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하자고 - 임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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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소설]

 

 

다시하자고

 

 

임솔아

 

 

 

    다시 하자고 지은이 말했다.
    “이걸 세워야겠어.”
    지은은 침대를 가리켰다. 옆방에서 건너오는 소음을 줄이려면 매트리스를 벽에 세워 놓아야 한다고 했다. 바닥에서 자면 내 허리 통증도 완화될 거라 했다. 빗소리를 들으며 자고 싶다며 침대를 오른쪽으로 옮겼는가 하면, 화장실에서 먼 곳에서 자는 것이 풍수에 좋다며 왼쪽으로 다시 옮겼다. 배우의 일상을 보여주는 예능 프로그램을 보고서는 침대를 방 한가운데로 옮겼다. 드넓은 전면 창을 바라보며 배우는 기지개를 켰다. 드넓은 방 한가운데에 드넓은 침대가 놓여 있었다. 그 침대가 우리 방보다 넓어 보였다. 이 방에서 침대를 놓을 수 있는 색다른 장소는 더 이상 없었다. 이러다가 침대를 세워 놓고 싶을 때가 올 거라고 농담처럼 지은에게 말한 적이 있는데 현실이 되었다.
    오전에는 냉동실에 낀 서리를 긁어내자고 했다. 그러다 냉장고 청소를 하자고 했다. 나는 문화센터 수영장에 가서 입영 연습을 할 계획이었다. 가라앉지 않고 제자리에 있는 기술을 마지막으로 마스터해야만 인명구조요원 자격증을 딸 수 있다. 수영을 시작할 때 내가 가장 습득하고 싶었던 것은 자유형도 아니고 평영도 아니고 바로 입영이었다.
    “너만 끝까지 착한 년이지.”
    지은은 지금껏 서른 번쯤 내게 그 말을 했다. 착한 사람이 되는 방식으로 다른 사람을 못된 사람으로 만들어 간다고 했다. 그다지 중요할 리 없던 내 입장을 나는 쉽게 폐기했다. 그것으로 양보를 가장했다. 구경꾼이 될 수 있었기 때문에, 관찰하기에 좋은 위치를 차지하여 타인을 꿰뚫어보았다. 그게 내 못된 면모라고 지은은 주장했다.
    매트리스에 예쁜 천을 덮고 폴라로이드 사진들을 걸어 놓고 싶다고 지은은 말했다. 지은은 이미 폴라로이드 사진들을 책상 위에 꺼내 놓고 있었다. 신영과 주혜, 미희와 미선, 시한과 유선, 영은과 지희, 규리와 소미, 주영과 세라. 한 장 한 장마다 우리가 사용했던 이름들이 적혀 있었다.
    지하철 공공화장실에서 지은이 처음으로 이름을 주웠다. 휴지걸이 위에 놓여 있었다고 했다.
    “주신영을 주웠네.”
    지갑을 흔들며 지은은 말했다.
    “다시 해보자. 주신영으로.”
    그날부터 지은은 주신영이 되었다. 주신영의 생일 때 패밀리 레스토랑 사이트에 접속했다. 주신영의 주민등록번호를 넣고 생일쿠폰을 인쇄했다. 레스토랑 직원들이 고깔모자를 쓰고서 우리를 맞이했다. 한 직원은 우쿨렐레를 들고 있었고, 한 직원은 케이크를 들고 있었다. 폴라로이드 사진도 찍어 주었다. ‘신영과 주혜’라고 사진에 적었다.
    “다시 해보자 수희야.”
    지은이 노트를 꺼냈다. 첫 장을 넘기자 방의 도면이 나타났다. 두 번째 장을 넘기자 방의 도면이 나타났다. 똑같은 도면이 그려진 페이지들을 지은은 넘기고 또 넘겼다. 빈 페이지에 방의 도면을 능숙하게 그려 나갔다. 옮길 수 없는 것들을 가장 먼저 표시했다. 방문과 욕실과 창문과 완강기였다. 위기 시 사용하여 창문으로 탈출하라고 완강기에 적혀 있었다. 저 작은 창으로 사람이 빠져나갈 리가 없다고 지은이 투덜댔다. 완강기가 없었더라면 창문이 작다는 생각을 하지 않아도 되었을 것이다. 직사각형의 도면 안에 지은은 네모난 가구들을 빽빽하게 그려 나갔다. 테트리스 게임처럼 빈 공간이 없었다.
    가구의 위치를 바꾸려면 그 자리에 있던 가구를 또 다른 가구 위에 쌓아야 했다. 나는 책상을 옮기면서 오븐에 새끼발가락을 찧었다. 전기밥솥도 없는 방에서 내가 좋아하는 카스텔라를 구워 주고 싶다며 지은이 사온 것이었다. 원두를 갈아 모닝커피를 마시고 싶다며 전동 커피 그라인더를 사오기도 했다. 텔레비전 크기만 한 별자리 지구본을 주문하기도 했다. 전원을 켜면 대지가 사라진 지구 표면에 별들이 나타났다. 여덟 가지의 전기제품을 연결해 놓은 콘센트가 과부하로 터져버린 적도 있었다. 빽빽하게 들어찬 물건 때문에 화장실에 가려면 게걸음을 했다. 지은은 늘 더 좋은 생활을 궁리했다. 옆방 사람들은 최적의 물건들로 최적의 배치를 해 방을 꾸며 놨을 거라 믿었다.
    지은이 강아지를 데리고 온 적도 있었다. 같은 가게 아르바이트생이 키우는 개가 낳은 새끼였다. 강아지는 침대 밑으로 들어가서 나오지 않았다. 사료를 쥐고서 침대 밑으로 손을 뻗었다. 강아지는 한발 한발 내 손을 향해 기어왔다. 허겁지겁 사료를 삼키고는 침대 바깥으로 나와 내 목덜미 냄새와 머리카락 냄새를 맡았다. 내 베개에 올라가 똬리를 틀고서 잠을 잤다. 너머에서 발소리가 들려올 때마다 강아지는 짖었다. 간식으로 달래도 보고 무섭게 혼도 내보았다. 강아지는 까만 눈동자 속에 어리둥절함을 가득 담아 내 눈동자를 빤히 들여다보았다. 강아지를 내보내거나 퇴실을 하라고 관리인은 통보했다. 방을 나가자는 말을 나는 차마 하지 못했고, 지은은 강아지를 돌려보냈다.
    “서울 아파트는 개를 못 키우게 한다더니.”
    여긴 아파트가 아니라고 나는 말했다.
    이제 침대 프레임을 분해하자고 지은이 말했다. 합판으로 되어 있는 프레임을 분해해서 매트리스 뒤에 함께 세워 놓을 계획이라 했다. 침대 프레임에 박혀 있는 나사를 십자드라이버로 제거할 차례였다. 드라이버가 헛돌았다. 십자 홈이 마모되어 있었다. 지은은 마모된 나사를 제거하는 방법을 검색했다. 볼트 리무버라는 공구를 주문했다. 배송이 되려면 이삼일의 시간이 필요했다.

