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진 소설가(2013) 전발 씨 - 이수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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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발 씨

 

이수진

 

 

 

1304_03-전발씨

 

 

 

   나는 가난해 보였지만 가난한 것은 아니었다. 가난한 것은 불편했지만 가난해 보이는 것은 약간의 편견을 감수하기만 한다면 오히려 편한 면도 있었다. 그것은 타인의 기대와 부응에 관한 것인데 그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하면 길고 길어서 좋을 것은 바나나와 기차밖에 없기 때문에 되도록 말을 줄이는 게 좋지 않을까 생각하고, 그러니 최대한 줄이자면 나는 쌀과 김치와 김과 참치를 주식 삼았지만 주부 구단 소시지를 살 돈이 없는 것은 절대 아니었단 얘기다.
   나는 그저 딱히 사치를 부릴 일이 없는 타입이었다. 음식은 배를 채울 수 있으면 되었고 옷은 몸을 가릴 수 있으면 되었다. 매번 같은 것을 먹고 같은 것을 입는 것은 내게 도리어 안정감을 주었다. 쌀과 김치와 김과 참치는 변색이 드문 검정 티셔츠와 검정색 면바지로 상통했고 삼 년째 신고 있는 니코보코 운동화 역시 동일선상에 있었다. 연필을 굴리기만 하면 그 각이 정답인 학생처럼 나는 적당한 조합으로 아무렇게나 의와 식을 해결하는 데 익숙했다. 그러나 물론 생활 전반이 아무래도 좋았던 것은 아니었고 사람마다 무언가에 편향된 가치를 가지고 있기 마련이었으므로 나 역시 그러했다. 내가 의와 식에서 누릴 수 있는 여러 가지를 배제함으로써 바란 결과는 만족스러운 주를 얻기 위한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내게 그것은 실로 주거에 한정되어 있었다.
   자칫 색다른 인테리어나 완벽한 둥지를 지향하는 양 오해될까 덧붙이자면 나의 즐거움은 오로지 집을 옮겨 다니는 것에 있었다. 나는 이사를 좋아했고 서울시의 여러 공간에 내 흔적들을 남기고 떠나는 것에서 어떤 기쁨을 찾았다. 주거공간의 선택에 있어 나의 구미를 당기는 것은 넓은 평수도, 채광도, 역세권도 아니었다. 좀 단순히 얘기하자면 그 기준은 집세에 치중해 있었는데, 지나치게 단순히 표현된 것 같아 조금 망설여지긴 하지만 집세가 싼 아주 마음에 드는 집을 찾아낼 때의 감정은 내게 있어 일종의 카타르시스로서 분류되기까지 했다. 그건 나의 능력을 전적으로 발휘한다는 점에 있어 더욱 그랬는데 나의 레이더는 같은 조건 중 가장 값싼 곳을 찾는 데 분명 특화되어 있었다.
   단지 주머니 사정 탓으로 돌리기엔 기준의 차이겠지만 나는 가난하지 않았다. 내겐 남들보다 더 많은 것을 견딜 수 있는 능력과 탁월한 안목이 있을 뿐이었다. 탐색 능력의 부족으로 당치도 않은 집에 비싼 세를 주고 들어간 이들을 볼 때마다 나는 우월감을 느꼈고 삶을 이어 나가는 필수요소 중, 의나 식은 헌옷함이나 무료급식 따위로 어떻게든 해결이 된다손 치더라도 주가 해결되지 않을 바에야 홈리스의 딱지가 붙기 마련이었으므로 주에 대한 나의 집착은 색다를 것도 없었다. 무엇보다 그 과정과 행위는 일상에서의 내 모험심을 충족시키는 동시에 내가 어디서건 살 수 있는 사람이란 자신감을 심어 주었기 때문에 중요했다.
   그렇다고 내가 섣부른 편은 아니었는데 왜냐하면 싼 게 비지떡이라는 속담이 괜히 있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조건 대비 지나치게 가격이 싼 집은 나로 하여금 집주인에게 몇 가지 설문의 대문을 지나게 하지 않을 수 없는 노릇이었다. 실은 그것이야말로 탐색 능력 외의 또 하나의 능력, 무언가를 견디거나 참을 수 있는 내 두 번째 능력이 발휘되는 시점이었는데 그것은 이를테면,
   ‘누가 죽었죠?’나,
   ‘왜 죽었죠?’나,
   ‘어쩌다 죽었죠?’와 같은 맥락으로 밝혀질 그 집의 역사에 관한 것이었다.
   임대차에 있어, 삶의 역사가 플러스로서 작용되는 일은 없었다. 그 집에서 몇 명이나 태어났고 누가 살다 나갔는지에 대해 사람들은 전혀 관심을 두지 않았다. 그게 아무 의미도 갖지 못하기 때문이었는데 반대로 누군가 어떤 방식으로건 그 공간에서 숨이 멎었다면 이는 단연코 마이너스 요소가 되었다. 직전 세입자가 자연사했더라도 사람들은 추깃물이 남아 있는 양 눈살을 찌푸리며 발걸음을 돌렸으니 자살이건 피살이건, 경찰이 개입된 사건적 죽음이 일어났던 공간의 경우라면 더 얘기할 것도 없었다. 그리고 나는 그러한 면을 잘도 이용하는 사람이었다.
   나로서는 방 두 개에 볕도 잘 들고 뜨거운 물도 잘 나오는 아주 괜찮은 그 집이 같은 지역의 창문 없는 고시원보다 더 저렴한 까닭, 아마도 무슨 구린 사정이 없기가 어려운 곳인 탓에 묻는 게 타당했다. 나는 알 권리가 있었고 알게 된 이상 값을 깎을 근거를 가졌으므로 그를 십분 활용하려 노력하는 것 역시 당연한 수순이었다. 그 모든 바탕에는 내가 어떠한 죽은 이들도 두려워하지 않는 면, 손톱만큼의 영감도 가지고 있지 않아 어떤 기괴한 소문이 도는 흉가에서라도 단잠을 잘 수 있는 특성이 자리 잡고 있었다.
   임대인과 임차인의 관계에 있어 내가 던지는 질문들은 핵심에 가까운 만큼이나 무례했기 때문에 그 집에 들지 않기로 완전히 마음을 먹은 것이 아닌 이상 최대한 진중하고 태연한, 그러나 이미 다 알고 왔으니 거짓말은 소용이 없다는 표정을 지어 보이는 것이 관건이었다. 그런 태도를 가진 집 보러 온 사람을 보게 되면 집주인은, 무엇보다 집세를 그만큼 낮게 매겼을 때부터 이 정도 값이 아니면 이 집은 나가지도 않을 거야, 하는 생각을 갖게 한 예의 그 사건을 분명하고도 자세히 알고 있는 증인으로서의 그치는 아무래도 이 새끼가 뭘 알고 있구나 하는 마음에 간을 보려도 볼 수 없는 그런 상황에 봉착하게 되고 그런 때에 상대방을 기만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으므로 보통,
   ‘벌써 삼 년도 더 지난 일이에요.’
