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피스인문학 – 고고학자 로빈과 ‘실재’ - 권혁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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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원피스인문학]

 

 

“내겐 너희들이 모르는 어둠이 있어”

– 고고학자 로빈과 ‘실재’

 

 

권혁웅

 

 

 

    1.
    밀짚모자 일당 가운데 가장 신비에 싸인 인물은 로빈일 것이다. 루피에게 최초의 패배를 안긴 적이 칠무해 중 하나인 크로커다일인데(루피는 모래인간 크로커다일에게 물기를 뺏겨, 말 그대로 미라가 되어버린다), 로빈은 크로커다일의 파트너였다. 그녀는 크로커다일이 설립한 비밀조직 바로크 워크스의 조직원으로 『원피스』에 최초로 모습을 드러낸다. 이 조직은 회사의 형태를 띠고 있으나 실제로는 이상 국가를 세우기 위해 범죄를 저지르는 비밀스러운 결사체였다. 조직원들은 서로를 알지 못하고 코드네임으로 불리며, 그중에 최고위 간부들은 ‘미스터 + 넘버’(남자 사원들의 경우), ‘미스 + 요일’(여자 사원들의 경우)로 불린다. 크로커다일이 사장인 미스터 제로, 로빈이 부사장인 미스 올 선데이였다. 알려지지 않은(무질서해 보이는) 조직이 가장 위계가 잡혀 있다는(질서 지워져 있다는) 이 역설은 로빈의 주변에서 흔히 발견된다.
    나미가 처음에 같은 편이었다가 밀짚모자 일당을 배신한 데 반해, 로빈은 적이었다가 (크로커다일에게 버려진 후에) 밀짚모자 일당에 합류한다. 나미가 배신한 이유는 돈에 있었다. 악당 아론에게서 자신의 마을을 구하기 위해서는 돈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로빈이 악당 크로커다일에게 합류한 이유는 다른 데 있었다.

 

    왜 거짓말을 했지?”(네펠타리 코브라)
    “알고 있었어? 못됐네.”(로빈)
    “그 돌에는 이 나라의 역사 따윈 새겨져 있지 않아. 너희들이 원하는 ‘병기’에 관한 모든 것이 기록되어 있다. 그게 어디에 있는지도. 크로커다일에게 그걸 가르쳐주었다면 그 시점에서 이 나라는 그자의 것이 됐을 거다. 틀린가?”(코브라)
    “관심 없어. 나라나 사람이 살든 죽든. 난 그런 건 아무래도 상관없어. 처음부터 크로커다일에게 병기를 건네줄 생각도 없었고.”(로빈)
    “이해할 수 없군. 그렇다면 왜 여기엘 온 거지?”(코브라)
    “내가 찾고 있던 건, ‘리오 포네그리프’(진짜 역사의 본문). 전 세계에 흩어져 있는 포네그리프 중에 유일하게 진짜 역사를 기록하고 있는 돌.”(로빈)(24권 217화)

 

    알라바스타 국왕 네펠타리 코브라와 로빈이 나눈 대화다. 로빈은 처음부터 크로커다일의 목표에 동의하지도 않았고, 그의 요구(포네그리프에 적힌 고대병기의 정보를 알려주는 것)를 들어줄 생각도 없었다. 크로커다일이 알라바스타 왕국을 전복시키려고 했던 이유는 이 나라에 있던 포네그리프를 손에 넣기 위해서, 더 정확히는 거기에 새겨진 고대병기 플루토에 관한 정보를 얻기 위해서였다. 포네그리프란 해독 불가능한 고대문자가 새겨진 정육면체 형태의 석비(石碑)로 현존하는 어떤 무기로도 파괴할 수 없다고 알려져 있다. 그러니 포네그리프는 이중으로 신비한 물체다. 알 수 없는 문자가 적혀 있으니 그것은 불가지(不可知)의 대상이라는 얘기이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훼손되지 않는다는 것은 그것이 (알 수 없는 채로) 반드시 후대에 전해져야만 하는 대상이라는 뜻이다. 포네그리프는 전 세계에 30여 개가 흩어져 있다고 하며, 다음과 같이 세 종류로 나뉜다.

 

    ① 일반 포네그리프:다른 포네그리프의 위치가 적혀 있는 돌. 17개가 있다.
    ② 리오 포네그리프: 실전(失傳)된 여러 내용이 기록된 돌. 9개가 있다. 이 가운데에는 세계를 멸망시킬 수 있는 고대병기에 대한 정보도 있으며 9개를 이어서 읽으면 공백의 100년 역사에 대해서도 알 수 있다.
    ③ 로드 포네그리프: 4개가 있다. 각 지점을 지도 위에 표시하고 선을 이으면, 그 교차점에 라프텔이 있다. 라프텔은 전설의 비보 원피스가 위치한 곳이다.

