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후의 세계 - 염승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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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소설]

 

 

추후의 세계

 

 

염승숙

 

 

 

    손님도 없고 해서 티백 하나를 꺼냈다. 커피를 마실까 했지만 날도 찌뿌듯하니 히비스커스를 골랐다. 찻잔 밖으로 끈을 늘어뜨리고 뜨거운 물을 부었다. 달아오르듯 이내 붉게 우러나는 찻물을 바라보았다. 딱히 시간을 재진 않고 적당히 붉어졌다 싶을 때 즈음 티백을 건져냈다. 오디오의 볼륨을 높이고 찻잔을 손에 쥔 채 창 가까이로 다가갔다. 겨울이고 종일 구름이 많았다. 히터가 가동되고 있는데도 어깨를 에워싸는 찬 기운이 가시지 않았다. 쏟아지겠는걸…… 중얼거리며 한 모금 마셨다. 뜨끈한 것이 혀끝에 닿았다가 목을 타고 내려갔다. 얼마 전 내린 눈이 미처 다 녹지 않은 데다 해조차 나지 않으니 밖은 유난히 잿빛이었다. 사방에 중소기업과 온갖 병원이 운집한 골목이어서 작은 카페들이 언제나 북적이는데 오늘은 오가는 사람이 드물었다. 출근 시간도 지났고…… 나는 한동안 창밖에 시선을 두고 오늘이 며칠일까 갸웃거리며 그저 나른함에 취했다. 어 저긴 한 명 들어가네. 검은 코트를 입은 단발머리 여자가 앞집 카페로 들어가 창가 테이블에 자리 잡고 앉는 모습을 무심히 보았다. 어디서 많이 본 얼굴인데. 저런 얼굴을 본 적이 있는 것 같은데. 뭘까…… 하고 지켜보게 되었다. 딸랑. 그러다 문에 매달아 둔 작은 종이 울리는 소리가 나서 뒤돌았다. 손님이다, 다 못 마셨는데 하는 지루한 마음이었을 뿐인데 놀라서 아, 하고 멈췄다. 오른손의 엄지와 검지로 찻잔을 쥔 그대로, 창가의 바 자리에 앉은 자세 그대로 나는 움직이지 못했다. 잠시잠깐이었다. 문을 열고 들어왔던 남자는 몸도 얼굴도 바짝 굳었다가 열고 들어온 문으로 뒤돌아 나갔다. 종소리가 유난스레 크게 울렸다.
    나는 두 눈을 껌벅거리다가 히비스커스 한 모금을 더 마셨다. 남자의 진회색 코트 자락이 눈에 밟혔다. 지난날에 남자는 내게 코트 입은 모습을 보여준 적이 없었다. 장소 불문하고 언제나 점퍼 차림이었으니까. 그때는 대충 주워 입어도 됐다. 젊었고 정말 많이 움직였다. 코트보다 점퍼를 입는 쪽이 자연스러웠다. 이 나이쯤 되니 남자가 코트 입은 걸 다 보네. 우리 보지 않은 지 오래되었구나, 오랜 시간이 흘렀구나 생각하게 되었다. 마지막으로 만났던 게 스물아홉이었지. 개수대에 찻잔을 내려놓으며 지나간 시간을 셈했다. 햇수로 십 년. 우린 꽤나 담백하게 헤어졌었다. 미련 둘 것은 없다는 투로 느리고 천천히 서로의 영역으로부터 달아났다. 아닌가, 깨끗하고 싱거운 이별 따위가 있을 리 없나. 이 좁은 서울바닥에서 한 번도 마주치지 않을 거라고 여긴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이런 꼴로, 라고 생각하다가 꼴은 무슨, 싶어 나는 입술을 깨물었다. 뭐가 어때서. 발끈하다가 금세 시무룩한 마음이 들었다. 그냥 와서 좀 도와줘. 아르바이트생 구하기도 너무 어렵고 좀 지쳐서 말이지. 큰아버지는 수화기 너머로 끈질기게 설득했다. 일은 어렵지 않아, 머신만 다루면 되는데 너는 머리가 좋아서 걱정 안 한다, 라고 구슬리다가 결국에는 근엄한 말투로 네 엄마 생각도 해야지, 했다. 네 엄만 너만 생각해. 더는 듣고 싶지 않아서 알았어요, 하고 답했다. 집에만 박혀 있지 말고 매장에 나오게 해 사람 구실을 시켜 달라는 게 엄마의 부탁이라는 걸 모르지 않았다. 모를 수가 없었다. 그게 힘들어요 내 엄마가 나만 생각해서, 라고 대꾸하지는 않고 전화를 끊었다. 진심은 언제고 숨겨지는 법이니까. 엄마를 사랑하는 이유와 엄마가 피로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전혀 다르지 않은 법이니까. 그러고 보니 남자와는 왜 헤어졌었더라.
    길이 없어. 그 시절의 남자는 그런 말을 입버릇처럼 내뱉었다. 때늦은 후회나 뒤늦은 진심을 전하듯 중얼거렸다. 전역하고 졸업하고 취업준비에 골몰하던 시기였다. 행정을 전공했는데 꼭 대기업을 고집하진 않고 이런저런 기업에 꾸준히 원서를 넣었다. 공무원 시험 준비를 이 년 정도 했었다고 말한 건 사귄 지 반년은 지나서였다. 남들처럼, 남들 다 하잖아 공무원 준비…… 그렇게 말하며 잔치국수를 후룩거리던 남자의 얼굴이 기억난다. 휴 복학을 반복하며 가까스로 졸업한 뒤 사진을 공부하던 나 또한 다르지 않아서 우리는 늘 주머니가 허룩했다. 허기가 지면 분식집이나 무한리필 집을 찾았고 그렇게 아낀 돈을 긁어모아 모텔도 배가 곯은 기분으로 들어갔다 나왔다. 길이 없어, 길이. 남자는 갈라지는 목소리로 말하곤 했다. 목이 마른 듯 조급한 표정으로. 아마도 남자는 시시때때로 자신이 그런 얼굴을 한다는 건 몰랐겠지만 그와 사귀는 일 년간, 나는 늘 긴장 상태의 흥분을 내보이던 그의 갈급한 초조를 감싸 안지 못했다. 길이 없어. 남자의 말을 들으며 나는 그와 함께라면 영원히 길을 잃어도 좋다는 연애 초기의 무모한 설렘에서 조금씩 벗어났다. 좀 그만둘 수 없어? 내 딴엔 도저히 참을 수가 없어서 소리를 빽 지르고 말았던 날 짬뽕 면발을 입에 문 남자가 지어 보인 그 어리둥절한 얼굴이란. 자기가 그 말을 너무 자주 한다는 것도 남자는 의식하지 못했겠지. 필연적으로랄까. 빈번히 싸우게 되었다. 최선을 다했다고 스스로를 위안하면서도 공모전에 수도 없이 낙방하던 걸 견딜 수 없어하던 때였다. 이제 좀 그만둘래, 그만두는 게 낫지 않을까, 어쩌면 나 자신에게 되묻는 경고와도 같은 질문이었는지도 모르는데 점차로 나는 남자와 함께라면 영원히 길을 잃어버리고 말 것 같은 지겹고도 잔인한 불안을 느꼈다. 우리는 멀어졌다. 제대로 기억도 나지 않는 사소한 말다툼으로 싸우고 돌아선 뒤 각자 집으로 돌아가서 누구도 먼저 연락하지 않았다. 얼마간은 기 싸움에서 지지 않겠다는 오기였을지도. 그러나 그것으로 끝. 한두 달이 지나고서야 새삼스레 이별하고 말았다는 사실을 자각했다. 어쩌면 서둘러, 진저리를 치며 전력을 다해 서로에게서 벗어났는지도 모를 일이다. 돌아보니 별로 담백하진 않았구나. 수도를 틀어 찻잔을 물로 헹구어내며 나는 고개를 흔들었다.
