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옥정 늙은 여자를 만났다 - 최옥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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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은 여자를 만났다

 

 

최옥정

 

 

삽화_늙은여자

 


 

 

 

 

    1. 첫째 날

 

    소녀가 내 신발에 침을 뱉었다. 침은 신발을 맞추지 못하고 신발 사이의 바닥으로 떨어졌다. 나는 오른손으로 소녀의 가슴팍을 밀쳤다. 소녀는 엉덩방아를 찧고 넘어지는가 싶더니 벌떡 일어나 내 소맷자락을 잡고 늘어졌다. 나는 팔을 빼려고 소녀의 어깨를 잡고 흔들었다. 깡마른 작은 손이 악력은 굉장했다. 스보르노스티 광장을 돌아다니던 사람들이 삽시간에 우리를 에워쌌다. 소년 몇이서 소녀를 아는 척하며 휘파람을 불어댔다. 응원을 받은 소녀는 내 옷소매를 더욱 세게 틀어쥐었다. 재미있는 놀이를 찾아냈다는 듯이 나하고 벌이는 실랑이에 몰두했다. 삼 달러가 큰돈은 아니다. 이쯤에서 돈을 줘버리고도 싶었지만 이상한 전투 의지가 나를 충동질했다. 분이 풀리지 않은 소녀는 내 구두코를 힘껏 밟았다. 동시에 나는 소녀의 뺨을 후려쳤다. 내 기습에 당황한 소녀는 손을 풀고 자기 뺨을 쓸어 보았다.
    “헬레나!”
    그때 구경꾼 사이에서 소녀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소녀는 공포에 질린 표정으로 소리 나는 쪽을 돌아보았다. 사납게 생긴 노파가 그녀를 향해 주먹을 흔들었다. 소녀는 내 어깨에 걸쳐 있던 배낭을 잡아당겼다. 이건 안 돼! 내 입에서 한국말이 튀어나왔다. 나는 수류탄을 몸으로 막는 사람처럼 배낭을 붙안고 바닥에 주저앉았다. 내가 몸 전체로 가방을 끌어안아 도저히 빼낼 수 없자 소녀는 내 목에 두른 머플러를 잡아채서 반대쪽으로 달아났다. 나는 온몸의 힘이 빠져 포석 위에 다리를 뻗었다. 소녀가 닦은 구두도 엉망이 되었고 옷도 단추가 풀린 채 벌어져 있었다. 십 분도 채 안 되는 시간에 벌어진 소동이었다.
    열 살쯤 된 소녀가 내 옆으로 다가와 구두가 예쁘다며 만지기 시작했다. 나는 귀찮아서 그냥 내버려두었다. 그녀는 가방에서 지저분한 헝겊을 꺼내더니 내 구두를 닦았다. 낡은 구두에 어울리지 않는 ‘뷰티풀’이라는 찬사를 내뱉었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다른 곳으로 가려고 했다. 소녀가 내 앞에 손을 내밀었다. 나는 인상을 찌푸리며 어깨를 으쓱했다. 쓰리 달러. 소녀는 태연히 돈을 요구하며 구두를 가리켰다. 구두 닦은 값을 달라는 뜻이었다. 나는 고개를 저었다. 그녀는 입술만 양쪽으로 늘여 만들어낸 미소를 지으며 뷰티풀과 쓰리 달러를 몇 번 반복해서 말했다. 내가 대꾸도 않고 걷기만 하니까 마침내 내 신발에 침을 뱉은 것이다. 입천장에 달라붙은 가래 같은 역겨움이 목구멍에서 치밀어 올라왔다. 넌 상대를 잘못 골랐어.
    광장 앞 노천카페에 앉아 체코 맥주 필스너 우르켈을 주문했다. 서울에서 자주 먹던 맥주를 여기서 보니까 망명 중에 동포를 만난 것처럼 반가웠다. 이 맥주의 고향이 원래 이 나라인데도 말이다. 호박색 맥주는 이곳의 특산물인 크리스털을 정교하게 깎아 만든 맥주잔에 담겨서 나왔다. 더러워진 기분을 씻어내기에 알맞게 차갑고 쌉쌀했다. 알싸한 맥주가 아릿한 통증과 함께 목을 타고 내려간다. 다음 순간, 아! 한숨을 내쉬었다.
    “너 진짜 독하구나. 어쩌면 눈물 한 방울 안 흘리니?”
