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속과 유예 - 천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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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소설]

 

 

지속과 유예

 

 

천희란

 

 

 

    깨진 유리파편이 튀어 올라 눈동자에 박히면 그 눈으로는 무엇을 보게 될까. 여자는 생각했다. 광역버스 한 대가 정류장을 향해 들어오고 있었다. 버스를 기다리던 승객들이 우르르 버스 앞머리로 몰려갔다. 버스의 뒷문은 닫힌 채 열리지 않았다. 이른 아침 시각 여자가 버스를 타는 정류장에서 사람이 내리는 일은 흔치 않았다. 여자는 바닥에 발을 지치며 버스에 오르는 사람들을 지켜보았다. 계단을 오르던 갈색 하이힐 한 짝이 도로로 굴러 떨어졌다. 곧바로 길이가 다른 두 다리가 절룩대며 계단을 내렸다. 줄지어 서 있던 사람들이 원을 만들며 뒷걸음질을 쳤다. 신발을 고쳐 신은 두 다리가 균형을 되찾고 다시 버스에 오르자 흩어졌던 사람들이 다시금 모여들었다. 승객으로 가득 찬 버스가 정류장을 떠나고, 정류장에 남은 사람들은 버스가 달려온 도로를 향해 길게 몸을 뺐다. 깨진 유리파편이 귀를 멀게 하면 그 귀로는 무엇을 듣게 될까. 여자가 생각할 때, 바람이 불고, 아직은 충분히 물들지 않은 초가을의 나뭇잎들이 몸을 비비는 소리가 물결쳤다.
    버스가 도로 끝으로 사라지자 여자의 발도 움직임을 멈추었다. 여자는 습관적으로 손목에 감긴 시계를 내려다보았지만, 시간을 의식하지는 않았다. 여자는 또한 습관적으로 몸을 돌려 버스정류장 벽면에 가득 붙어 있는 너저분한 광고 전단을 일별했다. 헬스장 할인행사, 세탁소 개업 이벤트, 과외 구함, 콘서트 홍보 포스터가 외따로 혹은 겹겹이 두께를 이루며 붙어 있었다. 버스 노선도를 확인할 수 없을 만큼 수북했다. 그곳에서 시간은 흐르지 않고 누적되기만 하는 듯했다. 겹겹의 시간이 유리벽 위에 쌓이고 있었다. 어느 것이 현재에 유효한지 알 수 없고, 그러므로 누적되기만 하는 시간. 여자는 그런 것을 유심히 관찰하는 사람이었다. 여자의 삶에서는 오래전에 지나가 버린 것들이 끝없이 반추되며 지금 여기의 사건으로 실감되기도 하였으므로.
    여자가 잠시 숨을 몰아 내쉬었다. 그녀는 나누어 가질 수 없는 무언가를 발견하기라도 한 듯 주위를 살폈다. 그러고는 두 장의 전단지 사이에 붙어 있는 작은 접착식 메모지를 떼어 주머니에 찔러 넣었다. 여자를 바라보던 남자가 막 도착한 버스를 향해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그를 따라 정류장에 남아 있던 승객들이 버스에 올랐다. 여자는 주머니 속에 든 손으로 메모지의 귀퉁이를 매만졌다.
    사람을 살려 본 사람은 사람을 죽일 수도 있다. 그가 살린 사람이 그가 살려내지 않았다면 죽었을 사람일 때에. 여자는 뇌까렸다. 초록색 마을버스가 교차로를 지나고 있었다. 낮의 길이가 짧아지는 가을 아침, 버스는 정류장에 선 여자를 지나치기 일쑤였다. 여자는 속도를 줄이지 않는 버스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시멘트 바닥에 끌리는 슬리퍼 소리와 자신의 숨소리가 오롯이 자신에게로 되돌아오는 시간이었다. 이른 아침이면 복도는 청색의 필름을 덮어 놓은 듯했다. 아이는 텅 빈 푸른빛의 복도를 따라 교실로 향했다. 복도의 창문이 흔들렸다. 아이는 긴장한 어깨를 타고 흘러내리는 가방끈을 추어올렸다. 서서히 물드는 창밖의 단풍은 날이 밝기 전엔 이미 떨어진 잎처럼 거뭇했다. 2-3 팻말이 붙은 교실 앞에 멈춰 선 아이가 자물쇠의 비밀번호를 맞추고 문을 열어젖혔다. 오래된 바퀴가 레일을 구르는 소리가 온 복도에 울려 퍼졌다. 아이가 교실로 들어섰다. 문을 닫자 적막이 밀려들었다. 하루 이틀의 일이 아닌데도 적막은 아이를 낯선 공간으로 빨아들이는 듯했다. 이따금 지저귀는 새의 울음소리만이 아이가 여전히 복도의 세계와 연결된 세계 속에 존재하고 있다는 신호 같았다.
    가방을 벗어 두고 창가로 걸음을 옮긴 아이가 창문을 열었다. 고지대에 있는 학교 건물에서 내려다보는 마을은 여전히 잠들어 있는 것처럼 고즈넉해 보였다. 아이는 폐허가 된 세계에 혼자 남겨지는 일을 상상했다. 그러나 아이가 보는 풍경 속에서는 매 순간 아주 사소한 일에서부터 아이가 감당할 수 없을 거대한 사건들이 일어나고 있을 것이었다. 새가 지저귀고, 지저귐이 멈추고, 바람이 아이의 머리를 훑고 지나갔다. 추위가 엄습했다. 이제 겨우 춘추복을 입을 시기인데도 뼛속까지 파고드는 추위가 느껴졌다. 아이는 스타킹 위로 두 번 접어 신은 검은 양말을 종아리 높이까지 끌어올렸다.
    아이는 비뚤어진 책상 줄을 맞추고, 지우다 만 칠판의 낙서를 지우고, 쓰레기통에 쌓인 휴지를 눌러 밟고, 칠판에 적힌 주번의 이름을 지우고 자신의 이름을 적어 넣었다. 교실을 거닐며 크게 심호흡을 하고 움츠러든 어깨를 펴고 팔을 흔드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런데도 추위는 물러가지 않았다.
    더 이상 할 일이 남지 않았을 때에야 아이는 뒷문이 잠겨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다시 새들의 지저귐이 멈췄고, 바람이 불었고, 바람이 멎자 창이 열려 있는데도 적막이 찾아왔다. 아이는 교실 곳곳을 예의주시했다. 텅 비어 있는 교실이 텅 비어 있다는 사실에 주의를 기울였다. 교실을 가로질러 교실 뒷벽에 걸린 거울 앞을 지날 때, 거울이 아이의 시선을 잡아챘다. 입술이 새파랬다. 아이는 입술을 문지르며 거울 앞으로 갔다. 생기가 돌아오지 않았다. 그때였다.
    그것을 누군가라 불러야 할까. 어떤 것이라 불러야 할까. 아이는 그것을 맞닥뜨렸다. 사 분단의 첫 번째 책상 뒤에서 허리를 꺾고 아이 쪽을 바라보는 여자가 불시에 거울 안에 침입했다. 거울을 통해 아이와 여자의 눈이 마주쳤다. 풍성한 검은 머리카락이 거울에 비친 아이의 어깨 위로 쏟아졌다. 찰나였다. 아이는 반사적으로 뒤를 돌아보았다. 아무것도 없다. 아이가 거울 속에서 본 것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있었다.
    어울리지 않는 시간과 장소에 존재하지만 않으면 사람이라 생각하지 않을 여지가 없었다. 그러나 그것은 앞문이 닫혀 있는데도 텅 비어 있던 교실에 불현듯 나타났다 홀연 사라졌다. 그것은 사람이 아니었다. 아이는 종종 그런 것을 보았다. 풀리지 않는 수학문제를 풀다 뒤를 돌아보았을 때 수학 선생의 곁에 서 있거나 낡은 빌라의 출입구를 지나칠 때 계단 밑 어둠 속에서 연기처럼 풀려 나와 선명한 형상이 되었다. 아이는 무심코 그것을 맞닥뜨리고 고개를 돌리고 나서야, 비로소 그것이 거기에 있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깨닫곤 했다. 돌아보면 그것은 존재하지 않았다. 그것은 눈 깜짝할 새에 사라졌다. 그리고 언제나 뒤늦게 몸이 굳었다. 등줄기에 식은땀이 흘렀다.
    아이는 한참 동안이나 그것이 있던 자리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말아 쥔 주먹 속의 손톱이 손바닥을 찔렀다. 용기가 필요했다. 용기, 라는 단어를 읊조리며 아이는 거울을 향해 시선을 옮겼다. 거울 속에는 핏기 없는 익숙한 얼굴과 교실의 풍경만이 부동하고 있었다. 아이는 몸을 이리저리 비틀며 거울 속의 등 뒤를 살폈고, 등 뒤에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나서야 교실 뒷문에 등을 대고 섰다. 그러면 조금 안심이 되었다. 밤새 온기를 빼앗긴 문의 온도가 등으로 전해져 왔다. 그러다 문득 그것이 문의 온도인지, 등 뒤에서 그것이 손을 뻗어오는 것인지가 의문스러웠다. 그제야 교실이 너무 어둡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는 교실 앞으로 달려갔다. 스위치를 켜자 교실이 밝아졌다. 아이는 스위치가 붙어 있는 문간에 붙박인 채 움직이지 않았다. 학급에 다른 누군가가 도착할 때까지.