 

    “점주한테 문자 보내자.”
    주영은 휴대폰을 집었다. 어젯밤에 아버지께서 돌아가셨다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세라랑 함께 고향으로 돌아갑니다. 갑작스럽게 그만두게 되어 정말로 죄송합니다. 주영은 이런 식으로 아버지를 계속 죽여 왔다. 아버지가 없는 사람의 아버지는 죽이고 싶을 때마다 죽일 수 있어서였다. 아버지를 죽여서 우리는 안면도와 해운대에 갔고 자라섬 재즈페스티벌에 참여했다. 믿어 주지 않는 점주도 있었다. 누가 거짓말로 아버지를 죽이느냐고 화를 내면 그만이었다. 아버지를 죽일 때마다 우리는 새 이름을 지어냈고 새 일자리를 찾아냈다.
    나는 그때부터 세라가 아닌 수희가 되었다. 주영은 지은이 되었다.
    “수희랑 지은이는 국어교육과라고 하자.”
    지은은 지은과 수희를 만들어 나갔다. 수희는 지방 사범대학교 학생이었다. 임용고시 준비를 시작하기 전에 사회생활을 해보고 싶었다. 대학로 소극장에서 연극을 보고 싶었고 여의나루역 잔디밭에서 원터치 텐트를 펴고 낮잠을 자다가 치킨을 배달시켜 먹어 보고 싶었다. 같은 학과 동기인 지은은 휴학을 하고 본격적으로 동화를 써보고 싶었다. 수희와 지은은 3학년 1학기가 끝나자마자 함께 휴학을 했고 서울로 상경했다.
    지은은 카페의 이름을 마음에 들어 했다. The Secret Garden. 카페의 한쪽 창으로는 명동 거리가, 반대편 창으로는 중국 대사관의 텅 빈 정원이 내려다보였다. 지은은 조건이 조금 나아도, 점주가 반말을 쓴다거나 유니폼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그곳에서는 일하지 않는 걸 선택했다. 시크릿 가든의 점주는 에이프런에 달린 배지를 만지작거렸다. 에이프런 앞주머니에 수십 개의 배지가 달려 있었다. 여러 자세의 고양이와 여러 표정의 강아지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면접을 볼 때마다 점주들은 신분을 물었다. 지은과 나에게는 신분이랄 게 없었다. 대학에 재학 중이거나 휴학 중인 것도, 바리스타 자격증이나 서울 주소지의 주민등록증을 갖고 있는 것도 아니었다. 나에게는 문화센터 수영장 회원증이 있었고 지은에게는 열일곱 살 때부터 모아 온 열댓 장의 헌혈증서가 있었지만, 이런 종류의 신분은 신뢰를 얻을 수 없으므로 우리는 거짓말을 지어냈다.
    “두 분 많이 닮았네요.”
    지은과 내가 서로 닮았다는 이유로 점주는 우리를 채용했다. 우리는 같은 미용실에서 같은 헤어 디자이너에게 머리카락을 잘랐다. 색깔만 다른 똑같은 디자인의 러닝화를 신고 다녔다. 하나의 립글로즈를 함께 발랐고, 똑같은 매니큐어를 발랐다. 지은이 상한 음식을 먹고 배탈이 난 날에 나도 배탈이 났다. 가장 많은 시간 동안 내가 바라보고 지내는 얼굴이 지은의 얼굴이어서, 지은의 표정이 내 얼굴에 옮겨오고 내 표정이 지은에게 옮겨갔다. 가장 많은 이야기를 나누는 것도 지은이어서, 지은의 말버릇이 나에게 옮겨오고 내 생각들이 지은을 감염시켰다. 지은과 나는 한 개의 열쇠를 함께 사용했다. 그래도 우리는 달랐다. 