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송 - 서성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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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송 五松
서성란
 


1

 

나는 얼굴도 모르는 남자를 만나러 가고 있다. 내가 알고 있는 것은 남자의 나이와 이름뿐이다. 어쩌면 그는 자신의 나이와 이름마저 잊어버렸을지도 모르겠다.

 

오늘 아침 신문에서 나는 김순천 씨가 해직된 지 23년 만에 복직이 되었다는 기사를 읽었다. 명예회복이 된 지 3년 만에 이루어진 복직이었고 그의 나이가 고령이어서 재직 기간은 2년 동안이라는 조건이 붙었다. 신문에 실린 김순천 씨 사진 위로 ‘벤치 맨’으로 불린다는 얼굴도 모르는 남자의 모습이 떠올랐다 사라졌다. 취재수첩 한 귀퉁이에 김순천 씨의 전화번호가 적혀 있었지만 나는 그에게 전화를 걸어 축하 인사를 하는 것을 미루고 집을 나왔다.

지하철을 타고 고속버스터미널로 가면서 나는 휴대전화기를 꺼내 황의 전화번호가 저장된 단축버튼을 눌렀다. 전화기가 꺼져 있다는 메시지가 흘러나왔다. 등단 3년차 소설가인 나와 사진작가 황은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에서 발간하는 회보 객원기자로 일하고 있었다. 갑작스럽게 몽골에 가야 할 일이 생겨서 황은 오송회 사건 취재를 함께 가지 못했다.

강남 고속버스터미널에서 출발한 고속버스는 네 시간 뒤 J시 고속버스터미널에 도착했다. 택시를 타고 나는 운전기사에게 J시 외곽에 있는 조각공원으로 가달라고 말했다. 택시는 공설운동장과 국립대학교와 은행을 지나 대기신호를 받고 정차했다. 길 건너편 쪽으로 KBS 지역 방송국 건물이 보였다. 신문에 기사와 함께 실렸던 사진은 벌써 흐릿해졌지만 석 달 전 취재를 마치고 내가 사진을 찍겠다고 했을 때 내내 어색해하던 김순천 씨의 모습은 또렷이 기억에 남아 있었다.

택시는 도심을 벗어나 외곽도로를 달렸다. 남자를 만나도 알아보지 못할 거였다. 날마다 조각공원에 나와 특별히 하는 일도 없이 남자는 해질녘까지 벤치에 앉아 있다가 돌아간다고 했다. 남자가 노모와 함께 살고 있는 집이 공원 가까운 곳에 있다고 했다. 오송회 취재를 위해 내가 만나야 했던 사람 중에 남자의 이름은 빠져 있었다. 사건 관련자 9명 중에서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쪽과 연락이 닿고 취재를 허락한 사람은 김순천 씨와 윤규석 씨 두 명뿐이었다. K고에서 두 사람을 만나 사진촬영을 마치고 횟집으로 자리를 옮겨 이야기를 나눌 때 내가 다른 교사들의 근황을 물었다. 1988년과 1989년 두 차례 복직할 기회가 생겨 몇 명은 다시 교단에 섰고 몇은 사업을 하고 있다고 했다. 몇 차례 술잔이 돌고 난 뒤 김순천 씨가 남자 이야기를 꺼냈다. 남자는 K고가 있는 G시와 인접한 J시 조각공원에서 일없이 온종일 벤치에 앉아 시간을 보낸다고 했다. 출소 직후 4년 동안 행방불명이 되었던 남자는 집으로 돌아왔지만 정상적인 생활은 할 수 없었다.

몽골에서 돌아온 황이 내게 Y와 H에 대해 이야기해 주었다. Y는 알고 있었지만 H는 금시초문이었다. 김순천 씨와 윤규석 씨가 일부러 말을 하지 않았는지 그것은 알 수 없었다. Y와 H는 황과 고등학교 동창이라고 했다. 뜻밖의 우연이었지만 황은 썩 달가워하는 눈치는 아니었다. 아니, 오히려 두 사람의 존재를 그때의 시간으로부터 달아나고 싶어 하는 것 같았다. 나는 잠자코 황의 이야기를 들었다. 기사는 이미 넘긴 뒤였다. 설령 오송회 관련 교사들이 전부 복직과 명예회복이 된다고 해도 H가 홀가분하게 짐을 벗어 버릴 수 없을 것 같았다. H에게 책임을 물을 수는 없었다. 그 역시 오송회 사건 피해자 중 한 사람일 뿐이었다.

오늘 아침 김순천 씨가 복직되었다는 기사를 읽었을 때 나는 악의 원인을 알았다고 해서 그것이 없어지는 것은 아닌 것처럼, 진실이 밝혀진다고 해도 시간을 되돌릴 수는 없고 파괴되어 버린 인간의 내면은 영영 치유되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다.

