잉글리시 하운드독 - 정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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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소설]

 

 

잉글리시 하운드 독

 

 

정한아

 

 

 

    민욱이 주말에 친구 부부를 초대해도 되느냐고 물었을 때, 미연은 말없이 한참 뜸을 들였다. 그녀는 그날 민욱과 함께 아파트의 베란다 벽을 페인트칠할 계획이었다. 지난해 은행에서 부장으로 승진한 민욱은 매일 야근에 토요일 출근도 예사였다. 민욱이 승진하면서 맞벌이를 끝내고 전업주부가 된 미연은 되도록 주말이라도 그를 쉬게 해주려 애쓰고 있었다. 하지만 어떤 일은 부부로서 함께하고 싶었다. 이를테면 새로 산 집의 페인트칠 같은 것.
    그들은 6개월 전에 E시의 아파트를 사서 이사했다. 20년도 더 된 낡은 아파트였지만,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고 그들 스스로 이룬 일이었다. 미연은 직접 발품을 팔아 수도부터 새시까지 새로 손을 보았다. 하지만 집수리는 대강 되었다고 해도, 미연이 생각하는 인테리어의 완성 단계에 다다르기는 멀었다.
    “손님 초대는 아직 일러. 집단장도 덜 되었고…….”
    “성재가 한국에 왔대.”
    민욱은 무거운 목소리로 말했다.
    “성재 아버지가 돌아가셨나 봐. 연락했더니 정말 본가에 있더라고. 연주랑 같이 들어왔대. 장례는 벌써 마쳤고, 곧 베트남으로 돌아간다더라고.”
    민욱과 성재는 고등학생 때부터 친구였고, 그들을 통해 만난 미연과 연주도 10여 년이 넘는 인연이었다. 꽤나 가까운 사이였지만 성재가 사업 실패로 한국을 떠나면서 연락이 끊겼다. 미연은 자신이 연주의 이름을 꽤나 오랫동안 잊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더 이상 뭐라고 할 말이 없었다.
    “걱정했는데, 생각보다 목소리는 괜찮더라고.”
    성재는 처음에 민욱의 초대를 거절했다고 했다. 선약이 있다는 이유였다. 하지만 민욱이 재차 청하자, 마음을 바꾸었다. 단, 다음 약속에 맞춰 가려면 여덟 시에는 자리에서 일어나야 한다고 했다. 조금 이른 저녁을 먹고 차 한 잔을 마실 수 있는 시간이었다. 오히려 그 편이 더 좋을지도 모른다고 민욱이 말했다.

 

    토요일 오전에 미연은 두 딸아이를 데리고 마트에 가서 고기와 채소를 샀다. 누군가를 초대해 음식을 대접하는 것은 정말로 오랜만의 일이었다. 미연은 이제 네 살, 두 살 된 두 아이들을 홀로 돌보고 있었다. 인생의 가장 소중한 시간이라는 생각에 직장도 그만두고 결단한 것이었지만, 힘에 부친 것도 사실이었다. 때로는 집을 청소하고 아이들과 세끼 밥을 차려 먹는 일만으로 해가 지기도 전에 녹초가 되었다. 연주는 그녀가 새집으로 이사한 것도, 둘째 아이를 낳은 것도 알지 못할 터였다. 그 모든 일이 지난 1년 사이 일어난 것이다.
    미연이 마지막으로 연주를 본 것은 3년 전 부산의 P호텔에서였다. 성재의 사업이 최고의 호황을 누릴 때였다. 처음 성재가 사업을 한다고 했을 때만 해도 주위에서는 기대보다 염려가 컸는데, 몇 년 사이 그는 눈에 띌 만한 성공을 이루었다. 자연스레 연주의 씀씀이도 커졌다. 부산의 P호텔 숙박권도 연주가 끊어 준 것이었다. 당시 미연은 직장생활을 하면서 아이를 돌보는 일에 허덕이고 있었는데, 어느 날 연주가 불쑥 ‘휴가를 내고 겨울 바다를 보러 가자’고 했다. 민욱이 대신 아이를 봐주겠다며 그녀의 등을 떠밀었다. 미연은 그저 홀로 있고 싶은 생각뿐이었지만 두 사람의 성의를 무시할 수 없었다.
    연주는 직접 차를 몰고 미연을 데리러 왔다. 아이보리색 캐시미어 코트를 입은 연주는 근심 없는 철부지처럼 젊고 생기 있어 보였다. 가볍고 날렵한 캐시미어의 질감 ― 날씬한 연주의 몸을 감싸던, 아니 타고 흐르던 그것은 마치 어떤 후광을 발하는 듯했다. 그들은 여행 기간 내내 호텔 안에서만 지냈다. 호텔 레스토랑에서 음식을 먹고, 프라이빗 비치에서 산책을 하고, 스파에서 마사지를 받고, 바다가 한눈에 보이는 객실에 머물렀다. 모든 비용은 연주가 결제했다. 미연으로서는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호사스러운 시간이었다. 하지만 무슨 이유에선지 여행을 다녀온 후 그들은 서서히 멀어졌다.
    나중에 연주는 미연에게 부산에서 뭔가 섭섭한 일이 있었느냐고 물었다. 미연은 침묵했다. 그녀는 그 여행에 대해 하나도 기억에 남는 것이 없었다. 다만 그날 연주가 입고 있던 코트만이 선명하게 떠올랐다. 어린 새의 솜털처럼 빛나던 코트. 미연은 여행 내내 자신의 무거운 검정색 패딩을 팔에 걸치고 다녔다. 하지만 그런 것들이 정말 관계를 멀어지게 하는 것일까? 그녀는 쉽게 대답할 수 없었다. 그들이 이제 너무 달라졌다는 사실만 더듬더듬 되뇌었을 뿐이다. 그 말을 들은 연주는 공허하게 웃었다. 그리고 더없이 차가운 목소리로 “우린 처음부터 달랐어. 그걸 몰랐단 말이야?”라고 되물었다.