    독한 사람. 그 말을 어금니에 물고 지그시 깨문다. 그리고 의자에 걸쳐 놓은 배낭을 돌아보았다. 제대로 독한 사람이었다면 저걸 들고 이 먼 곳까지 오지 않았겠지. 칭찬도 비난도 위로도 짐이 되었던 시간이 끝난 줄 알았다. 아버지 때문이야. 속으로 수백 번 되뇌던 말을 맥주와 함께 삼킨다. 당신 때문에 나는 어떤 것은 할 수 없었고, 어떤 것은 해야만 했다. 거기 나는 없었다. 우리 사이에 남은 건 서로 죽을 때까지 지울 수 없는 고통을 차곡차곡 쌓아 온 세월뿐이다. 당신을 여기에 두고 나는 혼자 돌아갈 것이다.
    나는 맥주잔을 꽉 움켜쥐었다. 차가운 크리스털의 감촉이 나를 위로한다. 고딕, 바로크, 로코코, 르네상스 시대의 건축양식을 다 동원해 화려하게 꾸민 성 안에서 나는 아무것도 가져 본 적이 없는 사람을 생각했다. 체스키 크롬로프. 프라하에서 기차를 타고 네 시간이 채 안 걸려 도착한 동화 속의 작은 마을. 전망대에 올라가 붉은 지붕으로 뒤덮인 마을을 내려다본다. 내 생애 이곳에 다시 올 수 있을까? 그럴 리 없을 것이다. 만약 그렇다면 그때는 죽은 자의 뼛조각이 아니라 살아 있는 누군가와 동행하게 되리라. 가질 수 없는 것들을 전시해 놓은 시장통을 헤매는 게 인생이라는 걸 소녀도 곧 알게 될 것이다.
    관광객들이 광장 다음으로 들끓는 블타바 강으로 가기 위해 구시가 쪽으로 걸어갔다. 도시는 대개 강을 끼고 발달해서 강에 가면 흥미로운 구경거리를 만날 수 있다. 허리가 잘록한 여자의 몸처럼 S자로 흐르는 강 주변은 아름다움을 찬양할 준비가 된 여행객들로 붐볐다. 저녁 어스름이 내리면서 강가에는 더 많은 사람이 모여들었다. 어둠이 깊어지기 시작하자 강가에 앉아 있던 사람들이 하나둘 일어난다. 어둠과 어울리는 곳을 찾아 어둠이 어울리는 일을 하려는 흥분이 그들의 표정에 아로새겨져 있다. 뜨거운 밤에 대한 기대에 들뜬 채 술을 마시고 사랑을 나누러 간다고 달궈진 육체로 말한다.
    진한 키스를 하는 연인들 사이로 소년들이 바람개비를 날리며 돌아다닌다. 그 옆에서 한 남자가 깔깔대는 소녀들을 곁눈질한다. 바닥에 눕듯이 몸을 기댄 추레한 남자의 눈이 나와 마주쳤다. 계단 위에 널브러져 있는 늙은 개하고 똑같은 자세였다. 나는 그의 시선을 피해 개를 쳐다보았다. 이곳의 개들은 죄다 늙었다. 늙어야 밖으로 싸돌아다닐 권리가 생기나 싶게 늙고 힘이 없었다. 남자는 개보다 더 늙고 더 기운이 없어 보였다. 나는 이 자리를 어서 피하고 싶었다. 저 눈빛을 안다. 무방비하게 쳐다보다가 언제 갑자기 폭력을 휘두를지 모른다. 하지만 생각뿐 나는 그대로 앉아 가로등 불빛이 비친 강물을 고집스럽게 바라보았다. 강물에 뭔가 어른거린다. 소녀의 얼굴이다. 내 머플러를 목에 두르고 웃는, 긴 머리가 얼굴을 반쯤 가린 여자애 얼굴이 여울과 함께 흔들린다. 머릿속이 뒤죽박죽이다. 이것도 여행이라고 일상을 잊고 여행자의 영혼을 갖게 된 건가. 어쨌거나 앞으로 닷새의 휴가기간 동안은 보딩패스와 생활인의 자리를 교환한 여행자 신분이다.
    밤의 일을 생각한다. 두 개의 거울에 내 얼굴이 비친다. 병원의 후미진 병실 벽에 붙어 있는 거울. 따사롭고 부드러운 조명의 레스토랑 화장실 거울. 나의 밤은 두 거울 사이를 오가며 어둠을 밀어냈다. 죽음에 덜미 잡힌 사람을 지켜보는 일, 살아서 내일을 맞이할 사람에게 요리를 해주는 일. 나의 직업은 두 개였다. 아픈 사람은 죽음과 싸우느라 바쁘고 건강한 사람은 삶과 싸우느라 바빴다. 인간이 얼마나 질기게 버티다 목숨을 내놓는지 지켜보며 이 년 석 달을 보냈다.
    ‘다 떠났어요. 모두가 당신을 떠났다고요. 당신은 버림받았어요.’
    아버지는 말이 없다. 음식을 먹지 못하면서부터 생명의 불은 빠르게 꺼져 갔다. 30킬로그램의 살과 피와 함께 감정도 판단도 빠져나갔다. 생존의 흔적만 남아 손을 잡으면 손가락을 꼼지락거렸다. 나는 종일 생피 냄새가 나는 스테이크를 구우며 미음조차 삼키지 못하는 아버지를 잊었다. 병실의 공기가 되어버린 지린내와 신음소리 속에서 나의 거울인 아버지의 얼굴을 본다. 뻔뻔해져야 한다, 아버지는 그러지 못했지만 나는 말짱하게 살아남아야 한다. 통점이 제거된 영혼으로 나를 겨냥한 화살이 나를 꿰뚫지 못하도록 살짝 비껴서 있었다.