길을 걷다가 싸우면 지은은 발걸음이 빨라지는 편이었고 나는 온몸에 힘이 빠져서 발걸음이 느려지는 편이었다. 지은은 경보를 하듯 힘차게 걸어갔다. 씩씩하게 사라져 가는 지은의 뒷모습을 노려보며 내 발걸음은 더뎌졌다. 내가 열쇠를 갖고 있을 때에는 집에 먼저 도착한 지은이 방문 앞에 서서 내가 올 때까지 나를 기다려야 했다. 지은이 열쇠를 갖고 있을 때에는 먼저 도착한 지은이 문을 열고 들어가 방문을 잠가버렸다. 지은이 방문을 열어 주지 않을 때마다 열쇠를 복사해야겠다고 나는 다짐했다. 열쇠를 복사하면 싸워도 서로를 기다리지 않아도 되었다. 각자 들어오고 싶은 시간에 방에 들어올 수 있었고 나가고 싶은 시간에 방에서 나갈 수 있었다. 바로 그 이유 때문에 우리는 열쇠를 복사하지 않았다.

 

    볼트 리무버는 한쪽 끝이 송곳처럼 뾰족했고 반대쪽은 나사형이었다. 나는 사용설명서를 읽어 나갔다. 볼트 리무버의 뾰족한 끝(A면)을 사용하여 마모된 나사에 구멍을 낸 후에, 나사형 끝(B면)을 사용하여 나사를 뽑아내라고 적혀 있었다. 볼트 리무버를 쥐고서 나사를 힘껏 눌렀다. 나사에 구멍이 나기 전에 내 손바닥에 구멍이 날 것 같았다. 볼트 리무버 사용법을 검색해 보았다. 전동 드릴을 꽂아서 사용해야 한다고 적혀 있었다.
    “드릴까지 꼭 사야 할까?”
    “볼트 리무버를 이미 샀잖아.”
    “드릴을 우리가 다룰 수 있을까?”
    “해보지 뭐.”
    지은은 쇼핑몰에서 전동 드릴을 주문했다. 나는 말리지 않았다. 싫은 것을 의문형으로 표현해서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눈치를 보게 만드는 버릇이 내게 있다고 지은이 말한 적이 있었다. 지은은 내가 그런 방식으로 매사에 책임을 상대방에게 전가한다고 했다. 이도저도 아닌 애매한 말로 세이프 존을 확보해 놓고 상대를 시험한다고 했다. 싫지만 싫다고 말할 수가 없거나 싫지만 양보가 가능한 정도일 때에 사용하던 어법이었지만, 지은을 괴롭게 만드는 것만은 틀림이 없었다. 지은에게는 내가 고쳐 보도록 노력하겠다고 약속했지만 지은을 제외하면 내 의문형을 신경 쓰는 타인은 없었다.
    발을 들어 발바닥을 보았다. 새까맸다. 먼지 뭉치들이 방바닥을 굴러다녔다. 책꽂이는 화장실을 가로막고 있었다. 싱크대 위에는 옷들이 쌓여 있었다. 며칠 동안은 이런 상태로 지내야 했다. 지은이 살던 집을 떠올렸다. 행거와 책상과 침대가 빼곡하게 들어찬 자그마한 방에는 도저히 어울리지 않을 커다란 플로어 스탠드가 있었다. 지은이 선물 받은 소품들이 틈새마다 진열되어 있었다. 한쪽 벽에는 행거가 있었고, 온갖 종류의 모자와 가방과 재킷들이 행거를 무너뜨릴 것처럼 매달려 있었다. 지은이 자라나고 지은이 살아온 시간을 방의 크기가 감당하지 못하는 느낌이었다. 작아진 신발 속에 커져버린 발가락들이 우글거리는 것과 비슷했다. 이 방에서의 지은도 다르지 않았다. 물 위에서 사는 다큐 속 가족들처럼 예정된 불행에 실려 가는 느낌이었다. 다큐멘터리 속 가족은 자그마한 나무 보트에서 살았고, 부부에게는 열한 명의 자녀가 있었다. 원래 열일곱 명이었는데 네 명은 굶어 죽고 두 명은 물에 빠져 죽었다고 했다. 남은 열한 명의 아이들이 보트에 다닥다닥 앉아 있었다.

