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일구는 내 어린 시절에도 이미 기억에서 지워진 사건이나 다름없었다. 해마다 그 날이 오면 기념행사가 치러지고 그 날을 재구성한 프로그램이 방송됐지만 아무도 심각한 의의를 부여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제헌절 기념행사를 보면서 벅찬 감동을 느끼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사일구는 절기로 볼 때 청명을 지난 곡우 무렵이었다. 낮의 길이가 밤보다 길어진 걸 확연히 느낄 수 있었으며 바람에는 따스한 기운이 묻어났고 신작로에선 슬슬 먼지가 일어났다. 요즘은 지구온난화로 계절이 수상하다고들 하지만 그럴수록 음력 절기가 더 잘 들어맞는 걸 보면 신통할 정도다. 2010.04.01
1961년 5월 16일 군부 쿠데타가 발생된 직후에 군부는 <5·16 혁명공약> 6개 조항을 공표하였다. 그중에서 제4항에 다음과 같은 표현이 들어 있었다. “절망과 기아선상에서 허덕이는 민생고를 시급히 해결하고…….” ‘절망, 기아선상, 민생고’라는 표현은 당시의 절박한 현실을 사실 그대로 지적한 것이었다고 나는 회고해보게 된다. ‘5·16’이라는 아라비아 숫자로 표기되는 사건이 일어나기 일 년 전에는 흔히 ‘4·19’라고 표기하는 역사적 사건이 있었다. 이 혁명으로 출범한 장면 정권의 제2공화국은 정치의 민주화를 추진하고 있었음에도 ‘기아선상에서 허덕이는 민생고’를 당장에는 해결할 방도를 찾지 못하고 있었다. 2010.04.01
4·19 혁명이 나던 그즈음 스무 살이었던 나는 제주시 변두리 전교 6학급인 작은 초등학교의 5학년 담임이었다(‘혁명’이라는 말은 내게는 어색하다. ‘혁명’이라고 정립이 되었다고 한다. 그보다는 ‘의거’가 얼마나 순수하고 열정적이고, 그래서 아름다운가? 혁명에는 음모가 숨어있고, 정치적이어서 그 순수성과 열정이 많이 퇴색되어 버린 느낌이 든다. 2010.04.01
신동엽 선생님이 쓰셨다. 1967년 1월 《52인 시집》에 처음 발표되었다. 신동엽, 우리 세대에게는 너무나도 친숙한 이름이다. 글쎄, 요새 공부 덜 된 청춘들은 연예계 실력자인 어느 개그맨을 떠올리지도 모르겠지만, 선생은 우리에게 진정한 시인이었다. 좌청룡 우백호처럼, 신동엽과 김수영으로 대표 되던 시대가 있었다. 두 분 모두 현실비판 의식과 저항의식이 투철한 문학을 했으며(요즘말로 좌파였으며), 특히 4.19 혁명정신을 가장 빛나게 한 분들이었다. 우리의 영웅이었던 두 분은 68년과 69년에 차례로 요절했다. 나는 신동엽 선생님의 시가 더 좋았다. 특히 선생의 <껍데기는 가라>는 시가 좋았다. 2010.03.29
오랫동안 묵시록이 유행이었다. 역사의 종언, 예술의 종말과 같은 말들에 이어, (근대)문학의 종언, 인간 이후(동물, 스놉) 등과 같은 말들이 한동안 우리를 불편케 했던 일을 생각해 보자. 물론 이 불편함은 단순하게 ‘우리가 자명하게 여겨온 나를 구성하고 있는 세계들이 정말로 끝났다, 끝날 것이다, 혹은 끝내도 된다’는 식의 목적론적 예언서 버전으로 받아들여진, 그러니까 그것이 ‘문자 그대로’의 혹은 ‘세속적인’ 종말, 종언으로 이해된 탓이 컸지만, 여하간 그간의 묵시록들은 진원지도, 시차도 다르며, 맥락 역시 다르다는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것이 유독 20세기 중반 이후 두드러진, 그리고 지속적으로 변주되고 있다는 것 정도는 기억해 둘만하다. 2008.12.01
기록되지 못해 기억되지 못하는 것들이 있다. 기억은 연속체의 다른 국면이라지만, 우리는 모든 기억이 연속체의 한 국면이 되는 것이 아님을 안다. 어떤 기억들은 시간과 평행하게, 아니 시간을 앞질러 가고, 또 어떤 기억들은 기록되지 못해 망각 속으로 사라진다. 모든 기억들은, 그것이 설령 사건들의 연속처럼 보일 때조차도, 단절의 다른 이름들일 뿐이다. 2008.12.01
《문장 웹진》 8월호에서는 김이듬, 손홍규, 심보선, 이기호, 이신조, 이영주, 조기조, 편혜영 작가들이 보내준 ‘여름에 생각하는 겨울 이야기’를 특집으로 선보입니다. 피서에 제격일 뿐 아니라, 시나 소설로는 볼 수 없는 작가들의 또 다른 모습들을 엿볼 수 있어서 흥미롭습니다. 2008.08.01
작년 이맘때쯤 처음으로 이곳에 왔던 때와 달라진 게 있다면 그가 훨씬 더 뚱뚱해졌고 말수가 적어진 것 정도다. 역겨운 냄새가 퍼지고 모차르트의 C장조 푸가 K. 394가 울려 퍼지던 게스트하우스. 미치지 않았다면 누가 그토록 미끄러운 언덕을 따라 올라와 오두막집의 삐걱거리는 문을 두드렸을 것인가? 그때도 그는 100살은 족히 넘어보였고 몸무게는 150킬로그램을 왔다 갔다 할 것은 확실했고, 만약 제대로 일어선다면 머리가 천장에 닿을 것 같았다. 2008.07.31
그 사람을 호수에서 보았다는 기억이 났습니다. 얼어붙은 호수에 눈이 쌓여 있었고 호숫가에서 호수와 하늘이 닿는 희미한 경계를 바라보던 그이였습니다. 우뚝 서 있는 당신은 내리는 눈과 평행을 이루고 곧장 뻗어나간 당신의 시선은 지상과 평행을 이루었습니다. 첫 자위를 했던 열네 살 이후 세계는 시시했습니다만, 제가 지나온 세계와는 전혀 다른 세계가 존재할 수도 있음을 그이의 뒷모습에서 문득 알았습니다. 2008.07.31
나는 제 몸에서 깃털을 하나하나 뽑아내며 조금씩 물속으로 가라앉는 물오리처럼 침대에 누워 빈둥거리며, 그러나 절박하게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보스턴의 캠브리지에서 유학중이던 절친한 후배가 보다 못해 내게 구원의 손길을 내밀었다. "형, 구질구질하게 그러지 말고 나랑 지내면서 논문에 전념하시죠." 후배의 말에 나는 군말 없이 짐을 쌌다. 캠브리지에 도착한 시간은 자정이 넘어서였다. 2008.07.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