    헤어지고 몇 해 뒤 찰스 부코스키의 시를 주제로 열린 사진전을 찾았을 때 나는 남자를 떠올렸다. 사진 아래 적힌 부코스키의 시구에서 길이 없어, 하고 머리칼을 헝클어대던 지난 날 그의 말을 발견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길이 없어,
    나는 앉아서 화분들을 바라보며
    마음속으로 식물들에게 말을 걸어,
    날 사랑할 수 없어?
    여기서는 뭔가 일어날 수 없나?
    그때서야 나는 그가 중얼거리던 길이 없어, 라는 말의 의미를 이해했다. 사랑해 줘. 날 사랑해 줘. 세계든 누구든 제발 좀 나를 ‘제대로’ 사랑해 줄 수 없어? 라는 뜻이었다는 걸. 가진 것이 없고 가질 수 있는 것도 없고 모든 진실은 눈앞에서 감춰지며 멀리 가버리게 마련이라고 생각하던, 어리석고 회의적인 젊은 날이었다. 어디에도 소속될 수 없을 것만 같다고 온몸으로 하소연하던 남자의 비루하고도 애통한 투정을 받아 주기에 말하자면 나의 세계는 너무도 작고 좁았다. 나 하나 들어앉아 웅크리기에도 비좁은. 옳다고 믿는 방향으로 인생을 움직여왔다고 믿었지만 지나고 보니 결국에는 그저 상대에게 타인들에게 이 세계에게 사랑받고 싶었을 뿐인 투정어린 인정 욕망이었음을 이제는 안다. 길이 없어. 하지만 길이 없어. 남자와 마찬가지로 나 역시 자주 곱씹어 꿍얼거리며 이 나이까지 왔구나 싶은 기분. 뭔가 일어날 수 없냐고 항변하듯 바랐으나 바람은 바람으로 그쳤을 뿐인 허탈함. 어쩐지 서글퍼지고 말았다. 내친 김에 개수대에 모아 놓았던 머그와 찻잔들을 전투적으로 씻어 두고 뒤돌았는데 남자가 서 있었다.
    그게 그러니까…… 나는 여러 번 불렀거든.
    그가 다시 돌아와 쭈뼛거리는 걸 나는 조금 비현실적이다 싶은 눈으로 보았다. 머리칼이며 어깨며 팔다리 할 것 없이 함씬 젖어든 채였다. 이게 무슨, 하고 나도 모르게 입 벌리는 와중에 쾅, 소리가 들렸다. 깜짝 놀라서 목과 어깨가 절로 움츠려졌다. 고개를 틀어 창밖을 바라보았다.
    세상에.
    거센 빗줄기가 내리꽂히는 광경이 눈에 들어왔다.
    천둥 치더니 순식간이더라. 무섭게 쏟아지네.
    남자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코트 앞섶을 손으로 털었다. 그 모습을 보는데 나도 모르게 농담하고 말았다.
    우중이네.
    나는 젖은 손 닦는 수건 중에 깨끗한 걸 꺼내 그의 가슴께에 내밀었다.
    무슨 개그야.
    수건을 받아들며 그가 대답했다. 어쩐지 힘없어 보이는 웃음을 입가에 매달고서였다.
    개그는 무슨. 사실인데.
    십 년 전의 동갑내기로 돌아가는 기분에 취해서 나는 앉아 앉아, 빠르게 손을 휘저었다. 어서 앉아, 뭐 줄까, 물으며 오디오의 볼륨도 살짝 낮췄다. 남자의 이름은 우중. 비가 올 때면 빗속에 그를 세워 두고 우중이네, 하고 놀리던 옛 시간이 프레임에 갇힌 장면처럼 떠올랐다. 십 년 전 헤어졌던 내 가난한 연인이 이토록 캄캄하고도 세찬 빗속을 뛰어오다니. 현실은 때때로 짓궂어서 나는 사 년간 이어진 전남편과의 결혼생활에서도 비 오는 날이면 가끔 우중을 떠올렸다. 잊으려고 애쓴다고 해서 잊을 수 있는 이름은 아니었으니. 나도 모르는 새 우중이네, 중얼대다가 아차 싶어 남편이 어디 있나 티 나지 않게 두리번거리기도 했었다. 정작 남편과는 수십 년 만에 찾아온 가뭄이라던 메마르고 건조한 늦가을에 헤어졌지만 서로 다른 방향으로 돌아서 걷던 그날에 행여 빗방울이라도 떨어졌다면 또 언제고 부지불식간에 생각나는 말장난처럼 우중이네, 곱씹었을지도 모를 일.
    우중은 창가에 바싹 붙어 앉았다. 나는 커피를 내리는 사이사이에 그를 흘깃거렸다. 한눈에 알아보기는 했지만 사실은 많이 놀랐다. 그는 한때 내가 눈을 맞추고 입술을 비비던 남자가 맞는지 확신할 수 없을 정도로 말라 있었다. 눈두덩이 푹 팰 정도로 살집은 온데간데없이 많이 마르고 살갗도 거칠해 보여 뭐랄까 쇠약한 인상이었다. 어쩐지 나는 그에게서 조마조마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비를 맞아서 그렇다고 하기엔 유독 낯빛이 어두웠고 어딘지 모르게 지쳐 보였다. 나는 찻잔 가득 뜨거운 커피를 부어서 테이블로 가져갔다. 우중은 잠시 그 속을 빤히 들여다보았다.
    커피가 까맣기만 한 건 아니구나.
    잔을 들어 한 모금 마시고는 따뜻하다, 란 말을 한숨처럼 뱉었다. 입가에 한기를 매달고 온 듯 그는 파랗게 질린 입술을 부들거렸다.
    오랜만이네.
    어 그러네.
    말하고는 어색해서 서로 입을 다물었다.
    손님이 좀 없지. 이 시간대가 그래. 내 가게는 아니고 큰아버지의 매장인데 그냥 잠깐…… 떠들다가 입술을 맞물었다. 쓸데없는 걸 알릴 필요는 없다고 속으로 잡도리하게 되었다. 우중은 머리를 주억거리며 그렇구나, 했다. 별다른 걸 덧붙이진 않고 다만 그렇구나, 그렇구나, 두어 번 반복했다.
    여긴 어떻게.
