…….”

 

    경찰은 손에 얼굴을 파묻었다. 그리고 아주 오랫동안 말없이 앉아 있었다. 차웅은 기다렸다. 시간이 흘렀다. 마침내 경찰이 무척이나 지친 목소리로 말했다.

 

    “너, 정말 2시 지나면, 안 죽일 거냐.”
    “약속합니다.”
    “조건이 있다.”
    “예.”
    “나도 같이 간다.”

 

    찰나의 순간, 차웅의 얼굴에 미소 같은 것이 스친 것 같았다. 그가 답했다.

 

    “멱살이라도 잡고 끌고 가려 했습니다.”
    “……왜? 애당초 날 왜 부른 거냐? 그때가 가장 중요한 시간이었는데. 곧장 선이를 뒤쫓았더라면 잡을 수도 있었어. 대체 왜 날 기다린 거냐? 같이 가려고? 왜?”
    “글쎄요.”
    “난 이제 몸을 던져서라도 선이를 살릴 거다.”
    “상관없습니다. 그것도 아저씨의 사정이지요. 선이나 저나…… 우린 저마다의 사정에 따를 뿐이겠지요.”
    “네가 만약…….” 경찰이 차웅에게 몸을 기울였다. 불길하고 섬뜩한 생각에 온몸이 오싹했다. “내 보는 앞에서 선이를 죽이려 하는 거라면, 그렇게 내게도 복수를 하려는 거라면…….”
    “글쎄요.”

 

    경찰이 이를 악물었다.

 

    “상관없다. 같이 가자.”

 

    30분 후, 그들은 서를 나왔다.

 

 

    8월 20일 am 5:02

 

    날이 밝고 있었다. 해가 마저 뜨지도 않았는데 벌써 대지가 들끓고 있었다. 숨이 턱턱 막혔다. 이제 9시간 남았다. 차는 경찰서 앞에 있었다. 차웅이 차를 몰았다. 차는 곧 고속도로로 진입했다.

 

    “부산 방향이구나.”
    “예.”
    “선이가 일본으로 뜰 거라 생각하는 게냐?”
    “아뇨. 선이는 부산 비치락 페스티벌로 갈 겁니다.”
    “비치… 뭐?”
    “시끄러운 야외 음악회라고 생각하면 돼요.”
    “음악회? 도망 다니면서 그런 곳을 왜 가?”
    “선이는 도망 다니고 있는 게 아닙니다.”
    “뭐?”

 

    차웅이 경찰을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아저씨는 정말 선이를 모르네요.”
    “그건 또 무슨 소리냐?”
    “선이가 울 엄니를 죽이고도 제 살 생각만 할 아이라고 생각하셨습니까? 선이는 착한 앱니다.”

 

    경찰은 말문이 막혔다.

 

    “아저씨가 묘를 그렇게 쓰지 않았더라면, 혹은 제 어머니 묘만 있었더라면, 아마 선이는 도망가지 않았을지도 모르지요. 그곳에서 저를 기다리고 있었을 수도 있습니다.”
    “난……. 난 모르겠다.”
    “선이는 사지死地를 찾고 있어요.”

 

    경찰은 신음하며 의자에 몸을 묻었다. 그는 자신이 이제껏 선이가 아니라 그저 일반적인 도망자를 쫓고 있었음을 깨달았다. 그 순한 아이의 마음이 지금 어떨지, 왜 이제껏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었을까? 선이는 웅이 엄마를 무척 좋아했었다. 울고 싶을 정도로 부끄러웠다.

 

    “……그래서 그 음악회에 선이가 갔다는 게 네 직감이냐, 아니면 어떤 증거라도 있는 거냐?”
    “글쎄요.”
    “그래. 어차피 시간은 흐른다. 가 보자. 예상이 틀린다면, 그때 가서 딴말 말아라.”
    “예.”