   ‘뭐가 매일 나오진 않아요.’
   ‘들어오기 싫음 관두쇼. 당신 아니라도 들고 싶은 사람이 백 미터 줄을 섰어.’
   따위의 대답을 초조하게 뱉어내어 날 웃게 했다. 그러한 경우라면 침착함을 유지한 내 쪽이 분명한 우위를 선점할 수 있었다.
   그 다음엔 쉬웠다. 그러한 태도를 확인한 이후라면 고개를 갸우뚱해 보이며 이곳저곳을 훑어보고 새로 바른 것이 분명한 벽지를 괜스레 한 번 더 쓸어 보고 의미 없는 얼룩마다 손가락을 대보거나 창틀의 냄새를 맡는다거나 하는 시체의 흔적을 찾아내려는 몸짓을 보이면 집주인은 안절부절 못하는 모습을 보이기 마련이었고, 그 후 내가 보여줄 것은 다 알고 있지만 그럼에도 한번 접고 이곳에서 살아 주겠다는 태도와 ‘조금만 더 빼주시죠.’라는 한 마디였다. 그만큼 이끌어진 분위기에서 그들에게 거절이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나는 그렇게 매번 이미 저렴한 보증금의 일부와 월세의 얼마간을 더 깎는 데 성공했고 내게 있어 그것은 마땅한 상도덕이었다.
   나의 깐깐한 태도는 결국 몇 푼이라도 더 집세를 깎아 보려는 수작에 불과했으므로 도장을 찍는 데까진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혹자는 짓궂다 하겠으나 나는 이것이 서로에게 좋은 거래라고 생각했다. 잠시 잠깐의 흥정 끝에 마침내 거래가 끝나면 그들은 한시바삐 그곳을 떠났는데 내 귀엔 그들이 내쉬는 안도의 한숨이 분명히 들려왔다. 어쨌거나 그들로선 ‘그 집’이 나갔기 때문이었다. 나는 ‘그런 집’의 역사를 얼마든지 직시할 준비가 되어 있는 임차인이었고 임대인으로선 골칫거리를 하나 해결한 셈이었다.
   그렇게 나는 매순간, 서울 시내에서 이만한 조건의 집에 이만한 값을 내고 사는 놈은 나뿐이리란 만족감을 얻을 수 있었다. 그러니 내 입장에서는 오히려 사연이 있는 집을 찾아나서는 편이 이로웠고 그것은 어느 순간부터 일종의 수집이나 깃발을 꽂는 행위 비슷하게 변모되었다. 그러지 않고서야 마음에 드는 서울의 집세는 내게 너무 비쌌다. 사실 사람은 어디서건 죽을 수 있었고 죽임당할 수 있었다. 이 나라 어디를 밟는다고 사람 묻힌 적 없는 곳이 있으랴 싶은 게 내 생각이었다. 그렇다면 마포대교는 지나갈 수도 없는 것 아닌가? 도시건 농촌이건 바다건 들이건, 누구나 어디에나 죽어 있었다.
   그러던 내가 그 집을 발견하게 된 것은 신림동의 한 반지하방, 깨끗하고 널찍했지만 지난 삼 년간 고시생 둘이 자살하고 마지막 세입자는 정신병원에 들어가고야 말았다는 그곳에서 평화롭게 반년을 머문 끝에 이제 슬슬 새로운 주거공간을 찾아가 볼까 마음먹은 참의 일이었다. 일과로서 들여다본 임대정보 무가지에서 처음 그 집에 대한 정보를 발견했을 때 나는 본능적으로 그게 사연 있는 집임을 알았다. 몇 년간 ‘그런 집’에서 ‘그런 집’으로 이사를 전전한 나는 ‘그런 집’들의 발견에 전문가 수준의 직감을 가지고 있다고 자부했다. 아르바이트를 하지 않는 날이면 부러 ‘그래 보이는 집’을 찾아가 구경 및 분석을 하여 ‘그런 집’임을 확인하는 취미를 가진 나의 감은 틀리려도 틀리기가 어려운 것이었다.
   광고를 처음 보았을 때부터 바로 그 집에 입주할 마음을 먹은 것은 아니었다. 집은 부자 동네와 가난한 동네의 딱 중간쯤에 있는 주택의 이층이었는데, 이층을 통째로 쓰는 값으로 광고지는 터무니없는 가격을 제시하고 있었다. 시세의 절반에 간신히 미치는 금액이었기 때문에 당연히 그런 집으로 의심될 만한 단서였다. 그러나 전국에서 일어나는 살인이나 자살 사건의 건수와 빈도수를 생각하면 그런 집들이 아주 드문 것은 아니었으므로 나는 빨간 동그라미를 치고 지나가 좀 더 무가지를 들여다보아야 마땅했다. 그런데도 나는 그 집에 대한 설명이 적힌 광고란을 한참이나 들여다보고 있었는데 그게 나의 흥미를 좀 더 바짝 끌어당긴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설명의 부족이었다.
   광고들이 다 그렇겠지만 ‘그런 집’들을 비롯한 임대광고가 보이는 특성은 어구로써 드러나는 간절함에 있었다. 역세권, 신축건물, 쾌적한 환경, 관리비 없음 따위의 구체적인 애원들이 그것이었는데, 실상 그런 특성들이 크게 작용되는 것은 ‘그런 집’이 아닌 보통의 집들로, 그런 경우에야 시세라는 것이 있으므로 방점에 거기 찍혔지만 광고의 집이 ‘그런 집’인 이상 방점은 시세를 한참 밑도는 그 값에 찍히기 마련이었다. 그런데도 그들은 적지 않아도 괜찮을 법한 그 간절함을 사족처럼 매달아 그들 자신의 긴박한 상황을 지나치게 낮추어 내비쳤고 그것은 일반적으로 집을 알아보는 사람의 구미를 당기는 동시에 싼 게 비지떡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만들었는데, 그 집은 경우 없이 ‘주택2층/평방미터/(터무니없이 낮은)보증금/(무지하게 싼)월세’ 외엔 아무것도 기재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건 마치 같은 빨간 등 아래 선 여자라도 핑크색 가발을 쓰고 달려와 팔에 매달리는 쪽보단 검고 긴 생머리를 길게 늘어뜨린 채 창을 등지고 앉은 여자의 뒷모습에 도리어 더 시선이 가는 원리에 따른 주목이었다. 나는 한참은 더 그 페이지를 들여다보았다.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 광고였다. 그런 집이 아니라고 보기에는, 그렇다고 자신감이라 보기에도, 여러모로 지나치게 낮게 책정된 가격이 마음에 걸렸다. 나는 무가지를 겨드랑이에 끼고 일어났다. 아무래도 직접 눈으로 확인해야 직성이 풀릴 것 같았다.
   공인중개사와 통화를 하고 찾아간 동네는 한적한 주택가였다. 나는 ‘잠만 자는 방 있음’이나 ‘하숙생 구함’ 따위의 전단이 붙지 않은 말끔한 전봇대를 낯설게 쳐다보았다. 골목길에 잘 발라진 아스팔트는 단 한 번도 토악질을 받아 본 적 없다는 양 검고 매끈하게 빛나고 있었다. 나는 약속한 편의점 앞에 서서 공인중개사와 집주인을 기다렸다. 편의점 주변으로 이층 주택들이 즐비했다. 그러나 그중 어느 집도 절대로 그 값에 내어질 것같이 보이지 않았다. 나는 뺨을 스치는 바람을 느끼며 그중 어느 집에선가 일어났을 아주 잔혹한 살인사건에 대해 상상했다. 복수심에 눈 먼 작자에 의해 일가족이 몰살당했거나, 남편의 내연녀에 의해 선량한 주부와 두 아들이 살해당했거나. 아니면 자살사건일 수도 있었다. 삶을 비관하여 거실의 샹들리에가 떨어질 정도로 묵직한 한 가정이 목을 맸다거나, 아내에게 보험금을 주기 위해 가장이 독을 삼켰는데 그의 줄리엣이 따라 마셨다거나.