 

 

    여자가 쥔 바늘 끝이 진분홍 옷감을 뚫고 지나갔다. 햇살 아래서 옷감은 본래보다 조금 옅은 빛을 냈다. 삼 년 먼저 떠난 영감이 좋아하던 색깔이라고, 옷의 주인은 소녀처럼 말했다. 이른 나이에 한복을 짓는 사람이 되기로 결정했을 때, 그녀는 단지 할머니가 만들던 전통의 옷을 현대적으로 지어 보고 싶을 뿐, 수의를 만들 생각은 추호도 한 적이 없었다. 그러나 흰 수의 대신 쪽물을 들인 푸른 삼베로 수의를 지어 달라는 노인의 부탁을 거절하지 못한 이후로 여자에게 색을 입힌 수의를 입겠다는 손님이 드물게 찾아왔다.
    쪽빛 수의를 지어 달라던 노인은 물로 돌아가 한평생 가보지 못한 곳들을 여행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녀는 지금쯤 어디를 떠돌고 있을까. 그런 생각을 하면 죽음은 결코 두려운 것이 아니었으나, 수의를 지을 때면 죽은 자가 아니라 아직 죽지 않은 자를 떠올려야 했으므로 그것을 마냥 천진하게 받아들일 수는 없었다. 때로 산 자의 옷을 지을 때에도 그의 죽음을 상상하게 된 것은 피치 못할 일이었다. 그러자 왜 약속된 형식에 따라 죽은 자의 옷이 결정되는지 알 것 같았다. 간혹 여자는 자신의 옷이 삶과 죽음 사이를 오가는 어딘가에 놓여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였다. 여자가 메모를 떼어와 간직하기 시작한 것은. 아침부터 그늘이 필요할 만큼 햇살이 이마를 덥히던 날이었다. 여자는 눈에 비치는 모든 것을 유심히 관찰하는 습관의 사람이었으므로, 화려한 꽃과 정갈한 정물뿐 아니라 뒤죽박죽인 도형과 색깔들로부터 영감을 얻는 사람이었으므로. 비에 젖었다가 말라 우그러진 종잇조각들, 뜨거운 햇살에 날아간 빛깔, 종이를 떼어낸 자리에 남은 테이프 자국이나 그 모든 것이 구성하는 복잡한 무늬들마저 옷을 짓거나 자수를 놓을 때의 소재가 되었다. 여자를 제외하면 누구도 특별히 발견해 눈여겨보지 않았을지도 모르는 메모였다. 모두가 볼 수 있는 곳에 놓여 있으나 아무도 발견해 내지 못하는 것. 어쩌면 그것이 메모를 붙인 자의 기대였을는지도 몰랐다.
    오늘 나는 이 삶을 끝낸다.
    왜 그런 메모가 버스정류장에 붙어 있는지 영문을 알 수 없었다. 처음에 여자는 그것을 외면했다. 한 번은 외면했던 것이 두 번이 되고, 세 번이 됐다. 매일 발견하는 같은 내용의 메모가 어제의 메모와 다르다는 사실을 여자가 깨닫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함부로 죽음에 다가가지 마라. 오래전 여자의 할머니는 말했다. 어떤 죽음은 살아 있는 자에게 들러붙기도 한단다. 네가 본 것을 털어버려야 한다. 하염없이 울고 앉은 여자의 등을 강인한 손이 쓰다듬었다. 여자는 죽음에 가까이 간 적이 있고, 죽음의 얼굴을 보았고, 누군가에게는 삶만큼이나 죽음이 절실할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았다. 여자는 어쩐지 더는 메모를 외면할 수 없었다. 여자는 메모를 떼어 주머니에 넣어오기 시작했다. 할머니의 전언을 지키지 못했다. 한 번 죽음에 연루된 자는 모든 죽음에 연루되어 버리는 건지도 모른다고, 여자는 생각했다.
    그래서였을 것이다. 여자는 매일 출근길 버스정류장에서 반복된 내용의 메모를 떼어 가지고 공방으로 왔다. 쉬는 날에도 부러 같은 시각에 버스정류장에 나섰다. 때로 메모의 주인이 궁금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와 마주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한편으로는 우연이라도 마주치지 말기를 바라는 마음이 앞섰다. 메모가 없는 날이면 가슴이 내려앉는 것 같아 일이 손에 잡히지 않기도 했지만, 메모는 사흘을 넘기지 않고 다시 무질서한 전단들 사이로 돌아와 있었다.
    딱 거기까지였다. 여자는 그 메모에 깊게 휘말리기를 원하지는 않았다. 그저 메모가 사라진 자리에 새로운 메모가 붙을 때, 메모가 사라졌다는 사실이 메시지가 되기만을 바랐다. 이제 여자의 낡은 바늘꽂이에는 수십 장의 메모가 바늘에 꿰어 있었다. 여자는 매일 공방의 서랍을 열 때마다 죽음을 선언하는 메모와 마주쳤다. 때로는 바늘귀에 실을 꿰거나 동정을 달다가도 메모를 떠올렸다. 그러면 메모는 옷에 입는 사람의 마음을 담으려는 여자의 내면을 혼란하게 헤집어놓았다. 여자는 그렇게 자신도 모르는 새에 목숨을 내려놓으려는 자의 마음속에 깃든 빛깔을 생각했다. 그리고 그럴 때면 어김없이, 아름답게 빛나는 뾰족한 바늘 끝이 여자의 손가락을 찔렀다.

