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의 감정학 - 백영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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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소설]

 

 

연애의 감정학

 

 

백영옥

 

 

 

 

    1.

 

 

    태희가 종수와 헤어진 건 1년 2개월 전이었다.
    태희에겐 세 번째 이별이었다.
    이별이 힘든 이유는 매번 늘어났다. 첫 번째 이별은 재수를 고려할 때라 그랬고, 두 번째 이별은 입사 후 첫 프로젝트 때문에 혼란스러웠다. 세 번째 이별에는 복병이 찾아왔다. 활짝 핀 목련과 흩날리는 벚꽃을 바라보며 세상 밖 풍경과 마음속 계절이 이렇게 달라도 되나 싶었다. 퇴근 길 지하철 플랫폼에서, 회사명이 적힌 설악산 워크숍 깃발 아래에서 “딱 한 발만 내딛으면 이대로 갈 수도 있겠구나”란 생각이 멈추지 않았다. 야근이 반복되던 직장 4년차 증상과 비슷했다.
    로또에 당첨되면 가장 먼저 하고 싶은 일이 회사를 그만두는 건 아니었다. 언제든 그만둘 수 있다면 그곳이 더 이상 지옥은 아닐 테니까. 죽을 희망이 있다고 생각하면 마음이 놓였다. 사표를 노트북의 바탕화면 맨 위에 깔아 놓고 마음을 잡았다.
    “적응하면 괜찮아져.”
    친구 재연은 습관처럼 말했다. 하지만 적응하면 좋아지는 게 아니라 무뎌진다. 무뎌지면 아프지 않고, 아프지 않으면 괜찮아진 거라 착각한다. 밤새 먹어서 퉁퉁 부은 얼굴을 바라보던 날 아침, 태희는 괜찮지 않더라도 괜찮은 척 착각이라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것이 자기기만이든 자기 합리화든 상관없었다.
    그날 이후, 한 시간 일찍 일어났다. 출근 전에 수영을 했다. 미뤄 두었던 일본어 공부를 시작했고, 사내의 재테크 스터디 모임에 가입했다. 금요일 이른 퇴근 후에 발레 공연을 보기 위해 블라디보스토크행 비행기에 올라탔다. 마린스키 극장의 가장 좋은 좌석에 앉아, 매일 두 편 이상의 공연을 봤다.
    종수는 잘사는 것 같았다.
    일주일 간격으로 그의 SNS 프로필 사진이 바뀌었다. 종수의 머리 색깔이 바뀌고, 한 번도 보지 못한 셔츠가 등장할 때마다, 태희는 수영장 트랙을 한 바퀴씩 더 돌았다. 숨이 차오를 때마다, 심장의 근육이 더 강해지고 있다고 믿었다. 보이지 않는 종수와 경쟁하는 기분이 나쁘지만은 않았다. 헤어지고 난 두 달 후, 일본어 1급 자격증 시험을 통과했을 때, 매미 울음소리를 들으며 어느새 여름이 깊어졌다는 걸 깨달았다. 코끝이 아렸다.
    “헤어지자마자 애인 사귀는 게 무슨 뜻이겠어?”
    재연이 무심결에 내뱉은 이 얘길 듣기 전까지, 태희는 자신이 세 번째 이별을 잘 헤쳐 나가고 있다고 생각했다.
    “이별하는 게 힘들었나 보지. 나도 그랬으니까.”
    “양다리야.”
    “뭐?”
    “이종수, 너랑 헤어지기 전부터 여자가 있었던 거라고.”
    이별의 이유가 바뀌는 순간이었다.
    권태에서 외도로.
    여름이 깊어지고 있었다.

 

 

    2.

 

 

    태희는 모범생이었다.
뭐든 시도하고 배우는 걸 좋아했다. 학원으로 가는 버스와 자동차 안에서 끼니를 해결하며 영어 단어를 암기할 정도로 시간을 아낀 덕에 늘 상위권 성적을 유지했다. 태희는 강남의 사교육 전쟁 속에 단련된 아이답게 모르는 게 있으면 늘 답을 찾아 나섰다. 그것이 무엇이든 정리해 맥을 짚는 대치동 일타강사 같은 선생이 있을 거란 믿음이 있었다. 그렇게 진화심리학에 입각해 부장과 팀장의 기 싸움을 영장류들의 서열 다툼으로 해석했다. 행동경제학자들이 분석하듯 다툼을 ‘조정 문제’로 바라보는 법도 터득했다. 조선시대 사극을 보는 기분으로 물어뜯는 사내 정치 중인 김 이사와 성 본부장 중, 누가 장희빈이고 인현황후인지를 가늠했다.
    종수와의 연애 역시 그랬다.
    손실기피, 자아고갈, 매물비용, 소유효과 같은 용어가 태희의 머리를 뒤덮었다. 그와 헤어졌을 때, 엎어져 우는 대신 서점으로 달려갔다. 관련 서적을 샅샅이 살펴보고, 유튜브와 TED에 들어가 동영상들을 모조리 찾았다. 책과 강연의 제목을 살펴보는 것만으로 미처 볼 수 없었던 사각이 보일 것 같았다. 애착 유형으로 보는 연애 스타일, 내적 동기는 어떻게 찾아지는가, 나는 왜 나쁜 남자에게 끌리는가, 조용히 승리하는 방법, 결코 지지 않는 법…….

 

    생각해 보면 이기길 원했던 게 아니다.