 

    새 유니폼을 입고 가게를 탐색하는 것으로 첫 근무는 시작되었다. 지은과 나는 청소를 하는 법과 커피 머신을 다루는 법, 포스기를 입력하는 법을 점주로부터 전수받았다. 가게마다 테이블 번호를 정하는 방식이 달랐고 메뉴 입력 방식이 달랐고 제조 레시피가 달랐다. 내 이름이 무엇이었는지도 헷갈리지 않도록 다시 한 번 생각해야 했다. 지은이 나를 불러도 알아듣지 못하고 한 박자 늦게 대답할 때도 있었다. 지은을 부르면서 주영이라고 부르거나, 규리라고 부르기도 했다. 지은도 마찬가지였다. 점주는 주방으로 지은과 나를 안내했다. 창문을 열었다. 창문 아래 난간에 사료 그릇 세 개가 놓여 있었다.
    “밥부터 주세요.”
    점주는 빈 사료 그릇을 꺼내어 창고로 가져갔다. 창고 한편에 고양이 사료 부대가 쌓여 있었다.
    “현미 맛 한 그릇. 양고기 맛 한 그릇. 흰살바다생선 맛 한 그릇.”
    닭고기 맛 사료를 점주는 오독오독 씹어 먹었다.
    “저는 고양이 사료 감별사예요.”
    “그런 직업도 있어요?”
    “고양이가 두루두루 좋아할 만한 맛인지 평가하는 거죠.”
    “고양이 입맛을 어떻게 알아서요?”
    “먹다 보면 알 수 있어요.”
    “고양이가 아닌데도요?”
    “직업이란 건 사람들만의 세계인걸요.”
    점주는 창문을 열었다. 난간에 고양이들이 모여 있었다.
    “저도 사료 감별법을 배워 보고 싶어요.”
    사료 그릇을 쳐다보며 지은이 말했다. 고양이들도 일제히 사료 그릇을 쳐다보고 있었다.

 