   먼저 나온 것은 집주인이었다. 집주인은 안색이 창백하고 몸피가 마른 신경질적으로 생긴 여자였는데 기다란 파마머리를 정수리에 똬리처럼 틀어 올린, 젊었을 땐 남자 여럿 홀려 왔지만 고르고 골라 결혼했는데도 어쩐지 삶이 불행해, 라는 몸짓과 표정을 한 아줌마였다. 집주인은 편의점 앞에 선 나를 발견하곤 팔짱을 낀 채로 다가와 앞에 섰는데 시종일관 가느다란 목을 이쪽에서 저쪽으로 약간씩 비틀며, 얘, 나 피곤한 거 안 보이니, 라고 눈빛으로 말해 나를 약간 주눅 들게 했다. 내가 먼저 고개를 숙여 보이자 집주인은 내게 손가락을 약간 까딱거려 보이는 식으로 마주 인사했는데 상당히 시건방진 태도라 따지고 들 법도 했으나 아줌마가 나보다 스무 살은 연상인 것을 떠나 그런 방식의 인사가 너무도 잘 어울렸기 때문에 저 여자의 빳빳한 목은 평생에 걸쳐 만들어진 게 아닐까 생각하는 것 외에는 반응하기 어려웠다.
   나무마다 매미 소리가 시끄러웠다. 집주인의 피로에 찌든 표정이 내게 아무것도 묻지 마, 라고 말하고 있어서 나는 곧이라도 내뱉으려 준비했던 누가, 언제, 왜, 죽었나요 따위의 질문을 던지지 못하고 힐끔힐끔 동네를 훑어보고만 있었다. 오 분쯤 뒤에 도착한 공인중개사는 검은 투피스의 직조가 살덩이들이 튀어나오는 것을 간신히 막고 있는 듯한 느낌의 퉁퉁한 사십대 가량의 여자였는데 뒤를 도는 순간부터 아무리 애써 보아도 얼굴의 구체적 생김새는 떠오르지 않고 다만 무언가 꽉 터질 듯 조이고 있던 이미지만 남아 상대를 속상하게 하고 마는 까만 올인원 같은 아줌마였다. 나는 앞장서는 두 여자의 뒤를 따랐다. 편의점 오른편의 초록 대문 주택, 그 구석에 난 같은 색의 쪽문을 따자 녹색 우레탄을 바른 계단이 눈에 들어왔다. 계단을 오르며 나는 예의 핵심 질문들을 던질 준비를 하고 있었다. 누가, 언제, 왜?
   고동색 스테인리스 틀에 불투명 유리가 네모지게 박힌 현관문을 따고 들어간 집은 내 예상만큼이나 깨끗했고 말끔했고 훌륭했다. 벽지는 새로 발라져 있었고 장판도 새것이었다. 변기는 깨끗했고 수도는 튼튼했고 창문과 작은 방문도 무리 없이 잘 열렸다. 그리고 그런 면들은 당연하게도 그 집이 ‘그런 집’이리라는 내 짐작에 큰 힘을 실어 주었고 나는 거의 확신했다. 그래서 나는 잽싸게 그 질문을 던졌다. 집주인이나 공인중개사와의 대면에 있어 언제나 중요한 것은 언제 어떻게 우위를 선점하는가 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대체로 그것은 타이밍에 따랐다.
   “그래서, 몇 명이나 죽었죠?”
   이 죽음에 대한 질문의 힘을 나는 맹신하고 있었다. 누군가의 죽음은 장소와 시간을 가지는 수밖에 없었고 자연사나 병사가 아닌 이상에야 본인 혹은 타인을 가해자로 두었으며 아리랑치기나 묻지마 같은 길거리 범죄가 아닌 다음에야 대부분은 은밀하고 막힌 공간, 즉 집에서 일어나는 경우가 태반이었으므로 그것은 역사의 처리자인 집주인들의 입장에서 맞닥뜨릴 수 있는 질문 중 최대 난관인 것이 당연했다. 그런데 의외였던 것은 질문이 던져진 그 순간 집주인과 올인원이 묘한 눈빛을 주고받았기 때문이었다.
   경험상 그 질문에 따르는 적당한 반응은 눈빛 교환 따위가 아니었다. 누군가의 죽음이 일어나고 사체가 처리되었다는 역사적 사실은 묘하기보다는 바늘 끝에 노출된 엄지손가락 같은 행색으로 따끔하게 찔려 별안간 성을 내거나 빨갛게 달아오른 변명을 방울방울 뱉어내는 식으로 처리되는 편이 어울렸다. 그러나 두 여자는 눈빛을 주고받았고 그네들이 주고받는 비밀스러움에 대해 전혀 감을 잡을 수 없던 나는 굳게 닫힌 스테인리스 문 앞에 서서 영문을 모른 채 멍하니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곧, 별수 없다는 듯 올인원이 뱉어낸 한 문장의 말은 나를 더욱 당황스럽게 하기 충분했는데 그녀가,
   “아무도 죽지 않았어요.”
   대답하자 나는 차라리 영문 모를 눈빛 교환을 봤던 때가 차라리 속이 편했음을 깨달았다.
   ‘아무도 죽지 않았다’는 대답은 차라리 당신까지 총 열두 명이요, 하며 내 배에 회칼을 푹 쑤셔 넣는 것보다 더 황당하고 황망하게 나를 무대책의 상태로 만들었다. 나는 납득되지 않는 일에 몹시 약한 합리적인 사람이었다. 내 생활의 모든 것은 상식적으로 흘러갔다. 상식적으로, 아무도 죽지 않았다면 집이 이만큼 쌀 이유가 없는 것이었다. 그러니 나는 도무지 말을 더듬지 않을 수 없었다.
   “그…… 그럼 무언가 나오나요?”
   그건 영적 존재에 대한 질문이었다. 그 집에서 누군가 특별히 죽어 나가지 않았더라도 집터 자체에 문제가 있을 수 있었다. 괜찮은 땅을 사서 멋진 양옥주택을 지어 놨더니 글쎄, 그 자리에 기백 년은 묵은 무시무시한 지박령이 이미 살고 있었지 뭐냐는 이야기는 크게 드문 것도 아니었다. 그러니 기대컨대 하얗고 어슴푸레하거나 총각이거나 처녀거나 무언가 원한을 가진 것이라면 출현 빈도에 따라 집세에 영향을 미치기에 적절했고 나를 설득할 만한 충분한 힘을 가지고 있었다. 사실 나의 영적 감각이 일반 사람에 비해 제로에 수렴할 만큼 무디다는 것 역시 내가 그런 집들을 찾아들게 하는 바탕 중 하나였다. 그러나 올인원이,
   “아뇨, 딱히 뭐가 나오지도 않아요.”
   차분히도 대답하자 나는 일말의 가능성과 수가 산산이 부서짐을 느꼈다. 이제 집주인은 무심한 눈빛으로 파리한 목덜미를 손바닥으로 천천히 쓸어내리고 있었다. 어쩐지 침착한 두 여자에 비해 나는 초조함을 감출 수 없었다. 나는 이제 준비했던 모든 질문을 건너뛰고 차라리 직구를 날리는 편이 내 절절 끓는 속을 위해서도 이로우리라 판단했으나 그보다도 먼저 비명 같은 의문을 질러 초조한 속내를 드러내고야 말았다.
   “아니 그럼 대체 왜 싼 겁니까?”
   집주인과 올인원은 나에게서 시선을 옮겨 다시금 서로 마주 보았다.

