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_차세대1차_소설]내 염소를 돌려주세요

 

[2014년 1차 차세대예술인력육성 문학분야 선정작 ]

 

 

내 염소를 돌려주세요

 

 


김용두

 

 

삽화-염소를-돌려주세요

 

    수의사는 내 말을 농담으로 받아들이는 눈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간곡한 요청에 외진을 나와 주었다. 난로 옆에 엎드려 있는 염소를 본 수의사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큰 병인가 싶어 덜컥 겁이 났다. 수의사의 고갯짓이 염소가 아닌 나를 향한 것임을 깨닫는 데는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는 내 말을 믿지 않았다.
    “믿기 힘드시겠지만 사실이에요. 이 염소는 며칠 전까지만 해도 흑염소였다니까요. 그것도 아주 건강한 흑염소요. 영양실조 아닌가요? 그렇게 잘 먹던 종이도 요즘은 가려서 먹는다니까요.”
    “이 사람아, 털빛이 변해도 그렇지. 어떻게 하루 만에 까만 털이 하얀 털로 바뀌나.”
    “정말이라니까요. 왜 흰 염소로 바뀐 걸까요? 흑염소로 되돌릴 수는 없을까요?”
    내내 실없는 웃음만 짓던 수의사는 약간 화가 난 얼굴이 되었다.
    “이 사람아. 흰 염소 앞에서 웬 흑염소 타령인가? 보아하니 공부하는 사람 같은데 무슨 공부를 하기에 사람이 이렇게…… 쯧쯧. 너무 공부만 하지 말고 건강도 좀 챙기게. 얼굴이 마르다 못해 염소 같네.”
    염소 때문에 내가 염소 대접을 받다니. 수의사는 나를 공부만 하다 정신 나간 사람 취급했다. 어릴 적에는 수재 소리를 듣다 커서 정신이 돌았다는 마을 청년들의 소문을 듣기는 했지만 내가 그런 취급을 받을지는 꿈에도 몰랐다. 답답했다. 내가 생각해도 믿기 힘든 일이기는 했다. 하지만 사람에게 새치가 나듯 염소의 털빛도 변할 수 있지 않을까? 어찌 됐건 내 눈앞에서 벌어진 일이니 부인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버려진 염소였다. 어쩌면 길을 잃은 염소였는지도 모른다. 온몸이 숯처럼 까만 흑염소는 긴장하는 기색 없이 풀을 뜯어 먹었다. 나를 보고도 피하지 않은 걸 보면 야생일 리는 없었다. 곧 주인이 데리러 오겠지 하는 생각으로 두고 보길 며칠, 주인은 나타나지 않았다. 그날부터 나는 염소를 키우기로 했다. 하지만 실제로 내가 염소에게 해주는 건 없었다. 단지 염소가 내 거주지인 컨테이너 주변을 떠나지 않았을 뿐이었고 나는 용인했을 뿐이다. 염소를 컨테이너 안까지 들이게 된 건 그해 첫눈이 내린 날이었다.
    이제 갓 서른의 내가, 버섯을 재배하거나 양봉을 하는 것도 아닌데 산 속 컨테이너에 사는 이유를 묻는다면 딱히 설명할 길이 없다. 일단은 작업실이라고 부르고 있으나 실은 은신처 정도가 맞다. 무엇으로부터 왜라는 질문에는 대답하지 않겠다. 아니 못 하겠다. 이곳에서 내가 하는 일은 각종 원고 작업이다. 디테일하게 말해서 백수란 말이다. 나는 좀처럼 한 가지에 집중하지 못하는 편인데 딱 하나 끈기를 가지고 하고 있는 게 있다. 바로 블로그 운영이다.
    나는 사람 만나는 걸 좋아하지 않았다. 때문에 혼자 있는 시간이 많다 보니 뭐든 기록하는 습관이 있었다. 우연한 기회에 그 기록들이 조금만 변형을 가하면 리뷰가 된다는 사실을 알고부터 블로그를 운영해 왔다. 거짓말 조금 보태서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을 리뷰 했다. 신작 영화 및 도서, 가요는 물론이고 새롭게 출시된 전자제품부터 라면과 유제품과 같은 식료품 ― 가장 최근에 리뷰한 건 모 기업에서 겨울을 맞이해 출시한 찐빵이었다 ― 에 이르기까지 가리지 않았다. 방문자가 늘면서 리뷰를 작성해 주는 조건으로 각종 시제품들을 받아 보기도 했다. 그중 가장 황당한 제안은 최근에 한 여자로부터 들어온 것이었다.
    여자에게서 처음 연락을 받은 건 보름 전이었다. 이메일이었다. 내용을 요약하자면 내가 블로그에 실은 자료들이 마음에 든다는 것이었다. 사실 나와 같은 방식의 블로거가 수없이 많은데 유독 내게 이런 메일을 보냈다는 게 의심스러웠다. 메일은 마치 남자가 쓴 글처럼 군더더기 없이 치고 나가는 강건체로 쓰여 있었다. 용건은 간단명료했다. 내 블로그에 실은 리뷰 형식으로 자기 자서전을 써줄 수 있겠느냐는 것이었다. 메일의 내용 말미에는 원고료 액수와 핸드폰 연락처가 적혀 있었다.

 

