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_차세대1차_소설]만화경

 

[2014년 1차 차세대예술인력육성 문학분야 선정작 ]

 

 

만화경

 

 


유재영

 

 

삽화_만화경

 

1

 

    니콜라이 바실리예비치 고골은 1809년, 우크라이나 소로친치에서 태어났다. 고골에게는 열한 명의 동생들이 있었지만 대부분 건강히 자라지 못하고 병사했다. 어린 고골은 동생들이 남기고 간 물건을 만지며 상념에 잠기곤 했는데, 그 물건에서 죽은 동생의 목소리를 듣거나 얼굴의 윤곽을 보는 등 환각에 빠지는 일도 있었다. 건강하게 자란 동생은 여동생 넷뿐이었다. 그 자신도 잦은 병치레를 했고 죽을 고비도 여러 번 넘겼다. 건강이 회복되면 그는 마을을 돌아다니며 가능한 한 많은 것을 눈에 담았다. 마을 사람들은 그가 곧 죽게 될 가엾은 아이라고 생각하여 자신들이 알고 있는 많은 이야기를 그에게 해주었다. 감수성이 예민한 아이로서는 이해하기 힘든 종류, 그러니까 치정이나 불륜, 돈과 추문 따위로 뒤얽힌 이야기도 있었다. 고골은 턱을 괸 채 마냥 듣기만 했다. 도통 납득할 수 없는 인물들도 상상 속에서는 살아 움직였다. 머지않아 고골도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었지만 들으려는 사람은 많지 않았고 듣고 있던 이들도 금방 싫증을 느끼며 제 갈 길을 갔다. 고골은 집으로 돌아와 입가에 빵 부스러기처럼 남아 있던 이야기를 종이에 흘려 적었다. 유년 시절 내내 작가의 꿈을 키운 그는 마을 사람들의 예상과는 달리 죽지 않았고, 스무 살이 되던 해 페테르부르크로 상경했다.
    페테르부르크의 하숙집에서 전원시풍의 시집 『한스 큐헬가르텐』을 엮어낸 고골은 화려한 문단 입성을 기대했다. 그러나 문단의 평가는 냉혹했다. 그저 젊은 감수성에 기대어 머리로만 쓴 작품이라는 평과 함께 병약한 문학 소년은 외면당했다. 지인에게 혹평을 전해들은 고골은 페테르부르크의 온 서점을 돌아다니며 책을 수거했다. 특히 넵스키 거리의 작은 서점에서 자신의 작품이 창고에 처박혀 있는 것을 목도하고는 괴이한 소리를 내며 웃었다. 서점 주인은 개의치 않고 매대에 올라앉은 분진을 털어냈다. 하숙집으로 돌아온 고골은 주인에게 허락을 구하고 헛간에서 시집을 모조리 불태웠다. 이백여 권이 넘는 시집을 한 권씩 불쏘시개로 밀어 넣으며 절치부심했다. 글이 통 써지지 않는 날이면 온종일 넵스키 거리를 쏘다니며 사람들을 관찰했다. 고골에게는 무언가를 골똘히 바라볼 때 두 눈을 오랫동안 깜빡이지 않는 습관이 있었다. 그 때문에 거리의 불량배와 매춘부에게 오해를 사기도 했지만 그의 두 눈은 모든 것을 기록하겠다는 듯 거침없이 움직였다.
    그로부터 삼 년 후, 그는 동슬라브 지역 민담과 설화를 바탕으로 한 소설집 『지칸카 근교의 야화』를 출간했다. 자신의 고향 마을에서 들은 이야기를 원형으로 삼았다. 잉크 대신 눈물을 찍어 썼다고 해도 좋을 만큼 집필 기간 중 그는 숱한 눈물을 흘렸다. 그동안 글을 쓴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조금은 알게 되었노라고 생각했다. 스스로를 치유하는 기술이로구나. 젊은 고골에게 글은 의술과도 같았다. 그렇게 병약한 문학 소년은 패기에 찬 청년으로 변모하였다. 첫 소설집으로 비로소 문명을 얻었다.
    여러 출판사에서 원고 청탁이 이어졌다. 그는 무엇을 쓸 것인지 숙고했으며 생각이 흐트러지면 예전처럼 거리에서 시간을 보냈다. 책상과 의자가 고문 도구처럼 느껴졌고 길 위에서의 시간은 점차 길어졌다. 그는 한 줄도 쓰지 못했다. 마감일이 지났지만 보낼 수 있는 원고는 단 한 장도 없었다. 백지를 앞에 두고 펜에 달린 깃털만 헤아리는 숱한 밤들이 고골을 괴롭혔다. 그는 수개월 만에 자신의 생각을 정정했다. 글을 쓴다는 것은 인간을 병들게 하는 중노동이구나. 마치 막장으로 들어간 광부처럼 마른기침을 멈출 수 없었다. 캐낼 수 있는 것은 한 줌도 없었다. 그의 낯빛이 점점 어두워졌다. 끝내 원고를 보낼 수 없겠다는 한 줄짜리 전보를 출판사에 남겼다. 어렵게 기회를 잡은 그는 불안에 떨었다. 지독한 슬럼프에 빠진 것이 생계를 위해 탐탁지 않은 일을 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당시 그는 내무부 하급 관리직을 맡고 있었다. 하숙집의 세를 치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시작한 일이었다. 공무원 사회는 고골과 맞지 않았다. 조직에 대한 불신과 관료 체계의 부조리함을 동료들에게 토로하곤 했지만 동료들은 무응답으로 일관하거나 “왜 날 못살게 구는 거요?” 하고 반문했다. 고골은 일을 그만두었다.
    소식을 들은 한 선배 시인이 고골에게 새로운 일자리를 소개해 주었다. “이곳이라면 글을 쓰면서도 밥벌이를 할 수 있을 거라네.” 페테르부르크 대학의 부교수직이었다. 고골은 단호히 거절했다. 아직 작가로서 문장이 영글지 않았고, 선생으로서도 듣고 읽고 보아야 할 것이 많은 것은 물론 강단에 서게 되면 글을 쓸 시간이 부족할 것이라는 이유에서였다. 선배는 다 알겠다는 표정으로 고골의 말을 묵묵히 듣고는 그렇다면 관리직을 그만둔 뒤 삼 개월 동안 쓴 글을 내놓아 보라고 일렀다. 할 말도, 보여줄 수 있는 원고도 없었다. 이듬해 고골은 역사학과 부교수로 취임했다. 학생을 가르치는 일에 보람을 느끼기도 했지만 글을 쓸 수 없기는 매한가지였다. 취임 일 년이 되기도 전에 교수직마저 버렸다. 방학을 맞아 모스크바에 다녀온 직후였다. 강단을 떠난 고골은 지인들에게조차 입을 다물고 자신의 하숙집에 칩거하며 창작에 전념했다.
    고골의 은둔 기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한동안 집필에 골몰하던 고골은 「코」와 「외투」 같은 당대 최고 작품을 연이어 발표했다. 그의 하숙집 주인 아카키 아카키에비치는 당시를 회고하며 이렇게 말했다. “매일 밤 그의 방에서 이상한 소리가 났습니다. 종이를 찢거나 후추나 소금 따위가 들어 있는 양념 통을 흔들 때 나는 소리였지요. 저는 그가 악령을 불러 모으는 소리라고 생각했습니다. 「비이」라는 소설에 등장하는 못생긴 괴물 있지 않습니까. 코가 큰 괴물 말입니다. 어쨌든 「외투」 같은 훌륭한 작품이 저희 집에서 탄생하게 될지는 몰랐습니다. 저는 그가 사용했던 방을 ‘고골의 방’이라 이름 붙였습니다. 물론, 문인들에게만 방을 내어 주고 있지요.” 고골은 「외투」를 발표한 직후 하숙집을 떠났다. 세를 받지 않겠다는 아카키에비치의 제안을 뒤로 하고 고골은 프랑스 파리로 적을 옮겼다. 그리고 다시 독일과 체코, 이탈리아 등지로 외유하며 「검찰관」, 「결혼」 그리고 「죽은 혼」 1부를 탈고했다. 그가 러시아로 돌아온 건 십이 년 뒤였다.

