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 속의 우주

 

[편집위원 노트]

 

 

숲 속의 우주

 

 

오창은(문학평론가, 본지 편집위원)

 

 

 

 

    한국 최고의 숲으로 제주도의 비자림을 꼽곤 합니다. 비자림을 경험하기 이전에는 국립수목원의 광릉 숲에 매혹되었습니다. 유명산 자연휴양림과 산음 자연휴양림도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곳이었지요. 제주도 비자림이 나의 마음을 사로잡았습니다.
    비자나무가 우거진 숲을 걷다 보면, 시간의 감각에 대해 생각하게 됩니다. 500년에서 800년이 된 비자나무 군락지가 그런 감각을 불러일으킵니다. 비자림은 광활한 숲은 아닙니다. 한 시간 남짓이면 여유롭게 산책할 수 있는 곳이지요. 잘 다듬어진 산책로로 비자나무 숲에 깊숙이 들어가면, 다른 세계에 들어왔다는 생각에 경이로움을 느낍니다. 인간의 세계에서 식물의 세계에 진입한 느낌 같은 것이겠지요. 물론 공기도 다릅니다. 비자나무가 뿜어내는 냄새로 온통 숲이 촘촘하게 채워져 있음을 감지합니다. 나는 비자나무 숲에서는 이방인일 뿐이고, 잠시 스쳐가는 손님으로 존재합니다. 낯선 것의 감각으로 충만한 경험, 시간의 켜 속에 잠깐 발을 들여놓은 느낌, 나를 온통 사로잡는 놀라운 체험입니다.
    숲으로 들어가는 것은 우주에 찰나의 순간 동안 머무는 것과 같습니다. 우주는 우리 경험 세계 바깥에 있지요. 그래서 밤의 무한한 창공을 바라보며 우주의 경이로움을 감지합니다. 숲도 마찬가지입니다. 숲은 단지 나무들의 거처가 아닙니다. 그곳은 무수한 생령들이 관계의 질서를 형성하고 있는 우주이지요.
    숲은 도처에서 인간세계를 둘러싸고 있습니다. 숲을 잊으면, 우주를 잃습니다. 우리는 숲의 구성원인데도, 숲 밖의 세계에서 안정을 찾곤 합니다. 도시를 아무리 확장해도, 도시가 숲을 둘러쌀 수는 없습니다. 이 거대한 불안이 도시 속에 숲을 만드는 인간의 의지로 표출되었습니다. 인간은 숲을 도시 속으로 끌어들이기 시작했습니다. 마당에 화단을 만들고, 정원을 만들고, 공원을 만들고, 도시 속에 숲을 조성하기도 했지요. 숲에 인간이 길을 내기도 하고요.
    천문학자 칼 세이건은 『창백한 푸른 점』에서 재미있는 장면을 상상합니다. 외계인 탐색대원이 지구에 접근해 관찰한다는 설정이지요. 우주에서 바라본 지구의 풍경은 어떤 것일까요? 가령 외계인이 분해할 수 있는 길이가 1∼2Km 정도의 망원경으로 지구를 본다고 생각해 봅시다. 그러면 물이 증발해서 비로 내리는 짙은 대기의 운동을 보게 되겠지요. 그리고 지구에는 다른 행성에서는 쉽게 볼 수 있는 충돌화구가 흔적조차 없다는 사실에 놀랄 것입니다. 지구는 바다와 숲으로 뒤덮여 있기 때문입니다. 지구는 생명의 향연으로 새로운 표면을 형성한 젊은 행성인 셈입니다. 외계인은 도시를 발견할 수 있을까요? 칼 세이건은 다음과 같이 상상합니다. “산맥, 강 유역, 그밖에 이 행성이 지질학적으로 활발함을 나타내는 많은 증거를 볼 수 있다. 또 식물 서식 단지에 둘러싸인 식물들이 없는 이상한 곳이 곳곳에 보인다. 풍경 속에서 이들은 변핵된 얼룩처럼 보일 것이다.” 바로 그 얼룩이 인간들의 도시인 셈입니다. 칼 세이건이 강조하고 싶었던 것은 존재에 관한 것입니다. 우리는 우주적 관점에서 바라보았을 때, 단지 ‘창백한 푸른 점’에 살고 있을 뿐입니다. 그 푸른 점은 바다와 숲으로 둘러싸여 있습니다.
    숲은 ‘자연의 질서’를 사색하게 하는 곳입니다. 인간이 통치하는 세계가 한시적이고, 유한하며, 순간적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하는 곳이기도 하지요. 녹색의 촘촘함 안에는 미생물과 벌레들, 작은 생명과 큰 동물들이 카오스적 질서를 이루고 공생합니다. 인간 또한 숲의 일원이 되는 순간 우주의 경이로움과 절멸의 공포를 동시에 경험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 두려움의 감각마저도 감당하게 하는 곳이 바로 숲입니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는 『월든』에서 ‘자연의 질서 속에서 바라본 인간세계’를 깊이 있게 성찰했습니다. ‘월든 호수’ 주변의 숲은 소로에게 ‘자연의 도서관’이었던 셈이지요. 소로는 성찰적 어조로 시간, 속도, 그리고 삶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그는 “생을 깊이 응시”하고, “자신의 속도대로 삶을 살아”가며, “내려놓고, 이 순간 행복”하라고 권유합니다. 숲 속의 우주에서, ‘생명의 원리’에 대해 속삭이는 듯한 메시지가 담겨 있지요.
    꼭 비자림이 아니면 어떻습니까? 광릉 숲이 아니어도 좋고, 자연휴양림이 아니어도 좋습니다. 가까운 집 주변 숲 속에서 ‘자연의 도서관’을 더듬어 보는 것이 어떨까요? 책 한 권 들고서 숲을 산책하다가, 숲의 고요 속에서 독서를 해도 좋습니다. 그곳에서 도시의 시간을 잊는 것, 그것이 바로 우주의 시간을 발견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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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장웹진》 7월호는 민구, 임승유, 박신규, 성윤석, 심지아, 박연준, 서대경 시인을 초대했습니다. 역량 있는 시인들의 시편을 접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어 행복했습니다. 잠깐 숨을 고른 정지아 작가의 장편연재 『도덕의 구조』가 이어지고, 박금산 작가의 중편연재 『굉장히 저항적인 돼지가 좋아』도 2회째를 맞이합니다. 김언수 작가의 중편 『구암의 바다』는 다음호에야 마무리될 예정입니다. 독자 여러분의 양해 바랍니다. 최근 장르적으로 접하기 힘든 중편소설을 《문장웹진》에서 접할 수 있다는 것을 우리 문학의 행운이라고 생각합니다. 차곡차곡 쌓여 가는 ‘나는 왜’ 기획에는 이재웅 소설가를 초대했습니다. 주목받은 작품집 『불온한 응시』를 펴낸 이재웅 소설가의 문학세계를 접할 수 있는 좋은 기회입니다. 에세이 테라스에는 김경주 시인의 시극이 3회에 걸쳐 연재됩니다. 차분한 마음으로 문학의 나무 하나하나가 늘어 가고 있습니다. 《문장웹진》이 문학의 숲을 넓혀 가고 있습니다. 문학의 생명이 앞으로 《문장웹진》에서 힘찬 문장으로 약동할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문장웹진 7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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