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덕의 구조_제6회

 

 


도덕의 구조(6회)

 

정지아

 

 

 

 

 

7.

 

    그는 자신했다.
    가족들의, 대단하지는 않아도 든든한 울타리가 되어 줄 수 있을 거라고.
    그것이 그가 인생에 바란 유일한 소망이기도 했다. 그 이상의 무엇도 바라지 않았다. 그에게 주어진 인생이 아무리 불운하다 하더라도 그 정도는 해낼 자신이 있었다. 그녀를 가족의 일원으로 받아들일 때도, 그와 그녀를 통해 한 생명이 탄생했을 때도.
    끙끙거리는 신음소리가 곤한 그의 잠을 깨웠다. 의식이 돌아온 순간, 한여름 땡볕에 질척하게 녹은 아스팔트처럼 눅진하게 엉겨 붙던 신음소리가 뚝 멈췄다. 그의 입에서 흘러나온 소리였던가 보았다. 물론 숙취 탓이었다. 어제 마감을 끝내고 동료들과 새벽까지 술을 펐다. 어떻게 집에 돌아왔는지도 기억나지 않았다. 이기지 못할 만큼 과음을 했다고는 해도 제 신음소리에 놀라 깨어나긴 처음이었다. 몸이 견디기 어렵다는 신호를 보내기 시작한 것이리라.
    아침저녁으로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어머니는 밤마다 끙끙 앓았다. 남의 집에 품을 팔러 다녔던 어머니의 고된 숨결에서는 때로 매운 고추 내가, 때로는 고소한 들깨 내가 풀풀 흘러나왔다. 태양이 떠 있는 동안 잠시도 멈춘 적 없는 어머니의 몸뚱이는 밤이면 시신처럼 널브러져, 신음소리에 놀란 그가 아무리 흔들어 깨워도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숨이 끊어지기 직전에나 가능할 듯한 깊고 진한 신음소리를 반주 삼아 그는 날이 새도록 어머니의 팔다리를 주물렀다. 어머니의 팔다리는 열 살 남짓, 어린 그의 것과 진배없이 깡말라 주무르는 그의 손바닥에 굳은살이 박일 지경이었다. 삶이란 것이 한 점의 살조차 남기지 않을 만큼 잔인한 것임을 그는 그때 알았다. 그 잔인한 삶으로부터 달아나기 위해 그는 기를 쓰고 공부하고 취업준비를 했다. 그 정도로 도망칠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이 청춘의 치기였던 것은 아닐까. 머리맡에 놓인 물 한 통을 단숨에 들이켰는데도 알코올에 젖은 몸뚱이는 좀처럼 깨어나지 않았다.
    어디선가 전화벨이 울렸다. 휴대전화 벨소리였다. 도무지 일어날 엄두가 나지 않아 이불을 머리끝까지 뒤집어썼으나 전화벨은 집요하게 울려댔다. 소리의 진원지를 찾던 그는 옷장 문을 열어젖혔다. 양복 윗도리를 뒤져 전화를 찾았다.
    “야, 죽겠지?”
    어제 술자리를 같이한 동료 신이었다. 입사 동기인 신은 처음 일간지 문화부로 발령이 나 친하게 지낼 기회가 없었다. 그러다 올 초부터 같이 여성지에 근무하면서 급격히 가까워졌다. 문장력 좋기로 소문난 신은 삼박사일이고 사박오일이고 술을 푸다 기사를 펑크 낸 게 수차례였다. 덕분에 그 좋은 문장력에도 불구하고 여성지까지 흘러오게 된 것이었다.
    “말이라고 해? 죽겠는데 아침부터 전화질이야!”
    “나와. 해장하자.”
    해장이란 말에 욕지기가 치밀었다. 미처 흡수되지 못한 소주가 위에서 꿀렁거리는 느낌이었다.
    “해장 소리만 들어도 토 나온다. 끊어.”
    “야, 술은 술로 다스리는 거야. 소주가 들어가야 엔진이 돌아…….”
    그는 신의 말을 다 듣지도 못하고 입을 틀어막은 채 화장실로 달려갔다. 요란한 헛구역질뿐 아무것도 넘어오지 않았다. 하기야 술 외에 먹은 게 별로 없었다.
    “괜찮아요?”
    요리 중이던 그녀가 국자를 든 채 돌아보며 물었다. 그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게 작작 좀 마시지, 따위의 잔소리를 하지 않는 그녀에게 진심으로 감사하면서. 그녀 다리에 매미처럼 딱 붙어 있던 현이 뒤뚱뒤뚱 그를 향해 걸어왔다. 땅을 한 번도 디뎌 보지 않은 아이의 발을 볼 때마다 왜 그런지 그는 코끝이 찡했다. 이 야들야들한 살에 굳은살이 박이며 아이는 어른이 되어 갈 터였다. 해서 가급적이면 더디 걸었으면 싶었다. 그런데 현은 구 개월이 채 되기도 전에 발딱 일어섰다. 현은 뭐든 빨랐다. 뒤집는 것도 기는 것도 걷는 것도 말하는 것도, 보통 아기들보다 한 달 이상 앞섰다. 뭐 하자고 저리 빨리 고단한 삶 속으로 뛰어들려 하는 건지 안타까웠지만 그가 어찌할 수 있는 일은 아니었다. 그의 유전자를 빌려 이 세상에 왔지만 아이의 삶은 오롯이 아이의 몫이라는 걸, 알면서도 때때로 그는 가슴이 헛헛했다.
    현이 두 팔을 활짝 펼치고는 그의 품을 향해 달려들며, 귤 한쪽도 제대로 들어갈 것 같지 않은 작은 입을 오물거렸다.
    “아빠.”
    정확하게 아빠는 아니었다. 어버와 아빠 사이, 글자로는 치환될 수 없는 소리였다. 그러나 그의 귀에는 명료하게 아빠로 들렸다. 그는 탄성을 지르며 현을 번쩍 안아 올렸다.
    “아빠래, 아빠!”