 

 

2

 

    모스크바 역을 통해 귀국한 그를 알아본 이는 아무도 없었다. 러시아 문인협회는 고골의 행방을 좇던 중 ‘로마-모스크바’ 기차 편 탑승자 명단에서 고골의 이름을 확인하고 환영 인파를 꾸렸지만 헛수고였다. 고골은 비이처럼 기괴하고 흉측한 모습으로 변해 있어서 협회 회원들은 그를 알아보지 못했다. 심지어 고골이 그들 무리 옆을 지나칠 때, 협회장은 코를 틀어막고 인상을 구겼다. 고골은 친애하는 후배 도스토예프스키를 만났다. 약속 장소는 모스크바 시내의 한 선술집이었다.
    모스크바의 추위는 고골의 쇠약해진 심장을 더욱 세게 옥죄었다. 그는 가느다란 입김을 내뿜으며 서둘러 보드카를 주문했다. 여남은 명의 노인들이 쏟아지는 눈을 헤아리는 듯 말없이 창가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 있었다. 그들은 무슨 일이든 일어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파리의 날갯짓조차 그들에게는 중요한 볼거리 가운데 하나였다. 고골은 그제야 고향 땅을 밟았다는 것을 실감했다. 그는 십 수 년 전 자주 가던 넵스키 거리의 한 선술집을 떠올리며 잔을 비웠다. 얼어붙은 심장이 서걱서걱 녹는 듯한 기분을 느끼며 보드카 병에 비친 선술집 풍경을 감상했다. 노인들과 시선이 겹치면 황급히 고개를 숙였다. 도스토예프스키가 선술집 문을 열고 들어왔다.
    “대체 무슨 일입니까?”
    도스토예프스키는 불과 몇 해 사이 노쇠한 고골의 몰골을 보고 어리둥절해했다. 말없이 연거푸 보드카를 들이켠 고골은 작심한 듯 입을 열었다.
    “자네에게 고백할 것이 있네.”
    고골은 외투 주머니에 깊숙이 손을 찔러 넣었다. 그는 떨리는 손으로 무언가를 꺼내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그게 뭡니까?”
    도스토예프스키는 한 손으로 검은 턱수염을 매만지며 고골이 내놓은 물건에 주목했다.
    “자네도 알겠지만…… 십삼 년 전인가, 십사 년 전인가. 나는 페테르부르크 대학에서 역사를 가르쳤네. 간혹 자료를 열람하기 위해 모스크바 대학을 방문할 일이 있었지. 모스크바 대학가는 골동품 골목으로 유명하지 않나. 그 길을 그냥 지나칠 수가 없더군. 어느 날 한 가게에서 이 만화경을 발견한 거야. 페테르부르크에서 하급 관리로 일하던 시절에 목격한 관료 세계의 부조리한 작태를 몇 개의 단어와 문장으로 기록한 뒤 이 만화경에 넣었지.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네. 본능이란 것이 존재한다면, 그런 것이 아닐까 짐작할 뿐이지. 아니, 몸에 익은 습관 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어. 나는 하루에도 몇 십 통씩 내무부로 투서한 민원 문서를 몰래 분쇄하여 버리는 일을 했으니까. 그래. 자네가 알고 있는 「코」와 「외투」는 이 만화경이 만들어낸 이야기일세.”
    “선배, 무슨 소릴 하는 겁니까?”
    “내가 한 말 그대로일세.”
    “그러니까, 이 물건이 소설이라도 써준다는 겁니까? 장난감같이 생긴 이따위 것이?”
    도스토예프스키가 오른손으로 만화경을 건드리며 물었다.
    “그렇다네. 내가 발표한 소설은 모두 이 만화경을 통해 본 이야기를 받아 적은 것에 지나지 않아. 자괴감에 타국을 방랑했으나 더 이상 나 자신을 속일 힘이 없구먼.”
    고골이 말했다. 도스토예프스키는 혼란스러웠다. 자신이 존경해 마지않는 작가가 십여 년 만에 나타나 자신이 쓴 작품을 부정하다니. 도스토예프스키는 거칠게 얼굴을 쓸어내렸다.
    “그렇다면, 내가 알고 있는 고골 선배가 한낱 필경사에 지나지 않는다는 겁니까?”
    “필경사라…… 그런지도 모르지. 「외투」 속 구등관처럼 말이야. 정서하고 또 정서했으니까. 한때는 내가 생각한 단어 몇 개와 문장 몇 줄이 이야기의 처음이자 끝이라고 생각했네. 하지만 그게 아니었던 거야. 나는 만화경에 두 눈과 심장마저 빼앗겼네. 순식간이었어. 오래지 않아 지옥 불에 떨어질 테지.”
    도스토예프스키는 반들반들 윤이 나는 만화경을 보며 그가 이 물건을 얼마나 애지중지해 왔을지 짐작했다.
    “선배가 광신도들 틈에서 놀아나고 있다는 풍문은 들었습니다만…… 사실이었군요. 이 정도일 줄은 몰랐습니다. 이따위 애들 장난감을 가지고.”
    도스토예프스키는 오른손으로 만화경을 부술 듯 움켜잡았다. 그리고 건너편 벽면으로 집어 던졌다. 만화경이 마룻바닥에 나뒹굴었다. 노인들의 고개가 만화경을 따라 움직였다. 그들은 누런 치아를 드러내며 웃었다. 고골은 흐리멍덩한 낯빛을 한 채 만화경이 떨어진 곳으로 무거운 걸음을 뗐다. 만화경은 멀쩡해 보였다. 고골은 저도 모르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러시아 문학은 내가 아니라 이 만화경을 믿어야 할 거야.”
    고골은 잿빛 먼지가 묻은 만화경을 외투의 안감으로 닦아내며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도스토예프스키는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손에 든 술잔만이 미세하게 떨렸다.
    “러시아 작가는 모두 선배의 외투에서 나왔다는 말은 오늘부로 취소하겠습니다. 아니, 정정해야겠군요. 외투가 아니라 만화경으로. 선배에게 몹시 실망했습니다.”
    도스토예프스키가 열뜬 목소리로 말했다. 그의 윗입술이 파리하게 떨렸다. 고골은 아무런 대꾸도 할 수 없었다. 도스토예프스키는 그대로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도스토예프스키가 나간 뒤에도 고골은 한동안 자리를 지켰다. 그날 저녁, 도스토예프스키는 자신의 노트에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정말 잘 들어 두어라.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남아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 요한복음서 12장 24절을 인용한 문장이었다. 훗날 그는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첫 장에 이때의 기록을 남겨 두었다. 도스토예프스키에게 고골은 이미 ‘죽은 혼’이었다. 그는 동이 틀 때까지 서재에 꽂힌 고골의 책을 모조리 땔감으로 사용했다.
    이튿날, 고골은 페테르부르크 넵스키 거리에 위치한 하숙집으로 돌아왔다. 하숙집 주인 아카키에비치는 그를 알아보고도 놀란 기색 없이 살뜰히 맞이했다. 아카키에비치는 그를 ‘고골의 방’으로 안내했다. 물론 투숙비는 받지 않았다. 고골은 아카키에비치에게 몇 달간 중요한 작품을 집필할 예정이므로 방해하지 말아 달라고 부탁했다. 아카키에비치는 일찍이 그의 집필 습관을 알고 있었기에 걱정하지 말라고 대꾸했다.
    자멸감이 극에 달한 고골은 자신의 발목을 책상 다리에 묶었다. 그리고 만화경을 창밖으로 내던졌다. 다시는 찾지 않으리라는 굳은 의지였다. 그는 밤낮없이 원고를 휘갈겨 썼고, 정확히 열흘 뒤 죽음이 그의 방문을 두드렸다. 만화경의 도움을 받지 않고 쓴 「죽은 혼」 2부의 원고를 모두 불태운 다음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이다. 그의 시신을 발견한 이는 아카키에비치의 아들이었는데, 방 문틈에서 계속 연기가 새어 나왔고, 문을 열었을 때는 이미 불길이 멎은 상태였다고 진술했다. 시신은 불길에 그을린 상태였고 타다 만 원고는 내용을 알아볼 수 없었다. 책상 위에는 고골이 죽기 직전에 남겼을 것으로 추정하는 문장 몇 줄이 있었다. 그 마지막 문장이 묘비에 남았다.