 

    따라서 현재까지 드러난 바에 따르면 포네그리프에는 세 가지 정보가 있는 셈이다. 극강의 무력을 획득할 수 있는 전설의 고대병기에 대한 정보, 공백의 100년 역사에 대한 정보, 대비보 원피스(가 있는 곳)에 대한 정보. 크로커다일이 노린 것은 고대병기 가운데 하나인 플루톤에 대한 정보이며, 로빈이 목표로 하는 것은 공백의 100년 역사에 대한 기록이다. ‘원피스’는 해적왕을 노리는 모든 이들이 얻기를 열망하는 대비보(大祕寶)이다.
    크로커다일은 고대병기를 획득하여 세계를 무력으로 제패하기를 꿈꾸고, 루피를 비롯한 해적들은 원피스를 획득하여 해적왕이 되기를 꿈꾼다. 이들은 이른바 현실 권력을 꿈꾼다. 그런데 로빈은 처음부터 실전(失傳)된 역사의 기록을 찾아다닌다. 그녀는 포네그리프의 기록을 읽을 수 있는 세계에서 유일한(지금까지 알려진 바로는 그렇다) 인물이다. 공백의 100년이란 무엇인가? 루피가 모험을 시작한 시점에서 900년~800년 전의 시기로, 이 시기의 기록은 모든 역사서에서 삭제되었다. 이 시기에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한 왕국이 존재했었다고 하는데, 800년 전 20개국 왕들에 의해 세계정부가 출범했다는 것, 그리고 세계정부가 이 시기의 기록과 연구를 금지했다는 것으로 미루어, 세계정부를 성립시킨 그 20개국에 의해 멸망했을 것이라 짐작될 뿐이다. 그러니까 로빈은 실전된 지식(공백의 100년)을 찾아다니는 인물이며, 실전된 기록(포네그리프)을 읽을 수 있는 유일한 인물이다. 더욱이 그 기록은 알려지지 않은 대상들(원피스, 고대병기, 공백의 100년에 존속했던 고대왕국)에 대한 기록이다. 모든 기록은 삭제되거나 금지되어 있다. 그것들은 ① 기록되어 있으나 읽을 수 없다(포네그리프의 고대문자). ② 기록되어 있으나 읽는 것이 금지되어 있다(세계정부의 명령). ③ 읽는 것이 불가능하거나 금지되어 있으나 기록 자체는 전수되어야 한다(포네그리프의 존재 이유). ④ 게다가 어렵게 해독한 그 기록은 다른 기록에 대한 기록일 뿐 그 기록 자체로 정보의 가치를 지니고 있지 않거나 정보의 일부만을 이룰 뿐이다(고대병기의 위치나 정체에 대한 정보, 공백의 100년에 대한 기록의 퍼즐, 원피스가 있는 곳에 대한 정보의 퍼즐). 실전된 이 기록들은 완강하게 해독을 거부하고, 그러면서도 끈질기게 살아남아서 망실(忘失)되지 않으려 한다. 그것들은 해독되지 않은 채로 전달된다. 이것은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

 

    2.
    기록(record)은 ‘다시, 반복’을 뜻하는 ‘re-’와 ‘심장, 핵심’을 뜻하는 ‘core’가 결합된 말이다. 따라서 기록이란 본래 있었던 핵심적인 어떤 것을 다시 표기하는 일, 어떤 것의 실상을 장부에 재기입하는 일이다. ‘다시[再]’와 ‘목표물(core)’을 결합하여 최초의 대상을 다시 드러내는 것, 여기에 서구 사유의 모든 것이 걸려 있다.

 

    “세 가지의 침상(寢牀)이 있게 되었네. 그 하나는 그 본질에 있어서 침상인 것으로서, 이는, 내가 생각하기로는 신이 만드는 것이라고 우리가 말할 그런 것일세. 다른 하나는 목수가 만드는 것일세. 또 다른 하나는 화가가 만드는 것이네.” (중략)
    “자네는 우리가 신을 그것의 ‘본질 창조자(phytourgos)’라든가 또는 그와 같은 이름으로 부르기를 바라는가?”
    “옳은 일입니다. 신은 이것(침상)이나 다른 모든 걸 진정 그 본질에 있어서 만들었으니까요.”
    “목수는 어떤가? 그는 침상의 장인(dēmiourgos)이 아닌가?”
    “그렇습니다.”
    “화가도 그런 것의 장인이며 제작자인가?”
    “전혀 아닙니다. (중략) 제가 생각하기엔 이게 그를 부르기에 제일 적절할 것 같습니다. 그를 장인들이 만드는 것의 모방자라고 말씀입니다.”
    “좋으이. 그 본질(physis)로부터 세 번째인 산물의 제작자를 자네는 모방자라 부르는가?”
    “물론입니다.”1)

  1)  플라톤, 『국가』, 박종현 옮김, 서광사, 615-617쪽.

