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구두와 달 외 1편 - 신영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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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시]

 

 

물구두와 달

 

 

신영배

 

 

 

구두가 나에게 달을 설명하고 있었다
또각또각 어딘가를 열고 있었다

 

당신은 떠나며 다리를 둥글게 말았다
달이 뜨지 않고
달에게 던진 말들도 뜨지 않는
창가에서
다리는 어두워졌다

 

꿈에서 달, 달이 책상 위에 앉았다 말을 건질 때마다 책상이 출렁였다 달이 옷걸이에 걸렸다 말을 벗느라 안간힘을 쓸 때 옷걸이엔 내 비틀린 사지가 걸렸다 물이 뚝뚝 떨어졌다

 

구두가 여전히 나에게 달을 설명하고 있었다

 

당신은 어둡고 멀고 둥글다

 

당신과 나의 간격엔 달빛
달빛엔 강이 흐르고
나도 둥글게 만 다리를 안고 있었다

 

간격엔 달빛
걸을 수 없는 말들을 안고 젖은 구두가 돌아다녔다
닿을 수 없는 말들 사이에서 또각또각 소리가 났다

 

강이 마르는 거리에서
걸어가는 사람들 속에서
떠오르는 구두
가라앉는 달

 

 

 

 

 

 

 

 

 

 

 

 

 

이불과 물의 방

 

 

 

이불은 다리 없는 아이와 산다
이불은 손이 뭉개지는 아이와 산다
이불은 코에 호스를 꽂고 음식물을 넘기는 아이와 산다
이불은 아이가 태어날 때 태어났다
아이가 크지 않을 때 이불도 크지 않았다
이불은 발작이 오는 아이와 산다
이불은 토하는 아이와 산다
아이가 젖으면 이불도 젖는다
이불은 아이를 둥글게 말아 달을 흉내 낸다
이불은 아이를 둘둘 말아 물고기를 흉내 낸다
이불은 웃는 아이와 산다
이불은 입이 없는 아이와 산다
태풍이 몰아치면 이불은 아이를 달랜다
눈보라가 치면 이불은 아이를 녹인다
꿈에 달빛이 들고 이불은 반짝인다 아이도 반짝인다
이불은 물결을 가진다 아이도 물결을 가진다
이불은 떠다니고 아이도 떠다닌다
꿈엔 달빛이 들고 이불은 출렁인다 아이도 출렁인다

 

 

 

 

 

 

 

 

 

 

 

 

 

 

작가소개 / 신영배

2001년 《포에지》로 등단. 시집 『기억이동장치』, 『오후 여섯 시에 나는 가장 길어진다』, 『물속의 피아노』, 『그 숲에서 당신을 만날까』.

 

   《문장웹진 2018년 0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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