 

    미연과 연주는 15년 전, 인천공항의 맥도날드에서 처음 만났다. 30일 일정으로 서유럽 배낭여행을 떠나는 길이었다. 원래 그 여행은 미연과 민욱 단둘이 계획했던 것이었다. 여행을 준비하면서 성재가 끼어들었고, 출발 직전에 그가 새로 사귄 여자 친구 연주가 합류했다. 미연은 낯선 사람과 여행을 할 수 없다고 반대했지만, 성재의 생떼와 민욱의 회유를 끝내 이기지 못했다. 성재는 미연과 연주가 만나면 죽이 잘 맞을 거라고 큰소리를 쳤다.
    출국 날 공항에 제일 먼저 도착한 미연은 민욱과 성재에게 전화를 걸었다. 성재는 연주가 맥도날드에 있을 거라고 말했다. 미연은 눈으로 맥도날드 안의 사람들을 훑어보았다. 긴 생머리를 허리까지 늘어뜨리고, 지루한 표정으로 턱을 괴고 있던 여자 아이. 미연은 한눈에 연주를 알아보았다. 연주는 성재의 말처럼 깜짝 놀라게 예쁘지는 않았다. 위태로울 만큼 말랐고, 핏기가 하나도 없이 하얬고, 그럼에도 화장이 짙어서 어딘지 음침한 분위기가 있었다. 미연은 먼저 다가가 반갑게 인사를 건넸지만, 그들이 친구가 되기는 힘들 거라고 생각했다.
    연주는 한국무용을 전공한다고 했다. 자신은 할머니와 같이 살고 있는데, 여행을 허락해 주지 않아서 말없이 아침에 짐을 싸서 나왔다고 스스럼없이 말했다. 미연이 “그래도 돼?”라고 묻자, 눈이 휘어지게 웃으며 “몰라, 짜증나.”라고 말했다. 순간 깜짝 놀라게 예쁘다는 성재의 말이 뭔지 알 것 같았다. 크고 검은 눈동자에, 흰자위가 거의 보이지 않는 눈이었다. 연주는 그 눈으로 미연을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사람을 그렇게 보는 것이 습관인 것 같았다. 상대의 모든 것을 알고 싶다는 듯이.
    성재는 연주를 보고 좋아서 어쩔 줄 몰랐다. 그녀와 함께 여행을 떠난다는 걸 믿을 수 없다는 듯 방방 뛰었다. 성재에게는 그런 아이 같은 면이 있었다. 그 옆에 있으면 미연과 민욱은 나이든 사람이 된 기분이었다. 어쨌든 그들은 스물두 살이었다. 첫 기내식에 와인을 주문해서 마셨고, 기념사진을 수십 장씩 찍어댔다.
    열네 시간의 비행을 마치고 뮌헨에 도착했을 때 현지 시각은 자정이 가까웠다. 차갑고 낯선 공기가 가슴을 파고들었다. 민욱이 지도를 들고 앞서 그들을 이끌었다. 첫날 예약한 숙소는 시내의 유스호스텔이었다. 그들은 각각 남녀 도미토리 룸으로 갈라졌다. 미연과 연주는 2층 침대 6개가 좁은 틈을 두고 붙어 있는 방으로 들어갔다. 침대마다 짐이 너부러져 있었지만, 다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가만히 있으면 몸이 덜덜 떨릴 만큼 추웠다. 그래도 다행히 따뜻한 물은 나왔다.
    미연은 서둘러 씻고, 옷을 갈아입었다. 불도 끄지 않고 침대에 누웠다. 한국을 떠나 다른 나라에 와 있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았다. 옆방에서 웅웅 떠드는 소리가 들렸다. 영 잠이 오지 않았다.
    "너, 민욱 씨를 사랑하니?”
    미연은 옆의 침대에 누운 연주의 말간 얼굴을 바라보았다. 민욱 씨, 라는 말을 들으니 어쩐지 기분이 이상했다. 처음 만난 사이에 그런 걸 묻다니 무례하다고도 생각했다. 그렇지만 미연은 선선히 응, 이라고 대답했다.
    “난 사실 성재를 잘 알지도 못해.”
    연주는 가느다란 목소리로 말했다.
    “우리가 오래갈 거라고 생각하니?”
    “글쎄…… 적어도 여행이 끝날 때까지는 가겠지.”
    미연의 무덤덤한 대답에 연주는 쿡쿡 웃었다. 정말 웃겨서라기보다 그렇게 웃고 싶은 것 같았다.
    한참이 지나서 겨우 잠들었던 그들은 새벽녘 부서질 듯 문이 열리는 소리에 다시 깨어났다. 한 떼의 여자애들이 우르르 방에 들어와 속사포 같은 영어로 떠들어댔다. 맥주 냄새가 진동했다. 일행은 소리를 낮출 기색이 없었고, 급기야 큰 소리로 웃기까지 했다. 소음이 절정에 달할 무렵 연주가 벌떡 일어나더니 “미쳤어? 다들 조용히 좀 해!”라고 외쳤다. 좌중이 얼어붙었다. 잠시 후 그중 한 명이 조용히 사과했다. 그리고 곧 불이 꺼졌다.
    다음날 아침 그들은 눈을 뜨자마자 식당으로 내려갔다. 남자애들이 미리 와서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민욱과 성재는 심각한 얼굴이었다. 지난밤, 방에서 섹스 하는 소리를 들었다는 풍문이었다. 과연 남자끼리의 일인가, 아니면 밤새 어떤 여자가 방에 몰래 들어왔는가, 둘의 의견이 분분했다.
    “왜, 오늘은 너희도 끼워 달라고 그러게?”
    연주는 콘플레이크를 우유에 말아 먹으면서 그렇게 물었다. 성재의 얼굴이 조금 붉어졌다. 미연은 자유 배식대에 수북이 쌓인 빵을 몰래 비닐에 싸고 있었다. 점심에 먹을 빵이었다. 연주는 미연이 빵 훔치는 걸 질색했지만, 그 빵을 같이 먹기는 했다. 그들은 30여 일간 같은 음식을 먹고, 같은 방에서 자고, 간이 샤워실에서 서로의 알몸을 봤다. 첫날 이후 사랑 따위의 이야기는 다시 하지 않았다.
    무용을 전공해서인지, 연주는 몸을 움직이는 사소한 동작의 선이 아름다웠다. 미연은 연주의 가느다란 몸에 와 닿는 국적을 초월한 남자들의 시선을 느낄 수 있었다. 성재는 우쭐해하면서도 짜증스러워했지만, 정작 연주는 신경 쓰지 않는 듯했다.
    연주는 감정의 기복이 심했고, 성재에게 다정하게 굴다가도 돌연 얼음처럼 냉랭해졌다. 성재는 연주를 이해하지 못했지만, 어쨌든 그녀를 기쁘게 하기 위해 종일 애썼다. 미연은 그들의 관계가 불안하다고 생각했다. 어쩌면 여행이 끝나자마자 헤어질지도 모른다고 몰래 민욱에게 말했다.
    하지만 그들은 헤어지지 않았다. 헤어진 것은 미연과 민욱 쪽이었다. 몇 년 뒤, 대학 졸업반이었던 그들은 사소한 오해로 말다툼을 했는데 둘 중 누구도 사과하지 않는 식으로 멀어지고 말았다. 그들이 다시 만난 건 일 년의 시간이 지난 뒤였다. 연주와 성재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그녀를 반겨 주었다.
    졸업 후, 미연은 그림책으로 유명한 아동문학 출판사에 들어갔다. 민욱은 은행에서, 성재는 주류회사에서 일자리를 잡았다. 연주는 항공사의 스튜어디스 준비를 했는데 잘 되지 않았다. 그녀는 결국 유치원이나 어린이집에서 시간제로 무용을 가르치는 일을 시작했다. 연주는 아이들을 좋아하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미연이 만드는 동화책은 좋아했고, 그 책들을 선물 받는 것을 굉장한 특권처럼 여겼다.
    “넌 정말 대단해.” 연주는 미연에게 말했다. “너는 네가 원하는 게 뭔 줄 알고, 결국 그것을 향해 가지. 그건 정말 대단한 거야.”
    미연은 연주의 그런 말이 꼭 자신을 놀리는 것처럼 들렸다. 자신에 대한 무관심을 도리어 과장하는 것 같았다. 둘은 친구가 되기에는 공통점이 하나도 없었다. 하지만 민욱과 성재로 인해 넷이 한 자리에 모이는 게 습관이 되었다. 미연과 연주는 서로의 시시콜콜한 일상까지 공유했다. 미연은 어떤 여자 친구와도 이처럼 가까운 사이가 된 적이 없었다.
    서른 살이 되던 해 미연과 민욱이 먼저 결혼식을 올렸다. 연주가 부케를 받았고, 그다음 해에 성재와 결혼했다. 마치 이어달리기를 하는 것 같았다. 그들은 서로가 쌍둥이 형제처럼 비슷한 모양새로 살아갈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연주와 성재는 아이를 가지지 않았다. 임신이 어렵다고 했고, 그 어려움을 이겨낼 만큼은 아이를 원치 않는다고 했다. 미연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들이 핑계를 댄다고 생각했다. 만약 같은 상황이었다면, 미연은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다 했을 것이다. 대신 연주는 강아지를 입양해서 아이처럼 길렀다. 영국산 사냥개로 이름만 대면 알아주는 품종이라고 했다. 15평 신혼집의 곳곳에서 개의 배설물 냄새가 났다.
    “앞으로 한참 더 클 텐데, 대체 어쩔 작정이야.”
    미연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감당도 못할 대형견을 키우다니, 무모한 결정이라고 잔소리를 했다. 하지만 걱정이 무색하게 곧 성재가 사업에 수완을 드러냈다. 재무 컨설팅 회사라고 했는데, 주식과 보험을 파는 일 외에 이자율 높은 대출건을 다루는 것 같았다. 위험성이 높은 만큼 수익성도 높았다. 그들은 개인 뜰이 있는 고급 빌라로 이사했다. 넓은 풀밭에서 뛰어노는 개를 볼 때마다 미연은 생각이 복잡해졌다.
    작은 주류회사에 다니던 성재가 이만한 성공을 이뤄낼지 누가 알았단 말인가? 동창들 사이에서 가장 성공할 거라고 점쳐졌던 인물은 민욱 쪽이었다. 그는 어렸을 때부터 총명하다는 소리를 들으며 과외 한 번 하지 않고 명문대에 들어간 수재였다. 하지만 그에게는 야심이 없었다. 저 멀리 보이지 않는 문이 있고, 그 문을 열면 그가 모르는 세상이 시작된다고 해도 그것은 자신의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미연 역시 민욱과 닮은꼴이었다. 그녀는 무리해서 모험을 하는 대신 안전하게 현실을 지키는 편을 택했다. 그것도 나름의 전략이었다. 하지만 대단하다는 소리를 듣고 자라 평범해져 버린 민욱을 보면 아깝다는 생각이 드는 것도 사실이었다. 미연이 아는 사람들 중에서 그 문을 열고 들어가 본 이는 성재뿐이었다. 비록 그 후 곧장 추방되었다고 해도.