    그가 감격적인 탄성을 내뱉거나 말거나 그녀는 음식 만드느라 정신이 없었다.
    “진현아. 현이 아빠라고 했다니까!”
    그제야 그녀가 뒤돌아보며 피식 웃었다.
    “아빠는 무슨. 나도 들었는데.”
    “아니야. 정말이라니까. 현아. 아빠, 해봐.”
    현은 허공에서 팔다리를 휘저으며 까르륵, 웃음을 터뜨릴 뿐이었다.
    “아빠 해봐, 현아. 아빠.”
    현을 눈높이로 내려 그는 또박또박 발음했다. 그녀가 빙긋 웃으며 다가왔다. 현이 이유식을 만드는 중이었는지 손목 부근에 버섯 조각이 붙어 있었다. 요즘에는 사다 먹이는 사람들도 많은 모양인데 그녀는 아이 이유식은 물론 밥상에 인스턴트식품 하나 올리지 않았다. 직장 다닐 때도 그랬다. 깔끔하다 못해 완벽해야 직성이 풀리는 성품이었다. 고마운 마음이 제일 컸지만 그녀에게는 어디까지가 완벽한 걸까, 슬며시 걱정스러울 때도 있었다.
    “아빠.”
    아까보다 훨씬 또렷한 발음이었다.
    “들었지? 아빠라잖아, 아빠.”
    별 뜻 없는 옹알이임을 알면서도 그는 현이 아빠라는 존재를 의식하기라도 한 듯 가슴이 벅찼다.
    “그렇게 좋아요? 당신 그렇게 좋아하는 거, 첨 본다.”
    “좋지, 그럼. 평생 단 한 번뿐인 순간인데.”
    그는 현을 머리 위로 치켜든 채 빙글빙글 돌았다. 현이 볼이 빨갛도록 웃음을 터뜨렸다.
    “그래 봤자 당신은 세 번째야. 맘마가 일등이라구.”
    현의 입에서 가장 처음 튀어나온 의미 있는 말은 맘마였다. 엄마가 그 뒤를 이었다.
    “그건 순전히 발음 문제야. 맘마가 젤 쉽고 아빠가 젤 어렵잖아.”
    “생존에 긴요한 순서라는 생각은 안 들어요?”
    그럴지도 몰랐다. 아니, 가장 쉽게 발음할 수 있는 것에 생존의 우선순위대로 의미를 매겼다는 게 더 정확할 가능성이 높았다. 맘마야 평생 인간의 화두일 테고, 엄마 역시 유년기에는 절대적 존재일 터였다. 그러나 고작 세 번째인 아빠는 아이가 자랄수록 중요해지는 존재이지 않을까. 좀처럼 웃음을 멈추지 못하는 현을 빙글빙글 돌리며 가슴이 벅찬 만큼 어깨가 무거워졌다. 그 무게 때문에 삶이 수증기처럼 기화하지 않고 의미를 남길 수 있는 것인지도 몰랐다. 현의 웃음소리 사이로 보글보글 찌개 끓는 소리가 스며들었다. 숙취만 아니라면 오랜만에 평화롭고 따스한 아침이었다.
    다시 휴대전화 벨이 울렸다. 신이 술을 대하는 반의반만 한 열정이라도 기사에 쏟았다면 지금쯤 부장 정도는 하고도 남았다.
    “전화 안 받아요?”
    “안 받아도 돼. 술 먹자는 전화야.”
    그녀가 대답 대신 미간을 찌푸렸다. 그녀는 술을 즐기지 않았다. 마셔 봤자 와인 두어 잔이 전부였다. 술보다 술잔이 놓인 분위기를 즐기는 쪽이었다. 그가 신문사에 입사하고 두어 달은 보통 아내들처럼 웬 술을 그렇게 마시냐는 잔소리도 심심찮게 했다. 기사 문제로 박 차장과 대판 싸운 날부터 그녀는 술에 관해서 잔소리를 일절 하지 않는다. 박이 쓰지 말라는 기사를 기어이 썼고, 그는 원고를 집어던진 박에게 기자의 사명 운운 하며 한 마디도 지지 않고 대거리를 했다. 그날 박이 그의 정강이를 걷어찼다. 옆에서 말리지 않았다면 그 역시 박의 멱살이라도 잡았을 것이다. 더럽고 치사해서 너 같은 놈 밑에서 일 안 할란다, 고 버둥대는 그를 술집으로 끌고 나간 게 홍 선배였다. 얼마나 마시고 어떻게 취했는지, 눈을 떠보니 그녀가 수건으로 그의 몸을 닦으며 울고 있었다. 하도 민망하여 그는 정신 차린 티를 내지 못했다. 그날 이후 그녀가 술 문제로 잔소리를 일절 하지 않았다. 그가 취중에 박에게나 할 법한 소리를 마구 쏟아낸 게 분명했다. 그녀에게 그런 모습을 들켰다는 게 그는 죽을 만큼 민망하고 부끄러웠다. 자존심이 상하기도 했다. 어린 그에게 끙끙 앓는 모습을 들킨 어머니도 그랬을까? 울타리는 그저 울타리여야 했다. 울타리의 노고를 들키는 순간, 울타리는 더 이상 든든할 수 없는 것이다. 돌이키기 민망한 기억에 그는 얼른 한 마디 덧붙였다.
    “찌개 냄새 죽이네.”
    온 집 안에 구수한 된장 냄새가 퍼지고 있었다. 어려서 어머니가 끓여 주던 바로 그 된장 냄새였다. 어머니가 치매에 걸린 뒤 누이는 서울에서 직접 메주를 띄우고 된장을 담갔다. 누이도 그처럼 어머니의 된장에 인이 박였을 것이다. 가난했던 시절, 된장찌개는 사시사철 지겹게도 밥상에 올랐다. 때로는 애호박이, 때로는 무가, 때로는 감자가, 철 따라 재료만 달라졌을 뿐이다. 고등학생이 되어 광주로 유학을 떠나면서 지겨운 된장찌개와도 이별이구나, 홀가분했는데, 어찌 된 셈인지 그는 유럽 출장을 가서도 된장찌개가 간절한, 뼛속 깊이 촌놈이었다. 된장도 거무스름하고 짭짤한 어머니 된장이어야 했다. 아내가 신혼 초에 친정에서 공수해온 샛노랗고 싱거운 된장은 아무리 먹어도 된장 같지 않았다. 어머니 된장에 목말라 있던 참이었는데 누이가 그 조갈증을 어찌 알고 어머니 손맛 그대로 된장을 담가 온 모양이었다.
    “아무튼 귀신이야. 냄새만 맡고도 우리 집 된장인지 형님네 된장인지 아나 보네.”