 

 

    8월 20일 am 11:36

 

    페스티벌은 12시부터 시작이었다. 그들은 높은 언덕에 앉아 무대를 조망하고 있었다. 경찰은 속속들이 밀려드는 엄청난 인파에 기가 질렸다. 그가 본 야외음악회는 가끔 구청에서 주관하는 음악회 정도였다. 경찰의 상상력도 거기까지가 한계였다. 그러나 비치락Beach Rock 페스티벌은 그의 상상과 너무 달랐다. 페스티벌의 무대는 해변에 설치됐다. 공연장에는 울타리도 없었고, 입구도 없었고, 입장료도 없었다. 당연히 락에 관심 있는 사람뿐만 아니라 정말 모든 종류의 사람들이 모일 수밖에 없었다. 바다에서는 벌써 물놀이가 한창이었고, 해변에는 돗자리를 펴놓고 시끄러운 소풍을 즐기려는 가족들로 가득했으며, 바람을 쐴 겸 지팡이를 짚고 나온 어르신들도 종종 보였다. 그곳은 경찰의 경험과 상상을 뛰어넘는 별세계였다. 경찰은 군중과 멀리 떨어져 있는데도 현기증이 돌았다.

 

    선이가 과연 이곳에 올까? 도주자가 이런 페스티벌에 온다는 것이 일견 있을 수 없는 일로 보이지만, 경찰은 종국에 이른 범죄자들이 상식보다는 차라리 개인의 성향이나 추억에 좌우된다는 것을 익히 알고 있었다. 코끼리가 죽을 곳을 찾으러 가는 것처럼. 그러나 ‘종국’이란……. 사실 선이의 처지는 아직 그렇게 말할 정도는 아니었다. 얼마든지 숨을 수 있었다. 선이는 똑똑한 아이다. 그가 원하기만 한다면 아직 도망갈 방법은 많이 남아 있었다. 그러나 혹여 정말로, 선이가 이곳에 온다면……. 경찰은 자꾸만 종국이라는 불길한 단어가 머릿속에서 맴돌았다. 아니다, 아니다…….

 

    왔다 하더라도, 저 군중들 사이에서 어떻게 선이를 찾을 수 있단 말인가? 공연이 시작되면 저 넓은 해변이 사람들로 가득 찰 것이다. 경찰 대대 병력을 투입해도 저 사람들을 다 진압할 순 없다. 하물며 이 인파 속으로 도망가는 한 명을 잡는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이다. 그러나 경찰은 안도할 수 없었다. 차웅이 그 불가능성을 모르는 것은 아닐 텐데, 그는 태연하기만 했다. 그 여유가 경찰을 불안하게 했다. 차웅은 근처 편의점에서 삼각 김밥과 음료수를 가져와 디밀었다.

 

    “드세요.”

 

    그리고 자기도 먹는데, 어제 2시 이후로 처음 가지는 끼니였다. 차웅은 느긋했다. 이전까지의 신속함이 없었다. 그는 어떤 확신에 차 있는 걸까? 차웅은 그런 경찰의 생각을 읽고 말했다.

 

    “기다려야죠.”
    “뭘?”
    “공연을요.”

 

    경찰은 더 묻지 않았다. 그들은 말없이 삼각김밥을 먹었다. 나무 그늘에서, 그들은 하늘이 새하얗게 작열하는 것을 보았다. 더웠다. 어제 같았다. 그저 앉아 있는데도 땀이 흘렀다. 저 아래서 사람들은 어떻게 저렇게 놀고 있는지 신기하기만 했다. 경찰이 말했다.

 

    “웅아.”
    “예. 아저씨.”
    “나, 정말 왜 데려온 거냐? 내게까지 복수하려는 건 아닐 게다. 너도 착한 애잖니.”
    “……글쎄요.”

 

    발치에서 굉음이 터져 나왔다. 공연이 시작되었다.

 

 

    8월 20일 pm 1:45

 

    경찰은 차웅을 따라가지 못했다. 그는 이 엄청난 군중 속에서 제 몸 하나 가누는 것도 힘들었다. 하지만 차웅은 경찰의 위치를 놓치지 않으면서도 선을 쫓아 군중을 헤쳤다. 차웅은 이런 락 페스티벌에 익숙했다. 그와 선이는 음악 취향이 비슷했다. 그래서 그들은 함께 페스티벌에 즐겨 다니곤 했었다. 지금 무대에서는 공연하고 있는 락밴드는 차웅이 먼저 알고 선이에게 소개해 줬지만, 정작 선이가 훨씬 더 좋아하게 된 밴드였다. 선이는 분명 이곳에 있었다. 차웅은 문득, 선이와 함께 차 안에서 이 밴드의 노래를 크게 틀어 놓고 노래라기보다는 악을 목청껏 고래고래 지르던 기억이 떠올랐다. 좋은 시절이었다. 차웅은 인상을 찌푸리며 그런 추억들을 몰아냈다. 그는 고개를 들고 사방을 두리번거렸다.