    어 그냥…… 지나다가.
    한 번 더 말을 주고받고서야 나는 그의 동공이 어지러이 흔들리는 걸 알아차렸다. 무슨 일 있어? 쉽게 입 밖으로 튀어나오려는 무신경한 말을 나는 삼켰다. 무슨 일이 없는 사람도 있을까. 각자에겐 모두 각자만의 일과 사정이 있다. 나도 있지. 무슨 일이라고 부를 만한 것이 분명히. 그러니 묻지 말자. 듣지 말고 알지 말자. 나는 조용히 커피를 마셨다. 그도 말하지 않았다. 볼륨을 낮춰 놓은 노래와 차창에 비긋는 소리만이 적막을 메웠다. 한동안 들이붓듯 쏟아져 내리는 빗줄기를 구경하다가 한 잔 더 줄까 싶어서 우중을 건너다보는데 그는 창밖으로 온 신경을 집중하고 있었다. 그 모습을 맥없이 지켜보게 되었다. 그는 시선을 바깥에 두면서도 어떤 망설임의 태세로 찻잔의 테두리를 검지로 매만졌다. 여전하구나.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둘이서 어쩌다 카페에 가면 잔에 남은 찻물을 검지로 찍어 테두리에 문지르던 우중의 버릇이 떠올라서였다. 나는 그런 행동에 이따금 질색하며 좀, 쫌, 쪼옴, 하고 잔소리했지만 그로서는 집중하는 사이 무심결에 나오는 것이어서 정작 그는 내가 뭐에 예민하게 구는지 모르겠다는 얼떨떨한 얼굴을 지어 보이곤 했다. 잔 받침에 고인 찻물을 보고서야 냅킨을 찾아 주섬주섬 닦아내던 그의 손가락들. 그 길쭉하고 투박한 손가락이 그저 좋았던, 그랬던 때도 있었지.
    우중과 만났던 스물여덟에 나는 폐업 직전의 극장을 등지고 선 채 피켓을 들고 있었다. 다소 쌀쌀한 칼바람이 불던 초봄이었고 그곳은 ㄱ, 내가 유년 시절을 보낸 고향이었다. 나의 대입으로 인해 가족 모두가 서울로 상경했던 터라 스무 살 이후로는 ㄱ에 간 적이 없었다. 초중고를 모두 졸업했다고 해도 지방의 아이들이 그렇듯 커서는 각지로 뿔뿔이 흩어지는 탓에 딱히 연락하고 지낼 만한 친구도 없어서 더 그랬다. ㄱ은 뭐랄까 다시는 돌아가지 않아도 좋은 빈집 같았다. 그래도 야간자율학습을 빼먹고 몰래 숨어들곤 하던 그곳만은 가끔 그리웠다. 소도시의 중앙역 뒷골목에 자리했던 허름한 단관극장. 개봉이 한참 지난 오래된 필름을 사들여 싼값에 다시 틀어 주는 재상영관이어서 시간을 때우거나 한잠 자려고 들어오는 이들 말고는 관람 손님이 드물었다. 나는 매표소 창구에 앉아 있던 노인이 조는 틈을 타 교복 상의를 가방에 구겨 넣고 허리를 한껏 숙인 뒤 줄달음치거나, 엔딩 크레디트가 올라가도 꼼짝하지 않고 앉아서 티켓 없이 한 번 더 관람하거나, 간판에 내걸린, 주연배우의 얼굴이 유성물감으로 그려진 조악한 영화 포스터를 보며 낄낄거렸다. 저게 정말 디카프리오란 말이야? 소스라치기도 하면서. 극장의 폐업 소식은 전시 때문에 종종 들여다보곤 하던 텀블벅 사이트에서 알게 되었다. ‘추억이 사라지지 않도록 지켜주세요’라는 제목의 페이지에는 재건축으로 허물어지려는 건물을 매입해 단관극장의 명맥을 이어 가도록 도와달라는 내용이 게시되어 있었다. 첨부된 사진 속의 거기를 나는 한눈에 알아보았다. 검붉은 벽돌로 쌓아올려진 좁은 현관, 말도 안 되게 못 그린 그림 포스터가 매달린 높은 삼각 꼴의 지붕. 후원금은 애초 목표했던 금액의 팔십 프로 가까이나 모아지고 있었다. 이 허름한 극장 따위 아무려나…… 싶을 줄 알았는데 어쩔까 고민하게 되었다. 나는 밥 한 끼 덜 먹지 하는 호기로운 마음으로 소액을 결제했다. 그러자 극장 앞에서의 후원회 결성식에 참가해 달라는 이메일이 바로 도착했다. 공모전 마감도 끝나고 실컷 잠이나 잘까 싶었던 주말에 나는 호기심 반 진심 반으로 카메라를 챙겼다. 훌쩍 올라탄 시외버스에서 나는 방전되듯 노곤해졌다. 트렌치의 계절이 분명했으나 좀 더 두터운 코트나 패딩을 입었어야 했다고 후회되던 스산한 날씨였다.
    오후 네 시. 극장 앞엔 삼사십 명은 족히 될 법한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나는 사람들 틈바구니를 헤치고 푸른 천막 가까이 갔다. 그 안엔 스태프로 보이는 남녀 서넛이 분주히 움직이고 있었는데 내가 쭈뼛거리며 서 있는 걸 보고 누군가 다가와 이름과 이메일 주소요, 하며 A4용지 더미를 뒤적였다. 내가 말하니 맞습니다…… 라며 종이 묶음을 살펴보던 그는 이내 말을 흐리고는 고개를 들어 나를 바라보았다. 아마도 나는 뭔지 몰라 두 눈을 껌벅였을 거였다. 왜 그러냐는 듯, 지금 뭐 하냐는 듯. 어, 아, 그러니까…… 그는 서둘러 몸을 숙이곤 발밑에 널브러진 박스에서 무언가 꺼내 들어 올렸다. 나는 후원자에게 소정의 기념품으로 지급되는 배지를 받았다. 단관극장과 영화표 모양의 배지 두 개를 요리조리 살펴보다가 천 가방에 바로 매달고는 코를 훌쩍이며 운집해 있는 사람들 사이에 섞였다. 이후로는 낯모르는 이가 쥐여 준 피켓 따위를 들고 두통이 올 것 같은 바람을 정면으로 맞아야 했다. 카메라를 꺼내들 수도 없었다. 정말 구질구질한 날이다, 라고 중얼거리며 헝클어진 머리를 매만지는데 누군가 곁에 와서 슬쩍 섰다. 나 몰라보네? 어, 아, 그러니까 하며 내게 기념품을 준 남자였다. 머릿속에 커다란 물음표가 생기는 와중에도 나는 거센 바람 탓에 눈을 제대로 뜨지 못했다. 너 누군데? 하고 물었을 뿐. 누군지도 모르면서 반말이야? 남자는 웃었다. 네가 반말하니까. 대꾸하니 남자는 또 웃었다. 여러분의 정성어린 후원에 힘입어 우리의 극장은 이제 한걸음 더 나아가…… 두 시간가량의 결성식이 끝나고 이어진 포차 뒤풀이에서 나란히 앉은 뒤에야 나는 남자와 내가 십 년 전 열여덟, 졸음에 겨워하는 노인의 시야를 피해 극장에 제법 여러 번 함께 숨어들곤 했다는 걸 기억해 냈다. 아, 너. 아 그래 너, 그래 그때 너, 소리를 말더듬듯 반복하는 동안에 이런저런 장면들이 스쳐갔다. 가방에서 지갑을 꺼내드는 나에게 ‘좀만 기다리면 표 안 끊어도 되는데’ 하며 날 불러 세웠던 어느 날의 남자애가 부지불식간에 어떤 이정표처럼 떠올라 과거의 안내자처럼 나를 인도하는 기분이었다. 그래 나, 그래 그때 나, 하고 그가 장난치듯 대답하며 우리는 술을 꼴깍꼴깍 나눠 마셨다.