    그녀에게 우리 집은 친정집이었다. 하기야 그의 말버릇도 다르지 않았다. 아내의 싱겁고 담백한 서울 음식을 먹을 때마다 우리 집은, 우리 엄마는, 그 역시 그렇게 말했다. 반평생 살아온 단순한 습관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너는 아직 내 소속이 아니구나, 그런 류의 섭섭함이 스멀스멀 마음을 점령하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그래도 그녀는 서서히 그의 식구가 되어 가는 중이었다. 누이의 된장을 끓이는 것만 해도 그랬다. 그녀 입맛에 누이 음식은 너무 짜고 매웠다. 처음엔 좀처럼 입에 대지 않더니 요즘은 곧잘 먹는 눈치였다. 부부란 그렇게 조금씩 틈을 메워 가며 가까워지는 것일 터였다.
    “당신, 오늘은 운수 대통했다.”
    “왜?”
    “형님이 당신 선물 가져왔거든.”
    “무슨 선물?”
    “알아맞혀 봐요.”
    “어제 누님 다녀갔어?”
    “응. 주말이라 일찍 들어올 줄 아셨나 봐. 저녁 다 될 때까지 기다리다 가셨어요.”
    “전화를 하지 왜?”
    그녀가 대답 대신 조용히 눈을 흘겼다. 그는 집에서 걸려온 전화를 잘 받는 편이 아니었다. 취재 중일 때야 당연하지만 선후배들이 있는 술자리에서 집 전화를 받는 것도 그는 어색했다. 박 차장에게 깨진 뒤에는 더더욱 전화를 받고 싶지 않았다. 몇 번 그런 일이 있은 뒤로 그녀는 어지간해서는 그에게 전화를 하지 않았다. 깨알만도 못한 자신의 존재를 그녀에게만큼은 절대 들키고 싶지 않기 때문일 거라고, 그는 정확히 설명할 수 없는 자신의 마음을 그렇게 해석하고 있었다.
    “형님한테 전화 좀 드려요. 동생이 얼마나 보고 싶으셨으면 나는 애 보느라 정신없는데 한 나절을 있다 가셨을까? 말씀은 안 해도 서운한 눈치셨어요.”
    서운했을 리는 없다. 그는 어려서부터 그랬다. 누이가 옷이며 학용품을 잔뜩 사들고 돌아오는 명절날, 그는 동네 어귀 느티나무 밑에서 종일 서성이며 누이를 기다리다 정작 모퉁이를 돌아오는 누이의 모습이 보이면 바람처럼 숨곤 했다. 택시비 몇 푼이 아까워 쌩쌩 달리는 차들이 일으키는 먼지를 뒤집어쓴 채 양손에 잔뜩 짐을 들고 숨이 턱에 닿도록 걸어오는 누이의 비루가 그는 안타깝다 못해 짜증스러웠다. 누이의 비루는 누이만의 것이 아니었다. 그의 것이었고, 어머니의 것이었으며, 어머니와 그로 인해 한결 깊어졌을 터였다. 그 미안함을 전달하는 어떠한 말이나 행위도 그의 머릿속에서는 떠오르지 않았다. 입 밖으로 꺼낸 적 없으나 입 밖으로 꺼낼 수조차 없이 미안하고 고맙고 안타까운 그의 마음을 누이가 모를 리 없었다.
    잠시 그쳤던 휴대전화가 다시 울리기 시작했다. 신은 일생에 단 하나, 술에만 집요했다. 받을 때까지 전화를 해댈 모양이었다.
    “아, 싫다니까. 날 죽여라, 죽여.”
    상대 쪽에서 반응이 없었다.
    “여보세요?”
    “날세.”
    이번에는 그가 대꾸하지 않았다. 날세, 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은 흔치 않았다. 홍 선배인가? 홍 선배라면 나야, 라고 했을 터였다. 홍 선배가 마감 끝난 휴일, 그에게 전화할 리도 만무했다.
    “중계동이라고.”
    중계동이라면……. 그는 저도 모르게 전화기에 대고 꾸벅 고개를 숙였다. 장인이었다.
    “아, 네, 아버님. 무슨 일로…….”
    “오후에 시간 어떤가? 괜찮으면 나 좀 보세.”
    결혼 전 장인과 독대한 적이 있었다. 그 후로는 가족 모임에서 잠깐씩 얼굴을 봤을 뿐이다. 진지한 대화를 나눠 본 적은 물론 없었다. 장인은 그보다 더 말수가 적은 사람이었다. 어쩌다 처가에 가도, 왔나? 한 마디만 하고는 서재에 틀어박혀 책을 읽거나 산책을 핑계로 집을 나가버리곤 했다. 불편해하는 사위에 대한 배려인 듯했다. 그러나 그 깍듯한 배려가 단단한 울타리처럼 느껴져 그는 더 다가서기 어려웠다.
    “아, 네…….”
    무슨 일일까? 선뜻 떠오르는 게 없었다. 그녀와의 관계도 나쁘지 않았다. 나쁘기는커녕 현이 태어나고 그녀가 휴직을 하면서 결혼 이후 가장 단란한 나날을 보내는 중이었다.
    “내가 자네 쪽으로 가지.”
    “아닙니다. 제가, 중계동으로 가겠습니다.”
    “아냐. 단지 상가 이층에 카페 하나 있더구먼. 거기서 두 시, 괜찮나?”
    전화가 끊긴 뒤에도 그는 멍하니 전화기만 바라보고 있었다. 대체 무슨 일인지 짐작조차 되지 않았다.
    싸한 향기가 코끝에 닿았다. 누이의 선물이란 게 방앗잎인 모양이었다. 입이 짧은 데다 여름을 심하게 타는 그는 방앗잎 숭숭 썰어 넣은 강된장으로 겨우겨우 더위를 이겼다. 그러고 보니 언젠가 누이가 아버지 산소 갔던 길에 방앗잎 몇 개를 캐왔다고 했던 말이 떠올랐다. 입 짧은 동생을 위해서였을 것이다. 차에 실려 먼 길 달려왔는데도 다행히 뿌리를 잘 내린 듯했다.
