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술인 - 유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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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소설]

 

 

진술인

 

 

유재영

 

 

 

1

 

    그 무렵 새벽 5시면 눈이 떠졌습니다. 화장실에 다녀와 식탁 의자에 앉아 있다가 냉장고에 있는 찬으로 간단히 허기를 채우곤 했지요. 그날은 일요일이었으므로 출근 준비 대신 텔레비전을 틀었습니다. 현관 벨이 울릴 때만 해도 텔레비전에서 나는 소리라고 생각했습니다.
    “경찰입니다. 이정운 씨 좀 뵈러 왔는데요.”
    경찰이란 말에 놀란 나머지 보안 줄도 걸지 않고 문을 열었죠.
    “무슨 일이시죠?”
    “회사 일 때문에 왔습니다. 이정운 씨 안에 계시죠?”
    경찰은 정운의 이름을 재차 확인하며 문틈으로 한 발짝 다가왔습니다. 짧은 시간에 집 안 곳곳을 살피더군요. 벽에 붙어 있는 결혼사진을 보고는 신혼이신가 봐요, 하고 물었습니다. 저는 잠시 기다리란 말을 남기고 침실로 향했습니다.
    “여보, 일어나 봐. 경찰서에서 사람이 왔어.”
    정운은 금방 눈을 뜨더군요.
    “경찰?”
    “회사에서 무슨 일 있었어?”
    “일?”
    “회사 일 때문에 왔다던데?”
    정운은 침대에 걸터앉아 눈가를 손바닥으로 천천히 문지른 다음 문을 열었습니다. 제가 뒤따라 나갔을 땐 현관문이 막 닫히고 있었습니다. 저는 닫힌 문을 바라보며 식탁 위에 묻은 얼룩을 행주로 닦아내고 바닥에 떨어진 머리카락을 손등으로 쓸어 담았습니다. 문 밖에서 정운의 기침소리만 작게 들렸습니다. 일 분도 채 지나지 않아 들어온 정운은 침실에서 지갑과 휴대폰을 챙겨 나왔습니다. 그러고는 집을 한 차례 훑어보더군요. 경찰이 미심쩍은 표정으로 둘러보듯이 말이죠.
    “무슨 일인데?”
    “금방 올 거야. 어디…… 안 갈 거지?”
    정운은 차분한 음성으로 대꾸했습니다. 정운의 목소리는 대개 낮았고 무심한 투였습니다. 가끔 그 말투와 성격이 몹시 답답하다고 느꼈으나 예고에 없던 일이 닥치는 순간, 그러니까 임신 초기 몸의 변화가 극심할 때나 급하게 돈이 필요한 상황에서는 안도를 느끼곤 했습니다. 그날도 다르지 않았습니다.
    “가긴 어딜 간다고.”
    그는 작년에 사두고 몇 번 신지 않은 운동화를 신발장에서 꺼내 신었습니다. 발볼이 좁아 불편하다며 신발장 맨 위 칸에 올려두었던 운동화였습니다. 다 해진 운동화 한 켤레가 보이지 않는다는 건 그가 나간 후에 알았어요. 드디어 버렸나. 베란다에서 골목 쪽을 바라보며 생각했습니다. 그곳에 서서 정운의 정수리를 몇 번이나 지켜보았는데 그날 정운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제가 찾지 못한 걸 수도 있겠죠. 휴일에 누군가에게 불려 나간 일이 처음은 아니었습니다. 제조팀 소속으로 일하다가 결혼을 앞두고 영업팀으로 배속되면서 밤낮으로 사람을 상대할 일이 많았던 겁니다. 변경된 업무로 인해 스트레스가 있었을 텐데도 회사 일은 좀처럼 입 밖에 내지 않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날은 평소보다 일찍 잠들었고 정운이 현관문 여는 소리에 설핏 잠에서 깼습니다. 불 꺼진 침실로 들어와 몸을 눕히는 정운의 몸이 평소보다 가볍게 느껴졌던 건 그저 느낌 탓이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지나간 일의 무게는 조금씩 줄어들게 마련 아니던가요. 그와는 어둠 속에서 몇 마디를 나누었습니다. 반쯤 잠이 든 상태였는데도 그 밤 나누었던 대화가 기억납니다. 돌아누운 정운에게 시간을 묻고 난 뒤 무슨 일이었느냐고 물었습니다.
    “사고가 있었대. 사람이 죽었어. 자재과 김미영 씨라고. 경찰서 들렀다가 소주 한잔 하고 오는 길이야. 졸지에 부서 회식을 다 했네. 참고인 조사인가 뭔가 때문에 다들 왔더라고.”
    “새로 들어온 사람?”
    “응.”
    “젊은 사람이 왜.”
    “모르지.”
    “그런데 왜 회사에서 죽었대?”
    “그러게. 왜 회사에 있었을까. 그 시간에.”
    “어떻게 죽었대?”
    “…… 그냥 죽었대. 그냥, 엎어진 채로.”
    정운은 시간을 두고 답했습니다.
    정운의 낮고 작아지는 목소리를 들으며 저는 까무룩 잠이 들었습니다. 김미영 씨는 왜 엎어져 있었을까, 동료가 죽었다는데 이 사람들은 무슨 회식을 할까, 또 나는 왜 이렇게 평온할까, 왜 이리 대책 없이 잠이 쏟아질까, 임신한 사람들은 다 이런가. 잠들기 직전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정운의 침묵에서 새어 나왔던 균열을 읽어낼 틈도 없이 필사적인 잠이었습니다.

 

 

2

 

    “자기, 남편한테 무슨 얘기 못 들었어?”
    옆 라인에서 근무하는 동료가 그 일을 물은 적이 있었습니다.
    “무슨 얘기?”
    “남편 다니는 회사가 기전설비 맞지?” 제가 고개를 끄덕이자 그녀가 이어 말했습니다. “사무실에서 사람이 죽었다며? 강도라던데.”
    “아, 그 사람. 다른 부서 사람이야. 남편한테 들었어. 참고인 조사인가 뭔가도 하고. 그게 벌써 며칠이나 지났는데.”
    “죽은 사람은 뭐 하는 사람이래?”
    “잘 모르는 사람이야. 신입사원이고 자재과라든가. 기전설비 직원이 100명도 넘잖아.”
    “그렇게나 많아? 아무튼 회사 사람이 그랬다는 소문이 있나 봐.”
    “직원이? 아직 범인 안 잡혔대?”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고 나서는 마스크를 쓰고 자신의 라인으로 걸어갔습니다. 그 일이 정운과는 일절 관련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기에 동료의 얘기를 들은 뒤에도 정운에게 묻지 않았습니다.