 

 

    2. 둘째 날

    늙은 여자가 나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겹겹이 입은 긴 치마를 땅에 끌며 내 쪽으로 걸어왔다. 바로 코앞까지 다가와서 내 뺨을 어루만지며 오랜만이라고 했다. 나를 오래전에 만난 적이 있다고. 까슬까슬한 손을 피할 생각은 못 하고 얼어붙은 듯 서 있었다. 나는 그녀를 알아보았다. 소녀의 이름을 불렀던 매서운 눈매의 노파였다. 한번 보면 잊히지 않을 얼굴이다. 노파에게서 제사 지낼 때 피우는 향 비슷한 냄새가 났다. 나는 눈빛을 누그러뜨리고 고개를 딴 데로 돌렸다. 길고 헝클어진 머리를 늘어뜨린 소녀의 얼굴이 노파의 얼굴에 겹쳐졌다. 나는 고개를 숙이고 땅바닥을 내려다보았다. 노파는 왼손을 뻗어 내 손을 잡았다. 손바닥을 펼쳐 자신의 검지로 내 손금을 따라 그렸다. 보물섬의 지도를 찬찬히 읽어 내려가는 사람처럼 신중한 손놀림이었다. 나는 그녀가 하는 양을 골똘히 지켜보았다. 그녀는 내 손을 오므려서 나에게 돌려주었다.
    “넌 슬픈 일이 많을 거야.”
    얼치기 점쟁이들의 빤하고 상투적인 문구였다.
    “그렇군요.”
    “이렇게 탈이 없는 손금을 가진 사람은 운명을 믿지 않지. 그래서 헛발을 디디고.”
    “맞아요. 당신 말이 다 맞아요.”
    나는 죽이 잘 맞는 연극배우처럼 그녀의 대사에 장단을 맞추었다. 노파는 연극배우라고 해도 믿을 만큼 캐릭터가 살아 있는 얼굴이었다.
    “너는 내 친구야. 그래서 도와주려는 거니까 너도 나를 친구로 생각해. 그래야 공평하잖아. 내 말을 믿지 않지? 알아. 넌 분명 그런 사람이야.”
    노파의 말이 맞다. 나는 누구의 말도 믿지 않는다. 어제 그 소녀를 만난 뒤 사진 한 장으로 남은 오래된 장면을 떠올렸다. 깨진 유리조각이 널려 있는 방에 어린 내가 맨발로 서 있다. 이상하리만치 무표정하다. 다들 어디로 간 걸까. 주위에 사람도 소리도 움직임도 없다. 앞과 뒤가 잘려 나간 그 장면 속을 앰뷸런스의 사이렌 소리가 가로지른다. 방금 아버지가 엄마와 싸우다가 엄마를 거울 쪽으로 밀쳤고 거울이 산산조각 났다. 그중 한 조각을 집어 자해를 시도하는 엄마랑 아버지가 엎치락뒤치락 하는 동안 방바닥은 온통 피와 깨진 유리로 뒤덮였다. 옆방 아줌마가 달려와 119에 신고를 했고 모두 구급차를 타고 떠났다. 사람들 눈에 나는 보이지 않았다.
    노파가 이번에는 자신의 손바닥을 내 앞에 펼쳤다. 거기에는 해독할 수 없는 아라비아 문자 같은 복잡한 손금이 그려져 있었다. 나는 지도의 선 같은 그 손금을 물끄러미 내려다보았다. 노파는 손을 치우지 않았다. 자신의 손금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나는 바로 그 순간 알아차렸다. 노파가 나에게 보여준 건 손금이 아니라 빈손이었다. 그 빈손을 채워 주어야 할 의무가 나한테 있었다. 그녀와 대화를 나누었으니까. 그녀의 친구니까. 저 정도 나이만큼 살고 나면 자신이 가진 모든 게 재산이 되는 법이라고 말하고 있었다. 늙었기 때문에 무엇을 요구해도 그것은 구걸이 아니라 그녀 삶에 대한 정당한 값을 지불하는 거라고 믿게 만들었다. 나는 지갑에서 오 달러짜리 지폐를 꺼내서 그 빈손 위에 올려놓았다. 소녀 때문에 계속 찜찜했는데 차라리 잘 됐다. 노파는 손을 거두어 목에 걸고 있던 작은 구슬가방에 돈을 넣었다. 손을 펼쳐 약지에 끼고 있던 반지를 빼서 나에게 주었다. 은처럼 보이지만 은이 아닌, 싸구려 쇠붙이로 만든 조악한 반지였다. 문방구에서 파는 장난감 반지 수준이었다. 나는 반지를 내 약지에 끼었다.
    “슬픔을 호주머니에서 꺼내고 싶을 때마다 이 반지를 세 바퀴 돌려 봐. 굿럭, 친구야!”
    그녀의 말대로 오른손으로 왼손에 낀 반지를 세 바퀴 돌렸다. 이런 경우 숫자를 덧붙여 말하면 상대가 더욱 신뢰하게 되는 법이다. 세 번. 주술적인 숫자다. 나는 고개를 들어 노파를 보았다. 목적을 달성한 그녀는 벌써 눈앞에서 사라지고 없었다. 저만치 해진 치마로 땅바닥을 쓸고 가는 노파의 뒷모습이 보였다. 늙었지만 걸음걸이만은 당차고 날쌨다. 한 거래처의 수금을 마치고 다음 거래처를 찾아가는 열성 종업원의 뒷모습이었다. 자전거나 스쿠터를 타고 달린다 해도 어울릴 것 같은. 주술의 얼굴로, 운명의 얼굴로 나를 주눅 들게 했던 방금 상황은 노파가 주인공인 한 편의 연극이었다. 노파는 오 달러 이상의 쇼를 보여주었다. 보통의 점쟁이가 불안을 팔아서 먹고 산다면 노파가 파는 것은 농담이었다.

 

 