 

    플라톤은 스스로 완전한 절대적인 형식, 영원히 변하지 않는 절대적인 본질을 이데아라 불렀다. 침대를 예로 들어 보자. 침대를 만드는 장인은 머릿속에서 침대에 대한 설계도를 갖고 있어야 한다. 이 설계도는 실제로 현존하지 않는 것이면서도 침대가 제작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있어야 하는 것이어서, 말하자면 모든 침대의 절대적 본질이다. 이것이 이데아 ― 정확히는 이데아의 가시적 형상인 에이도스 ― 이다. 장인은 그 설계도에 따라서 침대를 제작한다(이것을 에이콘이라 부른다). 화가는 장인이 제작한 침대를 화폭에 옮긴다. 그는 설계도(=이데아 혹은 에이도스)가 아니라 장인이 만든 침대(=에이콘)를 모방했다. 이를 판타스마 혹은 시뮬라크르라 부른다. 그러니까 원본(original, 신이 만든 본질로서의 침대, 이데아 혹은 에이도스)이 있고, 그것의 복사본(copy, 장인이 만든 침대, 에이콘)이 있으며, 그 복사본의 복사본(copy의 copy, 화가가 그린 침대, 시뮬라크르)이 있는 셈이다. 핵심(core)이 있고, 그것을 다시(再, re) 표시하는 일이 있으며, 그 기록(record)을 다시 기록하는 일(re-record)이 있다. 기록은 이 재기입(re) 절차에 따라 기록(record)과 기록의 대상(core)을 분리해 낸다.2)
    원피스 세계에서 이런 복사의 복사(시뮬라크르)가 가진 효용과 약점을 대표하는 인물은 와노쿠니의 사무라이 중 하나인 칸주로다. 그는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악마의 열매 능력자로 커다란 붓을 들고 다니며 필요한 그림을 그린다. 용을 그리면 그림에서 용이 나오고, 참새를 그리면 참새가 나오는 식이다. 문제는 그림 실력이 신통치 않아서, 본인이 의도했던 것만큼 힘 있고 잘 나는 짐승이 나오지 않는다는 데 있다. 드레스로자에서는 구덩이에 빠진 사람들을 위해 탈출 사다리를 그려 주었는데, 그 역시 삐뚤빼뚤해서 사람들이 탈출하는 데 애를 먹었다. 플라톤에 따르면 화가나 작가는 모방자, 곧 시뮬라크르(카피의 카피)를 만드는 사람이다. 칸주로는 그림을 그려서 실제의 동물이나 사물을 소환했으나, 그 모방품은 실제의 동물과 사물보다 형편없이 질이 떨어지는 것이었다.
    어쨌든 이런 분리 작용을 이르는 말이 ‘상징’이다. 상징이란 파악되지 않은 ‘어떤 것(core)’을 특별한 메커니즘(re-)을 통해서 파악하는 것을 뜻한다. 천지창조의 순간으로 가보자. 하느님이 “빛이 있으라”고 말씀하자 빛이 나타났다.(창세기 1장 3절) 이런 방식으로 신은 우주의 모든 것을 ‘말씀’으로 창조한다. 여기에서는 말의 의미 작용과 대상이 분리되어 있지 않다. 곧 대상=말이다. 신의 지각은 사물을 존재하게 만들기 때문이다(이런 신의 지각을 ‘산출적 지각’이라고 부른다). 신은 초월적인 존재이므로 자신 안에 이미 지시하는 것(“빛이 있으라”)과 지시된 것(“그러자 빛이 나타났다”)이 통일되어 있다.3) 둘 가운데 어느 한쪽에 제한되어 있지 않다는 말이다. 그런데 둘이 일치한다고는 해도 명명하기와 존재하기가 인과의 관계를 맺는다는 것은 둘이 시간적으로 분리되어 있다는 가정을 수락하는 것 아닌가? 인과란 선행하는 원인에 후행하는 결과가 따라붙는 것이다. ‘빛이 있으라’는 명명 이후에야 ‘빛’이라는 사물이 출현할 수 있다면, 둘은 이미 분리되어 나타난다. 유대교의 전승을 모은 「하가다」에서는 이 모순을 다음과 같이 예리하게 묘파해 놓았다.

  2)  통상적으로 ‘표상’ 혹은 ‘재현’이라고 번역하는 ‘representation(영어)’이나 ‘Vorstellung(독일어)’도 기록과 동일한 논리를 갖고 있다. representation은 re-(다시)+present(현재화)시킨다는 말의 명사형이다. 곧 재현이란 현존하는 것(present, 여기에 있음)을 ‘다시(re-) 드러내거나 보여준다’는 뜻이다. 독일어 Vorstellung 역시 vor(앞에) + stellen(세운다)는 의미의 명사형이므로 같은 뜻이다. 재현 역시 현시(present)된 것을 거듭함으로써 기록과 대상을 분리해 낸다.
  3)  이후의 ‘말’에 대한 이야기는 성경판 이데아론이라 할 만하다. 인간을 지은 이후에 하느님은 “온갖 새와 짐승을 만드시고 아담이 어떻게 이름을 짓나 보려고 그것들을 이끌어 그에게로 가셨다. 아담이 각 생물들을 부르는 것이 바로 그 생물들의 이름이 되었다.”(「창세기」 2장 19절) 낙원에서 추방된 후에 인간은 하느님에게 이르자 하여 바벨탑을 짓기 시작했다. 하느님이 인간들이 쓰는 언어를 다르게 하여 그들을 온 세상에 흩어버렸다.(「창세기」 11장 7절) 하느님이 세상을 지을 때 쓴 언어가 사물의 본질 그 자체로서의 언어(원본으로서의 이데아)라면, 아담의 언어는 사물의 형상을 올바로 지시하는 언어(이데아를 복사한 것, copy)이고, 바벨탑 이후의 언어는 사물의 형상을 그릇되게 지시하는 타락한 언어(퇴락한 모방물, copy의 copy)이다.