 

    승리의 기쁨은 강렬하지만 짧다. 졌을 때, 밀려났을 때, 떨어졌을 때 느껴지는 열패감은 길고 길어 각인된 흉터를 남긴다. 이별이 지는 것이라고 생각하면 견딜 수 없었다. 그래서 종수와 헤어지고 태희가 처음 했던 의식적인 행동은 자신의 SNS 계정에서 종수를 지우는 것이었다. 보이지 않으면 조금 더 빨리 잊을 수 있다.
    “종수, 누구 사귀는 줄 알아?”
    하지만 들리지 않는 것까지 막을 수는 없다.
    “헤어지자마자 다른 사람과 연애한다고 꼭 양다리라는 법은 없어.”
    태희가 재연을 보며 말했다. 뱃속 깊은 곳에서부터 점심에 급하게 먹은 뚝배기 미역국이 거대한 해파리처럼 내장기관을 차례로 휘감으며 돌아다니는 기분이었다. 펄펄 끓던 뚝배기 속 미역이 닿는 곳마다 화상을 당하는 느낌이었다. 과거의 사소하게 지나쳤던 많은 것들이 퍼즐처럼 맞춰지자 묵직한 고통의 내용이 날카롭게 선명해졌다.
    “왜 그런 얘들 있잖아? 상대가 먼저 지쳐 나가떨어지길 기다리는 사람들. 그래서 이종수가 헤어지기 몇 달 전부터 네 전화도 안 받고, 약속에 늦고, 매일 야근한다는 핑계를 댄 거야. 네 입에서 헤어지자는 말 나올 때까지 기다린 거야. 헤어지자고 말하면 자기가 나쁜 사람 되잖아. 헤어지는 그 순간까지도 자긴 멋진 사람이고 싶었던 거야. 결국 태희 네가 헤어지자고 한 거잖아. 헤어지자는 말도 자기가 못 하는 사람이랑 뭘 하겠니? 그게 결정 장애가 아니면 뭐야?”
    결정 장애가 아니었다.
    종수에게 선택의 개념이 달랐을 뿐이다. A와 B 중 하나를 배제하는 것이 아니라 둘 다를 갖는 게 선택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할 수 있는 가장 합리적인 선택을 한 것뿐이다.
    “태희 넌 화도 안 나니? 이종수 양다리란 말 듣고도 참 담담하다.”
    광고주 미팅에서 처음 만났던 종수에겐 여자 친구가 있었다. 종수의 양다리는 처음이 아니었다. 에스프레소를 연달아 넉 잔이나 마시는 카페인 중독자 이종수 대리에겐 3년 사귄 여자 친구가 있었다. 하지만 본격적으로 연애가 시작된 후에야 태희는 그 사실을 알아챘다.
    그 일로 2주 동안 연락을 끊었었다.
    종수에게 메시지가 온 건 일주일 후였다. 그녀와 헤어졌다는 장문의 문자였다. 거짓말했던 사람을 끝까지 믿어 줄 아량이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종수가 한 거짓말보다 그 여자와 헤어져 준 용기가 더 고마워졌다. 그의 거짓말은 곧 용기로 포장됐다. SNS 계정에서 이종수를 삭제하는 그 순간, 그가 아직 자신을 친구로 놔둔 채 지우지 않았다는 것에 안도한 것만큼이나 자기 기만적이었다.
    “믿지 못할 사람을 사랑하는 게 최악이라고!”
    재연의 목에 핏대가 서는 게 보였다. 대신 화를 내주는 게 어쩌면 친구의 가장 큰 존재 의미인지도 모른다. 가끔 태희는 재연이 자신이 가진 또 다른 인격의 일부처럼 느껴졌다.
    “누가 그러더라. 사랑이 믿는 거라고. 말 같은 소릴 하라고 해! 사랑하는 거랑 믿는 건 전혀 다른 문제라고. 사랑하는데도 상대를 믿지 못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 줄 알아? 위치추적 하고, 화상 통화로 수시로 그 사람 어딨는지 확인하고. 애인 몰래 SNS랑 스마트폰, 이메일 체크하는 사람은 또 얼마나 많고. 이종수는 전형적인 회피성 애착이야. 자기 시간, 자기 공간만 중요하지. 조금만 다가오려고 하면 답답하다고 도망치고, 같이 있자고 하면 그거 사랑 아니고 집착이라고 꼬집고. 대체 자기 시간이 중요하면 혼자 있지 연애는 왜 하냐고.”
    “섹스는 혼자 못 하니까. 가까워진다 싶으면 멀어지고, 조금 멀어진다 싶으면 다시 다가오고. 네 말처럼 전형적인 회피성 애착을 가진 사람들이 그렇잖아. 그런 사람들은 자기를 돋보이게 하기 위해서 연애하는 경우가 많다잖아. 데이트 시장에 가장 많이 나와 있는 사람들이 그런 부류의 사람들이야. 회피성 애착을 가진 사람에게 연애는 일종의 수단인 거야. 자아실현의 장인 거지. 하지만 나 같은 불안정 애착이 끌리는 게 회피성 애착이라는 게 문제지. 자석처럼 서로를 끌어들이거든. 서로를 피할 방법이 없어. 너무나 큰 매력을 느끼니까.”
    “심리학 박사 났네. 너는 중학교 때부터 어쩜 그렇게 자기 객관화가 잘 되니? 네가 모르는 게 대체 뭐야?”
    “시간이 아깝잖아. 헤어진 남자 생각하면서 후회하고 분노하기에는…….”
    “어쨌든 걔랑 헤어진 거 잘한 거야. 잘 된 거야.”
    ‘어쨌든’이란 말이 있어 다행이다. 어쨌든, 밥은 먹자. 다 먹고살자고 하는 짓이니까. 어쨌든, 잠은 자자. 내일 출근은 해야 하니까. 어쨌든 괜찮아진다는 말부터 꺼내 놓으면 어쨌든 괜찮아질 것 같은 기분이 들 때도 있다.
    태희는 종수와 마지막으로 먹던 설렁탕이 떠올랐다. 딱 두 개의 누덕누덕한 고기가 들어 있는 밍밍한 설렁탕이었다. 배가 고파서 소금을 넣지도 않은 채 그냥 입안에 계속 국물을 밀어 넣었던 것 같다. 밥알이 떠 있던 국물은 조금 더 뿌옇게 변해 있었다. 눈물은 나지 않았다.
    “종수가 먼저 얘기했어.”
    미세먼지가 스모그처럼 짙게 끼어 눈앞이 잘 보이지 않았다. 비라도 내리면 좀 나아질 것 같았다.
    “내가 먼저 헤어지자고 말한 거 아니라고.”
    “뭐?”
    “차인 거라고, 나.”