    손님들이 테이블에 마주 앉아 있을 때, 한 사람은 텅 빈 정원만 기억하고 한 사람은 명동 골목 간판만 기억할 거라고 지은은 말했다. 우리는 손님이 없을 때마다 공사가 중단된 중국 대사관 정원을 바라보았다. 높은 벽돌담으로 중국 대사관은 둘러싸여 있었다. 벽돌담의 그림자가 천천히 움직였다. 그곳에서는 모든 것이 느리게 움직였다. 나뭇잎이 떨어져 천천히 가라앉았고 천천히 바닥을 굴러다녔다. 나무 그네가 흔들리다가 멈췄다. 정원 여기저기에 파이프 더미와 안전모, 깨진 기와조각과 삽이 널려 있었다. 바람에 삭아버린 것처럼 녹이 슬어 있었다. 대사관 창문에 먼지가 뽀얗게 앉아 있었다. 어떤 창문은 깨져 있었다. 고양이 한 마리가 대사관 이층 테라스를 느릿느릿 걸어갔다.
    “저 고양이한테 이름을 지어 줄까?”
    지은에게 내가 말했다.
    “이름을 알아듣는 건 사육되는 동물뿐이래.”
    깨진 창문 아래에서 웅크리더니, 고양이는 점프를 했다. 창문의 검은 구멍 속으로 고양이는 사라졌다. 지은이 몸을 돌려 반대편 창가로 걸어갔다. 인파로 북적이는 명동 거리를 내려다보았다. 거리에 여자가 서 있었다. 고양이 귀 모양의 머리띠를 하고 호객 행위를 하고 있었다.
    “중국어로 말하고 있을까, 한국어로 말하고 있을까?”
    우리는 여자의 입 모양을 유심히 관찰했다.
    점주가 쇼 케이스를 열었다. 티라미수 케이크와 크레이프 케이크와 산딸기 치즈 케이크를 꺼내 케이블에 올려놓았다. 팔리지 않은 케이크를 나누어먹는 것이 이 가게의 마지막 업무라고 했다.
    “배지를 모으는 게 취미신가 봐요.”
    나와 점주에게 포크를 나눠주며 지은이 물었다. 점주는 배지를 하나씩 가리키며 설명해 주었다. 사람 대신 우주로 보내진 라이카를 추모하는 배지, 베지테리안 레시피 도서 펀딩으로 구입한 배지, 퀴어 페스티벌에서 구입한 배지. 고양이를 핥고 있는 고양이 배지 두 개를 빼내 지은과 내 앞주머니에 달아 주었다.
    “내가 두 사람을 왜 채용했는지 알아요?”
    “우리가 닮아서요?”
    “꼭 닮은 두 사람이 손을 꼭 잡고 가게에 들어와서. 나는 그게 좋았어요.”
    “그게 왜 좋은데요?”
    포크를 입에 문 채 나는 물어보았다.
    “두 사람이 연인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어요.”
    지은과 나는 서로를 쳐다보았다. 사람들은 자주 지은과 내가 어떤 사이냐고 물어왔다. 내가 애인을 만나러 나갈 때마다 지은은 케이지 안에 혼자 남겨져야 하는 강아지처럼 서글픈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애인과 함께 있을 때마다 나는 지은을 생각했다. 지은이 이 음식을 먹었더라면 좋아했을 텐데. 지은이 이 영화를 보았더라면 엄청 욕을 했을 텐데. 애인은 내가 지은에 대한 이야기만 늘어놓는다며 투덜댔다. 애인을 부르면서 나는 자꾸 지은의 이름을 불렀다. 그러다 지은과 함께 애인을 만났다. 지은과 내가 나란히 앉았고, 애인은 반대편 의자에 앉았다. 우리는 우리의 이야기를 내 애인에게 들려주었다. 작년 크리스마스에 코엑스 스케이트장에서 지은과 내가 왼발과 오른발을 바꾸어 신었던 일에 대해서. 지은과 함께 문을 닫은 놀이동산의 담을 넘고서 들어가 놀았던 일에 대해서. 나와 지은은 손뼉을 치며 웃었다. 덩달아 웃던 애인은 어느 순간부터 입을 다물어버렸다. 나는 애인의 팔짱을 꼈고, 다른 손으로 지은과 손깍지를 꼈다. 애인은 애인이 도대체 누구인 거냐고 따졌고 나는 애인과 헤어졌다.
    “꼭 닮은 고양이가 꼭 붙어 다닐 때도 연인이라고 생각하세요?”
    지은이 점주에게 물었다.
    “어느 정도를 연인이라고 해야 할지. 근친교배를 하는 경우도 잦아서요.”
    “사람은 어느 정도를 연인이라고 하는데요?”
    무례한 질문을 받는다고 여길 때마다 지은은 무례한 질문을 되돌려 주었다. 곤란하게 만든 사람을 곤란하게 만드는 방법으로 상대를 응징했다.
    “말해 주지 않아도 괜찮아요.”
    너그러운 얼굴로 지은과 나를 번갈아 보며 점주는 말했다.
    가게 문을 잠그면서 점주는 지은에게 지퍼백 두 개를 건넸다. 사료가 담겨 있었다. 각각의 사료를 맛보고 어떤 사료가 어떤 맛인지 맞춰 보라는 숙제를 내주었다.

 