    누이의 된장에 방앗잎. 입안 가득 침이 고였다. 그러나 밥은 잘 넘어가지 않았다. 장인의 전화가 마음에 얹힌 탓이었다. 처가 식구가 누군들 편할까만은 그는 유독 장인이 어려웠다. 아버지 없이 자란 탓인지도 몰랐다.
    그의 아버지는 그가 겨우 네 살 때 세상을 떠났다. 위암이었다. 가난한 살림에 병원 한 번 가보지 못한 채 병이 깊어졌고, 복수가 차 병원을 찾았을 때는 이미 늦은 뒤였다. 아버지는 항암 치료도 거부했다. 배에 복수가 차 눕지도 못하는 상태에서, 누가 쳐다보지도 않을 산 다랑이 닷 마지기 논문서를, 혹 어머니가 팔아 자기 병구완할까, 엉덩이에 깔고 앉은 채 아버지는 눈을 감았다. 그 논문서는 아버지 대신 가족을 지켜줄 울타리였을 것이다. 굶어죽는 것이나 막아 줄까, 그 어떤 것도 해줄 수 없는 참으로 빈약한 울타리를 아버지는 자기 목숨과 바꿨다. 본 적 없는 아버지의 마지막을 떠올릴 때마다 그는 맥이 풀렸다. 송곳 하나 꽂을 땅도 없는 가난한 농군의 아들로 태어난 아버지는 손톱이 닳도록 산을 개간하고 물길을 뚫어 논 닷 마지기를 남겼다. 그 닷 마지기가 아버지가 보낸 시간과 공간의 전부였다. 결혼을 얼마 앞두고 그녀와 함께 산소를 찾았을 때, 아버지가 평생 일구었던 논은 다시 녹음 울창한 산으로 돌아가 있었다. 아버지의 시간도 아버지의 삶도 논과 더불어 시간의 밖으로 온전히 사라져버린 것 같았다. 산다는 건 그토록 쓸쓸하고 허망한 게 아닐까, 아직 창창하게 남아 있는 자신의 미래마저 막막해지는 느낌이었다.
    그녀가 어깨를 툭툭 쳤다.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요? 몇 번이나 불렀는데 듣지도 못하고. 무슨 일, 있어요?”
    “일은 무슨. 왜?”
    “잠깐 현이 좀 봐줄래요?”
    “왜?”
    “마트 가려고. 현이 이유식거리가 떨어졌어요.”
    한 시 반, 곧 나가야 할 시간이었다.
    “살 걸 적어 줘. 내가 사올게. 잠깐 나갈 일 있어.”
    잠시 망설이던 그녀가 이내 메모를 하기 시작했다. 머릿속에 미리 정리라도 해둔 듯 일필휘지, 막힘이 없었다. 그녀는 쇼핑을 할 때도 한 번 간 곳은 다시 들르지 않았다. 미리 동선을 짜두고 최단 코스로 최단 시간에 쇼핑을 끝냈다. 아내와 쇼핑하는 게 지옥이라는 남자들의 말에 그가 고개를 갸웃거리는 건 순전히 그 덕분이었다. 일처리 빠르고 야무진 그녀 덕에 편히 살고 있으면서도 그는 저 단호한 일필휘지가 간혹 두려웠다. 거기 끼지 못하면 영원히 낄 수 없을 것 같은 막연한 불안이랄까.
    그는 장인의 호출임을 밝히지 않은 채 집을 나섰다. 한낮의 태양은 아직 지난여름의 기억을 품고 있었다. 상가 단지까지 고작 삼백 미터 남짓 걷는 동안 햇볕에 노출된 정수리가 따끈하게 데워졌다. 십 분 먼저 도착했는데도 장인은 이미 창가 자리에 자리를 잡고 커피까지 마시는 중이었다.
    “일찍 오셨으면 전화를 하시지 왜…….”
    장인이 창밖으로 향한 시선을 거두어 그를 보았다. 언제나처럼 건조하고 냉정한 시선이었다.
    “주문하지.”
    그는 아이스커피를 주문했다. 중간에 점퍼를 벗어 들었는데도 겨드랑이가 축축하게 젖어 있었다. 커피가 도착할 때까지 장인은 다시 창밖을 보았다. 시월 초, 햇볕은 여전히 여름을 품고 있었으나 길가 은행잎은 노란빛이 감돌기 시작한 상태였다. 갈색 필름지가 덧씌워진 유리창을 투과한 햇볕이 장인의 얼굴 위로 어른거렸다.
    같은 시골 출신이지만 장인은 그의 아버지와는 달랐다. 대학에 와 처음 본 화려한 서울이 장인의 마음을 사로잡았고, 동기들의 화려한 배경이 장인의 욕망에 불을 지폈다. 장인의 동기 중에는 부장검사의 아들을 비롯해 떠르르한 집안의 자식들이 많았다. 장인이 자신은 ‘고작 면소재지 방앗간집’ 아들이었을 뿐임을 강조했을 때, 그는 고향 면소재지 방앗간에 수북이 쌓여 있던 쌀가마를 떠올렸다. 그에게 방앗간은 부의 상징이었고 근대의 상징이었다. 부러워하기에도 너무 거대한. 그러나 장인에게 방앗간은 초라한 시골의 표상일 뿐이었다. 방앗간 주인이었던 장인의 부모가 상견례날, 초라한 양복을 입고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호텔 중식당에 들어섰을 때, 장인은 평생 호텔 한 번 가보지 못한 부모가 안타까워 마음속으로 눈물을 흘렸다. 아버지의 꿈이 무엇이었는지는 정확히 알지 못한다. 아마 논 몇 마지기 정도가 꿈이었을 것이다. 호텔에 드나드는 인생 같은 건 상상조차 해보지 못했을 것이다. 비슷한 연배인 자신의 아버지와 장인 사이의, 절대 메워질 수 없는 그 아득한 거리가 안타까웠으나, 그렇다고 그는 마음속으로도 눈물을 흘리지는 못했다. 그게 그와 장인의 결정적 차이였다.
    “그래, 어떻게 할 생각인가? 결정은 했나?”