    3. 셋째 날

    온종일 하릴없이 광장을 헤매다 돌아왔다. 방문을 열자 빈방에 고여 있던 냄새가 나를 맞았다. 어느 방이나 고유의 냄새가 있다. 누구나 독특한 냄새를 갖고 있듯이. 냄새가 그들의 정체성이다. 환자의 냄새, 아이의 냄새, 걸인의 냄새. 수많은 여행자가 남기고 간 냄새의 입자들이 내 냄새와 섞이도록 잠시 기다린다. 손을 뻗어 깜깜한 허공을 휘저었다. 창문으로 들이치는 불빛이 약해서 손의 형상이 흐릿하다. 숫자를 세듯이 손가락을 오므렸다 펴보았다. 아무 이상도 없구나. 노파의 손 때문인지 어젯밤 손이 잘리는 꿈을 꾸었다. 도끼에 잘린 손가락이 통통 튀어 다녔다. 이따금 신체가 훼손되는 꿈을 꾼다. 상체와 하체가 분리되는 꿈. 내 발이 따로 돌아다니는 꿈. 더 자주 꾸는 꿈은 누가 내 머리카락을 자르는 꿈이다. 꿈에서도 나는 현실에서처럼 길고 새까만 머리카락을 가지고 있었다. 몸집이 큰 남자가 긴 머리카락을 손아귀에 움켜쥐고 녹슨 전지가위로 마구 잘랐다. 꿈속의 나는 언제나 어린 소녀였다. 옆에는 얼굴과 표정이 나와 꼭 닮은 남자가 어쩔 줄 몰라 하며 쩔쩔매고 있다.
    나는 탁자 아래 둔 배낭을 내려다보았다. 배낭은 갈 곳 없는 길고양이처럼 어둠속에 웅크리고 있었다. 여행가방 치고는 너무 가볍다. 나는 가방을 열고 작은 병을 꺼냈다. 아버지의 유골조각을 담아 놓은 유리병. 화장을 마치고 나온 유골을 절구에 넣고 빻기 전에 작은 뼛조각 몇 개를 덜었다. 아무도 말리지 않았다. 나는 유골을 손수건에 싸서 집으로 가져왔다. 딱히 어떻게 하려는 생각 같은 건 없었다. 작은 접시에 담아 책상 위에 올려놓고 보았다. 유골은 위쪽이 둥그렇게 구부러져 물음표 모양을 하고 있었다. 아버지 눈빛에서 평생 떠나지 않은 그 의문부호였다. 일생에 한 번은 먼 여행을 해야 하지 않을까. 당신의 과거 따위는 묻지 않는 곳으로. 나는 뼈를 병에 담아 가방에 넣었다.
    비행기 표를 예약한 건 바로 그날이었다. 충동적으로 떠나온 여행이었다. 여행이라는 의식조차 없이. 지도를 보았고 지도의 한 지점에 눈길이 멎었고 비행기 표를 조회했고 적당한 표를 샀다. 그리고 일주일 후 비행기를 탔다. 내 속의 누가 시킨 것처럼 순순히 진행했다. 오래도록 이곳을 꿈꾸었다. 동화책에서 본 성과 집을 그대로 재현해 놓은 듯 아름다운 나라라고 했다. 내가 살던 집과는 완전히 다른 집들이 즐비했다. 이곳에 와서 본 건 그림 같은 집을 배경으로 서 있는 가난한 사람들과 그들을 구경하는 관광객뿐이었다. 집시 여자를 만나 발바닥에 못이 박힌 채 살았던 한 남자 얘기를 하고 싶다는 건 한갓 망상이었다. 그를 닮은 사람은 여기에도 널려 있었다. 세상과 분리되어 자기네들끼리만 공유하는 가치관이나 생활방식으로 사는 집시들의 당당한 모습은 어디에도 없었다. 소문을 잘못 들었거나 잘못 입력한 거다. 어떤 소문은 그들을 좀도둑이나 거지쯤으로 묘사하기도 했다.
    이곳에서 처음 만난 집시는 저녁 무렵 다리 위에서 바이올린을 연주하던 가족이었다. 형편없는 연주였고 구경꾼도 없었다. 바이올린 케이스에는 동전 몇 개뿐이었다. 가장으로 보이는 남자는 피로와 모멸감, 체념에 전 표정으로 마지못해 연주를 했다. 보통사람들과 다를 바 없이 생계에 허덕이며 사는 고단한 일상인이었다. 오히려 그보다 못했다. 어떤 사람에게는 평생의 멍에인 생활의 일들. 생계를 꾸리는 것이 숨처럼 자연스러운 사람이 있는 반면 손이 묶인 듯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사람도 있다. 그 한 가지 이유만으로도 살갗이 뼈를 벗어난 것처럼 아프고 쓰라린 일을 많이 겪는 팔자가 된다. 그래서 늘 집으로 돌아오는 걸까? 바람이 시려서. 마지막 말을 생각한다.
    “집으로 가야지.”
    아버지는 눈을 감고서 마음은 벌써 집으로 가고 있는 듯이 말했다. 집으로 가자고 했다. 평생 집을 떠나지 못했으면서, 그리도 멀리 달아나고 싶었지만 아무데도 못 갔으면서 또 집을 찾는다. 갈 데라곤 집밖에 없으면서도 제 살 곳인 집을 망가뜨려 놓고 왜 집을 또 찾나. 병원이 싫고 낯선 곳이 싫고 낯선 사람이 싫고 일도 싫다. 일생을 싫은 것투성이로 산 것도 모자라 마지막 누운 침상도 싫어했다. 마음에 아무것도 담아 두지 않고 마지막까지 지금 있는 곳이 아닌 곳을 찾는 일관성 있는 삶.
    “어떻게 평생 당신 하고 싶은 대로만 사냐. 이젠 정신을 차릴 때도 되지 않았어? 그렇게 살려면 자식을 낳지 말았어야지.”