 

니콜라이 고골. 1809―1852.
쓰디쓴 언어로 나는 웃음 짓네.

 

 

3

 

    만화경이 새 주인을 찾은 것은 1879년 12월이었다. 모스크바 대학 의학부 2학년생 안톤 체호프는 가족의 생계를 위해 모스크바 시내의 한 잡화점에서 일했다. 그에게는 아픈 남동생 셋과 여동생 둘, 그리고 그들을 간호하는 심약한 어머니가 있었다. 그는 동생들을 직접 치료하리라는 꿈을 품고 있었지만 당장 약이 궁했고 허기를 달랠 빵도 필요했으므로 수업이 없을 때는 잡화점으로 왔다. 틈틈이 돈이 될 만한 소설도 썼다.
    지하 창고에서 물건을 정리하던 체호프는 만화경을 발견했다. 겉칠이 군데군데 벗겨지고 색이 바랜 만화경이 잡화점 창고 후미진 곳에 처박혀 있었다. 체호프에게는 소설에 등장시킬 수 있는 물건이라면 무엇이든 손아귀에 넣고 보는 도벽이 있었다. 게다가 그 물건의 쓰임을 도통 짐작할 수 없을 때는 더욱 그랬다. 만화경은 어느새 오른쪽 호주머니 안으로 들어가 있었다. 왼쪽 호주머니에는 잡지사에서 온 우편물이 들어 있었다.
    그는 여러 주간지에 단편소설을 보냈으나 수록되지 못하고 번번이 되돌아왔고 이번에도 봉투에는 ‘낙선’ 도장이 선명하게 찍혀 있었다. 몇몇 문장에는 줄이 그어져 있었고 그 위에는 낙선의 이유가 적혀 있었다. 호흡이 빠르다, 핍진성이 떨어진다, 사유가 부족하다, 즉 엉망진창이다. 거듭되는 낙선으로 근심이 깊어졌다. 등록금은 올랐지만 잡화점의 시급은 그대로였다.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서는 어떻게든 글을 팔아야 했다. 체호프는 의자에 앉아 반송된 원고를 갈기갈기 찢었다. 그리고 서랍에서 가계부를 꺼냈다. 잡화점에서 받은 급여와 오전에 구입한 식료품, 그리고 동생의 약값을 기록했다. 책상에는 잡화점에서 가지고 온 만화경이 놓여 있었다. 체호프는 자세를 가다듬고 만화경을 살폈다. 무엇에 쓰는 물건일까, 동생을 시켜 다른 잡화점에 되팔 수 있지 않을까, 궁리하던 찰나 무언가 바닥에 떨어졌다. 그는 얄궂은 장난을 치다 걸린 아이처럼 화들짝 놀랐다. 의자 밑에는 본체에서 빠져나온 작은 서랍 형태의 부속물이 있었다. 체호프는 물건의 쓰임을 알아챘다. 모든 문양을 대칭으로 보여주는 진기한 물건. 그는 서랍에 들어갈 만한 작은 물건을 찾았다. 책상 위에서 조각난 글자들이 나풀거렸다. 종잇조각을 서랍에 넣고 만화경 입구에 왼쪽 눈을 갖다 댔다. 렌즈에 글자가 맺히기 시작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체호프는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만화경은 글자를 대칭으로 보여주는 대신 완성된 문장 형태로 보여주었다. 체호프는 그 문장을 읽어 내려갔다. 그는 그 문장이 자신이 쓰고자 했던 문장이라는 걸 깨달았다. 문장은 계속해서 이어졌다. 그것은 진짜 「카멜레온」이었다.
    체호프는 그간 쓴 작품을 잘게 찢어 만화경에 옮겨 담았다. 그리고 자신의 노트에서 글감이 될 만한 내용을 종이에 옮겨 적었다. 종잇조각은 어김없이 만화경의 작은 서랍으로 들어갔다. 체호프는 완성된 소설을 유머지와 문예지 등 다양한 분야의 잡지사에 보냈다. 그는 매주 새로운 작품을 투고했고 소설은 여지없이 수록되었다. 원고료로 어머니와 어린 동생들의 생활비를 댈 수 있었다. 체호프는 더는 가계부를 쓸 필요가 없다는 걸 알았다. 이후 체호프는 페테르부르크와 사할린, 블라디보스토크 등지를 돌며 「귀여운 여인」, 「약혼녀」, 「개를 데리고 다니는 여인」 등을 집필했다. 이때 쓴 작품만 칠백 편이었다. 체호프에게 만화경은 만년필과 짝을 이루는 필기구일 뿐이었다. 만화경에 넣는 몇 개의 단어와 문장만으로도 이미 소설은 완성된 것이며, 만화경은 단어와 문장을 부풀려 주는 도구에 지나지 않는다고 믿었다. 빵을 굽기 위해 밀가루 반죽에 베이킹파우더를 넣을 때마다 만화경을 떠올렸다. 빵이 부풀어 오르는 모습을 보면서 소설을 구상하는 것이 체호프의 새로운 집필 습관이었다. 고소한 냄새와 함께 또 한 편의 근사한 소설이 탄생하곤 했다. 이제 가족의 생계는 그의 걱정거리가 아니었다.
    체호프는 1892년 모스크바로 돌아와 정착했다. 이 시기에 그는 「세 자매」와 「벚꽃 동산」 등 일련의 희곡 작품으로 명예까지 거머쥐었지만 건강을 잃었다. 지병이었던 결핵이 악화된 것이다. 건강한 폐만 있다면 더 많은 작품을 써낼 수 있을 텐데. 체호프는 글을 쓰다 말고 비탄에 잠기곤 했다. 그는 여생을 보낼 요양지를 알아보고 있었다. 그러던 와중에 알렉세이 페쉬코프가 체호프를 찾아왔다. 그가 바로 지금까지 만화경의 마지막 소유자로 알려진 막심 고리키다.

 

 

4

 