 

    “로튼 스컬Rotten Skull…….”

 

    그는 선이가 속한 공연 동아리를 알고 있었다. 차웅도 그 동아리에 껴서 몇 번 함께 한 적 있었다. 선이가 이곳에 있다면, 분명 그들과 함께 있을 것이었다. 차웅은 온갖 동아리들의 깃발로 정신없는 인파 속에서 로튼 스컬의 깃발을 찾아 돌아다녔다. 시간이 좀 걸렸지만 찾을 수 있었다. R과 S가 장식적으로 새겨진 해골이 그들의 심벌이었다. 차웅은 인파를 헤치며 그쪽을 향했다. 그들은 군중 한복판, 무대의 시선이 곧장 떨어지는 곳에서 슬램존을 형성하고 미친 듯이 날뛰고 있었다. 그들은 마구잡이로 뒤엉켜 서로의 몸들을 부딪쳐대며 격정과 즐거움을 마음껏 분출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한가운데 선이 있었다.

 

    그는 왜소하였으나, 누구보다도 격렬히 뛰고, 흔들고, 부딪혀댔다. 그런 선이를 발견한 차웅은 습관처럼 걱정이 먼저 들었다. 그는 선이가 슬램을 할 때마다 걱정하곤 했다. 저 가느다란 팔다리가 부러지지 않을까, 밀려 깔려 죽진 않을까, 하고 말이다. 그러나 선이는 항상 무사했다. 지금도 그랬다. 그렇게 광란의 순간이 이어졌다. 차웅은 기다렸다. 마침내 음악이 끝났다. 사람들은 뛰는 걸 멈췄다. 그리고 앙코르를 외치기 시작했다. 방금 곡이 이 밴드의 마지막 곡이었던 모양이다. 선이는 주먹을 휘둘러가며, 누구보다도 크게 소리치고 있었다. 앙코르, 앙코르! 차웅은 주머니에 든 나이프를 더듬었다. 그리고 선이에게 다가가, 아직도 자신을 눈치 채지 못하고 있는 선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선이 돌아봤다.

 

    “형. 왔어?”

 

    그는 땀에 흠뻑 젖어 있었고, 무척 즐거운 듯 웃고 있었다.

 

    “응.”
    “여기가 좋겠어.”

 

    차웅은 시계를 봤다. 1시 58분이었다. 그리고 뒤를 돌아보았다. 수많은 머리통 사이로 언뜻, 경찰이 보였다. 제복 때문에 구분하기가 쉬웠다. 모든 게 완벽했다. 날씨까지도 사람을 죽이기에 참 좋은 날씨였다. 차웅이 나이프를 꺼냈다. 그러나 칼끝이 주머니에서 다 나오기도 전에, 군중이 한 목소리로 환호성을 질렀다. 밴드가 앙코르를 받아들인 것이다. 군중들의 발 구름에 백사장이 울리기 시작했다. 슬램존이 다시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선이 소리쳤다.

 

    “잠깐! 이것만 끝나고!”

 

    그리고 선은 괴성을 지르며 다시 그 엄청난 혼란 속으로 몸을 던졌다. 차웅은 시간을 보았다. 2시였다.

 

    “그래.”

 

 

    8월 20일 pm 2:06

 

    선은 즐기고 있었다. 그를 둘러싼 모든 것들에서 자아낼 수 있는 기쁨이란 기쁨은 한 방울도 남김없이 듬뿍, 온몸으로 마시고 있었다. 지금이 삶의 마지막이라는 사실은, 충만한 이 순간을 더 강렬하게 비춰주고 있을 뿐이었다. 그는 뛰었다. 그는 부딪혔다. 그는 소리 질렀다. 그는 즐거웠다. 그는 눈부셨다.

