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눈종이 외 1편 - 박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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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시]

 

 

모눈종이

 

 

박은영

 

 

 

나는 한 칸으로 눈을 떴다

 

일흔두 칸을 검게 칠한 할머니의 눈이 오목했다

 

히말라야 인들은 첫 칸과 마지막 칸, 딱 두 번 초를 켠다는데 나는 한 칸에 한 번씩 생일초를 켰다 고깔모자를 쓴 엄마가 캄캄한 창문에서 불쑥 튀어나왔다 공포는 여러 모양으로 나타나곤 했지만 그건 모두 네모 안의 일

 

또, 사각팬티야?

 

나는 선물상자를 머리에 뒤집어썼다 할머니의 눈에서 네모 난 바람이 불었다 말을 하지 않아도 같은 간격의 말이 빠져나왔다 먹구름 낀 거리, 나는 미움과 마음 사이의 미음을 생각하며 보도블록을 걸었다

 

혼자서 금을 밟으면 죽는 놀이를 했다

 

어느 칸에선가 하늘이 파랬다

 

 

 

 

 

 

 

 

 

 

 

 

 

화투의 방식

 

 

 

꽃이었던 적이 있었다

 

모이면 패를 섞었다 승부욕이 투철했다 숨소리를 죽인 채 기리를 떼고 호기롭게 퉁을 외쳤다 뻑, 하면 싸고 나가리가 되었지만 폭탄을 안고 살았다 못 먹어도 홍단, 청단 띠를 두르고 눈먼 새 다섯 마리를 잡으러 날밤을 샜다

 

죽고 사는 일이었다 그러나 싹쓸이를 한 인간은 죽지도 않았다 패 한 장을 잃은 나는 광을 팔았다 나중엔 껍데기도 팔았다 막판을 웃으면서 끝낸 적이 있던가

 

우리는 판을 엎고 멱살잡이를 하며 막판까지 갔다

 

그땐 모두가 화를 잘 냈다

 

딴 사람은 없고

 

잃은 사람만 있었다

 

 

 

 

 

 

 

 

 

 

 

 

 

 

작가소개 / 박은영

1977년 강진 출생. 제2회 천강문학상 시 부문·제2회 제주4.3평화문학상 시 부문·2018 《문화일보》 신춘문예 시 부문·2018 《전북도민일보》 신춘문예 시 부문.

 

   《문장웹진 2018년 0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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