    ‘러브레터’와 ‘오! 수정’ 같은 영화들을 티켓 없이 연달아 보던 열여덟의 우중과 나에 대해 우리는 떠들어댔다. 러브레터를 보고 나선 버스터미널에 있는 레코드점까지 한참을 걸어가서 오리지널 사운드 트랙을 샀고, 오! 수정을 보고 난 뒤엔 숟가락이니 포크니 하며 한참을 찧고 까불었다. ‘타이타닉’을 두 번 보고 나와서는 러닝타임 세 시간 반짜리를 두 번이나 보다니 미쳤지, 미쳤어, 둘이 같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어댔었지. 초등학교나 중학교 동창도 아닌 그저 이웃한 남고와 여고 소속으로 딱히 이성관계로 사귀었다고도 할 수 없었고, 해가 바뀌고 입시 준비에 치이면서는 자연히 멀어지고 말았지만 이야기할수록 지난날의 삽화들이 가슴에 소소히 남았다는 걸 알았다. 러브레터를 보고 오! 수정을 보고 타이타닉을 보던 나이에 사랑은 지극히 빤한 이해와 도무지 알 수 없는 몰이해 사이에 있는 아리송한 것이었다. 어두컴컴한 극장 안에 몰래 숨어들곤 하던 우리가 십 년 후 다시 이 극장에서 만나 우연한 연애를 시작하리라고는 짐작조차 할 수 없던 나이였다고나 할까. 지나가다 못 보고 지나칠 순 있어도 그렇게 가까이서 얼굴 보며 못 알아볼 수가 있어? 소주 한 잔을 두 번에 꺾어 마시며 우중이 짓궂게 볼멘소리를 하고, 아니 그게 아니라 미치게 부는 바람 때문에 내가 눈을 못 떠서, 라며 변명을 하다가 그날 우리는 포차에 호프집, 노래방에 이어 또 다른 포차로까지 밤 내내 붙어 있게 되었다. 근데 왜 이렇게 변했어? 변하긴, 남자다워진 거지, 실랑이도 하면서. 새벽 즈음 취기에 달아오른 열기를 식히려 애쓰던 나를 따라 나온 그가 찬 손으로 내 뜨거운 뺨을 감쌌는데 그의 긴 손가락이 너무 의식되어서 도리어 더 붉어지고 말았던 기억은 내게만 있다. 내일부터 따뜻해질 거야. 우중은 그렇게 말했다. 그러니까 왜 이렇게 춥게 입었어, 라고 하지 않고 내일부터 따뜻해진다고 말해서 나는 그 순간 그렇게 말해 준 그가 좋아졌다. 지독하게 심신을 흐트러뜨리는 이 바람이 그치면 내일부터는 정말 볕도 내리쬐고 꽃도 필 것 같아서. 트렌치를 입어도 춥지 않고 남들에게 추워 보이지도 않을 것 같아서. 진짜 봄이 시작될 것만 같아서. 그러나 우리의 봄날 같은 연애는 꼬박 일 년간 지속되었을 뿐 길이 없어, 라는 시 같고 주술 같은 평생 잊히지 않는 상처를 남기고 끝나버리고 만다는 걸 그때의 나는 예감조차 하지 못했다.
    한 잔 더 마셔도 될까.
    우중이 찻잔을 손에 쥐고 다른 한 손으로 감싸 안는 걸 무감하게 보다가 나는 아, 어, 그래, 했다. 의자를 뒤로 밀고 일어나 주방으로 들어가면서도 그의 눈꼬리와 입매와 목덜미와 손톱 끝에 매달린 저 피로의 근원이 뭔지 나도 모르는 새 고심하게 되었다. 누군가에게는 나 역시 그런 얼굴이겠지…… 입을 다무는 것처럼 눈을 한 번 꽉 감았다가 떴다. 인상 좀 풀어라. 엄마는 저녁 즈음에 지나가다 들렀다는 되도 않는 핑계를 대며 카페로 나를 보러 오곤 했다. 나보다도 더 피곤하면서, 어느 날은 곤죽이 다 된 얼굴을 하고는 퇴근길에 찾아와 서비스직에서 활기차고 따뜻한 표정은 필수야, 얼토당토않은 잔소리도 덤으로 얹었다. 서비스직이라니. 엄마 나는 지금 누구에게 서비스할 기분이 아니라고요. 항변하고 싶은 마음이 들어도 그만둬 버렸다. 왜. 엄마는 왜냐고 묻겠지만 내가 이유를 말해도 결코 이해하지 못할 테니까. 그래서 그게 왜, 사진은 누구나 찍는 거고 얼마든지 또 찍을 수 있는데 뭐가 문제야, 지금은 잠시 쉬면 돼…… 엄마는 평생 내가 하는 일이 정확히 무엇인지 알지 못할 거라고 나는 결론 내렸다. 내가 뭘 하고 싶고 무엇에 혹은 어디에 다다르고자 하는지 엄마는 전혀, 조금도 모른다고. 쉬면서 한번 만나 보면 어떠니. 이이도 한 번 다녀왔는데 애는 없단다, 다행이지…… 엄마가 내민 낯모를 얼굴의 증명사진 따위를 들여다보면 더욱더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럴 때면 당신의 살을 찢어 세상에 나왔는데 정작 그에게서 언제까지고 그 어떤 이해나 위로도 받을 수 없을 거라는 작은 절망이 샘솟았다. 나는 모르는 척 사진을 밀쳐 두고는 서명은 많이 받았냐고 물었다. 화제를 바꾸자 엄마는 옅은 한숨을 내쉬며 학생들은 착하니까…… 웅얼거리고 돌아섰다. 엄마는 대학에서 청소노동자로 일해 왔는데 긴 시간 근무해 온 직원들을 정규직으로 채용하지 않고 용역업체 소속으로 전환한다는 발표에 두 달이 넘도록 본관 앞에서 농성 중이었다. 엄마에게서 오래된 먼지더께와 같은 고단함이 읽혔다. 큰아버지 말대로 나는 다만 불효하고 있나. 모자라지도 넘치지도 않는 남자를 만나 다시 가정을 꾸리고 아이를 낳아 기르는 삶이 아니라면 그것은 정말 엄마에게 크나큰 슬픔을 남기나. 엄마를 슬프게 하지 않기 위해서 산다면 그러면 나는, 내 인생은 뭐가 남나. 단란하게 살아야 해 여자로서 기쁨은 그게 다야, 라고 엄마는 지지난밤에 말했었다. 나는 그냥 한 인간으로서 기뻐지고 싶다고 힘든 건 단지 그거라고, 잠결에 옹알이하듯 혼잣말 하면서도 아침에 깨고 나니 그 단어가 이질적으로 느껴졌다. 단란이라니. 여럿이 원만하고 즐겁고 화목한. 그런 거라면 일찌감치 사별한 엄마도 그다지 단란하지는 못했는데. 엄마의 우울을 지탱하는 건 그런, 채워지지 않는 ‘단란’과 같은 걸까. 엄마에게 나는 한평생 줄거나 메워지지 않고 번져 나가는 틈새나 균열 같았던 거나 아닐까. 머리가 아파 와서 굵고 짧게 숨을 내쉬었다. 나는 원두 가루를 미리 내려서 보온 포트에 담아 두었던 따끈한 커피를 새 잔에 담았다. 그사이 한 번 더 번개가 번쩍이고 천둥이 내리쳤다. 잦아들던 빗줄기가 빠르게 거세어졌다.