    고리키는 「마까르 추드라」로 문단의 주목을 받으며 등장했다. 그는 하층민의 삶을 묘사한 희곡 「밑바닥에서」를 통해 프롤레타리아 문학의 선구자로 꼽혔다. 그러나 이내 악몽이 찾아왔다. 문장을 종결지을 수 없게 된 것이다. 처음에는 구두점을 찍을 수 없게 된 까닭이 자유와 정의가 사라진 암울한 시대 상황에 있다고 생각했다. 수많은 작가가 스탈린과 체제를 비판하는 글을 쓰다가 수용소로 끌려갔기 때문이다. 고리키 주위의 동료 문인도 하나둘 사라지고 있었다. 끌려가는 동료들을 보며 고리키는 글보다 힘이 센 것을 찾았다. 빵인가? 아니면 총인가? 결국은 혁명인가? 자신의 나약함을 저주하며 술을 마셨다. 소설과 희곡으로 구원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비관이 그를 할퀴고 갔다. 정부 부처에 탄원서를 내보려고 했지만 그 역시 쓸 수 없었다. 신문사에 보내려던 구호도 찢어버렸다. 시간이 지나면서 그는 글을 쓸 수 없게 된 이유가 온전히 자기 자신에게 있다고 생각했다. 자신 안에 끔찍한 한 마리의 검열관이 웅크리고 있다고 느꼈다.
    절망한 고리키는 선술집을 전전했다. 수행하듯 방탕한 생활을 이어 갔다. 급기야 알코올중독으로 착란 상태를 겪던 고리키는 문단의 선배이자 의과대학 출신의 체호프를 찾아갔다. 체호프는 먼저 고리키에게 갓 구운 빵을 권했다. 고리키가 빵을 먹는 동안 체호프는 부엌과 응접실을 서성였다.
    “더 먹을 텐가?”
    체호프가 물었다. 고리키는 고개를 가로젓고는 입가에 묻은 소금을 털어냈다. 체호프는 다시 부엌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고리키는 소파에 떨어진 빵 부스러기를 빈 접시 위에 쓸어 담으며 골똘히 생각에 잠긴 체호프의 뒷모습을 곁눈질했다. 체호프의 어깨가 들썩이기도 했고 축 늘어지기도 했다. 마침내 체호프가 고리키 앞에 섰을 때, 그는 자신이 입고 있던 두꺼운 갈색 외투 주머니에서 만화경을 꺼냈다.
    “이제 자네 차례일세.”
    그 무렵 체호프는 얼마 남지 않은 생을 예감하며 만화경을 건넬 젊고 유능한 작가를 찾고 있었다. 체호프는 고리키의 데뷔작을 읽고 깊은 감명을 받았으며, 「밑바닥에서」를 무대에서 본 뒤로 머지않아 그를 만나게 될 운명임을 직감했다.
    고리키는 처방전 대신 만화경을 들고 집으로 돌아왔다. 체호프의 말을 믿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그가 일러준 방법을 한 번은 따라 봐야 한다고 생각했다. 고리키는 널브러진 술병을 정리하고 찢긴 원고를 한데 모았다. 그중 신문사에 기고하려던 원고 조각을 골라내 만화경 서랍 안에 넣었다. 렌즈에 눈을 갖다 대는 순간 고리키는 선득함을 느꼈다. 그는 렌즈를 들여다보는 동작이 현관문에 나 있는 작은 구멍을 들여다보는 것과 유사하다고 생각했다. 렌즈 맞은편에서 누군가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것 같았다. 고리키는 질겁하며 만화경에서 눈을 뗐다. 방법을 바꿔 보기로 했다. 이번에는 눈을 감은 채 렌즈에 갖다 댄 뒤 천천히 눈을 떴다. 글자가 보였다. 혁명을 갈구하는 수많은 인물의 실체가 만화경 안에 있었다. 그들은 문장으로 존재했다. 주체할 수 없는 힘을 느꼈다. 첫 줄을 받아 적었다. 창조는 혁명이며 혁명은 곧 창조다.
    만화경을 손에 쥔 그는 희곡 「밤 주막」과 소설 「어머니」를 발표했다. 소비에트 작가동맹의 의장으로 선출되면서 신문사에 논평을 기고하고 노동자를 위한 글을 거리 곳곳에 써 붙였다. 정부를 비판하고 체제의 종속을 위해 일하는 이들을 호명했다. 고리키의 글에 노동자들의 마음이 움직일수록 거리에는 냉혹한 바람이 불었다. 의장직을 맡은 지 육 개월 만에 그는 동료들을 대신해 수용소로 끌려갔다. 그가 잡히기 전 마지막으로 한 일은 만화경을 가장 은밀한 곳에 숨기는 것이었다. 기약 없는 수용소 생활 중 그는 여러 가지 기술을 익혔다. 톱니바퀴가 즐비한 커다란 기계를 만지기도 했다. 그의 손에 푸른 잉크 대신 검은 기름이 묻었지만, 손끝에서 꿈틀거리는 생명력을 느꼈다. 손재주가 탁월했던 고리키는 수용소 관리들의 시계와 라디오 등을 고쳐 주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고리키는 장문의 서신 한 통을 전해 받았다. 체호프가 보낸 것이었다. 곧장 짤막한 답장을 썼다. 답장이라기보다는 질문에 가까웠다. 답을 기다렸으나 출소하기 전까지 체호프의 답신을 받을 수 없었다. 그는 수용소에서 나온 뒤에야 체호프가 죽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체호프는 고리키에게 만화경을 건넨 뒤 기근 구제와 콜레라 방역사업, 그리고 학교 설립 운동을 활발히 펼치는 등 이전과는 다른 삶을 살기 위해 노력했다. 연극 〈갈매기〉에서 이리나 역을 맡은 배우 올리가 크니페르와 결혼도 했다. 사랑이 자신을 구원할 것이라는 기대와는 달리 결혼과 동시에 체호프의 지병은 악화되었다. 진통제를 복용하며 버텼지만 환각이라는 부작용이 나타났다. 체호프의 환각은 그의 작품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그 주위를 맴돈다는 점에서 유례가 없었다. 의사와 경찰, 못된 지주와 가난한 여인, 그리고 괴팍한 상인이 체호프 곁을 떠나지 않았다. 그들은 저들끼리 속삭일 뿐이어서 체호프는 그들이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챌 수 없었다. 혼자 길을 걷거나 책상에 앉아 있을 때, 그리고 귀여운 여인 올리가 크니페르와 함께일 때도 환각은 계속됐다. 병증이 악화되어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기 일쑤이던 1904년 어느 날, 체호프는 도스토예프스키를 만났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 황급히 고리키에게 보낼 서신을 작성했다.

 