    장인이 감정이 섞이지 않은 말간 눈으로 그를 바라보며 물었다. 박과 대판 싸우고 올 초 여성지로 발령이 났을 때도 그랬다. 그는 그녀에게도 여성지 발령 난 것을 알리지 않았다. 그녀 역시 아는 티를 내지 않았다. 그녀가 알았는지 몰랐는지 그는 지금도 알지 못한다. 아무튼 장인은 알고 있었다. 그것도 고작 한 달 만에. 복귀할 가능성이…… 있기는 한가, 라고 장인은 물었다. 그는 ‘는’이라는 조사에 마음이 얹혀 고작 소주 석 잔에 그날 밤, 댓 번이나 변기를 붙들고 말간 소주를 토했다. 변기에 토한 소주가 장인의 시선처럼 말갛게 그를 노려보았다. 어떤 변명도 통할 것 같지 않은, 눈곱만큼의 배려도 담겨 있지 않은 눈빛이었다. 시골 방앗간집 아들 출신으로 자수성가한 장인에게 자수성가하지 못한 모든 인간은 능력이 없거나 나약하거나 게으르거나, 셋 중 하나였다. 여성지로 밀려난 그 역시 장인 눈에는 셋 중 하나임이 분명했다. 복귀할 가능성이 있기는 하냐는 질문은 겨우 그 정도로 가족을 지킬 수 있겠냐는 준엄한 질책이었다. 일간지에 있었던 것도 아니요, 몇 년 지나면 순환발령이 날 터이니 장인이 그나마 인정하는 시사월간지에도 다시 가게 될 가능성이 꽤 높았다. 그러나 그는 아무 대꾸도 하지 못했다. 뭐라 한들 장인에게는 논 몇 마지기가 꿈의 전부였던 아버지의 비루와 다르지 않을 터였다.
    장인의 말간 시선으로부터 자신을 지켜야 할 것 같은, 묘한 방어 본능을 느끼며 그는 되물었다. 생각하고 결정해야 될 일이 무엇인지 재빨리 머리를 작동해 보았으나 딱히 떠오르는 게 없었던 것이다.
    “네?”
    “곧 복귀해야 할 것 아닌가?”
    그녀의 직장 복귀를 말하는 모양이었다. 아직 그녀와 의논한 적은 없었다. 그러나 그녀가 장인처럼 복귀를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다는 정도는 알고 있었다. 그는 말없이 커피를 마셨다.
    “진현이가 복귀하면 현이는 어쩔 생각인가? 누구든 봐줄 사람이 있어야지.”
    그는 이참에 그녀가 회사를 그만뒀으면 싶었다. 얼마 되지 않을지언정 그의 월급으로 소박하게는 살 수 있었다. 세상에는 그보다 못한 사람들도 많았다. 호텔에 가보지 못한 인생이, 해외여행을 다니지 못한 인생이, 반드시 불행하다는 법도 없었다. 그러나 호텔 한 번 가보지 못한 부모가 안타까워 눈물을 삼켰다는 장인의 생각은 다를 터였다. 게다가 장인은 아들이 없었다. 대신 딸 둘을 아들처럼 키웠다. 그런 딸이 내로라는 직장을 때려치우고 집에 들어앉는 걸 반길 리 만무했다. 장인의 마음을 이해 못 할 것도 아니었다. 그런데도 장인의 말이 모래알처럼 입안에서 서걱거렸다.
    “진현이랑 상의 안 해봤나?”
    “아직…….”
    장인이 눈살을 찌푸렸다.
    “이 사람들이, 얼마나 남았다고…….”
    현이가 태어난 게 작년 십일월, 출산휴가 석 달에 육아휴직 일 년이니 아직 석 달도 더 뒤의 일이었다. 그러나 유비무환을 철칙으로 아는 장인에게는 코앞에 닥친 일일 법도 했다.
    “애 봐줄 사람 구하는 게 어디 쉬운 일인지 아나? 믿을 만한 사람 구하기는 하늘의 별 따기야. 진현이가 사방으로 알아보는 모양이긴 하다만…….”
    아이를 남의 손에 맡기고 싶지는 않았다. 맞벌이를 해서 영어유치원에 보내고 사립학교에 보내고 유학 보내는 선배들을 여럿 보았다. 가족을 위한다는 명분으로 가족과 헤어지는 일은 어떤 경우에도 그는 반대였다. 그는 자식과 아내의 소박한 울타리가 되어 주고 싶을 뿐이었다. 서로 기대고 의지하며, 어떻게 살아도 힘겨울 인생을 소박하고 다정하게 사는 것이 그의 유일한 욕망이라면 욕망이라 할 수 있었다.
    “애를 남의 손에 맡기는 건, 나도 반댈세.”
    불쾌가 표정에 고스란히 드러난 모양이었다.
    “우리가 돌보면 어떻겠나? 나야 할 일 없는 백수고 자네 장모도 고용 약사를 둬서 한가하니 남한테 맡기는 것보다야 낫지 않겠어?”
    그는 얼음만 남아 거의 물이 된 커피를 단숨에 들이켰다. 상의하는 모양새긴 하나 아마 장인의 뜻대로 될 터였다. 받아들이는 것 외에 달리 방법이 없다는 게 더 답답했다.
    “생각해 보게. 우리가 현이를 맡으려면 여긴 너무 멀어. 중계동 근처로 집을 옮겨야 할 거야.”
    말은 생각해 보라고 했으나 장인은 이미 마음을 굳힌 모양이었다. 결혼한 뒤로 지금까지 장인이 이렇게 적극적으로 그의 집안일에 관여한 적이 없었다. 그가 생각해도 가장 현실적인 대안이기는 했다. 그런데도 마음이 내키지 않았다. 본가든 처가든 아이를 키워 준다면 쌍수 들어 환영할 일인데 마음이 왜 어깃장을 놓는 것인지 그도 이유를 분명히 대기 어려웠다. 처가 가까이 가는 것, 처가의 부유한 환경에 아이가 노출되는 것, 아이 교육에 처가의 입김이 미치는 것, 장인이 시집 간 딸 일에 단호하게 나서는 것, 사소하다면 사소할 그 모든 것들이 껄끄러웠다. 생각해 보겠노라는 대답조차 선뜻 나오지 않았다. 그의 대답을 기다리던 장인이 옆에 벗어 둔 점퍼 주머니에서 뭔가를 꺼내 그의 앞에 내밀었다.
    “결혼 전에 자네가 거절했던 걸세. 어차피 진현이 몫으로 만든 것이니 어떻게 쓰든 자네가 알아서 하게. 비밀번호는 진현이 생일이야.”