 

    그런데 대체 무슨 선약이 있다는 것일까. 장을 보고 돌아오는 길에 미연은 문득 그것이 궁금해졌다. 연주와 성재가 그들 말고 또 만날 사람이 누가 있을까. 미연이 알기로 그들의 모든 인맥은 사업과 함께 완전히 끝장났다. 일반 고객의 투자를 받아 중소기업에 고금리 융자를 내주는 과정에서 주변의 지인들이 연결되었고, 기업들이 도산하면서 전부 커다란 손실을 입고 말았던 것이다. 성재의 주변 사람들은 하나같이 원금도 회수하지 못했다. 미연과 민욱은 여유가 없어 투자금을 넣지 못했는데, 이제와 생각해 보면 가슴을 쓸어내릴 만큼 다행한 일이었다. 대출 받은 돈을 넣었다 몽땅 날린 친구, 아내 몰래 돈을 투자한 사실이 발각되어 이혼을 당한 친구도 있었다. 성재가 투자금의 손실을 책임질 필요는 없었지만, 불쑥불쑥 사람들이 찾아와 울분과 협박을 쏟아내는 걸 당해 낼 재간도 없었다. 그래서 한국을 떠난 것이다. 악의적 부도를 냈다는 소문이 돌았고, 뒤로 수십억을 빼돌려 도망쳤다는 말도 있었다. 하지만 소문일 뿐이었다. 미연은 그들이 가진 걸 거의 다 팔아치워야 했다는 걸 알고 있었다.
    성재는 한국을 떠나기 전, 민욱을 찾아와 돈을 빌렸다. 구할 수 있는 만큼, 아주 조금이라도 좋다고 사정을 했다. 미연은 그가 점잖게 거절할 줄 알았다. 다달이 들어가는 적금을 빼면 그들 역시 외식 한 번 못할 만큼 빠듯한 생활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민욱은 기어이 적금을 깨는 무리를 해서 천만 원을 빌려주었다.
    “연주를 생각해 봐, 둘이 자매 같은 사이였잖아.”
    마음대로 돈을 빌려주고 돌아와서, 민욱이 말했다.
    “자매 같은 사이가 어떤 건데? 대체 우리에 대해 뭘 안다는 거야?”
    미연은 참지 못하고 화를 쏟아냈다. 연주와 성재는 그 후 연락 한 번 없었다. 천만 원이면 큰 아이를 일 년간 영어 유치원에도 보낼 수 있는 돈이었다. 미연은 마음이 상해서 몇 달간 민욱과 말도 섞지 않았다.