    친애하는 고리키 군에게.
    그곳 수용소의 겨울은 견딜 만한가? 자네의 소식은 올리가의 극단 동료들을 통해서 들었네. 참혹하더군. 곧 대규모 사면이 있을 거란 소문을 들었는지 모르겠네. 여론이 급박하게 돌아가는 모양이야. 자유가 머지않았어. 조금 더 힘을 내게.
    그렇지. 자유가 필요한 건 자네만이 아닐세. 최근에 나는 지난 이십사 년간 너무 많은 작품을 쓴 게 아닌가 생각하고 있네. 환각을 겪으면서 그런 생각을 품게 되었지. 나는 언젠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네. 작가의 역할은 상황을 진실하게 묘사하는 것이다. 독자가 그 상황을 피해 갈 수 없도록. 돌이켜 보니 인물들과 끝내 마주해야 하는 건 여러 명의 독자가 아니라 한 명의 작가더군. 그들이 조물주인 나를 원망해서 내 앞에 모이는 게 아닐까 하는 두려움이 컸다는 걸 부정하진 않겠네. 내가 정확하게 쓰지 못한 탓이겠지. 지금은 나를 못 본 척하고 있지만 언젠가는 말을 걸겠지. 자신을 왜 이렇게 만들었느냐고 물으면 어떻게 답해야 할까. 내 멱살이라도 잡고 흔들면 어쩌나. 이따금 걱정도 된다네. 지금은 답해 줄 수가 없지 않나. 그래서 나는 이들을 자네에게 보낼 작정이네(물론 농담이라네. 그들을 무슨 수로 자네에게 보낸단 말인가).
    그것에 대해서 말하려고 하네. 만화경 말일세. 만화경은 계속해서 새로운 작품을 보여주었고 나는 의자에 앉아 정서하고 또 정서했지. 지난 이십사 년 내내 그랬어. 그런 점에서 자네에게 만화경을 준 것이 옳은 결정이었는지 생각해 보았네. 자네도 건강을 해치게 되지나 않을까 염려했지. 그런데 마침 자네가 수용소에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한편으로 안도했지 뭔가.
    그동안 만화경에 대해서 의심한 적은 한 번도 없었어. 이제야 의구심이 생기네. 무엇이 만화경으로 하여금 계속해서 이야기를 생성하게 하는 것일까. 의학이란 본래 의심에서 시작해 관찰하고 탐구하는 학문일진대, 의사라는 작자가 만화경을 의심하지 않고 들여다보고만 있었던 거야. 서두가 길어졌네. 내가 편지를 쓰는 것은 어젯밤 일 때문이라네. 그를 만났어. 도스토예프스키를 말이야. 내 기억이 맞는다면 자네는 그를 이렇게 표현했었지. 러시아가 낳은 악마적인 천재. 도스토예프스키는 다짜고짜 오래전 일을 나에게 들려주더군. 모스크바에 있는 어느 허름한 선술집에서의 일화였지. 상대는, 놀라지 말게. 고골이었어. 고골이 직접 자신을 찾아왔다고 도스토예프스키가 말했다네. 물론 나도 깜짝 놀랐지. 더 놀라운 이름이 등장하더군. 만화경이었어. 그 이야기 속에는 만화경이 있었던 거야. 도스토예프스키에 따르면 고골은 자신이 살해한 것이나 다름없다는 걸세. 그날 자신이 고골 선배에게 함부로 지껄인 걸 후회하더군. 고골이 만화경을 사용해 소설을 쓴다고 하여 도스토예프스키는 고골에게 불경스러운 말을 마구 퍼부었고 그 말이 저주가 되었을 거라는 거야. 이 대목에서 그럼 나는? 우리는? 뭐가 되는가, 생각했지. 기분이 좋지는 않더군.
    그런데 말이야. 도스토예프스키는 고골의 말을 사실로 받아들인 점을 후회하더란 말이지. 선배에게 지병이 있다는 걸 뒤늦게 알았다는 거야. 고골을 만나고 며칠 후 도스토예프스키는 간염 증상으로 병원을 찾았는데 우연히 간호사들의 대화를 엿듣게 된 거지. 허름한 행색의 환자가 의사에게 환각 증세를 호소했고 웬 장난감을 하나 가지고 왔는데 그것은 그저 값이 조금 나가 보이는 장난감이지 환자가 설명하는 어떠한 진기함도 찾을 수 없었다는 거야. 그래서 의사는 환자에게 다량의 진정제를 처방했다는 걸세. 도스토예프스키가 말했지. “뭐든지 넘치면 모자람만 못하지 않겠나. 선배는 그날 약을 너무 많이 먹었어. 늘 약을 너무 많이 먹는다는 게 문제였겠지.” 고골의 환각 증세는 그저 유년 시절 그가 겪었던 숱한 죽음 때문일 가능성이 짙다는 거야. 그의 집안은 본래 병약한 체질이라는 것이지. 도스토예프스키는 고골 선배가 자신에게 했던 말은 고백이 아니라 병증이었고 자신이 너무 쉽게 그날, 그 자리, 그 테이블에서 단정해 버리고 만 걸 일생 동안, 아니 일생 이후에도 후회하고 있다는 걸세.