 

    보름 뒤 정운이 회사에서 긴급 체포되어 지역 경찰서 유치장에 수감되었다는 전화를 받았습니다. 소식을 전한 사람은 그날 집까지 찾아와 정운을 데리고 갔던 경찰 중 한 명이었습니다.
    “공범이 있었어요. 박순철이라고.”
    박순철 씨는 정운과 입사 동기로 저도 몇 번인가 얼굴을 본 적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공범인 박순철이 어젯밤 자살했습니다. 범행 일체를 자백하는 유서가 나왔고요.”
    제가 그럴 리 없다고 중얼거리자 경찰은 명료하게 답변을 달았습니다. ‘강력범죄팀’ 푯말이 붙은 사무실에서도 같은 말을 들었고 이어지는 경찰의 수사 내용은 제가 정운을 변호할 필요도, 그럴 입장도 아니라는 걸 말해 주었습니다.
    “이정운 씨가 사채 쓰고 계신 건 아셨나요?”
    저는 고개를 저었습니다.
    “죽은 박순철이랑 회사 자재를 빼돌리다가 자재과 직원한테 들키니까…….”
    “왜 그랬대요? 그 사람.”
    “사채요. 빚이 있었다니까요.”
    “아니요. 박순철 씨요. 왜 자살했대요?”
    “왜겠습니까. 미안했겠죠. 사람을 죽였는데.”
    왜 그걸 물었을까요. 박순철 씨가 자살했다는 것도 믿기지 않았지만 저에게 쏟아질 질문 세례를 피하고 싶은 마음이 컸던 것 같습니다. 경찰은 박순철 씨의 유서를 토대로 사건을 재구성해 주었습니다. 퇴근 후 스크린 경마장과 성인 피시방을 들락거리며 그곳에서 어울린 사람들과 안마방이니 단란주점이니 하는 곳에 수십 차례 드나들었다고 했습니다. 돈이 떨어지자 사채를 썼고 빚을 갚기 위해 회사에서 납품하는 자재를 몰래 내다파는 처지까지 이르게 된 것이죠. 일이 손에 익자 액수는 점차 늘어났고 대담해졌습니다. 물건이 비는 걸 확인한 자재과 직원(그가 김미영 씨입니다)이 순시에 나서면서 현장을 목격했던 겁니다. 도망가는 김미영 씨를 정운이 잡아챘다고 했습니다.
    “그 사람도 그래요? 자기가 사람을 죽였대요?”
    “이정운 씨요? 지금은 아니라고 하죠. 그런데 상황이 그렇지가 않아요.”
    경찰은 박순철 씨의 유서를 직접 보여주며 말했습니다. 저는 그 종이를 만지지도 않았습니다.
    “무슨 상황이요. 어떻게 죽은 사람 말만 믿어요.”
    “그게 전부가 아니에요. 목격자가 있습니다. 두 사람이 자주 찾던 술집 종업원 증언이 있다고요.”
    “그 사람이 다 본 건 아닐 거 아니에요. 회사에서 그랬다던데.”
    “죽은 김미영 씨를 데리고 와야 믿겠습니까? 우리한테만 얘길 안 하지. 자백을 했대요. 자백을.”
    “자기가 사람을 죽였다고요?”
    “울더래요. 생사람을 죽였다고. 정 궁금하시면 오신 김에 만나고 가세요. 설득도 좀 해보시고. 시간 끌면 불리하다는 건 아시죠?”
    그때까지도 저는 정운을 믿었습니다. 모든 게 말뿐이지 실감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으니까요. 경찰의 말도, 박순철 씨의 유서도 허상처럼 보였습니다. 무엇보다 정운은 누구 앞에서 우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부모님의 장례식 때나 입덧이 심해 병원에 실려 갈 때도 정운은 우는 대신 말없이 손을 잡아 주는 사람이었습니다. 뭔가 단단히 꼬였다고 생각했습니다. 사람들이 정운을 누군가와 착각하는 모양이라고 생각하며 유치장으로 향했습니다.
    “경찰이 뭐라고 해?”
    “박순철 씨가 죽었어. ……그 사람 유서에 다 적혀 있대. 당신이 얘기했던 김미영 씨 말이야.”
    “근데, 난 안 죽였어. 여보. 그건 내가 아니야.”
    “당신을 봤대.”
    “누가?”
    “당신을 본 사람이 있대.”
    “그게 누구냐고.”
    “울었어?”
    “울긴 누가 울었다는 거야.”
    “당신이 한 말, 다 진짜야? 거짓말 아니고?”
    “미안해. 정말 미안한데. 김미영 씨를 죽인 건 내가 아니야. 여보. 그날 회사에는 가지도 않았어.”
    “집에 없었잖아.”
    “회사 근처에 있었어.”
    “근처 어디?”
    “술집.”
    “그 사람이 봤대.”
    “잘못 봤겠지.”
    “거기서 울었니?”
    “그게 무슨 말이야.”
    “빚은 어떻게 할 거야?”
    “내가 갚을게. 무슨 수를 써서라도 내가 다 갚을게.”
    집으로 돌아와 한참 동안 식탁 의자에 앉아 있었습니다. 저는 정물에서 안정을 느끼는 사람이었고 삶을 향한 의혹은 식탁 위에 떨어진 얼룩쯤으로 생각했습니다. 어둡고 탁한 자국은 혼자 힘으로 지울 수 있으리라 여겼으나 모든 얼룩을 지울 수는 없었습니다. 그 밤에도 몇 번이나 시계를 봤습니다. 정운이 돌아올 것 같다는 착각은 쉽게 없어지지 않았습니다. 이웃집의 소음에도 깜짝 놀라곤 했습니다. 정운의 어깨를 두드려 주기 위해 식탁 의자에 앉아 근심했던 날들이 그 사람에게는 어떤 의미였을까요. 스크린 경마장과 단란주점을 오가며 그 사람은 나를 생각했을까요. 그날들의 감정과 그날의 진실은 나누어 생각하기 힘들었습니다. 처음에는 박순철 씨의 유서와 경찰의 말이 모두 사실일까 두려웠습니다만, 더러 그 반대의 경우를 염려했습니다. 누명을 썼다는 정운의 말이 맞는다면, 그러면 어떻게 되는 걸까. 나는 어느 쪽을 더 바라고 있나 저울질했습니다. 그 심경의 변화를 당신은 이해할 수 있을까요. 어느 쪽으로든 마음의 준비가 필요했습니다.
    그로부터 며칠 뒤 채권추심원의 전화가 왔습니다. 그는 갚지 않으면 압류될 품목을 알렸습니다. 그 억양의 완곡함 때문인지 높은 철조망 앞에 선 듯 막막한 느낌이 들더군요. 그 금액을 여지없이 제가 짊어지게 된다고 했습니다. 수화기 저편에서 고지하는 이는 그게 책임이고 보증이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총무팀에서 근무하는 동료의 소개로 변리사를 만났고 이혼이 해결책이 된다는 걸 알았습니다. 정운을 다시 찾은 건 두 번째 채권추심원의 전화를 받은 직후였습니다. 당장 해결해야 할 빚이 너무나 가까이 있었으니까요.
    유리문 건너 빈 의자를 보며 되돌릴 수 없는 시간을 생각했습니다. 가파른 층계로 이루어진 시간을요. 그날 정운의 첫 마디는 탄원서였습니다. 직장 동료들에게 탄원서를 받아 줄 수 있겠느냐고 묻더군요. 오래 준비해 온 말 같았습니다.
    “아니면 당신이라도.”
    “탄원서? 그게 뭔데?”
    저는 그 말의 의미를 알면서도 일부러 되물었습니다. 정운도 그 물음의 의미를 알았는지 고개를 숙였습니다. 그도 나처럼 바닥에 있는 얼룩을 찾았을까요. 채권추심원의 첫 번째 전화와 두 번째 전화 사이 경찰은 비닐에 담긴 운동화를 들고 나를 찾아왔습니다. 다 헐어서 버렸다고 생각했던 그 운동화에는 바닥과 겉면에 피가 묻어 있었습니다. 김미영 씨의 피라고 했습니다. 저는 그 운동화가 정운의 것이라는 걸 확인해 주었습니다. 그 사람이 현장에 있었다는 걸 알리는 결정적 증거였습니다.
    “탄원서는 억울한 사람들에게 필요한 거야. 거기, 당신 같은 사람이 아니라.”
    “……그게 나야, 여보.”
    그는 울먹이며 말했지만, 진짜 울지는 않았습니다. 그리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날의 진실이 무어냐고 묻지 않았습니다. 더는 그 사람에게 확인받고 싶지 않았던 탓입니다. 의미 없는 일을 되풀이하고 싶진 않았습니다.