 

    하느님이 세상을 말로써 창조하려 할 때, 이 알파벳의 22글자가 하느님의 무시무시하고 장엄한 왕관에서 내려왔다.
    글자들이 하느님을 에워싸고는 하나씩 나서서 말하고는 “나를 통해서 세상을 창조하십시오.”라고 간청했다.
    모든 글자가 각각 주장을 하고 나자, 베트가 거룩한 분(그분은 축복받으시라) 앞으로 나와서 “오, 온 세상의 주님! 주님은 영원히 ‘축복’ 받으십시오, 라고 한 것처럼 세상의 모든 거주자가 매일 저를 통해서 당신을 찬미하도록 하기 위해서, 이 세상은 저를 통해서 창조해 주십시오.”라고 말했다.
    거룩한 분(그분은 축복받으시라)이 즉시 베트의 요청을 들어주었다.4)

  4)  윌리스 반스토운 편, 『숨겨진 성서 1』, 이동진 옮김, 문학수첩, 1994, 65-66쪽.

 

    이 이야기는 히브리어로 된 『창세기』가 알파벳 베트(ב)로 시작하게 된 연원을 말놀이(‘축복’이란 히브리어 단어 역시 베트로 시작한다)로 풀고 있다. ‘말씀’으로 천지를 창조하기 위해서는 먼저 ‘말씀’이, 곧 언어를 구성하는 알파벳이 먼저 존재해야 한다. 그래서 창조의 과업을 수행하기 위해서 히브리어 알파벳 22글자가 내려와 자신을 통해 창조해 달라고 간청한다. 그런데 언어는 사물처럼 통짜로 존재하는 게 아니다. 언어는 다음과 같은 순서로 출현한다. 첫째, 세상의 모든 소리를 구별 가능한 (알파벳이거나 한글자모처럼) 유한한 요소들로 구획한다. 이 과정에서 구별되지 않거나 의미화 할 필요가 없는 소리들은 버려진다. 둘째, 이 소리들이 다시 유한하게 결합하여 의미를 가진 최소한의 단위(형태소)를 만든다. 이 과정에서 의미를 가진 부분과 그렇지 못한 부분이 나누어진다. 셋째, 형태소들이 개별 언어가 미리 수립해 둔 특별한 결합의 규칙에 따라 결합함으로써 문장이 된다. 이 과정에서 온전한 문장이 되지 못한 조각들(의성어, 의태어, 감탄사 등)이 온전한 문장 사이에 흩뿌려진다. 넷째, 문장들이 연쇄를 이루어 특별한 형식을 갖춘 구성체(담론)를 이룬다. 이 과정에서 (상황, 화자와 청자의 관계 등의) 비언어적 요소들이 개입하여 반어와 역설, 알레고리라고 불리는 현상을 만든다.
    언어야말로 대표적인 상징 가운데 하나다. 언어는 말과 사물의 ‘분리’에서 출현한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자면 언어는 이미 사물과의 분리 작용이다. 분리를 통해서 언어는 독자적인 질서(음운론, 의미론, 구문론)를 세우며, 이로써 (이미 사물과는 무관한 것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사물을 반영(이 말 역시 보이는 것[영상]을 되비춘다[반사]는 점에서 재현이나 기록과 같은 뜻이다)한다고, 곧 사물의 질서를 언어의 질서로 되비출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이렇게 본다면 언어의 질서는 사물의 질서 이후에 출현한 것이 된다. 사물이 존재함 → 언어가 분리됨 → 사물의 질서를 흉내 내어 말의 질서를 확립함, 이런 순서다. 그런데 정말 그럴까? 우리는 태어나면서부터 언어에 접수된다. 우리는 자신이 태어난 곳의 언어를 선택해서 쓰는 게 아니라, 그곳의 언어에 의해 선택된다. 모국어는 우리에게 옵션이 아니고 강제된 것이다. 천지창조의 교훈은 이것이다. 하느님이 말씀으로 천지를 지었다는 것은, 사물이 선행하고 언어가 후행한 게 아니라 선재(先在)하는 언어의 질서에 따라 사물의 질서가 자리 잡았다는 것이다. 태초에 있는 것은 창조가 아니라 분리, 곧 언어의 분절 내지 절합(articulation, 분리+결합) 작용이었다. 데리다는 이것을 차연(différance)이라 불렀다.

