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워진 우주의 대기자들 - 임승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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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비워진 우주의 대기자들

 

 

임승훈

 

 

 

    누나.

 

    *
    창백한 여자는 말했다.
    “어떻게 말해야 할까요? 7년의 어둠을 어떻게 말해야 할까요? 즈제엔 어둠이 없어요. 어둠으로 들어가려면 굴을 파고 들어가야 해요. 즈제에서 어둠은 언제나 일시적인 것이었어요.”
    꼽추가 말했다.
    “그곳에서는 아무리 죽어도 다시 살아날 것만 같았다. 아무리 살아 있어도 언젠가 죽었던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
    “궤도 진입 예정입니다. 궤도 진입 예정입니다.”
    오르트 구름대 특유의 진동이 잦아들자마자 크루잎(초고성능연산장치)은 경고 메시지를 반복했다. 그와 동시에 므스느그흠의 우측에 있는 대형 입체 영상 패널에서 행성이 떠올랐다. 직경 842km 정도의 아주 작은 행성이었다. 얇은 고리가 있는 행성이었다. 우주의 먼지와 얼음 덩어리, 암석, 그리고 폐기된 우주선들이 고리의 정체였다. 하지만 입체 영상 속 우주는 스물다섯 개 센서의 측정치를 합산해 재구성한 세계였다. 패널이 아닌, 전방의 커다란 창으로 보이는 우주는 텅 비어 있었다. 텅 빈 공간을 에워싸고 우주 쓰레기 고리가 돌고 있었다.
    101-툼-57, 일명 보이지 않는 손가락. 그 행성은 뵐 물질로 구성된 행성이었다. 이 물질은 가시광선의 세계에선 관측되지 않았다. 보이지 않지만 밀도가 높았다. 동일한 중량이라면 목성보다 밀도가 높았다. 그리고 빨랐다. 자전 속도도 빨랐고 공전 속도도 빨랐다. 빠른 속도로 태양계 외곽을 돌았다. 그것은 시속 56만km1)에 이르렀다. 구체적 원인은 밝혀지지 않았다. 하지만 뵐 물질이 우주를 가득 채우고 있는 미지의 물질들에 극도로 민감하게 반응한다는 건 확실했다. 그래서 빠를 거라고 즈제인들은 판단했다. 어쨌든 즈제인의 행성을 이용한 항법은 행성의 공전 속도만큼 자전 속도도 중요했다. 그런 면에서 101-툼-57은 적합했다. 지구로 향하는 자들이라면 모두 이 행성을 이용했다. 그들은 101-툼-57의 궤도를 수십 바퀴 돌면서 가속도를 얻었다. 그러다 공전하는 힘을 이용해 탄환처럼 튕겨져 나갔다. 그 기세로 지구까지 날아갔다. 이걸 행성 추진이라고 불렀다.
    므스느그흠은 아움이었다. 아움은 즈제 언어로 지적 생명체를 의미했다. 그건 바로 즈제인이라는 의미였다. 그렇다. 므스느그흠은 즈제 행성계에서 왔다. 즈제 행성계에는 모두 다섯 개의 행성이 있었다. 그중 생명이 거주하는 곳은 두 곳으로, 뉘·즈제와 쥴·즈제라고 불렸다. 그곳은 압 항성계에 속해 있었다. 지구에서 6.7파섹(약 206조 6280억km) 정도 떨어져 있는 곳이었다. 이곳에 오기까지 ‘뛰어넘기(즈제인들은 초공간 항법을 ‘뛰어넘기’라고 불렀다)’를 세 번 해야 했다. 즈제인의 기술로 3.2년 정도 걸리는 거리였다. 만만치 않은 시간과 거리였다. 즈제의 과학이 아무리 발달했다 해도 우주는 거대한 곳이었다. 우주 횡단에 익숙한 므스느그흠에게도 지난 3년여의 여정은 험난했다. 하지만 이제 마지막 관문이었다. 이 관문만 넘으면 태양계에 진입하는 것이었다. 그러면 잠시라도 눈을 붙일 수 있었다. 그는 피로했다. 한 달 동안 잠을 자지 못했다. 이 항해는 생각보다 힘들었다.
    므스느그흠의 입은 삐뚤어져 있었다. 그는 삐뚤어진 입술을 물어뜯으며, 몸을 죄고 있는 안전장치를 다시 한 번 점검했다. 궤도에 진입하는 것은 언제나 무서웠다. 항성 간 튜브를 뛰어넘는(초공간 항법) 것보다 가속을 얻기 위해 행성 궤도에 들어서는 게 더 무서웠다. 그리고 므스느그흠의 두려움은 타당했다. 뛰어넘기는 절차만 제대로 수행된다면, 변수가 궤도 진입보다 훨씬 적었다. 최근 50년간 뛰어넘기 도중 일어난 사고는 손에 꼽을 정도였다. 하지만 ‘행성 추진’은 달랐다. 사고가 빈번했다. 물론 므스느그흠은 노련한 우주 항해사였다. 이제는 익숙해질 만도 했다. 그렇지만, 그래서 더 무서웠다. 이게 얼마나 위험한지 자신이 망각하게 될까 봐 그랬다. 단 한순간도 패널과 계기판에서 눈을 떼면 안 됐다. 그러다가 죽은 이가 한둘이던가? 아무리 크루잎이 계산을 거듭해도 사고는 일어났다. 크루잎의 정밀함은 사고를 외부에 있는 것처럼 느끼게 했다. 연산이 첨예해질수록 그랬다. 하지만 계산은 계산일 뿐이었다. 방심하고 있으면 돌발적인 상황이 불쑥 튀어나왔다. 어쩌면 처음부터 계산의 일부였던 것처럼 그랬다.
    경보음이 울리기 시작했다. 실내의 등이 깜빡거렸다. 점차 우주선은 행성의 궤도로 접어들었다. 궤도로 들어갈수록 우주선을 끌어당기는 힘도 강해졌다. 그러나 평범한 아움인 므스느그흠의 눈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지금 그의 눈앞에 펼쳐진 우주는 사라진 존재들이, 산산조각난 시간들이 어둡고 텅 빈 공간을 빙글빙글 돌고 있는 스산한 광경이었다.

  1)  이 소설의 대부분 단위는 편의상 지구 단위로 표기될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즈제 단위와 정확히 일치하지 않는 근사치일 뿐이다.