 

 

2

 

정수리 위에서 차가운 물줄기가 쏟아졌다. 남자는 눈을 떴다. 흐릿한 형광등 불빛 아래 가죽점퍼 차림에 구두를 신은 사내의 모습이 보였다. 손에 쥐고 있던 호스를 등 뒤로 던지고 사내가 주먹 쥔 손으로 남자의 턱을 후려쳤다. 두 손이 뒤로 꺾여 묶여 있던 남자는 의자와 함께 시멘트 바닥으로 나동그라졌다. 신음을 삼킬 뿐 남자는 저항하지 않았다. 남자는 끌려온 지 며칠이 지났는지 이유가 무엇인지 낮인지 밤인지도 알지 못했다. 남자의 흠뻑 젖은 몸은 감각이 없었다. 사내가 구둣발로 남자의 정강이를 걷어차면서 소리쳤다.

“빨갱이 새끼!”

남자는 바지에 오줌을 쌌다. 따뜻한 오줌줄기가 허벅지를 타고 종아리를 적셨다. 몸을 떨면서 남자는 아내를 생각했다. 예고 없이 들이닥친 사내들에게 붙들려 가는 와중에 미처 누군가에게 말할 틈이 없었다. 남자가 사내들에게 끌려갈 때 학생들은 놀라고 겁먹은 얼굴로 몸을 꼿꼿이 세우고 의자에 앉아 있었다. 용기를 내서 미술실 밖으로 따라나왔던 학생 하나가 험악한 사내들의 기세에 질려 뒷걸음질쳤다.

5교시 수업은 학생과 교사 모두 집중이 잘 되지 않는 시간이었다. 학생들은 미술실 탁자 위에 놓여 있던 파인애플과 사과와 바나나를 스케치했다. 책상 위에 스케치북을 펼쳐 놓고 팔을 괴고 앉아 꾸벅꾸벅 졸고 있는 학생도 있었다. 남자는 미술실 창문을 활짝 열어 놓았다. 나른한 오후 시간, 아이들의 숨소리와 이따금 바닥에 의자 끌리는 소리만 들리던 조용한 미술실 안으로 느닷없이 사내 둘이 들이닥쳤다. 검은 양복을 입은 사내 하나가 창가에 서 있던 남자에게로 뚜벅뚜벅 걸어왔다.

“한병호 선생 맞소?”

남자는 굳은 얼굴로 그렇다고 대답했다.

“잠깐 같이 갑시다.”

영문도 모른 채 남자는 사내들에게 끌려 나갔고 현관 밖에 대기하고 있던 검은색 승용차에 태워졌다. 두 명의 사내와 운전석에 앉은 사내는 약속이나 한 듯 입을 다물었다. K고를 빠져나온 승용차는 남자의 아내가 근무하고 있는 중학교 앞을 지나쳤다. 남자는 6개월 전 중학교 음악교사와 결혼했다. 아내는 순하고 다소곳한 여자였다. 선을 보고 결혼을 하기까지 3개월이 채 걸리지 않았다. 결혼을 한 뒤 남자는 집 근처에 10평 남짓한 작업실을 구해 그림을 그렸다. 아내가 저녁마다 간식거리를 가지고 그의 작업실로 왔다. 그림도구들로 어수선한 그곳에서 남자는 아내를 안았다. 아내의 몸에서 들꽃 냄새가 났다. 남자는 아내의 얼굴을 그렸다. 아내는 아름다웠고 그는 행복했다. 그림을 그리다가 그는 문득 붓질을 멈추곤 했다. 혹 이것이 꿈은 아닐까 그는 불안했다.

가죽점퍼를 입은 사내가 묶여 있는 남자의 팔을 풀었다.

“피차 길게 끌 것 없잖아. 여기에 지장만 찍으면 오늘이라도 집으로 돌아갈 수 있으니까 괜히 서로 힘빼지 말자고.”

사내가 내민 종이를 받아들고 남자는 눈이 어두운 노인처럼 굼뜨게 글자를 읽어 내려갔다. 사회주의자, 오송회, 4·19 위령제, 용공단체, 이적행위 따위 단어들이 암호처럼 박혀 있는 문장을 읽어 가던 남자는 끌려온 뒤로 먹지도 자지도 못해 글자조차 제대로 읽지 못하는 것인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눈앞에 서 있는 사내와 철제 탁자와 욕조와 세면대가 놓여 있는 사방이 막혀 있는 공간과 의자에 앉아서 오줌을 싼 것 모두 헛것이거나 지독히 나쁜 꿈만 같았다.

“거기 적혀 있는 내용을 인정한다고 순순히 자백만 한다면 선생은 부인이 기다리고 있는 집으로 갈 수 있을 거요. 오송회 회원들 모두 자신들의 이적행위를 자백했소. 사실 죄의 경중을 따지자면 선생이 제일 가볍소. 선생은 미술교사고 대학 시절 집시법을 위반했던 사실도 없소. 반국가단체를 구성하고 학생들을 선동, 자유민주주의 국가를 전복할 기회를 노린 인물들은 선생과 같은 선량한 교사와는 다르오. 그들은 북파된 고정간첩으로 밝혀졌소.”

사내가 말한 오송회 회원 9명 중 8명은 K고에 근무하는 교사들이었고 나머지 1명은 KBS 지역 방송국 방송과장 김순천 씨였다. 남자는 명단에 적힌 교사들과 이따금 점심시간이며 퇴근 후에 어울렸다. 종종 화제가 정치 이야기로 번지며 유독 목청을 높이거나 교사라는 신분에 깊은 회의를 느낀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었지만 그것은 시대와 불화하는 교육자의 울분 같은 것이었다.