 

    관건은 구성된 차이가 아니라 일체의 내용 규정에 앞서 차이를 생산하는 순수한 운동이 문제인 것이다. (순수한) 흔적은 차연이다. 흔적은 어떠한 청각적, 시각적, 음성적, 문자 표기적인 감각적 충만함에도 종속되지 않는다. 그것은 반대로 그것들의 조건 자체이다.5)

  5)  자크 데리다, 『그라마톨로지』, 김성도 옮김, 민음사, 2010, 168쪽.

 

    차연이란 (공간에서의) ‘차이’와 (시간에서의) ‘지연’을 결합한 말로, 분절을 일으키는 시간적, 공간적 운동을 말한다. 언어가 분절되어 있다면, 곧 음소와 형태소와 어절의 분리와 결합을 통해서 차이들을 실어 나른다면, 언어활동의 맨 처음에는 실체(구체적인 소리와 의미)가 아니라 그것들(core)을 구별하고 분리하고 다시(re-) 결합하는 운동이 먼저 있었어야 한다. 창조 곧 의미의 생성은 이 차이 내는 운동의 결과일 뿐이다. 상징이 무엇인가를 분리해 내기 전에, 먼저 분리하는 작용이 있었다는 뜻이다.

 

    3.
    분리 작용으로서의 상징은 세계 전체를 분리시킨다. 우리는 상징에 접수되므로 상징 바깥의 세계에 대해서는 아는 것이 없다. 상징은 분리 작용이면서 포획(=파악)하는 작용이기도 하다. 우리가 상징을 통해서 어떤 의미를 포획하는 순간, 그 의미가 지시하는 실제의 대상은 상징에서 분리된다. 상징이 도래하면 두 개의 세계가 추가되어 도합 세 개의 세계가 출현한다. 1) 하나는 상징 이전의 세계, 곧 분리가 일어나기 이전의 세계다. 하지만 이 세계는 과거에 존재했던 세계가 아니다. 상징이 출현하면서 잃어버린 세계, 곧 분리가 일어남에 따라 ‘잃어버렸다’고 가정되는 세계다. 우리는 상징적인 질서에 접수되면서 우리가 분리되기 이전의 상태를 잃어버린다. 그것이 무엇인지도 알지 못하면서 말이다. 2) 두 번째가 상징의 세계다. 우리가 상징적인 기호들로 엮어낸 언어의 세계, 이데올로기의 세계, 이미지의 세계, 문화와 제도와 역사의 세계다. 3) 세 번째가 상징이 분리해 내는 데 실패한 것, 분리해 낸 후에도 잉여로 남아 있는 것, 분리 작용 자체가 깔끔하게 이루어지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것들로 이루어진 세계다. 1)이 미분리의 세계, 2)가 분리의 세계라면 3)은 분리 불가능한 것, 분리해 내지 못한 것, 분리에 내재해 있는 균열(분리의 질서가 교란된 것)의 세계다. 정신분석에서는 1)을 상상계(상상적인 것), 2)를 상징계(상징적인 것), 3)을 실재계(실재적인 것)라고 부른다. 상상계에 관해서는 다음 기회를 기약하기로 하고, 여기서는 로빈이 대표하는 3)의 세계, 실재계에 대해서 알아보기로 하자.

 

    언어의 표출[분절, articulation]이 갖는 고유한 속성은, 체험된 실재와 그것[체험된 실재]을 의미하는 것 사이의 분열을 필연적으로 만들어내는 상징적 대체를 통해서 실재를 환기시킨다는 것이다. 달리 말하면 실재를 의미하는 상징적 대체는 실재 자체가 아니라 실재를 표상[대리, représenter]하는 것이다. “사물이 표상되기 위해서는 상실되어야 한다.”라는 라캉의 격언이 말하고 있듯이 말이다. 그러므로 언어는 실재의 부재를 위하여 실재의 현존을 표상해야 하는 독특한 특성을 갖는다.6)

  6)  조엘 도르, 『라깡 세미나 ·에크리 독해 Ⅰ』, 홍준기·강응섭 옮김, 아난케, 2009, 173쪽.

 