 

    *
    마르죠욘은 말했다. 그녀는 외눈박이였다. 오른쪽 눈이 있어야 할 자리가 까맣게 텅 비어 있었다.
    “그 일은 제가 시체를 치우고 있는데 일어났어요. 당신은 뉘·즈제에서 오셨나요, 쥴·즈제에서 오셨나요? 만약 당신이 뉘·즈제에 한 번이라도 가본 적이 있다면, 시체를 치운다는 게 무언지 아실 거예요. 그래요, 저는 그러니까 돌아다니는 아움이었어요. 시체를 치우는 자, 란 의미예요. 저는 52번부터 62번 골짜기 사이의 처형장에서 일을 하는 열두 명 중 하나였어요. 어떤 자들은 우리를 농부라고 부르기도 했어요. 또 어떤 자들은 우리를 깊은 바다의 물고기들이라고 부르기도 했어요. 쥴·즈제의 병사들은 우리를 가져오는 자 혹은 가지고 가는 자라고 불렀죠. 쥴·즈제의 발음은 가져오다와 가져가다가 같았기 때문이에요. 하지만 그들끼리 있을 때면 그들은 우리를 시체라고 불렀어요. 시체라니, 시체라니! 그들이 만든 벌거벗은 새까만 시체들을 우리가 치워 주고 있는데, 우리를 시체라고 부르다니요! 매일 매일 잡초처럼 사방에 널브러진 시체를 끌고 와서 잘게 썰어 바다에 던지는 그 일을, 그들이 하기 싫어 우리에게 떠넘긴 그 일을 하는 우리가 시체라니요! 동포들은 우리를 배신자라고, 마치 쥴·즈제에서 온 학살자의 가족이나 친구를 대하듯 몸을 부르르 떨면서, 길에서 마주치면 도로의 모서리나 깨진 창문들을 쳐다보면서 그렇게 고개를 돌리고 우리를 지나쳤어요. 때때로 골목 끄트머리에서 흐릿한 그림자가 나타나 우리에게 욕을 퍼붓고 사라졌어요. 커다란 압의 빛 속으로요. 때로 그들은 우리 집에 돌이나 썩은 생선 같은 걸 던지기도 했어요. 그러면서 죽여 버리겠다고 소리치곤 했죠. 그건 슬픈 일이었어요. 하지만 이해할 수 있는 일이었어요. 우리가 참을 수 없는 건, 우리에게 그 일을 떠넘긴 자들이, 진짜 더러운 일을 하는 자들이, 우리를 더럽게 쳐다보는 것이었어요. 시체라니! 시체라니! 언젠가 제가, 지구에서, 뚜체 앞에서 펑펑 운 적이 있어요. 문득 그 시절이 생각나, 그 병사들이 내게 던진 모멸이 생각나 울었어요. 저는 펑펑 울면서 소리쳤어요. 그럴 순 없어! 우리를 그렇게 부를 순 없어! 우린 시체가 아냐, 우린 그 시체들이 아니라고! 그러자 뚜체는 제 어깨를 붙잡고 위로했어요. 마르죠욘, 마르죠욘, 울지 마, 마르죠욘, 그건 그저 줄임말일 뿐이야. 시체를 치우는 자나 시체를 없애는 자를 줄여서 말하는 거잖아. 알고 있잖아. 하지만 저는 울면서 말했어요. 알고 있어, 알고 있지, 하지만 그건 지독한 은유라는 것도 알고 있어, 그게 그들의 본심이라는 것도 알고 있어, 그들은 자신들이 만든 시체를 쳐다보기 싫은 것처럼 우리를 쳐다보기 싫은 거야. 그들이 속삭이는 소리를 들었어. 우리 몸에서 시체 냄새가 난다고 속삭이는 소리를 들었어. 생선 장수처럼 말이야, 흙냄새가 밴 농부처럼 말이야. 그러고 울었어요. 그건 벌써 오래전 일이었지만, 그리고 그건 뉘·즈제에 살 때의 일이었지만 저는 참을 수 없는 그런 기분이었어요. 울다 보면, 참을 수 없게 되면, 점점 그곳에서의 슬픈 일들이 하나둘 떠올랐어요. 죽은 아버지, 사라진 남편, 그리고 제 아이, 아이. 이름이 없는 그 아이. 걷는 걸 좋아했던 그 아이. 그 아이의 눈은 아름다웠어요. 두 개가 모두 있었어요. 슬퍼요. 지금도 그래요. 그것들은 은유가 아니에요. 그건 제 몸 안에 있는 것들이에요. 그것들이 떠오르면 어떻게 참을 수 있겠어요. 그럼 또 저는 펑펑 울었어요. 그러면 뚜체는 저를 위로하고, 저는 밤새 울고, 그런 일이 몇 번 있었던 거 같아요. 뚜체, 그는 좋은 아움이었어요. 좋은 아움이었지만 어느 날 죽고 말았어요. 매일 쥴·즈제의 꿈을 꾼다고 했어요. 그러다가 죽고 말았어요.”
    그녀는 엄지손가락에 낀 반지를 쓰다듬었다. 그러고 두 손으로 허공에 공을 잡듯 그러쥐자, 손바닥 사이에 남자가 나타났다. 그도 다른 수백억의 즈제인처럼 피부가 까맣고 머리카락이 지독한 곱슬이었다(즈제인의 외모는 지구의 흑인과 흡사했다). 남자는 웃으면서 걸어왔다. 걸어오면서 말했다. 오늘은 좋은 날이야, 이런 날이 또 언제 있었는지 기억이 까마득해. 그러고 크게 웃었다. 그건 즈제 식 이미지 출력 장치였다. 물론 구식이었다. 그녀가 즈제 행성계를 떠난 지 너무 오래되었기 때문이었다. 짧은 영상은 몇 번이고 반복됐다. 그때마다 남자는 오늘은 좋은 날이야, 이런 날이 또 언제 있었는지 기억이 까마득해, 라고 말했다.
    “제게 남은 그의 사진은 이것밖에 없어요. 그가 죽고 어느 날 저는 슬픔에 못 이겨 그의 모든 사진을 없애버리고 말았어요. 우연히 이거 하나만 남았어요. 그는 쥴·즈제인이었어요. 저는 뉘·즈제인이고 그는 쥴·즈제인이지만, 지구에서 우리는 외계인이었어요. 우린 언제나 의지했어요. 우린 지구에서 37년 동안 친하게 지냈어요. 비록 우리 즈제인들이 지구인에 비해 오래 산다고 하지만 그래도 그건 긴 시간이었어요(그들은 지구인에 비해 1.5배에서 2배 정도 오래 살았다). 우리는 서로를 운명이라고 불렀어요. 지구에서는 인생을 배에 비유하곤 해요. 지구에 온 즈제인들은 인생과 운명을 우주선에 비유해요. 우리는 이미 우주선을 탔어, 우주선은 튜브를 거꾸로 가고 있어, 모르토가 바닥난 우주선 등등, 어쩌면 들어 봤을 거예요. 지구와 비슷한 표현으론 한 우주선에 탄 아움, 이라는 말도 있어요. 뚜체와 제가 그랬어요. 우리는 한 우주선에 탄 아움이었어요. 하지만 그건 비유가 아니라 진짜였어요. 우리는 한 우주선을 타고 지구로 왔어요. 그 우주선에는 뚜체의 딸과 남동생과 어머니가 있었고, 또 저와 두 남자가 있었어요. 우린 그렇게 7년 동안 그 우주선에서 지냈어요. 하지만 지구에 도착했을 땐, 우리 둘만 살아남았어요. 우린 늘 손을 마주 잡고 말했어요. 네가 없으면 이제 나는 지구에서 어떻게 하지? 그 뚜체가 죽었어요.
    그는 내장이 썩어 가는 병에 걸려서 죽고 말았어요. 그 병은 특히 쥴·즈제인이 자주 걸리는 병이었어요. 그의 곁에 다가가면 지독한 악취가 났어요. 축축한 단백질이 썩어 갈 때 나는 그 특유의 냄새 말이에요. 저는 그 냄새를 잘 알고 있었어요. 그 일이 있기 전까지 뉘·즈제에 살 때 매일 맡던 냄새였어요. 시체에서 나는 그 냄새였어요. 반평생을 시체 치우는 일을 하다 보니, 저는 제가 원할 때면 냄새를 맡지 않는 법을 익히고 있었어요. 저는 뚜체와 만나면 깊게 심호흡을 하고, 제 비법으로 코의 일부 기능을 정지시켰어요. 물론 뚜체는 몰랐어요. 그는 제게 묻곤 했죠. 마르죠욘, 내 몸에서 냄새가 나지 않아? 그럼 저는 그의 몸에 코를 갖다 박고 킁킁거리면서 말했어요. 응, 냄새가 나, 불쌍한 쥴·즈제인의 냄새가 나고, 지구의 냄새가 나. 뚜체는 질겁하고 제 머리를 밀었어요. 마르죠욘, 코 조심해, 내 내장이 썩어 가고 있단 말야. 하지만 전 그에게 더 찰싹 붙어서 킁킁거렸어요. 마치 오래전 제 아이가 제 품으로 파고들듯이 그랬어요. 그러면 그는 그 쥴·즈제인 특유의 세상 다 산 듯한 낯빛으로 말했어요.
    마르죠욘, 나는 죽어가는 걸까?
    응.
    근데 이상해. 나는 지금 행복해.
    나도 알아, 뚜체.
    그리고 죽어가는 그는 저를 안아 줬어요. 저도 그를 안았어요. 우린 서로에게 아이였어요. 제게도 그에게도 아이가 있었어요. 제 아이는 뉘·즈제를 떠나기 6년 전에 죽었어요. 뚜체의 아이는 우주선에서 배고픔과 추위를 못 이겨 죽었어요. 우린 종종 서로의 아이를 안듯이 안았어요. 그는 언제나 다정했어요. 그 뚜체가 죽었어요.”
    그렇게 말하고 그녀는 커다란 컵에 오렌지주스를 가득 채웠다. 주스는 진한 노란색이었다. 서쪽으로 난 커다란 창을 통해 캘리포니아의 저녁놀이 들어차고 있었다. 즈제인은 추위에 약했다. 그래서 그들은 대부분 따뜻한 곳에 살았다. 특히 캘리포니아와 남부 유럽을 선호했다.
    마르죠욘은 말했다. 미안해요, 목이 너무 말라요. 그러고는 단숨에 주스를 들이켰다. 해질녘의 그림자에 축축이 젖은 채, 파르르 떨리는 입술을 꼭 다문 채, 한쪽만 남은 커다란 눈을 지그시 감은 채, 혀끝으로 주스를 음미하면서. 음료를 모두 마시자 그녀는 천천히 눈을 떴다(왼쪽 눈이었다).
    “지구에 와서 가장 좋아하는 게 오렌지주스예요. 아니 지구에 와서 행복한 이유 하나만 말하라면 지구의 수많은 달달한 음식들이에요. 만약 그 일이 없었더라면, 그랬다면 세상에 이런 다정한 맛이 있다는 걸 알 수 없었을 거예요. 뉘·즈제에도 단 음식이 있어요. 하지만 이렇게 달진 않아요. 즈제의 과일들은 대부분 맑고 시원하지만, 이렇진 않아요. 즈제엔 밤이 없어서 그런가요? 뭐가 다른 거죠?”
    말을 하는 와중에도 그녀는 그 커다란 컵, 그러니까 그녀의 얼굴만 한 아이보리색 컵에 오렌지주스를 다시 가득 채웠고 다시 숨도 쉬지 않고 모두 마셔버렸다. 그녀는 말했다.
    “당신도 마실래요?”
    그녀는 다시 말했다.
    “왜요? 왜 마시지 않죠? 당신, 지금 너무 지쳐 보여요.”