    지은은 내게도 사료를 먹어 보라고 권했다.
    “어때?”
    “이게 그나마 나은 것 같은데?”
    나는 왼쪽 사료를 가리켰다. 지은이 고개를 끄덕였다. 지은과 나는 음식 맛을 잘 모른다는 말을 자주 들었다. 어떤 음식이 내게 맛있는지 정도는 나도 알았다. 유명한 평양냉면 전문점에서 먹는 물냉면보다 우리 동네 비빔냉면이 더 맛있었다. 그 집 비빔냉면보다 김밥집에서 여름 메뉴로 파는 비빔냉면이 더 맛있었다.
    “무슨 맛 같아?”
    “애기 발가락 맛?”
    “이건 무슨 맛 같은데?”
    지은이 오른쪽 사료를 가리켰다.
    “아저씨 발가락 맛?”
    “너 아저씨 발가락 먹어 봤어?”
    우리는 고양이 사료를 우리들의 식사처럼 가운데에 두고서 깔깔 웃었다. 양고기 맛 사료를 먹는 고양이도 양고기는 안 먹어 봤을 것이다. 양고기 맛을 모르고서 양고기 맛 사료를 먹는 고양이를 보며 사람들은 그 고양이가 양고기 맛을 좋아한다고 믿을 것이다.
    “함박스테이크 집 생각난다.”
    “그때 두 시간 넘게 기다렸어.”
    “너가 줄 서 있는 동안에 내가 그늘에 들어가서 쉬고, 내가 줄 서 있는 동안에 너가 그늘에 들어가서 쉬고.”
    “너가 뒷골목 함박스테이크 집하고는 차원이 다른 맛이라고 했잖아.”
    “뒷골목 함박스테이크 집에서 배달받아서 파는 덴 줄도 모르고.”
    우리는 사료를 천장으로 던지며 입을 크게 벌렸다. 입에 들어오지 못한 사료 알갱이가 방바닥 여기저기에 토끼 똥처럼 놓여 있었다.

 

    지은이 택배 상자를 뜯었다.
    “멋져. 전문가 같아.”
    전동 드릴을 꺼냈다. 볼트 리무버를 꽂았다. 요란한 소리를 내며 드릴이 돌아갔다. 마모된 나사를 뽑아냈다. 지은이 박수를 쳤다. 마모된 나사를 트로피처럼 높이 들고서 지은은 춤을 추었다. 다른 사람들이 매주 로또를 살 때 지은은 인형 뽑기를 했다. 다른 사람들이 애인을 사귀고 애인과 헤어질 때 지은은 벽에 붙여 놓은 아이돌 브로마이드를 다른 아이돌 브로마이드로 바꿨다. 중국제 이미테이션 피카츄 인형을 뽑고서, 화장품을 사면 무료로 나누어주는 한정판 브로마이드를 얻고서, 지은은 춤을 추었다. 나도 그 기쁨에 동참했다. 함께 인형을 뽑았고 같은 아이돌을 좋아했고 지은과 함께 춤을 추었다.
    우리는 프레임을 세웠다. 세워지지 않았다. 왼쪽 벽을 측량할 때에는 딱 맞게 세워질 수 있었지만 오른쪽 벽에서는 불가능했다. 우리는 온 힘을 다해 프레임을 오른쪽 벽으로 밀착시켰다. 천장의 벽지가 벗겨졌고 석고 조각이 후두둑 떨어졌다.
    “잠 좀 잡시다.”
    방 밖에서 누군가 외쳤다. 이곳에서는 누구도 누구에게 말을 걸 수 있었다. 방문을 두드릴 필요도 없었다. 자신의 방 안에서, 평소보다 조금 큰 목소리로 말하면 되었다. 불을 끄고 지은과 방에 누웠다.
    “버려버리자.”
    결연한 목소리로 지은이 말했다.
    “뭐를?”
    “프레임을.”
    프레임이 없었다면 프레임에 발을 찧을 일도 없었을 것이고, 프레임 아래로 동전이 굴러 들어가는 일도 없었을 것이고, 매일 방바닥에 머리를 붙인 채 프레임 밑으로 팔을 뻗어 걸레질을 할 일도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프레임을 버리는 것을 집주인이 허락할 리 없었다.
    “집주인이 알아챌 리 없어.”
    우리가 그 방에서 계속 살아갈 것이기 때문에 프레임이 사라져도 집주인이 모를 것이라고 지은은 나를 설득했다. 지은은 여기가 우리의 도착지라고 여겼다. 나는 도착해 버렸기 때문에 도리어 미아가 된 것 같았다. 앞으로 어디로 가야 하는 건지 막막했다. 무언가를 더 기대해서는 안 된다고 나는 다짐했다. 그다지 힘든 일은 없었다. 나름대로 행복했다. 그러나 혼자 이불을 돌돌 말고서 애처로운 자세로 잠들어 있는 지은을 보며, 우리의 미래가 저런 모양을 할 거라고 생각했다. 나는 그것을 기대했다. 무엇을 기대할 게 그것밖에 없었다. 무기력하다는 생각도 내 무력감에는 끼지 못했다. 내가 견디고 있는 무언가가 무엇인지, 알고 싶지 않았다.
    그날은 누군가 엉엉 우는 소리가 들렸다. 귀를 기울였다. 모든 방의 사람들이 소리를 멈추었다. 우는 사람이 조용해질 때까지 원룸텔의 사람들은 가만히 누군가의 슬픔을 함께 들어주는 듯했다. 얼굴을 모르는 사람들이었다.