 

    같은 해 10월에 열린 1심 재판에 대해서는 몇몇 장면들만 밝히겠습니다. 검사 측은 김미영 씨와 정운의 관계를 추궁했습니다. 정운은 자기가 아니라 박순철 씨가 김미영 씨에게 관심이 있다는 건 알았고 둘 사이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는 모른다고 답했습니다. 모든 걸 박순철 씨가 제안하고 주도했다고 그 사람은 말했습니다. 누군가 목소리를 높였고 그 살풍경 속에서 저는 변호사 측의 첫 번째 증인으로 재판정에 섰습니다. 선서를 하고 정운의 변호사가 묻는 말에 답한 다음 검사 측 질의에도 응했습니다. 정운의 성격과 범행이 일어난 즈음 행적에 관한 이야기였습니다. 알고 있는 게 많지 않았기에 말할 수 있는 것도 많지 않았습니다. 말을 할 때마다 진실이 아닐까 봐, 위증이 될까 봐 두려웠습니다. 저는 그 사람에 대해서 무엇을, 얼마나 알고 있었을까요. 제가 증인석에서 물러난 후 검사는 김미영 씨도 저와 같은 임산부였다는 걸 알렸습니다. 부검 결과 밝혀진 사실이었습니다. 태아는 6주였기 때문에 누구의 아이인지는 알 수 없었고 김미영 씨도 자신이 임신했다는 걸 몰랐을 가능성이 크다고 했습니다. 방청석에서 탄식이 흘렀습니다. 저를 흘겨보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그날 정운에게 선고된 형량은 30년이었습니다. 두 명의 목숨을 앗아간 죄였습니다. 한 신문이 이 사건을 다뤘습니다. 정운은 회사 자재를 빼돌리다가 임산부인 신입사원을 살해한 인면수심의 살인범으로 등장했고 저는 살인자의 만삭 아내 A씨였습니다.

 

    무언가 끝났다고 생각했으나 처음과는 달리 끝을 알리는 사람은 찾아오지 않았습니다. 어떤 일은 평생토록 끝나지 않기 때문이겠지요. 그 무렵 저는 자주 뒤돌아보는 버릇이 생겼습니다. 법원을 나설 때도 그랬습니다. 김미영 씨의 동료나 박순철 씨의 가족이 저를 불러 세울 것만 같았습니다. 오래도록 그 기분은 지속되었습니다. 무언가 따라오는 거 같았고 사람들이 모인 자리에서는 누군가 나를 향해 손가락질하는 것처럼 느꼈습니다. 그래서 인적이 드문 횡단보도에서도 신호를 지켰습니다. 누가 묻지 않으면 먼저 말하는 일도 삼갔습니다. 좋아하던 껌도 씹지 않았습니다. 이와 이 사이에 무언가 달라붙는 느낌을 더는 좋아하지 않게 된 것이지요.

