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비 외 9편

[아르코 창작기금-시]

 

 

 

나비

 

 

김철순

 

 

 

 

 

봄볕을
접었다 폈다 하면서
나비 날아간다
나비 겨드랑이에 들어갔던
봄볕이
납작 접혀서 나온다
나비는 재미있어서 자꾸만
봄볕 접기 놀이를 한다
나비가 접었던 봄볕이
팔랑 팔랑
땅에 떨어진다

 

 

 

 

 

 

 

냄비

 

 

 

 

쉿!
조용히 해
저,
두 귀 달린 냄비가
다 듣고 있어

 

우리 이야기를 잡아다가
냄비 속에 집어넣고
펄펄펄
끓일지도 몰라

 

그럼,
끓인 말이 어떻게
저 창문을 넘어
친구에게 갈 수 있겠어?
저 산을 넘어
꽃을 데려올 수 있겠어?

 

 

 

 

 

 

감꽃 왕관

 

 

 

 

하늘에서 감꽃 왕관이 떨어졌어
머리에 맞는 친구가 왕이 되는 거래

 

주춤주춤 개미가 기어왔어
엉금엉금 사슴벌레가 기어오고
살금살금 땅강아지도 기어왔지
베짱이는 노래 연습을 하다가
소식을 늦게 들었다며
쭈뼛쭈뼛 멋쩍은 듯 다가왔어

 

개미는 너무 크고
사슴벌레에겐 너무 작고
땅강아지는 겨우 들어가고
베짱이,
베짱이에게 왕관이 돌아갔어

 

이제 감나무 밑 동네가 환해질 거야
왕관을 쓴 베짱이 노래 소리에
모두들 흥이 나서 일을 할 거야

 

 

 

 

 

 

개구리 울음

 

 

 

 

개구리들은
주인이 보지 않는
캄캄한 밤에만
논에다 집을 짓는다
개골
울음 한 장
개골개골
울음 두 장
개골개골개골
울음 세 장
밤새도록 쌓았다가,
높이높이 쌓았다가,
우르르르
무너뜨린다
울음 벽이 삐뚤삐뚤
맘에 들지 않는 모양이다
봄밤이 다가도록
쌓았다가 허물고
쌓았다가 허물고

 

그러곤, 또
집이 없다고 운다

 

 

 

 

 

 

꽈리 나무 등

 

 

 

꽃밭에
꽈리 나무
파란 등을
많이도 달았다

 

꽃밭에
전기세 많이 나올까
걱정되는지
엄마는 자꾸만
꽃밭을 내다본다

 

저 많은
등마다
불을 켤까 봐

 

 

 

 

 

 

 

꽃밭

 

 

 

꼬옥,
입을 다물고 있는
꽃의 입에서
말을 꺼내려고

 

벌은,
나비는,
하루 종일
꽃밭을
들락거렸어요

 

 

 

 

 

 

귀뚜라미

 

 

 

귀뚜라미가
확 펼쳐졌던 여름을
반으로 접어서
박고 있습니다

 

뚜르르르르르르르르

 

밤이 깊도록
재봉틀 소리가 납니다

 

여름의 길이가
꽤 길었나 봅니다

 

이제 곧
귀뚜라미의 바느질이 끝나면
여름이 접히고
가을이 오겠지요

 

 

 

 

 

 

 

풀들은 입이 없어서

 

 

 

 

풀들은
생각만 있고
입이 없어서
풀벌레가 와서 산다
풀 대신 말해 주고
풀 대신 울어 준다

 

 

 

 

 

 

주전자

 

 

 

오리처럼
긴 주둥이를 가졌다고
주전자에게
모이를 주면
안 된다
먹을 수 없는
입도 있다

 

 

 

 

 

 

가을

 

 

 

여치가
여름내 열어 두었던
풀밭 문을 닫았다

 

문 열어 달라고
귀뚜라미가 밖에서
울고 있다

 

 

 

   《문장웹진 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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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그시

귀뚜라미와 주전자가 인상 깊습니다.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