 

    약속시간이 다 되어 민욱은 성재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들은 렌터카를 타고 온다고 했다. 민욱은 아파트 주차장의 위치를 자세히 알려주고 전화를 끊었다. 미연은 바닥을 닦고, 또 닦았다. 민욱이 그러다 방에서 미끄러지겠다고 우스갯소리를 했다. 삼십 분쯤 늦게 인터폰이 울렸다. 민욱이 큰아이와 같이 밖으로 나갔다.
    “야, 이게 얼마만이냐.”
    현관문이 열리면서 성재의 커다란 목소리가 들렸다. 성재의 뒤를 따라 들어오는 연주가 보였다. 미연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연주는 예전의 그 아이보리색 캐시미어 코트를 입고 있었다. 피부가 조금 거칠어졌고 머리카락이 짧아졌지만, 기억 속의 그녀 그대로였다. 미연은 자기도 모르게 눈을 깜빡였다.
    “넌 정말 그대로구나.”
    “엉망이지 뭐.”
    연주는 머리카락을 쓸어 올리며 웃었다.
    “그동안 잘 지냈니?”
    연주는 예전보다 어딘지 차분해 보였다. 몇 년 사이 큰일을 겪어냈으니 당연한 것인지도 몰랐다. 성재는 언뜻 보기에도 살이 많이 빠져서, 야윈 갈대처럼 휘청휘청 움직였다. 미연이 둘째를 낳았다는 소식에 그들은 깜짝 놀랐다. 민욱이 잠든 작은 아이를 안고 나왔다. 성재는 아이를 한참 내려다보더니 민욱을 닮았다고 중얼거렸다.
    연주는 선물로 가져온 와인과 망고를 내밀었다. 민욱이 망고를 보고 베트남에서 가져온 거냐고 물었다. 그들 부부는 메마른 소리를 내며 웃었다. 과일가게를 찾지 못해 아파트 단지 근처를 몇 번이나 돌았다고 했다. 그들은 겉옷을 벗고, 각자 앉을 곳을 찾았다.
    “아버님 장례는 어떻게 된 거야. 왜 알리지 않았어?”
    “너무 급작스럽게 돌아가셔서 경황이 없었어. 원래 지병이 있으셨잖아.”
    민욱의 질문에 성재는 다른 사람의 일을 이야기하듯 담담하게 말했다. 성재의 아버지는 2년 전 아들의 사업이 무너졌을 때 노후자금으로 모아 놓은 퇴직금과 살고 있는 집까지 날려버렸다. 노인은 얼마 전까지 민욱에게 전화를 걸어와 억울하고 답답하다는 이야기를 늘어놓고는 했다. 기운이 쭉 빠지는 넋두리를 마냥 듣고만 있는 민욱에게 미연은 종종 짜증을 냈다. 두 달 전부터 연락이 뚝 끊겼는데, 돌아가신 줄은 민욱도 미연도 몰랐다.
    “베트남에는 언제 돌아가는 거야?”
    “이제 가야지. 장례 마친 후 주변 정리하는 데 시간이 좀 걸렸어.”
    민욱은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이번에 가면 다시 올 일이 있을까 싶다.”
    “밥이나 먹자.”
    민욱이 성재의 어깨에 손을 올리고 일어서며 말했다. 미연은 식탁 등을 켰다. 부엌은 미연이 제일 좋아하는 공간이었다. 미연은 그곳을 어느 인테리어 잡지에서 본 것과 똑같이 꾸몄다. 원목 식탁과 의자, 크리스털 조명까지 한데 어우러져 흡사 따뜻한 분위기의 퍼스널 레스토랑처럼 보였다. 미연과 민욱이 나란히 앉았고, 그 반대편에 연주와 성재가 앉았다. 연주는 주변의 소품을 주의 깊게 살펴보았다. 미연은 연주의 반응을 남몰래 바라보며 큰아이를 불렀다. 아이는 자그마한 주먹김밥을 서너 개 집어 먹고는 텔레비전 앞으로 달려갔다. 작은 아이는 다행히 깨지 않고 계속 잤다.
    미연은 식탁 위에 갈비와 잡채, 나물들, 생태와 게를 넣고 끓인 탕을 올렸다. 성재는 땀을 뻘뻘 흘리며 음식을 먹었다. 맛있다, 맛있다 감탄을 하고 끊임없이 수다를 떨었다. 주로 베트남 생활에 대한 이야기였다. 미연은 그들이 가방 공장에서 일한다고 들었는데, 그게 아니라 가방 공장 관리직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한국인 사장 내외가 묵던 사택과 그 안의 가구, 집기까지 제공된다니 생활하기에는 좋은 조건이었다. 공장에서 만드는 가방은 주로 한국과 일본으로 수입된다고 했다. 성재는 자신이 보기에 가방 산업에 큰 전망이 있으며, 그곳에서 사귀어 둔 기술자 두어 명과 잘하면 새로 법인을 차리게 될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정말?”
    민욱이 놀라며 물었다. 성재는 휴대폰을 꺼내서 현지 사진들을 보여줬다. 산처럼 쌓인 가죽 원단, 공장에서 일하는 베트남 사람들, 숙소 안의 풍경이 맥락 없이 이어졌다. 성재는 그런 것들을 자랑스럽다는 듯 보여주면서, 이런저런 설명을 더했다.
    “네가 와서 보면 한눈에 알아챌걸, 이게 얼마나 전망이 있는 사업인지. 가방은 누구나 갖고 싶어 하잖아. 누구나 자기 물건을 주머니에 따로 담고 싶어 한다고. 질 좋은 가죽에 값이 싸다면 그보다 더 좋을 수 없지.”
    미연은 성재가 좀 들뜬 것 같다고 생각했다. 오랜만에 친구를 만나서, 아니면 막 부모를 잃은 사람들이 그렇듯 제정신이 아닌지도 몰랐다. 연주는 내내 말이 없었고, 자기만의 생각에 빠져 있었다. 미연은 그녀가 밥만 깨작일 뿐 요리에 손도 대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여긴 어디야?”
    해변에서 연주와 성재가 찍은 사진을 보고 민욱이 물었다.
    “공장 근처에 바다가 있어. 아침저녁으로 연주랑 산책을 하거든.”
    “야, 정말 부럽다. 우리 부부는 매일 얼굴도 못 보는 날이 허다한데.”
    민욱은 바보처럼 웃으며 말했다. 그는 그들이 이 집을 사기 위해 얼마를 대출 받았는지, 매달 이자가 얼마인지, 슬슬 다가오는 퇴직의 압박이 어떤 것인지, 일주일에 몇 시간을 일하고 있는지 떠들어댔다. 미연은 그가 그런 식으로 말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자신을 우스꽝스럽게 만들어서 분위기를 환기시키는 것은 그의 오래된 버릇이었다.