 

    아이는 절 끝까지 붙잡아 주었고 재판 두 달 뒤인 1998년 12월 5일 태어났습니다. 이름은 진영. 참 진, 길 영 자를 씁니다. 제가 지은 단 하나의 이름이었습니다.

 

 

3

 

    진영이 자라는 동안 제가 아이에게 바란 것은 정직과 진실이었습니다. 아이의 귀여운 장난, 사소한 거짓말에도 정색하고 꾸짖어 진영을 난처하게 만든 일이 종종 있었습니다. 때로는 진실의 무게를 감당하지도 못하면서 솔직하게 털어놓으라고 몰아세운 적도 있었지요. 막상 진영에게 솔직하지 못한 건 저였을 겁니다. 정운의 존재를 알리지 않았으니까요. 진영이 말을 시작할 무렵 그 사람의 모든 흔적을 지웠습니다. 이삿짐에선 더 이상 정운의 물건이 섞여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렇다고 그 사건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있었던 건 아닙니다. 이사를 하고 직장을 옮겨도 사람들의 시선과 목소리에 깃든 악의를 헤아리기 바빴습니다. 사람을 사귀는 것은 물론이고 누군가와 대화를 나누는 일조차 버겁던 시절이었죠.
    마침내 그 사건과 떼어졌다고 느낀 건 태인 시로 이주하면서였습니다. 토지주택공사의 국민임대아파트 모집공고를 보고 신청한 것이 요건에 들었던 겁니다. 새로 시작하겠다는 마음으로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고 진영의 중학교 입학에 맞춰 태인 시로 왔습니다.
    보험설계사 일도 태인 시에서 시작했습니다. 진영의 명의로 실손 보험을 들기 위해 지역 보험사무소를 직접 방문한 게 인연이 되어 업무를 배워 볼 생각을 했던 겁니다. 낯선 사람을 만나는 일이 힘겨울 때였지만, 저를 수많은 서류 중 하나라고 생각하면서 견딜 수 있는 상황으로 바꿔 나갔습니다. 보험약관과 새로 나온 상품 목록을 달달 외우며 한 장의 계약서, 하나의 보험 상품, 한 권의 약관으로 둔갑하는 법을 익혔던 거지요. 신뢰란 인간 대 인간의 관계에서 생성되는 것이 아니라 서류와 서명 사이에서 탄생하는 일이라는 걸 알았습니다. 그 효력이 새삼 놀라웠습니다. 거기에도 법은 있었습니다. 저는 상품을 소개하고 판매했습니다. 심사하고 승인하고 지급하는 일은 저마다의 부처에서 진행했습니다.
    개척. 보험업계에서는 저의 업무를 그렇게도 불렀습니다. 그 말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개척이란 단어는 진영에게 더 어울렸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중학생이 된 진영은 어느새 저보다 강인한 아이로 자랐습니다. 집안일부터 공과금 납부까지 혼자서도 못 하는 일이 없었고 제가 설계 프로그램을 익히는 데 애를 먹고 있으면 곁에 다가와 도와주었습니다. 때로는 고객으로 분해 상담 업무를 돕기도 했습니다. 짓궂은 고객의 역할도 마다하지 않았죠. 진영이 가르치고 돌보는 일을 전공으로 삼은 데에는 저와 함께한 시간이 조금이나마 영향을 끼쳤겠지요. 대학 졸업반이 되자 진영은 보육교사 자격을 수료했습니다. 어린이집 취직을 염두에 두고 도움이 된다는 자격증 시험도 준비했습니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저는 진영의 선택을 조용히 지켜볼 따름이었습니다.

 

    우편함에서 그 사람의 편지를 발견했을 때, 한동안 멍하니 서 있었던 기억이 납니다. 그 이름을 잊기 위해 그토록 많은 층계를 차곡차곡 밟아왔는데 떨어지는 건 한순간이었습니다. 감옥에서 보내온 편지였습니다. 가방 속에 편지를 찔러 넣고는 우편함을 샅샅이 살폈습니다. 지역 케이블 업체의 전단지 외에는 아무것도 없었죠. 진영보다 먼저 발견한 게 얼마나 다행인가 생각했습니다. 고객을 만나러 가는 길이었고 계약 성사가 목전이었기에 편지는 열어 보지 않았습니다. 약속 시각에 늦는 고객을 기다리는 동안에는 고객의 요구에 맞춰 설계해 온 문건을 펼쳐 두고 잘못된 부분이 없는지 점검했죠. 항목별로 설계된 금액을 확인했습니다. 암 진단비, 7대 질병 수술비, 질병 입원 치료비, 급성심근경색증 진단비……. 서류에는 문제가 없었습니다.
    고객이 떠난 뒤 편지를 읽었습니다. 말끔하게 정서한 글씨가 무척 이질적이었습니다. 그 사람의 글씨를 언제 본 적이나 있나 싶더군요. 편지지는 한 장. 밑으로 갈수록 글씨는 더 작아지고 빼곡해졌습니다. 그 사람은 편지의 절반 이상을 수인의 일상을 담담히 서술하는 데 할애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엔 이런 말이 적혀 있었습니다.
    ‘매년 당신과 아이에게 연하장을 써왔어. 집과 당신 회사에 똑같은 편지를 보냈지. 대개는 반송되어 돌아왔고 그래도 괜찮다고 생각했는데, 이번에는 달랐어. 어제 신부님에게 들었던 말 때문일까. 휴일을 맞아 종교 행사에 참여하는 날이었어. 지난주엔 교회를 찾았으니 이번에는 성당에 갈 차례였지. 고해소에서 신부님에게 물었어. 용서를 구하지 않는 사람은 천국에 갈 수 없느냐고. 신부님이 말하더군. 그들은 처벌받지 않는다고, 참회하지 않는 사람은 용서받을 수 없고 그냥 사라질 뿐이라고 말이야. 그렇다면 나는 그냥 사라지는 걸까. 내가 하지 않은 일로 대신 형을 살고 있는데, 그마저도 부족한 일이 되는 걸까. 이제야 그게 궁금해졌어.’
    그 사람에게 주소를 알려준 적은 없었습니다. 더군다나 태인 시에 오면서 기존에 알던 누구와도 연락을 끊었으니까요. 그렇다면 어떻게 주소를 알았단 말일까요. 미루어 짐작한 바로는 누군가 저를 미행했던 것 같습니다. 이주 초기에 낯선 사람이 따라오는 것을 보고 경찰에 신고해야 하나 고민한 적이 있었으니까요. 공연히 경찰서로 찾아가면 일이 불거질까 걱정이 되어 전전긍긍하던 기억이 있었습니다. 편지에 담긴 기묘한 살기 때문에 양손이 오랫동안 떨렸습니다. 떨림이 멎기까지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집에는 진영이 있었고 할 말이 있다고 했습니다. 저는 진영의 말을 들으면서 비로소 안정을 되찾을 수 있었지요.
    “아르바이트하기로 했어.”
    “어떤 아르바이트?”
    “수요일 저녁이랑, 일요일 오전에 아이를 돌보는 일이야.”
    “몇 명이나?”
    “한 명. 좀 아픈 애거든.”
    진영은 어린이집 보육교사 공고를 보고 면접을 갔다가 제안 받은 일이라고 했습니다. 지체 장애가 있는 원장의 아이를 돌보는 아르바이트였습니다. 고등학교 졸업 후 방학 때마다 쉬지 않고 아르바이트를 했던 터라 이번에도 진영의 선택을 믿었습니다. 제 근심은 단 하나였습니다. 다른 사람의 집에서 일한다는 점이었습니다. 누군가의 집은 누군가의 카페나 프랜차이즈 햄버거 가게와는 다른 의미이니까요. 걱정을 지우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습니다. 진영은 새로운 아르바이트를 아주 잘 해나가는 것 같았습니다. 진영이 저와는 다른 사람이라는 걸 인정했고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을 거라고 안도했습니다. 하지만 더 나은 삶의 기준이 저마다 다르다는 걸 그때의 저는 알지 못했습니다. 공감하고 애도하는 삶이 제게는 멀고 먼 이야기였으니까요.