 

    *
    므스느그흠은 돌고 있었다. 그는 보이지 않는 작은 행성을 돌고 있었다. 이 행성, 그러니까 101-툼-57의 행성 탈출 속도는 시속 52만km였다. 물론 행성 띠 외부에서 돌고 있는 므스느그흠의 우주선에 미치는 중력은 내부보다 약했다. 그래도 뵐 물질로 만들어진 행성이었다. 어느 순간 강력한 중력장이 한 지점에서 폭발하듯 다가올지 몰랐다. 신경을 곤두세워야 했다. 므스느그흠은 101-툼-57을 벌써 아홉 바퀴째 돌고 있었다. 우주선은 어느새 굉장한 속도로 행성을 돌고 있었다. 101-툼-57의 대기에 섞여 있는 우주 먼지가 타오르며 불꽃을 일으켰다. 므스느그흠에게도 엄청난 압력이 느껴졌다. 속도가 높아질수록 크루잎은 모르토를 급격히 소모하며 우주선 내부의 압력과 열을 관리했다. 하지만 모든 압력을 상쇄할 수 없었다. 그는 내장을 짓누르는 고통을 이를 악다물고 참아냈다.
    크루잎은 이제 다섯 바퀴만 더 돌면 목표 속도에 이를 거라고 계산했다. 그 속도로 지구를 향해 쏘아질 것이었다. 수직으로 쏘아질 거였다. 101-툼-57은 태양계 행성들의 머리 위에 있었다. 태양계의 여덟 개 행성들은 평면 위를 나란히 돌고 있었다. 심지어 수천억 개의 운석과 왜소 행성, 얼음 덩어리들조차 이 평면 위에 있었다. 마치 거대한 접시 같았다. 101-툼-57은 그 태양계 접시의 상단에 위치한 거였다. 이 행성을 거치면 수직으로 평면 궤도에 진입할 수 있었다. 쥐를 향해 날아드는 부엉이처럼 그랬다. 거추장스러운 돌덩어리나 목성의 중력을 신경 쓰지 않아도 됐다. 태양의 중력에 안정적으로 이끌려 종국에는 시속 102만km에 이를 것이었다. 그리고 감속을 위해 수성 외곽 궤도를 한 바퀴 돌아야 할 것이었다. 계산에 따르면 7920시간 후 지구 궤도에 도달할 수 있었다.
    시속 102만km. 굉장한 속도였다. 이 우주선이 감당할 수 있는 최고 속도는 시속 150만km 정도였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행성추진으로라도 150만km 이상으론 운항하지 않았다. 사실상 시속 130만km를 초과해도 우주선에 이상이 생기기 시작했다. 지구 항행 이전까지 므스느그흠이 경험한 최고 속도는 대략 62만km 정도였다. 물론 므스느그흠은 성간 튜브를 빠져나왔다. 그 튜브를 통하면 항성계 간 이동에 서너 달이 소요됐다. 실제 항성 거리를 시간으로 계산하면 어마어마한 속도였다. 하지만 그건 속도이되 속도이지 않았다. 항성 간 튜브는 공간과 거리의 왜곡이 있는 곳이었고, 체감상 므스느그흠이 이동한 거리는 8.6억km에서 11.5억km 정도였다. 실제로 우주선의 속도계도 시종일관 40만km 정도를 유지했다. 만약 그가 지구에 올 일이 없었더라면 이 속도를 경험할 일이 없었을 것이다.
    므스느그흠은 군인이었다. 그러다 돌연 회사에 입사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군인보다 토지개발 직이 더 빨리, 더 멀리 갈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버지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달려갔을 때, 그는 누구보다 빨리 뛰었다. 그는 매일 아버지가 죽길 바랐다. 하지만 막상 죽었다고 하니 견딜 수 없었다. 견딜 수 없다고?
    무얼 견딜 수 없는 거지?
    그때였다. 경보음이 울리기 시작했다. 이상했다. 우주선의 궤도가 행성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원래 행성을 돌 때는 우주선 배면의 출력장치를 통해 중력에 빨려들지 않도록 해야 했다. 특히 101-툼-57과 같이 띠가 있는 행성은 회전 궤도가 행성에 지나치게 가까워지면 행성을 돌고 있는 우주 쓰레기들과 충돌해 우주선이 파괴될 수 있었다. 므스느그흠은 패널에 표기되는 수치들을 확인했다. 확실했다. 행성에 점차 가까이 다가가고 있었다. 다른 수치들을 살폈다. 배면출력장치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었다. 그는 천장에 붙어 있는 수동 조작 부스를 열어 레버를 당겼다. 하지만 여전히 배면출력장치는 미약하게 작동할 뿐이었다. 이대로는 행성을 탈출할 수 없었다. 이대로는 감당할 수 없는 속도까지 다다를 것이었다. 그러면 점차 높아지는 압력과 열에 의해 우주선과 함께 전소하거나, 우주 쓰레기와 충돌해 산산조각이 날 것이었다.
    므스느그흠은 다시 레버를 잡아당겼다. 잡아당기고 또 잡아당겼다.