    “그렇게 살지 마라. 다 헛짓이야.”
    성재는 의자에 등을 기대며 말했다.
    “미친놈처럼 발버둥 쳐봤자 남는 건 아무것도 없어. 중요한 건 부부 두 사람이야. 두 사람이 진짜 원하는 삶을 사는 거. 우리는 뒤늦게 많은 대화를 했어. 어디로 가야 할지,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무엇을 쫓아야 할지…….”
    성재는 미연을 향해 시선을 돌리더니 히죽 웃었다.
    “이걸 이 자식이 이해할지 모르겠다. 머리 좋은 거의 반도 융통성이 없잖아. 안 그래?”
    미연은 침묵했고, 잠시 정적이 흘렀다.
    “이제 우리 이야기는 그만 해.”
    연주가 말했다.
    “누가 재미있겠어? 오랜만에 모였잖아. 모두가 즐거운 이야기를 하자고.”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로 기세 좋게 이야기를 이어 가던 성재는 순식간에 풀이 죽더니, 화장실에 가겠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다 그만 식탁 위에 있던 램프를 넘어뜨려 버렸다. 미연이 어렵게 공수했던 앤틱 램프였다. 크리스털 램프는 날카로운 소리를 내며 산산조각 나버렸다. 미연은 그것을 꼼짝도 하지 않고 내려다보았다. 마치 정지 동작에 걸린 화면 속 인물 같았다. 그때, 방에서 작은 아이가 우는 소리가 들렸다.
    “괜찮아.”
    민욱은 미연을 향해 말했다.
    “내가 치울게. 어서 들어가 봐.”
    미연은 방으로 들어갔다. 무대에서 퇴장한 것처럼 피로가 몰려왔다. 젖은 기저귀를 갈고 막 아이를 안아 들었을 때, 노크 소리가 났다. 연주였다.
    “들어가도 되니?”
    “그럼.”
    미연은 아이에게 젖병을 물리며 옆으로 옮겨 앉았다. 연주는 조심스럽게 그녀 옆으로 다가왔다.
    “미안해. 우리가 괜히 온 것 같다. 너희에게 피해나 주고…….”
    “아니야. 피해는 무슨.”
    미연은 부드럽게 말했다. 연주는 무슨 말을 하려다 말았고, 그저 우유를 먹는 아이를 내려다보기만 했다. 조용한 방 안에 아이가 젖꼭지를 빠는 소리만 쌕쌕 울렸다.
    “네가 둘째를 낳을 줄은 몰랐어. 회사까지 그만두고. 그 일을 좋아했잖아.”
    뜻밖의 말에 미연은 뭐라 대답해야 할지 몰라 입을 다물었다.
    “아이를 돌보는 일을 힘들어하지 않았니?”
    “그때는…… 체력이 달려서 힘들었지. 회사를 그만두고 다 좋아졌어. 둘째라 훨씬 수월하기도 하고.”
    미연은 애써 웃어 보였지만 자신이 변명하는 것처럼 느껴져 신경이 쓰였다
    “아이들이 크는 건 아주 잠시잖아. 그 잠시만이라도 아이들 곁에 있어 주고 싶었어.”
    “정말 대단해. 두 아이라니.”
    연주는 속삭이듯 말했다.
    “성재와 나는…… 우리는 어차피 기회도 없었지만, 만에 하나 아이가 있었다면 정말 많이 힘들었을 거야. 그 수많은 불운 중에 아이까지 들어 있었다면, 상황이 훨씬 나빠졌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
    “아이는 불운이 아니야.”
    미연은 조용히 연주의 말을 가로막았다.
    “아이를 키우는 일은…… 그런 것에 익숙한 사람은 아무도 없어. 누구나 처음부터 배워 나가는 거야.”
    “물론 그런 뜻이 아니야. 너도 알잖아.”
    연주는 당황한 얼굴로 손을 내저었다.
    “오늘 자꾸 말이 어긋나가네. 성재도 나도.”
    연주는 허탈하게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대로 방을 나가는 줄 알았는데, 나가지 않았고 바닥을 내려다보았다. 뭔가 하고 싶은 말이 남은 것 같았다.
    “저기 있잖아……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었어. 그때 빌려준 돈 말이야. 정말 요긴하게 잘 사용했어. 그 돈이 없었으면 여기까지 오지도 못했을 거야. 정말…… 바닥이 어딘지 모르게 힘들었거든 우리.”
    미연은 자신이 그 돈을 빌려주는 걸 끝까지 반대했다는 사실을 말하면 연주가 어떤 표정을 지을지 궁금했다. 빈말이라도 갚겠다는 말 대신 왜 고맙다고만 하는 건지도 궁금했다. 어째서 자신의 돈은 갚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지, 조건 없이 받은 돈이라도 된다고 생각하는지 궁금했다. 그렇지만 그런 말을 입 밖에 뱉을 수는 없었다.
    “베트남에 잘 정착해서 다행이야. 사업도 유망해 보이던데.”
    “성재 말을 다 믿는 거야?”
    연주는 피식 웃었다.
    “넌 정말 여전해.”
    연주가 먼저 방을 나선 후, 미연은 아이를 안고 밖으로 나왔다. 민욱이 베란다 쪽을 손짓했다. 연주와 성재는 그곳에서 추위에 덜덜 떨며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베란다 벽의 코팅지가 흉물스럽게 벗겨진 것이 미연의 눈에 거슬렸다. 그것을 말끔히 벗겨내고 페인트칠을 하는 것이 원래 오늘의 계획이었다. 손님이 오지 않았다면 말이다. 캄캄한 베란다에 희미한 두 개의 불빛이 서서히 점멸했다.
    연주와 성재가 들어온 후, 그들은 상을 치우고 본격적으로 와인을 마시기 시작했다. 차를 가져왔는데 괜찮으냐고 묻자, 성재가 대리기사를 부르면 된다고 호탕하게 말했다. 성재는 빠른 속도로 잔을 비웠다. 연주도 제지하지 않았다. 그들은 조금씩 취해 갔다.
    “유럽여행 마지막 날 기억나니?”
    그날 처음으로, 미연이 먼저 말을 꺼냈다.
    “우리 스위스에서 마지막 날 퐁듀를 먹으러 갔잖아.”