 

*

 

   나는 꼭 사흘 뒤 짐을 옮겼다. 이사를 할 때 나는 늘 H의 차를 활용했는데 짐이라고 해봤자 사과 박스 세 개와 소형냉장고, 밥솥, 이부자리 세트가 전부였기 때문에 가능했다. 나는 무언가를 사면 그만큼 무언가를 버렸고 무슨 일이 있어도 세간의 부피가 그 이상 넘어가지 않도록 조치하는 편이었다. 그 이상이 되면 용달을 불러야 할 것 같았고 그만큼도 되지 않으면 녀석의 SUV를 빌리기가 애매한 탓이었다. 알고 지내는 차를 가진 사람 중에 친구라고 부를 만한 놈은 H밖에 없었고 녀석은 내가 이사를 위해 차를 빌려달라고 하면 꼭 사과 박스 개수를 묻는 치사한 놈이었다.
   칠월이 된 지 꼭 일주일이 지나고 있었다. 날이 무척 더워 몇 번이고 박스를 내려놓고 이마를 훔쳐야 했다. 사실 여름이란 이사를 하기에 적당한 계절이 아니었다. 그러나 나와 같은 이사 애호가들의 경우, 모두가 짐을 부리는 봄이나 가을은 반드시 피해야 할 시기나 다름없었다. 한여름 비수기에 ‘그런 집’에 드는 내게 집주인은 편의를 봐주었다. 그녀는 숫제 한 달 치 월세를 받지 않겠노라 말했는데, 반년 치 금액을 미리 내놓는 조건이긴 했지만 어딜 가건 육 개월은 살아 보는 것이 내 이사의 규칙이기도 했으므로 나는 기쁜 마음으로 흔쾌히 도장을 찍었다.
   무엇보다 그 집은 내게 새로운 도전이었다. 그곳은 분명 ‘그런 집’이었으나 내가 이제껏 거쳐 온 ‘그런 집’과는 조금 달랐다. 무언가가 나오지도 누군가가 죽지도 않은, 부자 동네와 가난한 동네의 중간쯤에 위치한 말끔한 주택의 이층 월세가 그 동네 여느 상하방의 값과 비슷하게 떨어진 이유는 다른 게 아니었다.
   “이 집 일층에 누가…… 살거든요.”
   일층 남자의 별명은 ‘전자발찌 씨’라고 했다.
   세 개째 박스를 들고 계단을 오르며, 나는 신문에 광고를 적은 사람은 집주인이 분명하리라 생각했다. 집주인은 마냥 꼿꼿했는데 그에 비해 올인원은 비굴할 정도로 내게 알랑거렸다. 뭘 좀 아시는 분인 것 같아서, 라는 꼬리를 달며 올인원은 잘도 주워섬겼다.
   “근데 별로 마주칠 일도 없어요. 출입문도 따로 있고. 무엇보다 잘 안 돌아다니더라고.”
   그러나 나에게 그런 말은 참 사족에 불과했다. 왜냐하면 나의 입주를 결정하게 만든 것이 일종의 객기와 호기심이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사람들이 죽은 이들에게 느끼는 모든 종류의 공포를 졸업한 뒤였다. 내게 그 집은 ‘그런 집’의 새로운 국면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올인원의 그 말 중 일부는, 거짓말이었다.
   짐을 옮긴 후, 나는 자주 아래층에 귀를 기울였다. 전자발찌 씨, 속칭 ‘전발 씨’는 조용한 이웃이었다. 한 주택의 위아래를 살았지만 내가 그의 동태를 살필 수 있는 부분은 생각만큼 많지 않았다. 집과 바깥을 오갈 때 계단 도중에서 굽어보이는 그의 집 창문과 마당, 그것을 제외하곤 소리뿐이었는데 그것도 수도관에 물이 흐르는 소리나 온수 보일러가 돌아가는 소리 정도였다. 사람이 사는 곳이라면 흔히 포착되는 텔레비전 소리나 라디오 소리, 웃음소리 혹은 어떤 울음소리도 아래층에서는 들려오지 않았다. 나는 출퇴근길이면 보게 되는 창문의 불빛을 통해 전발 씨가 집 안에 있고 없음을 짐작할 뿐이었다.
   이사한 지 닷새째 되자, 나는 오히려 그와의 만남을 갈망하게 되었다. 남들이 말하는 두려움이라는 감정에 있어서 나는 빈곤층이나 다름없었다. 죽은 사람이나 귀신, 벌레와 뱀 같은 것은 내게 아무런 반응도 불러일으키지 못했다. 나는 내로라하는 군부대를 만기제대한 사람이었고 꼭 그게 아니라도 남자라면 두려움이 없어야 한다고 듣고 배웠기 때문에 더 그랬는지도 몰랐다. 사실 그 무엇이 나를 두렵게 할 수 있을까, 하는 게 내 속내였다. 그래서인지 나는 몇 번이고 전발 씨의 모습을 상상했다. 잠자리에 누워서나 변기에 앉아서 그와의 대면을 구체적으로 그려 보았고 몇 번인가 머릿속에서 주먹을 날리기까지 했다. 무슨 짓을 저질렀지? 어떤 사람을 해했지? 더는 네 뜻대로 안 될 것이다! 그러던 그 주 주말, 나는 예상보다는 빨리 전발 씨와 마주치게 되었다.
   나는 맥주를 사기 위해 편의점에 들어선 참이었다. 골목을 나가 십 분쯤 걸어가면 대형 마트가 있었지만 거기까지 나가기엔 인간적으로 너무 더웠다. 편의점은 편의를 위한 거잖아, 이러려고 돈 버는 거 아니겠어, 생각하며 나는 편의점 유리문을 어깨로 밀어 열었다. 그를 발견한 것은 티셔츠 목덜미를 잡아당기며 카운터 앞을 지나쳤을 때였다. 무심코 걸음을 옮기다 무언가를 놓친 것 같아 두세 발짝 뒷걸음질 치자 아니나 다를까, 거기 그가 서 있었다. 라면 코너 앞에, 전자발찌 씨가.
   누가 봐도 그는 ‘전발 씨’였다. 내가 바로 ‘전발 씨’라고, 그의 발목이 외치고 있었다. 나로선 전자발찌를 찬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어떻게 행동하는지 잘 알 수는 없었으나 전발 씨는 그게 자신을 어떤 식으로 대변하는지 지나치게 잘 알고 있거나 아예 모르는 듯 보였다. 날이 몹시 더웠으므로 그의 입성이 당연하다면 당연했지만, 나라면 저럴 수 있었을까 생각한 것은 그가 하얀 반팔 티셔츠에 무릎까지 오는 트레이닝을 입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의 파리한 발목에 네모진 장치가 달린 검정 스트랩이 단단히 감겨 있었다. 그 아래는 밑창이 바깥으로 닳은 삼선 슬리퍼를 신고 있었다. 딱히 내 쪽에서 훔쳐볼 것도 없이, 그는 지나치게 당당히 발목을 노출한 채 컵라면을 고르고 있었다. 편의점 안에 있는 모두가 그의 발목을 쳐다보는 것처럼 보였는데도 그는 뻔뻔할 정도로 신경 쓰지 않는 모습이었다. ‘누가 뭐래도 이것이 내 발목’이란 듯이.