 

    *
    압 항성계에는 세 개의 항성이 있었다. 그 항성들은 압과 누와 듑이라고 불렀다. 주 항성은 압이었다. 압의 질량은 태양의 30%, 가시 밝기는 0.2%, 복사량은 1.2% 정도였다. 누와 듑은 쌍성이었다. 누와 듑은 마치 손을 맞잡고 도는 어린아이처럼, 혹은 두 개의 눈처럼 서로 중력을 주고받으며 압의 궤도를 공전했다. 누의 질량은 태양의 17%, 가시 밝기는 0.08%, 복사량은 0.48%였고, 듑의 질량은 태양의 14%, 가시 밝기는 0.06%, 복사량은 0.36% 정도였다. 이 항성들은 태양에 비해 작고 차가웠다. 그래서 뉘·즈제와 쥴·즈제가 생물이 생존하기에 적합한 온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세 항성과의 거리가 지구와 태양과의 거리보다 훨씬 가까워야 했다. 가깝기 때문에 지구에서 보이는 태양보다 크게 보였다. 특히 압은 위압적일 정도로 컸다.
    세 개의 항성은 서로 영향을 강하게 주고받으며 움직였다. 그리고 그 위치 조합에 따라 행성들에 미치는 중력의 강도와 방향도 조금씩 달라졌다. 행성들은 항성들의 작은 변화에도 예민하게 반응했다. 그래서 뉘·즈제의 자전 주기는 5.4일에서 6.8일, 공전 주기는 84.2일에서 90.1일이었다. 뉘·즈제는 지구보다 7배 정도 컸고, 육지가 없었다. 바다로 뒤덮인 행성이었다. 물론 이제는 즈제인이 만든 삼만여 개의 인공 섬이 있었다. 쥴·즈제의 크기는 지구의 4배였고, 자전 주기는 4.1일에서 5.3일, 공전 주기는 102.8일에서 112.9일이었다. 쥴·즈제는 뜨겁고 건조한 행성이었다. 북반구는 늘 압에 노출돼 영상 100도까지 올라갔고, 남반구는 두 개의 항성인 누와 듑 덕분에 180도 가까운 온도를 유지했다. 따라서 그곳의 아움들은 쥴·즈제 중간 권역의 좁고 긴 위도에서만 살아갈 수 있었다.
    뉘·즈제와 쥴·즈제 역시 아주 가까웠다. 그래서 세 개의 태양 외에도, 뉘·즈제의 하늘에는 황갈색의 쥴·즈제가 커다랗게 걸려 있었고, 쥴·즈제의 하늘에는 푸른색의 뉘·즈제가 걸려 있었다. 그러니까 압 항성계는 세 개의 항성과 다섯 개의 행성이 주머니 속 구슬처럼 오밀조밀하게 모여 있는 곳이었다.
    하지만 무엇보다 세 개의 태양 때문에 생기는 즈제의 가장 독특한 특징이라면 밤이 없다는 것이었다. 압과 누와 듑이 즈제 행성들의 앞뒤에서 상시적으로 빛을 발했기 때문이었다. 항성들의 공전 주기에 따라 덜 밝은 날과 더 밝은 날이 있을 순 있었지만, 어둠은 없었다. 그랬다. 뉘·즈제도 쥴·즈제도 밤이 없었다.
    그래서 즈제인에겐 하루라는 개념이 지구와 달랐다. 두 개의 즈제 행성엔 하루를 정의하는 기준이 약 150개 정도, 하루를 정의하는 단어가 약 1200개 정도 있었다. 그것이 두 행성의 문명이 발달할수록 행성별로 기준이 통합되어 가다가, 종전 후에는 쥴·즈제에 의해 강제로 모든 단위가 일원화 되었다. 그래서 하루는 1리포호 혹은 1리포라고 했다. 이건 쥴·즈제의 언어였다. 쥴·즈제는 전통적으로 다섯 번째 식사 이후, 여섯 번째 식사 이전 사이에 긴 휴식 시간이 있었는데, 이걸 리포호라고 불렀다(쥴·즈제의 지역마다 이것은 세 번의 식사 이후나 여섯 번째 식사 이후로 바뀌긴 했지만, 시간적으론 별 차이가 없었다). 물론 이 단위는 뉘·즈제의 시간 리듬과 미묘하게 어긋나 있었다. 그래서 뉘·즈제는 일 년에 한 번씩 수정 시간을 발표해야만 했다.
    물론 다른 관점에서 본다면 하루에 대한 이야기가 조금 달라졌다. 바로 즈제인들의 특이한 신체적 특징 때문이었다. 그들은 지구인들과 다르게 서른일곱 번째 식사가 끝나면 잠이 들었다. 그 기간은 지구 기준으로 대략 112시간이었다. 그렇게 잠들면 그들은 28시간 정도 내리 잤다. 잠이 들고 깨는 것 역시 즈제인들에겐 중요한 시간 단위였다. 그들은 이걸 레나스키라고 불렀다(이 단어는 잠에서 깨서 다시 잠이 드는 기간을 가리키기도 했고, ‘잠’ 그 자체를 지칭하기도 했다). 만약 지구인들처럼 잠이 들고 깨는 걸 하루의 단위로 생각한다면 1레나스키야말로 진정한 의미의 ‘하루’라고 할 수도 있었다. 그리고 어쩌면 그 112시간에 한 번 있는 수면이, 그 눈을 감는 시간들이, 즈제인들이 경험할 수 있는 유일한 밤이었다.

 

    *
    팔이 없는 아이는 말했다.
    “너무 추웠어요. 어느 날 보니까 제 팔에서 이상한 냄새가 났어요. 눅눅한 냄새요. 그건 동상에 걸린 거였어요. 두 팔이 점차 썩어 가고 있는 거였어요. 그래서 잘랐어요. 처음엔 왼쪽 팔을 자르고, 이틀 뒤에 오른쪽 팔을 잘랐어요. 제가 어린아이라 한꺼번에 자를 수 없다고 했어요. 하지만 그건 더 잔인한 짓이었어요.”