    경찰서에서 전화를 받은 오빠는 손을 부르르 떨었다. 아버지가 노임을 주지 않는다고 술 마시고 찾아가 회사 집기를 부수고 사장을 때렸다고 했다. 오빠가 열 배도 넘는 합의금을 물어 주고 아버지를 유치장에서 꺼내왔지만 아버지는 쓰다 달다 말이 없었다. 미안하다, 고맙다는 세상과 어떻게 해볼 생각이 있는 사람들의 단어였다. 오빠 말대로 세상과는 상관없이 하고 싶은 대로 하면서 사셨지. 정말 그랬을까. 혹시 아버지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몰랐던 게 아닐까. 자식을 낳은 것도 자식에게 고통을 준 것도 아버지 뜻은 아니었을 거야. 그래야만 해. 그렇지 않다면 그 시간들을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겠어.
    “차라리 일하러 나가지 마. 제발, 그냥 집에 있으라니까. 언제 돈 벌어온 적 있어? 이게 뭐야, 맨날? 지난번에도 회사 자재 빼돌린 사람이랑 싸우다 어떻게 됐어요? 옴팡 누명 쓰고 쫓겨났잖아요. 왜 그렇게 답답해. 아버지는 그 사람들이랑 게임이 안 된다고!”
    오빠의 힐난에도 언제나 묵묵부답. 술의 힘을 빌린 고함밖에 들은 게 없다. 그 침묵 속에 무엇이 들어 있었는지 아무도 알지 못했다. 언제나 어리둥절해서 아무것도 모르겠다는 얼굴로 살았다. 매번 우리에게 골칫거리를 안겨 놓고 당신은 두 배로 더 힘들다는 표정이었다.
    나는 어찌하여 여기로 왔는가. 이곳이 체코의 프라하라고 해도 상관이 없고 태국의 치앙마이나 캄보디아의 씨엠립, 아이슬란드의 구석진 마을이라 해도 아무 상관이 없다. 나는 비행기를 타고 아주 멀리 왔다. 처음으로 당신이 내게 큰 목소리로 명령하는 말을 들었다.
    “나를 좀 멀리 데려다 다오.”
    당신의 명령이 아니더라도 멀리 떠나고 싶었다. 내가 그동안 발바닥에 본드를 붙인 것처럼 붙박여 살았던 건 순전히 당신 때문이었으니까. 이제 당신이 떠났으니 나는 모든 것을 한꺼번에 할 수 있다. 열세 시간 동안 비행기를 타고 이곳에 왔다. 당신을 내려놓는 일만 남았다. 아, 갑자기 왜 이리 가슴이 떨릴까. 몹시도 춥다. 강가에서 매일 만나는 이 마을 사람도 여행객도 소녀도 늙은이도 내가 곧 이곳을 떠나리라는 걸 안다. 오래 있을지도 모른다고 대답했지만 그들은 믿지 않았다. 식당 웨이터도 나를 볼 때마다 아직 안 갔네, 하는 표정을 짓는다. 나는 떠나기로 되어 있는 사람이다. 누구인들 그렇지 않으리.
    악몽과 불안과 조바심을 물려준 사람이 떠났다는 사실에 처음에는 안도했고 다음에는 서러웠고 지금은…… 지금은 막 세상에 태어난 것처럼 막막하다. 손에 든 지도를 누가 빼앗은 것처럼 넋이 나가 서 있다. 엉터리 지도라도 없는 것보다 나은가. 잘못 찾아 헤매는 것도 여행이라면 여행인가. 삶의 요령과 여행의 요령은 호환되지 않는다. 지도 덕분에 맨홀과 허방의 위치는 확실히 알았으니 내 발로 찾아가야겠지. 그러려면 얼른 가방을 비워야 한다. 저 강물이 아니더라도, 저 들판에, 저 정원에, 꽃이나 나무에게라도 보내야 한다. 자다 깨서 가방을 멀거니 쳐다보는 일도 그만두어야 한다. 작은 일 하나도 쉽게 처리하지 못하고 질질 끌려 다니는 나도 버려야 한다. 무슨 일이든 나한테 오면 어렵고 복잡한 일이 돼버린다.
    “아버지, 그냥 가만히 계시면 안 돼요?”
    내가 평생 하고 싶었던 말이다. 가만히 있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데 왜 돌아다니면서 모든 것을 시궁창으로 만드는지 당신은 알고 있느냐고 묻고 싶었다.
    “아픈 사람은 원래 병원에 입원하는 거고 의사한테 몸을 맡기는 거예요. 왜 자꾸 밖으로 나가려고 그래요? 우리는 아버지를 도와줄 수 없다고요. 통증이 점점 심해질 거라잖아요.”
    “여기 있는 사람들 다 이상하다. 난 집에 갈란다.”
    ‘원래 병에 걸리면 다 이상한 사람이 되는 거예요. 아버지도 마찬가지고요.’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아버지가 죽을 때까지 기다렸다가 주검을 처리하는 일뿐이었다. 아버지는 그 사실을 모르는 척했다. 집으로 가고 싶다고 했다. 가다가 길을 잃고 길바닥에서 죽는다 해도 그쪽이 아버지답다는 건 안다. 그러나 죽음만은 당신 스스로 선택할 수 없었다. 우리가 선택한 방식의 죽음에 자신을 맡길 수밖에 없는 무력한 중증 환자가 된 것이다.
    “산 사람이 어떻게 가만히 있는다냐?”
    아버지는 허공을 팔로 휘저으며 가쁜 숨을 내쉬었다. 나는 아버지 손을 붙잡았다. 뼈만 남은 손이 따뜻했다. 이 손에서 온기가 사라질 날이 얼마 남지 않았구나. 그 순간 내 목에서 뜨거운 것이 올라왔다. 곧 이 손을 다시는 잡을 수 없게 될 것이다. 우리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면서 여기까지 왔다. 버릴 수도 가질 수도 없는 것들이 세상에는 너무 많다. 왜 어떤 인간은 가장 잘하는 일이 가만히 있는 것밖에 없는 걸까.