    난방 온도를 높였는데도 좀 춥지. 얼마든지 더 마셔.
    건네주는 커피를 우중이 고마워, 하고 받았다. 좀 더 홀짝이고 잔을 내려놓고 나선 또 오래오래 손끝으로 테두리를 문질렀다. 비는 쏟아졌다 그치고 다시 쏟아지기를 거듭했다.
    ‘기다려 줘’네.
    불현듯 우중이 말했다. 김광석을 듣는 건 오랜만인데 좋아하는구나 지금도, 라고도 덧대었다.
    어…… 자주 틀어놓는 것 중 하나지.
    내 말에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기억난다, 그러고 보니 넌 이 노래가 윤리적이어서 좋다고 했었지…… 노랫말이 윤리적이라고.
    우중이 그런 말을 입 밖으로 꺼내자 나는 새삼스럽게 과거의 나와 얼굴을 마주하는 기분이 들었다. 어느 쌀쌀한 밤의 포차에서였나, 때마침 김광석의 목소리가 라디오에서 연달아 흘러나오고 이 곡을 함께 들으며 가사를 흥얼거리는 순간에 나는 그렇게 말했던 것도 같았다. 난 아직 그대를 이해하지 못하기에 그대 마음에 이르는 그 길을 찾고 있어…… 이거 봐, 나는 너를 이해한다고 단정 짓지 않잖아, 오만하지 않잖아, 상대를 이해하지 못하는 걸 인정하고 ‘길’을 찾겠다고 하잖아, 이해할 수 있을 때까지 기다려 달라잖아, 이 얼마나 선한 의지야, 멋지지 않아? 소주 한잔에 뜨끈한 어묵 국물을 삼키며 이 얼마나 윤리적인 태도냐고, 수다스레 부려놓던 열에 달뜬 흥분들을 우중이 기억하고 있다니 괜스레 부끄러워졌다. 이제 점심때나 되어야 손님이 몰릴까 짐짓 딴생각을 하며 창에 붙어 앉으려는데 그때에 그가 저기에, 라고 말했다. 뭐? 나는 고개를 돌려 되물었다. 저기에, 라고 그가 손가락을 들어 재차 가리켰을 때 나는 창밖의 거리를 보았다. 저기에? 거리엔 그저 미처 녹지 못한 눈이 쌓인 질척한 아스팔트와 상가에서 내놓은 그러나 아직 치워지지 않은 쓰레기봉투…… 그가 무엇을 가리키는지 나는 두리번거리며 살펴야 했다. 그의 시선이 진회색 도로를 사이에 두고 맞은편에 위치한 또 다른 카페를 향해 있다는 걸 알아차리기까지는 시간이 걸렸다.
    내 와이프인데.
    말하는 우중의 미간이 일그러졌다. 어쩐지 고통스러운 표정이었다. 나는 창가에 바투 다가앉아 테이블 위에 놓인 찻잔에 골똘히 시선을 주고 있는 여자를 바라보았다. 아, 저이라면 아까 들어간. 그런데 지금 둘이 뭐 하는데, 라는 질문을 나는 속으로 감췄다. 말대로라면 부부가 골목을 사이에 두고 위치한 카페에 따로 앉아 있고, 남편이 아내를 지켜보고 있다는 건데 선뜻 그 이상을 묻기가 어려운 분위기였다. 우중도 우중의 아내도 뭐랄까, 세상을 다 잃은 침통한 얼굴이었다고나 할까. 그런 얼굴을 하는 사람에게 무언가를 묻기란 쉽지 않다. 무엇이 들려올지 모르니까. 차마 답을 듣기도 전에 두려워지는 느낌을 주는 어두운 기운의 의미를 모르지 않으니까. 나는 감지하듯 그와 그의 아내를 번갈아 살폈다. 아마도 이대로 시간이 흐르고 비가 그치고 날이 개고 해가 비춘다면 자리를 이동해 가는 오후의 볕과 그 볕을 따라 창밖으로 수그러지는 그녀의 긴 그림자를 볼 수도 있겠지만 그녀가 입은 검은 코트만큼이나 세상은 빛 한 점 없이 적요하고 캄캄했다.
    아이를 보냈어. 얼마 전에.
    우중은 잠시 숨을 몰아쉬었다. 그 모습을 빤히 쳐다보기가 난처해서 나는 고개를 수그렸다. 찻잔을 쥐어도 보고 한 모금 더 마시기도 하면서 그가 헐겁게 이어 가는 짤막한 말들을, 건너뛰었다가 다시 돌아오기도 하는 길지 않은 말들을 조합하며 들었다. 우중의 네 살배기 딸아이는 하원 시간에 낯선 여자의 손을 잡고 사라졌다. 그의 아내가 어린이집에 도착한 건 그 뒤로 십여 분쯤이 흘러서였다. 이모라고 그랬어요. 전화해서 어머님을 바꿔 줬는데 분명히 어머님 목소리였어요. 정말 똑같았는데. 지금처럼 그렇게 그, 그, 망설이듯 느린 말투도요. 교사는 울먹이며 발을 굴렀다고 했다. 정말이에요. 정말이에요. 아내는 교사가 되풀이해서 내뱉는 정말이라는 말을 되씹으며 그날의 저녁을, 이후로도 세 번의 낮과 밤을 경찰서에서 보내야 했다. 정말. 정말이라니. 아내는 거짓이 없으면서도 겉으로 드러나지 않은 어떤 것, 그것이 정말이라는 말의 의미라면 그게 대체 무엇인지 불안과 공포에 휩싸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사흘째 되어 이모라던 여자가 나타났을 때는 그 어떤 분노나 구원도 이 세계엔 존재하지 않으리라고 직감했다. 재미로 그랬어요. 그것이 다였다, 고 우중이 말하는 순간에 뭐라 대꾸해야 할지 몰라서 목구멍으로 쓴물이 올라오는 걸 느꼈다. 재미로 그랬어요. 포털 사이트 뉴스 란의 기사 제목으로 본 적이 있던 것도 같았다. 사회면에 관련 기사와 포토만 해도 여럿 쏟아지던 사건이었다. 장난이었어요. 평소에 성숙해 보인다는 말을 많이 들어서 엄마 옷장에서 그럴듯한 옷을 꺼내 입고 헤어 롤을 말아 봤다고, 마스크를 쓴 열여섯의 여자 아이가 플래시 세례를 맞으며 머리를 푹 숙였든가 아닌가.
    소꿉놀이를 하다가 나왔다는 거야. 아파트 지하실에 아이를 남겨 두고 왜 혼자 나왔느냐고 물으니까 그냥…… 그냥이래. 그냥 지루해져서 나왔는데 뭐가 문제냐는 투로. 있잖아 나는, 그 애의 검고 단단한 눈동자를 보는데 무참해서, 인간도 세계도 너무 무참해서 머리가 돌아버릴 것 같았어. 와이프는 더했겠지, 나보다 더하면 더했지…… 내가 그 마음을 그 심정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을까. 그걸 이해하는 순간을 기다려 달라고 아내에게 말할 수 있을까.
