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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북으로 듣는 심장 소리 김종욱 [0]
 

며칠 전에 남쪽 바다가 보고 싶어 혼자 여행을 다녀왔습니다. 기차를 타고 떠도는 동안 제 손에 들려 있던 것은 노트북을 팔고 새로 장만한 전자책 한 권(?) 뿐이었습니다. 예전 같으면 지루한 여행을 견디기 위해 몇 권의 책을 챙겼어야 했을 터인데, 이번 여행에서는 전자책에 ‘문장 웹진’ 파일만 담고도 짧지 않은 시간을 심심하지도, 번잡스럽지도 않게 떠돌 수 있었습니다. 2010.03.03

허공도 넓어지고 깊어진다 김수이 [0]
 

10월입니다. 허공이 넓어지고 깊어지는 듯합니다. 바람이 묵직해지고 진해진다고 해도 좋겠습니다. 넓이와 깊이, 두께와 밀도가 같은 것의 다른 측량법들임을 생각해 보게 됩니다. 무엇으로 측량하든, 누군가의 말처럼 삶은 계속됩니다. 삶과 더불어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문학도 계속됩니다. 그 사이 시차나 오차가 존재하기는 할 것이지만 말입니다. 그 시차나 오차가 삶의 넓이와 깊이, 두께와 밀도를 어떤 형태로든 더 풍성하게 할 것이라는 믿음을 다시금 가져보는 10월입니다. 2009.10.05

읽는다는 것, 그리고 쓴다는 것 김종욱 [0]
 

두 번째 구술성의 시대가 오고 있는 월터 J. 옹의 말을 기억합니다. 백년 남짓 동안 찬란하던 문자성이 새로운 구술성 앞에서 조금씩 무너져 내리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나를 구성했던 터무니없던 믿음들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고 있습니다. 문자를 통해 모든 것을 재현할 수 있으리라 믿었던, 문자만이 시간을 뛰어넘고 공간을 가로질러 영원하리라 믿었던, 그 모든 어리석은 환상들. 2009.10.05

그의 이름에 건다 신용목 [3]
 

이 참담이 아스피린처럼 스며들어 콘크리트 차가운 두께를 허무는 날이 오겠지요. 그 틈에서 외계의 빛깔처럼 돋아나는 새싹을 우리는 다시 신앙 삼을 작정입니다. 그 미학의 신통함 앞에서 하루하루 거행되는 개종의 세례는 진정 달가울 것입니다. 문학은 그런 것이 아닐까요. 영원히 흔들리고 부유하는 물컹한 육신으로 저 딱딱하고 각진 세계에 실금 하나를 만드는 것. 그런 날이 있었습니다. 경운기 한 대 선 추레한 마당에 촌로인 그의 친지가 브라운관에 들어왔을 때, 딱히 환호하지 않았던 내 얼굴도 뜨거운 고랑이 되었던 적. 오랫동안 통치는 우리의 것이 아니었습니다. 2009.05.29

꽃과 잎의 연대 이선우 [0]
 

국가나 민족, 종교나 각종 단체의 기념일이 아니라도 저마다의 잊을 수 없는 어느 하루가 이 싱그러운 5월에 자리하고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생일이나 결혼기념일을 앞두고 계신 분들도 있을 테고, 반면에 부모나 연인, 소중했던 친구의 기일을 손에 꼽으며 5월을 시작하고 계신 분들도 있을 겁니다. 이 생각 끝에 가 닿는 곳은, 어쩔 수 없이 광주입니다. 2009.04.28

김인숙의 편집위원 노트 김인숙 [0]
 

날이 어떻게 변하든 간에 제 계절을 찾아서 잎을 피운 매화는 날마다 꽃송이가 벌어지네요. 꽃샘추위를 뚫고 쑥쑥 흙 밖으로 나온 풀잎들이 어찌나 있는 힘껏 씩씩해 보이든지, 또 잠깐 하, 하고 감탄사를 내뱉기도 했습니다. 문장웹진을 만드는 일에 새로 동참하게 되었습니다. 이런 일도 처음 해보는 일이라, 전에는 무심히 들여다보던 페이지들을 새삼 챙겨서 들춰보고 또 거기에 무언가를 보태려고 머리를 굴려보기도 하는 일이 아직은 영 서툴기만 합니다. 대개는 하, 하는 감탄사뿐입니다. 봄 들판에 새 잎이 무성히 돋아나는 것처럼, 매번 새로운 집들이 페이지에서 쑥쑥 돋아나는 것을 보는 느낌인데, 세상이 진부하다고 아무리 진부하게 지껄인다고 한들, 역시 그 진부함과 지루함과 외로움을 이기게 하는 것은, 바로 그 진부한 역동인 듯 합니다. 2009.03.27