   나는 습격에 대비해야 할는지도 모른다 생각했지만 전발 씨는 고민스러운 표정으로 양손에 참깨라면과 튀김우동을 거머쥐고 번갈아 노려보고 있었다. 나는 새치가 섞인 희끗희끗한 그의 뒤통수에서 눈을 떼지 못한 채로 주류냉장고 쪽으로 향했다. 나는 그가 튀김우동의 판판한 면에 귀를 가져다 대는 것까지 본 다음 냉장고를 향해 몸을 틀었다. 등을 보이게 되자 그가 선 방향에 위치한 근육들이 바짝 긴장되는 것이 느껴졌다. 냉장고 앞에 서서 맥주를 고르면서도 끊임없는 의식이 일었다. 나는 버드와이저 두 캔을 꺼내 한 손에 모아들고 안줏감을 고르기 위해 몸을 돌렸다. 어느새 금방까지 있던 편의점 손님들이 모두 빠져나간 것이 보였다. 편의점 안에는 나와 아르바이트생, 전발 씨뿐이었다. 나는 떨리는 손으로 쥐포튀김을 골라들고 천천히 카운터로 향했다. 어쩐지 심장 박동이 빨라져 있었다. 편의점 남자가 바코드를 찍고, 가격을 말했다. 나는 지갑을 꺼내려 뒷주머니를 뒤졌다. 지갑이 잘 빠지지 않아 무심코 뒤를 돌아보다, 심장이 덜컹 내려앉았다. 전발 씨가 나를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는 게 보였다.
   계산을 마친 아르바이트생이 내민 비닐봉지를 낚아채듯 받아든 나는 급히 유리문으로 향했다. 문을 나서며 다시 한 번 뒤를 돌아보았을 때, 전발 씨는 이미 내게서 눈을 뗀 후였다. 그는 눈을 감고 양손에 거머쥔 컵라면 두 개를 헤드셋처럼 귀에 가져다댄 채 가만히 서 있었다. 잠시간 그를 쳐다보던 나는 정신을 차리고 빠르게 걸음을 옮겼다. 그가 라면을 계산할 때까지 기다리고 설 순 없는 노릇이었다. 우리는 같은 집에 살고 있었다. 편의점 오른편의 초록 대문 집, 그곳이 전발 씨와 나의 집이었다.
   정신없이 계단을 올라 현관문을 따고 안에 들어서자 기다렸다는 듯 식은땀이 쏟아져 내렸다.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양의, 기분 나쁜 냄새가 나는 땀이었다. 쾅 소리를 내며 닫힌 스테인리스 현관문에 등을 대고 나는 그대로 주저앉았다. 축축한 등 뒤로 현관문의 금속재질이 서늘했다. 전발 씨의 눈빛이 소름 끼칠 만큼 선연했다. 날카롭고 차갑고 설명하기 어려울 정도로 많은 함의가 거기 있었다. 신발장 앞에 떨어진 비닐봉지에서 맥주 한 캔이 굴러 나온 게 보였다. 나는 모래가 묻은 손으로 맥주 캔을 집어 들었다. 손이 덜덜 떨리는 게 보였다. 나는 맥주를 따서 정신없이 들이켰다. 그 눈빛은 살기였다. 내가 잘못 보았을 리가 없었다. 나는 빈 캔을 찌그러뜨렸다. 나도 모르게 욕설이 튀어나왔다.
   간신히 슬리퍼를 벗고 집 안으로 들어온 나는 컴퓨터 앞 의자에 앉아 숨을 골랐다. 나는 전발 씨의 표정과 몸짓과 무엇보다 그의 발목에 감긴 장치의 모습을 천천히 복기했다. 전자발찌를 본 것은 처음이었다. 그것은 생각 이상으로 실재적이었다. 나는 전발 씨가 컵라면을 귀에 대고 있던 모습을 떠올렸다. 어떤 행동도 이해되지 않았다. 그건 컵라면을 고르는 사람의 자세라고 할 수 없었다. 컵라면은 포장을 보고 골라야 하는 것이었다. 참깨라면이라 해서 참깨 터는 소리가 나고 튀김우동이라 해서 튀김을 튀기는 소리가 나는 것은 절대 아니었다. 그러나 전발 씨는 소라 껍데기 어느 구석에서 들려오는 고향의 파도 소리를 집요하게 포착하려는 난청 노인처럼 컵라면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나는 차가운 손바닥으로 이마를 거칠게 문질렀다. 현관에서 묻어 온 모래가 까슬까슬했다.
   가까스로 진정하고 두 번째 맥주 캔을 땄을 때, H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H는 내게 차를 빌려주었던 녀석이었다. 나는 헛기침을 하고 전화를 받았다. H가 심드렁하게 물었다.
   “뭐 하냐?”
   “맥주 마신다.”
   “주말이라고 늘어져 있구먼. 이사한 집은 어때?”
   나는 순간 잔뜩 토로하고 싶은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왜냐하면 전자발찌가 내게 준 공포란 스스로도 이해하기 어려울 만큼 거대한 덩어리로서 나를 짓누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처음엔 더듬더듬, 그러나 곧 빠르게 내 불안을 쏟아냈다.
   “아무래도 집을 잘못 든 것 같아…….”
   물론 H는 내 얘길 코웃음 치며 들었다. 나는 약간의 수치심을 느끼면서도 계속 말했다.
   “더 무서운 건 그 새끼가 얼마나 엄청난 죄를 저질렀는지 알 길이 없다는 거야. 그런 건 흉악 범죄자나 차는 거 아니냐? 대체 뭔 짓을 한 걸까? 연쇄살인? 강간?”
   “직접 물어보지 그래?”
   “미쳤냐? 배에 칼자국 낼 일 있냐? 아님 내가 후장이라도 뚫렸음 좋겠냐?”
   내 말에 H는 재미있다는 듯 낄낄거렸지만 나는 자식이 사태의 심각성을 도무지 모른다는 데서 더욱 분통이 터졌다.
   “인마, 아래층에 범죄자가 산다니까. 범죄자가 산다고.”
   H는 끝까지 웃어대며 모르고 들어간 것도 아니지 않느냐, 나중에 전발 씨까지 셋이서 술이나 한잔 하자고 말해 나를 더욱 열 받게 했지만 끝에 그럴싸한 정보를 덧붙여 주어 간신히 나의 화를 풀어 주었다.
   “그러지 말고, 범죄자 열람? 그런 데 들어가 봐. 서비스 되지 않나?”

