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_차세대2차_시] 소문 외 3편

 

[2014년 2차 차세대예술인력육성 문학분야 선정작 ]

 

 

소문

 

 


박성준

 

 

 

    벅찬 듯이 김은 외쳤다 이제 밟으라고, 그해 겨울 멧돼지를 잡으려던 덫에 토끼가 우연히도 자주 걸렸다 선임이었던 김은 포박당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토끼를 들에 던지며, 토끼는 비탈 아래쪽으로 쫓는 거라고 그럴 수밖에 없는 신체구조에 대해 설교했다 나는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을 용서했던 일들을 떠올렸다가 수압을 가늠하려고 잠수함에 토끼를 데리고 들어갔다던 과거의 기후에 대해 생각했다 대체 누가 책임을 뒤집어써야 하는가 김은 죽어가는 토끼를 내게 밟으라고 지시를 내렸다 망설임은 어떤 증오도 할 수 없는 얼굴로 김을 바라보는 것에 전부를 썼지만, 내키지 않는다고 해서 실핏줄이 터진 토끼의 민감한 귀가 더 낮은 곳을 감당해 낼 수 있는 건 아니었다 군화가 토끼의 숨을 밟았다 곧 떨고 있던 몸이 쑥 꺼지는 순간이 있었다 용기란 얼마나 우리에게 익숙한 경고인가 예측보다 아래 있었던 계단 칸을 잘못 밟은 듯 다리가 풀려서 나는 주저앉았다 선임들의 낄낄거리는 소리는 사람의 것이었다 그런 행동들이 처음에는 그럴듯한 우연 같았지만 죄다 필요에 의한 처사였다 그때 나는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양의 귀를 붉혔을까 그 선임이었던 김은 시를 쓰는 사람이었다

 

 

 

 

 

 

아름다운 재료

 

 

 

엄지는 반지하 방에서 복숭아를 깎았다
좀 더 무르기 전에 처리해야 할 연락이 있었기 때문이다
때마침 창가에는 발자국과 함께 관음들이 지나갔다
사람은 모두 언젠가 죽는다지만
그가 바로 어제 죽었다는 사실이 엄지의 식욕을 더 돌게 했을 것이다
입가와 두 손이 자꾸만 끈적여 왔다
속 깊은 신발처럼 빛이 들지 않는 반지하 방
엄지는 어둠 곁을 꼼지락거리며 꽤나 여럿을 생각했다
그게 다였다
아직도 개비로 담배를 파는 가게가 있다는 버스정류소는
꼭 한두 번씩 버스가 정차도 않고 지나갔지만 그런 일들이 있었기 때문에
버스를 기다리는 게 몹시 좋았다
동짓날에는 팥죽 대신 호빵을 호호 불어 먹는다든가 값싼 부적을 지갑 안쪽에 챙긴다든가 하는 당부들은
망자가 된 그가 가르쳐준 미신이었지만
모두 그의 탓만은 아니었다
여름날이면 팔꿈치와 왼쪽 복사뼈가 까매지는 증상이
그를 닮아 가는 과정이라고 해도, 그것은 그저 혼자 묻는 질문이었다
엄지는 울지도 않고 복숭아를 다섯 개나 해치웠다
여섯 개째, 빚을 지는 마음으로
다시 거울을 본다
복숭아에 벌레 먹은 부분을 앙 하고 뱉어내 보지만
썩은 곳이 더 달콤하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가 없다
엄지를 알던 사람들 중 이제 하나가 죽었으니
여러 명의 엄지들 중에 단 하나의 엄지가 죽은 셈,
늘상 고아이거나 많은 아버지들처럼
대낮은 환했다

 

 

 

 

 

 

건강한 질문

 

 

 

    약국을 다녀온 뒤로 대낮에도 불을 켜고 삽니다 대문을 초록으로 칠했지만 좀체 좁아지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니까 국물을 낸 멸치들은 버려집니다 액자를 떼어낸 자리처럼, 사는 동안의 냄새는 감출 수가 없는 법입니다

 

    기념이 되는 일들은, 전원도 켜지 않는 텔레비전을 오래 보고 있던 여자와 인사를 나눈다거나 간이 센 김장 김치의 밀봉을 푸는 날처럼 그렇게 시작됩니다

 

    도서관에 연체된 도서들은 아직까진 새가 아닙니다 장마철마다 손목시계에 성에가 끼는 이유도 마찬가지지요

 

    그 아름답던 중국 여자는 도망을 갔습니다

 

    밤새 비가 내린 천막 위에는 웅덩이가 생겼습니다 사내는 자신 있게 장대로 물을 쑤시고 있습니다

 

    천막 아래에서는 너무 예의가 바른 물들이 돌이 되곤 합니다

 

 

 

 

 

 

백색의 단호

 

 

 

1
701호 남자는 그림을 그만두었다
아주 오래전 일이다
헌데 그때부터 남자의 방광은 중력을 견디기가 힘들다
아픈 아랫배를 쥐고 골똘히 각오를 할 때면, 왜 튜브 물감은 죄다 흰색이 먼저 굳는지
닦아도, 닦아도 자라나는 제 털에 대해 고민을 하다가
오래된 천장에서 자주 새는 모래에 대해 불쑥
화가 났다
윗집은 남자 둘이 동거를 하고 있었다