이파리들의 악수 신용목 [0]
 

가지에서 새잎이 돋아나는 힘은 강철로도 막지 못합니다. 그것은 햇살의 힘이고 순환의 힘이며, 엄마의 젖꼭지를 빠는 생명의 힘입니다. 가장 위대한 지구의 자력 발전소인 나뭇잎을 보면서 나는 저것들이 하나하나 '손'이라는 생각을 자주 합니다. 파란 손바닥들이 드넓은 우주를 받치고 있는 것. 실로 그들의 협동이란 두 개의 손을 지닌 우리가 도무지 이룰 수 없는 일들을 해내고 있습니다. 그늘이 되고 한 폭의 그림이 되는가 하면, 광합성을 통해 지구 에너지의 대부분을 생산합니다. 분명 손은 내 몸의 가장 먼 말단이었으며 그리하여 상대의 가장 가까운 곳까지 가닿는 소통의 최첨단이었습니다. 2009.02.24

나이를 먹는다는 것 이선우 [0]
 

달을 보았습니다. 신정도 구정도 다 지났고, 살아남았으니 또 한 살 나이를 먹었습니다. 응당 그런 것이려니 하던 시절도 있었는데, 새삼 그 의미를 새기게 되는 건 나이가 들어간다는 의미일까요. 삶이란 죽음의 연속이고 죽음 역시 삶의 하나라는 말이 잔망스레 느껴질 정도로 잔혹하고 어처구니없는 죽음이 난무했던 세밑이었습니다. 한 오라기 얼굴 내민 달을 보니 지구도 참 서정적인 곳임에 분명한데, 이 땅 위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우리의 낭만적인 상상력을 한순간에 박살냅니다. 비현실적인 것이 잘 벼린 뼈처럼 아름다운 저 달이냐, 공권력의 불길에 휩싸인 우리의 오늘이냐 자꾸만 물어보게 되는 음력 초사흘입니다. 하여 기어이, 당신의 오늘은 안녕하신가, 판에 박힌 안부인사까지 하고 맙니다. 2009.01.30

태양의 눈이 담긴 복주머니 신용목 [0]
 

어제는 겨울 산을 오르다 뜬금없이, 도토리의 키를 재보고 싶었습니다. 높은 구름의 시름을 바지랑대로 받쳐주고도 싶었고, 겨울 해의 기울기를 낚시대로 건져올리고도 싶었지만, 정말 도토리라고 다 고만고만하기야 할까! 기어이 도토리를 찾았습니다. 도토리들이 참나무 발치에 송글송글 흩어져 있더군요. 우리가 다 똑같다고 치부한 것들이 사실은 논리와 논증을 배제하고 그 자리에 무기력과 자포자기를 심어놓은 원인은 아닐까. 사안의 경중과 대안의 가능성을 무시한 채 ‘어차피 그놈이 그놈이고 그것이 그것일 뿐’이라는 식의, 가치판단을 무력화한 것은 아닐까. 도토리를 한 움큼 쥐고 정말 도토리 키를 쟀습니다. 2008.12.30

나무들의 뼈대 한강 [0]
 

잎이 다 떨어지고 나니, 나무들의 뼈대는 검고 고요합니다. 오래 그 뼈대를 바라봅니다. 이제 더 추워지겠지요. 나무들은 더 검고 고요해지겠지요. 우리는 따뜻한 살을 가졌으니, 체온을 잃지 않으려고 더 따뜻한 것을 향해 몸을 기울이겠지요. 털로 짠 스웨터, 방금 구운 풀빵, 절절 끓는 아랫목, 세차게 비빈 손바닥의 열기, 젖은 눈으로 묻는 안부. 그러는 동안 해가 가겠지요. 더 추워지겠지요. 2008.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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