 

    스위스 인터라켄은 배낭여행의 마지막 코스였다. 그들은 30일 내내 무료 조식에서 배를 채우고 저렴한 길거리 음식을 사먹거나 아예 끼니를 거르며 다녔지만, 마지막 국가인 스위스에서는 퐁듀를 먹어 보자고 의기투합했다. 여행의 피날레를 장식할 음식인 셈이었다. 연주는 관광객 맛보기용이 아닌 현지인들이 즐겨 찾는 퐁듀 집을 찾겠다고 벼르고 있었다. 길을 가다가 동네 사람들을 붙잡고 묻거나, 메모를 하기도 했다.
    스위스 일정은 첫날부터 눈이 내렸다. 가장 큰 볼거리라는 융프라우로 향하는 열차가 운행을 멈춰서, 그들은 숙소에서 발이 묶여버렸다. 물가마저 살인적이라 삶은 계란과 컵라면, 사과만 먹으면서 버텨야 했다. 입고 갔던 바지가 다 헐거워질 정도였다. 결국 마지막 날까지 열차 운행은 재개하지 않았고, 그들에게 남은 것은 퐁듀뿐이었다. 연말이라 사람들로 북적이는 거리를 예상하고 시내로 나간 그들은 깜짝 놀랐다. 대부분의 상점이 문을 닫은 것이다. 흩날리는 눈 속에, 가게마다 휴점을 알리는 안내문이 붙어 있었다. 실망에 젖어 한동안 아무도 말을 꺼내지 못했다. 미연은 24시간 문을 여는 맥도날드에 가서 제일 비싼 세트를 사먹자고 했다. 민욱과 성재도 동의했다. 그런데 연주가 다른 레스토랑을 찾아보자고 우겼다. 주변을 뒤져 보면 한 군데라도 영업을 하는 곳이 있을 거라고 고집을 부렸다.
    그들은 두 시간 가까이 추위와 허기에 덜덜 떨며 레스토랑을 찾아 다녔다. 간판의 불빛을 보고 달려가도, 문이 잠긴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마지막에 그들은 마침내 문 연 곳을 찾았는데, 퉁명스러운 할머니와 나이든 아들이 운영하는 식당을 겸하는 가정집이었다. 그들 외에 다른 손님은 한 명도 없었다. 메뉴에 적힌 퐁듀를 주문하자, 두 사람은 무표정한 얼굴로 부엌으로 들어갔다.
    부엌의 안쪽에서는 아무 기척이 없었는데 생각보다 금세 음식이 나왔다. 걸쭉하게 끓인 치즈와 볼에 수북이 담긴 빵조각이 전부였다. 미연은 먼저 스푼으로 치즈를 아주 조금 떠먹어 보았다. 그리고 곧장 입에 든 것을 뱉어냈다. 단지 익숙하지 않은 맛이 아니라, 부패의 맛이었다. 민욱과 성재도 말없이 포크를 내려놓았다. 오직 연주만이 꼿꼿한 자세로 앉아 음식을 먹었다. 연주는 볼에 담긴 빵을 치즈에 적셔 홀로 절반 가까이 먹어치웠다. 미연은 그런 연주를 질린 얼굴로 지켜보았다. 코를 찌르는 치즈 냄새를 더는 견딜 수 없다고 생각했을 때, 연주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들은 가진 돈을 탈탈 털어 음식 값을 계산했다. 한 사람당 빅맥 두 세트씩 먹을 수 있는 돈이었다. 미연은 화가 났지만, 뭐라 말을 할 수는 없었다. 연주가 식당에서 나와 골목을 돌자마자 먹은 것을 토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성재가 달려가서 연주의 등을 두드렸다. 미연과 민욱은 그들의 모습을 망연자실 바라보고만 서 있었다. 지긋지긋한 눈이 계속 내리고 있었다. 식당에 들어갈 때만 해도 싸라기 같던 눈발이 더 굵어졌다.
    민욱이 가로등 아래서 지도를 펴보더니 고개를 갸웃거렸다. 지도 위에 눈송이가 내려앉아 곧 종이가 젖어버렸다. 지도에서 그들이 서 있는 곳을 찾을 수 없었다. 레스토랑을 찾아 헤맬 때 눈 때문에 지도 보기를 그만뒀는데, 금세 바로잡을 수 있을 것이라고 방심한 것이 화근이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숲이 지척이었다. 민가는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헤매면 헤맬수록 더 깊숙이 미로 속으로 들어가는 느낌이었다. 길 위에 그들 외의 행인은 단 한 명도 없었다. 낙석주의 표시판이 곳곳에 보였다. 미연은 추웠고, 배가 고팠고, 아이처럼 울고 싶었다. 모든 게 연주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정작 연주는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주위를 둘러볼 뿐이었다.
    “저기 썰매장 아니야?”
    성재가 외쳤다. 정말 그곳에 썰매장이 있었다. 제대로 시설을 갖춘 썰매장이 아니라, 동네 사람들이 썰매를 타려고 만들어 놓은 장소인 듯싶었다. 높은 구릉에 슬라이딩해서 내려오는 길이 닦여 있고, 낡은 플라스틱 썰매도 쌓여 있었다. 가느다란 새끼 끈으로 진입로를 막아 놨을 뿐이었다. 성재가 먼저 그 안으로 성큼성큼 걸어 들어갔다. 그는 플라스틱 썰매를 들고 나오더니, 망설이지 않고 그 위에 올라탔다. 그 뒤를 연주가 따라갔고, 민욱도 합세했다. 미연은 홀로 남는 게 두려워 할 수 없이 그들 뒤를 쫓았다. 경사가 얼마나 가파른지 썰매는 쏜살같이 밑으로 미끄러졌다. 몸이 붕 떠올랐다가 아득하게 아래로 꺼지는 느낌이었다. 미연은 비명을 질렀다. 그 소리가 왕왕 하늘을 울렸다.
    그들은 몇 번이나 왕복하며 썰매를 탔다. 미끄러져 내려와서, 다시 걸어 올라가고, 또다시 미끄러져 내려왔다. 나중에는 누가 시작한지도 모를 눈싸움을 했다. 옷과 신발이 다 만신창이가 되어 눈밭에서 굴렀다. 그들은 미친 사람들처럼 웃었다. 미연도 웃을 수밖에 없었다. 바람이 심장을 통과해서 지나가는 듯한 느낌이었다. 그렇게 눈밭에 누워 한참 웃다가 마침내 웃음소리가 잦아들었다.
    “나는 부자가 될 거야”
    성재가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
    “커다란 저택에 살면서 커다란 개를 키울 거야. 개를 가지는 게, 어렸을 때부터 소원이었거든.”
    “뭐야, 그게.”
    연주가 쿡쿡 웃었다.
    “개를 가지기 위해서 꼭 부자가 되어야 하는 건 아니야.”
    “커다란 저택, 커다란 개라니까.”
    “어쨌든 너는 개를 가지게 될 거야.”
    민욱은 엄숙하게 선포하듯 말했다.
    “우리 모두 자기만의 개를 가지게 될 거야.”
    마침내 그들 넷은 입을 다물었고, 각자 생각에 잠겨 검푸른 하늘을 바라보았다. 어느 순간 눈이 멎었고 사방이 고요했다. 새하얀 눈이, 감탄스러울 정도로 입자가 곱고 균일한 스위스 특유의 눈이 그들 밑에 양탄자처럼 펼쳐져 있었다. 그 영원한 눈을 덮고 있으니 폭신하고 따뜻한 느낌마저 들었다.
    잠시 후 그들은 완전히 젖은 몸으로 오들오들 떨면서 썰매장 밖으로 나왔다. 주변을 지나가던 젊은 군인이 그들을 발견하고 버스정류장까지 데려다주었다. 숙소로 돌아왔지만 좀처럼 흥분이 가시지 않았다. 여행의 마지막 밤이었다. 그들은 숙소 로비의 전기난로 앞에서 넷이 강아지들처럼 붙어서 잤다.

