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설제 외 1편 - 송승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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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시]

 

 

제설제

 

 

송승언

 

 

   
   없는 자유를 촛불 옆에서 생각하니 달콤하다 했던 사람처럼
   없는 것들을 생각하니 든든하다
   침침한 형광등 아래 누워
   생각 없음에 대해 생각하면 속이 꽉 차는 것 같다

 

   
   이렇게 또 없는 것들에 기댄다
   영영 우리 눈에 비치지 않을 것들이
   그럼에도 존재하는 거라고
   영혼 없이 생각을 비워버린다

 

   
   없는 것들도 형상을 가진다면 좋을 텐데
   눈처럼 떨어지고 흔들리다가
   녹아내리고 뭉쳐지다가
   더는 없는 모든 것들을 기념하는 제단으로 가기
   그러면 사라지는 것들도 이해할 수 있을 텐데

 

   
   눈이 엄청 쏟아진 다음 날 길에 나가면 좋을 텐데
   제설제를 저마다 나눠 들고, 가끔 미끄러지며
   얼어붙은 길을 걸어가면 좋을 텐데

 

 

 

 

 

 

 

 

 

 

 

 

 

 

 

 

 

랜턴

 

 

   
    겨울의 마지막 주에는 대삼각형을 보며 생각하는 패잔병들의 이야기를 생각한다. 자신들이 패배한 이유를 모른 채 지난 패배에 대해 생각하며 어딘지도 모르는 본대로 귀환하기 위해 끝없이 걸어가는 보병들을.
    겨울의 마지막 주에는 우주의 대면병(對面兵) 이야기를 생각한다. 행성에서 행성으로 오가는 심리전 가운데 수십 억 광년 떨어진 은하 제국들은 이미 멸망해 있다.
    겨울의 마지막 주에는 퉁구스카에 대해 생각한다. 천구백팔 년에 시베리아에 떨어진 돌덩어리를 맞고 파괴된 숲의 찌꺼기를.
    우리가 떠나기 위해 몸부림치던 이 계절이 우리가 예배당에서 그토록 기다려온 계절이고 겨울의 마지막 주에는 밤 껍질 까듯이 그것 잊어가며 겨울의 첫째 주를 기다린다.
    겨울 숲이 주는 끝없는 두려움이 산객을 미망으로 몰고가는 때에, 자작나무의 하얀 껍질을 밝히며 걸어오는 그림자를 발견한다. 그의 손에 들린 건 횃불이 아닌 랜턴이지만.

 

 

 

 

 

 

 

 

 

 

 

 

송승언 시인
작가소개 / 송승언

– 1986년 출생. 2011년 『현대문학』으로 등단. 시집 『철과 오크』(2015).

 

   《문장웹진 2017년 0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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