    그러고는 단도직입적으로 묻더군. 오래전부터 나의 소설을 읽으며 혹시 고골의 만화경을 손에 넣은 것은 아닌지 의문을 품고 있었다고 말이야. 깜짝 놀라 되물었지. 그제야 그도 웃음을 되찾더군. 그가 내 소설에서 어떤 대목이든 떠올려 보라고 하더군. 나는 「카멜레온」의 첫 문장을 떠올렸어. 처녀작이었으니까. 자네도 기억할지 모르겠네. 그래, ‘외투’가 등장하지. 나는 적잖이 충격을 받았고 정신을 차렸을 때는 도스토예프스키의 형체가 사라지고 목소리만 남아 있었네. 그 목소리가 말했지.
    “그렇단 말이지?”
    맞아. 두말해 무엇 하겠나. 그건 확실히 꿈이었어. 도스토예프스키는 스무 해도 더 전에 죽었으니까. 아무래도 내가 죽을 때가 된 모양이네. 이웃 나라에서는 꿈이 무의식의 부산물이니 어쩌니 하는 연구를 하고 있다지만 나는 이 서신에서 자네에게 꿈을 현실인 양 말하려고 하는 건 아닐세. 다만 자네가 가지고 있는 만화경은 본래 고골 선배 것이었다는 걸 말해 주고 싶은 것뿐이야. 이 늙은이의 추측이 수용소에 있는 자네에게 혼란만 가져다주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네. 이해해 주길 바라네. 나는 이제 정말 아무것도 모르겠네. 글을 쓴다는 건 무엇보다 세상을 보는 작가 고유의 눈을 가지는 것이라고 생각했네만…… 내가 본 것이, 정말 내가 본 것일까? 진짜 글을 쓴 건 누구일까?

 

메리호보에서 안톤 체호프

 

    고리키는 글을 쓴다는 것이 무엇보다 세상을 보는 작가 고유의 눈을 가지는 것 아니겠느냐는 구절을 반복해서 읽었다. 체호프의 말에 감명을 받아서라기보다는 처음 만화경을 들여다볼 때 느꼈던 선득함이 다시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분명 그것은 누군가의 시선이었다. 고리키는 출소를 앞둔 전날 밤, 한 노인으로부터 고골과 관련된 기묘한 이야기를 전해들을 수 있었다. 고골의 시신을 수습하는 자리에 있었다는 그 노인은 고골의 두 눈이 비어 있었다고 증언했다. 노인은 자신의 어린 시절을 회상하며 쓴웃음을 짓다가 고골의 처참한 시신을 본 대목에서는 어린아이처럼 칭얼거리듯 말했다. 노인의 이름은 아카키에비치, 고골이 오랫동안 기거했던 하숙집 주인의 아들이었다.
    출소 후 고리키는 소비에트 작가동맹의 환영을 받았지만 쉬고 싶다는 말을 남기고 자신의 거처로 향했다. 만화경은 갈라진 마룻바닥 사이에 그대로 있었다. 고리키는 수용소에서 배운 기술을 활용해 보기로 했다. 먼저 만화경의 홈과 나사 모양을 확인하고 작은 끌개와 십자드라이버를 준비했다. 서랍에서 오랫동안 잠들어 있던 원고지와 만년필, 그리고 잉크병을 꺼냈다. 분해 순서를 적기 위해서였다. 고리키는 만화경을 천천히 분해하기 시작했다. 세로축을 중심으로 만화경의 왼쪽 판과 오른쪽 판을 분리하는 데 집중했다. 부러지거나 금이 가지 않도록 조심했다. 창문을 두드리던 햇빛이 물러난 뒤에도 작업을 계속했다. 초에 불을 붙인 건 방이 완전히 암흑천지로 바뀐 뒤였다. 추운 날씨였지만 고리키의 콧잔등과 목덜미에서는 땀이 흘렀다.
    그는 간헐적으로 부패한 동물의 사체 냄새를 맡았는데 그때마다 자신이 들짐승을 해부하는 수의사 같다고 생각했다. 녹슨 나사를 제거하고 만화경의 겉판 사이에 끌개를 밀어 넣자 먼지가 일었다. 커다란 성문이 열릴 때 날 법한 음험한 소리가 나며, 틈이 벌어졌다. 고리키는 양손을 이용해 만화경의 왼쪽 판과 오른쪽 판을 그러잡았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둘을 떼어냈다. 겉판의 틈이 벌어질수록 축축한 기운이 그의 손가락과 손목을 휘감았다. 만화경 내부의 모든 부속물은 왼쪽 판에 붙어 있었다. 그리고 왼쪽 판 가운데에
    두 개의 눈
    이 붙어 있었다. 눈꺼풀이 될 만한 살점은 없었고 흰자와 검은자, 그리고 가는 선 여러 가닥만 오른쪽 판에 닿아 있었다. 눈알 하나는 만화경의 입구를 향해 있고 다른 하나는 반대편을 보고 있었다. 종이를 넣는 서랍이 위치한 곳이었다. 서랍에 새끼손가락을 들이밀자 서랍 쪽을 향한 눈알의 동공이 수축했다. 동시에 입구 쪽을 향해 있던 눈알이 움직였다. 동공이 점점 커지며 뭔가 맺히기 시작했다. 고리키는 만화경 렌즈에 자신의 눈을 갖다 댔다. 그리고 그 커다란 동공에 맺힌 상을 꾸역꾸역 받아 적었다.