 

 

    3.

 

 

    ‘불멸의 걸작’이란 제목의 기획서를 쓴 적이 있다.
    사용자의 신체 사이즈에 맞게 제작되는 핸드메이드 ‘의자’에 관한 리포트였다. 제품이 얼마나 팔릴지 자신이 없었다. 워낙 고가에 마켓 사이즈도 예측하기 힘들었다. 평소 의자에 관심이 많은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자발적으로 바빠지기로 결심한 후, 태희는 이 일을 떠 안듯 맡았다. PT 준비 전에 관련된 리포트를 꼼꼼히 읽었다. 사람들에게 주목받는 100여 명의 인플루언서들의 소비 패턴과 동영상 자료도 수집해 분석했다. 문득 자료를 읽다가 깨달았다. 사람들의 소비 패턴과 지금의 연애가 무관하지 않다는 사실이었다.
    요즘 물건은 값이 싸다. 김밥 한 줄에 1500원, 1만 원짜리, 5천 원짜리 티셔츠 역시 쉽게 눈에 띈다, 만 원에 양말 열 켤레를 파는 상점도 있다. 할인과 가성비는 이제 전 지구적인 시대정신이 되었다.
    패션 브랜드 ‘자라’ 한 곳에서만 하루 100만 점의 옷이 제조된다. 통계자료에 따르면 자라의 고객들은 평균적으로 1년에 열일곱 번 옷을 산다. 수명이 길지 않은 가구와 조명을 만드는 이케아 역시 마찬가지다. 이케아의 고객들은 평균 6개 이상의 조명 기구를 가지고 있다. 망가지는 즉시 버리거나 새로 사는 것이다.
    값이 싸기 때문에 사람들은 쉽게 물건에 질린다. 사용 주기가 점점 짧아진다. 망가지지 않는 제품을 만드는 게 회사 차원에서 오히려 마이너스일 수 있다. 일부러 제품의 질을 꾸준히 낮추는 게 영업 전략이 될 수 있다는 뜻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선 퇴출 대상이 될 법한 비윤리적인 행위지만 그것이 애플의 배터리 게이트처럼 집단소송의 빌미가 되기도 한다.
    모든 현상에는 특정한 비용이 발생한다. 싸구려 재료와 물건은 값싼 노동력과 노동 착취로 이어진다. 환경 기준은 간단히 무시된다. 과거에는 양말에 구멍이 나면 실로 꿰매 신었다(고 한다). 신발이 닳으면 수선집에서 구두 밑창을 갈았다. 지금은 쉽게 찾기 힘든 일이다.
    SNS에는 사람들이 넘쳐난다. 모두 제각각 매력적인 사람들이다. 그곳이 실제의 ‘내’가 아니라 ‘되고 싶은 나’를 전시하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최신 메이크업, 옷, 음악, 영화, 다양한 포토샵으로 무장한 사람들이 밀라노나 뉴욕 패션쇼 런어웨이를 걷는 모델처럼 매 순간 빠르게 등장한다. 전 세계 대도시 어디에나 있는 ‘자라’나 ‘H&M’의 문턱만큼 연애의 진입장벽은 과거에 비해 낮아졌다. 누군가에게 말을 걸거나, 메시지를 보내는 게 어렵지 않은 세상이다. 잠재적 연애 대상자가 많다는 건 뭘 의미하는 걸까.
    선택할 자유는 무한대로 늘어났다. 하지만 선택지가 많다는 게 최선은 아니다. 101개의 아이스크림 중 딱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면 사람들은 극도의 혼란스러움을 느낄 것이다. 선택지가 많으면 선택을 확신할 수 없다. 사람은 스스로의 선택을 의심하는 순간, 여기가 아닌 저기를 바라보게 된다. 태희는 이 모든 소비 현상이 지금의 연애와 무관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단지 의자 하나에 포커스를 맞출 일이 아니었다. 이 의자를 왜 사야 하는지에 대한 생각의 전환이 필요했다.
    고장 나지 않는 제품이 아니라, 고쳐 쓰고 싶은 제품을 만들 필요가 있었다. 완벽한 사람을 만나는 게 아니라, 노력하고 싶은 사람을 만나야 한다. 상대가 바뀌길 바라는 게 아니라 나 자신의 생각을 바꿔 줄 만큼 가치 있는 상대를 만나는 일 말이다. 태희에게는 종수가 그런 사람이었는지에 대한 믿음이 없었다.
    그날, 태희는 책상에 앉아 노트북이 아닌 종이를 펼쳤다. 몇 년 만에 연필을 깎았다. 작은 칼로 연필을 깎다가 이 연필 한 자루를 다 사용하려면 얼마나 걸릴까 헤아려 봤다. 몽당연필이란 단어가 완전히 사라지게 될 날은 언제쯤일까. 그 밤 태희는 종이 위에 자신이 생각한 글을 정리했다.