    예상과는 달리 핸드폰 너머로 들리는 여자의 목소리는 저음이면서 얇았다. 그래서 나는 여자가 성대까지 살이 찐 뚱보일 거라 짐작했다. 굳이 이렇게까지 타인의 인신에 대해 밝히는 건 당시 나의 태도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서다. 남자란 족속은 목소리든 실물이든 일단은 예뻐야 다정하니 말이다. 반대의 경우였으니 나는 여자의 목소리 ― 주눅이 든 듯한 ― 를 듣는 순간 얼마간 거만해졌다.
    “저는 작가는 아닌데요.”
    “알아요. 그렇지만 상관없어요. 그냥 블로그에 올리신 것처럼 저에 대해 리뷰를 써주시면 돼요. 제가 보내드리는 자료를 참고해서요.”
    나는 내가 인물에 대해 리뷰를 한 적이 있는지 떠올려 보았다. 미시마 유키오나 조지 오웰, 크리스토퍼 놀란이나 봉만대 같은 유명인들이 떠올랐지만 평범한 사람의 경우는 없었다.
    “얼른 감이 오지 않는데요.”
    “곤란하신가요?”
    순간 여자가 제시한 적지 않은 원고료가 떠올라 다음 대답을 머뭇거렸다. 대신 방향을 조금 틀었다.
    “그건 아닙니다만. 그보다 왜 저죠? 글로는 저보다 나은 블로거들도 많을 텐데요. 그 정도 비용이면 그냥 전문 대필 작가에게 맡길 수도 있을 테고요.”
    “그건…….”
    여자는 다소 뜸을 들였다.
    “그쪽의 리뷰가 주로 조소이기 때문이에요. 무슨 말인가 싶으시겠지만 보내드린 자료를 보면 제 말이 이해되실 거예요. 일단 살펴봐 주세요.”
    맞는 말이었다. 내 리뷰들은 대부분 빈정거리는 식이었다. 그래도 간혹 정말 마음에 드는 대상에 대해서는 호평을 하기도 했는데 그 부분이 내 블로그만의 차별성이었다. 때문에 방문객들 중 일부는 반감을 갖는 이들도 있었으나 그에 비례해 신뢰를 갖는 이들도 늘었다. 그런데 그걸 알고 있다면 여자의 청탁은 더욱 의아할 수밖에 없었다. 자서전이라는데 빈정거림이 어울릴 리 없지 않은가. 일단 여자가 말하는 자료를 받아 보기로 했다.
    여자는 자신의 자료를 세 번에 나누어 보내주기로 했다. 연대순으로 보낼 테니 일단 작업을 시작하라고 하는데 내 입장에서는 다소 무리한 요구가 아닐 수 없었다. 뒤의 내용을 알아야 앞의 내용도 쓸 수 있을 테니 말이다. 내 대꾸에 여자는 이어지지 않아도 되니 매 장면에 충실하게 리뷰처럼만 써달라고 했다. 그러면서 감정은 빼고 제품에 대한 품평처럼, 이란 말을 덧붙였다. 갑갑증이 일었으나 그러겠다고 하자 여자는 그날로 원고료의 절반에 해당하는 계약금을 송금했다. 전화상으로 들은 그 가늘고 소심한 목소리의 여자가 맞나 싶을 정도로 행동은 대담했다.

 

    여자가 1차로 보내준 이메일 자료는 유년기와 학창 시절에 해당하는 자료들로 스캔으로 뜬 몇 편의 일기와 사진들, 그리고 간단한 약력 정도였다. 그러나 자료들 중에는 실수로 넣었는지 아니면 부러 넣었는지 모르지만 최근의 것으로 보이는 사진 몇 장이 포함되어 있었다. 여자는 내가 생각했던 것과 달리 날씬한 편이었다. 목이 길었고 눈은 외까풀이었다. 얇은 입술이 앙다물어져 있어 차갑고 고집이 세어 보이는 인상이었다. 그러나 예상과 달랐던 외모보다 눈에 띄었던 건 배경이었다. 여자의 방인가. 여러 장의 사진들, 그 사진 속 여자는 헤어스타일이 달랐고 옷차림이 달랐고 표정도 달랐지만 배경이 모두 같았다. 같은 방이었다.
    여자의 유년기는 비교적 평범했다. 여느 아이처럼 인형을 좋아했고 병아리를 키운 적이 있으며 남자 아이들과 다투기도 했다. 이후 중학생 시절부터 조금 느낌이 달라졌는데 아무래도 사춘기였던 모양이다. 가령 “비가 내린다. 그 애가 내 손가락이 예쁘다고 했던 말이 자꾸 생각난다. 커피를 내리고 싶었다. 하지만 결국 먹은 건 떡볶이와 어묵. 어묵에서 비 비린내가 났다.”와 같은 문장들. 비만 내려도 이유 없이 미간이 가려운 시기의 메모니 특별히 예민하다고 볼 수도 없었다. 아마도 이 무렵 여자는 첫사랑이나 짝사랑 둘 중 하나를 시작하려 했던 모양이다. 잠시 질투의 감정이 솟았다 증발했다.

 

    나는 다시 원고지의 네모 칸 속으로 달아나고자 집중했다. 원고지에 글을 쓰는 건 학창 시절 이후 처음이었다. 노트북 화면을 보고 있으면 익숙했던 블로그 작업이 떠올라서 자서전 작업에 집중이 되지 않았다. 그래서 대학 노트에 썼더니 이번에는 페이지가 잘 넘어가지 않아 답답했다. 그래서 고른 게 넘기는 맛이 좋은 원고지였다.
    염소는 내 발치를 서성이며 작업을 방해했다. 녀석에게 책상 모퉁이에 쌓인 원고지더미 중 한 장을 주었다. 염소 입에서 흔들리는 원고지 위로 아버지란 단어가 눈에 띄었다. 여자의 유년기를 쓰고 있었다. 여자의 아버지는 작은 체구에 고집이 센 사람이었다. 욕정적이고 술을 좋아하며 사람들과는 종종 마찰을 빚는 남자였다. 동시에 가정을 지키는 데는 물불 안 가리는 강한 아버지인 듯했다. 얼마간은 내 아버지와도 공통점이 있어서일까. 원고를 쓸 때 나도 모르게 내 아버지가 떠오르곤 했다. 그래서 쓰다 보면 여자의 이야기가 내 이야기랑 섞이기 일쑤였고 그때마다 원고지는 염소 차지가 됐다.
    원고지를 다 먹은 염소가 책상 위로 뛰어올랐다. 이따금 있는 일이었다. 녀석은 내가 책상에 붙어 있지 않을 때면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책상 위에 올라가곤 했다. 가끔은 내가 작업을 할 때조차 눈치를 살피며 올라가곤 했다. 책상은 내 작업실에서 염소가 오를 수 있는 가장 고지대였다. 염소는 거기서 막힌 천장을 올려다보며 되새김질을 하거나 책상을 핥곤 했다. 가끔은 그런 모습이 측은해 보였다. 좀처럼 긍정적인 이미지를 만들지 못하는 내 염소는 그러나 매력적이었다. 나는 그 매력을 아주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다. 사물을 꿰뚫어보는 것처럼 날카로우면서 영롱한 눈, 하지만 그게 진짜 매력은 아니다. 이 동물의 진정한 매력은 똥이었다.
    하루는 내가 물을 주러 나갔는데 녀석이 내게 엉덩이를 보이며 똥을 누웠다. 엉덩이에서 지독한 악취가 났지만 나는 그게 녀석의 똥 냄새라고는 믿을 수 없었다. 눈앞에서 톡톡 떨어지는, 쥐눈이콩처럼 작고 동그란 똥들에게서 악취가 난다는 건 믿을 수 없는 일이었다. 나는 코가 마비될 듯했지만 떨어지는 똥들을 악착같이 관찰했다. 연속해서 같은 자리에 떨어지는 똥들이 동전 탑처럼 쌓였다. 동그랗고 윤기가 흐르는 똥이었다. 악취를 뚫고 떨어지는 똥들과 그 똥들이 쌓인 작은 탑을 보자니 가슴에 영문 모를 파문이 퍼졌다. 처음 염소 똥을 자세히 본 나는 정말 염소가 쥐눈이콩을 삼킨 것이라고 생각해 버렸다. 하지만 탐색 결과 염소의 똥은 하나같이 같은 모양이었다. 그게 다 쥐눈이콩일 리는 없었다.
    풀밭 사이에 흩어져 있는 똥들은 풀들의 씨앗 같았다. 신기하게도 염소의 똥은 더럽게 느껴지지 않았다. 자세히 보면 짙은 녹색을 띠기도 하는데 그 때문인지 염소의 똥이 커피 원두처럼 여겨지기도 했다.