 

 

    아이는 책상 앞에 앉아 친구들의 놀이를 지켜보았다. 친구들은 종종 책상을 모아 붙이고 귀신을 불렀다. 연필을 마주 잡고 주문을 외우면 연필은 종이 위에서 아이들의 손을 끌고 이리저리 움직였다. 여기에 오셨나요. 연필이 비뚤어진 원을 그렸다. 연필을 쥔 손 주변으로 아이들이 몰려들었다. 아이는 교실을 빙 둘러보았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창밖의 구름이 때때로 누군가의 얼굴, 혹은 다친 짐승의 형상처럼 보일 뿐이었다. 아이는 책상에 엎드려 고개를 파묻었다.
   너 또 생리 샜다. 익숙한 목소리가 귓가에 속삭였다. 아이의 뒷자리에 앉은 단발머리 아이의 목소리였다. 허벅지 안쪽이 유난히 덥고 축축했다. 종일 책상 앞에 앉아 있자면 생리 기간의 불청결한 느낌이 내내 지속되는 탓에 생리혈이 새는 것을 깨닫지 못했다. 벌써 학교에서만 세 번째였다. 아이는 자리에서 일어나 체육복 윗도리를 허리춤에 감고 한 팔에 바지를 걸쳤다. 귀신의 의지에 따라 움직이는 손을 둘러싸고 아이들이 비명을 질렀다.
   한여름에도 한기를 느끼기 시작하고부터였다. 한 달에 한 번, 생리 때가 되면 잠옷에, 이불에, 교복에, 청바지에 피가 번졌다. 아이의 엄마는 여기저기 생리혈을 묻히고 다니는 아이를 여자답지 못하다고 나무랐다. 아이의 잘못은 아니었다. 생리대를 갈고 난 뒤에도 두어 시간만 지나면 피가 흥건해 바지를 적셨다. 그러나 아이는 항변하지 않았다. 그것이 자신의 목숨을 위협할 만한 징조일까 봐. 믿지 않는 운명의 전조일까 봐. 아이는 교복을 체육복으로 갈아입고 피에 젖은 속옷 가장자리를 휴지로 문질러 닦고, 세면대에서 교복 치마에 묻은 얼룩을 지우며, 자신이 피할 수 없는 운명 따위를 예감했다.
   교실로 돌아왔을 때 아이들은 혼비백산 교실을 뛰어다니는 중이었다. 피로감을 느끼며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는 아이의 팔을 누군가 잡아끌었다. 봤어? 방금 마른하늘에 번개 친 거 봤냐고. 얘가 이제 그만 가라니까 갑자기 번쩍 하고. 조금 전만 해도 맑았던 하늘 너머에서 먹구름이 밀려오고 있었다. 그러니까 저기 말고 저쪽 맑은 하늘에서 벼락이 떨어졌다니까. 아이는 다시 사위를 살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데도 팔에 소름이 돋았다. 아이의 친구들은 보이지 않는 것을 믿고 아이는 믿기지 않는 것을 보고는 했으므로.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 좀 그만 해라. 수다스러운 소음을 뚫고 나지막한 목소리가 아이의 귓가에 와 닿았다. 멍청이들. 왜 두 명이 붙잡고 하는 거겠어. 서로 당기고 있는 거잖아. 아이의 뒷자리에 앉은 단발머리 아이가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혼잣말을 내뱉고 있었다. 다른 아이들은 그녀의 볼멘소리를 듣지 못한 모양이었다. 아이는 책상 앞으로 돌아가 앉았다. 그거 알아? 아이는 몸을 돌려 앉아 그녀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귀신은 뇌의 경련 때문에 보는 거야. 그게 뭐더라. 그래, 측두엽. 측두엽이 흐릿하거나 부분적인 사물을 임의로 완성해서 보게 만드는 거라고. 그러니까 귀신은 일종의 착시효과야. 아이가 미간을 찌푸렸다. 우리 나이엔 뇌가 엉망이 된대. 전두엽이 제 구실을 못 하고. 뭐라더라. 아무튼 우리 나이 때에 귀신을 보거나 간질에 걸린 것처럼 기절하는 아이들이 많은 건 뇌가 일시적으로 망가졌다가 회복되는 거라고. 그거 어디서 들은 거야? 아이가 묻는 동시에 차임이 울렸다. 그녀는 아이가 그녀의 말에 호기심을 느끼고 있다는 사실을 눈치 챈 듯, 다른 아이들과 달리 생각을 공유할 수 있다는 사실을 반기는 듯, 그러나 아이의 호기심을 완전한 호감으로 느끼지는 않는 듯 묘한 표정으로 아이를 바라봤다. 그녀의 책상 위에 교과서가 펼쳐졌다.
   교사가 열린 교실 문을 열고 들어오자 모여 있던 아이들이 흩어졌다. 이건 꼭 태워서 버려. 누군가 말했고, 연필을 쥐었던 아이 중 하나가 귀신이 다녀간 흔적이 남은 종이를 공책 사이에 접어 넣었다. 아이는 공책을 펴고 연필을 쥐었다. 아이들이 귀신을 불러내던 주문을 아주 작은 소리로 읊어 보았다. 그런데 그녀의 말이 사실이라면 왜 사람의 뇌는 존재하지 않는 것을 보게 만드는 걸까. 아이는 궁금했다. 자신이 보는 것 또한 뇌의 오류일까. 만일 그녀의 말이 사실이라면, 나의 뇌는 회복될 수 있을까. 완전히 망가져 버린 뇌로 존재하지 않는 것을 보는 일과 존재하지만 누구도 볼 수 없는 것을 보는 일 중에 어떤 것이 더 나은 일일지를, 아이는 저울질했다.
   다시 번개가 쳤다. 어느새 하늘이 새카맸다. 교실이 다시 한 번 아이들의 비명으로 가득 찼다. 문득 번개가 치는 먹구름 낀 하늘이 자신의 뇌 속과 같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망가진 뇌에서 곧 비가 쏟아질 것 같았다. 그러나 수업 시간 내내 비는 내리지 않았고, 습한 공기 중의 비릿한 피 냄새가 아이의 후각을 불편하게 자극할 뿐이었다.