 

    물건 값이 싸다.
    너무 싸서 쉽게 질린다.
    질리면 즉시 바꾼다.
    고쳐 쓰지 않고 바꿔 입는 옷이나 구두처럼 사람을 바꾼다.
    바꿀 수 있을 때 언제든 바꾸겠다는 의지의 표명, 그것이 ‘썸’이다.

 

    빨리 선택하면 손해라는 생각은 언제부터 사람들의 마음을 파고들었을까. 얻는 것보다 잃는 걸 훨씬 더 힘들어하는 우리의 마음은 언제부터 선택과 맞부딪쳤을까.
    태희는 자신이 쓴 기획서를 바라봤다. 며칠을 매달려서 쓴 기획서가 결국은 종수에게 하고 싶은 말이었다. ‘불멸의 걸작’이라는 제목의 폰트가 붉게 반짝거리고 있었다. 불멸이 꼭 불면처럼 보였다.

 

 

    4.

 

 

    “헤어지고 다시 만나는 커플이 몇 퍼센트인 줄 알아?”
    함께 공원을 걷던 재연이 태희에게 커다란 호밀빵 샌드위치를 넘기며 말했다. 인디 음악 축제가 벌어지는 공원 여기저기에 움직이는 대형 무대가 설치되어 있었다. 무대 주위로 철제 펜스가 쳐져 있었고 빈 의자가 빼곡히 놓여 있었다.
    “헤어지고도 다시 만나는 커플이 82퍼센트래.”
    “82퍼센트가 서로를 스토킹 하고 있었단 소리네.”
    태희는 의자 맨 끝에 앉아 있는 남녀를 바라보다가 재연에게 지나가듯 말했다. 남녀는 서로에게 집중하느라 눈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싸우는 남녀의 눈빛과 몸짓은 기이한 파장 때문인지 몇 십 미터 밖에서도 알 수 있었다.
    “내 주위를 봐도 헤어져서 두 달을 못 넘기고 다시 만나더라. 의지력이 없어진 건가?”
    “참을 필요가 없어진 거지. 눈에 빤히 보이니까. 다이어트할 거면 과자를 아예 사놓으면 안 되는 거야. 눈에 보이는 곳에 놓고 의지력 실험을 왜 해?”
    “너 이종수 스토킹 하니?”
    “안 하는 사람도 있니? 걔도 하고 있을걸?”
    “헤어졌던 사람이 다시 만나서 잘 될 확률은?”
    재연이 스피드 퀴즈를 내듯 태희를 바라보며 빠르게 물었다.
    “3퍼센트! 연애의 온도에 나오잖아.”
    “그 영화 봤어?”
    “97퍼센트는 만나도 또 헤어진다는 얘기지. 옛날에 헤어졌던 똑같은 이유로. 재연이 너도 그랬잖아. 안 그래?”
    “우리 서로에게 너무 잔인하다.”
    “정확한 거지.”
    “나는 헤어지는 그 순간까지도 정말 헤어지는 건지 확신이 안 들더라. 이러다가 또 만나는 거 아냐? 이런 생각도 들면서 묘하게 안심도 되고. 아…… 짜증난다.”
    끝날 때까지는 끝난 게 아니다. 전설적인 야구 선수 ‘요기 베라’가 했다는 이 말은 요즘 연애에도 적용되는 게 아닐까. 9회 말 끝나도, 10회 초가 기다리고 있다. 승부가 나지 않은 채 연장전이 끝없이 이어질 것 같은 예감으로 가득한 10회 말도 있다.
    이별은 과거에도 힘들었지만, 점점 더 힘들어지고 있다. 기술이 발달할 미래의 이별은 너무나 어려워서 오히려 쉬워질지도 모른다. ‘전처가 옆방에 산다’는 제목의 드라마를 본 적이 있다. ‘구여친 클럽’이란 드라마 제목을 봤을 때, 이젠 헤어진 전남편과 다시 연애하게 된다는 식의 이야기가 전혀 새롭지 않다는 걸 깨달았다. 전처와 구여친과 구남친이 수시로 출몰하는 시대에 살고 있으므로 우리에겐 과거를 잊을 자유가 없다.
    재연의 말처럼 꼭 개인의 의지력 문제가 아니었다. 이전과 달라진 구조의 문제였다. 초연결 사회에서 사라지거나 잊히는 건 권력이었다. 울리는 전화를 받지 않아도 되는 게 특권인 것처럼 말이다.
    종수를 SNS 친구 목록에서 삭제했다고 해서 그를 보지 않을 수 있는 게 아니었다. 헤어진 연인과 나, 이 둘 모두를 아는 친구들이 존재할 때, 상황은 더 복잡했다. 가령 거대한 단체 카톡방이 만들어지고 불시에 두 사람을 초대한 친구가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원치 않아도 마주치게 되는 그런 순간 때문에 감정은 점점 울창한 숲처럼 자란다. 그러므로 이제는 헤어짐을 친구들에게도 공표해야 한다. 이별을 통보하긴 쉬워졌지만 이별을 유지하기 위해 해야 할 일이 너무 많다.
    ‘알 수도 있는 사람’이라는 소셜 네트워크 알고리즘을 통해 헤어진 연인의 소식을 알게 되는 세상을, 사라지지 않고 쌓이기만 하는 세계를 사람들은 예측했을까. 종수의 새 여자 친구의 얼굴을 보던 날, 태희는 생각했다.

 

    많이 닮아 있었다.
    스마트폰 속 종수의 옛 여자 친구와

 

 

    5.