 

    염소에게서 최초로 이상한 낌새를 발견한 건 여자가 보낸 1차 자료에 해당하는 원고의 막바지 부분을 쓰던 중이었다. 염소에게서 느낀 이상한 낌새는 말 그대로 낌새였다. 뭔가 느낌이 여느 때와는 달랐지만 구체적으로 무엇 때문인지는 알 수 없었다. 내 심경의 변화 탓일 거다. 그게 아니라면 염소의 표정 때문일 수도 있다. 동물은 표정이 없다고 한다. 하지만 나와 사 년 동안 동거 중인 이 염소만은 정말 표정이 있다. 조금 양보하자면 내가 말한 표정은 인상이다. 염소는 기학학적으로 생겼다. 조물주가 처음 생물을 창조할 때 염소만은 삼각틀을 대서 만든 게 아닌가 싶었다. 이런 염소의 외모적 특징이 집약된 부위는 눈이었다. 엄밀히 말해서 눈은 삼각형이 아니었다. 그러나 염소는 눈을 게슴츠레하게 뜰 때가 많았고 그때마다 세모꼴로 째져 보이는 눈은 빈정거리는 듯한 인상을 줬다.
    무심히 입을 움직이는 녀석을 보자니 나를 농락하고 있다는 기분이 들었다. 나는 녀석의 턱수염을 홱 잡아당겼다 놓았다. 녀석은 매에 하는 소리를 지르며 한 발짝 물러났다. 나는 물러나는 녀석을 노려보다 염소의 변화가 기분 탓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염소의 턱수염 끝부분이 희끗희끗했다. 그렇지 않아도 내시 같은 수염에 흰색이 섞이자 전체 인상이 달라 보였던 것이다. 내 관찰력이 얕았던 것일까. 그럴 수도 있다. 원래부터 흰 수염이 섞여 있던 것을 내가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것일 수도 있다. 어쩌면 새치와 같은 현상일 수도 있다. 그때만 해도 나는 염소의 변화를 깎아 둔 사과의 갈변처럼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그날은 늦은 새벽까지 원고를 썼고 염소에게 여자의 유년과 사춘기 시절의 삶이 적힌, 그러나 버려진 원고지를 먹인 뒤 잠이 들었다.

 

    다음날 아침 컨테이너로 된 작업실은 차갑게 식어 있었다. 불 꺼진 난로 속은 타고 난 재만 가득했다. 난로 옆에 놓인 작은 삽으로 회색 재를 퍼냈다. 내가 색으로 화한다면 잿빛이지 않을까. 나는 삽으로 퍼낸 재를, 펼친 종이가방에 부어 싸들고 밖으로 나갔다. 장작을 쌓아 둔 컨테이너 옆에 재들을 비운 뒤 아카시아와 참나무 장작을 종이가방에 싸들고 돌아왔다. 난로 속에 아카시아 장작을 비스듬히 세워 넣고 그 틈새에 불붙은 종이가방을 밀어 넣었다. 불은 금방 옮겨 붙었다. 참나무 장작개비를 추가로 집어넣었다. 불이 제 먹이를 탐식할수록 재는 쌓여 갔다. 불은 현재밖에 없는 것처럼 타올랐다. 난로에서 딱딱, 하는 소리가 불붙은 메뚜기처럼 튀어 올랐다. 그때마다 나는 딱딱, 튀어 다니는 옛 기억들을 잡아 원래 자리로 돌려보내야 했다.
    이 작업실의 본래 용도는 원두막이었다. 실제로 지금의 작업실 자리에는 원두막이 있었다. 컨테이너는 겨울에 춥다는 이유로 할아버지가 마련했다. 지금처럼 불을 지피는 방법도 그 당시에 할아버지에게서 배웠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풀밭이 되었지만 원래는 컨테이너 주변의 완만한 지역 대부분은 밭이었다. 주로 옥수수와 고구마, 감자 같은 것들을 경작하는 밭이었는데 산밭이다 보니 늘 산짐승들이 노리곤 했다. 부모님은 논농사에 전념하느라 집과 제법 거리가 있는 산밭까지 신경 쓸 여력이 없었다. 자연히 산밭은 할아버지 담당이었고 본인도 흡족해하는 눈치였다.
    밤중 멧돼지가 밭을 파헤치는 소리라도 들리면 할아버지와 나는 조금 달뜬 기분이 되어 돌멩이가 들어 있는 깡통을 흔들며 밖으로 뛰쳐나갔다. 달아나는 멧돼지와 밤의 정적을 깨우며 퍼지는 깡통소리, 달빛 사이로 흩어지는 입김이 뒤섞일 때면 나는 알프스 산자락의 양치기 소년이라도 된 기분에 젖었다. 그런 밤이면 그날의 모험담을 정리하느라 잠을 설치곤 했다. 삶이 꽉 차 있는, 그런 기분이었다. 그것은 숨 막히는 포화가 아니었다. 갓 구운, 김이 모락모락 나는 감자로 배를 채운 뒤 세상모르고 잠든 상태에 비유할 만한 충만함이었다.
    난로의 장작 투입구를 닫느라 쪼그려 앉아 있던 나는 염소가 머리카락을 핥는 통에 염소의 머리를 후려쳤다. 아니 그러려고 했다. 하지만 나는 염소를 향해 손을 든 채 얼어붙고 말았다. 웬 흰 염소? 내 앞에 있는 건 내 흑염소가 아닌 흰 염소였다. 이 녀석은 뭐고 내 흑염소는 어디에 있단 말인가. 그런데 보면 볼수록 흰 염소는 털빛만 하얗지 내 흑염소랑 똑같았다. 꿈인가 싶었지만 이불을 걷자 온몸으로 찬 기운이 느껴졌다. 간밤에 염소가 재라도 뒤집어썼나 싶어 살폈지만 그것도 아니었다. 정밀한 관찰과 교감을 통해 나는 흰 염소가 내 염소가 맞는다는 결론을 내렸다. 다시 말해 내 흑염소가 밤새 흰 염소로 바뀐 것이다. 진짜로 털빛이 변해버린 거였다. 나는 덜컥 겁이 났다. 그리고 불안은 시간이 지날수록 불쾌함으로 바뀌어 갔다.