 

    고양이와 눈이 마주치는 건 주방 창문에서 가능했다. 손님과 눈이 마주치는 건 손님이 화장실을 물어볼 때에 가능했다. 그래서 이 가게를 하게 되었다고 점주는 말했다.
    “다른 사람과 눈을 마주칠 수 없었던 시절이 있었어요. 그 문제로 7년이나 정신과에 다녔거든요. 돈을 벌기 위해서가 아니라, 눈을 마주치며 누군가와 말을 해보기 위해 이 가게를 열었어요.”
    점주는 대사관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대사관은 치외법권 지역이에요. 망명자들이 가장 먼저 찾아가는 곳이 바로 여기예요. 그래서 고양이들이 모여드나 봐요. 고양이들은 다른 사람이 쳐다보면 자세를 낮추고 있다가 도망을 가요. 고양이들이 내 눈빛을 받아 주기 시작하면서 나도 사람의 눈을 보면서 말을 할 수 있게 되었어요. 고양이들은 새끼의 새끼의 새끼를 낳았어요. 나도 여기서 많은 사람을 만났어요. 저 자리에 대사관 타워가 들어설 거라고 들었어요. 고양이들이 지낼 공간도 사라지겠죠. 그러면 이 가게도 문을 닫을 거예요.”
    “그럼 저는 사료 감별법을 누구한테 배워요.”
    지은이 점주에게 말했다. 숙제를 해왔느냐고 점주는 물었다. 지은은 가방에서 사료 봉지를 꺼냈다. 사료에서 현미 맛도 양고기 맛도 흰살바다생선 맛도 나지 않았다고 말했다.
    “바나나우유에서 정말 바나나 맛이 난다고 생각해요?”
    양고기 맛과 양고기 맛 사료는 큰 상관이 없다고 했다. 양고기 맛 사료는 양고기 맛이 아니라 양고기 맛 사료 맛이라는 것이었다.
    “양고기 맛 사료는 양고기 맛이 아니라 양고기 맛 사료 맛이다.”
    지은은 중얼거렸다. 점주는 퇴근길에 지퍼백 두 봉지를 지은에게 다시 건넸다. 이번에는 둘 다 흰살바다생선 맛 사료라고 했다. 한쪽은 고양이들이 좋아하고 한쪽은 매우 싫어한다고 했다. 어느 쪽이 좋아하는 맛인지 맞춰 보라는 숙제를 내주었다. 지하철역까지 점주와 함께 걸었다. 고양이가 어떤 맛을 좋아할지, 어떤 냄새, 어떤 소리, 어떤 색을 좋아할지 이야기를 나누었다.
    “고양이는 색맹 아닌가요?”
    그래서 사료가 모두 갈색인 것 아니냐고 나는 말했다. 고양이가 파란색을 좋아했더라면 파란색 사료가 나왔을 거라고 했다.
    “색맹은 아니에요. 눈으로는 색깔을 구분할 수 있는데 뇌가 색깔을 구분하지 않는다고 하더군요.”
    “자발적 색맹인 건가요?”
    “일종의 의지겠죠. 불필요했을지도 모르고요.”

 