 

    그 사람의 편지는 보험사무소 제 책상 서랍에 보관했습니다. 다른 고객의 서류와 나란한 편지를 보면서 그 시절 제가 보상받을 수 있는 보험이 있었을까 궁금했습니다. 지금은 가입할 수 없는 상품 목록까지 살폈습니다. 모두 모아 건강하게, 행복한 건강 파트너, 자녀를 위한 보험, 연금보험 아름다운 생활, 가정 종합보험 살다 보면…… 배우자가 살인을 저질렀을 때를 감안한 보험 상품은 없었습니다. 만약 그런 보험이 있다면 저는 어떤 보상을 받을 수 있을까요. 이른 아침 보험사무소에서 회의를 준비하며 세상에 없는, 존재하지 않을 보험 상품을 떠올렸습니다.
    이후 계절이 바뀔 때마다 그 사람은 편지를 보냈습니다. 수인의 일상을 이야기하고 이쪽의 안부를 물었습니다. 편지를 꼼꼼히 읽어야만 했습니다. 무언가 알아 두어야 할 내용이 있지 않을까 걱정이 되어서였습니다. 주소를 알아낼 정도라면 그보다 더한 일을 하지 못하리라는 법도 없을 테니까요. 그런데도 표면으로 드러난 위협은 없었으므로 경찰에 신고하지 않았고 답장도 보내지 않았습니다. 어느덧 보험사무소 제 책상 서랍에는 그 사람이 보낸 편지 다섯 통이 쌓였습니다. 보험금 청구를 준비하는 사람처럼 수신한 날짜를 포스트잇에 적어 봉투 겉면에 붙여 보관했습니다. 다섯 번째 편지에서 그 사람은 진영의 이름을 물었습니다. 정운에게는 여전히 ‘아이’인 진영. 그 물음에도 저는 답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여기까지의 일을 오랫동안 생각하면서 살았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당시의 일을 거의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 이유에 대해서는 당신께서 이미 잘 알고 계시겠지요. 다음은 진영이 남긴 편지입니다. 원본은 제 손에 없지만, 그 내용은 한 글자도 잊지 않고 기억하고 있습니다. 한동안 그 편지를 매일 읽었으니까요.

 

 

4

 