    말을 끝낸 즉시 장인은 답을 기다리지도 않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계산을 마치고 카페를 나설 때까지 장인은 돌아보지 않았다. 이번에는 반드시 받아야 한다는 단호한 압력일 터였다. 이 돈을 보태서 중계동 근처로 평수를 넓혀 이사하라는 게 장인의 주문이었다. 새집을 구하고 이사할 시간까지 다 계산해서 석 달이나 남은 지금부터 서두른 것이다. 이런 아버지가 든든한 울타리가 되어 주었다면 인생이 좀 달라졌을까? 황급히 사라지는 장인의 뒷모습을 보면서 그는 그녀가 진심으로 부러웠다. 그는 평생 울타리 없이 살아왔다. 울타리 없이 견뎌야 했으므로 언젠가부터 최소한으로 웅크리는 삶에 익숙해져 있었다. 그 자세를 깨뜨리라, 장인은 요구한 것이고, 어떤 식으로든 이번에는 그 요구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을 듯했다. 그러나 장인의 이번 요구를 받아들인다 해도 앞으로도 그렇게, 장인처럼 더 높이 더 멀리 날기 위해 모든 것을 바쳐 일할 자신이 없었다. 자신이 없다기보다 굳이 그렇게 살고 싶지 않았다. 그는 더 높이 더 멀리 날지 않고 발밑을 바라보며 천천히 찬찬히, 소박하게 다정하게 살고 싶었다.
    그는 카페 앞에서 잠시 서 있었다. 마트에도 집에도 가고 싶지 않았다. 술 생각만 간절했다. 이런 대낮부터 장인이 준 통장을 품에 안은 채 혼자 술잔을 들이켤 배짱도 없는 그였다. 술친구가 필요했지만 모처럼의 휴일, 대낮부터 술을 마실 친구가 쉬 생각나지 않았다. 허물없던 대학 친구들 몇은 취직한 이래 점점 연락이 뜸해져 일없이 전화하기 어려웠고, 일주일 내내 같이 술을 푼 회사 선후배들은 일요일 하루라도 쉬어야 했다. 퍼뜩 신 기자가 떠올랐다. 오전부터 해장하자고 전화를 했으니 지금쯤은 취기가 한창 올라 있을지도 몰랐다. 벨이 울리자마자 신의 목소리가 들렸다.
    “뭐 해?”
    “뭐 하긴. 너한테 까이고 혼자 마신다.”
    “팔자 좋구나.”
    신은 기러기 아빠인 데다 점심부터 반주로 소주 두 병을 거뜬히 해치우는 소문난 애주가였다. 걸핏하면 기사를 펑크 내는데도 신이 선배들의 총애를 한 몸에 받는 데는 주량도 단단히 한몫을 한다는 소문이었다. 정신세계를 이해하긴 어려워도 술친구로는 나쁘지 않았다.
    “팔자 좋지. 이 나이에 유유자적, 낮술 하는 인생이 어디 쉽냐?”
    “어디야?”
    “왜? 오게?”
    “집이냐?”
    “술은 술집에서. 그게 주당의 에티켓이지, 인마. 한남동.”
    “상호를 대.”
    “간판도 없는 집이야. 주소 찍어 줄게. 세월처럼 쏜살같이 날아온나.”
    간판도 없는 술집에서 신은 주인도 없이 혼자 술잔을 기울이고 있었다. 간판은 없어도 분위기는 그럴 듯한 바였다. 그는 웃옷을 스탠드에 휙 집어던지고 신의 곁에 앉았다. 절반쯤 걸쳐졌던 옷이 스르륵 바닥으로 떨어졌다.
    “주인은?”
    “문 따주고 성질내고 가드라.”
    신이 바닥에 떨어진 웃옷을 건네며 물었다.
    “뭐야? 너 통장 들고 가출했냐?”
    통장이 주머니 사이로 비죽 고개를 내밀고 있었다.
    “가출은 무슨.”
    “좀 하고 그래라. 보는 형님 재밌게. 근데 웬 통장?”
    그는 신이 건넨 캔 맥주를 벌컥벌컥 들이켰다. 답답하던 속이 확 뚫리는 듯했다.
    “장인이 주더라.”
    신이 제 것도 아닌 통장을 거침없이 펼쳐 보고는 휘익, 휘파람을 불었다. 얼마가 들었는지 그는 아직 확인도 하지 않은 터였다. 적은 돈이 아닐 거라 짐작은 하고 있었다.
    “복권 탔네. 오늘 술은 네가 사라.”
    “부른 놈이 사야지 원정 온 내가 왜?”
    “이봐, 이봐. 있는 놈이 더하다니까.”
    “있는 놈은 너지.”
    신의 처가는 온 국민이 알 만한 대단한 집안이었다. 남매 일곱이 죄 의사 아니면 법조인이요, 그중 서넛은 신문에 걸핏하면 이름이 오르내리는 유명 인사였다.
    “마누라가 있지 내가 있냐? 왜 이래? 같은 월급쟁이끼리.”
    “그래도 인마, 너는 월급이 용돈이라며? 소문 자자하더라.”
    첫 월급봉투를 의사 마누라에게 건넸더니 용돈이나 하라더라는 신의 일화는 사내 전설이었다. 그라면 절대 남 앞에서 꺼낼 수 없는 이야기를 신은 무용담처럼 제 입으로 떠들어댔다. 겉보리 서 말만 있어도 처가살이는 안 한다며 신의 처지를 은근히 비웃는 사람도 있었지만 위세 있는 처가 덕을 보면서도 절대 꿇리지 않는 신을 부러워하는 사람이 더 많았다. 신은 술 먹다 돈이 떨어지면 거침없이 처남이나 동서를 불러내 계산을 시키는 사람이었다. 그도 덕분에 신문에서 이름만 봤던 유명 변호사에게 술을 얻어먹은 적이 있었다. 밤늦게 불러내 계산을 시키면서도 신은 당당했다.
    “불쌍한 사람들 삥 뜯은 거 사회 환원할 기회를 주는 거야. 고맙지? 고맙지?”
    신은 계산하는 처남의 목덜미를 팔로 휘어 감고는 되레 큰소리였다. 얼굴 알려진 변호사라 남의 이목도 있고 화를 낼 법도 하건만 신의 처남은 싫은 내색 하나 없이 신의 주사를 다 받았다. 처가의 재산보다 이물감 없는 그 관계가 그는 더 부러웠다.
    “그래도 오늘은 공돈 생긴 네가 사.”