 

 

    4. 넷째 날

    늙은 여자가 나를 다시 찾아왔다. 그녀는 게스트하우스의 카운터에서 주인과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내가 계단을 내려오는 소리를 듣고 그녀는 뒤를 돌아보았다. 어제 봤던 그 표정, 내 눈에 표창을 꽂듯 쏘아보는 눈빛으로 나를 보았다. 주인은 노파를 나에게 인계하기라도 하듯 억지 미소를 짓고 책상을 정리하던 자신의 일로 돌아갔다.
    노파는 줄 것이 있어서 왔다고 했다. 나는 왼손에 낀 반지를 만지작거리며 그녀를 쳐다보았다. 별 기대 같은 건 안 하겠다는 표정으로. 그녀는 내 얼굴에서 의혹과 환멸을 읽어냈으리라. 자기가 무슨 말을 하든 속임수로밖에 듣지 않으리라는 것도 알았을 것이다. 그녀는 주섬주섬 주머니를 뒤지더니 작은 새 한 마리를 꺼냈다. 연두색과 노란색 줄무늬의 새, 배 근처에 드문드문 붉은 얼룩이 있었다. 새는 분주히 머리로, 아니 부리로 그녀의 손바닥을 쪼았다. 끈이 매달린 것도 아닌데 날아갈 생각을 하지 않고 손바닥 안에 머물러 있었다. 노파는 언제까지고 새를 바라보려는 듯 새에게서 눈을 떼지 않았다.
    나는 노파의 손바닥과 새를 번갈아 쳐다보았다. 이곳 사람들을 다 이해할 수 없고 이해하려는 의지도 없지만 때때로 관심을 끄는 대상을 만나면 전리품처럼 머릿속에 잘 저장해 놓는다. 손바닥을 쪼던 새가 고개를 들고 허공을 바라보았다. 그 허공에는 나도 있었다. 그렇다고 새가 나를 보는 건 아니었다. 새의 눈이 뭔가 보고 있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우리는 새를 먹어요. 손 안에 꼭 들어올 만큼 작은 새를 뼈까지 바숴서 먹죠.”
    아버지는 기름이 번진 종이봉투를 밥상 위에 올려놓았다. 봉투에서 꺼낸 건 바싹 구운 참새구이였다. 나를 포장마차에 데려갔을 때 억지로 먹으라기에 조금 먹었다가 바로 토했다. 아버지는 참새의 꼬리 부분을 잡고 날개부터 씹어 먹기 시작했다. 와삭와삭. 뼈가 입안에서 으스러질 때 시끄러운 소리가 났다. 아버지는 입에다 소주를 부으며 누군가를 막 욕했다. 며칠 전에 본 아버지와 지금의 아버지가 같은 사람일까, 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박스를 쌓아 놓은 창고에 길고양이가 새끼를 낳았다. 며칠째 들리던 애 우는 소리의 주인공이었다. 아버지가 여기저기 뒤지다 발견했다. 어미는 없고 주먹만 한 새끼 세 마리가 눈을 말똥말똥 뜨고 쳐다보았다. 옆집 아저씨가 재수 없다며 빨리 쫓아버리라고 소리를 질렀다. 아버지는 뒷걸음질 쳤다. 저 살아 있는 걸 어떻게 버려. 난 못 만져. 아저씨는 기막혀 하며 삽으로 고양이를 떠서 밖에다 내다버렸다. 고양이 새끼들은 맹렬하게 울어댔다. 멀리서 어미가 분명한 다른 고양이 울음소리도 들렸다. 아버지는 고개를 돌리고 외면했다.
    “새 저리 치워요. 내가 먹을지도 모르니까.”
    요새 내가 이렇다. 대상이 갖고 있는 끔찍한 요소를 제일 먼저 끄집어낸다. 참새구이에서 죽은 새로, 다시 그것을 모질게 바숴먹는 서른 개의 이빨로 상상을 구체화시킨다. 그러다 진저리를 치며 생각을 이어 가지 못하고 마음을 닫아버린다. 작은 새는 캄캄하고 답답할 텐데 주머니에서도 잘살고, 좁고 불안한 손바닥에서도 끄떡없다. 자기 몫의 삶을 확실히 파악하고 섣부른 꿈같은 건 꾸지 않았다. 나는 노파에게 점심을 먹었느냐고 물어봤다. 그녀는 고개를 저으며 새를 도로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밥 먹으러 가요. 배가 부르면 좋은 생각을 하게 될 거예요.”
    두 번째 말은 노파가 아니라 나를 향한 것이다. 깡마른 탓인지 노파는 언제나 배가 고파 보였다. 밥을 전혀 안 먹고 사는 사람 같았다. 나는 식당을 향해 앞장서서 걸었다.
    “왜 항상 가방을 들고 다니지?”
    노파는 내 배낭을 가리켰다.
    “무거워 보여.”
    무겁다. 많이 무겁다. 죽고 나서야 집을 떠날 수 있었던 사람의 마지막 바람이 내 어깨를 짓눌렀다. 어디 먼 데로 사라져버릴 것처럼 당장 집을 박차고 나가서도 밤이면 술에 취해 대문을 열고 들어섰다. 집에 자신을 내려놓은 적이 없으면서도 집을 떠나지 못했다. 노파도 혹시 그런 사람 아닐까. 길 위를 헤매는 모든 사람을 의심한다.
    “어떤 사람이 죽었는데 정리할 유품이 하나도 없었어요. 좋아하는 건 뭐든 망가뜨리고 부숴버리기 때문에 갖기를 무서워했지요. 그 사람이 좋아하는 얘기는 이런 것들이에요.”