    “스티븐 호킹 알아요?”
    원장 선생님이 내게 물었습니다. 얼마 전에 뉴스를 봐서 알고 있었습니다. 루게릭병을 앓고 있느냐고 묻자 그건 아니라고 답하더군요. 근골격계 질환으로 인한 지체 장애. 인수(그 아이의 이름입니다)에게 듣기론 어렸을 때 앓은 소아마비가 원인이라고 했습니다. 그렇다고 부모를 원망하지는 않는다고 덧붙였습니다.
    나는 원장 선생님의 요청에 따라 운동복 차림으로 출근했습니다. 면접을 봤던 어린이집 건물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이었습니다. 맞은편 골목에 위치한 주상복합 건물로 10분도 채 걸리지 않는 거리였지요. 몸이 불편한 인수를 위해 엘리베이터를 설치하고 1층 주차장에는 전동식 휠체어 자리도 있었습니다. 누군가 집에 있을 거라고 했습니다. 인수 말고 현관문을 열어 줄 또 다른 누군가가. 초인종을 누르고 교회 십자가가 붙어 있는 현관문을 응시하고 서 있었습니다. 문을 연 사람은 다름 아닌 원장 선생님이었습니다. 그는 내가 들어가기도 전에 현관에서 신발을 신고 있었습니다. 무척 반짝이는 검정 구두였습니다.
    “필요한 게 생기면 전화해요. 바깥에서 문이 잠기면 다시 들어오기 힘드니까.”
    인사 대신 그가 건넨 말이었습니다. 정해진 시각까지 움직이지 말라는 지시로 들렸습니다.
    “인수는 어디 있나요?”
    “자기 방에 있겠죠.”
    나는 고개를 돌려 거실 안쪽을 살폈습니다.
    “저기요. 저기 식탁 뒤편에.”
    그의 시선이 식탁 모서리를 가리켰습니다. 그사이 현관문이 닫히고 자동으로 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인수는 가죽 재질의 어두운 갈색 소파에 앉아 있었습니다. 그냥 앉아 있는 게 아니라 책을 읽고 있었죠. 독서 거치대를 앞에 두고 『코스모스』를 읽고 있었습니다. 나는 그 책이 어떤 내용이고 누가 쓴 책인지 알지 못했어요. 몇 번이나 책을 들추어 본 끝에 제목을 외울 수 있게 된 겁니다. 소파 옆 책상 위에는 그 정도 두께의 책이 여러 권 놓여 있었습니다. 인수는 나보다 네 살 어린 열일곱 살이었습니다. 평일에는 특수학교에 다니고 저녁에는 집안일을 도와주는 아주머니가 인수를 봐주었습니다. 수요일과 일요일, 예배가 있는 날에는 인수 혼자 남아야 했습니다. 원장 선생님은 그곳 교회의 장로였고 아주머니도 신자이기 때문이었는데요. 인수도 몇 차례 교회에 나갔으나 오랜 시간 자리를 지키고 있는 일이 인수에게나 평신도들에게나 썩 반기는 일은 아니었다고 합니다. 무엇보다 그런 상황을 꺼린 이는 원장 선생님이었습니다.
    “교회 가는 게 싫었어.”
    나중에 인수는 그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인수와 함께 밥을 먹고 텔레비전을 시청하다가 한두 차례 화장실 가는 걸 도와주었습니다. 일요일 오전에는 목욕을 시켜 주었습니다. 인수는 능숙하게 옷을 벗고 제 몸을 씻어냈습니다. 아이의 몸을 지켜보며 샴푸나 보디클렌저, 수건 따위를 인수의 손에 쥐여 주는 일만 하면 될 따름이었죠. 가끔 채 씻겨 가지 않은 비누 거품을 닦아내는 일이야 인수 몰래 얼마든지 할 수 있는 일이었습니다. 인수의 몸에는 작은 상처와 시퍼런 멍 자국이 군데군데 있었습니다. 처음엔 그것이 골격 이상에서 오는 만성 질환이나 이동 중 몸을 부딪치며 생긴 흔적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그렇지가 않았습니다. 상처는 인수의 손이 닿지 않는 곳에서 주로 발견되었기 때문입니다. 상처에 관해 물은 건 인수와 좀 더 친해진 뒤 일이었습니다.
    나는 인수의 더딘 움직임을 지켜보고 있을 때가 많았는데 그건 아이가 다치거나 도와줄 일이 있을까 하는 염려이기도 했지만, 인수가 대단하다고 느꼈기 때문입니다. 여러 번 시도하고 아파하면서도 끝내 그 일을 끝마치는 집념이 나는 좀 놀라웠습니다. 딱딱한 육체 안에는 유연한 사고와 고고한 정신이 있었습니다. 난감한 상황을 타개하는 위트와 유머도 있었습니다. 인수는 그런 아이였습니다. 그 육체와 정신의 불협(이렇게밖에 표현할 수 없는 걸 용서해 주세요)을 한동안 적응하기 힘들었습니다만, 평범한 몸으로 무서운 말들을 쏟아내고 폭력을 행사하는 사람들은 얼마나 많은가요. 시간이 지날수록 인수가 편해졌고 나는 부끄러울 때가 많았으며 그 시간은 즐거웠습니다. 요컨대 인수를 만나고 변한 건 나였습니다.
    한 달이 지날 무렵부터는 대화도 부쩍 늘었습니다. 인수는 말을 내뱉는 데까지 시간이 걸린다고 해도 완곡한 어법을 구사했기 때문에 우리의 대화는 언제나 오해되는 법이 없었죠. 주로 말하는 쪽은 인수였습니다. 나는 그다지 말할 것이 없는 사람이었으니까요. 인수는 주로 자신이 읽은 책과 구절에 관해 말했습니다. 학교생활이나 가족들과 관련된 이야기는 거의 하지 않았죠. 가족을 말한 쪽은 나였습니다. 인수가 묻기에 엄마가 하는 일을 말한 적이 있습니다. 인수는 이색 보험 상품에 관심을 보였습니다. 망한 결혼식을 보상한다는 웨딩 보험과 유명 연예인과 운동선수가 신체 특정 부위에 가입한다는 상품을 말하자 둘 다 가입하고 싶다며 웃었습니다. 후자의 경우라면 눈을 두고 한 말이었을 겁니다. 인수는 양쪽 눈동자 색깔이 미묘하게 달랐으니까요. 어렸을 때 겪은 사고의 후유증이라고 했습니다.
    “약 좀 발라 줄까?”
    일요일 오전 목욕을 끝내고 어깨에 난 상처를 가리키며 물었습니다. 검붉은 멍은 오른쪽 목덜미에 손바닥만 한 크기로 남아 있었습니다. 부기도 상당해서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통증이 느껴질 정도였습니다.
    “학교에서 그런 거야?”
    약을 바르며 내가 말했습니다.
    “아니.”
    짧은 대답 뒤 인수는 머뭇거렸고 나는 화제를 돌리려고 했지만 그가 다시 무언가 말하고자 한다는 걸 느꼈습니다. 시간이 필요하다는 걸 알았습니다. 그건 인수가 내뱉은 가장 어려운 말이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인수를 학대한 건 원장 선생님이었습니다. 때리는 횟수가 예전보단 확연히 줄었다고 인수는 부연했습니다. 그 덕분에 옳지 않은 습관도 많이 교정되었다더군요. 스무 살, 성인이 되면 그때는 자연히 나아질 것이고 나아지지 않으면 독립할 거라고 했습니다. 그 말을 할 때 인수가 내게 보이고 싶었던 건 웃음 쪽이었겠지만, 내가 느낀 게 그의 의도와 같을 수는 없었습니다. 인수는 비밀로 해달라고 당부했고 나는 알았다고 했습니다. 원장 선생님의 행동을 용인해서가 아니고 둘의 관계를 이해해서도 아니었습니다. 오로지 인수를 위해서였습니다. 그 뒤로 그때만큼 심한 멍 자국을 보지 못한 건 내가 보지 않으려고 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제 결정이 옳은 것인지는 여전히 확신이 없습니다.
    어느 날 교회에서 돌아온 원장 선생님이 나를 불렀습니다. 그와 마주치지 않으려고 노력했는데, 막상 얼굴을 대하니 나는 사람 좋게 웃고 있었습니다. 새싹반 선생님이 다음 달부터 육아휴직에 들어가니 일을 맡아 줄 수 있겠느냐고 묻더군요. 그간 인수를 잘 돌봐줘서 고맙다는 말도 들었습니다. 거절할 이유가 없었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내심 기다린 순간이었으니까요. 그날 제가 잘한 게 있다면 인수와 함께 있는 일도 병행하겠다는 조건을 내걸었다는 것입니다. 다행히 시간은 겹치지 않았습니다. 인수에게 어린이집에서 있었던 일을 말해 주곤 했습니다. 인수는 아이들의 이야기에 흥미를 느꼈습니다. 사진을 보여주자 아이들 이름을 한 명씩 외우기 시작했죠.

