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연애 外 1편 - 이경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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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임

아름다운 연애


세계는 한여름 광장의 낡은 벤치
나는 그곳에 걸쳐진 두꺼운 외투

너무 어울리지 않아
연애밖에 할 것이 없다

내가 너에게 입 맞추는 순간
집의 창문, 종려나무에 흘러내리는 빛,
혹은 서늘하게 반짝이는 침엽수림

나침반도 없이
욕설도 찬사도 없이

우리의 입술들을 반죽해서 빵을 굽고
빵을 나누어주는 것밖에 할 것이 없다

약한 자들과 교활한 자들, 부자와 가난한 사람들
심부름꾼들과 정치가, 성직자와 사기꾼
색정광과 전쟁광과 강박적인 시민들
과학자들과 장사꾼들과 시한부 환자들과 감상주의자와 염세주의자들
어릿광대와 유령들과 철학자들
예술가와 어린 아이들과 죽은 사람들이
한 식탁에 둘러 앉아 빵을 먹는다

빵은 늘 모자라고
식사는 불평 속에서 끝난다

세계는 한여름 광장의 낡은 벤치
사람들은 그곳에서 아이스크림처럼 흘러내린다

우리는 너무 무력해서
연애밖에 할 것이 없다

내가 너에게 입 맞추는 순간
하얀 비둘기, 뫼비우스의 띠,
혹은 서로를 핥아주는 고래들이 살고 있는 바다



시계추를 바라보며


얼음과 불꽃 사이

멈추면
얼음은 녹고 불꽃은 꺼진다

심장이 멈추면
냉정과 열정이
몸속에서 빠져나가듯이

어쩔 수 없이 복잡한 것들과
그냥 단순한 것들 사이

멈추면
아무래도 좋다

생각이 멈추면
그렇게 되어야 하는 것들과
그럴 수밖에 없는 것들이
모자 속에서 사라지듯이

한 쪽의 조롱도
다른 한 쪽의 광장도 사라진다

입술의 율동이 멈추면

바흐의 음악 같은 맥박소리도
사라진다  《문장웹진 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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