    우중의 말을 들으며 나는 뭐라 답해야 할지 몰라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미안하다 이런 말…….
    그는 갈라지는 목소리로 말끝을 흐렸다. 나는 아니야, 했을 뿐 말문이 막혀서 더는 대답을 잇지 못했다. 와이프는, 하고 그는 다시 입 벌려 말했다. 네 달이 지나도록 그간에 아내는 실어증에라도 걸린 듯 전혀 말하지 않았다고, 애초에 말이라는 걸 잊은 사람처럼 지냈다고, 죽은 듯 자고 죽은 듯 깨어 있었다고, 그런데 간간이 풍경이나 찍어 올리며 방치하던 sns계정에 일주일 전쯤 글 하나를 게시했다고. 나는 건너편 카페에 고집스레 앉아 있는 그의 아내를 눈에 담았다. 누구라도 찾아와 주세요, 용서를 빕니다, 라고 적어 놓았다는 그녀를. 아이의 죽음을, 뜻하지 않은 사고였을 뿐인 생의 함정 같은 지점에서 그녀는 그 모든 죄의 시작이 자신인 양 굴고 있다고 우중은 말했다. 그녀가 용서를 빌고 싶어 하는 상대도, 진실로 용서하고자 하는 대상도 모호하기만 하다고.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
    그는 찻잔을 깨뜨릴 듯 힘주어 감싸 쥐었다. 그의 눈두덩이 붉어지는 걸 그러나 무언가 분명히 견디고 있는 이의 그것을 나는 망연히 보았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이 모든 걸 어떻게 되돌릴 수 있느냐고 나 또한 말했었다. 오래되지 않았다. 사진작가로서의 불명예도, 남편과의 이혼도, 엄마와 큰아버지의 등에 떠밀려 매장에 나오는 것도 오래된 것은 아무것도 없다. 오래된 것은 없고 다만 현재 겪고 있는 것. 모든 실패와 좌절과 상처는 진행형이다. 세상은 이런 식으로 어쩌면 꽤나 극진하달 정도로 엄혹하다. 이따금 향 좋은 원두를 그라인더로 갈아낼 때조차 끔찍한 기분이 여전히 가시지 않고 있다는 걸 절감하기도 하니까. 모두 가버리고 무어든 지나간다고 믿지만 결국 되돌릴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는 점에서 인간은 필연적으로 패배자라는 생각만이 절절히 들기도 하는 거니까. 이겨낼 수 없어. 나는 널 이길 수 없으니 제발 안심해. 절망의 얼굴을 한 누군가 찾아오면 어느 때고 즉시로 이런 대답을 하고 돌려보낼 태세를 갖추며 그간의 나는 방어적으로 단련되었다고 믿었는데. 우중을 보고 있으니 그냥, 나는 그냥 슬펐다. 아마도 예전의 나였다면 우중과 그의 아내의 모습을 사진으로, 이 찰나의 슬픔을 박제하고 싶은 충동에 시달렸을지도 모르겠다.
    서른이 넘어서까지 나는 공모전에는 끝내 당선되지 못했다. 장려나 가작 정도여도 만족했을 텐데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다. 언제까지나 아무런 이력도 가질 수 없는 것만 같아서 나는 만성 스트레스에 시달렸다. 데뷔는 뜻하지 않은 곳에서 이루어졌다. 서른셋의 어느 여름날에 나는 대형쇼핑몰 안으로 들어섰다. 약속이 있다거나 한 건 아니었고 지나다가 단지 더워서, 온몸에 매달린 이 끈끈함을 좀 식히고 갈까 싶어서 시원한 에어컨 바람이 나오는 출입구에 잠깐 머물 생각이었다. 쇼핑몰은 자동 회전문을 중앙에 두고 고급 대리석으로 마감된 양쪽 벽, 그 아래로 왼쪽은 분수대 오른쪽은 벤치로 꾸며져 있었다. 가운데는 싱그러운 조경. 바깥과 달리 기분까지 산뜻해지는 서늘함에 취해서 나는 카메라 렌즈에 눈을 대고 멋들어진 쇼핑몰의 내부를 바라보는 중이었다. 대리석 벽면이 무너져 내리던 그 갑작스런 순간에 뒷걸음질을 치면서도 셔터를 누른 건 정말이지 우연이었다. 손가락 끝에 경련이 일었을 만큼의 연사였고, 무엇을 찍은 건지 찍은 게 사실이 맞는지 전혀 확신할 수 없을 정도로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도무지 믿기지가 않았다. 충격 속에 사람들의 고성과 사이렌 소리가 겹치고…… 망부석처럼 서 있던 내게 다가와 직접 목격하신 거예요, 혹시, 라며 카메라를 손으로 가리킨 방송기자에게 사진을 전송해 준 건 글쎄 그건 우연이었을까. 내 사진은 뉴스에 보도되고 전국으로 송출되었다. 대리석의 벽면에 크랙이 가고 일순간 걷잡을 수 없이 붕괴되어 버리고 말던 순간에 내가 찍은 건 그 밑의 벤치에 앉아 있던 한 여자, 허리춤에 포대기를 두르고 있던 아기 엄마였다. 사진 속에는 아기의 얼굴은 보이지 않았지만 멍한 눈빛의 아기 엄마만이 무너지는 대리석 속으로 함몰돼 버리는 아주 짧은 동안이 담겼다. 그리고 잔인하게도 그것이 나의 데뷔 작품이 되었다. 여론의 탄식과 조롱을 동시에 받았지만 신경 쓰지 않으려 했다. 이후로는 어디든 불려 다녔다. 내가 찍은 사진을 필요로 하는 곳이라면 가리지 않고 사진을 찍었다. 유명 배우와의 화보, 이름 있는 디자이너와 진행하는 전시 협업, 공익 광고 연출까지 일은 끊임없이 밀려들었다. 개봉 예정인 영화의 티저 포스터를 찍기 위해 제작사에 갔다가 명함을 주는 대신 밥을 사겠다고 말한 대표와 사귀게 되고 순탄히 결혼도 했다. 예술을 하진 못하더라도 이렇게 사진 찍는 일을 하면서 살아갈 수는 있을 거야, 지문이 닳도록 셔터를 누르고 화이트노이즈를 조절해 가면서 말이지, 쓸쓸히 자조하며 시간을 흘려보냈다. 그러나 한 장의 사진이 나를 구원했듯 다시 또 한 장의 사진이 나를 몰락시킬 거란 걸 나는 또한 알지 못했다.