 

    현장학습을 떠난 건 새싹반을 맡은 지 삼개월이 지난 뒤였습니다. 이웃한 도시에 있는 미술관으로 떠나는 일정에 인솔교사 역할을 맡게 되었죠. 배정받은 버스에 주임 선생님과 함께 타 아이들을 앉히고 안전띠 착용을 도왔습니다. 동승한 차량에는 나무반 아이들이 타고 있었어요. 다섯 살 아이들이었죠. 한 시간 남짓이라는 제법 긴 시간이 걸려 미술관에 도착했습니다. 아이들은 회화보다는 조각 작품에 더 많은 관심을 보이더군요. 긴 팔을 앞으로 내뻗은 동상 밑에서 아이들은 그 손을 잡겠다고 저마다 제자리 점프를 했는데, 그 모습이 어찌나 귀엽던지요. 열심히 사진을 찍었습니다. 인수에게 보여줄 생각을 하면서요. 미술관 야외무대에서 점심을 먹은 직후 하늘이 급격히 어두워지더니 일정을 모두 끝마칠 무렵엔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습니다. 아이들은 까르르 웃으며 버스에 올라탔습니다. 나는 주임 선생님과 함께 비에 젖은 아이들의 옷소매와 두 뺨, 이마를 닦아 주었습니다. 자리에 앉아 얼굴을 앞으로 쭉 내밀고 자신의 차례를 기다리는 아이들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합니다. 뒷자리에 앉은 아이들까지 모두 안전띠를 착용한 다음 나의 신호에 따라 버스가 출발했습니다.
    버스는 월곡 터널 입구에서 좌우로 흔들렸습니다. 조잘거리던 아이들의 목소리가 작아진다고 생각했는데, 정작 속절없이 잠이 든 건 나였습니다. 눈을 떴을 때는 버스가 이미 옆으로 기울어진 뒤였습니다. 아이들이 울음을 터뜨렸습니다. 고개를 돌려 빈자리 두 개를 발견했을 때만 해도 상황을 비관하지는 않았습니다. 침착하자고 속으로 중얼거리며 아이들에게 의사 선생님이 금방 오실 거라고 말했습니다. 운전석을 통해 버스 바깥으로 고개를 내밀자 뒤따라오던 차 몇 대가 정차한 채로 서 있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저 멀리 갓길에 엎어진 아이를 발견했습니다. 주임 선생님과 운전기사 그리고 뒤편 차량에서 내린 운전자들이 남아 있는 아이들을 인도로 안내하는 사이 나는 아이가 있는 쪽으로 뛰어갔습니다. 사이렌 소리가 터널 안을 가득 메울 때까지 쓰러진 아이를 안고 있었습니다.
    아시다시피 그 사고로 한 아이가 사망하고 한 아이는 중상을 입었습니다. 제가 발견한 아이는 이미 숨이 멎은 상태였고 그보다 앞선 곳에서 또 다른 아이가 발견되었던 겁니다. 만약 승호(제가 안고 있던 아이입니다)를 발견하기 이전에 주희(중상을 입은 아이입니다)의 존재를 알아챘다면 어땠을지 생각해 본 적이 있습니다. 어떻게 두 아이의 안전띠가 풀렸는지는 알 수 없었습니다. 내 책임입니다. 나는 아무것도 하지 못했고 그건 나의 잘못이었습니다.
    원장 선생님은 사고 소식을 듣고 현장에 찾아와 병원으로 후송되는 아이들을 확인했습니다. 구급차에 오르는 아이들의 등을 쓸어 주고 마지막으로 주임 선생님과 나의 손을 잡을 때 나는 참았던 감정이 터졌습니다.
    “괜찮아요. 다 잘 될 거예요.”
    원장 선생님이 말했습니다. 아이의 치료를 일컫는 말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습니다. 그가 돌변한 건 병원에서 경찰과 보험사 담당자를 차례로 면담하고 난 뒤였습니다. 우리들이 탔던 미니버스 운전자는 개인사업자인데, 그에게 모든 과실이 있는 거라고 원장 선생님이 말했습니다. 너희들 잘못이 아니라고 했을 때, 그 말에 잠시 위안을 받았던 내가 싫었습니다. 원장 선생님은 사과하지 않았습니다. 자책하는 나를 불러내 정신 차리라고 주의를 줬습니다. 피 묻은 티셔츠도 어서 갈아입으라고 했습니다. 아이들 부모님에게 미안하다는 말도 하지 말라더군요. 나는 낮에 찍어 두었던 사진 몇 장을 떠올렸습니다. 그 시간으로 다시 돌아갈 수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어떻게 사죄하는 것이 옳았을까요. 내가 매달린 건 중상을 입은 아이의 수술비였습니다. 주희의 부모님은 나만큼이나 어렸고 큰돈을 헐어 쓸 통장도, 도움을 청할 친인척도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원장 선생님이 인정하지 않는 까닭에 병원과 보험사에서도 상황을 개선할 방도가 없다고 했습니다.