“나는…… 오송회 회원이 아닙니다. 더구나, K고에 그런 단체가 있다는 말은…… 들어본 적도, 없습니다. 나는 내가 왜 이곳에 왔는지 알 수 없……”

사내의 구둣발이 남자의 정강이로 날아왔다.

“이새끼, 아직도 정신을 못 차렸군!”

사내가 남자의 목덜미를 잡아챘다. 남자의 얼굴은 물이 가득 담긴 욕조 속으로 처박혔다. 사내는 머리카락을 움켜잡고 남자의 얼굴과 머리를 물속에 집어넣었다가 빼내기를 반복했다.

“한 가지 충고를 하자면, 선생이 시인을 하든 그렇지 않든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는 것이오. 사용할 도구들이 아직 많이 남아 있다는 것을 알아 두기 바라겠소.”

사내가 가죽점퍼 안에서 담뱃갑과 라이터를 꺼냈다.

“한 대 피우고 잘 생각해 보시오.”

담배 두 개비에 불을 붙여 사내가 한 개비를 남자의 젖은 입술 사이에 물려주었다.

머리를 타고 흘러내리는 물 때문에 담배는 이내 축축히 젖었다. 남자는 물이 흥건히 고인 시멘트 바닥에 주저앉았다. 남자가 바닥에 떨어뜨린 젖은 담배를 사내가 구둣발로 밟아 짓이겼다.

 

 

3

 

K고 뒷산에 오송(五松)은 없었다.

나는 김순천 씨와 윤규석 씨와 함께 기숙사를 지나 풀이 우거진 완만한 산자락을 따라 걸어 올라갔다. 초여름 날씨였지만 바람이 불지 않아 잠깐 사이 온몸이 땀으로 펑 젖었다.

두 사람은 산중턱쯤에서 멈춰 섰다. 발 빠른 사람이 아니라도 10여 분이면 올라갈 수 있을 만큼 산 정상은 높지 않았다.  

“여기가 바로 1982년에 교사들이 4?19 위령제를 지냈었던 장솝니다.”

쥐색 양복을 입은 윤규석 씨가 소나무와 잡풀이 우거진 쪽을 눈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시간이 많이 흘렀는데 이곳은 달라지질 않았습니다. 당시 우리 교사들은 점심시간에 산책 겸해서 올라왔습니다. 4?19 위령제라고는 하지만 뭐 거창하게 식을 치렀던 것은 아니었고요.”

교사 식당에서 밥을 먹고 있을 때 누군가 오늘이 4?19라고 말을 꺼냈고 그럼 간단하게 위령제를 지내는 게 어떻겠느냐는 의견이 나왔다. 먼저 밥을 먹은 교사 두 명이 학교 근처에 있는 가게로 가서 술과 포를 사왔다. 평소 속내를 털어놓고 어울리던 교사들 몇은 식당을 나와 뒷산으로 올라갔다. 그들은 산중턱쯤 아름드리 소나무가 한 그루 서 있는 곳에 신문지를 깔고 술과 포를 내려놓았다. 종이컵에 술을 따라 나무 주변에 뿌리고 노래를 불렀다.

윤규석 씨와 한 걸음 떨어진 곳에 서 있던 김순천 씨가 점퍼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 불을 붙이더니 한숨처럼 길게 연기를 내뿜었다.

김순천 씨가 K고에 재직한 기간은 일 년이 채 되지 않았다.

서울에서 대학을 다니고 있던, K고 국어 교사였던 채석준의 제자 Y가 버스에 시집을 두고 내리지 않았다면 그는 오늘 이곳에 있지 않았을 것이다. Y는 고등학교 동창 H와 술을 마시고 밤늦은 시간에 버스를 탔다. Y가 버스 안에 두고 내린 시집은 판금된 오장환의 시집 『병든 서울』 복사본이었다. 시집은 버스 안내양이 주워 집으로 가지고 갔다. 졸음이 쏟아져 하품을 하면서도 시집을 펼쳐 몇 편의 시를 읽던 안내양은 ‘인공’이라는 단어가 눈에 띄자 깜짝 놀랐다. 밤새 한숨도 자지 못했던 안내양은 이튿날 아침 일찍 경찰서로 시집을 가지고 가서 신고했다. 경찰은 크게 문제 삼을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지만 학교와 이름까지 버젓이 적힌 물건이라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시집을 들고 J대 철학과 교수에게 가서 자문을 구했고 ‘이 정도 문건을 소지한 자라면 고정간첩일 가능성이 높다’라는 놀라운 답변을 들었다.

경찰은 대학생 Y를 연행해서 취조를 했고 시집의 출처가 K고 채석준 교사라는 사실을 알아냈다. 채석준은 도경 대공분실로 끌려가서 수백 장의 진술서를 썼다. 우연히 손에 들어온 판금된 복사본 시집 한 권이 불온세력을 일망타진할 수 있는 결정적인 증거물이자 기회라고 생각했던 경찰은 채석준과 평소 친하게 지냈던 교사들을 차례로 연행해서 취조했다. 연행된 사람들 중에는 5년 전 교단을 떠나 지역방송국에 근무하고 있던 박순천 씨도 포함되어 있었다.