 

    염소는 털빛만 바뀌게 아니라 성격도 바뀌었다. 더 이상 내 눈치를 보지 않고 책상에 오르는가 하면 심지어는 매트리스 위에 배를 깔고 엎드리기도 했다. 나를 철저히 무시하는 염소의 태도에 서서히 화가 났다. 염소는 작업실의 좁은 공간에 저밖에 없는 듯 행동했다. 염소 주제에 뇌에 이상이 생긴 거 아냐. 정말로 너무 종이만 먹었더니 탈이 난 건지도 몰라.
    더 심각한 상황은 책상 위에 올라간 염소와 내 눈이 마주쳤을 때 일어났다. 책상에 올라가면 으레 창밖을 바라보던 녀석이 웬일로 매트리스 위에 누워 있는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 순간 온몸에 소름이 끼쳤다. 모시옷을 입은 할아버지가 대청마루에 앉아 있던 모습이 떠오른 탓이었다. 할아버지는 종종 대청마루에 앉은 채 내가 하는 구슬치기를 지켜보곤 했었다. 젊은 시절 할아버지는 목수였다고 했다. 어쩌다 내가 제법 먼 거리의 구슬이라도 맞추면 당신을 닮아서 손재주가 좋다며 즐거워하곤 했다. 나는 애꿎은 염소에게 베개를 집어 던졌다.
    이후로도 염소는 할아버지가 생각나는 행동을 골라서 했다. 할아버지는 여느 시골 사람들과는 달리 늘 하얀 옷만 입었고 티눈만 한 얼룩도 용납하지 않았다. 그런 할아버지 때문에 할머니는 애써 말린 빨래를 다시 하는 경우가 잦았다. 마을회의에 참석하지 않았고 회의에서 결정된 사항도 따르지 않았다. 아무리 바쁜 농번기 철에도 논에 한 번 나가지 않았다. 아버지가 일을 나가며 마당에 널어놓은 고추 좀 뒤집어 달라 부탁해도 나는 목수다, 라며 단칼에 잘라 거절했다. 할아버지는 늘 주변 사람들의 눈치에 신경 쓰지 않았다. 그러나 내 눈에는 그런 할아버지의 행동이 어딘지 불편해 보였다.

 

    나는 이 산밭을 할아버지만큼이나 좋아했었다. 아니, 산밭에 있을 때의 할아버지만큼 좋아했다. 할아버지는 산밭에 있을 때만큼은 애가 되곤 했다. 고구마를 캘 때도 옥수수를 딸 때도 할아버지의 웅크린 모습에는 어딘지 장난기 같은 게 숨어 있었다. 한번은 할아버지가 감을 따러 감나무에 올랐다 나무에서 떨어진 적이 있었다. 할아버지는 하얀 옷이 흙투성이가 됐는데도 여느 때와는 달리 나를 보고 바보처럼 웃어 보였다. 산밭에 있을 때의 할아버지는 내 친구였다. 그런 놀이 같은 노동의 결과로 컨테이너 안은 철마다 다른 먹을거리로 풍족했다. 일 년 중 먹을거리가 바닥을 보이는 시기는 지금 같은 늦겨울부터 초봄까지인데 그때도 별미는 있었다. 생강처럼 생긴 돼지감자는 한겨울에도 흙 속에서 잠을 잤다. 나는 촉촉한 흙의 질감이 좋았다. 흙은 소년의 짓궂은 손을 보드랍게 받아 주었다. 갓 캐낸 돼지감자를 구워 먹을 때면 할아버지는 이야기를 해주곤 했다. 마을에서 느끼곤 했던 불편한 모습의 할아버지라고는 믿기 힘들 정도였다. 할아버지의 이야기는 햇볕에 데워진 흙처럼 따스했다. 그런 할아버지에게서 마지막으로 들은 말은 ‘치욕스럽다’였다. 어쩌면 할아버지는 주변의 눈치를 보지 않은 게 아니라 오히려 심하게 눈치를 보며 살아온 건지도 몰랐다. 그러니 ‘치욕스럽다’는 말로는 부족해 스스로 목숨을 끊은 거다.

 

    나는 마당에서 구슬치기 연습을 하고 있었다. 그해에 시멘트로 포장한 마당은 구슬치기를 하기에 좋았다. 우리 집과 면한 담 너머로 옆집 할머니의 성에 찬 목소리가 들렸다. 옆집에서 그렇게 큰 소리가 넘어오는 일은 이례적인 일이었다. 내가 아는 옆집 할머니는 여느 시골 노파들과 달리 정갈하면서도 조신한 편이었다. 잠시 뒤 옆집 양철 대문이 열렸다 닫히는 소리가 나더니 곧 우리 집 대문이 열렸다. 할아버지였다. 할아버지의 얼굴은 칠면조처럼 붉게 달아올라 있었다. 할아버지는 “치욕스럽다. 치욕스러워 살 수가 없다”는 말을 반복하며 나를 지나쳤다. 할아버지가 지나칠 때 막걸리 냄새가 훅 끼쳤다. 그런데 할아버지가 향한 곳은 대청마루가 아니라 창고였다. 창고에서 다시 나온 할아버지 손에 들린 게 제초제였다는 사실을 나는 몰랐다. 몰라야 했다.
    할머니는 대청마루에 앉아 멍한 표정으로 옆집 담장을 바라보고 있었다.
    “죽긴 왜 죽어. 딴살림 차릴 배짱도 없는 사람이.”
    나는 그 말이 슬픈 말일 거라 짐작했다. 울어야 할 것 같았지만 눈물이 나지 않았다. 나는 앰뷸런스의 사이렌 소리를 들으며 손에서 빠져나간 구슬을 생각하고 있었다. 어디서 잃어버린 걸까.
    그러니까 할아버지는 옆집 할머니를 연모했던 거다. 술에 취해 발길이 끄는 대로 가서 보니 당신 집이 아니라 옆집이었던 거다. 결과가 그렇고 보니 참으로 처참하고도 섬뜩한 연모가 되고 말았다. 동네 사람들이 다 아는 사실인데 할아버지 혼자만 끙끙 감추다 가버린 거였다. 나는 이해하고 싶지 않았다. 노년의 연정이라니.
    나는 할아버지가 들려준 이야기들을 부정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버짐을 달고 다니던 유년기의 나를 부정하는 것과 같은 의미였다. 나는 촌스러운 기억 전부를 버리고 싶었다. 내게 촌스럽다는 용어는 용천이라는 마을 이름과 할아버지가 해준 전설 같은 이야기들과 산밭과 돼지감자 같은 과거의 기억과 일치했다.
    버리는 기억은 새로운 것들로 부지런히 채워 넣었다. 영화의 최신 개봉작은 어떻게든 구해서 봤고 외출할 일도 없으면서 계절이 바뀔 때마다 패션 잡지를 구독했다. 연예계 소식과 시사 관련 정보도 틈틈이 들여다보았다. 여유가 생기면 문학과 관련된 서적들도 읽었다. 나는 그렇게 악착같이 과거를 버렸다. 새로운 것들을 계속해서 취하면 과거에 나를 이루고 있던 것들은 물러나리라 믿었다. 그러나 정작 나는 이곳에 있다. 이 고립된 산속에 흑염소, 아니 흰 염소 한 마리와 지내고 있다.