 

    차웅은 경찰과 약속을 지키고자 했으며, 자신의 행위가 복수가 아니라 정의가 되길 바랐었다. 그는 선이의 재판을, 법이 자신에게 가하는 질책으로 여길 준비가 되어 있었다. 그러나 빛나는 태양과 해변, 그리고 면식 없는 친구들과 신나게 뛰고 있는 선이를 보며, 그는 이곳이야말로 선이의 사지여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음악은 2시 6분에 끝났다. 그리고 군중이 다음 밴드를 기다리며 거친 숨을 진정시킬 때, 차웅이 선이의 심장에 칼을 찔러 넣었다.

 

 

    8월 20일 pm 2:06

 

    경찰은 필사적으로 차웅과 선이를 찾아 군중 사이를 헤집고 다녔다. 하지만 그건 그만의 착각이었을 뿐, 그는 파도에 휩쓸리는 해조류처럼 군중의 종잡을 수 없는 흐름에 이리저리 떠밀려 다니고 있을 뿐이었다. 그는 끊임없이 시계를 봤다. 2시가 지났다. 하지만 그는 살아있는 선이를 보기 전까지는 안심할 수 없었다. 그래서 2시 6분, 앞쪽에서 사람들의 비명과 살인이라는 외침이 들릴 때, 그는 두 눈을 질끈 감고 신음처럼 중얼거렸다.

 

    “기어코.”

 

    무릎에 힘이 풀렸다. 2시는 6분이나 지났다. 차웅은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선이와마지막으로이야기조차나누지못했구나. 그는당장에자리에풀썩주저앉고싶었지만, 그래도 억지로 몸을 추켜올리며 소리 난 쪽을 향해 걸어갔다. 방금 전까지는 굉음으로 시끄러웠던 해변이 지금은 어쩌면 그렇게 조용한지. 그 순간, 거리가 꽤 있는데도 차웅의 목소리가 똑똑하게 들렸다.

 

    “저기, 이 자의 아버지가 있다!”

 

    웅성거리는 소란이 일어났다. 살인을 보고 공포에 질린 비명이 아니라 무언가 조금 다른, 그런 술렁임이 일었다. 그리고 바다가 갈라지듯, 경찰 앞에 있던 군중들이 갈라지고, 죽은 아들과 아버지를 잇는 길을 열었다. 그리고 그 사이에 징 박힌 가죽옷을 입은, 선량하지만 흥분한 청년들에게 팔다리가 붙잡혀 있는 차웅이 있었다. 청년들은 차웅을 경찰 앞으로 끌고 왔다. 그리고 누군가 아직도 선이의 뜨거운 피가 묻어 있는 나이프를 경찰의 손에 쥐어주었다. 사람들은 말이 없었지만, 모두 알고 있었다. 경찰에게 ‘권리’가 있음을. 차웅은 그의 앞에서 맨 가슴을 드러내고 있었다. 그러나 경찰은 그런 차웅을 지나쳐, 쓰러져 있는 선이에게 다가가 무릎을 꿇었다. 선이의 등 밑으로 붉은 모래들이 조금씩 넓어지고 있었다. 그는 아직도 따뜻했으며, 표정이 경찰보다 평온했다. 경찰은 선이의 머리를 부둥켜안고, 소리 없이 울었다. 가장 가까이 있던 사람만이 아주 희미하게, ‘지났는데…….’ 라는 흐느낌을 들을 수 있었다.

 

    잠시 후, 경찰은 선이의 머리를 조심스레 누이고는 일어섰다. 청년들은 차웅을 죄고 있는 팔에 더욱 힘을 주었다. 차웅이 말했다.

 

    “복수는 아니었어요. 하지만 미안해요.”
    “…….”
    “법이 허락한 걸 하세요.”

 

    경찰은 그제야 차웅이 자신을 동행시킨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선이의 사지死地가 이곳이라면, 차웅의 사지는 선이의 시체 위였던 것이다. 그는 차웅을 보았다. 화강암 같던 무표정이 벗겨지고, 너무나 인간적인 얼굴이 드러나 있었다. 말랑거리고, 상처 입고, 슬퍼하는, 착한 아이의 얼굴이었다. 경찰은 나이프를 떨어뜨렸다. 그리고 차웅의 얼굴을 양손으로 잡고, 이마를 맞대었다. 경찰의 떨림이 차웅에게 이어졌다. 경찰의 눈물이 차웅의 뺨에 흘렀다. 경찰은 무어라 말하려고 한참을 뻐끔거리다가, 결국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차웅이 울기 시작했다.

