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형 뽑기 - 장승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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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승리



인형 뽑기




넌 마른 꽃을 좋아하잖아

슈베르트를 좋아하잖아

날 애완용으로 말려 줄 순 없겠니

당신의 마지막 부탁 뒤에 숨어

천 원짜리 지폐를 기계에 넣는다

당신을 끌어올린 적 없는 나는

나를 끌어올린 적도 없다


수평선이 보이지 않아

수평선을 바라보며 당신이 말했다

난 당신이 보는 것을 보고 싶었다

당신이 내 너머로 흘러가지 못하도록

말라 버린 수평선이 되고 싶었다


뒤늦게 도착한 당신의 발자국이

벌써 나의 밤이 되었다

검은 지문(誌文) 속에서 더듬어 보는

미망의 별자리

손끝은 손등보다 하루 먼저 늙고


부엽토 냄새를 풍기며

눈동자 속 바다는 날로 기름지고

더 이상 방향을 틀지 못하는 파도는

고스란히 살집으로 잡히는데

꼬깃꼬깃한 나를 기계 속으로 밀어 넣는 당신

당신만 왜 당신의 숨소리를 모르는 척하는지




맥시멈




그는 머리에 손을 얹은 채 걸었어 그의 표정에서 길의 표정이 읽혔어 미간을 찌푸리며 담배를 피웠어 그는 담배 끝을 잘근잘근 씹었어 내 살갗 밑으로 흐르는 밤을 봐 이미 내 안엔 주름살 깊은 밤하늘이 보란 듯이 둥지를 틀고 있었던 거야 중얼거렸어 순간 태양이 그를 지웠어 일 초가량 불타오르던 그가 다시


군대 화장실에서 맥심을 넘기고 있었지 서서히 느낌이 왔었지 적나라하게 펼쳐져야 할 여자의 음부 사진 두 쪽이 붙어 있었지, 지, 지…… 딱풀이 되어 버린 익명의 욕망과 한 장이 될 수 없었어 그는 계속 종이 끝에 걸려 넘어졌어 같은 자리에 밤이 오고 같은 자리에 머리가 놓이고 다시 그 위에 손을 얹으며 그는 숨이 무겁다고 했어


그의 뒷모습을 보는데 왜 내 휘어진 등뼈가 만져지는지 속옷을 거꾸로 입기도 전에 쇠창살의 그림자가 가두는 보폭 나는 앞으로 걷는 법이 없었어 떼어 내려다 찢어진 엇발자국이었어 신발 끈을 조여 맬 손이 부족한 그는 눈치 채지 못했어 왼발에 신은 오른쪽 신발을 내가 그녀라는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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