 

 

    unfriend.
    친구 목록에서 삭제한다는 뜻의 이 동사는 ‘옥스퍼드 사전’이 2009년의 단어로 선정했다. 다양한 소셜 네트워크에 등록된 친구들 가운데 더 이상 연결을 원하지 않는 사람을 지우는 것을 뜻하는 이 단어가 의미하는 건 ‘삭제’다.
    ‘unfriend’는 삭제당한 사람들의 목록이다.
    태희는 종수와 헤어진 밤, 바로 자신의 계정을 비활성화 시켰다. 스마트폰 속 바탕화면에 있는 특정 앱도 모조리 지웠다. 문제는 24시간도 되지 못해서 다시 계정을 활성화시키고, 앱도 복구했다는 것이다.
    댄 에리얼리는 다양한 사고 실험을 통해 인간이 얼마나 불합리한지 연구한 행동경제학자다. 그가 유독 인간의 ‘고통’이나 ‘불합리성’에 주목했던 건 청소년 시절 겪었던 화재 사고 때문이었다. 화상 치료를 하며 보낸 청춘이 그에게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모른다. 그러나 흥미로운 건 그의 사고 실험 중에는 유독 인간이 고전 경제학이 말하는 합리적 소비 주체가 아닌, 얼마나 불완전하며 감정적인지 보여주는 연구가 많다는 것이다. ‘거짓말하는 착한 사람들’이라는 그의 책 제목처럼 기회만 되면 사람이 얼마나 쉽게 타인을 속이고, 자신을 기만하는지를 보여주는 연구들 말이다.
    데이팅 앱에 관한 연구 결과도 그렇다.
    사람들이 소셜 미디어에서 데이트 상대를 찾는 과정에 쓰는 시간은 주당 12시간이다. 하지만 실제 만남에 사람들이 쓰는 시간은 1.8시간이었다. 비율로 따지면 6:1이다. 심리를 공부한 경제학자가 주목한 건 SNS 데이트 시장의 경제적 비효율성이었다. 그것이 친구와 딱 1시간 대화하기 위해 자동차로 왕복 6시간 걸리는 바닷가를 찾는 것과 다를 바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람은 녹을 줄 알면서도 눈사람을 만든다. 다시 복구할 걸 알면서도 소셜 네트워크 관련 앱을 계속 지운다. 세일 중이라거나 나중에 먹겠다는 핑계를 대며, 다이어트 중에 초콜릿과 아이스크림을 냉장고에 넣어 두며 실패를 자초한다.
    태희 역시 헤어진 연인들의 소셜 네트워크 계정을 훔쳐보기 위해 자신이 쓰는 시간을 계산한 적이 있었다. 막연히 많은 시간을 허비하고 있다가 아니라, 헤어진 후 감량한 몸무게처럼 구체적인 숫자가 필요했다. 태희가 보기에 이런 일의 가장 큰 문제는 한 사람을 관찰하기 위해 수많은 사람들의 계정을 넘나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초연결 사회라는 말은 사회학 서적이나 IT 기사가 아니라, 헤어진 옛 애인을 스토킹 하는 순간, 절감하게 된다. 이때 구글은 익사당한 시체들로 널린 광대한 블랙홀로 변한다.
    하루 평균 5.8시간. 태희가 헤어진 연인의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 사용하고 있는 시간이었다. 회사에 있는 시간을 빼면, 집에서, 길에서, 지하철에서, 클라이언트를 기다리는 미팅룸에서도, 그녀는 계속 상대의 SNS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낮에는 일을 하며 버텼다. 하지만 밤이 되면 낮 동안 쓴 의지력이 전부 고갈돼 그녀를 괴롭혔다.
    물론 모든 일에 그림자만 있는 건 아니다. 종수의 글이나 사진에 ‘좋아요’를 누르는 사람, 댓글을 단 사람, 태그 되어 있는 사람들과 그 사람들의 계정 일부에 남아 있는 흔적은 태희에게 동기를 부여했다. 특히 올렸다가 바로 사라지는 사진과 링크됐다가 바로 삭제되는 링크에 관해서라면 더 그랬다. 숨기고 싶은 게 많은 사람의 비밀 정원을 엿볼 수 있는 기회다.
    어느 날엔 거실 소파 의자에 앉아 홍차를 홀짝이며 창밖의 살인사건을 추리하는 ‘미스 마플 여사’라도 된 것 같았다. 하지만 서서히 밝아지는 창문을 바라보다가 출근길 지하철에서 내려야 할 역을 놓치는 해프닝을 반복해서 겪었다. 그런데도 이종수의 과거를 재구성하는 일을 멈추긴 힘들었다. 태희의 욕망은 오타구적 기질과 합체돼 점점 더 학구적인 성격을 띠기 시작했다.
    태희에게 전 남친 증후군이란 단어가 떠오른 건 이 순간이었다. 이종수와 관련된 정보들에서 행간을 읽고, 그것이 의미하는 바를 끌어내는 것을 통해 그녀는 찢겨져 있던 책의 클라이맥스 일부를 읽어 내려가는 흥분을 느꼈다.
    사람들은 흔히 자신이 원하는 것을 알고 있다고 착각한다. 하지만 대개의 사람들은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모른다. 적어도 다른 사람들이 ‘그것’을 원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그러므로 욕망은 얼마든지 설계할 수 있다. 조작이나 설계가 힘든 건 오히려 욕망하지 않는 것이 무엇이냐 하는 것이다.
    “가장 탁월한 카피라이터는 그 사람이 하고 싶은 말이 아니라 결코 하고 싶지 않은 말을 알아내는 법이지.”
    입사하고 나서 얼마 후, 선배가 회의에서 했던 말을 태희는 아직 기억했다. 그 사람의 본질은 절대 말하고 싶어 하지 않는 그것에 있다. 종수가 올렸다가 지워버린 사진들, 일부러 삭제한 링크와 삭제한 댓글이 그가 남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은 자신의 모습일 것이다. 헤어지고 나서야, 태희는 종수에 대해 더 많은 걸 알게 됐다. 이전에는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은 방법으로 그를 검색한 탓이다. 헤어진 연인이 일종의 범죄자처럼 느껴지는 것도 검색 때문이다.
    단지 그의 이메일과 핸드폰 번호, 학교, 학번, 주민등록증 번호만으로도 생각지 못한 정보가 쏟아졌다. 9년 전 한 중고 사이트에서 종수가 팔기 위해 내놓은 노트북과 구찌 구두, 스노보드를 발견한 순간, 태희는 종수의 청춘이 자신의 생각과 다르다는 걸 깨달았다. 종수의 여자 친구로 보이는 여자가 사용하던 지금은 사라진 SNS 계정 속에서 검은색 고양이를 안고 있는 그의 사진도 발견했을 때, 그녀의 예감은 확신이 됐다.
    속옷 차림의 그는 부엌 의자에 다리를 꼬고 앉아 잇몸을 드러낸 채 웃고 있었다. 태희의 눈에 핑크빛 레이스가 잔뜩 달린 커튼이 눈에 띄었다. 블랙과 화이트를 지향하는 이종수의 취향과 거리가 멀었다. 부엌 위, 컵 선반에 놓여 있는 나란한 두 개의 머그컵을 바라보았다. 손잡이 모양과 크기가 전혀 다른 머그는 누군가 직접 만든 공예품 같았다. 태희는 사진 밑에 적혀 있는 댓글 하나를 발견했다.
    댓글에는 고양이의 이름처럼 보이는 명사 하나가 적혀 있었다.
    누가 지었든 고양이에게 ‘바둑이’라는 강아지 이름을 붙여 놓고 좋아했을 이 커플의 한때가 떠올랐다. 베인 듯 아팠지만 기이한 쾌감이 밀려왔다. 종수에 대해 알아 갈수록 상황을 통제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의 잠재적 연애 대상자들의 목록은 점점 더 늘어났다. 데이터 마이닝이 시작된 지 5일 만에, 태희는 이종수의 옛날 휴대폰 번호를 알아냈다.
    그의 숨겨진 과거가 그녀 앞에 펼쳐졌다. 그것은 찢어진 페이지로, 가령 그의 새 여자 친구에 관한 이야기 같은 게 그랬다.