 

 

    여자는 사람을 살려 본 적이 있다. 여자는 열네 살이었고, 외사촌인 언니는 스물이었다. 그녀의 자취방은 여자의 집에서 겨우 두 정류장쯤 떨어진 거리에 있었고, 여자는 종종 그 집에 머물렀다. 보수적인 부모에게는 홀로 자취를 하는 조카딸이 내내 눈에 밟혔으므로, 여자에게는 갖은 밑반찬과 생필품을 핑계로 갓 성인이 된 언니를 감시하는 역할이 주어졌던 것이다. 그러나 여자는 또한 사춘기의 여자 아이에 불과했다. 여자는 언니의 잦은 외박과 자취방에서 벌어지곤 하던 스무 살 미대생들의 술판에 대해 함구하는 대가로 종종 부모의 간섭에서 해방되는 자유를 누렸다.
    그날 밤 언니는 자정이 넘어서야 집으로 돌아왔다. 언니의 책상에 앉아 중간고사를 준비하던 여자는 그녀가 골목에 들어서자마자 언니가 돌아왔다는 사실을 눈치 챘다. 다 쉬어버린 목소리가 골목에 울려 퍼졌다. 술을 마신다 해도 소란은커녕 곧바로 잠에 들기가 일쑤인 사람이었다. 그런 그녀가 좁은 골목의 깊은 잠에 훼방을 놓으며 돌아온 것이다.
    전화통화를 하는 모양이었다. 여자는 그녀가 현관문을 열고 들어온 뒤에도 좁은 부엌과 방을 나누는 방문을 걸어 닫은 채 여자의 성마른 기운이 잦아들기만을 기다렸다. 전화통화는 한동안 이어졌다. 사랑이나 배신 같은 단어들, 그리고 좀처럼 그녀의 입에 오르내리는 법이 없던 욕설 따위가 쏟아져 나왔다. 여자는 창문을 열고 골목에 늘어선 창문들에 불이 들어오는 것을 보았다. 사람들이 창밖으로 몸을 내밀고, 누군가는 신고를 하겠다며 윽박질렀다. 그러나 다행히도 밤의 공기가 소리를 멀리까지 이끌고 가, 누구도 소리의 위치를 추적해 내지는 못했다.
    방문 밖에서 무언가 세차게 내던져지는 소리가 들린 건 여자가 슬그머니 창문을 닫았을 때였다. 대화는 더 이상 들려오지 않았고 자그마한 흐느낌만이 집 안에 흘러넘쳤다.
    여자는 싱크대에 팔을 괴고 위태롭게 서 있던 언니가 자신을 바라보던 눈빛을 잊지 못했다. 불신과 분노에 가득 찬 희번덕거리는 눈은, 물론 여자를 향한 것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여자는 두려웠다. 위트가 넘치고 다정했던 언니는 더 이상 거기에 없었다. 어찌해야 할 바를 알 수 없었다. 여자는 고작 열네 살에 불과했고, 어른의 세계에 진입해 버린 언니의 불행을 이해하거나 위로하는 법을 몰랐다. 물 줄까. 괜찮은 거야. 그런 말들은 단단한 벽을 향해 던진 작은 공처럼 튕겨져 나올 뿐이었다. 가, 너희 집으로 가. 팔을 붙잡는 여자를 뿌리치며 그녀는 말했다.
    그런 언니를 책망하려던 것은 아니었다. 여자는 그저 짖으며 뒤로 물러나는 개처럼 겁에 질려 있을 뿐이었다. 그깟 연애 때문에 동네 창피하게 무슨 짓을 하는 거냐고 소리를 질렀던 것도, 언니의 방탕한 학교생활을 이모와 이모부에게 이르겠다고 위협 아닌 위협을 했던 것도, 언니 때문에 시험을 망칠지도 모른다고 화를 낸 것도, 그저 겁이 나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고, 다만 여자가 모든 말을 쏟아내기를 기다린 뒤에 다시, 집으로 돌아가라고 말했다.
    여자는 그날 밤 들은 날카로운 소음을 영원히 잊을 수 없으리라 예감했다. 여자가 현관 밖 대문을 벗어나기도 전이었다. 집 안으로 뛰어들었을 땐 이미 모든 게 엉망이었다. 주방의 식기가 바닥에 나뒹굴었고, 깨진 유리파편들이 아무렇게나 흩어져 있었다. 파편 중의 하나는 이미 언니의 손목을 긁고 지나간 후였다. 그때부터 언니가 앰뷸런스에 실려 병원으로 이송되기까지의 기억은 분절되고 산만하게 뒤엉켜 있다. 어떻게 119에 전화를 걸었는지, 뭐라고 떠들었는지, 피를 흘리는 손을 붙잡아 보기나 했는지, 언니의 피가 고인 마룻바닥을 밟는 느낌이 어땠는지, 앰뷸런스 안의 풍경이 어땠는지를 여자는 기억하지 못했다.
    오직 분명한 것은, 여자가 그날 처음으로 죽음을 봤다는 사실이었다. 여자가 본 것은 죽어가는 사람이 아니라 죽음 그 자체였다. 그것은 잠깐이라도 방심하면 언니를 물어 채갈 것처럼 언니의 주변에 웅크리고 있었다. 그러나 음산하지는 않았고 오히려 이상한 활기를 띠고 있었다. 체념과 무기력만으로는 죽음에 다가갈 수 없다는 사실을 여자는 그때 알았다. 격렬하게 싸우는 자만이 죽음을 불러오고 죽음과 악수할 수 있었다. 죽음은 바로 그 생기를 거두어가는 것이었으므로, 여자가 본 죽음의 분위기란 붉은 구두를 신고 춤을 추는 듯한 기묘한 경쾌함이었다.
    메모를 발견한 이후로 여자는 자주 지난날들로 되돌아갔다. 누군가 그날을 반복하리라는 예감이 들면 섬뜩했지만, 또한 그러한 이유로 메모를 외면할 수도 더는 그 죽음에 접근할 수도 없었다. 여자는 자주 휴대전화를 만지작거렸다. 종종 신고를 해야 하는 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떠올랐다. 그러나 정작 실행해 옮기려 하면 이내 손이 떨리고 심장이 뛰고 까닭 없이 눈물이 흘렀다. 너의 잘못이 아니야. 네 탓이 아니라는 사실을 절대로 잊지 마. 여자는 오래전 상담사의 말을 떠올렸다. 여자가 전화기를 내려놓으려는 찰나, 번개가 번쩍였다. 전화벨이 울리기 시작했다. 진분홍 수의를 부탁한 노인의 전화였다.