 

   나로선 생각도 못 한 방안이었기 때문에, 나는 아무래도 나보단 H가 똑똑하다는 생각을 다시금 했다. 중고등학교를 같이 나온 녀석은 언제나 나보다 성적이 좋았다. 그렇게 컴퓨터를 켜기 바로 직전까지, 나는 아, 이래서 내가 세금을 내는구나, 만족했고 기대했다. 그러나 막상 포털 사이트에 들어가 찾아보니 검색이 되긴 했지만 그 결과가 기대한 만큼 만족스럽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무엇보다 치명적인 것은 그 프로그램에 모든 전자발찌 착용 범죄자의 주소가 올라 있지 않다는 것이었다. 전자발찌는 크게 성범죄, 유괴, 살인을 저지른 범죄자들 중 재범 가능성이 있는 자들이 착용하도록 되어 있었는데, 프로그램으로 열람할 수 있는 정보는 성범죄자에 관련된 것뿐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더욱 막막할 도리 외엔 없었는데 왜냐하면 내가 남자기 때문이었다.
   솔직히 나는 전발 씨가 차라리 성범죄자이길 바랐다. 그가 어린 여자 아이나 젊은 여자만 대상으로 하는 흉악한 강간범이길 바랐다. 그게 비겁한 바람이라는 것은 나도 잘 알고 있었다. 그래도 나는 변명을 늦출 수 없었다. 나는 큰 걸 바라는 게 아니었다. 나는 그저 범죄 대상이 되고 싶지 않을 뿐이었다. 왜냐하면 나의 엉덩이를 노리는 범죄자보다는 내 목숨을 노리는 범죄자의 수가 많으리란 것은 내 가랑이에 불알 두 쪽이 달린 것과 마찬가지로 자명한 일이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검색결과가 없다’는 표시가 뜰 때마다 나는 나의 마지막 희망이 산산이 부서짐을 느꼈다. 전발 씨는 성범죄자가 아니었다. 그러므로 전발 씨는 살인자일 것이었다. 맙소사, 나는 죽고 싶지 않았다.
   누군들 죽고 싶겠느냐만 나의 죽음에 대한 공포는 유별났다. 타인의 죽음이 머문 공간에 세 드는 일에 무감하다고 해서 내 죽음에까지 무감할 수는 없었다. 나는 종종 그것이 언제 어떻게 일어날지에 대해 생각했고 언젠가 그 가까이 갔던 것을 회억했다. 나는 그 순간이 가능한 지각될 수 없는 상태에 찾아와 조용히 내 숨을 거둬가길 바랐다. 그 바람은 구체적인 만큼이나 절실했는데 내가 이전에 그 비슷한 것을 의식 상태에서 겪은 바 있기 때문이었다. 그것은 학창 시절 유행하던 기절놀이 도중 일어났다.
   기절놀이라는 것은 목을 조르거나 가능한 이상으로 숨을 참아 스스로를 강제적 가사상태에 들여놓는 것이었다. 놀이라기엔 좀처럼 활동적이지 않은 그것은 보는 이로서는 손에 땀을 쥐게 했고 시도하는 이로서는 용기를 증명케 했는데, 무엇보다 아이들을 충동질하는 부분은 실제로 해본 녀석들이 간증처럼 늘어놓는 까무룩 정신을 잃는 순간의 감각, 사지 끝까지 번져드는 낯선 쾌감에 대한 묘사였다. 다른 아이들보다 먼저 기절놀이를 시도한 애들은 선구자로서의 입지를 다지기 위해선 듯 호기롭게 죽음과의 승부에 대한 무용담을 늘어놓았는데, 그때부터 묘사의 수준은 이미 위험수위를 넘나들고 있었다. 자위행위보다 낫다는 표현을 등에 업은 쾌감에 대한 호기심과, 더불어 걔가 했는데 나는 못 하겠느냐는 객기를 먹이 삼은 기절놀이는 유행처럼 빠르게 번졌다. 쉬는 시간이면 아이들은 누가 더 용감하게 스스로를 위태롭게 만들 수 있는지 너나없이 시험했고 나도 예외는 못 되었다.
   문제는 내가 본 것이 아이들이 본 것과 달랐다는 것이었다. 돌아가신 조부모를 봤다는 녀석이나 유체이탈을 경험했다는 녀석도 있었지만 기절놀이를 한 아이들이 공통적으로 증언하는 것들은 흰빛과 꽃밭, 초원을 가로지르는 강물 따위의 목격이었다. 그러나 당시 내가 본 것은 그중 누구와도 겹치지 않았다. 나는 흰빛도, 꽃밭도, 강물도 보지 못했다. 나는 다만 칠흑 같은 어둠을 보았다. 그것을 보았다고 말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나는 분명히 보고야 말았는데, 그것은 성인이 된 후에도 종종 꿈에 나올 정도로 강력한 기억이었다.
   나는 그때 ― 없는 것과 눈 마주쳤고 시선을 빼앗겼고 시각을 잃었다. 어디선가 들려오는 날카로운 기계음을 인지하는 순간 청각이 사라졌고 그렇게 차례로 오감을 잃었다. 도망가고 싶었으나 그게 누구라도 없는 것에서 도망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것은 검고, 어둡고, 없었다. 해구를 헤어나지 못하는 치어와도 같이 나는 무력했고 어느 시점 이후론 조임과 끌어당김 외의 어떤 감각도 남아 있지 않았다. 나는 호스 안의 똥이 된 것처럼 물컹하고 날렵하게, 어디론가 빨려들어만 갔다. 그건 아주 더러운 기분이었다. 그러다 어느 분뇨장과도 같은 널찍한 공간에 닿게 된 나는 내가 거기서 산산이 부서져 없어질 예정이란 것을 알아챘다. 그러나 내가 흩어져 완전히 없는 것이 되기 바로 직전 ― 뺨에 무언가 차가운 것이 와 닿았고 나는 돌아올 수 있었다.
   나는 교실 마룻바닥에서 눈을 떴다. 깨어났을 때 나는 H가 나를 끌어안고 울고 있는 것을 보았다. 녀석 너머로 형광등이 켜져 있어서 눈이 부셨고 정신이 없었으나 놈의 콧물이 눈앞에서 대롱거리는 것을 보자 반사적으로 뿌리칠 수 있었고 그렇게 나는 현실로 돌아왔다.
   내가 기억하는 마지막 장면은 기절놀이를 시작한 나와 내 옆에서 숫자를 세어 주던 H였다. 안간힘을 써 숨을 참는 내게 H는 도와주겠다며 달려들어 목을 졸랐는데 물론 그에게 악의는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녀석이 낄낄대며 내 목을 감싸 쥔 순간 내가 정신을 잃었고 그대로 한참, 놀이라고 부르기엔 너무 긴 시간 동안 기절해 있었던 모양이었다. 그래서 놀라 인공호흡까지 시도했다고, H는 엉엉 울며 말했다.
   — 씨발 새끼야. 뒈진 줄 알았잖아.
   후에 H는 자신이 내 목에 살짝, 정말로 살짝, 이라고 그는 몇 번이고 강조했는데 손을 좀 댄 것만으로 자신의 죄가 물어져 살인자가 되는 것은 아닌지 겁이 났고 억울했고 화도 났다고 말했다. 나는 괜찮다고 말하긴 했지만 양치질을 여러 번 했고 미친놈아, 그렇다고 인공호흡을 하면 어떻게 해, 하고 짜증을 부렸고, 한참이나 그 갑갑하고 암담한 어둠의 호스 이미지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나는 내가 죽음 근처 아주 가까운 곳까지 갔다고 생각했다. 아이들 중 그 누구보다 가까이, 그러니까 잠깐이지만 강을 건넌 게 아닐까 추측했다. 무엇보다 나는 거기 아무것도 없음을 잊을 수 없었다. 죽게 되면 누구라도 예의 호스를 지나 흩어져 무화되고야 말 거라고, 나는 나름대로 정의하게 되었고 다시는 그곳에 발 담그고 싶지 않다고, 절실하게 생각하게 되었다.
   기절놀이는 옆 학교에서 한 녀석이 실제로 강을 건너버린 사건 후로 철저히 금지되었다. 가정통신문을 통해 기절놀이가 금단의 놀이로 정해진 후로 아이들은 더 이상 그것을 시도하지 않게 되었는데, 그 놀이의 목적이 가까이 가는 것이지 아주 가버리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다들 분명히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어쨌든 그곳 가까이 다녀와 보았다는 우월감과 다시는 그곳에 가고 싶지 않다는 공포심은 이후의 내 삶을 지배했다. 악몽의 씨앗이 남긴 했지만 아주 나빴던 경험은 아니었다. 그 일은 내게 귀신이나 유령의 존재가 불가능하다는 근거를 주었고, 나는 이후로 쭉, 조금 더 편한 마음으로 H에게 신세를 질 수 있게 되었다. 나는 종종, 네가 날 죽일 뻔했었잖아, 혹은 네가 날 죽이려고 했었잖아, 와 같은 방식으로 그에게 술값을 떠넘기곤 했지만 악의는 없었다.