 

 

    6.

 

 

    오전 8시 11분, 한남대로 위에 서 있는 택시 안에서 태희는 벗겨지기 시작한 젤 네일을 무의식적으로 뜯어냈다. 처음에는 손톱 물어뜯는 걸 방지하기 위해 시작한 네일 손질이었다. 하지만 이젠 손톱이 상하는 줄 알면서도 금이 가거나 깨진 매니큐어 조각을 습관처럼 긁어내고 있었다.
    창문에 비친 태희의 얼굴 위에 미술관 설치 작품처럼 물이 흐르고 있었다. 습관처럼 창문을 열기 전, 태희는 미세먼지 앱을 바라봤다. 비가 내리고 있는데도 미세먼지 수치가 나빴다. 담배에 찌든 택시 시트에서 습기와 함께 퀴퀴한 냄새가 올라왔다. 창을 열어도 열지 않아도 꿉꿉하긴 마찬가지였다.
    중수와 헤어진 후 나쁘지 않았다. 확실히 미워할 대상이 생기자 회사의 다른 사람들이 덜 미워지기도 했다. 잘살고 있을 종수를 생각하며 자기계발의 의지를 불태울 수 있는 건 좋았다. 확실히 덜 자고, 더 많이 수영장 트랙을 돌았다. 몸무게가 3.6킬로그램 빠졌다. 맞지 않던 스키니 진이 예쁘게 맞았다. 단지 그걸 보여주고 싶은 게 종수라는 게 문제였다.
    “헤어졌는데 다시 만나고 싶은 사람 있었어?”
    공원에서 재연을 만난 날, 헤어지기 직전 물었었다. 최대한 건조하게 물어야 최소한 솔직한 답이 나올 것 같았다. 그런데 재연의 목소리가 튀어 오르듯 높아졌다.
    “설마! 너, 이종수 다시 만난 거야?”
    “아니야.”
    “내가 왜 이런 얘길 하겠니? 다 해봤기 때문에 그래. 그거 영혼까지 너덜너덜해지는 일이야.”
    “아니라니까!”
    “그래. 나 같은 경우는 헤어지고 나서 늘 그랬던 것 같아. 헤어지면 나쁜 건 지워지고 좋은 것만 생각나잖아. 그게 이별의 신박한 능력 아닌가 싶어. 넌 안 그랬어?”
    “안 그랬어!”
    “그랬겠지. 네가 헤어진 남자 친구 프로필 사진에 ‘좋아요’를 누른 건 실수였겠지. 그건 나도 알아.”
    사람은 실수한다. 문제는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것이다. 누가 먼저 헤어지자고 말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건 만났다는 것이고 다시 헤어졌다는 것이며, 또다시 실패했다는 것이다.
    평소보다 서너 배는 많은 생각들이 머릿속을 탱크처럼 뭉개며 지나갔다. 명상 전문가들은 머릿속 수많은 생각들이 진짜 나, 진정한 자아가 아니라고 강조했다. 그저 감정들의 시끄러운 목소리일 뿐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가슴 속의 ‘참 자아’ 같은 게 명상 동영상을 틀어 놓고 눈을 감거나, 주말 명상 코스 등록으로 찾아질 것 같지 않았다. 참선 수업 내내 졸기만 했던 태희에겐 명상도, 호흡도 도움이 되지 않긴 마찬가지였다.
    그 사람을 잊지 못하는 자신이 부끄럽다. 부끄러움을 잊기 위해 술을 마신다. 자꾸 술을 마시는 자신이 부끄러워서 잊기 위해 다시 술을 마신다. 어느 알코올중독자의 고백처럼 느껴져 변명이라도 찾고 싶어졌다. 태희는 수입 맥주 4캔에 만 원. 퇴근길에 잠복한 저 편의점 세일 문구 때문이라고 소리치고 싶은 마음을 억눌렀다.
    헤어진 여자 친구를 5년 만에 ‘다시’ 만났다면 그건 5년 동안 잊지 못했다는 뜻일까, 5년 만에 다시 사랑에 빠졌다는 뜻일까.
    태희는 택시 창문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보며 되뇌었다. 주먹을 꽉 쥐자 뾰족한 손톱이 손바닥을 파고들었다. 기사가 틀어 놓은 라디오에선 디제이가 오프닝 멘트를 하고 있었다.