 

    한참이 지나 경찰은 이마를 떼었다. 그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살 이유 없이도 그저 살게 될, 아무것도 아닌 세상이 보였다. 경찰은 군중 속으로 천천히 사라졌다. 해변에는 죽은 선이와, 피 묻은 나이프와, 차웅의 영원한 울음만이 남았다.

 

 

 

< 선정평 >

 
소설 「24시간」은 가상의 “법” 위에 존재한다. 소설 속 가상의 법령인 “복수 특별법”은 우리 사회의 정서적 공감대 위에서 개연성을 찾는다. 복수 특별법은 피해자 가족이 사건 발생 이후 24시간 이내 범인을 잡으면 살해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하는 법령이기 때문이다. 법이라는 이름을 달고 있지만 이는 본능과 충동에 대한 허용이라고 할 수 있다. 법이라는 제도, 공권력과 수사를 거치지 않고 스스로 적을 해하는 것, 사실 이는 제도와 법의 틀 안에 살아가야만 하는 문명인들이 억압해온 욕망이기도 하다. 수많은 스릴러 영화들이 사적인 복수를 소재로 삼는 까닭도 여기에 있다. 그런 점에서 「24시간」은 최근 유행하는 스릴러 영화나 범죄 드라마의 문법과 닮아 있다. 유행하는 서사적 소재는 당대 대중의 판타지를 반영하는 경우가 많다. “복수 특별법”이라는 상상력도 마찬가지이다. 이 상상력의 근간에는 법과 제도, 국가와 공공성에 대한 불만과 불신이 있다. 불신의 재구성, 판타지를 통해 결핍을 메우는 암울한 현실의 그림자이다.
    (강유정 / 문학평론가)

 

===== 작가와 6문6답 =====

 

1. 우선 선정된 소감을 간단히 밝혀주세요. ^_^

  기쁩니다. 수상은 격려입니다. 돌이켜보면 글쓰기에 회의가 들 때마다, 저 멀리서 무심한 척하던 세상이 다가와 어깨를 툭 치며, “계속 혀봐, 이제까지 해온 게 아주 맹탕은 아녀.” 하고 작은 격려를 해준 듯합니다. 이번도 그렇습니다.

 

2. 이 작품을 처음 떠올렸을 때 어디서 무얼 하고 계셨나요?

  잘 기억나지 않습니다. 다만 모티브는 어느 역사서에서 따왔습니다. 중국 어느 시기(송이었던가?)에는 친인척이 살해당한 경우, 바로 ‘당장’에 그 살인자를 죽이면 무죄였다고 하더군요. 그러나 나중에 복수하면 그건 살인으로 처벌받는다고 했습니다. 재미난 법이라 생각했습니다. 그것을 현대로 옮긴 것이지요. 그러니 아마 책 읽는 도중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3. 글을 쓸 때 특별히 듣는 음악이 있다든가, 자기만의 습관이 있다면요?

  글을 쓸 때는 아무 음악도 듣지 않습니다. 어떤 음악도 집중을 흐트러뜨립니다. 습관이랄 것은 없고, 막힐 때는 산책하며 고민합니다. 저녁 시간엔 워낙 약속도 많고 딴 짓도 많이 해서, 가능하면 아침에 일어나서 12시까지 오전 시간을 할애해서 글쓰기 시간을 따로 만들려 노력합니다. 잘 안 지켜질 때도 많지만요.

 

4. 작품을 발표하기 전(혹은 퇴고를 하신 후)에 가장 먼저 보여주는 사람이 있나요?

  보통 한규현과 이옥주입니다. 그 외에도 항상 제 글을 봐주는 지인들이 있습니다. 보통 일차로 완성해서 그들에게 보여주고, 그 평을 취합하여 수정하고, 그다음에 퇴고를 거듭하여 완성합니다. 그들이 정말 큰 도움이 됩니다. 아마 가장 오랫동안 제 글을 읽어 준 이는 한규현과 이옥주인 것 같습니다. 제가 고등학생일 때부터 쭉 읽어 주었으니까요.