 

    인수의 집을 찾아가는 건 그 때문입니다. 원장 선생님을 설득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언젠가 봐두었던 금고 안에서 주희의 수술비를 가지고 나올 계획입니다. 그걸 주희 부모님에게 가져다주는 것까지가 내가 할 수 있고, 그가 해야 하는 가장 합당한 보상이라고 생각합니다.

 

 

5

 

    진영은 누구에게 이 편지를 보내려고 했을까요. 나일까요. 아니면 인수 씨일까요. 당시에는 알지 못했지만, 이 편지의 수신인은 진영 자신이었을 겁니다. 그때는 이런저런 사정을 돌볼 여유가 없었습니다. 물 잔에 무엇이 들었고 내 손에 무엇이 들렸는지, 분별할 정신이 없었습니다. 사람들은 진영이 죽은 것은 죄책감 때문이라고 했지요. 두 아이를 지키지 못한 죄의식. 버스 사고가 있고 난 뒤 몹시 괴로워했다는 원장의 증언이 뒤따랐습니다. 인수 씨도 동의했다고 했습니다. 반면, 경찰에 제출한 진영의 편지는 수사에 영향을 미치지 않았습니다. 원장의 방에는 금고가 없다는 이유였습니다. 경찰은 진영이 남긴 편지를 일기라고 표현했습니다. 일기에는 주관과 감상이 담기기 마련이고 특정인을 향한 원망이라고 보기도 어려우니 원한 관계도 성립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오히려 자신의 잘못을 빠르게 시인했다는 점을 두고 급성 우울증으로 해석했습니다.

 

    나는 원장을 찾아가 그날 밤, 진영을 만났는지 물었습니다. 만난 사실이 없다며 유감이라고 하더군요. 사고를 당한 아이들, 아이들의 부모와 진영에게 그랬듯이 그는 사과하지 않았습니다. 진영의 장례식도 하기 전에 교회에서는 진영을 위한 특별 기도회가 열렸습니다. 자신들의 건물 옥상에서 떨어진 진영을 위해 뭐라도 해야 했겠죠. 저는 참석하지 않았습니다. 며칠 뒤 진영의 장례식에 교회 사람들이 왔습니다. 그 대열 중에는 원장과 당신이 있었지요. 인수 씨, 그곳에서 당신을 처음 만났습니다. 당신을 알아챈 내가 무슨 말을 했는지 기억하십니까. 그날의 진실을 알려달라고 쏘아붙였지요. 당신의 옷을 벗기려고 했습니다. 이 멍 자국을 보라고, 원장은 이런 사람이라고 사람들 앞에서 알리고 싶었습니다. 울지만 말고 어서 말을 해보라고 당신을 몰아세웠습니다. 진영의 이름을 부르며 소리쳤습니다. 그날 일이 진영을 또다시 난처하게 만들었을까요. 혼절한 뒤 나는 새벽에 식장 가족실에서 깨어났습니다. 지난 몇 주간 그 새벽과 다를 바 없는 날을 보냈습니다. 미안합니다, 인수 씨. 이 말을 하고 싶었습니다. 그날 어떤 일이 있었나요. 자책하고 괴로워하는 진영에게 인수 씨가 먼저 금고의 존재와 비밀번호를 알려주진 않았나요. 진영의 핸드폰에 여덟 자리 숫자와 우물 정자가 남아 있더군요. 인수 씨의 번호로 온 메시지였습니다. 그날 문을 열어 준 인수 씨에게 방에만 있으라고 말한 건 진영이겠죠. 혹시나 당신에게 피해를 주기는 싫었을 겁니다. 진영은 다른 사람에게 무언가 부탁하거나 불편을 끼치는 일을 싫어했으니까요. 진영이 금고가 있는 방에 들어갔을 때, 계획과는 달리 원장이 찾아오진 않았나요.
    그러니 인수 씨, 당신이 그날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고 자책하지 말아요. 당신이 그 방에서 얼마나 공포에 떨었을지, 그 이후로 얼마나 많은 날을 울음에 휩싸였을지 나는 짐작도 하지 못하니까요.

 

    언젠가 진영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그날이 수요일 밤이었는지, 일요일 밤이었는지 기억나지 않습니다. 중요한 건 당신을 돌보고, 아니 당신을 만나고 돌아온 길이었죠. 식탁에 앉아 고객의 보험 상품을 설계하다가 진영을 맞이했습니다. 나는 새로 변경된 설계 프로그램을 익히느라 진땀을 빼고 있었습니다.
    “엄마가 알려준 방법 기억나?”
    “무슨 얘기야.”
    “어렸을 때 엄마가 나 거짓말했다고 혼냈는데, 내가 막 서럽게 울었잖아.”
    “그게 어디 한두 번인가.”
    “그때 내가 엄마 몰래 생일 선물 살려고 용돈 모은 거였는데. 엄마가 막 오해하고 그랬잖아.”
    “그랬나? 미안해서 그랬겠지. 엄마가.”
    “그때도 그랬어. 미안하다고. 그러면서 엄마가 알려준 방법이 뭔 줄 알아? 꼭 거짓말이 필요하면 있었던 일을 그대로 써서 나만 아는 곳에 넣어 두랬어. 그러면 괜찮다고. 나중에라도 알 수 있으니까.”
    “그래?”
    “완전 억지라고 생각했는데. 가끔 생각나더라고. 그걸 인수에게 알려주면 어떨까 하고.”
    진영은 물을 한잔 들고 와서 제 앞에 앉았습니다. 그걸 여러 번 나눠 마시다가 히죽 웃더군요. 그리고 다시 말했습니다.
    “엄마, 물 한잔 가져다줄까?”
    그렇게 건너편에 앉아 다정하게 묻는 진영이 끝없이 떠오릅니다.

 

 

 

 

 

 

 

 

 

 

 

 

 

 

작가소개 / 유재영

1981년 서울 출생. 2013년 《세계의 문학》 신인상을 받으며 등단. 소설집 『하바롭스크의 밤』이 있다.

 

   《문장웹진 2018년 0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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