 

    주소 없는 컨테이너의 위치를 설명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나는 결국 산 아래 도로변까지 나가서 수의사를 기다려야 했다. 수의사와 만난 뒤로도 정강이까지 빠지는 눈을 헤집고 컨테이너가 있는 곳까지 산을 타야 했다. 염소를 데리고 도로변까지 나왔으면 될 걸 생각이 짧았다. 어렵게 컨테이너에 도착해 염소를 살펴본 수의사의 진단은 간단명료했다. 그의 진단은 염소는 아무 이상 없이 건강하며 검사를 받아야 하는 건 염소가 아닌 나라는 거였다. 치욕스러웠다.
    "어찌 됐건 염소를 애완동물로 키우다니 자네도 참 별스럽군."
    내 염소를 살펴본 수의사는 출장비 삼만 원을 받자마자 병원균이 떠도는 장소에서 벗어나듯 서둘러 작업실을 나섰다. 내가 염소 같다고? 나처럼 잘생긴 염소도 있나. 나는 수의사의 말을 부정하며 거울 앞에 섰다. 거울을 보는 순간 넌 좀 비켜, 라고 말할 뻔했다. 내 앞을 염소가 가리고 있는 줄 알았다. 거울 속에는 흡혈귀처럼 핏기 없는 얼굴에 쭈쭈바를 빠는 아이처럼 볼이 쏙 들어간 남자가 있었다. 역삼각형 얼굴이 염소와 흡사했다. 요즘 무리했나? 볼살이 너무 빠졌군. 나는 볼에 바람을 한 번 채워 봤다. 그래도 원래 내 모습과는 어딘가 달라 보였다. 그때 누군가 바지를 당겼다. 염소가 내 바지를 씹고 있었다. 이 못된 놈. 내가 너 때문에. 나는 염소에게 알밤을 쥐어박을 생각으로 주먹을 쥐었다. 내 의도를 알아차렸는지 염소가 몸을 돌렸다. 너무 오래 함께 지냈더니 염소는 이제 내가 취하는 행동만 보아도 다음에 이어질 행동을 알아차렸다. 나는 멋쩍어진 주먹을 풀며 황망히 녀석의 엉덩이를 바라봤다. 그러다 난로 옆에 놓인 삽자루를 집어들 뻔했다. 이 자식이. 염소는 엉덩이를 내게 돌린 채 똥을 싸고 있었다. 그런데 똥이 하얗다. 날 미치게 할 작정일까. 잠깐이었지만 어쩌면 내가 진짜 환시를 보는 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들은 똥이란 단어를 사람의 대변과 관련짓는 버릇이 있다. 하지만 이 순간에도 지표면을 향해 중력의 법칙을 몸소 시행하는 이 작은 사과들은 변이 아니다. 대변이나 배설물에 비하면 손발이 오그라들게 아기자기한 똥을 염소의 것이 아닌 다른 것에도 사용한다면 그건 염소 똥에 대한 모욕이다. 나는 염소가 똥을 싸는 모습을 볼 때면 내 몸이었다 몸이 아닌 게 되는 것들을 생각했다. 매일 피부에서 떨어져 나가는 각질들, 머리카락들, 감수분열 하는 세포들. 하지만 거름으로나 쓰이는 다른 똥과 달리 땅에 떨어진 염소 똥은 씨앗 같았다. 제 스스로도 생명력을 갖고 있는 씨앗 말이다.
    그랬던 내 염소의 똥이 이렇게 되다니. 흰 똥은 신기하긴 했지만 처음 쥐눈이콩 같은 똥을 보았을 때처럼 감격스럽지는 않았다. 가슴에 퍼지는 어떤 울림도 없었다. 똥이라기보다는 지점토나 알약 같았고 이 세상의 것 같지가 않았다. 그것은 물질적인 것이 아니라 일종의 빛바랜 기억 같았다. 나는 내 염소가 수의사조차 알지 못하는, 이제껏 전례가 없는 병에 걸렸다는 사실에 절망했다. 어쩌면 근래 들어 자주 먹인 종이 탓에 염소 몸의 세포들이 봉기를 일으킨 건지도 몰랐다. 자신이 병에 걸렸다는 사실을 알 리 없는 녀석은 태연히 매트리스 위로 올라가 엎드렸다.
    이깟 염소. 흑염소든 흰 염소든, 검은 똥을 싸든 흰 똥을 싸든, 설령 설사를 하더라도 무슨 상관이야. 나는 염소와 상관없이 원고 작업에 집중하기로 했다. 그리고 곧 침울해졌다. 한 문장의 진전도 없었다. 어떤 단어가 떠오르다가도 염소의 흰 똥에 가려졌다. 나는 시간이 흐를수록 더욱 가라앉았고 그런 내 기분의 이유를 알지 못해 더욱 바닥까지 하강했다. 정신이 발가락까지 밀려 내려간 듯했다. 나 아닌 대상을 리뷰하면서 내 삶이 겹쳐지는 경험은 처음이었다. 여자의 삶에 대한 조소의 문장들은 곧바로 내 삶에 대한 조소로 바뀌어 나를 물어뜯었다. 원고지의 붉은 칸칸들이 글자들의 감옥처럼 보였다. 좀처럼 진도가 나가지 않았다. 이런 걸 활자공포증이라 하는 걸까. 머리가 백지처럼 멍했다.
    나는 발가락을 꼼지락거리며 원고지에 집중했다. 그러나 종일 책상머리에 붙어 있도록 한 줄의 글도 쓸 수 없었다. 하긴 블로그에 싣는 글 이외의 글을 써본 건 너무 오랜만이었다. 더군다나 책 한 권에 해당하는 분량을 작업해야 한다니. 지금 같은 작업 속도로는 여자가 말한 기일에 맞추기가 어려웠다. 대필 작업을 방해하는 또 다른 요소는 여전히 염소였다. 털빛이 변해버린 염소는 내 곁에 머무르며 호시탐탐 원고지를 노렸다. 불과 한 달여 사이 너무 많은 것이 바뀌었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건 달리 없었다. 혼란스러웠다. 도대체 이게 가능한 일이란 말인가. 나는 더 이상의 작업은 무리라 판단하고 며칠간 쓴 원고를 워드문서로 옮겼다.