 

5. 평생 또는 두고두고 써야겠다고 마음먹은 주제가 있다면 소개해 주세요.

  딱히 그런 것은 없습니다. 저는 그저 제 마음에 드는 소설을 쓰기만을 항상 바랍니다. 그리고 다음 작품이 이전 작품보다 좋기만을 바랄 뿐입니다.

 

6. 지금 막 쓰고 있는 (또는 품고 있는) 작품의 예고편을 들려주실 수 있나요?

  과연 쓸 수 있을지 잘 모르겠지만, 도서관과 사서에 대한 이야기를 생각중입니다. 세상에 세 가지 대도서관이 있다는 가정입니다.
  1. 개미의 도서관. 호르몬으로 정보를 저장하고 전달한다. 일시에 오류 없이 무한한 양의 지식을 흡수할 수 있다. 정보는 절대적인 지식의 총체로, 끝없이 정보가 뻗어 나간다. 하나의 거대 개미집이 사서 역할을 한다.
  2. 돌고래의 도서관. 하나의 예술작품이자 바다 속의 악기. 열람하고자 하는 정보를 독자적으로 배열하여 연주해야 한다. 이를 열람곡이라 한다. 그리고 그에 따라 열람할 수 있는 진실의 종류나 깊이가 달라진다. 그런데 이 도서관은 이 '열람곡'들을 보관하는, 무한한 노래들의 아카이브다. 즉 열람곡을 통해 열람하는 것은 과거의 열람곡이고, 새로운 열람곡은 다시 도서관에 기록되는 식이다. 노래는 무한히 풍요로워진다. 돌고래들은 다른 기록들을 저장해야 한다는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 당대 최고의 연주자/가수가 사서를 맡는다. 이는 전 바다에서 무한한 영광이다. 사서에겐 사서의 노래가 있다. 그는 인간들의 도서관이 너무 추하다고 생각해서 반대한다. 그는 개미들의 도서관과 나무의 도서관에 담긴 미학은 깊이 인정하고 있었다. 그는 특히 나무 도서관의 미학, 한정된 패턴이 반복/변용하며 무한한 정보를 담아내는 그 미학을 나름대로 반영한 열람곡들을 작곡하여 그로 유명하기도 하였다. 도서관의 위치는 마리아나 해구다. 너무 시끄럽기 때문인데, 그렇게 깊은 데에 있지 않으면 길 가는 고래들이 노래에 홀려 자기 가족을 잃어버리기 때문이다. 그러나 좁고 깊은 해구는 울림통 역을 한다. 그래서 이곳은 항시 거대한 콘서트장이다. 그래서 고래들은 이곳을 피해 간다. 물론 일부러 오는 용감한 고래들도 있다. 하지만 이 해역에 들어오는 건 쉬워도 벗어나려면 많은 각오가 필요하다.
  3. 나무의 도서관. 두 개체의 대나무가 서로의 간섭 패턴으로 이 땅 위에 벌어진 모든 사건을 기록함. 그러나 패턴은 언제나 하나다. 패턴은 정보가 추가 될수록 좀 더 정교하게 변해 간다. 두 그루의 대나무들은 그 패턴의 무한한 반복/변용을 구성한다. 문제는 그 패턴으로 접촉할 수 있는 단초인데, 바람이 댓잎에 스치는 소리가 중요한 요소이며, 대나무 잎을 씹는 것은 책갈피를 꽂는 용도가 된다.
  이 대도서관 사서들은 각자 만나면 언제나 번역 이야기를 나누곤 하는데요. 그렇게 평화로이 살던 이들에게, 어느 날 인간이 만든 ‘무한의 도서관’의 사서, 눈 먼 사서가 와서 감히 대도서관으로 승격시켜 달라고 합니다. 개미, 돌고래, 대나무는 인간의 언어가 가지는 그 불완전함, 추함, 산만함에 놀랍니다.
  하지만 이를 통해 어떤 이야기를 짤 수 있을지 고민되네요. 아직은 소재만 있는 단계입니다. 사실 이외에도 쓰고 싶은 소재는 여럿 있으니까요.

 

 

 

   《문장웹진 8월호》

 

kakao

댓글남기기

  Subscribe  
Notify o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