 

    “그래, 그때 정말 재미있었는데.”
    연주는 추억에 젖은 얼굴로 말했다.
    “이전에도 이후에도, 그렇게 웃어 본 적은 없는 것 같아.”
    “그 썰매장 아직도 거기 있을까?”
    성재의 물음에 민욱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글쎄, 아직 있지 않을까? 별다른 관리도 없이 유지되는 곳이었잖아.”
    “그런데 너희 개는 어떻게 되었어?”
    미연이 갑자기 생각났다는 듯 물었다.
    “베트남에 데려가지 않았니?”
    연주는 그 질문에 깜짝 놀란 표정을 짓더니 죽었어, 라고 힘없이 내뱉었다. 그러고는 더 이상 아무 말이 없었다. 성재 역시 입을 꽉 다물었다. 개에 대해서는 도무지 더 이상 물을 수 없었다. 그 후로 그들은 좀 더 술을 마셨는데, 대화는 잘 이어지지 않았다. 침묵과 한기가 그들을 둘러쌌다. 취한 성재는 몸을 제대로 가누지도 못했다.
    “곧 여덟 시야.”
    연주가 나지막한 소리로 성재에게 말했다.
    “우린 이제 가야 해.”
    성재는 연주를 멍하니 바라보다가, 한참만에 고개를 끄덕였다. 민욱이 미연을 한쪽 구석으로 데리고 갔다.
    “저애들, 집에서 자고 가게 하면 어때.”
    “선약이 있다고 하잖아.”
    “둘 다 너무 취했어.”
    “무슨 참견이야.”
    미연은 짜증스럽게 말하고는 고개를 세게 흔들었다.
    “아니, 마음대로 해. 초대도 마음대로 했잖아. 돈도 마음대로 줬고. 나한테 묻긴 왜 묻는 건데.”
    히스테릭한 미연의 반응에 결국 민욱이 포기했다. 성재와 연주는 여덟 시가 되기 전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미연은 그들이 벗어 놓은 겉옷을 가지러 옆방에 들어갔다. 연주의 코트는 여전히 가벼웠는데, 소매에 검붉은 얼룩이 묻어 있었다. 미연은 그것을 잠시 내려다보았다. 그녀는 연주에게 묻고 싶었다. 아직도 그들이 다르다고 생각하는지, 그들이 처음부터 달랐다고 믿고 있는지. 코트는 연주의 몸피만큼 사붓했다. 문득 그 안에서 살아 있는 연주의 몸이 느껴지듯 했다. 미연은 순간 깜짝 놀라 코트를 바닥에 떨어뜨렸다. 하지만 그녀는 곧 아무렇지 않게 코트를 집어 들었다.
    미연은 연주와 성재에게 겉옷을 건넨 후, 현관으로 나가 문을 열어 주었다. 성재는 미연의 큰아이에게 용돈으로 5만 원을 주었다. 아이에게 너무 큰돈이라고 만류했지만, 굳이 손에 쥐어주었다. 민욱은 그들을 배웅하기 위해 큰아이와 함께 밖으로 나갔다. 미연은 베란다에 서서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성재와 연주가 잿빛의 독일제 승용차에 오르는 것이 보였다. 고급 렌터카라니 가당키나 한 일인가. 미연은 힘없이 조소했다. 그들로 인해 삶이 망가진 사람들이 하나 둘이 아니었다. 누군가는 아이를 빼앗긴 채 이혼 당했고, 누군가는 직장도 그만두고 폐인이 되었다. 민욱은 단 하나뿐이었던 동창 모임을 잃어버렸다. 전부 20년 가까이 만난 친구들이었다. 그 모든 것이 깨져버린 것에 대해 저들은 정말 아무 책임감도 못 느끼는 것일까. 미연은 연주와 성재를 이해할 수 없었다. 그들과 다시는 얼굴을 마주할 수 없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잠시 후, 민욱이 집으로 돌아왔지만 차는 그 자리에서 꼼짝도 하지 않았다. 그들은 그곳에서 대리운전 기사를 기다리고 있다고 했다. 민욱은 지친 듯 무거운 숨을 내쉬며 화장실로 들어갔다.
    미연은 아이들을 씻기고 재우기 위해 방으로 들어갔다. 큰아이가 잠들 때까지 동화책을 읽어 달라고 했다. 책에는 아이들의 꿈을 먹는 난쟁이가 나왔다. 난쟁이는 매일 밤 잠든 아이들을 찾으러 다니는데, 꿈마다 그 맛이 다르다. 어떤 꿈은 짠맛, 어떤 꿈은 신맛, 어떤 꿈은 매운맛이 난다. 정말 달콤한 맛이 나는 꿈을 만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난쟁이는 꿈을 고르고 고르다 그만 몸이 홀쭉해져 버린다. 허기져 누운 난쟁이는 달콤한 꿈을 찾아 마음껏 먹는 꿈을 꾼다.
    아이가 잠든 후, 미연은 조용히 책을 덮었다. 문득 스위스의 설야가 떠올랐다. 하얗고 폭신한 눈, 영원한 눈……. 연주는 그때를 떠올리며 눈이 휘어지게 웃었다. 그제야 미연이 아는 연주로 돌아간 것 같았다. 그들 넷은 잠시 동안 한마음이 되었다. 미연 역시 그 시절을 기억하고 있었다. 하지만 언제까지나 과거에 사로잡혀 살아갈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비록 모든 아름다운 것이 과거에 있다 할지라도.
    미연은 거실로 나와서, 소파에 맥없이 누웠다. 그 앞에 앉아서 텔레비전 뉴스를 보고 있는 민욱의 뒷모습이 보였다. 그가 자신에게 화를 내고 있다는 것을 미연도 알고 있었다. 그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텔레비전을 보다가 각자 침실로 들어갔다. 잠들기 전 미연은 가슴이 무거운 것으로 눌린 것처럼 답답함을 느꼈다. 원인 모를 절망감에 그녀는 몇 번이나 돌아누우며 밭은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일단 잠이 든 후에는 꿈도 꾸지 않고 달게 잤다.