 

    *
    때때로 성실한 자들은 성실하기 때문에 그 어떤 것도 이룰 수 없는 법이었다.
    4000년 전 쥴·즈제에서 많은 즈제인이 뉘·즈제로 이주했다. 그 이주민들은 뉘·즈제에서 악착같이 살아남았다. 그렇게 뉘·즈제에 삼만여 개의 인공 섬을 건설했다. 두 행성은 세 개 항성들의 지배를 받으며 나란히 발전했다. 사이가 나쁜 적도 있었고 분쟁이 없었던 건 아니었지만, 대체로 원만했다. 하지만 어느 날 쥴·즈제가 뉘·즈제 땅에 총을 들고 들어왔다. 작열하는 빛 무리를 등지고 즈제 땅에 발을 들여놨다. 마치 세 개의 태양으로부터 보호를 받겠다는 듯이(실제로 그들의 광학 군복은 빛을 산란시켜서 시야에 잘 포착되지 않았다). 그렇게 전쟁이 시작됐다.
    뉘·즈제와 쥴·즈제는 284년 동안 전쟁을 했다. 전쟁이 284년 동안 지속된 것은 그들이 난폭하고 미개했기 때문이 아니었다. 난폭하기는커녕 그들은 우주에서 가장 침착한 종족이라 할 수 있었다. 침착할 뿐만 아니라 집요하고, 때로는 미련해 보일 정도로 인내심이 강한 종족이었다. 그들은 언제나 정확한 지점에 닿기 위해 차근차근 전진했으며, 비약과 과장을 견디지 못했다. 그래서 즈제인은 언제나 모든 부분에서 매뉴얼을 만들길 좋아했다(뉘·즈제인이나 쥴·즈제인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전쟁마저도 성실하게 임했다. 전쟁에 관한 수만 가지 매뉴얼이 만들어졌다. 심지어 고문과 살해, 혹은 강간과 모욕에 관해서도 그랬다. 그들은 매일같이 어떤 매뉴얼을 만들었고, 전쟁의 폭력도 고통도 매일같이 체계화 됐다. 그러니까 284년 동안 그랬다. 그건 꽤 긴 시간이었다. 할아버지와 아들과 그의 아들과 다시 아들이 전쟁에서 죽었다. 고통은 대물림됐다. 그건 마치 눈이나 피부색을 물려주는 것과 같았다.
    284년 동안 두 즈제 행성의 문화와 경제와 시스템은 수세기를 퇴보했다. 뉘·즈제의 인구는 대략 60% 정도, 쥴·즈제의 인구는 30% 정도 감소했다. 누가 보더라도 명백했다. 이미 전쟁은 어느 순간부터 그들의 현재뿐만 아니라 미래마저도 갉아먹고 있었다. 즈제인들은 생각했다. 우리는 합리적인 종족이다. 우리는 철두철미하다. 그런데 우리는 왜 이 비효율적인 난장을 끝내지 못한 채 질질 끌려가는가?
    그건 어쩌면, 그들이 누구보다 성실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전쟁은 어느 순간 텅 비어 갔다. 그 누구도 이 전쟁이 왜 벌어지고 있는지 대답할 수 없었다. 언제부터 그랬는지 아무도 몰랐다. 누군가는 개전 50년 후부터라고 했고, 또 누군가는 쥴·즈제의 군인들이 뉘·즈제에 발을 디딘 그 시점부터라고 했다. 하지만 이 전쟁에 참여한, 죽이는 자들과 죽임을 당하는 자들과 숨어 있는 자들과 그걸 지켜보는 자들이 문득 그걸 깨달았을 즈음, 전쟁은 이미 내리막을 굴러가는 공처럼 하염없이 작동하고 있었다. 두 행성의 즈제인들은 그들의 상상을 벗어난 전쟁의 크기에 압도됐다.
    그러니까 성실하다는 것은, 종종, 혹은 아주 자주 그 어떤 것도 이룰 수 없는 법이었다. 성실한 자들의 상상이란 현재를 미래인 것처럼 가장하는 것이었고, 그들의 상상이란 상상이란 이름의 서투른 자위였고, 그들의 상상이란 물려받은 낡은 설계도에 불과하기 때문이었다. 그러므로 어쩌면 성실한 자들의 손에는 애초부터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았으며, 그래서 그들은 끊임없이 허공에 놓이는 운명인지도 몰랐다. 이것을 즈제인들은 몰랐다. 전쟁이 그들의 손아귀에서 벗어날수록 그들은 더욱 집요하게 전쟁에 집중했다. 더 열심히 죽였고, 더 열심히 증오했다. 그들에게 끝낸다는 건 시작했다는 것이고, 시작했다는 건 끝내야만 한다는 의미이며, 끝낸다는 건 그만둔다는 말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럴수록 이 거대한 비극은 물가의 진흙이 허물어지듯 어느 순간 원점으로 돌아와 있었다. 284년 동안 그랬다.

 