   아무튼 말하고 싶은 것은 내가 죽는 것을 엄청 무서워하게 된 이유였는데 더 짚고 넘어가고 싶은 것은 그런 나의 아래층에 살인범으로 추정되는 전발 씨가 살고 있다는 것이었다. 나는 전발 씨의 대문이 열렸다 닫히는 소리를 확인한 뒤 의자에서 엉덩이를 떼었다. 나는 살금살금 걸어 내려가 이제껏 잠근 적 없던 계단 밑 대문을 단단히 걸어 잠갔다. 계단을 두 개씩 올라와 현관 잠금장치를 단속하고도 불안해 창문들을 몽땅 닫아걸었다. 죽도록 더웠지만 칼에 찔려 죽는 것보단 쪄 죽는 게 나을 것 같아서였다. 어쩌면 과민한 반응이었는지도 몰랐으나 마음을 잠깐 내려놓으려 할 때마다 편의점에서 마주쳤던 전발 씨의 눈빛과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이 나를 다잡게 했다. 살기와 광기, 그런 것이 지척에 있는 이상 발 뻗고 자긴 그른 것 같았다. 한 번 죽인 놈은 아무래도 두 번이고 세 번이고 죽일 수 있을 것 같은 게 내 편견이었고 그 견고한 의심을 깨뜨려 줄 근거가 딱히 찾아질 것 같지 않다는 것이 더 큰 문제였다. 전발 씨의 발목을 자르지 않는 한 전자발찌는 거기 있을 거였다.
   나는 이사 자체를 후회했다. 그러나 반년 치 선금을 지불한 이상 방도가 없었다. 이쯤에서 올인원이 거짓말을 한 부분에 대해선 짚고 넘어가는 게 좋을 것 같은데, 전발 씨는 절대로 잘 안 돌아다니는 편이 아니었다. 나는 택배 상하차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는데 평일 오후 아홉 시부터 새벽 세 시, 잔업이 생겨도 네다섯 시까지가 근무시간이었으므로 그 시간에는 전발 씨가 아닌 어떤 주민도 마주치기 쉽지 않았다. 그러나 아르바이트를 쉬는 주말이라면 얘기가 달랐다. 나는 집에만 숨어 있고 싶었으나 장을 보거나 생활에 따른 다른 일들을 처리하기 위해서라도 밖으로 돌아야 했다. 전발 씨는 주구장창 돌아다니는 편이었기 때문에 나는 먼발치에서라도 그를 보게 되었다. 동네 주민들이 불안에 떠는 것은 전부 그의 발발거림에 있는 것 같았다. 나는 나날이 야위어 갔다.
   조금만 더 정신이 없는 사람이라면 팬티만 입고 길을 돌아다녀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연일 무더위가 갱신되고 있었다. 맥주를 마시지 않으면 잠을 잘 수 없을 정도로 열대야가 지나쳤는데 맥주를 마신다고 곧잘 잠에 들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바로 누워 있으면 등허리에 홍수가 날 것 같아 자꾸만 몸을 뒤틀어야 할 정도로 습했다. 에어컨도 없는 와중에 창문을 모두 닫아걸어야만 쪽잠이라도 잘 수 있는 상황은 나를 더욱 피폐하게 몰아갔다. 방범창이라도 달아 달란 내 말을 집주인은 묵살했다. 다 큰 남자가 겁먹을 것도 많다는 거였다. 나는 집주인의 가느다란 목을 꺾어버리고 싶은 마음을 감추기 어려웠지만 그러지 말고 좀 달아 달라는 내 사정에도 집주인은 대답 없이 전화를 끊어버렸다. 나는 식은땀이 흥건한 머리털을 쥐어뜯었다. 온몸에 붉은 땀띠가 올라 있었다.
   나는 열대야와 불안에 따른 끊임없는 불면으로 꽤나 예민해진 상태였고 수면부족은 일에도 집중하기 어렵게 해 여러모로 나를 좀 먹었다. 실수가 늘었고 그것은 전부 감급으로 이어졌다. 나의 심각한 토로를 웃어넘기던 H는 몇 번의 통화 끝에 내 목소리의 웃음기가 완전히 사라진 것을 듣고 나서야 사태를 파악한 듯 고기를 사주겠다며 불렀다. 일차 삼겹살부터 삼차 꼼장어까지 H에게 술까지 거나하게 얻어 마신 나는 전발 씨가 다 뭐냐며, 내 쪽에서 그를 먼저 찔러버리겠다며 허공에 젓가락을 휘두르다 식당 주인에게 혼나고 귀가하는 길이었다. 큰길가에 택시를 세운 나는 귓가를 맴도는 모기새끼들을 팔로 휘저어 쫓으며 골목 안쪽으로 비틀비틀 걸음을 옮겼다.
   골목은 어두웠으나 편의점 불빛이 나를 안심시켰다. 전발 씨가 뭐기에, 씨발, 전발 씨발. 나는 되도 않는 욕을 지껄이며 편의점 앞을 지났다. 망할 놈의 새끼, 당장이라도 앞에 나타나 보라지. 빌어먹을 살인자 새끼 같으니라고. 마구 후려패 주겠어. 나는 웅얼거리며 발걸음을 옮겼다. 그때 내 마음은 호기롭기 그지없었다. 사실 알코올의 효과란 그런 것뿐이었다. 그러나 나는 곧 그 말을 후회해야 했는데 막 편의점을 지나쳐 초록 대문 앞 가까이 섰을 때, 누군가와 마주쳐 심장을 덜컹 떨어뜨렸기 때문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그는 씨발, 전발 씨였다.
   나는 술이 확 깨는 걸 느꼈다. 검은 인영이 전발 씨라는 걸 알아보는 데는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나는 반사적으로 손목시계를 힐긋 보았다. 새벽 두 시가 훌쩍 넘은 시간이었다. 전발 씨는 담벼락에 이마를 기대고 서 있었다. 그는 내 대문과 그의 대문 사이의 좁다란 벽에 머리를 바짝 붙인 채 서 있었다. 편의점 조명이 그의 구부정한 옆모습을 비추었다. 그의 발목에는 전자발찌가 여전히 둘둘 감겨 있었다. 나는 그대로 멈춰 섰다. 내 집으로 들어서려면 그의 등 뒤를 지나쳐야 했다. 나는 어느 방향으로도 움직일 수 없었다. 조금이라도 움직이면 그가 나를 볼 것 같았다. 나는 살쾡이 앞에 선 병아리보다 못한 지경이었다. 나는 도무지 삐약거릴 수도 없었으니까.
   그때 전발 씨의 머리가 나를 향해 천천히 움직였다. 느릿하게 고개를 돌린 그는 한쪽 뺨을 담벼락에 붙인 채로 나를 쳐다보았다. 엉덩이를 쭉 빼고 담에 기대 선 그의 눈이 괴이쩍게 빛났다. 나의 눈을 응시하며, 그가 천천히 입을 여는 게 보였다. 검은 입이 지옥문처럼 열리고 있었다. 그는 내게 무언가 말하려는 듯 보였다. 아니, 그는 내게 무언가를 분명히 말하려 했다. 그러나 나는 듣고 싶은 생각이 추호도 없었다. 나는 외마디 신음을 흘리며 그대로 뒷걸음질 쳐 편의점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술기운이 완전히 가셔 있었다. 몇 시간 동안 퍼마신 알코올이 순간 기화된 듯 체내에 남아 있지 않았다. 한참 서성이다 편의점을 나왔을 때 전발 씨는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나는 기다시피 계단을 올라 현관문을 걸어 잠갔다. 정신이 필요 이상 살아 있었다. 소름이 끼쳤다.
   그날 밤, 나는 조금도 잠을 이룰 수 없었다. 나는 내가 자초한 지옥에 조금도 너그러울 수 없었다. 전자발찌를 찬 사람이 새벽 두 시에 돌아다니는 이 동네는 어떻게 생각해도 제정신이 아니었다. 내가 알기로 전자발찌를 찬 사람은 야간 시간 외출이 제한되어 있었다. 그런데 또 생각해 보니 그와 관련한 법이 나를 보호해 줄 수 있을 것 같지도 않았다. 그의 집 마당에서 계단 쪽 담을 넘어 내가 사는 집으로 올라온다면, 그것은 주거지 이탈인가, 아닌가? 이 주택은 나의 주거지였다. 그러나 동시에 그의 주거지이기도 했다. 나는 머리를 베개 밑으로 밀어 넣으며 억눌린 괴성을 내질렀다. 그와 동시에 밭은기침이 튀어나왔다. 집 안 구석구석에는 검은 곰팡이가 피어 있었다. 환기가 되지 않는 주택의 이층은 곰팡이가 숙주 삼기에 안성맞춤인 곳이었다. 그것은 내 폐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집을 옮긴 지 사십일 만에 팔 킬로그램이 빠지고 만성 땀띠와 폐병을 얻게 되었다. 무엇보다 견딜 수 없는 것은 지나치게 예민해진 신경이었다. 나는 아래층에서 변기물만 내려도 온몸이 앙당그러지는 공포를 느꼈다. 그런데도 귀를 기울이지 않기 어려웠다. 나는 그의 동태를 살펴야 했다. 바닥에 귀를 대면 아래층 소리가 더 잘 들렸다. 퇴근해 돌아오면 나는 곰팡이와 습기를 피해 거실 한가운데 누워 시간을 보냈다. 그러다 까무룩 잠이 들면 악몽이 이어졌다. 검정 스트랩을 감은 커다란 눈알이 절그럭거리며 나를 쫓는 꿈이었다. 커다란 검은 입안으로 면발과 함께 빨려드는 꿈도 꾸었다. 그것이 참깨라면이었는지 튀김우동인지는 기억나지 않았다.