경찰은 박순천 씨를 도경 대공분실로 끌고 가서 며칠 동안 잠을 재우지 않고 수백 장의 자술서를 쓰고 외우게 했다. 수사관들은 그의 집에서 압수해 온 계간지 『창작과 비평』을 증거물로 제시하면서 5년 전 채석준과 어떤 대화를 주고받았는지 말하라고 다그쳤다.

운동 시간에 교도소 운동장에서 채석준을 만났을 때 그가 물었다.

“오송회가 정말 있었는가?”

“금시초문입니다.”

오송회 사건으로 투옥된 9명 중 오송회를 알고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내가 윤규석 씨에게 왜 하필 오송회라는 이름이 붙여진 것인지 그 까닭을 물었다.

“보다시피 소나무 다섯 그루는 없습니다. 학교 뒷산에 모여 위령제를 지냈다고 하는데 조사해 보니 날마다 보충수업에 시달리는 평범한 교사들 아니겠습니까? 그럴듯한 이름을 지으려다 보니 소나무 한 그루가 다섯 그루로 둔갑한 것이죠.”

내가 소나무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겠다고 말하자 두 사람은 약속이나 한 듯 딱딱하게 굳은 표정으로 나무 아래 섰다.

 

 

4

 

이듬해 겨울에 남자는 형기를 채우고 출감(出監)했다.

교도소 밖으로 나왔을 때 갑자기 눈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색이 바래고 구깃구깃한 양복 위로 눈은 거침없이 떨어져 내렸다. 한동안 멍한 눈빛으로 서 있던 남자가 길을 따라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날이 어두워질 무렵 남자는 어머니의 식료품 가게 앞에 서 있었다. 투명한 유리문 안으로 간이의자에 앉아 있는 어머니의 모습이 보였다. 남자는 선뜻 유리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문 밖에 서 있었다.

어머니 가게에서 10여 분 떨어진 곳에 남자의 집이 있었다. 남자는 아침마다 아내를 승용차에 태우고 G시에 있는 학교로 출근했었다. J시에서 G시까지는 승용차로 40여 분쯤 걸렸지만 남자는 아내가 있어서 출퇴근 시간이 지루하지 않았다.

“추운데 왜 거기서 그러고 서 있는 게냐?”

문을 열고 밖으로 나온 어머니가 남자의 손을 잡았다.

“언능 들어가자.”

남자는 어머니를 따라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어머니가 접시에 두부 한 모를 담아 젓가락과 함께 남자에게 내밀었다.

“암말 말고 그냥 먹어라.”

남자는 묵묵히 두부 한 쪽을 떼어 입 속에 밀어넣었다. 물컹한 두부 한 점에 남자는 목이 메었다.

유리문 밖으로 사르륵사르륵 눈이 내려쌓이고 사람들은 천천히, 바삐 어디론가 가고 있었다.

“따뜻하게 밥 해 줄 테니까 집으로 가자.”

어머니는 가게 안을 정리하고 외투를 입었다.

“새아기는……”

어렵게 말을 꺼내 놓고 어머니는 한동안 말이 없었다.

“새아기는 그래, 몸이 많이 안 좋다고 하더구나. 그래서 학교도 쉬고 친정에서 조리를 하고 있다고 들었다.”

남자는 말없이 눈길을 걸었다.

낡고 허름한 아파트는 일 년 전과 달라진 것이 없었다.

“잠깐 작업실에 들렀다 들어갈게요.”

“오늘은 쉬고 천천히 가지 그러냐?”

어머니가 말렸지만 남자는 이미 뒤돌아 뛰어가고 있었다.

남자는 걸음을 멈추고 바지 주머니에서 열쇠 꾸러미를 꺼냈다. 자동차 열쇠와 아파트 열쇠와 작업실 열쇠가 매달린 열쇠뭉치를 손에 쥐고 남자는 작업실로 통하는 어두운 지하 계단을 내려갔다.

 

 

5

 

남자가 감옥에 있었던 일 년 동안 아내는 한 번도 찾아오지 않았다. 면회를 올 때마다 어머니는 그의 안색을 살피고 건강을 걱정할 뿐 아내 이야기는 꺼내지 않았다.

남자는 찾아오지 않는 아내를 기다렸다. 그럴 수만 있다면 당장 아내를 만나러 가서 영문도 모른 채 끌려가서 고문을 받고 셀 수 없이 많은 자술서를 쓰고 재판을 받고 억울한 옥살이를 하고 있는, 납득할 수 없는 억울한 상황을 이야기하고 싶었다. 남자는 이제 다시 학생들을 가르칠 수 없게 되었다는 사실보다, 죽을 때까지 ‘빨갱이 교사’라는 꼬리표가 따라다닐 현실보다 아내를 잃을지도 모른다는 불안 때문에 고통스러웠다.

남자는 아내를 만나러 가는 걸 자꾸만 미루고 있었다.

어머니가 아침 일찍 밥을 차려 놓고 가게로 나가면 남자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한낮까지 그대로 누워 있었다. 초저녁 무렵 운동복 위에 점퍼를 걸치고 작업실로 가면 남자는 새벽이 되어서야 집으로 돌아왔다. 환기를 시키지 않아 큼큼한 냄새가 나는 그곳에서 남자는 줄담배를 피우고, 아내의 얼굴이 그려진 그림을 보거나 먼지가 쌓인 바닥에 웅크리고 앉아 있었다.