    “공돈 같은 소리 하고 있네. 그게 어떻게 공돈이냐? 발목 잡는 돈이지.”
    “발목은 왜 잡혀? 발이 왜 달렸는데? 도망가라고 달린 게 발이야, 인마. 너는 기자라는 놈이 출퇴근 안 하고 번 돈은 다 공돈이라는 만고의 진리도 모르냐?”
    그는 피식 웃음을 흘렸다. 신에게 인생이란 어떤 것일까, 퍼뜩 궁금증이 일었다. 신이라면 잔인한 운명조차도 술안주 삼아 잠시 일었다 사라지는 소소한 바람 정도로 날려버릴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신이 인기가 많은지도 몰랐다. 신은 아무리 골치 아픈 일도 한낱 웃음거리로 날려버리는 재주가 있었다. 신의 말이 옳다. 출퇴근 안 하고, 박 같은 놈에게 고개도 안 숙이고 거저 얻은 공돈이니 감사히 받아야 할 일이었다. 그러나 신처럼 감사히 넙죽 그 큰돈을 받을 배짱이 없었다. 빈 맥주 캔이 늘어날수록 부담이 더 무겁게 마음을 짓눌렀다. 맥주가 물인 양 아무리 마셔도 취기가 오르지 않았다.
    “가야겠다. 술이 물이네.”
    “더 마셔. 마시다 보면 취하겠지. 알코올이 얼루 가겠냐? 공돈에 체한 건 술로 내리는 거야. 잘난 처가에 채여도 술이 직방이지. 술이 약이라.”
    늘 유쾌하고 가벼운 신의 마음에도 잘난 처가가 얹혀 있는 듯했다. 잘난 처남이나 동서 불러내 술시중 맡기는 것도 어쩌면 그가 생각하듯 무람한 관계여서가 아니라 도저히 뛰어넘을 수 없을 것 같은 벽 앞에서 부려 보는 투정이나 허세 같은 것인지도 몰랐다. 신을 홀로 두고 일어서기가 난감했다.
    일요일 오후, 한남동 골목의 간판 없는 술집에는 해가 기울어도 손님 하나 들지 않았다. 조명이 필요해질 즈음에야 게으른 주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주인과 바통 터치를 하듯 그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취기 때문인지 통장 때문인지 몸이 무거웠다.
    그녀의 굳은 얼굴을 맞닥뜨리고서야 그는 자신이 빈손임을 깨달았다.
    “미안. 깜빡했어.”
    표정이 굳었을 뿐 그녀는 어디를 갔다 온 거냐, 현이 이유식거리라는데 그걸 까먹냐, 따져 묻지 않았다. 잔소리가 일절 없는 게 그녀의 미덕이었다. 보통의 아내들이 잔소리를 늘어놓을 대목에서 그녀는 장인처럼 말갛게 그를 바라보았다. 그녀가 현을 안고 집을 나섰다. 굳이 현까지 데리고 나간 건 당신이 옳지 않다는 무언의 질책이었다. 장인의 통장과 다를 바 없는. 저녁을 준비하던 중이었는지 방앗잎과 멸치, 양파 따위, 온갖 냄새들이 집 안을 떠돌고 있었다. 요리의 열기 탓인지 공기가 후텁지근했다. 그는 베란다 창문을 확 열어젖혔다. 서울이라도 밤공기가 제법 상쾌했다.
    그녀는 오래도록 걸레질을 했다. 안방에서 현이 목욕을 시키느라 방 안 곳곳에 물이 튄 탓이었다. 욕실이 아무리 좁아도 세숫대야에 물 받아 놓고 목욕시키면 될 터였다. 그러나 그녀는 커다란 아이 욕조를 안방에 갖다 놓고 현을 씻겼다. 아이 욕조조차 들이지 못할 만큼 좁은 집에 살게 하는 자신의 남루를 번번이 그는 두 눈 뜨고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그는 아파트 십칠 평이 남루의 증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녀에게는 남루일 터였다. 그녀가 변비 심한 현을 위해 브로콜리나 양배추로 이유식을 만들 때도, 멜론이나 체리, 블루베리 같은 이름조차 생소한 과일을 먹일 때도, 그는 번번이 맥이 풀렸다. 그가 아무리 노력한들 그녀의 아버지처럼 안락한 울타리가 되어 줄 수는 없을 거라는 자괴감 탓이었다.
    그녀는 현을 재우고 밤이 깊어서야 안방으로 돌아왔다. 그에게 마음이 상할수록 현의 방에 있는 시간이 길어진다는 것쯤은 그도 알고 있었다. 아직 풀리지 않은 그녀의 마음에 어쩔 수 없이 또 상처를 내야 했다. 아니 어쩌면 그녀는, 늙은 복학생을 배려하여 기꺼이 밥을 같이 먹어 준 그녀라면, 상처 받지 않고 따스히 손을 잡아 줄지도 몰랐다.
    그는 그녀 앞으로 장인의 통장을 밀었다. 그녀가 말없이 통장을 펼쳤다. 기쁨과 감동과 우려와, 여러 가지 감정들이 순식간에 그녀의 눈빛에 떠오르는 것을 그는 놓치지 않았다.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이 기쁨의 빛이었다는 게, 그는 씁쓸했다. 자신으로 인해 기뻐하게 할 자신이 있었다. 그래서 감히 그녀에게 청혼했던 것이다. 그러나 정작 그녀를 기쁘게 한 것은 아버지의 통장이었다.
    복잡한 감정을 순식간에 내비친 후 그녀는 이내 평온한 얼굴로 그를 바라보았다. 이게 뭐냐는 질문일 터였다.
    “오늘 낮에 장인이 주시더라.”