 

    잠깐 졸았을까. 정신을 차리고 모니터를 봤을 때 화면 가득 ㅋ자들이 찍혀 있었다. 팔꿈치로 스페이스바를 누르고 잔 모양이었다. ㅋㅋㅋㅋㅋㅋㅋ……. 나를 비웃고 있는 것 같은 가벼운 글자들이었다. 도대체 몇 페이지나 되는지 아무리 지워도 끝이 없었다. 결국 원고 부분을 복사해 옮겼다. 워드화 해서 쓸모가 없어진 원고지들은 염소에게 먹였다. 여자의 살아온 이야기들이 염소의 입에서 버무려졌다. 덤덤하게 종이를 씹는 염소를 보다 조금 야릇한 기분이 되었다. 저린 발가락이 무감각해져 갔다.
    나는 한때 동물학자를 꿈꾼 동생에게 전화를 걸었다.
    “지금이 몇 시야.”
    동생은 잠결에 전화를 받은 듯 목소리가 흐렸다. 나는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이제 헛것까지 봐? 잠이나 주무셔. 자고 나면 다시 흑염소가 되어 있을 거야.”
    동생은 나를 정신분열증 환자를 대하듯 했다. 하긴 갑자기 염소의 털색이 변했다는 사실은 직접 눈으로 본 나도 믿기 힘들었다. 그걸 알면서 이 시간에 전화를 한 나는 동생에게 어떤 말을 기대한 걸까. 염소의 이상에 대한 근거를 찾아야만 내가 이상하지 않다는 게 증명된다. 최소한 둘 중 한쪽은 문제가 있어야 한다. 오늘 하루가 통째로 헛것이었을까. 동생 말대로 잠이나 자려고 막 누웠을 때 여자에게서 문자가 왔다. 마지막 자료인 3차 자료를 메일로 보냈다는 내용이었다.

 

    네 시간에 걸쳐 여자가 보내준 자료를 살폈다. 시간은 새벽 3시를 앞두고 있었다. 나는 여자에게 전화를 걸었다. 화가 나서 참을 수 없었다. 통화음이 울리는 동안 나는 흥분을 가라앉히고 할 말을 고르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통화음이 십여 차례 울리도록 여자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나는 전화를 받지 않는 여자 때문에 더 화가 나면서도 한편으로는 말을 고를 시간을 번 것 같아 다행이라는 생각도 했다. 그러나 메시지를 남기라는 안내 멘트가 나오자 급격히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점점 심박 수가 증가했다. 나는 곧장 다시 전화를 걸었다. 세 번째 전화를 걸었을 때 여자는 전화를 받았다. 골랐던 말들이 이미 산산이 흩어진 뒤였다.
    “나랑 뭐 하자는 거죠?”
    “네?”
    “이거 뭡니까. 내가 쓰고 있는 거 정말 자서전 맞아요?”
    여자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내 짐작이 맞는다는 확신이 들었다.
    “유서죠?”
    “당신이 상관할 일 아니에요.”
    “왜죠? 왜 이딴 걸 내게 맡겼습니까?”
    “그쪽은 원고를 끝내고 나머지 금액을 챙기면 돼요. 말했잖아요. 리뷰처럼, 사물을 대하듯 써주시면 된다고.”
    “결국 부인은 안 하네요. 유서가 맞는군요. 왜죠?”
    “남의 일, 생각 같은 건 신경 쓰지 않는 분인 줄 알았는데 아닌가 보네요. 원고를 마무리까지 해준다는 조건이라면 말해 줄게요. 어떻게 할 건가요?”
    “좋습니다.”
    여자는 지체 없이 단호한 내 대답에 당황했는지 잠시 말이 없었다.
    “더 이상 누구에게도 비난받고 싶지 않았어요. 저는 당신이 상상할 수 없는 이유로 많은 사람들로부터 비난을 받았어요. 처음에는 너무나 억울해서 화가 치밀었지요. 분에 겨워 울어도 보고 소송도 생각했어요. 그러던 중 하루는 저를 비난했던 사람 중 한 명과 우연히 대면한 적이 있어요. 저보다 두어 살 어린 여자였는데 저에게 한 첫 마디가 ‘죄송합니다’였어요. 상상으로나마 그런 경우가 생긴다면 머리카락이라도 쥐어뜯고 싶었는데 막상 진짜 그런 일이 생기자 그만 맥이 풀렸죠.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어쩌면 나를 비난한 이들은 본인들의 삶 또한 누군가에게 비난받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던 게 아닐까. 그래서 먼저 다른 누군가를 비난해야만 견딜 수 있는 게 아닐까. 그렇다면 내가 나를 가장 강하게 비난하면 어떤 모욕도 견딜 수 있는 힘이 생기진 않을까. 그런 이유로 그쪽과 같은 사람을 찾고 있었던 거예요. 쉽게 말하자면 욕해 줄 수 있는 사람이요. 대신 나는 나를 욕할 사람을 고를 수 있는 권리를 갖는 거지요. 그쪽이 블로그에 쓰는 글들도 엄밀히 따지면 스스로를 비난하는 거 아닌가요?”
    “뭐 틀린 말은 아니네요. 하지만 난 죽지는 않아요.”
    휴대폰에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지금껏 가진 십여 차례의 통화 중 처음으로 듣는 웃음소리였다.
    “마찬가지랍니다.”
    여자는 한 차례 더 웃고 나서 말을 이었다.
    “때론 웃음보다 울음이 힘이 될 때가 있잖아요. 내가 펑펑 울 수 있게 써주세요. 태어나서 가장 많이 울 수 있게요. 그러고 나면 힘이 날 것 같아요.”
    “그게 전, 비난 전문가인데…….”
    여자는 한 번 더 웃더니 전화를 끊었다. 여전히 심장이 빨리 뛰었지만 분노는 남아 있지 않았다. 문득 여자에게 내 흑염소 이야기를 들려줄 걸 그랬다는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여자라면 하루아침에 흰 염소로 변한 흑염소 이야기를 믿어 줄까. 아니면 역시 비웃음만 살려나. 나는 얼떨떨한 기분이 되어 잠이 들었다.