 

 

    기도가 부실하니 장맛이 쓰게 변한 것이다. 무당은 독을 깼다. 검붉은 장이 깨진 항아리 바깥으로 출렁이며 넘쳤다. 아이는 뜨겁고 미끄럽고 찐득하게 흘러나오는 피의 빛깔을 떠올렸다.
    우리 집안의 신기가 너에게 내렸나 보다. 우리 언니도, 이모도, 이유도 없이 몸이 아팠어. 내림굿을 받아야 한다고 했는데. 집안의 내력이 아이에게 물려 내려온 것이 틀림없다고 아이의 엄마는 말했다. 그게 너에게 갔나 보다. 헛것을 본다는 아이의 말에 그녀는 아이를 무당 앞에 데려다 앉혔다. 얽은 얼굴의 무당은 아이의 수양엄마를 자처하며 신을 받지 않으려면 정성껏 기도를 드려야 한다고 했다. 아이는 채 열 살이 되기 전부터 무당의 신당에, 영험한 기운이 돈다는 절에 가 절을 했다. 향과 초가 타는 냄새에 구역질이 났지만, 무당의 방울소리는 마음에 들었다. 정신을 아득하게 만드는 청아한 방울소리는 아이가 영문을 알 수 없는 제의 앞에서 느끼는 두려움을 경감시켜 주었다. 아이는 무당의 말을 잘 따랐고 신당은 놀이터였다. 그러나 슬슬 머리가 굵어지는 아이의 믿음에 의심이 자라기 시작하는 중이었다.
    네 등에 아기신이 있다. 처음 무당이 말했을 때 정작 울음을 터뜨린 것은 아이의 엄마였다. 이 애에게 언니가 있어요. 넌 몰라. 네가 태어나기도 전에 유산된 아이야. 그 애가 여자 아이였나 보다. 그 애가 너를 찾아왔나 보다. 임신 초기의 유산이었는데도 아이의 엄마는 뱃속에 들었던 것을 언니라고 불렀다.
    그리고 아이는 악몽을 꿨다. 누구도 들여다볼 수 없는 악몽이었다. 아이조차 악몽을 기억하지 못하고, 악몽은 새벽녘의 알람처럼 아이의 잠을 깨울 뿐이었다. 악몽에서 깨어나면 무거운 것이 몸을 짓누르는 것처럼 옴짝달싹도 할 수 없었다. 어둠 속에서도 기척이 느껴졌다. 필사적으로 고개를 돌리면 머리맡에 사람의 두 발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한 번도 땅을 밟고 일어서 본 적 없는 것처럼 희고 단정했다. 눈이 어둠에 익숙해지면 발끝과 무릎, 배와 가슴이 눈에 들어왔고, 시선이 얼굴에 가 닿기도 전에 아이는 그것이 자신의 언니임을 직감했다.
    언니, 나보다 세상에 먼저 온 언니. 그러나 아이는 곧 깨달았다. 아이에게는 언니가 없었다. 언니가 존재했던 순간은 단 한 순간도 없다. 그러면 그는 누구인가. 잠들어 있던 언니가 눈을 홉뜨면 그녀는 몸을 일으키지 않고 고개만을 빳빳이 들어 아이를 노려보았다. 눈은 어둠 속에서도 빛났다. 아이는 경악 속에서 다시 잠에 들었다. 아니, 잠에서 깨어났다. 그것은 꿈일까 실제일까. 완전히 꿈에서 깬 뒤에 아이는 늘 잠옷이 풍덩 젖도록 식은땀을 흘렸다.
    꿈은 오랫동안 반복됐다. 그러나 언니의 혼이 자신의 꿈에 잠입하는 것이라고 생각해 왔던 아이는, 이제 그것이 단지 언니에 관한 이야기를 알고 있기 때문에 꾸는 악몽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뿐만 아니라 아이의 마음속에는 새로운 질문이 고개를 쳐들고 있었다. 만일 그 아이가 태어났다면 자신이 이 세상에 태어날 수 있었을까 하는 의문이었다. 차마 상상도 해본 적 없던 언니를 향한 엄마의 그리움이 자신의 연약한 마음에 생채기를 냈다는 사실을 아이는 슬슬 깨닫는 중이었다. 그것은 자신의 존재가 누군가를 대리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불안의 씨앗이었다. 정작 엄마에게는 만약이라고 묻지 못했지만, 아이는 자신의 신체가 성장하는 것을 중단시킬 수 없는 것과 같이 생각의 씨앗이 싹을 틔우는 것을 또한 멈출 수 없었다.
    이래서야 선생인지 뭔지 되기는 글렀다. 무당은 비닐장갑을 낀 손으로 흘러넘친 장을 쓸어 담으며 말했다. 자신의 불신에 대해 한 번도 말한 적 없지만, 무당은 아이의 변화를 알아보는 듯했다. 귀신은 뇌의 경련 때문에 보는 거야. 아이는 친구의 말을 떠올렸다. 한편으로 생리혈이 넘치고 한여름에도 추위에 떠는 몸을 생각하면 무당의 말을 믿지 않을 수도 없었다. 신을 받거나 막지 않으면 명을 다하지 못하고 죽을 거라는 이야기를 인이 박이도록 들어온 아이였다.
    아이는 여느 때처럼 신당에 들어 절을 했다. 무당의 방울소리가 아이의 몸을 꿰뚫고 지나가는 듯하고, 아이는 이대로 잠들어 영원히 깨어나지 못해도 좋겠다고 짐짓 생각했다. 곧 온몸에 열이 올랐다.

 

 

    어머니가 돌아가셨어요. 여자는 전화기를 붙든 채 한동안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죽음을 회피하려는 자도, 죽음을 꿈꾸는 자도 죽음을 대비하기란 불가능한 일처럼 여겨졌다. 여자는 미처 완성되지 못한 진분홍 수의를 생각하며, 이미 죽어버린 자의 수의를 만드는, 만들어야 하는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았다. 의미를 알 수 없는 손금이 손바닥 위를 가로지르고 있었다.