 

    다음날, 미연은 평소보다 이른 시간에 잠에서 깼다. 아직 미명이 찾아들기도 전의 새벽이었다. 그녀 옆에서 엎드려 잠든 민욱의 등이 천천히 오르내렸다. 미연은 부드럽게 그 등을 쓸어내렸다. 그리고 스트레칭을 하듯 발을 쭉 펴고 침대에서 내려왔다. 지난밤의 피로는 사라진 듯 몸이 개운한 느낌이었다. 그녀는 자신이 아직 젊다고 생각하며 방에서 나왔다.
    어슴푸레한 어둠에 묻힌 거실은 고요하고 쾌적해 보였다. 식탁 위 과일 바구니에 노란 망고가 다섯 개 들어 있었다. 전날의 흔적이란 그것뿐이었다. 그녀는 잠옷 바람으로 과도를 가져와서 식탁 앞에 앉아 망고의 껍질을 깎아 먹었다. 과육은 달고 즙이 많았다. 전날 자신이 왜 그렇게 기분이 나빴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연주와 성재, 그들은 이미 그녀를 스쳐간 사람들이었다. 지금은 그녀 인생의 절정이라 할 만했다. 남편과 그녀는 삶의 최전선에 있었다. 아이들은 아직 어리고, 그들의 사랑을 필요로 했다. 두 딸은 미연의 전부였다. 그녀는 그 애들을 위해 죽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아이들을 떠올리는 것만으로 목이 멜 정도였다.
    미연은 손을 닦고, 소파에 앉아 텔레비전을 틀었다. 전날 민욱이 보던 뉴스 채널에서 아침 뉴스가 나오고 있었다. 미연은 채널을 다른 데 돌리지 않고 무신경하게 화면을 바라보았다. 아침에 뭘 만들어 먹을까 생각하고 있을 때, 화면에 그 차가 나왔다. 잿빛의 독일제 승용차. 그 차는 수풀이 우거진, 황량한 풍경의 저수지에 서 있었다. 헤드라인이 화면 밑을 느리게 지나갔다. 지난밤 E시에서 30대 남녀가 익사체로 발견되었다는 소식이었다. 구조대가 도착했을 땐 이미 늦었다, 유서를 남겨 자살로 추정된다는 앵커의 말이 미연의 귓속을 울렸다. 그녀는 조용히 화면을 바라보았다. 뒤이어 고속도로 3중 추돌사고 소식, 재래시장 화재 소식이 지나갈 때까지 가만히 그 자리에 앉아 있기만 했다.
    “왜 그래?”
    방에서 나온 민욱이 물었다.
    “무슨 일이 났어?”
    미연은 갑자기 꿈에서 깬 사람처럼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녀는 베란다로 나가서 주차장을 눈으로 훑었다. 전날 렌터카가 서 있던 자리에는 당연히 다른 차가 있었다. 세상에 그 차가 오직 한 대뿐인 것은 아니라고 미연은 생각했다. 같은 모델의 차량 수천, 수만 대가 지금도 길 위를 달리고 있다. 성재와 연주는 선약이 있다고 했다. 근처의 저수지로 간다는 말 따위는 들은 적 없었다. 베란다의 철제 난간 위에 차갑게 굳은 담뱃재가 뭉쳐 있었다. 미연은 그것을 손으로 닦아냈다. 담뱃재는 허공으로 흩어져 버렸다. 미연은 흉물스러운 베란다 벽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오늘 혼자서라도 코팅지를 벗겨내고, 새로 페인트칠을 하겠다고 결심했다. 원래의 벽과 같은 짙은 회색으로, 주말이 다 지나기 전에. 미연은 현실적인 사람이었다. 하지만 집 안에서 민욱이 부르는 소리에도, 아이들이 깨어 울부짖는 소리에도 그녀는 응답하지 못했다. 뭔가에 사로잡힌 사람처럼 텅 빈 벽을 바라보며 한참 동안 그곳을 벗어날 줄 몰랐다.

 

 

 

 

 

 

 

 

 

 

 

 

 

 

 

작가소개 / 정한아

1982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제4회 대산대학문학상·제12회 문학동네 작가상·2016년 김용익 소설문학상을 수상했다. 장편소설 『달의 바다』, 『리틀시카고』, 『친밀한 이방인』, 소설집 『나를 위해 웃다』, 『애니』가 있다.

 

   《문장웹진 2018년 0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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