정물처럼 앉아 있던 남자가 갑자기 벌떡 일어나더니 쫓기는 사람처럼 허둥지둥 작업실을 뛰어나갔다. 담배가게 앞에 있는 공중전화기를 보자 남자는 가슴이 두근거리고 식은땀이 흘렀다. 남자는 떨리는 손으로 주황색 공중전화 수화기를 집어들고 투입구에 동전을 넣고 전화번호를 돌렸다.

“여보세요.”

수화기 저편에서 장모의 목소리가 들렸다. 머뭇거리던 남자가 짓눌린 목소리로 아내를 바꿔달라고 말했다.

“잠깐 기다리게.”

장모가 전화 수화기를 넘겨준 사람은 아내가 아니라 시청 공무원인 처남이었다.

“출소했다는 소식은 들었네. 그동안 힘들었겠지만 우리도 괴로웠다는 걸 알아 줬으면 좋겠어. 지연이는 여기 없네. 그 앤 충격이 컸어. 우리는 행여 지연이가 잘못될까 봐 전전긍긍했었네. 자네한테도 사정이 있었겠지. 변명도 하고 싶겠지만 이미 되돌릴 수 없는 일이라는 걸 자네가 받아들였으면 좋겠네. 조만간 서류를 보낼 테니 그리 알고 있게.”

처남은 민원인을 대하듯 감정이 묻어나지 않는 목소리로 용건을 말하고 전화를 끊었다.

남자는 떨리는 손으로 공중전화기 동전 투입구에 다시 동전을 떨어뜨리고 전화번호를 돌렸다. 장모나 처남에게 구차하게 변명을 하거나 궁지에 몰렸었던 상황에 대해서 늘어놓을 생각은 없었다. 그는 아내의 목소리를 듣고 싶었다. 낯선 사내들에게 끌려갔던 날 점심시간에 남자는 아내와 통화했었다. 아내의 목소리는 한껏 들떠 있었다. 무슨 일이 있느냐고 묻는 남자에게 아내는 퇴근하고 만나서 이야기해 주겠다고 뜸을 들였다. 전화를 끊을 때 아내는 오늘은 분위기 좋은 곳으로 가서 함께 저녁을 먹자고 말했었다.

남자는 이웃들이 자신을 가리켜 간첩과 내통한 교사라고 수군거리는 것을, 초저녁 무렵 집을 나가 새벽에 들어오는 그를 경계하는 눈초리로 쳐다본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어머니가 식료품 가게와 아파트를 부동산에 내놓고 이사를 가자고 하는 것도 주위의 시선 때문이었다. 남자는 적어도 아내에게만은 자신의 결백을 말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사실을 알게 되면 아내가 돌아올 거라고 남자는 믿었다.

남자는 정성들여 면도를 하고 깨끗이 세탁해 놓은 양복을 입고 날마다 아내를 만나러 갔다. 아침 일찍 집을 나가는 남자를 보고 이웃들이 뒤에서 쑥덕거렸다. 나무랄 데 없이 깔끔한 입성과 달리 남자의 안색은 쫓기는 사람처럼 창백했다. 결혼을 하고 남자는 주말마다 아내와 함께 처가에 갔었다. 교육 공무원으로 퇴직한 장인과 장모는 5남매 중 외딸인 아내를 끔찍이 사랑하는 만큼 사위에 대한 기대도 컸다. 장인과 함께 바둑을 두고 술을 마실 때마다 남자는 너무 일찍 돌아가셔서 얼굴조차 기억할 수 없는 아버지를 생각했었다.

남자는 열리지 않는 대문 앞에서 해가 저물 때까지 서 있었다. 아내가 중학교 2학년 때부터 살았다는 그 집은 그림 속 풍경처럼 고요했다. 남자는 아내가 정말 그곳에 없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느 날 갑자기 남자가 존재하지도 않는 조직의 조직원이 되고 상상할 수 없는 고문을 받고 감옥에 갇혔던 것처럼 아내 역시 감쪽같이 사라져 버렸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골목 안으로 젊은 여자와 노파와 교복을 입은 남학생이 지나갔다. 미동도 하지 않고 한참을 서 있던 남자가 그림 속 풍경이 아니라는 것을 확인해 보겠다는 듯 주먹 쥔 손으로 단단하고 차가운 대문을 다급하게 두드리기 시작했다.

 

 

6

 

복직한 해 여름에 채석준은 김순천을 만나러 J시로 갔다. 출소를 하고 몇 년이 지났지만 그는 오송회 사건으로 실형을 살고 나온 동료 교사들과는 만나지 않았다. 형을 사는 동안에는 아내가 포장마차를 하면서 아이들을 키웠다. 출소 후 생계를 위해 입시학원에서 학생들을 가르쳤는데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실형을 살고 해직된 사실이 알려지면서 그는 다시 일자리를 잃었다.