 

 

    아이는 버스정류장의 의자에서 몸을 일으켰다. 버스가 한참이나 도착하지 않았다. 버스 노선도를 들여다보지만 막차가 지나갔는지 아직 도착하지 않았는지는 알 수 없었다. 귀신을 보는 건 뇌의 경련 때문이야. 친구의 말이 거듭 떠올랐다. 견딜 수 없을 만큼 생생한 것들이 환영일 수도 있을까. 귀신을 온전히 믿을 수 없듯이 친구의 말 또한 있는 그대로 믿기지 않았다. 번개가 카메라의 플래시처럼 번쩍이고 천둥이 대기를 흔들었다. 오후부터 비가 내릴 듯 바람이 몰려오는데도 비는 내리지 않았다. 무당은 곧 비가 내릴 것이니 우산을 가져가라고 했다. 아이는 우산을 챙기지 않았다. 그런 미래쯤은 무당이 아니어도 내다볼 수 있다. 오늘은 무당이 틀렸다. 아직까지는. 아이는 생각하며 집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아이는 다섯 살에 그것을 처음 보았다. 문득 잠에서 깨어났을 때 아이의 부모는 서랍장에 기대 앉아 말다툼을 하는 중이었다. 낯선 장면이 아니었다. 그들의 관계는 아이가 아주 어렸을 적부터 줄곧 불안정했다. 분명 사랑으로 한 결혼이었다. 그런데도 그들은 불행했고, 서로를 이해할 수 없었고, 함께 삶의 고비를 넘어설 수도 없었다. 부모의 온전하고 깊은 애정을 받던 시절이 있을 테지만, 그 기억이 아이에게는 없다. 차라리 헤어지자. 그런 말이 다섯 살의 아이에게는 익숙했다. 아이가 사랑을 받지 못한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조각난 사랑의 파편들이 아이에게 모두 쏟아졌다. 아이는 부모 모두에게 유일한 사랑의 대상이었으므로, 그런 애정의 대상이 된다는 사실을 아이는 견뎌야 했다. 결핍을 예비한 사랑이었다.
    아이의 부모가 아이 앞에서 서로에 대한 증오와 경멸을 드러내지 않으려 애쓴다는 것을 아이는 모르지 않았다. 하지만 아이에게는 아이다워야만 한다는 의무가 부여되었고, 아이는 부모의 일을 외면했다. 아이는 혼자서 울었다. 그러나 그날 잠결에 본 부모의 다툼에 아이의 불안은 삽시간에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아이는 실눈을 뜨고 부모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말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퍽 흥분한 것처럼 보이는데도 두 사람의 목소리가 전혀 들려오지 않았다. 숨이 막혔고 눈물이 쏟아졌다.
    아이가 자신이 이 관계의 일부라는 사실을 주장하려던 순간이었다. 아이는 몸을 일으키려 했다. 그때 아이의 양손에 붙들린 것이 있었다. 부드럽고 온기가 느껴졌다. 온몸이 얼어붙었다. 아이는 고개를 돌렸다. 부모였다. 그들은 깊은 잠에 빠져 있었다. 머리가 쭈뼛 섰다. 아이는 이불 속으로 천천히 고개를 들이밀었다. 눈물과 콧물이 뒤범벅되어 흐르는데도 들키지 않으려 입을 꾹 다물었다. 자신이 본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없었다. 꿈은 아니었다. 아이는 그것이 부모가 잠든 사이에 빠져나온 그들의 영혼일 거라고 생각했다. 혹은 자신이 부모에게 일어날 파국을 앞서 내다보기라도 한 것 같았다. 그리고 마치 아이의 짐작이 예견이 된 듯, 두 사람의 이별이 순식간에 다가왔다. 아이는 부모에게 자신이 본 것에 대해 차마 이야기하지 못했다. 다만 부모에게는 반쪽을 잃는다는 것이 아이에게는 전부를 잃는 것과 다름이 없었으므로, 아버지를 잃은 아이가 부모의 영혼을 보는 일은 다시는 일어나지 않았다.
    다시 추위가 몰려왔다. 슬슬 일교차가 커지는 시기였다. 그러나 그것은 또한 아이의 기도가 부족한 탓이기도 했다. 아이는 추위를 떨치려 달기기 시작했다. 등에 매달린 가방이 튀어 올랐다가 떨어지며 아이의 어깨를 잡아 눌렀다. 차츰 속도가 붙어 집으로 가는 지름길에 들어섰을 때, 아이는 누군가 등 뒤에 있는 것만 같다고 느꼈다. 그럴 때면 아이는 혼잣말로 속삭였다. 뒤를 돌아봐. 뒤를 돌아봐. 뒤를 돌면 거기엔 아무것도 없다. 혹은 순식간에 나타났다 홀연히 사라진다. 아무런 해도 끼치지 않는다. 아무것도 없을 것이다. 아이는 고개를 돌려 뒤를 보았다.
    검은 그림자 하나가 아이를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그림자의 뒤를 따라 골목으로 들어선 자동차의 상향등이 아이의 눈동자에 검은 얼룩을 남겼다. 아이는 눈을 감았다 떴다. 그림자가 더욱 짙고 선명하게 아이를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 아이는 현기증을 느꼈고, 곧이어 아이의 몸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아이는 자신의 몸이 주저앉는 소리를 듣지 못했다. 검은 그림자가 아이를 향해 달려왔다. 아이는 달아날 수 없었다. 그제야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여자는 창에 흐르는 빗방울을 바라보았다. 빗방울은 한 방울씩 맺히다가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주르륵 흘러내렸다. 젖은 머리카락에서 물방울이 떨어졌다. 장례식장에 다녀오는 길이었다. 완성되지 않은 수의는 노인의 관에 함께 들어갈 거라 했다. 여자는 옷을 완성해 보겠다고 했지만, 노인의 아들은 폐를 끼치지 않겠다며 여자의 제안을 한사코 거절했다. 여자는 사려 깊은 아들에게 내심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노인이 지불한 값은 옷감이 든 상자에 넣어 부의로 돌려주었다. 모든 게 장례식장의 주차장 한편에서 일어난 일이었다. 여자는 장례식장 안으로는 들어가지 못했다. 외사촌인 언니의 장례식 이후로는 장례식장에 들어가 본 적이 없었다. 그때 이후로 여자는 장례식장에만 들어서면 호흡이 가빠지고 몸이 떨려 왔다.
    언니는 호텔방에서 약을 과다복용 했고 뒤늦게 발견되어 중환자실에서 사흘을 보낸 뒤에 숨을 거두었다. 여자가 언니를 살린 지 칠 년 만이었고, 언니를 다시 보는 것도 칠 년 만이었다. 영정 앞에서 헌화를 했을 때 언니에게 죽음이 임박해 오던 순간의 공포가 여자를 덮쳤다. 그건 시작에 불과했다. 여자는 주저앉은 채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했고, 집으로 돌아온 뒤에도 며칠 동안은 먹을 것을 족족 토해 내고야 말았다. 여자는 뒤늦게 언니의 자살시도가 자신에게 정신적 외상을 입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수많은 자살시도자가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건진 뒤에 삶의 의미를 새롭게 깨닫는다 했다. 그러나 언니는 달랐다. 그녀는 여자에게 자신을 살린 이유를 물었다. 죄책감이 드는 동시에 원망의 감정이 들었다. 죄책감은 그날 모진 말을 하고 집 밖으로 나와 버린 것이 그녀를 위험에 빠뜨린 것 같다는 생각 때문이었고, 원망은 그녀가 자신에게 보게 만든 죽음의 광경에 대한 것이었다. 그녀라고 다르지 않은 듯했다. 그녀 또한 여자에게 죄책감과 원망을 함께 느끼는 모양이었다. 그녀는 전처럼 살가운 언니로 돌아오지 못했다. 혈관 접합 수술을 받은 언니가 퇴원한 이후, 두 사람은 자연스럽게 더는 멀어질 수 없을 만큼 멀어졌다.
    여자는 얼마 지나지 않아 언니의 자살시도가 단지 실패한 연애 때문만은 아니라고, 나아가서는 그것과 무관한 것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기에 이르렀다. 곧 두 번째 자살시도가 이어진 탓이었다. 그녀는 실행할 기회만 있다면 언제라도 죽음을 선택하려고 작정한 사람 같았다. 종종 그녀의 자살시도 소식이 친척들의 입을 통해 전해졌다. 연애와 학업 문제뿐 아니라 과중한 스트레스를 겪는 것만으로도 그녀는 자살을 시도했다. 아니 그마저 가족들이 가져다 붙인 이유일 뿐, 누구도 언니가 목숨을 끊으려 하는 이유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하는 듯했다. 어쩌면 그녀는 그저 죽기 위해 그 모든 것들을 변명으로 휘두르고 있는 것일지도 몰랐다.
    약은 그녀를 쾌활하게 만들었지만, 죽음에 대한 갈망을 중단시키지는 못했다. 여자의 짐작대로였다. 그녀는 결국 자살에 성공했다. 삼 년 가까이 자살시도를 하지 않았을 무렵이었다. 모든 것이 정상궤도에 오르는 듯했다. 버젓이 직장에 다니고, 인간관계에도 특별한 문제가 없었다. 그런데도 그녀는 죽음을 선택했다. 유서에는 드디어 삶에 만개한 행복과 평안이 언제 깨어질지 모른다는 불안을 견딜 수 없다고 적혀 있었다. 여자로서는 납득할 수 없는 죽음이었다.
    여자는 젖은 머리를 수건으로 감싸며 서랍을 열었다. 바늘꽂이에 메모들이 가지런히 꽂혀 있었다. 여자는 메모를 바늘에서 뽑아냈다. 그러고는 메모를 한 장씩 넘겨보았다. 메모의 필체가 매번 조금씩 달랐다. 비뚤어진 글씨보다 가지런한 글씨가 여자의 마음에 새겨졌다. 여자는 죽음에 가까이 간 적이 있고, 죽음의 얼굴을 보았기 때문이었다. 누군가는 정말로 죽기 위해서만 죽음을 실행한다는 걸, 여자는 알았다.