    *
    노인은 말했다. 그는 개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알려진 대로 전 밀고자 출신입니다. 물론 아주 오래전 일이지요. 하지만 아직까지 전 밀고자라 불리고 있습니다. 저도 알고 있습니다. 모두들 제 앞에선 꼬뚜 어르신, 이제 그건 모두 예전 일입니다, 누가 그따위 썩어빠진 이야기를 신경 쓴답니까, 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제 뒤에선 쓰레기 같은 밀고자, 쥴·즈제의 앞잡이 새끼, 라고 말하죠. 알고 있습니다. 알고 있어요. 쥴·즈제 출신이라고 예외는 아닙니다. 그들 역시 더러운 잡종 놈이라고 말합니다. 저를 완전히 믿으면 안 된다고 말합니다. 밀고자 출신은 뉘·즈제인들보다 더 신뢰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 그것도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당신도 제게 도움을 요청하러 온 게 아닙니까? 잡종 놈이라서, 언제든지 자기 자신을 위해서라면 얼굴을 바꿀 수 있는 아움이라서, 조건만 잘 제시하면 협조를 얻을 수 있을 거라고 낙관한 게 아닙니까? 당신도 이해합니다. 자연스러운 겁니다. 충분히 그럴 수 있습니다. 확실히 제 지지를 얻는다면 동부 유럽의 즈제인들은 모두 군말 없이 서명을 할 겁니다. 과거야 어쨌든 지금 많은 아움들이 저를 따르니까요. 다른 즈제인들이 추운 곳에서 사는 우리를 지독하다고 욕하지만, 우린 그 따뜻한 곳에서만 사는 나약하고, 자기만 아는 놈들과는 다릅니다. 우린 어쨌든 단결력이 좋습니다. 하지만 지난번처럼 이번에도 제 대답은 거절입니다. 할 수 없습니다. 특별 보상도 제겐 의미가 없습니다. 앞으로 몇 번을 찾아오든 마찬가지입니다. 이해할 수 없으신가요? 그럼 제 얘기 좀 들어주십시오.
    저는 헤누르보라는 작은 섬 출신입니다. 오래전, 그러니까 아직 뉘·즈제에서 전쟁이 계속되던 시절의 일입니다. 저 역시 많은 아이들처럼 전쟁통에 일찌감치 부모를 잃었습니다. 부모님의 얼굴조차 본 일이 없습니다. 제가 갓난아기일 때 죽었다고 들었습니다. 저는 할머니가 키워 주셨습니다. 할머니는 엄격한 분이었습니다. 그녀는 언제나 말했습니다. 기쁨이 온다는 건 곧 불행도 온다는 말이다. 큰 기쁨은 큰 고통의 다른 말일 뿐이다. 행복이라고 말하지 마라. 그것은 거짓이고, 아움을 게으르게 만든다. 그것은 죄악이다, 라고. 물론 할머니는 저를 괴롭히려고 그런 말을 한 건 아니었습니다. 아니 오히려 그녀는 저를 끔찍하게 사랑했고, 언제나 제 앞날을 걱정했습니다. 그녀는 잔뜩 화가 난 듯한 얼굴을 한 채, 풀을 쑤어 만든 죽을 제 입에 먼저 넣어 주곤 했습니다. 그녀 자신이 아무리 배가 고파도, 아무리 피곤해도 예외가 없었습니다. 어떤 때는 할머니에겐 제 배를 채우는 게 가장 중요한 일인 것처럼 보일 정도였습니다. 그런 할머니가 제가 열한 살이 ― 물론 지구의 열한 살과 다릅니다만 어쨌든 ― 되던 해에 돌아가시자 전 고향에서 지내는 게 너무 괴로워 무작정 집을 나왔습니다. 그리고 다른 고아들처럼 백 개의 언덕과 골짜기에 둘러싸인 콤느그·스베크라는 도시로 가게 됐습니다. 부모가 없는 아이들은 도시로 가야 살 수 있는 법이니까요.
    그 도시는 아주 작았습니다. 사실상 면적이라고 해봤자 제 고향과 다를 바 없었습니다. 다만 그곳은 도시였고, 도시였기 때문에 쥴·즈제의 군대가 주둔해 있었고, 그래서 다른 섬들보다 제대로 된 생활이 이뤄지는 곳이었습니다. 그곳엔 살기 위해 모인 전쟁고아와 과부와 굶주린 노인들이 바글바글했습니다. 우리는 작은 빵 하나에 아귀다툼을 했습니다. 그곳에서 악착같이 살았던 기억이 납니다. 한 끼를 먹기 위해 무슨 일이든 닥치는 대로 했습니다. 똥통에 머리를 처박고 청소하는 일이든, 구두닦이든 뭐든 했습니다. 그래도 저는 밀고자 노릇은 하지 않았습니다. 그땐 그랬습니다. 할머니 말에 따르면 제 부모도 쥴·즈제의 군대 때문에 죽은 거니까요. 그리고 꼭 그게 아니더라도, 저는 타고난 애국자였습니다. 언제나 저는 뉘·즈제의 국기를 배에 둘둘 말고 그 위에 옷을 걸쳤습니다. 그렇게 하고 거리로 나서면 내장에서부터 분노가 치밀어 올랐고, 무얼 하든 누구에게든 지지 않을 자신이 생기는 듯했습니다. 저는 고아와 부랑자와 건달과 뚜쟁이 사이에서 유명했습니다. 그들은 제 배에 있는 국기에 대해, 제 용기에 대해 자주 얘기하곤 했습니다. 믿을 수 없으시겠죠? 저 역시 믿을 수 없습니다. 하지만 사실입니다.
    그럼에도 도시 생활은 힘들었습니다. 고통이란 내장과 같은 겁니다. 옷을 아무리 바꿔 입어 봤자 고통은 그대로라는 거죠. 왜 그러냐 물으면 알 수 없지만, 원래 그런 겁니다. 시골에서 도시에 온들 달라질 리가 없습니다. 저는 그걸 도시에 온 첫날 알았습니다. 공기로 알았고, 냄새로 알았습니다. 그리고 그 첫날 이후 내리 삼일(3리포호)을 쫄쫄 굶고 나서야 제 직감이 틀림없다고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작은 쥐였습니다. 커다랗고 낡아서 언제라도 고장 날 것 같은, 하지만 어김없이 초점이 돌아가는 그런 시계 안에 사는 작은 쥐였습니다. 시계가 멈추면 시계 주인이 시계를 수리하기 위해 뚜껑을 열지도 모른다는 공포에 떠는 작은 쥐였습니다. 그 쥐는 조심스럽게 시계 속을 돌아다닐 것입니다. 자칫 작은 톱니 하나라도 잘못 건드렸다간 어떻게 되겠습니까? 도시의 삶이 그렇습니다. 작은 실수가 곧 돌이킬 수 없는 불행이 됩니다. 그날도 그랬습니다. 저는 사흘째(3리포호째) 빵 한 조각을 제외하곤 아무것도 먹지 못한 채 누워 있었습니다. 당시 저는 종탑 옆에 있는 한 건물 옥상에서 지냈습니다. 그 옥상은 넓고, 시내에 있으며, 종탑의 그림자가 깊게 드리워져 다른 곳보다 지내기 좋았습니다. 다만 매 시간 울리는 종탑의 종소리에 내장까지 덜덜 떨리는 게 조금 불편하다면 불편했습니다. 하지만 나중에 생각해 보니 이 종소리가 제 몸을 갉아먹은 게 아닌가 싶습니다. 저는 중년 이후 원인을 알 수 없는 안면마비에 시달렸습니다. 초기엔 얼굴 반쪽이 조금 굳는 정도였습니다. 십 분 정도 마사지를 하면 풀리는 그런 사소한 거였습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왼쪽이 전혀 움직이지도 않고, 바늘로 찔러도 아무런 감각이 없는 그런 상태가 된 것입니다. 바로 당신처럼요. 제가 비웃는 것처럼 보인다면 용서하십시오. 저는 그런 아움이 아닙니다. 저는 비웃는 법을 배운 적도 없습니다. 물론 당신도 그럴 거라고 생각합니다. 아움에겐 각자의 사정이라는 게 있는 법이니까요. 지구에서 만난 어떤 의사의 말이, 소음이란 건 꽤 무서운 거여서 살아 있는 것을 살리기도 하고 죽이기도 한다더랍니다.
