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구를 보는 이유 외 1편 - 문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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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시]

 

 

가구를 보는 이유

 

 

문보영

 

 

 

명암을 넣기 전에 형태를 바로잡아 주세요. 그림 선생은 빠진 앞니의 형태를 바로잡으며 너에게 말한다. 빠진 앞니의 인간은 철봉에 매달린 채 웃고 있다. 그 옆에는 개가. 길을 잘못 들어서 여기까지 오게 된. 흰 개가, 매달린 채 웃는 인간을 올려다보고 있다. 회피적인 꼬리를 흔드는 그것은. 무엇이든 깊이 생각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형태가… 그림 선생은 더러워진 지우개를 갈색 앞치마에 문대고. 그것을 빠진 앞니에 갖다 댄다. 끝까지 안 보시는군요, 당신은. 어디까지 봐야 하는지 모르는 것이지요. 철봉의 형태는 직접 고쳐 보세요. 너는 더 이상의 관찰은 하고 싶지 않았다. 자세히 바라보는 일에 진력이 났으므로. 너는. 철봉을 본다. 지진이 나면 철봉에 매달려 있겠다고 생각한다. 그러면 나만 빼고 세상만 흔들릴 수 있을 것 같기 때문에. 깊이 생각하지 않는 버릇은 미덕이지만. 명암을 넣기 전에 바라봤다. 너는. 어둠을 긁어모아 대낮에 저항했고 밤에는 느닷없이 살고 싶어서 잠이 안 왔다. 우중충한 빠진 앞니와. 지진이 나서 후두둑 빠져버린 두 개의 앞니. 캄캄한. 길을 잘못 들어서 철봉이 나타났고. 너는 그린다. 더 이상의 관찰을 하며. 너는 그러나. 한때. 모든 것에서, 매달려 있는 인간을 보았으므로, 집 안의 가구만을 바라보았다. 어디까지 봐야 끝난 건지 잘 몰랐으므로. 미안하다는 말에 적응이 되나요? 돌아올 거예요, 가방도 여기 있는데, 라는 말을 너는 그림에서 보지 않는다. 지나친다. 개는. 매달린 인간을 바라보고. 앞니가 빠져 캄캄해진 이는 정면을 지켜보았고.

 

 

 

 

 

 

 

 

 

 

 

 

 

문을 달래는 이야기

 

 

 

아침엔 이런 일이 있었다. 문이 잠겨서 702호 남자는 밖으로 나갈 수 없었다. 경비원이 올라와 문을 따려 한다. 열리지 않는다. 손잡이에는 문제가 없다. 문 자체에 문제가 있었다. 문이 의식을 잃은 것이다. 두 남자는 하나의 문을 사이에 두고 이야기를 나눈다.

 

경비원에겐 이런 일이 있었다. 그는 말한다. 그가 소년이었을 때 집에 뱀이 나타났다고. 굴뚝 없는 집이었다. 정원에 실측백나무가 서 있었고. 소년과 뱀은 친밀했다. 실측백나무 아래. 소년은 가슴 위에 뱀을 올려놓고 잠들었다. 뱀은 가슴의 온기를 좋아했다. 어느 날. 뱀은 집 둘레를 휘감기 시작한다. 그것은 빠르면서 느리게, 느리면서 빠르게 돌았다. 뱀이 집 둘레를 묶어서 소년은 집으로 들어갈 수 없었다. 집은 누에고치 속 애벌레처럼 움찔거렸다. 뱀은 소년에게, 이제 떠나라고, 정중히 부탁했다. 경비원은 이것을, 실망에 관한 최초의 경험으로 기억한다.

 

702호 남자에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그는 잘 때 꿈을 꾸는 일이 없었다. 꿈과 현실은 절단면 없이 존재했으며 꿈에서 깨어나는 과정 없이 그는 꿈에서 깼다. 다만 등을 문에 기대고 앉아, 소중히 여기는 토끼 인형을 만지작거린다. 토끼의 등에는 자크가 달려 있지만 열어도 무언가를 넣을 수는 없다. 그저 자크만 붙여 놓았으므로. 그것은. 수용할 수 있다는 자세만을 보여줄 뿐, 실제로는 그럴 생각이 없다. 무용한 등을 가진 토끼를 어루만진다. 자크 달린 토끼의 등은, 살기 위해서 아무것에도 의미를 두지 않는 삶을 의미한다, 고 702호 남자가 문 밖의 남자에게 말하지 않는다.

 

경비원이 다시 한 번 자신을 염세주의자, 라고 소개했으므로 702호 남자는 밖에 비가 오느냐 묻는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고 말하는 대신 비. 라고 경비원은 말한다. 비? 네, 옵니다. 비가 올 수 있나요? 네. 두 남자는 비에 관한 두 명의 이야기가 열리지 않는 문을 달래는 데 소용이 된다고 믿으며 끊임없이 이야기를 지어낸다.

 

 

 

 

 

 

 

 

 

 

 

 

 

 

작가소개 / 문보영

1992 제주 출생. 2016년 중앙신인문학상으로 등단. 시집 『책기둥』. 김수영 문학상 수상.

 

   《문장웹진 2018년 0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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