 

 

    수술대의 불빛이 너무 밝았다. 눈이 부셔 저절로 눈이 감겼다. 눈 감지 마세요. 아이는 자신의 오른쪽 난소에 붙어 있는 남자 주먹 크기의 종양을 생각했다. 이렇게 될 때까지 병원에 데려오지 않고 뭘 하신 거예요. 촉진으로도 만져질 정도로 크기가 커요. 이런 게 꼬이기라도 하면 응급수술을 해야 하는 건데 그전에 발견한 게 천만다행입니다. 의사가 겁을 주려는 건지 안심을 시키려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아이의 엄마는 또다시 죄인처럼 눈물을 흘렸지만, 아이는 묘한 쾌감을 느꼈다. 그것은 분명한 가능성이었다. 종양은 아이의 생명을 위협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오른쪽 난소에 물리적으로 존재하고 제거하기만 한다면 확실하게 사라질 것이었다. 그것은 명확한 원인이자 결과였다. 눈앞에 나타났다 사라지는 그것들과는 달랐다. 눈 뜨고 계셔야 돼요. 잠들지 않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잠들지 않고 자신을 병들게 했던 세포 덩어리가 몸 밖으로 빠져나오는 것을 보고 싶었다. 하나, 둘, 셋, 눈을 멀게 할 것 같던 수술대의 불빛이 흐릿해졌다. 넷, 다섯, 여섯, 아른거리던 흰 빛이 이내 꺼져버렸다.
    나에겐 이제 너밖에 없어. 너밖에 없다. 아이의 엄마는 아이의 어깨를 안고 흐느꼈다. 시큼한 입김이 아이의 뺨에 내려앉았다. 아이는 엄마의 어깨 위로 이불을 끌어올리며 어른이 될 시간이 되었다고 생각했다. 고작 여섯 살의 아이였다. 너밖에 없다. 그 말이 아이를 어른으로 만들었다. 아이는 사랑받기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엄마의 슬픔을 위로하기 위해서라면 어떤 일이든 불사하리라 다짐했다. 다짐 속에서 아이의 그림자가 길게 등 뒤로 뻗어 나가고 있었다. 아이는 어른처럼 걸어 문지방을 넘었다. 아이의 길게 자란 그림자가 아이의 발뒤꿈치에 붙어 질질 끌려 나왔다. 그 시절부터였다. 간유리가 끼워진 중문 너머에 검은 사람의 그림자가 서 있었다. 아이는 비명이 튀어나오려는 입을 꾹 다물고 주먹을 쥐었다. 눈에 거슬리는 그것을 짐짓 모른 체하며 물 잔에 물을 따랐다. 아이는 보지 않고 물었다. 누구세요.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곁눈질로 보면 그림자는 여전히 거기에 서 있었다. 물 잔에 물이 넘쳤다. 누구세요. 아이는 거실을 가로질렀다. 그림자가 흔들렸다. 누구세요. 중문을 열자, 아무것도 없었다. 현관의 등에 불이 들어왔다. 아이는 흠칫 놀라며 고개를 들었다. 하얀 불빛이 아른거리다 이내 꺼져버렸다.
    아이는 격심한 통증 속에서 깨어났다. 시야가 뿌옇게 번져 보였다. 귓가에 바이털 사인을 알리는 기계음이 맴돌았다. 아랫배에 고통이 밀려들었다. 아이는 신음인지 비명인지 알 수 없을 소리를 냈다. 진통제 놓아 드렸어요. 곧 괜찮아질 거예요. 간호사의 목소리가 들렸다. 간신히 눈을 뜨면 흰 천장이 아른거렸다. 어지러운 시야 속에 희부옇게 나타났다 끝내 형상을 이루지 못하고 흩어지는 것이 있다. 아이는 정신을 집중했다. 서서히 초점이 맞는 듯했고, 그 순간 아른거리던 흰 천장의 빛이 꺼졌다.
    이미 세 번이나 주사를 놓았어요. 중독 위험이 있어 더는 놓아 드릴 수 없습니다. 아랫배에 올려놓은 모래주머니가 불에 달군 것처럼 뜨거웠다. 아이는 소리를 질렀다. 엄마가 아이의 손을 붙잡았다. 조금만 참아. 수술 잘 되었대. 엄마가 미안해. 차가운 손이 아이의 이마를 짚었다. 고통 속에서 시야가 차츰 선명해졌다. 병실 천장에 진 창틀의 긴 그림자가 일렁이는 듯 보였다. 사랑해. 엄마, 그건 사랑이 아니에요. 나는 그런 사랑을 원하지 않았어요. 아이는 신음하며 말했다. 그리고 엄마의 흔들리는 눈을 보았다. 아이는 드디어 자신이 정확히는 알 수 없는 무엇인가로부터 해방되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한편으로 벗어나기 어려운 새로운 시련이 닥쳐오기 시작했다는 것도. 시야가 맑아지는 동시에 고통 또한 선명했다.