    오래전에 들은 낚시꾼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낚시터에 가서 하루 종일 같은 자리에 앉아 고기를 한 마리도 잡지 못하는 낚시꾼이 있었다. 저녁이 되면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빈 통을 들고 집으로 돌아갔다. 얼마 후 그가 또 낚시터를 찾았다. 옆자리의 낚시꾼이 물만 바라보고 앉아 있는 그에게 물고기가 많이 나오는 곳을 가르쳐주겠다고 했다. 소위 냉장고라고 부르는 지점인데 문만 열면 음식이 가득한 냉장고처럼 낚싯대만 드리우면 바로 물고기가 잡혀 올라온다. 그는 고개를 저었다. 옆 사람은 답답하다는 듯이 자기가 가르쳐주는 곳은 확실하다고 강조했다. 낚시꾼은 고개를 들어 옆 사람을 쳐다보았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다.
    “내가 지금 하고 있는 건 공갈낚시입니다. 나는 아무 미끼도 끼우지 않고 빈 낚싯대를 그냥 바라보고 앉아 있기 위해 이곳에 옵니다.”
    내 얘기를 들은 노파는 공갈낚시라는 말에 흥미를 보였다.
    “그거 가짜 낚시잖아. 근데 그 사람은 왜 공갈낚시를 하지?”
    내가 그 얘기를 들었을 때 했던 것과 똑같은 질문이다. 반사적으로 질문을 내뱉고 나서 곧바로 생각을 해보았다. 그 낚시꾼은 왜, 왜 공갈낚시를 했을까. 섣불리 답을 말할 수 없었다. 어렴풋이 짐작만 할 뿐이다. 이 경우에는 어렴풋이, 라는 부사가 무척 예의를 갖춘 말처럼 들린다. 확연하게, 라는 단어를 쓴다면 뭔가 오류를 범하거나 실례가 될 것 같았다.
    “물고기는 조용하니까요. 하하하.”
    내가 듣기에도 재미없는 농담이었다. 노파는 더러운 누런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게으른 사람일 거야. 물고기를 잡은 다음에 해야 할 일들이 싫은 거지.”
    그런데도 공갈낚시를 하는 건 물고기를 잡지 않고 자기 자리로 돌아가 해야 할 일이 싫은 거고. 아무것도 안 할 수는 없고 그렇다고 무엇을 할 수는 더더욱 없는 상태에서 낚싯대를 물에 드리운 동안에도 시간은 간다. 그 시간만큼 그는 세상에서 더 멀어진다. 무엇을 하는 것도 아무 일도 안 하는 것도 그에게는 똑같이 힘들었다.
    노파는 내 단골 식당을 흘끗 들여다보더니 그냥 지나쳤다. 노파와의 대화는 끊어졌다가 이어지기를 반복하며 물고기에서 공갈낚시 하듯 빈둥거리는 여행자, 그들을 즐겁게 속이는 요령으로까지 나아갔다. 칠십 년도 넘게 산 노파가 나한테 자꾸 뭘 묻는다. 너는 왜 그렇게 하는데? 아무것도 본 적도 들은 적도 없는 사람처럼 새로이 알고 싶어 했다.
    “당신의 젊은 시절이 궁금해요.”
    그녀는 멈춰 서서 내게 손을 내밀었다. 내 손을 가져다 손톱을 만졌다. 나는 남에게 손을 보여주기 싫어한다. 대부분의 요리사들이 그럴 것이다. 손과 팔에 화상 흉터가 많고 거칠다.
    “나도 젊을 때는 손톱이 이렇게 붉고 매끄러웠지. 나는 사랑을 너무 많이 했어. 열 명도 넘게 사랑했거든. 평생 동안 한 번도 사랑을 쉬지 않았고 내 몸은 바스라져 버렸어. 네가 먹는다는 새처럼.”
    노파의 작지만 또렷한 눈동자에 누군가 담겼다면 그녀는 눈을 질끈 감고 가두어버렸을 것 같다. 저 길고 깡마른 손가락으로 누군가의 손을 잡았다면 죽을 때까지 놓지 않았을 것이다. 둘 다 불길에 휩싸여 여기까지만 살자 하며 사랑했을 것이다. 내가 한 번도 해보지 못한 습기가 많고 끈덕진 사랑.
    “너는 누구를 사랑하고 있지?”
    노파가 물었다. 사랑? 그럴 만한 여유도 시간도 마음도 없었다. 나는 평생 한 사람의 자장 안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사랑 같은 건 해본 적 없어요. 당신 역시 남의 불행으로 먹고 사는 엉터리군요.”
    그녀의 눈빛이 금 간 얼음장처럼 날카롭다. 깨진 유리 이미지는 반복해서 나타난다. 노파는 내 손을 꽉 쥐었다. 구두를 닦은 소녀처럼 완력이 셌다. 모든 가난한 여자들은 서로 닮았다. 거친 살결이 손끝에 까칠하게 닿았다. 따뜻하다. 방금 삶은 계란을 손에 쥔 것 같다. 노파는 내 손을 놓더니 밥은 나중에 먹겠다며 뒤돌아섰다. 길 저쪽에 지나가는 새로운 먹잇감을 향해 걸어갔다. 손을 높이 쳐들고 흔들며 멀어졌다. 문득 그녀에게 밥을 해주고 싶었다. 오첩반상쯤 차려서 맘껏 맛나게 먹는 걸 보고 싶었다. 요리사가 누군가에게 따뜻한 밥을 해 먹이는 직업이라는 걸 이제야 발견한다. 나는 눈을 감았다. 노파의 뒷모습을 눈 안에 가두었다. 질끈 묶은 흰 머리칼, 질질 끄는 더러운 옷, 비틀거리는 걸음걸이, 그리고 그녀를 활활 태우는 불.