    어쨌든 그때도 그게 원인이었는지 뭔지, 저는 지독한 몸살에 걸려 누워 있었던 겁니다. 그러다 더 이상 견딜 수 없어 거리로 나선 것이었습니다. 작은 빵 부스러기라도 얻을 수 있을까 싶어, 자주 가던 쓰레기통을 뒤지고, 안면 있는 가게로 구걸을 하러 가보았지만 이미 다른 아이들이 한바탕 휩쓸고 난 참이었습니다. 그렇게 걸어도 아무 수확이 없자 저는 점차 견딜 수 없는 상태가 되어 갔습니다. 어느 순간부터는 분명 인도를 걷고 있는데도 댕댕 종소리가 계속 들려와 제 몸을 헤집어 놓았고, 위인지 아래인지 흐물흐물 뒤섞이는 듯했고, 다리는 제 의지와 무관하게 방직기계처럼 차곡차곡 앞으로 가기만 할 뿐이었습니다. 그러다 저는 그만 정신을 잃고 말았습니다.
    눈을 뜨자, 저는 부드러운 침대에 누워 있었습니다. 그곳은 작고 정갈한 방이었습니다. 침대 옆 1인용 소파에 쥴·즈제의 군복을 입은 한 남자가 앉아 있었습니다. 계급장으로 보아 쥴·즈제의 장교인 것 같았습니다. 그는 아주 잘생긴 남자였습니다. 캐러멜색 피부와 부드러운 눈매, 그리고 보기 좋게 얇은 입술은 그가 좋은 집안에서 자란 아움이라는 걸 증명하는 듯했습니다(대체로 뉘·즈제인의 피부는 흑단처럼 검은데 쥴·즈제인은 그보다 밝았다). 그는 무릎에 팔꿈치를 괴고 편안한 표정으로 책을 읽고 있었는데, 그 모습이 보기 좋아 저는 말없이 그를 지켜보았습니다. 그렇게 와사(남부 뉘·즈제 식 차) 한 잔이 식을 정도의 시간이 지났을까요? 어떤 시선을 느낀 그가 저를 쳐다봤습니다. 눈이 마주치자 그는 웃으며 말했습니다.
    길을 걷다가 너를 발견했단다. 너는 불쌍한 물고기처럼 땅 위에서 헐떡거리며 쓰러져 있었단다. 의사에게 보였더니 피로와 영양실조라고 하더구나. 깨어나길 기다렸단다.
    그 순간 나는 덜컥 겁이 났습니다. 혹시 이 군인이 내 몸에 감긴 국기를 본 건 아닐까? 저는 조심스럽게 옷 속으로 손을 넣어 국기를 만져 보았습니다. 그러면서 물었습니다.
    혹시 제 옷 속을 보셨나요?
    보았지. 하지만 난 신경 쓰지 않는다.
    왜 신경 쓰지 않으세요? 이건 뉘·즈제의 국기예요.
    그래, 국기지. 하지만 이 시대에는 누구나 믿고 싶은 게 있는 법이란다. 그리고 너는 어린애잖느냐.
    어린애도 게릴라가 될 수 있고, 어린애도 첩자 노릇을 할 수 있어요.
    할 수 있지, 할 수 있어. 나도 알고 있어. 사실 너 같은 꼬맹이를 죽이는 건 아무것도 아니지. 그걸 원하는 게냐?
    그 말에 제가 부들부들 떨자, 그는 크게 웃었습니다.
    몇 살이지?
    열세 살이요.
    어리구나. 부모님은?
    없어요.
    형제는?
    혼자예요.
    어떻게 된 게냐?
    애당초 저는 형제도 부모도 없었고 할머니는 늙어서 돌아가셨지만, 괜스레 그땐 심통이 나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쥴·즈제의 군인들이 모두 죽였어요. 군인들이 아니었다면 전 혼자가 아닐 거예요.
    그러자 그는 벌떡 일어났습니다. 그러고 굳은 표정으로 제게 다가왔습니다. 다가와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미안하구나.
    믿어지십니까? 113년 전입니다. 전쟁이 끝나기 전입니다. 그러니까 매일같이 두 행성이 서로를 죽이던 시절 말입니다. 그때 그 쥴·즈제의 장교는 제게 미안하다고 사과한 겁니다. 저처럼 어린아이에게 말입니다. 그 잘생긴 얼굴로, 그 선량한 목소리로 제게 사과를 한 겁니다. 저는 그 순간 단박에 그가 좋아졌습니다. 하지만 그 역시 그런 것 같았습니다. 그는 그날 제게 맛있는 레알라죠(즈제 식 닭) 요리를 대접했습니다. 우리는 검고 부드러운 빵을 조금씩 떼어먹으며 대화를 나눴습니다. 제 짐작대로 그는 부유하고 따뜻한 가정에서 자란 남자였습니다. 그는 전쟁터에 부임한 지 얼마 되지 않았고, 아직 전투지에 배속된 적도 없다고 했습니다. 또한 그는 고향에 아들을 두고 왔다고 했습니다. 그 아이는 너보다 어리단다. 하지만 너처럼 반짝거리는 눈동자를 가지고 있단다.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리고 또 그는 이렇게 말하기도 했습니다. 종종 놀러 오너라, 여길 네 집처럼 생각하거라. 집처럼 생각하라는 건 진짜 집처럼 생각하라는 말이 아님을 알았지만, 저는 개의치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그 소박한 방이, 그 방에 살고 있는 아움이, 그 공기가, 그 아늑함이 수시로 생각났기 때문입니다. 그 방의 창으로 거리를 바라보고 있으면, 저는 종종 즈제의 일조량이 지나치게 많고 거칠다는 것을 깨닫고 깜짝깜짝 놀라곤 했습니다. 저는 그러면 무심코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 빌어먹을 한복판에 내가 사는 옥상이 있어요.
    그날 이후, 저는 그의 집에 자주 놀러 갔습니다. 제가 놀러 갈 때마다 그는 저를 어린 친구라고 불렀습니다. 그래요. 우린 좋은 친구였습니다. 그래도 전 제 본분을 잊지 않았습니다. 그 말은 언제나 그 낡은 국기를 제 배에 두르는 걸 잊지 않았다는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그때까지 전 밀고자가 아니었습니다.”