 

 

    여자는 동이 트기 전의 버스정류장으로 나섰다. 평소보다 이른 시간 버스정류장은 텅 비어 있었다. 여전히 어지럽게 붙어 있는 전단지 사이에 더는 메모가 붙지 않았다. 얼마 전 근방 중학교의 여학생 하나가 육교 위에서 투신을 했다는 이야기가 마을을 발칵 뒤집어 놓았다. 아이가 왜 자살을 선택했는지에 대해서는 무수한 소문이 나돌았지만, 그녀에게는 무엇 하나도 확실한 이유로 여겨지지 않았다. 여자는 메모에 대해서 함구했다. 메모는 아이를 되살려낼 수 없었다. 메모가 아이의 것이라 단정 지을 수는 더더욱 없었다. 모든 게 우연이었을지도 몰랐다. 그렇게 믿고 싶었다.
    여자는 주머니에서 작은 조각보 한 장을 꺼냈다. 온갖 빛깔이 뒤섞인 조각보였다.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는 사람의 마음속에 깃든 빛깔을 여자는 도통 떠올리지 못했다. 조각보가 정류장의 의자 위에 내려앉았다.
    곧 버스가 들어왔다. 여자는 손을 흔들지 않았다. 버스가 여자 앞에 멈춰 섰다. 여자는 버스에 탑승하지 않았다. 버스가 떠났고, 여자는 다음 정류장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이 정류장에서 다시는 버스를 타거나 내리는 일이 없으리라고, 여자는 생각했다. 깨진 유리파편이 튀어 올라 눈동자에 박히면 그 눈으로는 무엇을 보게 될까. 여자가 질문할 때, 겨울이 다가오고 있었다.

 

 

    흰 백합과 국화 다발, 반 아이들의 편지가 수북한 책상이 아이의 등 뒤에 놓여 있었다. 아이가 돌아왔을 때 단발머리의 친구는 교실에 남아 있지 않았다. 그녀는 학교 앞의 육교 위에서 떨어졌다. 오랫동안 우울증을 앓고 있었다고 했다. 오랫동안 상담과 약물치료를 병행하고 있었다는 것 이상은 아이도 듣지 못했다. 친구의 죽음은 반 아이들은 물론 학교와 학부모 전체를 한바탕 휘저어 놓았다.
    귀신을 보는 일이 뇌의 오류일 뿐이라는 사실을 친구가 어째서 알고 있었는지 아이도 이제는 알 것 같았다. 아이는 더는 신당에 절을 하지 않았다. 아이의 엄마는 아이를 무당 대신 심리상담사에게 데려갔다. 학급 친구의 자살이 아이에게 새로운 기회를 준 셈이었다. 아이는 첫 상담에서 자신이 보는 것이 정말로 뇌의 문제일 수 있는지를 가장 먼저 물었다. 상담사는 아이의 뇌는 변화와 성장의 시기에 들어섰다고 말해 주었다. 아이의 친구가 말한 뇌의 오류는 동시에 인간이 자신을 보호하도록 만들어진 특별한 기능이기도 하다는 말을 덧붙였다. 그는 그간의 상처를 보듬고 불안을 조절할 수 있게 되면 아이가 보는 것들이 사라지리라고 했다. 그러나 약을 먹기 시작하자마자 아이의 눈에 보이던 것들이 서서히 보이지 않기 시작했다. 이제는 정말로 괜찮을 거라고 아이는 믿고 싶었다. 어쩌면 친구도 그런 것을 두려워한 게 아니었을까. 믿고 싶지 않은 것을 믿어버리고 말았던 자신의 마음에 저항하기 위해서.
    차임이 울렸다. 자신의 자리로 가기 위해 책상 사이를 달리던 한 아이가 아이의 등 뒤에서 속도를 줄였다. 아이들은 더 이상 귀신을 부르는 놀이를 하지 않았다. 고요한 슬픔이 교실을 가로질러 퍼져 나갔다.
    아이는 아직 묵직하게 느껴지는 자신의 아랫배에 손을 얹었다. 교사가 교실 문을 열자 복도의 차가운 공기가 교실 안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아이는 추위를 느끼지 않았다. 우연히 친구를 보는 일이 일어날 수도 있을까. 아이는 고개를 돌렸다. 아무도 없는 빈자리가 눈에 들어왔고, 책상 위의 시들어 가는 꽃잎들만이 가볍게 흔들렸다. 다시는 볼 수 없을까. 아이가 칠판을 향해 몸을 돌려 앉을 때, 다시 등 뒤에 무언가 다가오는 것이 있었다. 아이는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작가소개 / 천희란

2015년 《현대문학》 신인추천으로 등단. 소설집 『영의 기원』이 있다.

 

   《문장웹진 2018년 0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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