    지은이 신호를 보냈다. 나는 프레임을 들고서 살금살금 복도를 빠져나왔다. 지은이 손짓을 했다. 출입구 관리실 책상에 관리인이 엎드려 있었다. 합판을 한 조각씩 운반했다. 두 개의 합판을 운반했을 때 관리인이 깨어났고, 나와 지은은 관리인이 다시 잠들 때까지 한 시간을 더 기다렸다. 지은과 프레임을 나눠 들었다. 대형 폐기물 더미 속에 프레임을 내던졌다. 텅 빈 골목에 쿵 소리가 울려 퍼졌다. 가끔 이런 새벽에 쿵 소리를 들은 적이 있었다. 그때마다 나는 누군가 투신자살한 것이 아닐까 상상했다.
    “다시 해보자.”
    벽지가 뜯어진 천장에 페인트칠을 하자고 지은이 말했다. 작년 겨울에 천장에 습기가 차서 한쪽이 누렇게 변해버린 것이 안 그래도 신경이 쓰였다고 했다. 예쁜 색으로 페인트칠을 하면 아침에 눈을 뜰 때마다 행복해질 거라고 했다.
    “시간이 될까?”
    나는 다음 주에 있을 인명구조요원 자격증 시험을 생각했다. 이번에 시험을 보지 못하면 육 개월을 더 기다려야 했다.
    “어차피 인명구조는 못 할 텐데.”
    누군가 버리고 간 매트리스에 붙어 있던 폐기물 스티커를 떼어내 프레임에 붙이며 지은은 말했다. 나도 알고 있었다. 인명을 구조해야 하는 일에는 해상구조대가 출동할 것이다. 나는 인명구조요원이 되더라도 수영장 의자에 앉아 있는 일을 할 것이다. 수영강습을 받으러 온 사람들이나 자유수영을 하러 온 사람, 나처럼 인명구조요원 자격증을 따기 위해 연습하는 사람들을 구경할 것이다. 여름 한철에는 캐리비안베이의 워터 슬라이드 옆에 서 있거나 해수욕장 파라솔 아래 앉아 주변을 두리번거리고 있을 것이다. 워터 슬라이드를 타려는 사람들을 줄 세우고, 자세를 설명하고 호루라기를 불 것이다. 이동식 망루 위에 앉아서 누군가 해수욕장 세이프 존을 벗어나면 메가폰으로 소리쳐 경고할 것이다.
    “언젠가 구조하게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는 게 좋은 거지.”
    누군가 운이 나쁘길 기대하는 사람 같다는 말을 남기고 지은은 팩하고 돌아섰다. 성큼성큼 걸어가기 시작했다. 경보를 하듯 두 팔을 기운차게 휘둘렀다. 멀어져 가는 지은을 바라보다가 나도 걷기 시작했다. 나는 속도를 점점 올렸다. 빠르게 걸어가는 지은을 더 빠른 속도로 앞질러 갔다. 지은보다 먼저 방에 도착하고 싶었다. 주머니에서 열쇠를 꺼내 방문을 열었다. 방문을 잠그지 않았다. 나는 방문을 잠그지 않는다는 걸 지은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너만 끝까지 착한 년이지.”
    뒤늦게 들어온 지은이 말했다.
    크게 다툰 날에도 우리는 싱글 침대에서 함께 잠을 잤다. 잠을 잘 수 있는 공간이 거기밖에 없었지만, 꼭 그 때문만은 아니었다.
    “잘 자. 수희야.”
    “내일도 잘 지내자.”
    크게 다툰 날에도 우리는 꼭 그 말을 서로에게 하고 잠들었다. 잠을 자다 깨어났을 때, 지은이 침대 아래에 웅크려 앉아 있었다. 천장을 바라보고 있었다.
    “뭐 해?”
    “무슨 색으로 칠할지 생각해.”
    “내일 페인트 사러 갈까?”
    지은은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눈을 감았다. 아침에 눈을 떴을 때 지은은 사라지고 없었다. 수희야. 프레임 값 좀 물어 줘. 방문에 포스트잇이 붙어 있었다. 지은이 떠나 줘서 기뻤다. 지은은 현명했다. 나는 매일매일 지은의 물건을 내다버렸다. 방이 뭉텅뭉텅 비워져 갔다. 이 방은 둘이 살기에 좁지 않은 방이었다. 이제 지은이 없는 허전함을 누릴 수 있었다. 나는 밥을 많이 먹었다. 소화가 잘 됐다. 식탐이 생기기 시작했다. 지은에게 느꼈던 답답한 감정을 그리워할 수 있었다. 일을 그만두겠다고 말했고 마지막 집세와 함께 프레임 값을 지불했다. 어쨌든 나는 좁은 방에서 나갈 수 있게 되었다. 내 이름으로 돌아갈 수도 있게 되었다. 사거리 할인마트 적립 카드와 지은의 휴대폰 신규 계약서, 방 도면과 사고 싶은 위시리스트가 페이지마다 빼곡했던 지은의 노트를 마지막으로 정리했다. 노트 뒤표지를 펼치니 지은의 일기가 적혀 있었다. 처음 이 방에 입주한 날에 마트에 갔던 일이 적혀 있었다. 그날 우리는 세면도구와 컵라면 한 박스와 이 노트를 샀다. 지은은 그날부터 방의 도면을 그렸고, 그날부터 일기를 써왔다. 마치 삼일만 머물 사람처럼 내가 여행용 세면도구 세트를 골랐다고 적혀 있었다. 일기장에는 이 방에서 우리가 함께 지낸 날들이 죄다 적혀 있었다. 모든 순간을 함께 보냈는데 지은의 하루하루가 나와 너무도 달랐다. 하지만 나 자신보다 내 마음을 더 정확하게 알고 있었다. 지은은 내 일기장을 내내 훔쳐본 것 같았다.

 

 

 

 

 

 

 

 

 

 

 

 

 

 

 

작가소개 / 임솔아

장편소설 『최선의 삶』, 시집 『괴괴한 날씨와 착한 사람들』이 있다.

 

   《문장웹진 2018년 0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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