 

2
701호의 아내는
남자가 없는 동안에만 부업으로 파마를 말았다
아내는 기관지가 좋지 않아 고민이었다
살아 움직이는 것들의 움직임은 상투로부터 자유로운 것이 아니었지만
천장에서 떨어진 모래는 시야보다 적막했다
집에 파마약 냄새가 진동하는 것을 못 견뎠던 남자 탓에
베란다에 앤틱풍 식탁 의자를 세우고, 아내는 무허가로 이 동네 대다수 여자들의 머리를 해줬다
햇빛이 많은 곳마다 수없이 소문들이 증식되었지만
소문에 의하면 701호는 자식을 잃은 부모였다

 

3
주말이면 내외는 어김없이 예배당을 찾았다
꽤나 엄숙한 습관이었다
방치된 염색약처럼 서로가 엉키면서 더 짙은 검정으로 기도를 드리고 눈가에서
눈물 대신 모래를 쏟아내며 서로의 불구들을 이해하려 했다
그것은 오래된 천장의 문제였지
기도의 문제가 아니었다
기도는 오른손과 왼손이 서로 미는 힘의 강도에 의해서만
성립되었다

 

4
7층에서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갑작스레
천장에서 폭우처럼 모래가 쏟아졌다
남자는 아랫배를 쥐었고 여자는 유독 폐가 아팠다
좀 더 절실해지기 위해서는 속마음을 들키지 말아야 했지만 습관을 고치기란 여간 힘들다
하물며 모래와 모래 사이 틈들이 그들을 살게 했고
기도 대신 상대방의 손을 잡아 깍지를 꼈다
믿음은 신뢰에서 비롯되지 않는다
그 강력한 경고에도 불구하고 아무도 애원하지 않았다

 

 

 

< 선정평 >

 
선임 병사와 후임 사이에 있었던 폭력적 권력 관계가 이 시가 말하고자 하는 전부는 아닐 것이다. 인간에게 잠재되어 있는 가학성과 피학성은 뫼비우스의 띠처럼 한 몸에서 다른 얼굴을 보인다.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라고 변명하며 군화 신은 발로 토끼를 밟아 죽이는 자의 심리 상태가 감각적으로 표현되었다. 실핏줄이 터진 토끼의 민감한 귀와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토끼를 밟은 자의 변명 대신 붉어진 화자의 귀, 이상한 심리가 뫼비우스의 띠를 타고 돈다.
    (최정례 / 시인)

 

===== 작가와 6문6답 =====

 

1. 우선 선정된 소감을 간단히 밝혀주세요. ^_^

  부끄럽고, 기분이 좋습니다. 누구에게라도 지지 받고, 격려를 받고 싶은 여름이었습니다.

 

2. 이 시는 언제, 어디서 영감을 얻어서 쓰게 되셨는지 간단한 시작 메모를 좀 부탁드릴게요.

  저는 어떤 글이든 쓰는 동안에는 늘 괴로워하는 편인데, 이번 원고는 생각보다 고통이 덜했던 것 같습니다. 아마도 각 편마다 각각 누군가를 생각하면서 썼기 때문인데요. 사실 좀 화해한 부분이 적지 않아서 부끄럽네요. 저는 시에서 테마(소재)보다는 정서를 믿는 편입니다. 그래서인지 어떤 강력한 정서가 사라진 상태라는, 이 끔찍함에서 도약하는 방법을 아직은 잘 모르고 있는 듯합니다.

 

3. 글을 쓸 때 특별히 듣는 음악이 있다든가, 자기만의 습관이 있다면요?

  여러 번 이야기를 한 것 같은데, 저는 늘 모든 글을 엎드려서 씁니다. 지금 이 문답을 쓰면서도 엎드려 있습니다. 요즘 목과 어깨가 자주 아파서, 글쓰기 습관을 좀 바꾸고 싶다는 생각이 드네요. 좌식 의자를 샀지만 잘 앉지 않거든요.

 

4. 동인 활동을 하거나 글을 막 완성했을 때 가장 먼저 읽어 주는 1차 독자가 있나요?

  ‘는’ 동인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우리 동인은 서로 달라서 소중한 친구들입니다. 시를 쓰고 나면 꼭 소리를 내서 읽어봤는데, 그래서 내 시의 첫 독자가 나라고도 말한 적이 있는데, 언제부턴가 육성으로 읽는 시보다 눈으로 읽는 시를 쓰고 있네요.

 

5. 일평생 작가로 살면서 이것만은 꼭 쓰겠다, 라고 다짐한 주제나 소재가 있나요?

  욕심을 좀 더 버리는 시를 쓰고 싶습니다. 시를 쓰면서 포기해야 하는 순간들을 줄곧 경험하곤 했는데, 포기와 욕심 사이에서 늘 배회하다 그치는 것 같습니다. 진짜 포기를 쓰고 싶어요.

 

6. 향후 작품 활동 계획을 좀 부탁드립니다.

  다음 시집은 고통보다 소통이 되고 싶습니다.

 

 

 

   《문장웹진 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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