교육부 특별 채용으로 복직의 길이 열렸을 때 그는 오송회 관련 교사 중 자신을 포함해서 5명만 복직을 신청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두 사람은 이미 다른 일을 하고 있기 때문에 다시 교단으로 돌아갈 생각이 전혀 없다고 했다. 나머지 두 사람은 그의 고등학교 선배이고 지역 방송국 과장이었던 김순천과 미술교사였던 한병호였다. 한병호와는 연락이 닿지 않았다. 복직을 신청하지 않는 까닭이 다른 일을 하고 있기 때문인지 알 수 없었다.

김순천은 담담한 얼굴로 채석준을 맞았다. 뒤늦게나마 복직이 된 것은 오송회 사건이 조작된 것임을 시인하는 것 아니겠느냐고 말하는 김순천에게 채석준은 고개만 조아릴 뿐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감옥에 있을 때 그는 하루에 수차례 머리를 시멘트벽에 짓찧었다. 복사한 시집 한 권 때문에 아무 관련도 없는 동료 교사들이 불시에 연행되어 고문을 당하고 감옥에 갇혔다. 평소 그와 자주 어울렸다는 이유로 잡혀 오거나 학교 뒷산에서 4?19 위령제를 지낸 것이 빌미가 되어 끌려온 사람도 있었다. 그는 김순천의 이름을 말하지 않았어야 했다고 뒤늦은 후회를 했다. 누구의 영향을 받았느냐고 누굴 존경하느냐고 묻는 형사에게 전기고문을 당하고 넋이 나갔던 그는 문규현 신부와 김순천 선배라고 말했다. 이미 K고를 떠난 김순천이 오송회 사건의 배후 인물로 엮일 거라고 상상도 하지 못했다.

신문보급소 문을 닫고 김순천은 채석준과 함께 근처에 있는 포장마차로 갔다.

“나한테 미안해할 것 없네. 이게 내 운명이라면 달게 받을 수밖에. 자네가 어떤 고문을 당했을지 말 안해도 잘 알고 있어. 고문 앞에 장사 없다는 말을 당해 보지 않은 사람은 모를 거야. 그놈들이 며칠 동안이나 잠을 못 자게 하고 누구의 사주를 받았느냐고 닦달을 하는데 정말 미치고 까무러치겠더군. 차라리 내가 정말 오송회 배후였다면 속시원하게 털어놓기라도 하지. 그놈들이 지어낸 시나리오를 외우다 보니까 나중에는 정말 내가 그렇게 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더라니까.”

김순천은 빚을 얻어 신문보급소를 열었고 양복 대신 허름한 점퍼를 입고 신문을 돌리고 수금을 하러 다녔다. 그는 교사가 아니었기 때문에 다시 교단에 설 기회조차 없었다. 방송국에서 함께 일했던 동료와 선후배들은 행여 불똥이 튈까 두려워 그가 찾아가도 만나 주지 않았다.

“난 이 일이 좋네. 고되고 수입은 적어도 마음은 편해.”

술을 여러 병 비웠지만 채석준은 취기를 느끼지 못했다.

“한병호 선생 말인데…… 거 미술 가르치던. 아마 자네와 나이가 비슷할 거야. 그 사람을 공원에서 봤어. 내가 K고에서 선생 노릇 했던 기간이 워낙 짧았고 한병호 선생하고 가깝게 지내지 않아서 그랬는지 모르지만 나를 못 알아보더라고. 처음에는 우연히 봤지만 나중에 내가 일부러 찾아갔었거든. 어쨌든 같이 고생하고 나왔는데 마음이 가잖아. 복직을 안했는지 대낮인데 공원 벤치에 혼자 앉아 있더라고. 시간 내서 자네가 한번 찾아가 봐.”

채석준이 기억하는 한병호는 섬세하고 내성적인 사람이었다. 그는 동료 교사들과 잘 어울리지 않았고 수업이 비는 시간에는 교무실 책상에서 책을 읽거나 미술실에서 조용히 혼자 있었다. 중학교 음악 교사와 결혼한 후 그의 얼굴은 눈에 띄게 밝아졌다. 동료 교사 대여섯 명과 함께 집들이 초대를 받아 갔을 때 그가 집 근처에 작업실을 구해 그림을 그리고 있다는 걸 알았다. 채석준은 검찰에 송치된 뒤에야 한병호가 오송회 관련자 9명 속에 포함된 사실을 알게 되었다. 4?19날 한병호가 학교 뒷산에 함께 올라갔었는지 채석준은 기억이 나지 않았다.

이튿날 오후에 채석준은 김순천이 한병호를 보았다는 공원으로 갔다.

 

 

7

 

남자는 열리지 않는 대문 앞에서 날마다 아내를 기다렸다.

골목길을 오가는 사람들이 경계하는 눈빛으로 바라보았지만 시간이 지나자 남자의 모습은 고정된 사물처럼 익숙해졌다. 해가 진 뒤에 남자는 조용히 자리를 떠났지만 이따금 발작을 일으키듯 주먹 쥔 손으로 대문을 두드리거나 고함을 치거나 기어이 울음을 터뜨렸다. 마침내 대문이 열리고 장바구니를 든 중년 여자가 밖으로 나왔다. 남자가 열린 대문 틈으로 발을 내딛기 전에 여자는 재빨리 문을 닫아 버렸다. 한 시간쯤 지나서 여자가 식료품이 담긴 장바구니를 들고 안으로 들어갔다. 종종 이층 창문이 열렸고 장모가 대문 밖에 서 있는 남자를 내려다보았다. 집 앞에 처남이 탄 자동차가 멈춰 섰다. 지연이는 여기 없네. 처남은 건조한 목소리로 짧게 말하고 대문 안으로 사라졌다. 오후가 되면 중년 여자가 장바구니를 들고 밖으로 나왔고 종종 이층 창문이 열렸다 닫혔고 처남은 늘 같은 시간에 귀가했다. 말끔했던 남자의 옷은 추레하게 변했고 머리칼은 흐트러지고 두 눈은 붉게 충혈이 되었다. 남자가 구두를 신은 발로 대문을 차면서 악을 썼다.