    앞서 말한 대로 상징계를 구성하는 언어는 분절(분리 결합) 혹은 재현(대리 표상)을 특성으로 하며, 이것은 체험된 실재(core)와 의미화(re-) 사이의 분리(분열)를 대가로 지불한다. 다시 말해 상징(분리)이 성립하기 위해서는 실재(core)의 세계를 언어의 세계가 덮어써야 하며, 이것은 실재가 상실되어야 한다는 것, 그것이 언어의 세계로 대체되어야 한다는 것을 뜻한다. 실재의 현존(그것을 언어로 재현함)은 그것의 부재(그것을 상실함)와 같다. 그렇다면 실재는 존재하지도 않았던 것이 될 것이다. 그것의 재현물(상징)의 출현이 그것의 부재를 증명하기 때문이다. 실재하는 사물(core)의 세계는 칸트가 말한 이른바 물자체의 세계다. 칸트에 따르면, “우리에게 대상들 그 자체는 전혀 알려지지 않으며, 우리가 외적 대상들이라고 부르는 것은 (중략) 우리 감성의 순전한 현상들뿐이라는 것, 그것의 진짜 대응자 다시 말해 사물 그 자체(물자체)는 전혀 인식되지도 않고 인식될 수도 없”다는 것이다.7) 그래서 칸트는 물자체가 우리 인식의 한계 개념이라고 말한다. 그것이 존재하는지, 존재하지 않는지에 관해 알 수 없는 것은 존재를 논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거나 무의미하다. 그것은 우리 인식이 미치지 못하는 범위에서 우리 인식의 한계를 긋는다. 그런데 정말 아무것도 인식되지 않을까? 어쩌면 사물은 인식의 실패를 통해서 역설적으로 인식되는 것이 아닐까?
    앞에서 우리는 언어가 구성되는 순서를 짚어 보면서, 언어가 구성될 때에도 무수한 잉여들이 생긴다는 것을 살펴보았다. 음운으로 포획되지 않는 소리들, 의미를 담지하지 못하는 형태소들, 문장이 되지 못한 조각들, 상황이 주어져야 비로소 해독되는 문장들이 그렇다. 이것들은 상징계가 깔끔하게 마름질되어 있지 못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일종의 얼룩이다. 의성어를 생각해 보자. 의성어는 사물이나 사람이 내는 소리를 직접 흉내 낸 말이다. 언어학에서는 의성어 역시 나라마다 서로 다르게 표기된다는 점을 들어서 상징계의 규칙이 사물과 무관하다는 점을 주장하지만, 거기에는 실제로 사물과의 희미한 연관성이 있다.

  7)  칸트, 『순수이성비판 1』, 백종현 옮김, 아카넷, 2006, 250쪽.

 

마마(독일어, 러시아어, 네덜란드어 등등)
머마(그리스어)
모므(라틴어)
모음(스웨덴어)
모뮈(아랍어)
맘마(타밀어)
마(힌디어)
마마(일본어)
마마(중국어)
엄마(한국어)……

 

    ‘엄마’를 뜻하는 각 나라 말을 한국어로 소리 나는 대로 적은 것이다. 세계 어디서나 엄마를 뜻하는 단어는 비슷한 소리를 낸다. 이것은 아기가 입을 떼어 최초로 발음하는 소리를 받아 적은 말이기에, 그리고 바로 그 순간 아기의 앞에 엄마가 있었기에 생겨난 현상이다. 상징은 실재와 무관하지만 실재의 틈입에서 온전히 자유로울 수가 없다. 저 소리들을 모아서 들으면, 우리는 인간 아기가 최초로 내는 소리가 비음과 순음으로 이루어져 있음을, 아기를 돌보는 최초의 인물이 인간 사회 어디서나 엄마임을 알게 된다. 이것은 상징과 무관한 정보다.
    실재계(the Real)란 바로 이런 상징계의 얼룩을 낳았다고 가정되는 가상의 세계다. 그것이 가상인 것은 우리가 그것을 직접 짐작할 수 있는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상징(분리)의 세계만을 알 수 있을 뿐이지만, 그렇게 해서 출현한 세계에는 상징화를 교란하는 무수한 실재의 얼룩이 있다. 이 얼룩은 정상적인 질서를 교란하는 것이기에, 흔히 기괴한 것, 그로테스크한 것으로 지각된다.

 

    100개의 머리를 가진 동물은 일종의 물고기로서 언어의 업(業)에 의해서, 그리고 윤회에 의해서 만들어진 것이다. 중국에서 기록한 부처의 전기 중에 이런 이야기가 있다. 어느 날 부처는 그물을 당기고 있는 어부들을 보았다. 어부들은 힘들여서 거대한 물고기를 해변으로 끌어올렸다. 그런데 그 물고기는 원숭이, 개, 말, 여우, 돼지, 호랑이 등의 머리를 100개나 가지고 있었다. 부처는 그 물고기에게 물었다.
    “너는 카필라가 아니냐?”
    “그렇습니다.”
    100개의 머리가 숨을 거두기 직전에 일제히 대답하였다.
    부처는 제자들에게 카필라를 이렇게 설명하였다. 전생에 카필라는 브라만 계급 출신으로 승려였다. 그는 신성한 문헌에 나오는 지혜에 대해서 다른 어떤 사람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동료들이 때로 이해를 하지 못하면, 동료들을 “원숭이 대가리”, “개 대가리”라고 놀려댔다. 그렇게 다른 사람을 놀려대던 그가 죽게 되자, 이러한 욕설로 인한 업이 쌓여서, 동료들에게 붙여 주었던 모든 대가리를 다 가진 흉측한 수중 괴물로 태어나게 되었다.8)

  8)  보르헤스, 『상상동물 이야기』, 남진희 옮김, 까치, 1994, 72쪽

 