 

 

5

 

    이 소설의 일부는 2010년 『문학과죄송』 봄 호에 「고골의 만화경」이란 제목으로 발표된 바 있다. ‘나는 왜 쓰는가’라는 주제로 사십 매 내외의 콩트를 청탁받아 쓴 글이었다. 일찌감치 완성한 작품은 단편소설에 맞춤한 분량이라 사십 매 가까이 원고를 쳐내야 했다. 결말도 지금과는 달랐다. 10월 혁명에 가담하며 투옥된 고리키는 출소와 함께 러시아를 떠나면서 종적을 감추었고, 그가 소지하고 있던 만화경도 외투 속 유령처럼 밤의 어둠 속으로 완전히 사라지고 말았다는 다소 김빠지는 결말이었다. 나는 이 소설을 쓰기 위해 아마존에서 330달러짜리 만화경을 구입했다. 고급 마트료시카를 제작하는 업체에서 한정판으로 제작한 전나무 재질의 만화경이었다. 그즈음 만화경을 외투 안주머니에 소지하고 다녔다. 술자리가 길어지면 같은 테이블에 앉은 사람들에게 꺼내 보이기도 했다. 반응은 대수롭지 않아서, 비슷한 크기의 닭봉보다 주목받지 못했다.
    「고골의 만화경」을 개작하여 발표하는 이유는 마감을 앞두고 신작을 집필하지 못해서가 아니다. 그렇다고 잘려 나간 부분을 복원하고 말겠다는 고고학적인 이유도 아니다. 소설을 발표한 이듬해 겨울, 연희문학창작촌에서 일어난 불미스러운 사건 때문이다. 당시 나는 연희에 입주해 있었는데 신작 집필보다는 출판사에서 마련한 술자리란 술자리는 모두 쫓아다니며 공짜 술을 들이켜는 데 재미를 붙이던 참이었다. 문제의 사건이 일어난 건 한 신문사가 주최하는 통합 시상식이 있던 날이었다. 자정이 지나 정신을 차리고 보니 관계자들은 모두 돌아가고 이제는 이름조차 기억나지 않는 한 선배 시인이 맞은편 자리에 앉아 졸고 있었다. 나는 그를 깨워 택시에 태웠다. 택시는 좀처럼 출발하지 않았다. 그가 조수석 창문 바깥으로 고개를 내밀고 창백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뒤차의 연이은 경적 탓에 그는 말을 맺지 못했고 이번에는 뒤차를 향해 욕설을 내질렀다. 이윽고 택시는 매연과 몇 마디 단어만 남기고 사라졌다. 떨어진 단어는 금방 조합이 가능했다. 연희에 귀신이 있다던데. 씨발, 나도 봤지.
    연희에 유령이 출몰한다는 소문이야 이미 문인들 사이에 심심치 않게 회자되던 참이었다. 시와 소설의 소재로 삼는 것도 모자라 공포체험 수기 형태로 발표된 글도 있었다. 나 역시 모르는 바가 아니었다. 하지만 그것은 환각이나 노안에 의한 착시에 지나지 않았다. 오로지 존재만이 존재한다. 일찍이 체호프가 말했듯 공포는 현실의 삶이 자신을 짓누르기 때문에 느끼는 것이며, 무거운 삶의 반영(反影)을 보는 것이다. 공포는 반응하는 자에게 반응한다. 삶이 무겁고 무섭다면 그 삶을 부숴버리면 그만이다.
    그날 나는 취기가 오른 탓에 연희의 완만한 비탈길에서조차 숨을 헐떡이며 걷고 있었다. 오후 나절 눈까지 내려 길은 대체로 미끄러웠다. 1동과 2동 사이의 가로등은 고개를 푹 숙이고 제 몸만 비추고 있었다. 걸음마다 눈을 부수는 소리가 났다. 머리칼이 곤두선 건 2동을 등지고 집필실이 있는 3동으로 향하는 길의 초입에서였다. 야외무대 객석 끝에 누군가 앉아 있는 것이 보였다. 어둠 속 사내는 자리에서 일어나 내 쪽으로 다가왔다. 그 자리에서 오랫동안 나를 기다렸다는 듯 거침없었다. 그곳에는 사내와 나, 단둘뿐이었다. 사내가 말했다. 지금도 그 말만은 똑똑히 기억한다. 「외투」 속 유령의 대사와 흡사했기 때문이다.
    “이놈! 멀리도 왔구나. 드디어 네놈을 만났다. 마침내 네놈의 발목을 잡았어. 난 네놈의 만화경이 필요해. 이젠 네놈의 것이 필요해.”
    비스듬히 고개를 들고 사내의 얼굴을 봤다. 야구 모자를 눌러써서 희번덕거리는 눈만 보일 뿐(두 눈이 지나치게 새하얘서 유리로 만든 의안으로 보일 정도였다) 하관으로 짙은 그림자가 드리워져 생김새를 알아보기 힘들었다. 사내는 어깨가 비정상적으로 넓은 모직 재질의 코트를 입고 있었다. 그가 검은색 가죽 장갑을 낀 손을 내밀었다. 나는 입고 있던 외투에서 닭기름이 묻어 반질거리는 만화경을 꺼냈다. 사내는 만화경을 재빨리 챙겨 들었다. 그리고 내 배를 걷어차고 뒷주머니에서 지갑까지 빼내 갔다. 사내의 또 다른 손에는 벽돌이 들려 있었는데 그걸로 내 뒤통수를 갈기고는 어둠 속으로(전두환의 사택 방향으로) 미끄러져 갔다. 다음날 아침, 나를 발견한 사람은 연희의 시설을 담당하는 젊은 남자 시인이었다. 묵직한 뒤통수에서 피 대신 누군가의 토사물이 만져졌다. 며칠간 나는 지독한 몸살을 앓았다.
    그날 이후로 종종 뒤통수가 묵직하고 뻐근할 때가 있다. 날씨가 찌뿌듯하거나 일교차가 큰 날에는 쑤시기까지 한다. 주벽도 하나 늘었다. 글을 쓰는 후배들을 만나면 흉터가 보이도록 뒤돌아 앉아 연희문학창작촌 야외무대에서 만난 검은 사내에 대해 말하는 일이었다. 고백하자면 그날 밤 괴한을 만나 만화경을 도둑맞은 뒤로는 신작을 발표하지 못했다. 새로운 이야기가 떠오르지 않았다. 삶이 무섭고 더러웠다. 그래서 기회가 있을 때마다 삶을 부숴버릴 기세로 술을 마셨다. 술잔이 돌 때마다 나는 그때의 일과 잃어버린 만화경에 대해 떠들었다. 그리고 다음날 출근은 개의치 않고 인사불성으로 취하곤 했다. 나를 신기해하는, 별로 친하지 않은 한 소설가에 의하면 술자리에 있던 이들 중 가장 잘나간다는 작가의 멱살을 잡고 이렇게 지껄이는 모양이었다.
    “너구나. 이 도둑놈. 이젠 네놈의 것이 필요해.”