 

    – 희극 작가 아리스토파네스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는 자신을 완성하기 위해 타인을 필요로 한다. 어떤가요, 그런 사람이 있나요, 당신에게는?

 

    종수와 헤어진 후, 자꾸 떠오르는 노래가 있다. 그와 함께 들었던 기억 같은 건 없다. 하지만 계속 그 노래가 떠올랐다. 어쩌면 그것이 무의식이 알려주려는 진짜 진실인지도 모른다. 진심과는 다른 진실.
    “뭐 하는 거예요?”
    택시 기사가 뒤돌아 바라보며 태희에게 소리쳤다.
    택시 문을 열자, 빗방울이 그녀의 뺨을 후려치듯 들이쳤다.

 

 

    7.

 

 

    한 사람이 누군가를 향해 던졌던 물컵 하나가 온 가족을 범죄자로 만들 수 있다. 사소해 보이는 작은 균열이 건물을 무너뜨릴 수 있다. 회사를 그만두면 회사를 차리고 싶다고 생각했다. 입사하고 나서야 자신의 꿈이 퇴사가 된 사람들처럼 돌이킬 수 없는 감정에 빠져들었다고 생각했다.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언제나 노력했는데 종수를 아프게 하고 싶다는 욕망이 자신을 보호하고 싶다는 본능보다 강해졌다.
    “오른쪽이 아닌 건 다행이네.”
    재연이 깁스한 태희의 다리를 바라보며 말했다.
    “택시 기사한테 뭐라고 그런 거야?”
    “저 돈 없어요!”
    “대단하다, 너.”
    “안 막히면 15분이면 가는 거리인데, 택시비 5만 원이 말이 돼?”
    “그렇다고 달리는 택시에서 뛰어내려? 분노조절 장애야? 격분 증후군 뭐 그런 거니?”
    “소진 증후군이야. 수면 장애, 소화 장애, 위장 장애, 기분 장애…….”
    깁스한 다리 위에는 회사 사람들이 적어 놓은 낙서가 가득했다. 그 밤, 깁스 위에 그려져 있던 하트의 숫자를 세면서 잠깐 기분이 좋아지기도 했다. 태희에게 지금의 자신은 낯설었다. ‘네가 이럴 줄 몰랐어’라는 말은 종수가 아닌 자신에게 되묻고 싶은 질문이었다.
    “그 번호는 뭐야?”
    재연이 유별나게 크게 적혀 있는 스마트폰 번호 하나를 가리켰다.
    “연락하라는 거 아니겠어?”
    “그사이 헤어지고 다른 사람 만난 거야?”
    “헤어지다니?”
    “이종수 다시 만났잖아.”
    “정말 그렇게 생각해?”
    “너 본 지 13년 넘었어. 속는 척하는 것도, 네 거짓말 들어주는 것도 쉽지만은 않아.”
    자신 때문에 헤어졌던 옛 여자를 다시 만났다는 게, 헤어진 그 남자를 다시 만날 이유가 되진 않는다. 그것이 비합리적이고 감정적인 선택인지 모르는 게 아니다. 달리는 택시에서 문을 열고 내리면 다리가 부러질 거란 걸 모르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이런 얘기는 가능하다. 한 시간 가까이 꽉 막힌 한남대로에서 택시가 그 순간 움직일 거라고 예상하지 못했을 뿐이라고. 그렇다고 부러진 다리가 도로 붙는 건 아니지만.
    세상의 많은 영화들이 공항 장면으로 끝난다.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엔딩 신에는 하늘을 향해 이륙하는 비행기가 등장한다. 이것이 정말 미래의 시작을 알리는 현재의 끝인 걸까. 그런 장면들은 낱낱이 거짓말이다. 그건 비 내리는 날, 3년간 사귄 연인과 악수하며 헤어지는 연인을 보며 그들의 사랑이 끝났다고 믿는 것과 비슷하다. 세상에 후회보다 먼저 도착하는 깨달음은 없다.
    실수로 그의 사진에 ‘좋아요’를 누를 수 있겠지만, 잠시 민망하면 그뿐이다. 하지만 헤어진 사람이 옛 연인을 다시 만난다는 건 다른 문제였다. 끝난 줄 알았던 사랑이 다시 시작됐다면 그건 사랑이 아닌 다른 감정이 개입했을 가능성이 크다. 그것이 시기심인지 모멸감인지 집착인지 중요한 게 아니다. 그것이 무엇이든 도저히 멈출 방법이 떠오르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런데 하느님이 보우하사 그날…….