    업(業, karman)이란 본래 행위(~함)를 말하는 것이었으나 후대에 여기에 인과성이 부가되면서 선악의 행위에 따른 결과(結果, 果報)라는 뜻을 갖게 되었다. 다시 여기에 윤회사상이 결합되면서, 전생에서의 행위로 인한 결과가 현생에, 현생에서의 행위의 결과가 내생으로 이어진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문제는 전생의 일이란 기록(record)하거나 재현(representation)할 수 없는 것, 곧 상징계에 등록할 수 없는 것이라는 데 있다. 우리가 아는 것은 전생의 업으로 인해 나타난 현생의 결과뿐이다. 업에는 몸으로 지은 업(身業: 살생, 도둑질, 음행), 입으로 지은 업(口業: 거짓말, 이간질하거나 위선적인 말, 욕설, 꾸며대는 말), 마음으로 지은 업(意業: 탐욕, 시기와 미움, 잘못된 견해)이 있다. 백 개의 머리가 붙은 저 괴물은 전생에 말로 지은 업으로 인해 저렇게 흉측한 머리들을 갖게 되었다. 현생(상징계)에 등록되지 않았으나 그 상징들에 영향을 미치는 전생을 실재계라고, 원인으로 간주되는 업을 실재의 작용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저 괴물은 실재의 작용이 상징계에 끼친 교란, 얼룩, 왜상의 표현인 셈이다.
    우리의 주인공 로빈 또한 그렇다. 그녀는 꽃꽃열매 능력자로, 사물이나 (자신이든 타인이든 가리지 않고) 사람의 몸에서 꽃을 피우듯 자신의 신체를 돋아나게 할 수 있다. 우노 플뢰르(Uno Fleur: 한 송이의 꽃, 손 1개를 피워내는 기술)에서 밀 플뢰르(Mill Fleur: 천 송이의 꽃, 1000개의 손이나 발을 피워내는 기술)까지 여러 개의 손이나 발을 내어 적을 꺾을 수 있고, 커다란 날개나 우산, 계단을 만들 수도 있으며, 다른 사람의 몸에 눈이나 귀를 돋게 해서 시야를 확대하거나 다른 사람의 말을 엿들을 수도 있다. 악마의 열매 능력으로 구사된 이 기술들은 그 이름(여러 송이의 꽃을 스페인어 + 프랑스어를 결합하여 지었다)과 다르게 꽤나 징그럽다. 커다란 손과 발, 어디서든 돋아나는 무수한 사지(四肢)와 눈 코 입이라니. 심지어는 자신의 몸을 분할하여 둘로 출현시킬 수도 있다! 신체의 이 이상 증식이야말로 알 수 없는 어떤 세계, 곧 실재의 영향(=업)으로 인한 상징적 질서의 교란이 아닌가?

 

    4.
    상징화를 벗어나는, 상징이 포획하지 못한, 분리 작용이 불가능한 그 무엇이 실재다. 문제는 실재를 따로 지시할 방법이 없다는 데 있다. 지시는 분리이자 기록이라는 점에서 상징의 영역에 속해 있기 때문이다. 그것을 지시하려 하는 순간, 실재는 물자체처럼 무로 출현한다.

 

르네 마그리트, 망원경
René Magritte, Le Téléscope, 1963.
(Menil Collection, Houston)

 

    마그리트의 그림을 보자. 창문 밖에 푸른 하늘과 흰 구름, 푸른 바다가 펼쳐져 있다. 그런데 창문을 열자, 그 너머에 있는 것은 텅 빈 어둠뿐이다. 저 어둠, 무명(無明)은 곧 무명(無名)이다. 우리가 상징의 세계에서 보는 것은 저 창문에 표시된 하늘과 바다이다. 우리는 상징이 투명한 기호라고, 실재의 하늘과 바다를 있는 그대로 비쳐 준다고(반영 내지 재현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상징은 그것이 재현한다고 간주하는 그 무엇, 곧 실재의 세계와 결정적으로 단절되어 있다. 실재에 합당한 이름은 마련되어 있지 않다.
    밀짚모자 일당이 물의 도시 워터 세븐에 이르렀을 때, 로빈이 모습을 감춘다. 백방으로 찾아다니다가 마침내 만난 일행(상디와 쵸파)에게 로빈은 이렇게 말한다.

 

    내겐 너희들이 모르는 ‘어둠’이 있어. ‘어둠’은 언젠가 너희들을 멸망시킬 거야.(로빈이 상디와 쵸파에게, 36권 340화)

 

    로빈이 말하는 ‘어둠’은 그녀의 평생에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남겼던 오하라 학살극과 관련이 있다. 오하라는 로빈의 고향 섬으로 섬 중앙에 ‘전지(全知)의 나무’라는 거대한 수목이 자라고 있으며,9) 이 나무 내부에 세계 최대의 도서관이 있었다. 오하라의 학자들은 세계정부에서 금지한 공백의 100년에 대한 역사를 몰래 연구하고 있었다. 이 연구가 세계정부에게 발각되어 ‘버스터 콜’(해군이 막대한 전력을 쏟아 부어 특정 지역을 초토화시키는 작전 명령)이 발동되고, 오하라는 멸망하고 만다. 로빈은 이 섬의 유일한 생존자이며, 금지된 지식을 추구했다 하여 악마의 자식이라 불리게 된다.