 

 

    5. 다섯째 날

    “내일 만나요. 하루 종일 여기서 기다릴게요. 꼭 와야 해요. 꼭!”
    나는 큰 소리로 약속을 했다. 어젯밤 노파의 꿈을 꾸었다. 꿈속의 노파는 나에게 강가로 나오라고 했다. 나는 그러겠다고 답했다. 해가 뜰 때 나오라는 말에 크게 예스, 라고 대답했다. 꿈속의 노파는 갑자기 나타나서 할 말만 하고 사라졌다.
    나는 눈을 떴다. 방 안은 컴컴했다. 아직 아침이 오지 않았다. 시계를 찾아 시간을 확인했다. 새벽 5시 43분. 다시 잠들기는 틀렸다. 나는 몸을 일으켰다. 스웨터로 어깨를 감싸고 밖으로 나갔다. 어둠이 바래기 시작해 하늘은 보랏빛과 회색빛이었다. 햇빛이 저 멀리서 어둠을 몰아내며 다가오고 있었다. 행인도 거의 없었다. 몇몇 식당만 음식 만들 준비를 하느라 문을 열어 두고 있었다. 도로의 포석을 밟는 내 발자국 소리가 새벽 공기를 흩트렸다. 그 소리를 들으며 강가로 걸어갔다. 강가에는 일출을 기다리는 관광객들이 카메라를 꺼내들고 앉아 있었다. 어디에 앉을까 주위를 둘러보았다. 앞쪽 계단에 앉으려고 걸어가는데 누가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굿모닝, 친구!”
    노파였다. 꿈에서 본 그대로였다. 똑같은 옷을 입고 무표정하게 서 있었다. 손에 든 붉은 손수건까지 똑같았다. 노파는 내 쪽으로 다가왔다. 매일 이곳에 일출을 보러 나오는 모양이다. 저 관광객들이 전부 그녀의 거래 상대니까. 그녀는 계단을 가리키며 앉으라는 시늉을 했다. 나는 그녀가 정해 준 자리에 앉아 강을 바라보았다. 태양의 붉은빛을 빨아들인 강물은 비단 폭처럼 출렁였다.
    사방은 아까보다 조금 밝아졌다. 사람은 많아도 아침인 탓인지 일출에 대한 기대 때문인지 조용했다. 다시 하루를 시작할 에너지를 얻으려면 예열 시간이 필요하다. 노파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해가 뜨기 전 시간이 좋지 막상 해 뜨는 광경은 별 볼일 없다면서 나를 집으로 데려가고 싶다고 했다. 그녀에게 집이 있을 거라고는 상상도 안 했기 때문에 놀랐다. 한편으로는 의심스럽기도 했다. 무슨 꿍꿍이가 있는지 알 수 없었다. 나는 대답을 망설였다. 그녀는 내 속마음을 알겠다는 듯 여운을 남기는 한마디를 덧붙였다.
    “보여줄 게 있어.”
    작은 거라고 했다. 아마 세상에서 가장 작을 거라고 노파는 손톱을 들어 그보다 더 작다는 시늉을 해보였다. 나를 속이려는 것 같지는 않았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언덕배기 쪽으로 계속 걸었다. 기념품 가게가 밀집된 거리를 지나 작은 다리를 하나 건넜다. 나보다 다섯 걸음쯤 앞서서 걷다가 딱 한 번 뒤를 돌아보았다. 내 발걸음 소리로 내가 따라오는 것을 가늠하는 눈치였다. 그녀가 멈춘 곳은 빈민가 뒷골목이었다. 비탈진 동네에 열 채 정도 들어선 작은 집들은 대문이 없거나 부서져 있었고 병든 개가 골목 입구에 엎드려 있었다. 그녀는 골목 끝집으로 들어갔다. 마당의 빨랫줄에는 소녀가 뺏어서 달아난 내 자주색 머플러가 널려 있었다. 방 두 개와 헛간이 있는 시골집이었다. 노파는 왼쪽 방의 문을 열고 들어갔다. 나는 방문 앞 의자에 앉아서 그녀를 기다렸다. 잠시 후 노파가 밖으로 나왔다. 그녀의 손에 머그컵 크기의 화분이 들려 있었다. 노파는 자랑스러운 표정으로 화분을 내 눈앞에 들어 보였다. 황토색 토분에 검은색 흙이 가득 담겨 있었다. 뭐지? 나는 눈으로 물었다.
    “미국에서 온 친구가 선물한 거야.”
    미국에는 이 나라만큼 큰 공원이 있다고 했다. 요세미티 공원이라는 곳인데 거기에는 오천 년 된 나무들이 빽빽이 서 있대. 그 나무 이름이 주목이라는 말도 했다. 둥치가 온통 붉어서 마치 공원 전체에 불이 난 것 같다는 과장 섞인 표현 앞에서 나는 웃었다.
    “몸통이 이십 미터나 된다고 했어. 그 친구는 종일 그 나무 사이를 걸어 다녔어. 저녁때 그곳을 나오는데 공원 입구에서 한 노인이 이걸 팔더래. 후추 알보다 작은 씨앗 한 봉지.”
    그 씨앗을 화분에 심었다고 했다.
    “이 씨앗이 자라서 바로 저 나무가 될 거라고 설명하는 상인의 표정이 하도 무심해서 자기도 모르게 그걸 샀대. 사천 년이 걸리는 일을 마치 내후년에 일어날 일처럼 말했다더군. 그 씨앗을 가방에 넣어 가지고 여행을 다니다 친구를 만나면 나눠주는 거야. 이 세상 여기저기에서 주목이 자랄 거고 그러면 외롭지 않을 것 같다고. 그중 세 개를 나한테 선물했어. 일주일 됐는데 아직 싹이 안 났네.”
    나는 화분을 받아서 흙을 만져 보았다. 물을 준 지 얼마 되지 않아 축축했다.
    “친구한테 주는 선물이야. 갖고 있다가 돌아갈 때 돌려줘. 안 돌려주면 더 좋고.”
    무슨 뜻이지? 안 돌려주면 더 좋다니. 노파는 아무 설명도 하지 않고 내 눈을 들여다보았다. 그녀는 자기가 원하는 답이 내 눈 저 안쪽 어딘가에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내가 원하는 답도 거기 있으니 잘 찾아보라는 뜻 같았다. 내가 노파에게 배울 것이 있다면 포기하지 않고 자신을 불태울 연료를 만드는 끈질김이다. 아버지는 세상과 싸울 칼도 없었고 자신의 에너지를 태울 불도 없었다.
    나는 화분을 들고 숙소로 돌아왔다. 창가 테이블 옆 의자 위에 올려놓았다. 가방 속에서 유리병을 꺼내 유골을 손바닥에 쏟았다. 회백색 뼈 군데군데 누런색 얼룩이 있었다. 화분의 흙을 손가락으로 파고 뼈를 안에 묻었다. 흙에 제 살을 문질러 싹을 틔우고 있을 씨앗이 다치지 않게 흙을 살살 덮었다. 뼈에서는 싹이 날 리 없지만 주목 뿌리가 뼛조각을 친친 감고 멀리 뻗어 나갈 것이다. 노파 닮은 목소리로 중얼거리며 화분을 도로 의자 위에 올려놓았다. 으억. 큰 철문이 삐걱거리며 열리는 소리를 내며 울음이 터져 나왔다.
    나는 필사적으로 입을 막았다. 소용없었다. 울음소리는 목이나 입이 아니라 몸통에서 나왔다. 이렇게 울어 본 적은 처음이었다. 남이 우는 걸 본 적도 없었다. 누가 우는 모습을 한사코 보지 않으려고 했다. 그러나 나는 지금 높고 크고 길게 운다. 내가 평생 울던 울음을 다 합친 것보다 더 오래 울었다. 한번은 무언가를 위해 눈물을 흘려야 했다. 나를 달래지 않았다. 말리지도 않았다. 근육과 뼈 마디마디가 풀어지며 들썩거리던 어깨가 새처럼 가벼워졌다. 다리를 쭉 뻗고 머리를 벽에 기댔다가 스르르 무너지며 방바닥에 누웠다. 얼마 후 눈을 떴을 때는 방 안이 깜깜했다. 잠들었었구나. 몸을 도로 바닥에 눕힌 채 아직도 귀에서 웅웅대는 울음소리를 가만히 손바닥으로 문질렀다. 하아, 큰 숨을 내쉬었다. 눈을 감으며 왼손에 낀 반지를 돌렸다. 한 번, 두 번, 세 번.

 

 

 

 

   《문장웹진 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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