어두운 골목 안으로 경찰차 한 대가 들어왔다. 경찰관 두 명이 경찰차에서 내리더니 필사적으로 대문을 발로 두드리고 있는 남자의 등덜미를 낚아채서 차 안으로 밀어 넣었다.

“내 처갓집입니다. 난 아내를 만나러 간 거예요.”

경찰관은 남자의 말을 귀담아 들으려고 하지 않았다.

“정신병자가 아닌 다음에야 누가 자기 처갓집 대문을 부서져라 발로 차겠어? 주민번호 불러 봐. 빨리!”

50대로 보이는 파출소 소장이 남자의 정강이를 구둣발로 차면서 소리쳤다.

“이새끼, 냄새가 수상해. 지금 당장 경찰서로 넘겨!”

남자는 사내들의 손아귀에 붙들려 다시 경찰차에 태워졌다.

“정말 내 아내가 살고 있는 집이라니까요. 왜 사람 말을 믿지 않는 겁니까? 내 말을 믿지 못하겠으면 그 집에 가서 직접 물어보면 될 거 아닙니까? 아내가 없어도 처남과 장인 장모님은 집에 계실 테니까요.”

짐짝처럼 경찰차에 실리면서 남자가 필사적으로 소리쳤다.

“야, 이새끼야. 널 잡아가라고 신고한 사람이 바로 그 집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야. 우리가 지금 너하고 장난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냐?”

사내들이 어이없다는 듯이 웃었고 남자는 입을 다물었다.

 

 

8

 

남자는 창문을 열었다. 쇠창살 너머로 야트막한 산이 보였다. 철조망으로 둘러싸인 담장 주위로 온통 날카로운 가시가 돋친 장미가 피어 있었다. 꽃은 눈이 시리도록 붉었다. 늘 하늘색 줄무늬 환자복만 입고 있었기 때문에 남자는 시간이 가는 것도 계절이 바뀌는 것도 창 밖 풍경으로만 알 수 있었다. 남자는 꽃이 불편했다. 붉거나 노랗거나 보랏빛이거나 흰것 모두 남자의 몸이 이곳에 붙들려 있다는 사실을,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감시와 통제를 받고 살고 있는 현실을 조롱하는 것 같았다.

흰 가운을 입은 사내들에게 잡혀 이곳에 갇혔을 때 남자는 공포와 두려움 때문에 미친 듯이 악을 썼다. 또다시 고문을 당하고 자술서를 쓰고 재판을 받고 감옥에 갇혀 찾아오지 않는 아내를 기다려야 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자 걷잡을 수 없는 분노가 치밀었다. 거칠게 저항하는 남자를 철제 침대에 눕히고 사내들은 빈틈없는 손놀림으로 두 팔과 다리를 묶고 팔뚝에 주삿바늘을 꽂았다. 사지가 묶인 채 한동안 필사적으로 몸부림을 치던 남자의 몸이 차차 조용해졌다. 의식이 돌아오자 남자는 다시 악을 쓰고 몸부림을 쳤고 그때마다 사내들이 나타나서 팔뚝에 주삿바늘을 꽂고 돌아갔다. 사내들은 남자를 발로 차거나 몽둥이로 때리지 않았고 머리와 얼굴을 욕조에 넣었다가 빼내지도 않았다. 남자가 알지 못하는 사실을 말하라고 윽박지르지 않았고 진술서를 쓰게 하지 않았다. 남자가 얌전해지자 사내들은 묶었던 벨트를 풀고 더 이상 팔뚝에 주삿바늘을 찌르지 않았다.

아무도 남자에게 말을 걸지 않았다. 남자가 난동을 부리지만 않으면 사내들은 친절할 정도로 무관심했다. 누구도 남자가 왜 그곳에 갇혔는지 그 까닭을 말해 주지 않았다. 재판은 열리지 않았고 아무도 남자를 찾아오지 않았다. 남자는 시간이 얼마나 많이 흘렀는지 알지 못했다. 쇠창살 너머로 희고 노랗고 붉은 꽃이 피고 지는 걸 여러 차례 보았다. 만개한 붉은 꽃을 볼 때마다 남자는 언젠가 자신의 몸도 꽃처럼 시들어 사라질 거라고 생각했다. 꽃은 이듬해 다시 피겠지만 자신은 살아서 담장 밖으로 걸어나갈 수 없을 거라고 남자는 생각했다. 남자는 아내를 기다리지 않았다. 꽃을 보고 있어도 더 이상 아내 생각이 나지 않았다.

