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년감수(十年感秀)_시
찬미들, 안녕
정영
잘못 배달된 피자였다
주문한 자들은 간절히 기다리고 있겠지만
이미 길 잃고 내게 왔으므로
내칠 수 없는 연이었다
내가 세상에 배달되던 날도
주문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으니까
집은 텅 비어 있었으니까
아버지가 처음 나를 내려다보았을 때
모래구름이 내려와 심장의 봉분을 만들어주었다
태어난 이후로 내가 가장 빨개지자
바람의 영혼들이 인사했다
붉은 상자야, 안녕
나는 내 눈동자 속으로 걸어들어가
다락방 고양이들의 출산을 훔쳐보았다
검은 고양이가 점박이 새끼를 낳을 땐
어머니가 눈이 멀 것처럼 울었다
밤과 낮이 엉켜 나를 조금 닦아주었다
바람의 눈동자들이 인사했다
붉은 운명아, 안녕
우우─ 바람에게 불려나오는 내 붉은 찬미들!
촛농 되어 불타는 꿈틀거림들아, 안녕
불안에 떠는 그림자 속의 그림자야, 안녕
먼 훗날 까페에서 극장에서 태양의 해변에서
다시 떠들게 될 나의 이명들아, 안녕
눈감고 뛰어다니는 저주의 말들아, 안녕
나는 붉은 상자야!
나는 생애 여러번
주문한 적 없는 피자를 배불리 먹었고
행복했고 아무 생각 없이 잠들었다
잘못 배달된 나여!
– 『평일의 고해』(창비, 2006)에 수록
추천하며
누구나 한 번쯤은 자신의 존재에 대해 지독한 회의를 품은 적이 있을 것이다. ‘나’는 누구일까, ‘나’는 왜 여기에 없지 않고 있는가, 과연 ‘나’라는 존재의 탄생을 반겨 준 사람이 있었을까……. 이런 질문의 끝자락에서 시인이 건져 올린 대답이 “붉은 운명”이다. 자신을 세상이라는 주소지에 “잘못 배달된 피자”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다. 그녀는 자기가 태어났을 때 ‘밤과 낮이 엉켜’ 자신을 닦아 주었다고 기억한다. 밤과 낮의 뒤엉킴, 박명(薄明)의 불길한 시간이 그녀의 삶을 지배하고 있다. 그래서일까? 그녀는 끝없이 자신의 내면을 파고들어 그 안에 겹겹이 쌓여 있는 “그림자 속의 그림자”와 “저주의 말”들을 끄집어내려 한다. 그렇지만 존재에 대한 그녀의 ‘회의’는 꽤 명랑하다. ‘안녕’이라는 가벼운 느낌, 그건 희극적인 방식으로 연출된 비극의 한 장면을 연상시킨다.
(문학평론가_고봉준, 김나영, 김영희, 양경언)
《문장웹진 2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