    그녀는 그를 빤히 바라볼 뿐이었다. 언제부턴가 그녀는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지 않았다. 어지간해서는 그의 말에 토를 달지도 않았다. 그도 뭐라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밑도 끝도 없이 신이 떠올랐다. 신은 아직도 술을 마시고 있을 터였다. 그는 술을 입에 대기 시작하면 끝을 보는 타입이었다. 어쩌면 신에게 집이란 곳이 취하지 않고는 들어갈 수 없는 곳일지도 몰랐다. 그녀가 먼저 침묵을 깨뜨렸다.
    “어떻게 했으면 좋겠어요?”
    당신은 어떻게 하고 싶은데, 라고 묻고 싶었다. 그녀가 원하는 대로 해주고 싶었다. 그러면 그는 점점 사소해질 터였다. 자신의 울타리를 버리고 장인의 울타리 속으로 들어가게 될 터였다. 사는 게 별것이랴. 자신만의 작은 울타리를 만들고 거기 깃든 생명을 책임지며 살면 그만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마저도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그는 이제야 실감하고 있었다.
    그녀가 짧은 한숨을 내쉬었다.
    “알았어요.”
    한숨만큼 짧은 말과 함께 그녀가 통장을 챙기며 일어나려 했다.
    “알긴 뭘 알아!”
    자신도 모르는 새 튀어나온 고함이었다. 그녀가 아니라 자신을 향한 분노였다. 그녀의 차가운 시선이 똑바로 그를 응시했다. 미안하다는 말이 목구멍에서 맴돌 뿐 말이 되어 나오지 않았다. 그는 몇 번 숨을 골랐다.
    “그건 돌려드리고, 좀 넓은 평수로 알아봐.”
    “돈이 어딨어서…….”
    “대출 가능하잖아. 거의 갚았을 거 아냐.”
    그녀가 다시 한숨을 내쉬었다.
    “굳이 안 그래도 돼요. 복직하고 일이 년쯤 지나면 적금 타서 옮길 수 있어요. 그때 옮기면 돼요.”
    “꼭 다녀야 돼? 나는 현이 남의 손에 맡기는 거, 영 내키질 않아. 어떤 사람들인 줄 알고…….”
    그녀는 대꾸하지 않았다. 절대 포기할 수 없다는 의미임을 알면서도 그는 덧붙였다.
    “내가 설마 당신이랑 현이, 못 먹여 살리겠니? 내가 더 열심히 할게. 어떻게든 해볼 테니까 당신은 그만 좀 쉬어. 당신이랑 현이, 몸 약한 게 젤 걱정이야.”
    역시 아무 대답도 돌아오지 않았다. 그녀 판단이 더 현실적일 터였다. 십칠 평에서 평수 조금 넓혀 이사하는 것도 대출 아니면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그녀가 직장을 그만두면 평생 이십칠 평 아파트에서 벗어나기 어려울지도 몰랐다. 마이너스를 플러스로 바꾸기가 얼마나 힘든지 아냐던 장인의 말이 옳았다. 그걸 아니까 부모들이 죽어라 돈을 버는 거라고, 장인은 말했다. 그 역시 죽어라 돈을 벌었다. 참을 수 없는 것도 참았다. 그러나 그의 현실은 여전히 십칠 평 전세였다. 그것도 대출을 잔뜩 껴안은. 십칠 평에서는 정말 행복할 수 없는 것일까? 답은 알 수 없지만 그녀가 그렇게 생각한다는 것만은 분명했다. 그녀는 그의 울타리를 믿지 못했고, 그 안에 갇혀 살 생각도 없는 것이다. 십칠 평이라는 현실보다 그런 그녀의 마음이 그는 더 쓰라렸다. 살아갈 이유가 사라진 듯 허망하기도 했다.
    긴 침묵이 흘렀다. 부모의 다툼을 공기의 흐름으로 감지라도 한 듯 현이 울음을 터뜨렸다. 그녀가 육중한 침묵을 휘저으며 황급히 현의 방으로 달려갔다. 방바닥에 덩그러니 통장이 놓여 있었다. 아버지가 자기 병치레로 다 까먹을까 봐 죽는 순간까지 깔고 앉아 있었다던 산 다랑이 닷 마지기 논문서가 통장에 겹쳐졌다. 논문서를 깔고 눈을 감을 때 아버지는 어떤 마음이었을까? 얼굴도 보지 못한 아버지가 이 순간 간절히 그리웠다.

 

 

 

 

   《문장웹진 7월호》

 

kakao

1
댓글남기기

1 Comment threads
0 Thread replies
0 Followers
 
Most reacted comment
Hottest comment thread
1 Comment authors
  Subscribe  
newest oldest most voted
Notify of
둠벙에빠진달

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기를 쓰고 공부하고 취업 준비를 해서 좋은 직장에 취직했는데, 더욱 잔인한 삶이 기다리고 있네요.
일반 서민의 입장에서는 어쩌면 행복한 고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정지아 작가님의 필력에 의해서 세상에서 가장 힘든 삶으로 느껴집니다.
그런데 아무리 상사라 하더라도, 상대가 정강이를 걷어차면 맞받아 차고 머리로 박아 버리면 안 되나요?
갖출 것 갖추고 능력 있는 주인공인데, 설마 어디 간들 가족들을 굶기기야 하겠습니까?
저는 광주에서 사는 사람인데, 지방이 집값도 싸고 생활비도 적게 들어 좋더군요.
주인공에게 귀띔해 주셨으면 합니다.
정지아 작가님의 잘 짜인 작품, 매회 감명 깊게 감상하고 있습니다.
고맙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