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깥의 세계 외 1편 - 변선우
목록

[신작시]

 

 

바깥의 세계

 

 

변선우

 

 

 

발작이 입술처럼 흩어지는 대낮이었다
공장과 놀이공원이 다소 빗장을 걸었을 뿐
인류의 건강과 토양이 무언가에게
잠식당하는

 

*

 

자본주의를 쏙 빼닮은 남매가 있었다. 사탕을 얻어먹기 위해 토마토 짓밟으며 아양을 떨었다. 사탕 한 알에 키스. 사탕 두 알에 삽입하거나 삽입당하거나. 어른의 입맛을 그렇게 배웠다. 남매는 알사탕을 빼곡하게 물고 있었다. 혹시 허니 브레드라고 알고 있는가? 어른들이 뱉고 간 물음의 형태를 꼭 쥐었다. 남매는 머리 위에 유리접시를 두고 앉았다 일어났다, 를 반복했다. 일종의 훈련이었고 접시에 새겨진 무늬가 흘러내릴 때마다 남매의 안면근육은 땀구멍을 통해 배출되고야 말았다. 달콤함을 위해서라면 미소와, 이해관계가 녹아내리기 위해서라면 참을 만했다.

 

*

 

미끄러운 건 따분해졌으며
상관없는 장면들이 실수처럼 번복되었다
버스기사의 투신 같은 것
투신을 구조할 인부도 사직되었거나
실종되었다는 것

 

식빵에 잼을 발라먹는 풍습이
사라진 지 오래였다

 

*

 

어른들의 담배 연기가 어른들의 형상을 닮아 갔다. 그것은 군집이 되었고 남매가 헤어져야 할 이유로 작용했다. 공허한 유리접시를 횡단보도에 올려 둔 채 각자의 침실로 들어가 직업을 얻었다. 작업복이 걸린 옷장엔 철 지난 구인광고와 나프탈렌이 버려져 있었다. 문을 닫았고 닫아야, 했으므로 사탕이 발밑에서 오도독오도독 파괴되고 있었다. 누나야. 동생아. (동시에) 우리 만나지 말자. 문턱을 넘자마자 팔다리가 꺾이는 남매, 작업복을 입고 무표정해지는 남매, 를 사람들은 보았다. 남매의 거기를 마구 드나들었다. 알아듣지 못하는 말이 으깨진 토마토처럼 난무했다. 그것은 사탕이 아니었으므로 아무도 인간으로서 파면당하지 못했다. 해가 졌고 달이 떴다.

 

*

 

어느 집에 사는 누군가 후라이팬 위에
돼지비계를 녹이고 있었다
계란후라이는 아무도 해먹지 않았다

 

밤이 깊어 가도 정오가 쏟아졌다
사람을 펼쳐든 신문이 많았다

 

 

 

 

 

 

 

 

 

 

 

 

 

만화경

 

 

 

이팝나무 두 그루 사이 ‘김’은 앉아 있다 온몸을 뻗어도 닿을 수 없는 하늘, 을 감각하다 눈 감는다 벤치가 편안해진다 나뭇가지가 쩍, 하는 소리와 흔들린다 비염 앓는 ‘김’은 재채기를 하려다 만다 눈물이 다소 흘러내리고 있으나 손수건으로 훔친다 이팝나무 꽃이 ‘김’의 정수리에 떨어진다 아무것도 바뀌지 않을 것이다, 결코

 

‘김’은 고양이 한 쌍을 본다 암수거나 아니어도 상관없는, 그 한 쌍이 고요하게 지나가는 걸 본다 적요를 등에 태우고 땅의 끝으로 향하는데, 아무도 모른다 아직까지 아무것도 바뀌지 않았으므로 이팝나무 꽃이 다시 한 번 정수리에 떨어진다 톡, 톡, 이팝나무가 소리 없이 우는 것이란다, 어느 서정 시인이 말했던 것처럼

 

그사이 자전거 두 대가 지나갔고 노후한 봄과 가을이 얼굴 맞대고 떠나갔다 어쨌든 막, 떨어진 꽃이 정수리에 있던 꽃을 ‘김’의 무릎으로 떨어뜨린 것이었다 이건 중력이 요구한 일인가 정수리에 있었던, 사정을 무릎으로 옮겨 온다는 것에 대하여 어떤 대책이 필요한가 ‘김’은 가만히 앉아 대책이란 말을 씹고 있다 대책, 에서도 짠물이 배어나온다

 

하늘이 높아지거나 낮아지지 않았다 바뀐 건 없으므로 ‘김’은 벤치에 남겨진다 못의 계략에 빠진 듯, 벤치의 송곳니에 잔뜩 물려 있다 지나가는 걸 지나가는 것으로 가만 둘 일만 남는다 이팝나무 두 그루 사이 앉아 있는 ‘김’은 얼마나 버텼길래 여기까지 온 것인가 짐짓, ‘김’은 며칠 전 액자를 사지 않은 일에 대해 안도한다 사소한 고민이 ‘김’을 식탁처럼 조금씩 떼어 먹는다 비문에 빠지기 시작할 때 발끝으로 돌멩이 둘이 굴러온다

 

 

 

 

 

 

 

 

 

 

 

 

 

 

작가소개 / 변선우

1993년 대전 출생. 2018 《동아일보》 신춘문예 데뷔.

 

《문장웹진 2018년 06월호》

 

목록

답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