 

 

 

[작품 심사평]

< (선정평) [소설]「만화경」 >
 
    「만화경」은 전체가 은유다. 이 소설은 고골, 도스토예프스키, 체호프, 고리키로 이어지는 러시아 문학에서 소재를 빌려와 그럴듯하게 이야기를 전개해 나간다. 요컨대 소설쓰기의 어려움을 이들 작가의 짧은 행적을 통해 추적한다. 이들에게 바톤 식으로 이어지는 만화경은 소설 작법의 방법론이면서 미시적으로 본다면 리얼리즘일 텐데, 작가의 과장과 엄살 또한 소설에 긴장감을 주는 요소로 작용한다. 「만화경」은 결국 작가정신 혹은 혼인데, 소설은 무엇인가, 소설은 무엇을 써야 하는가, 소설은 어떠해야 하는가에 대한 젊은 작가의 진지한 고민으로 읽힌다. 이청준, 이인성, 정찬, 최수철 등의 선배 작가들이 감행했던 소설 장르 자체에 대한 미학적 탐색의 연장선상에 있어, 이 소설은 한국 문학의 뚜렷한 계보 속에 위치하는 것도 나름의 미덕이다.
    (하응백)

 

===== 작가와 6문6답 =====
 

1. 우선 선정된 소감을 간단히 밝혀주세요. ^_^

  이름을 불러주셔서 감사합니다.

 

2. 이 작품을 처음 떠올렸을 때 어디서 무얼 하고 계셨나요?

  처음 만화경을 발견한 곳은 경기도 구리에 있는 한 아파트였습니다. 거실에 마련한 책상 위에 그것이 있었고, 저는 그것을 살펴보았습니다. 무엇에 쓰는 물건일까, 궁리하던 찰나 무언가 위에서 아래로 떨어졌고 그날 본 것에 대해 쓰기 시작했습니다. 처음 그것은 지금의 만화경과는 다른 모양새를 하고 있었습니다. 구리에서 파주로 오는 동안 어둠 속에서 가끔 만화경을 꺼내보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3. 글을 쓸 때 특별히 듣는 음악이 있다든가, 자기만의 습관이 있다면요?

  만화경을 쓰기 위해서는 오로지 몇 개의 단어와 문장이 필요했습니다.
쓰고, 찢고, 다시 쓰는 방식을 즐겼습니다.

 

4. 작품을 발표하기 전(혹은 퇴고를 하신 후)에 가장 먼저 보여주는 사람이 있나요?

  끈질기게 최고라 씨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녀는 만화경을 잊으라, 했습니다. (허니콤보를 먹을 때마다) 닭봉보다 무가치한 낡고 쓸데없는 물건을 이젠 제발 갖다버리라고도 했습니다. 저는 만화경을 아주 버리지는 않았지만 한동안 잊고 살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책상 한쪽에서 만화경을 발견했고, 그것을 조금 고쳤습니다. 그 뒤로 일주일에 두세 번씩 틈틈이 만화경을 만졌습니다. 어느 날은 윤이 나는 것 같다가도, 어떤 날은 ‘이따위 애들 장난감 같은 것이 뭐라고!’ 투덜거리며 다시 책상 한 귀퉁이에 처박아두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그녀 몰래 만화경을 들여다보는 일은 은밀한 취미가 되었던 모양입니다.
 

5. 평생 또는 두고두고 써야겠다고 마음먹은 주제 같은 게 있다면 소개해주세요.

  이름을 부르는 일, 잊지 못하는 일, 잊지 않아야 하는 일을 생각합니다.

 

6. 막 쓰고 있는 (또는 품고 있는) 작품의 예고편을 들려주실 수 있나요?

  아직 쓰지 않은 작품의 줄거리나 얼개를 이야기하면 온전히 완성하지 못하는 징크스를 가진 인간에 대해 생각합니다.

 

 

 

   《문장웹진 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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