 

    잠결이었다. 뭔가에 짓눌리는 기분이 들었다. 그 무게감은 너무나 생생해서 생애 첫 가위눌림인가 하고 생각될 정도였다. 눈을 뜬 나는 뜬눈으로 기절할 뻔했다. 안경을 쓰지 않은 상태였기에 눈에 비친 하얀 무언가가 소복 차림의 처녀 귀신인 줄 알았던 것이다. 그러나 나를 짓누르고 있는 것은 염소였다. 매에에 하는 울음이 어둠을 찢었다. 염소 주제에 나를 덮쳐? 나는 무릎을 가슴으로 당겼다가 발바닥으로 염소의 배를 밀어젖히고 씩씩거리며 일어났다. 매트리스 아래로 굴러 떨어진 염소는 처량한 울음소리를 내며 나를 올려다봤다. 내내 도도한 척할 때는 언제고. 나는 콧방귀를 끼고 이불을 머리끝까지 뒤집어썼다. 이후 염소는 매트리스에 다시 올라오지는 않았지만 처량하게 울어댔다.
    염소의 울음소리는 새벽이 끝나기까지 이어졌다. 나는 결국 잠들지 못했다. 염소의 울음은 많은 것들을 생각나게 했다. 그것은 악보 같았다. 염소의 울음이 음표의 머리가 되어 오선지에 찍히고 나면 외로운 이미지들이 나머지 꼬리 부분을 그리며 뒤따랐다. 물속에서 흔들리며 가라앉는 조약돌이 매에, 달밤에 담 위에서 우는 고양이가 매에, 반달과 별 하나가 매에, 야윈 고드름이 매에, 빨랫줄에서 밤을 물어뜯는 빨래집게가 매에, 가로등에 부딪히는 하루살이가 매에, 한쪽 전조등이 나간 자동차가 매에, 반송되어 온 편지가 매에, 수신 거부된 핸드폰 번호가 매에, 식은 커피가 매에, 발정 난 암소가 매에, 반만 비에 젖은 전신주가 매에, 사막의 덤블링 플랜트가 매에, 타고 난 재가 매에 울며 연쇄적으로 생각났다.
    불면은 날이 밝아서야 끝나 갔다. 잠은 잠들기를 포기하는 시간에 왔다. 동쪽으로 뚫린 창문에서 엷은 햇살이 번져 왔다. 어둠 속에서 서서히 농밀해지는 햇빛, 스스로 성전환을 하며 자가 수정을 한다는 감성돔이 떠올랐다. 번식을 위해서라지만 짝 없이 하는 번식 행위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 그렇게라도 번식하는 이유를 섣불리 짐작할 수 없었다. 감성돔에 이어 내 염소가 생각났다. 혹시 같은 이유?
    나는 뒤로 포복 자세로 염소의 배 밑으로 기어 들어갔다. 녀석의 성기는 있어야 할 자리에 발기까지 한 채 건실하게 달려 있었다. 간밤의 기억이 떠올라 소름이 돋았다. 나는 영문도 모른 채 서 있는 염소의 생식기를 중지로 힘껏 퉁겼다. 화들짝 놀란 녀석은 매에 하고 소리 지르며 좁은 작업실 안을 몇 바퀴나 돌았다. 통쾌했다. 어쩌면 유서란 죽기 전에 쓰이는 게 아니라 살면서 지층처럼 쌓이는 건지도 모른다. 그 불길한 어감에 주눅들 문제가 아니라 똑바로 바라보아야 하는 것이다. 나는 햇살에 묻어나는 온기를 온몸으로 받으며 잠이 들었다. 새삼 컨테이너라는 공간이 뿌듯했다. 컨테이너 안은 왠지 좁다는 이유로 안심이 됐다.

 

    몸이 뻐근했다. 햇볕은 따스했지만 실내 공기는 쌀쌀했다. 난로를 보니 불이 꺼져 있었다. 남아 있는 땔감이 없었다. 염소는 난로 옆에 엎드려 나무로 된 삽자루를 핥고 있었다. 털에 재가 묻었는지 흰색 털이 밤사이 조금 회색으로 변한 것 같았다. 나는 인근 숲의 나뭇가지라도 주워 모을 생각으로 컨테이너를 나섰다. 제법 많은 눈이 쌓여 있었고 아직까지도 간간이 흩날리고 있었다. 눈 덮인 세상에는 곡선밖에 없었다. 눈은 세상을 동면 중인 거대 생명체로 바꿔 놓았다.
    열린 문 사이로 염소가 나를 앞질러 뛰쳐나갔다. 좀처럼 뛰는 일 없는 녀석이었다. 달리는 염소의 뒤꽁무니를 쫓아 나도 뛰었다. 입김을 뿌리며 설원을 달려 나가는 염소는 옅은 회색빛이었다. 그리고 나와 멀어질수록 그 회색빛이 진해져 갔다. 혹시 돌아오는 중일까? 내 흑염소로. 내가 정말 원하는 건 흰 염소일까 흑염소일까. 그때 이중부정이 떠올랐다. 어느 쪽이든 이중부정을 통해 되돌아간 나라면 원래의 나와는 다를 수도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갑자기 할아버지가 들려준 이야기들과 옆집과 면한 담장을 바라보던 할머니, 가족과 친구들, 봉인했던 기억들이 두서없이 튀어 나왔다. 채 이해되기 전에 봉인했던 기억들이었다.
    염소는 무릎까지 빠지는 눈밭을 거침없이 달려 나갔다. 먼저 지친 나는 숨을 고르며 멀어지는 염소를 바라보았다. 염소는 멀어질수록 소실점이 되어 갔고 정말 점처럼 까맣게 보였다. 염소가 종이를 먹은 건 종이가 좋아서가 아닐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종이에 남아 있는 나무 냄새, 그 냄새를 음미했던 건 아닐까. 나는 내 염소를 많이 몰랐거나 깊이 오해하고 있었다. 혹은 단면만 보았거나.
    멀리서 멈춰선 염소는 눈 덮인 대지 위에 네 다리를 내딛고 잣나무 뿌리등걸을 핥고 있었다. 나는 염소가 잠든 거인의 발바닥을 핥는 중이라고 생각했다. 죄수의 발바닥에 소금을 묻히고 염소에게 핥게 했다는 고문이 떠올랐다. 간지러움이 고통으로 바뀌는 고문. 웃음이 울음이 되거나 울음이 웃음이 되거나, 그것은 최소한 몸이 피돌기 중이라는 의미다. 과거의 찬란한 순간을 재현하는 게 인생이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그 순간은 돌아오지 않기에 찬란하다. 그러니 우리의 찬란은 오늘이면 족하다.