벌컥 문이 열리더니 흰 가운을 입은 사내가 안으로 들어왔다. 철제 침대 위에 옷과 구두가 담긴 비닐봉투를 던지면서 사내가 남자에게 갈아입으라고 명령하듯 말했다. 창가에 서 있던 남자는 움직이지 않았다. 사내가 채근을 하자 마지못해 남자는 양복과 구두를 꺼냈다. 장미꽃이 화사한 계절에 입기에 적당한 옷은 아니라고 남자는 생각했다. 구깃구깃하고 누렇게 색이 바랜 와이셔츠의 단추를 채우고 양복 바지를 입었다. 남의 바지를 입은 듯 바지가 흘러내려서 남자는 허리띠를 단단히 조여야 했다. 체크무늬 넥타이를 목에 둘렀다가 풀고 양복 윗도리를 걸쳤다. 마지막으로 볼품없이 찌그러진 구두를 신고 남자는 거울 대신 벽을 바라보고 섰다. 방을 나가기 전 남자는 넥타이를 매고 양복 단추를 채웠다.

“치료는 끝났소.”

사내의 말을 듣고 남자는 어리둥절했다.

“따라오시오.”

사내가 앞장섰고 남자는 천천히 뒤따라 나갔다.

마당을 가로질러 철문이 있는 쪽으로 걸어가면서 남자는 자꾸만 뒤를 돌아보았다.

굳게 잠겨 있던 철문이 열렸다. 사내는 떠밀 듯 남자를 밖으로 내보냈다. 햇살 때문에 눈이 부셔서 남자는 휘청거렸다.

“병호야!”

거칠고 투박한 손이 남자의 야윈 손을 잡고 흔들었다.

“널 찾는 데 4년이 걸렸구나.”

남자는 자신의 손을 움켜잡고 서럽게 흐느끼는 어머니의 얼굴을 눈을 찌르는 햇빛 때문에 금방 알아보지 못했다.

 

 

9

 

오래 전부터 방치된 듯 공원은 입구부터 잡풀이 무성했다. 택시기사가 두말하지 않고 찾아갈 만큼 사람들에게 잘 알려진 곳인지는 모르겠지만 공원 어디에도 나무나 돌, 금속 따위로 만든 조형미술품은 눈에 띄지 않았다. 나는 아무렇게나 돋아난 풀을 밟고 공원 안쪽으로 걸어 들어갔다. 나무가 우거진 자리마다 낡고 초라한 벤치가 놓여 있었다. 추레한 차림의 늙거나 젊은 사내들이 술병을 끼고 벤치에 앉아 있거나 신문지로 얼굴을 덮고 누워 있었다.

나는 물이 말라 있는 연못 앞에 섰다. 제법 깊이 파여 있는 연못 안에 말라붙은 수초와 돌멩이와 음료수 깡통 따위 쓰레기가 버려져 있었다. 연못 주변에 쭈그리고 앉아 담배를 피우고 있던 사내가 담배꽁초를 연못 안으로 던졌다. 공원에서 담배를 피우거나 술을 마시거나 잠이 든 사내들 모두 50대 초반으로 보이기도 했고 그보다 어리거나 많아 보이기도 했다. 사내들에게 한병호라는 사람을 알고 있느냐고 물으면 모두 자신이 한병호라고 대답할 것 같았다.

황과 함께 왔다고 해도 행색이 비슷하고 표정마저 똑같은 남자들 속에서 한병호 씨를 찾아내기란 쉽지 않았을 것이다. 사진작가라고 불리는 것을 극도로 싫어하는 황은 인쇄된 명함 대신 메모지에 ‘찍사’라고 손으로 써 가지고 다녔다. 선생님들은 Y의 실수를 탓하지 않았다. Y를 비롯해서 몇몇 친구들이 시국사건으로 징역을 살 때 H는 제 안의 감옥에 갇혀 지옥 같은 20대를 살았다. H는 Y가 복사본 시집을 버스에 두고 내렸던 날 저녁 함께 술을 마셨다는 이유로 경찰서에 끌려갔다. H는 발길질을 당하고 진술서를 쓰고 자신이 쓴 진술서를 외우고 재판 때 검찰 쪽 증인으로 끌려 나갔다. 그리고 선생님들을 고발했다. 그는 전락했다. 자신을 고문했던 수사관들을 증오했고 스스로를 벌레라고 생각했다. 세월이 흘러 선생님들은 복직과 명예회복이 되었지만 H는 스스로를 희생자가 아니라 공범이라 생각했기 때문에 자신에 대한 혐오를 떨쳐낼 수 없었다.

등 뒤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다. 나는 고개를 돌렸다. 낡고 구겨진 양복 차림에 울음을 터트릴 것 같은 표정을 짓고 잎이 말라죽은 나무 앞에 서 있는 남자가 보였다. 어디선가 카메라 셔터가 터지고 필름 돌아가는 소리가 들렸다. 휴대전화기 폴더를 열고 황의 전화번호가 내장된 단축버튼을 누르려다 말고 나는 가방에서 카메라를 꺼냈다. 수많은 남자들의 일그러진 얼굴과 바짝 말라 있는 연못과 공원 구석구석을 나는 렌즈에 담기 시작했다.  《문장웹진 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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