    몰랐어요. 나는 진술해야 했다. 몰랐다고. 당연히 친구나 애인 사이인 줄로만 알았다고. 거듭해서 같은 말을, 내게는 지극히 진실이고 사실인 말을 아이러니하게도 진실처럼 또 사실처럼 말하기 위해 애써야 했다. 그날 나는 강남의 한 공원에서 하이패션 화보를 찍고 있었다. 전위적이거나 예술적이지 않은, 대중에게 친숙하면서도 다소 색다른 질감의 사진을 찍어 달라는 제안을 받고는, 십일월의 차가운 저녁놀을 배경으로 캐시미어 코트를 걸친 모델들을 렌즈에 담았다. 뒤로, 뒤로. 정확하진 않지만 아마도 디지털에서 흑백 필름 카메라로 바꾸며 코트 주머니에 두 손을 푹 찌르고 있는 양 갈래 머리의 모델에게 그런 말을 하고 있을 때였던 듯한데. 뒤로, 조금만 더 뒤로. 렌즈에 눈을 대고 몇 번 더 그 말을 하다가 나도 모르게 모델의 뒤쪽, 야트막한 언덕을 오르는 한 쌍의 남녀에게 초점을 맞췄다. 외국인 여자와 한국인 남자, 아니 여자가 한국인이고 남자가 외국인인가 확실하지 않지만 별다른 의도 없이 셔터를 눌렀다. 다정해 보이는 뒷모습이었다. 귀여운 국제연인 쯤으로만 여겼다. 그게 다였다. 나는 나의 일에 몰두했다. 필름을 인화하는 과정에서 그 우연한 포착은 기분 좋은 결과물로 이어졌다. 이후로 나는 그 사진을 개인 전시의 티켓에 인쇄했을 만큼 유난한 애정을 가졌다. 겨울 초입의 지는 석양을 배경으로 모로 누운 갈대가 도처에 깔려 있는 언덕배기. 그곳을 찬찬히 오르는 두 남녀의 뒷모습이 묘하게 애틋하면서도 그로테스크해 보여 마음에 들었다고나 할까. 내 개인전의 테마는 ‘사랑’이었다. 통속이 아닌 보편을, 관념이 아닌 구체를 말하고 싶었다.
    그러나 전시 마지막 날 찾아온 어느 중앙지의 기자는 내게 이 사진을 찍은 날짜와 상황을 콜콜히 캐물은 뒤 그 자리에서 아이패드를 꺼내 피디에프 파일을 열었다. 이별 통보에 무차별 폭행, 여자 친구 야산에 묻어. 그것이 기사 제목이었다. 이들은 국제연인이 아니에요. 여자는 외국인이 아니고요. 염색머리였던 걸까요. 흑백이라 사진만 봐서는 뚜렷하지 않지만. 아무튼 헤어지기 전에 딱 한 번만 만나달라며 불러내선 데리고 올라간 거죠. 여자가 살해되기 전에 마지막으로 본 목격자시네요, 작가님은. 기자가 갤러리를 떠나고 다음날 경찰서에 와서 참고인 조사를 받으라는 출두 고지서를 받았다. 내 사진은, 첫 전시회의 티켓에까지 인쇄해 배포한 사진은 데이트 폭력이 살인으로 이어진 범행 직전의 장면으로 알려지며 세간의 큰 관심을 모았다. 이후로는…… 이후로는 아무것도 찍을 수 없었다. 넌 실의에 빠졌을 뿐이야. 남편은 나를 위로했지만 의욕을 잃었다는 것만으로 나의 절망의 상태를 이야기할 수는 없었다. 나는 몰락했다고 느꼈다. 내 안의 세계가 헝클어지고 바스러져 그러니까 멸망하여 모조리 없어지는 걸, 보잘것없이 형체를 잃어버리는 걸 감각했다. 심정적으로 그랬다. 한번 그것을 경험하고 나자 가라앉은 기분이 좀처럼 나아지지 않았다. 재건은 어렵다고 나는 나를 일으켜 세울 수 없고 결정적으로 내 안에서 뭔가가 죽어버렸다는 것만을 인지했다. 내 안에서 어떤 빛과 같은 것이 순식간에 꺼져들었고 나는 순순히 어둠 속에서 눈을 뜨고 감길 반복하며 살아가게 될 거야…… 그런 불길한 예감만이 비바람처럼 나를 휘감고 젖어들게 만들었다. 그리고 그제야 나는, 무너져 내리는 대리석의 파편들과 그 찰나에 부유하던 보송한 먼지더미 속으로 사라져 버린 아기 엄마에게 내가 얼마나 큰 부채감과 죄의식을 지니고 있었는가를 깨닫게 되었다. 속죄해야 했다고도. 나조차도 스스로를 설득할 자신은 없이 나는 그저 엄마에게로 도망쳤다. 익숙한 품 안에 고요히 숨어들고만 싶었다. 남편은 도저히 견딜 수 없다는 듯 고개를 외로 틀며 나를 떠나갔다. 아내라는 역할의 수행자를 기대했던 남편에게 나의 절망은 예상 가능한 범위 바깥에 놓인 것이었다. 생각지도 못한 뜻밖의 영역. 아쉽지 않았다. 그는 이성적으로 나를 위로했으나 그에게선 일말의 위안이나 내밀한 평화도 얻을 수 없었으니까.
    나는 빈 테이블에 홀로 앉아 있는 우중의 아내를 응시했다. 눈길을 모아 똑바로. 우리의 이 모든 불행은 다만 시기적으로 우연히 겹쳐버린 불운일 뿐일까. 물을 수만 있다면 묻고 싶었다.
    와이프랑 소개팅으로 만났는데 말이야. 언제 반했는지 알아?
    우중은 씁쓸한 미소를 띠며 말했다. 고통스레 붉어진 그의 안색이 플래시가 켜지듯 아주 잠깐 밝혀지는 걸 보았다.
    가까스로 직장을 잡고 매일 야근에 회식에 머리가 어질어질하던 때였거든. 시력이 나빠졌는지 눈도 뻑뻑하고 목도 뻐근하고 그런 때 있잖아……. 동기가 소개팅을 해준다기에 못 이긴 척 끌려 나와 점심시간에 만났는데 이탈리안 레스토랑에서 마주 앉은 여자의 얼굴은 고사하고 메뉴판의 글자도 제대로 눈에 안 들어오지 뭐야.
    그는 찬찬히 복기하듯 말했다. 기운이 빠져 늘어지듯 빛은 이내 사그라졌다.
    머리통을 흔들며 나는 아마 그런 말을 했을 거야, 미안합니다 아무것도 못 읽겠네요. 그러니까 와이프가 대답하는 거야, 이 세계가 좀, 읽을 수 없이 아름답기는 하죠, 라고…… 웃기지, 그제야 여자의 얼굴이 제대로 보였어. 보게 되더라고. 우리 사는 이 세계가 읽을 수 없이 아름답다고 말하는 여자가 너무 미치게 환해서…… 가슴이 뛰었어. 그랬던 시절이 있는데 우리에게는. 아니 내가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거지, 네 앞에서 이런 얘길 늘어놓게 될 거라고는…… 미안해, 오랜만에 만났는데.
    무슨, 하고 나는 손사래 쳤다. 사과받기엔 그의 추억이 지나치게 어여뻤다. 그렇게밖에는 생각되지 않았다. 지금도…… 아직도 아름다울까, 하고 그는 찻잔을 잡았던 두 손으로 뒷머리를 감싸 쥐었다.
    인생은 러브레터도 오! 수정도 아니었어. 있잖아 그저, 그저…….