 

    다리가 눈 속에 파묻힌 염소는 추워 보였다. 하지만 염소의 가느다란 다리는 그 어느 때보다도 튼튼해 보였다. 설원에 한 개의 점으로 찍힌 염소는 고독해 보였지만 아름다웠다. 염소의 모든 기하학적인 부위의 생김새들이 지금은 한 개의 점일 뿐이었다. 그 점은 잠들었던 거대 생명의 눈처럼 보였다. 한 무리 비둘기 떼가 숲에서 날아올랐다. 그 바람에 나무의 눈꽃들이 후드득 떨어졌다. 나는 떨어지는 눈꽃들 속에서 거인의, 봄의 기지개를 보았다. 그 소리에 놀랐는지 염소가 매에 하고 울었다. 먼 산을 돌아온 메아리는 간지럽고, 소금처럼 까끌까끌한 웃음이 되었다. 나는 소금 알갱이만 한 웃음이 구르고 굴러 거대한 눈사람이 되는 장면을 상상해 보았다. 작고, 웃음처럼 떨어지는 눈송이들 사이로 내 염소가 뛰어오고 있었다.

 

 

 

[작품 심사평]

< (선정평) [소설]「내 염소를 돌려주세요」 >
 
    ‘나’는 산 속 컨테이너에 살면서 블로그에 글을 남긴다. 그것도 죄다 빈정거리는 리뷰들 뿐이다. 그것만이 나의 유일한 노동. 즉 나는 백수인 것이다. 그런 나에게 어느 날 두 가지가 찾아온다. 하나는 주인 없는 흑염소이고 또 하나는 자서전을 써달라는 어느 여자이다. 자서전을 쓰다 보니 그것은 자서전이라기보다는 한 사람의 유서에 가깝게 된다. 나는 자주 밤을 샜다. 그리고 밤을 새며 썼던 원고들, 그 실패한 원고들을 염소는 먹는다. 그 원고를 먹은 염소가 점점 하얗게 변하는 것을 지켜보면서 나의 마음속에는 커다란 물음표들이 쌓인다. 이제 ‘나’는 자신을 똑바로 바라보아야 한다는 사실을 어렴풋이 깨닫는다. 유서란 죽기 전에 쓰는 것이 아니라 살면서 지층처럼 쌓이는 건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더 이상 무기력한 백수가 아닌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이제 눈꽃 사이에서 봄의 기지개를 본다.
    (윤성희)

 

===== 작가와 6문6답 =====
 

1. 우선 선정된 소감을 간단히 밝혀주세요. ^_^

  기쁩니다. 아마도 발표가 늦어진 탓에 더 기쁜 것 같습니다. 발표하기로 한 기한이 지나서 잊고 있었거든요. 그리고 고맙습니다. 기쁘다와 고맙다는 묶음인 경우가 많네요.

 

2. 이 작품을 처음 떠올렸을 때 어디서 무얼 하고 계셨나요?

  겨울이었습니다. 보일러의 기름이 떨어졌던 날 같습니다. 추운 방에서 문득 양탕을 먹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저는 시골에서 성장한 탓으로 뭔가를 먹을 때면 그 식재료의 원형을 떠올리는 버릇이 있습니다. 양탕을 먹었으니 염소를 떠올렸겠죠. 염소는 변이 조리퐁처럼 생겼습니다. 풀을 먹기 때문에 초록빛을 머금은 까만 똥이죠. 그 똥을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오들오들 떨면서요.

 

3. 글을 쓸 때 특별히 듣는 음악이 있다든가, 자기만의 습관이 있다면요?

  별다른 습관은 없습니다. 굳이 찾자면 장소정도일까요? 저는 글을 쓰기 위해서는 무조건 집을 나섭니다. 주로 카페에 가서 작업하는 편입니다. 카페에서 글을 쓰면 커피 값을 치르고 앉아 있기에 보다 성실해지게 돼요. 이를테면 “밥값하자”라는 정신이죠. 음악은 쓰고 있는 글에 따라 다르게 듣는 편입니다. 주로 글의 내용과 반대적인 느낌의 음악을 들으려 하는 편이에요.

 

4. 작품을 발표하기 전(혹은 퇴고를 하신 후)에 가장 먼저 보여주는 사람이 있나요?

  주로 동생한테 보여줍니다. 막내 동생이요. 막내 동생은 동화작가가 꿈이어서 저와 글이란 공통분모로 묶여 있습니다. 제 입장에서도 가장 부담이 없는 상대입니다. 동생도 자기 원고를 제게 보여주는데 리턴하는 데 걸리는 시간이 제 쪽이 훨씬 길어서 왠지 미안합니다. 그리고 슬프게도(?) 최근에는 동생이 직장인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원고를 보여주기가 쉽지 않아요. 다시 백조가 되길 바라면 나쁜 오빠겠지요?
 

5. 평생 또는 두고두고 써야겠다고 마음먹은 주제 같은 게 있다면 소개해주세요.

  웃다 울 수 있는 소설이요. 전 유머감각이 상당히 없는 편인데요, 그래서인지 누군가 저랑 있을 때 웃는 게 너무 좋아요. 특히 제 말이나 글에 웃음으로 반응하면 짜릿할 지경입니다. 그래서 꼭 그런 소설을 써보고 싶어요.
  사랑과 폭력에도 관심이 많습니다. 사랑이란 감정을 중심에 두는 소설을 써보고 싶어요. 아직까진 엄두를 못 내고 있지만……. 제 글쓰기가 매번 위기에 봉착하는 이유는 이해되지 않는 것들을 쓰려고 하기 때문인 것 같아요. 말하자면 알고 싶은데 지금으로서는 도저히 이해되지 않는 것들이요.
  쓰고 싶은 소설의 분위기와 주제가 상당히 안 어울리죠?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래도 쓸 겁니다.

 

6. 막 쓰고 있는 (또는 품고 있는) 작품의 예고편을 들려주실 수 있나요?

  장편 도입부를 쓰고 있습니다. 잘나가던 사업가가 몰락하면서 겨우겨우 집 한 채만 건지게 됩니다. 그런데 그 집마저 영화사에 렌트를 해줘야 하는 처지로 몰리면서 시작되는 이야기입니다. 쉽게 말하면 가정집이 영화세트장으로 변하면서 겪게 되는 이야기랄까요? 유쾌한 분위기로 쓰고 싶은데 그게 영…….

 

 

 

   《문장웹진 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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