  9)  이 나무의 원형은 당연히 에덴동산에 있던 (흔히 선악과라고 번역되는) ‘지식의 나무’다. 신은 이 나무의 과실을 먹는 것을 금지했고, 인간이 당연하다는 듯이 금기를 어겨서 벌을 받는다. 벌 가운데 하나로 인간에게 마련된 것이 필멸, 곧 죽을 수밖에 없는 운명이었다. 오하라의 학자들이 추구한 것도 금지된 지식이며 그 벌로 그들은 죽음을 맞는다.

 

    “아득히 먼 옛날의 문헌과 발견한 몇몇 포네그리프를 해독함으로써 우리는 한 나라의 존재를 알게 되었소. 지금은 이미 흔적조차 없지만, 문헌상에 떠오른 것은 한 거대한 왕국의 모습. 한때 강대한 힘을 자랑한 듯하나, 그 나라에 대한 정보는 집요하리만치 지워져 있소. 필시 훗날 세계정부라 칭하는 연합국에 패배하리라 예감한 그들은 그 사상을 미래에 전하고자 모든 진실을 돌에 새겼을 테지. 그것이 바로 현대에 남아 있는 포네그리프.”(오하라 도서관장 클로버가 세계정부의 고위 관료에게)
    “대담한 가설이로군.”(고위 관료)
    “고대병기는 분명 세계를 위협하오. 하나 그 이상으로, 역사와 함께 부활할 그 왕국의 존재와 사상이야말로 당신들 세계정부에 위협적이지 않소이까? 그 위협의 실체를 밝혀내지 않는 한 알 수 없으나, 모든 것의 열쇠를 쥔, 고대에 융성했던 그 왕국의 이름은,”
    “제거하라.”(41권 395화)

 

    공백의 100년 역사에 대한 연구 결과를 말하던 클로버는 결정적 순간에, 곧 고대왕국의 ‘이름’을 말하려는 바로 그 순간에 총을 맞는다. 그 이름은 끝내 발설되지 못했다. 그것이 현재의 원피스 세계(상징계)에 영향을 미치는 공백의 세계(실재계)를 이르는 이름이라면 ‘말할 수 없음’(=말하는 것이 저지됨)의 형식을 취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저 무명(無名)이 로빈이 품은 무명(無明, 어둠)의 정체다. 로빈이 버스터 콜에 항의하며 주장하는 말도 이 맥락에서 읽을 수 있다.

 

    지도에서 오하라가 사라졌다고 했지? 지도 위로 인간을 확인할 수 있어? 당신들이 세계를 그런 눈으로 보고 있기 때문에 그런 잔혹한 짓을 할 수 있는 거야!”(로빈이 CP9 장관 스팬담에게)

 

    지도는 실제 세계를 특정한 축도로 재현한 상징이다. 이 상징적 기호에는 실재로서의 “세계”가 기입되어 있지 않다. 스팬담에게 오하라는 지도 위의 한 점일 뿐이다. 그 점 위에서 무수한 인간과 책들이 있다는 것은 표기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로빈이 추구하는 지식은 그 어느 것도 아직 명확히 밝혀진 것이 없다. 단행본으로 88권, 연재분으로 905화가 발표된 2018년 4월 말까지도, 정작 이 만화의 제목이자 모든 등장인물들이 추구하는 목표인 ‘원피스’가 무엇을 뜻하는지는 알려지지 않았으며10), 공백의 100년 역사도 해명되지 않았다. 이 지식을 추구한 부수적인 결과로서 고대병기의 정체가 조금씩 알려지는 중이다. 플루토는 설계도가 있는 것으로 보아 전함의 일종인 듯하며, 포세이돈은 해왕류(초거대 바다짐승)를 부를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인어공주(시라호시)다. 우라노스는 아직 알려지지 않았다. 포네그리프에 새겨진 고대문자 역시 해독되지 않은 채 우리에게 전해지는 이상한 기호(이를테면 상징적인 것이 아니어서 독해되지 않지만, 거기에 실재가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증상’으로서의 기호)이다. 알면 알수록 모른다는 것이 알려지는 역설, 모든 앎이 현재의 앎 너머로 이전되고 지연된다는 역설, 바로 이것이 로빈을 수수께끼의 인물로 만들고 있는 것이다.

  10)  이 추론이 맞다면 ‘원피스(one piece)’는 불가능한 것의 출현을 알리는 실재의 한 조각(one piece)일 것이다. 여전히 알려지지 않은 채로 말이다.

 

 

 

 

 

 

 

 

 

 

 

 

 

 

작가소개 / 권혁웅

1997년 《문예중앙》으로 등단. 시집 『마징가 계보학』, 『소문들』, 『애인은 토막 난 순대처럼 운다』 등이 있음.

 

   《문장웹진 2018년 0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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