   그래도 나는 웬만하면 참으려고 했다. 앞으로 오 개월, 앞으로 사 개월 반, 그렇게 생각하며 참으려고 했다. 나는 더한 훈련도 견뎌낸 사람이었고 여름이 끝나고 가을이 오면 조금은 더 나으리라 생각했다. 그러나 발등이 깨지고 아르바이트에서 잘리게 되자 나는 전발 씨의 초록대문을 두들기지 않을 수 없었던 거였다.
   상하차 아르바이트는 집중하지 않으면 큰 사고로 이어질 수 있는 일이었다. 무엇보다 물건을 떨어뜨려 파손하게 되면 그 책임은 내게 있었다. 한두 번이야 감급으로 넘어갔지만 실수가 잦아지자 반장이 나를 따로 불렀다.
   “자네 일당보다 깨먹는 게 더 많은 건 알고 있나?”
   혀를 차며 그만 나와 달라는 반장에게 허리를 숙여 보이며 그래도 오늘까지는 일을 하겠다고 말한 것은 내 책임감의 발현이었다. 그로부터 삼십 분 뒤 파카 글라스가 든 나무 상자를 내 발등 위에 떨어뜨린 것은 내 수면부족의 발현이었다. 나는 왼쪽 발등 뼈가 작신 부러졌고 전치 십주의 상해를 입었다. 응급실까지 함께 간 반장은 내 발등의 안부를 물었지만 회사 차원의 치료비는 줄 수 없다고 딱 잘라 말했다.
   “무슨 얘긴지 모르겠나? 해고 통보를 받은 뒤에 다친 거라서 그렇단 말이야. 자네 혹시 일부러 그런 거 아닌가?”
   졸지에 자해공갈범으로 몰렸지만 따지고 들기에 나는 이미 너무 피로했다. 나는 월급이나 제때 넣어 주십사 말하고 눈을 감았다. 반장은 끝까지 혀를 차며 응급실을 빠져나갔다.
   발등이 정신없이 욱신거렸다. 아픈 건 둘째치고 기분이 엉망이었다. 마치 저주에 걸린 것처럼 삶이 망그러지고 있었다. 호스 안의 똥같이 내 삶이 분뇨처리장으로 향하고 있었다. 이래서야 죽는 것보다 나은 게 뭔가. 나는 몸에 성한 곳이 없었고 부러졌고 아팠고 직장을 잃었고 사기꾼으로 몰렸고 집은 더러웠고 무엇보다 살해의 위험을 안고 있었다. 퇴원해 나올 때쯤, 내 기분은 최악으로 치닫고 있었다. 생각보다 병원비가 비싸다는 면에서 그 속도가 더해졌다. 집주인이 깎아 준 월세는 고스란히 병원비로 들어갔다.
   택시를 타고 초록 대문 앞에 내린 나는, 오른쪽 겨드랑이에 낀 목발에 체중을 싣고 주머니를 뒤져 열쇠를 끄집어내려 했다. 얼른 집에 들어가 바닥에 눕고 싶었다. 그런데 열쇠가 잘 빠져나오지 않았다. 달라붙는 바지를 입고 나온 게 잘못인가 싶었지만 파카 글라스와 더불어 발등이 깨진 것은 예상 밖의 일이었다. 가까스로 검지와 엄지로 빼낸 열쇠가 튕겨 나간 것은 순간이었다. 허공을 가른 열쇠는 내 초록 대문 옆 전발 씨의 초록 대문 밑으로 거짓말처럼 빨려 들어갔다. 기가 막힐 지경이었다. 나는 왼쪽 옆구리에 기대어 놓은 목발을 들어 패대기쳤다. 이게 전부 전발 씨 때문이란 생각이 들었다. 빌어먹을 전발 새끼! 나는 놈을 죽이고 차라리 내가 전자발찌를 차기로 마음먹었다.
   나는 오른손에 든 목발로 전발 씨의 대문을 사정없이 내리쳤다. 내게 초인종을 누를 마음의 여유는 남아 있지 않았다. 철제 대문과 목발이 부딪쳐 내는 듣기 싫은 쇳소리가 조용한 주택가를 뒤흔들었다. 나는 악다구니를 썼다.
   “나와, 이 씨발 새끼야!”
   그리고 마침내 전발 씨가 대문을 열고 내 앞에 섰을 때, 나는 이미 제정신이 아니었다. 전발 씨의 눈이 휘둥그레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온몸이 분노로 덜덜 떨리고 있었다. 차라리 뱃가죽을 찔리고 말지. 내 내장이 어떻게 생겼는지 내 눈으로 확인하고야 말지. 더는 이렇게 살 수 없었다. 나는 놈이 누굴 죽였는지, 왜 나를 그런 눈으로 쳐다보았는지, 내게 무슨 말을 하려 했는지 확인해야 했다. 나는 이를 악물고 으르렁거리며 물었다.
   “당신 대체 누굴 죽인 겁니까? 대체 누굴 어떻게 얼마나 죽였기에 전자발찌를 찼느냐고요!”
   나는 삿대질을 하며 그를 몰아붙였다. 그러나 전발 씨는 말없이 나를 물끄러미 쳐다보고만 있었다. 내게 한 발짝 다가오는 전발 씨의 슬리퍼에 내 열쇠가 채었다. 나는 움찔 놀라 뒷걸음질 치려 했으나 깁스한 발이 좀처럼 떨어지지 않았다. 전발 씨는 몸을 구부려 내 열쇠를 집어 들었다. 그는 허리를 펴고 내게 물었다.
   “내가 무섭나? 심장이 시끄럽게 뛰는군.”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전발 씨가 히죽 웃어 보였다. 그의 벌어진 앞니를 보자 오줌을 지릴 것 같았다. 문을 두들긴 것부터 욕을 지껄인 것까지, 모든 게 후회될 지경이었다. 그래도 무언가 호신술을 쓸 수 있을지도 몰랐다. 나는 전발 씨가 품에 손을 넣는 순간을 노리고 있었다. 거기 든 것은 아마도 나이프, 철퇴, 소형 톱, 망치……. 나는 방어를 위해 목발을 거머쥐었다. 그때 전발 씨가 다시 허리를 굽혔다. 나는 놈이 무엇을 하는지 고스란히 응시했다. 놈이 느닷없이 몸을 위로 날려 덤빌 상황에도 대비했다. 그런데 그가 한 일은 도리어 나를 완전히 혼비백산하게 만들었다. 그는 전자발찌에 손을 가져다 대고 몇 번인가 손가락을 꿈지럭거리더니 그것을, 전자발찌를, 너무도 간단히 풀어 손에 쥐고 몸을 일으켰다. 나는 눈알이 튀어나올 듯 그를 노려보았다. 전발 씨가 입을 열었다.
   “심장용이 있는지는 모르겠군. 이건 발목용이라서 말이야.”
   “그게 무슨……?”
   “소음 말일세. 내 발목이 몇 년 전부터 짖기 시작했거든. 다른 부위는 모두 멀쩡한데 유독 오른 발목이 그렇다네. 이 목걸이가 도움이 되더군. 짖음 방지용 개목걸인데, 발목에도 잘 듣더란 말이야. 소음은 질색이라 말일세.”
   나는 전발 씨가 내 눈앞에 흔드는 플라스틱 장치가 달린 검은 인조가죽 스트랩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 개목걸이라고? 짖음 방지용이라고? 전발 씨는 느릿하게 말을 이었다.
   “요즘은 이런 것 저런 것이 다 시끄럽게 해서 말이야. 며칠 전엔 담벼락이 울더군. 무슨 말인지 알겠나? 내 기막힌 청력 얘기란 말이야. 그러니 문을 그런 식으로 두들기는 건 참아 주게. 고막이 터져버릴 것 같거든. 무엇보다 난 아무도 안 죽였으니 말이야. 누굴 얼마나 어떻게 죽였느냐고? 요즘 젊은이들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도통 모르겠군.”
   고개를 절레절레 저은 전발 씨는 내 손에 열쇠를 쥐어 주곤 뒤를 돌았다. 그의 초록색 대문이 천천히 닫히고 있었다. 막 문이 닫히려는 찰나, 그 문틈으로 전발 씨가 조그맣게 덧붙였다.
   “자네 조용한 편이더군. 자네 같은 이웃이 생겨 기쁘네. 그래도 말일세. 지난번에도 말하려고 했는데 말이야. 이사 왔음 시루떡이라도 돌려야 하는 거 아닌가? 우리 땐 그랬는데 말이야…… 어이쿠, 발목이 또 짖는군 그래. 조심히 들어가게.”
   그 말을 끝으로, 둔중한 소리를 내며 초록 대문이 닫혔다. 전발 씨가 집 안으로 들어가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그 자리에 그대로 서 있었다. 멀리서 매미가 울고 있었다.
   전발 씨가 들어간 나의 아래층은 다시금 모든 소음을 빨아들일 듯 고요해졌다. 그리고 나는 초록 대문 앞에 한참을 서서, 손바닥에 놓인 열쇠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무언가가 나를 빨아 당길지 말지 망설이고 있었다. 나는 죽음 가까이도 호스 안으로도 들어가지 못하고 녹아내린 아스팔트 위를 벌레처럼 맴돌고 있었다. 바닥 깊숙이 꺼져들지도 못한 채 나는, 누구에게랄 것도 없이 울컥 내뱉었다. 그러니까,
   “이건 진짜, 너무 개 같잖아!”

 

 

   《문장웹진 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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