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사적 기예의 세 가지 풍경들 - 권정관
서사적 기예의 세 가지 풍경들 권정관 1. 허구의 확장과 소설의 위기 ‘소설의 종언’을 진단하는 가라타니 고진의 통찰이 아니더라도 소설이 자신의 위의를 ...
|
메밀꽃 질 무렵 - 김도연
메밀꽃 질 무렵 김도연 장터 입구가 갑자기 북적거리는 걸 보니 어느 골에서 빠져나온 시내버스가 도착한 모양이다. 허리가 구부러지고 머리가 센 늙은이들이 더딘 걸음으로 꾸역꾸역 밀려온다. 성질 급한 젊은 놈들은 좁은 장거리를 답답해한다. 물건을 ...
|
우리의 뮤지컬 판에 서서 둘러보다 - 조광화
우리의 뮤지컬 판에 서서 둘러보다 조광화 뮤지컬 시장이 성장하고 있다. 많은 라이센스 공연들 그리고 창작공연들이 연달아 오른다. 그 편수만 봤을 때 우리의 제반 여건으로는 소화하기 벅찬 양이다. 제작단체들은 극장 잡기도 어렵고 좋은 배우를 확보하기도 어려워지고 있다. 왜 뮤지컬에 대한 관심...
|
폐허와 빈 곳 - 박청호
폐허와 빈 곳 박청호 어딘가에서, 불명의 장소에서, 어디에서나, Somewhere, Anywhere, 어떤 형태로, 아마, 있을 수 있는, 있어야 하는 결정하기 어려운, -자크 데리다 외부는 내부의 결과이다. -르 코르뷔지에 이곳에는 아무것도 없다.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만 존재한다. 누군가 오래 전에도 이...
|
![]() |
매뉴얼 제너레이션 - 김중혁
매뉴얼 제너레이션
김중혁
아직도 첫번째 문장을 쓰지 못했다. 주의사항에서부터 막혔다. 흔해빠진 물건이라면 주의사항 쓰는 건 일도 아니다. 예전에 썼던 주의사항을 그대로 베껴 쓰면 된다. 말만 조금 바꾸고 문장의 배치를 달리하면 그만이다. ‘위험할 수 있습니다’를 ‘위험합니다’로 바꾸...
|
티눈 - 김만수
김만수 티눈 혁명시절 군화 속에서 나를 붙잡던 네가 후들거리고 접히곤 하는 내 쉰의 가을에 다시 몸속에 둥지를 틀었...
|
위장 - 김응교
김응교 위장 내시경에 찍힌 피의 골짜기에 정확히 이력서가 기록되어 있다 비대한 레미콘 불그죽죽 정육점 불빛 반짝이며 폭주(暴走)해 왔다 위장 위쪽에 붕괴될 아파트 벽처럼 갈라진 자죽은 감옥살이 스트레스가 지져놓은 火傷이다 매음굴 골목처럼 벌건 십이지장으로 이어지는 통로는 실...
|
나도 한 그루 이깔나무로 서서 - 김종해
김종해 나도 한 그루 이깔나무로 서서 삼지연에서 백두산 가는 길은 가도가도 황톳길 칠월의 뙤약볕 아래 말 한마디 하지 않고 서서 바람이 불어도 미동조차 하지 않는 이깔나무 숲속에서 나도 한 그루 이깔나무로 서서 조선 인민들이 걸어온 황톳길을 역주행한다 서로가 서로를 가리기 때문에 이깔나무...
|
고장난 라디오 - 김참
김참 고장난 라디오 맑은 오후다 나는 흔들의자에 앉아 라디오를 켠다 주파수를 맞추다 보니 뮤제오로젠바흐의 음악이 흘러나온다 볼륨을 올리고 눈을 감는다 내가 눈을 깜빡이며 얕은 잠에 빠져들 때 잡음과 함께 이상한 소리가 흘러나온다 루라루라 루라루리 라리루리 내가 얕은 잠에 들 때마다 심한 ...
|
오월 - 유홍준
유홍준 오월 벙어리가 어린 딸에게 종달새를 먹인다 어린 딸이 마루 끝에 앉아 종달새를 먹는다 조잘조잘 먹는다 까딱까딱 먹는다 벙어리의 어린 딸이 살구나무 위에 올라앉아 지저귀고 있다 조잘거리고 있다 벙어리가 다시 어린 딸에게 종달새를 먹인다 어린 딸이 다시 마루 끝에 걸터앉아 종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