    깍지 낀 우중의 손가락이 가늘게 떨렸다. 유리창을 사이에 두고 내리꽂히는 빗소리는 그침이 없었다. 코끝이 시큰해지며 나는 분노도 뭣도 아닌 허망함만을 느꼈다. 우중과 나는 어째서 이런 때에 이런 모습으로 조우하게 되었을까. 다다르고자 했던 곳으로 조바심 내며 줄달음치기에만 바빠서 언제나 그것만이 허기처럼 일상을 잠식해 버려서 지나간 우리의 사랑과 이별은 서툴렀다. 그토록 어색하고 서먹하던 이십대의 청춘으로부터 벗어난 지도 오래되었다. 그래도 그때는 무엇이든 실패하고 상처받아도 좋다는 관용과 포용이 우리의 세계에 존재했다. 부족한 자신을 스스로 다독이고 용서하고 새로이 시작할 수 있는 단순함. 말마따나 읽을 수 없이 아름다운 난독의 세계였는지도 몰랐다. 그건 명백한 청춘의 윤리였지. 그러나 지금, 그때의 우리로부터 우리는 너무 많이 걸어와 버린 것이나 아닌가 하는 기분이 든다. 그 시절의 우리와 지금의 우리는 분명히 다르다. 달라졌다는 걸 알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시간이 놀라운 속도로 우리를 이끌어왔다고 해서, 충분히 상처받았어야 했다는 것은 아니다. 그런 상처가 결코 치유되지 않을 내상처럼 몸에 꼭 각인되어야만 비로소 어른이 될 수 있는 건 아니니까. 길이 없어. 우중이 고개를 들지 않고 있는데도 그의 목소리가 먼 데 어딘가의 종소리처럼 들려오는 듯했다. 하지만 길이 없어, 여기서는 뭔가 일어날 수 없나?…… 마음이 끝 간 데까지 물크러져 풀어지는 기분이 전신을 뒤덮었다. 뭔가 일어났으면 좋겠다고 안달복달하던 젊은 날이 있었는데. 추후. 나는 추후에 대해 생각했다. 추후의 세계랄 게 있다면 그러니까 일이 지나간 얼마 뒤에 이전의 시기를 돌아보는 세계가 있다면 인간이 저마다의 삶의 선택과 행위들을 이끈 것이 어떤 힘이었는지 알 수 있게 될까, 하고.
    나는 빗줄기가 잦아드는 걸 멍하니 주시했다. 우중에게 어떤 말이라도 건네고 싶었는데 뭘 말해도 다 시답잖은 것일까 봐 입이 썼다. 진정한 위로라는 게 타인이 타인을 위로한다는 게 가능할까. 나는 홀로 고개를 젓다가 한기를 느끼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온풍기의 온도를 조금 더 높였다. 따뜻한 바람의 세기를 조절한 뒤 테이블로 돌아왔다.
    쌀쌀하네.
    말고는, 달리 뭐라 말해야 좋을지 몰라서 나는 뺨이 달아올랐다. 답답했다. 아무리 고민해도, 무엇을 이야기해야 할지 감을 잡을 수가 없었다. 그러다 우중이 아…… 하고 나지막한 음성을 뱉었을 때 나도 번뜻 고개를 들게 되었다. 꼼짝하지 않고 앉아 있던 그의 아내가 느릿한 걸음으로 카페를 나서고 있었다.
    가봐야겠어. 그는 서둘러 코트 주머니를 뒤적여 지갑을 꺼냈다. 됐어, 됐어, 나는 손을 내저었는데 그는 아니야, 아니야, 하며 만 원 지폐 한 장을 테이블 위에 놓아두고 일어섰다.
    아니야 이건, 어 그러니까 반가워서.
    말과 다르게 우중의 표정은 암울했다. 나는 더 말하지 않고 고개를 주억거렸다.
    잘 지내.
    그가 또 말했다.
    아 참, 우산이 어디 있을 거야.
    내가 일어서자 그가 아니야, 소리를 두어 번 더 되풀이했다.
    실컷 퍼붓더니 잠잠해진 것 같은데 뭐. 그냥 갈게.
    그는 코트의 깃을 세우고 단추도 채웠다. 또 올래, 다음엔 아내 분과 함께 그러면 정말 따끈하고 맛 좋은 커피를 만들어줄게…… 라고 인사하고 싶었는데 목구멍 언저리에서만 맴돌고 말았다.
    추워. 조심히 가.
    다 좋아지리라 믿어 힘내, 라는 말도 어쩐지 모형 같고 제스처인 것만 같아서 건네지 못하고 나는 추워, 소리만 했다. 추워, 너무 추워, 그러니까 부디 조심히, 그런 마음으로. 문 앞으로 걸어간 우중이 내 말에 슬쩍 돌아섰다.
    여전하네.
    응?
    추위 많이 타는 거.
    내가 그랬나.
    그랬지.
    그가 힘없이 웃었다. 소리 내지 않고 조용히. 내가 짧게 손을 흔들려는데,
    따뜻해질 거야.
    그가 윤기 없는 목소리로 덧붙였다.
    응?
    오후부터. 오후부터 따뜻해진대.
    그는 내 대답을 듣지 않고 서둘러 문을 열고 나갔다. 딸랑 딸랑. 가벼이 흔들리는 종의 쇳소리를 들으며 나는 조금 멍했다. 누가 누구한테. 찰박이는 거리를 구둣발로 밟고 뛰어가는 그의 뒷모습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지켜보았다. 그가 떠난 뒤에야 괜한 눈물이 비어져 나왔다. 어쩐지 분했다. 분하고 서글펐다. 모형 같고 제스처 같아서 포즈 같고 기만 같아서 차마 건네지 못했던 진심을, 변형되고 왜곡될까 두려워 쉽게 하지 못했던 위로를 무심코 부려놓고 간 그가 놀라워서. 인간이 이렇게나 어설프고 우연하고 가여워서. 이 비루하고 황폐한 세계에 남겨진 단 하나의 테이블이라도 된다는 듯 나는 자리로 돌아와 다 식어버린 찻잔을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또 문에 매달아 놓은 종이 흔들리는 소리가 들렸다. 뒤이어 한 무리의 소음도 달라붙어 왔다. 어쩜 이렇게 쏟아져. 그러니까 말이야, 이 한겨울에 어쩌면. 뒤돌아 움직여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나는 자꾸만 머뭇댔다.

 

 

 

 

 

 

 

 

 

 

 

 

 

 

 

작가소개 / 염승숙

2005년 《현대문학》에 소설, 2017년 《경향신문》에 평론이 당선되어 등단. 소설집 『채플린, 채플린』, 『노웨어 맨』, 『그리고 남겨진 것들』, 장편소설 『어떤 나라는 너무 크다』가 있다.

 

   《문장웹진 2018년 0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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