 

    왼쪽 다리와 오른손 검지가 동시에 부러진 것이다.

 

    적어도 7주 동안 회사 워크숍에도, 재테크 소모임에도, 일본어 학원에도, 수영장에도 갈 수 없게 된 것이다. 꼼짝없이 인터넷으로 주문한 브로콜리 수프를 마시며 침대에 누워 있게 된 것이다. 침대에 누워 친구들의 병문안을 받게 된 것이다. 광기가 꼭 나쁘기만 한 게 아니라는 걸 알게 된 것이다.
    태희는 자신의 스마트폰을 가만히 바라봤다. 지문 인식이 되지 않는 깨진 액정은 고치지 않을 생각이었다.

 

 

    8.

 

 

    태희가 이종수와 헤어진 건 3주일 전이었다.
    태희에겐 다섯 번째 이별이었다.
    종수와 다시 만나기 전, 짧은 연애가 있었다.
    깁스에 자신의 번호를 기록했던 남자는 종수의 대학 동아리 선배였다. 자신의 인생이야 어찌 되든 상대의 마음을 아프게 할 수만 있다면 못 할 게 없는 상태. 그것이 ‘미저리의 마음’이란 것이었다. 전 남자 친구 증후군과 미저리의 마음이란 조어를 처방약처럼 제조하던 시간, 태희는 핸드메이드 의자 업체의 대표와 미팅을 했다.
    “100년을 쓸 수 있는 의자라는 게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는단 생각은 잘 들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오래 쓸 수 있는 물건을 더 이상 원하지 않으니까요.”
    “오래 쓸 수 있는 제품을 싫어한다고요?”
    대표가 의아한 얼굴로 태희를 바라봤다.
    “네. 고장이 나야 죄책감을 가지지 않고 쉽게 버릴 수 있으니까요. 저라면 고쳐서라도 쓰고 싶은 사람을 만나고 싶을 것 같습니다.”
    대표가 태희를 빤히 바라봤다.
    “임 프로님, 방금 물건을 사람으로 잘못 말한 거 아십니까?”
    “제가요? 정말요? 왜 그랬죠, 저?”
    그것이 자문자답이든 무엇이든 웃음이 터져 나왔다. 대표는 웃고 있는 태희를 오랫동안 바라봤다. 이성에게 잘 보이고 싶다는 마음이 없을 때, 역설적으로 자신이 가진 매력은 증폭된다. 광고는 제품을 다루는 일처럼 보이지만 결국 사람의 욕망을 읽는 일이다. 그 잠깐의 연애 동안, 태희는 뜻밖에 자신에 대해 몰랐던 또 다른 성격을 발견했다.
    연애는 나인 줄 알았던 내가 변해 가는 과정을 지켜보는 일이다. 그 변화가 마음에 든다면, 참을 만하다면, 얼마간 그 연애는 이어진다. ‘나인 줄 알았던 나’와 ‘그가 보는 나 사이’의 갈등이 더 이상 좁혀지지 않을 때에 끝나는 것이다. 이별이 남긴 새로운 성격이 유품처럼 남는다. 싫지만은 않았다. 연애는 망해도 시간은 빠르게 가고, 있는 힘껏 나이도 먹는다. 다만 질문은 남는다.
    “종수야. 나 너랑 헤어지고 싶어서 다시 만난 거야.”
    미저리의 마음이 연애의 끝이라면, 그것이 꼭 새드 엔딩인 걸까. 하지 말았어야 할 말과 꼭 했어야 하는 말 중 무엇이 더 사람의 마음을 끝까지 아프게 하는 걸까. 사랑은 죽어도, 화분은 죽지 않았다. 키우고 있는 상추는 뽑아도, 뽑아도 다시 자랐다.
    옆집 고양이가 창문 위에 앉아 있었다.
    왼쪽 엉덩이를 내민 채 앉아 있는 삐딱함이 마음에 들었다. 고양이는 살아 움직이는 액자처럼 자신이 앉아 있는 모든 곳을 근사한 그림으로 만든다. 그림 같은 풍경이라고 생각했을 거다, 고양이와 웃고 있는 종수를 찍던 순간, 그의 옛 연인도 틀림없이 그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습관처럼 확인하는 미세먼지 앱에는 ‘현재 상태 최고’라는 말이 적혀 있었다. 1이라고 적힌 미세먼지 수치가 반짝거렸다. 간만에 보는 수치였다. 태희에게 1이 숫자로 읽히지 않은 지 오래였다. 그것은 메시지 읽지 않음을 뜻하는 1이었고, 구체적으로 태희에겐 종수가 전달하고자 하는 시끄러운 침묵의 한 형태였다.
    창문을 활짝 열었다.
    3일 만이었다.

 

 

 

 

 

 

 

 

 

 

 

 

 

 

작가소개 / 백영옥

2006년 『고양이 샨티』로 문학동네 신인상으로 등단. 장편 『스타일』로 제4회 세계문학상 수상. 『다이어트의 여왕』, 『실연당한 사람들을 위한 7시 조찬 모임』, 『아주 보통의 연애』, 『애인의 애인에게』를 썼으며, 인터뷰집 『다른 남자』와 산문집 『마놀로 블라닉 신고 산책하기』, 『곧 어른의 시간이 시작된다』, 『빨강머리 앤이 하는 말』을 썼다. 현재 MBC 표준FM ‘라디오 디톡스 백영옥입니다’의 진행자로 활동하고 있다.

 

   《문장웹진 2018년 0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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