 

    *
    전쟁은 뉘·즈제의 패배로 끝났다. 전쟁이 끝나자 쥴·즈제의 일방적인 학살이 시작됐다. 학살의 명분은 안정. 종전 후에도 뉘·즈제인들이 시도 때도 없이 반란과 테러를 일으켰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284년 동안 전쟁을 했다. 뉘·즈제인 중 누가 쥴·즈제인에게 미움을 갖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들에게 그건 생리적 반응과 같은 거였다. 뉘·즈제의 땅에서 태어난 자들은 뉘·즈제의 피를 뒤집어쓰고 태어날 수밖에 없으니까 말이다. 심지어 쥴·즈제인과 사이가 좋은 뉘·즈제인일지라도 유전자 한구석에 몇 가지 기억들이 있었다. 그 기억은 그들의 아버지의 기억, 그들의 할아버지의 기억, 그들의 아들의 기억이었고, 그들의 친구의 기억, 그들의 이웃의 기억이었다. 그건 죽음의 기억이었다. 그러므로 그들이 전쟁이 끝나도 지속되는 기억들에서 벗어나기 위해 몸부림치는 건 당연한 것이었다.
    쥴·즈제인이라고 다를 건 없었다. 그들 역시 284년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284년 동안 교전지였던 뉘·즈제만큼은 아니지만 쥴·즈제 행성 역시 피폐해져 갔다. 애초에 쥴·즈제는 뉘·즈제보다 척박한 곳이었다. 쥴·즈제의 평균 온도는 뉘·즈제보다 낮았고, 일 년 내내 쉴 새 없이 태풍과 지진이 일어났고, 하루에도 몇 번씩 비가 왔다가 개는 곳이었다. 그곳 역시 다른 즈제 행성처럼 밤이 없었지만, 좀처럼 맑은 날을 볼 수 없는 곳이기도 했다. 그래서 그런지 쥴·즈제인의 표정은 창백했고, 미간에는 늘 주름이 잡혀 있었다. 뉘·즈제인은 그렇지 않았다. 뉘·즈제인은 의지에서 삶이 비롯된다고 믿는 자들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굳은 의지를 가장 큰 미덕으로 여겼다. 의지를 믿지 않는 쥴·즈제인과 대조적이었다. 뉘·즈제인이 “그렇고말고!”라고 말하면, 쥴·즈제인은 “그럼 그렇지.”라고 말했다. 또 쥴·즈제인은 자기 자신에 대해 이렇게 말하곤 했다.
    “우린 우울해. 그건 온 우주가 다 알아. 하지만 빌어먹을, 우리가 우울한 것 때문에 우울하다는 생각은 아무도 못 하는 거 같아.”
    그들은 자신들이 뉘·즈제에 비해 키가 작은 것조차 과도한 고민과 생각에 짓눌려서라고 말했다. 사실은 뉘·즈제인에 비해 9% 정도 무거운 중력 때문이었지만, 그런 건 아무 상관없었다. 쥴·즈제인은 자조적인 농담을 즐겨 했기 때문이었다. 우주의 어느 누구도 쥴·즈제인이 나직한 어조로 하는 농담이 재미있다고 생각하지 않았고 때로는 기분이 나쁘기조차 했는데도(뉘·즈제인도 쥴·즈제의 농담을 싫어했다), 이 우울한 외계인들은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쥴·즈제인은 늘 비관적이었기 때문에 매사에 조심스러웠다. 즈제인 특유의 끈기는 이런 데서 진화한 것일지도 몰랐다. 어쨌든 오랜 전쟁이 이 불행만 곱씹는 민족에게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뉘·즈제만큼은 아니었지만 쥴·즈제의 공동체들도 전쟁에 많은 것들을 빼앗겼다. 한 집 걸러 한 집에 전사자가 있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놀랄 만큼 첨단이었던 도시들은 전쟁 막바지 부족한 자원을 충당하기 위해 곳곳이 뜯겨지는 모욕을 당해야 했다. 그 황량한 거리를 절뚝절뚝 걸으며 쥴·즈제 아움들은 또다시 이런 말을 했다.
    “오래전 우리 어머니는 뉘·즈제로 떠났고, 그제는 내 다리가, 어젠 내 아들이 뉘·즈제로 떠났지. 그리고 이제 하나밖에 남지 않은 내 신발을 뉘·즈제로 보냈어. 모든 게 가는구나. 한쪽만 남은 내 다리만 빼고 모든 게 뉘·즈제로 떠났어.”
    쥴·즈제의 아움들은 가난과 외로움과 죽음에 대한 공포와 매일 싸워야 했다. 하지만 그들은 고통에 비례하는 명분을, 전쟁을 지속할 명분을 찾을 수 없었다(심지어 냉소적인 그들에겐 뉘·즈제에 대한 증오조차 얄팍했다). 그렇게 텅 빈 마음으로 그들은 뉘·즈제인들을 죽인 거였다. 마치 밭에서 잡초를 뽑고, 돌을 골라내고, 가을이면 수확을 하듯이. 그래서 그들은 허무와도 싸워야 했다. 그런 의미에서 침략당한 뉘·즈제보다 쥴·즈제에서 먼저 난민이 발생한 건 이해할 만한 일이었다.

 

    *
    므스느그흠은 뉘·즈제에서 나고 자랐다. 그는 선천적으로 입이 삐뚤어진 남자였다. 그리고 조용하지만 집요하고 우울한 남자였다. 그건 그의 아버지와 어머니에게 물려받은 거였다. 그의 아버지는 쥴·즈제 출신이었다. 쥴·즈제 출신답게 조용하고 우울한 남자였다. 또한 쥴·즈제 출신답게 눈이 아름다운 남자였다. 그리고 그도 입이 삐뚤어진 남자였다. 아버지는 쥴·즈제의 군인으로 뉘·즈제에 왔다가 그의 어머니를 만났다. 그의 어머니는 뉘·즈제인이었다. 뉘·즈제인답게 집요하고 격정적이었다. 둘은 결혼을 했고, 부부는 종전 후에도 뉘·즈제에 정착했다.
    그의 아버지는 시체를 치우는 자였다. 그는 52번과 62번 골짜기 사이에서 시체를 치우는 열두 명 중 하나였다. 그는 집에 있을 때면 시시때때로 그와 그의 누나와 그의 어머니를 두들겨 팼다. 그의 어머니는 그의 아버지가 없을 때면 그와 그의 누나를 두들겨 팼다. 누나는 므스느그흠이 맞을라치면 어디선가 귀신처럼 달려와 그를 감쌌다. 누나는 작고 마른 여자였다. 그렇지만 단단한 뼈대를 지닌 여자였다. 므스느그흠을 감싼 누나의 몸은 부들부들 떨렸다. 아버지와 어머니의 발길질을 견뎌내느라 떨리는 거였다. 누나의 품속에서 므스느그흠도 오들오들 떨고 있었다. 그는 무서워서 떨었다. 그의 떨리는 볼과 누나의 뺨이 맞붙어 있었다. 그 뺨은 눈물로 젖어 차가웠다. 누나는 이를 악물고 말했다. 괜찮아, 므스느그흠, 괜찮아.
    누나는 지독하게 못생긴 여자였다. 못생기고 몸에서 이상한 악취가 나는 여자였다. 므스느그흠은 누나의 뺨의 촉감만큼, 아니 그보다 더 선명하게 누나의 냄새를 기억하고 있었다. 그건 이상한 비린내, 그건 어떤 외로움 같은 거였다. 그 냄새는 늘 이렇게 말하는 듯했다.
    “나는 어디로 가지?"
    그녀는 항상 누구보다 일찍 일어나서 누구보다 많은 것들을 해냈다. 그녀는 매일 시체를 치우는 아버지에게 빵을 가져다주었다. 그녀는 매일 어머니를 도와 집 안을 수리했다. 또 그녀는 어릴 적부터 마을에 있는 모든 허드렛일을 받아왔다. 몇 안 되는 돈에도 최선을 다했다. 아니 보잘 것 없는 칭찬에도 최선을 다했다. 그녀는 마을 어귀를 매일 청소했는데, 그곳은 인공 섬의 배기 장치와 가까웠다. 항상 그을음이 날리는 곳이었다. 그녀가 청소를 하고 있으면 어른들이 지나가다 커다란 눈을 깜빡거리는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곤 했다. 겨우 그거였다. 별다른 대가가 있을 턱이 없었다. 므스느그흠은 그까짓 칭찬을 받기 위해 하루도 빼놓지 않고 청소를 하는 멍청한 누나가 혐오스러웠다. 그 누나가 어느 날 사라졌다. 쪽지를 남기고 사라졌다. 그에게 남기는 쪽지였다. 짧은 쪽지였다.
    “미안해. 이 행성을 떠날게.”
    라고 적혀 있었다. 누나는 왜 그에게만 쪽지를 남겼을까? 누나는 왜 미안하다고 했을까? 그녀는 종종 이런 말을 하곤 했다.
    “나는 이대로 행복해. 그리고 내일은 더 행복해질 거야.”
    하지만 그 말을 하면서도 그녀의 냄새는 말하고 있었다.
    “이제 난 어디로 가지?”
    므스느그흠은 그렇게 느꼈다. 어쩌면 아버지도, 어머니도, 다른 모든 아움들도 그렇게 느꼈다. 그렇게 느꼈지만 그렇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녀가 워낙 필사적으로 살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 냄새가 하는 말이 맞았던 걸까? 그녀도 견딜 수 없었던 걸까? 그녀는 거짓말을 했던 걸까? 그녀는 혹시 모두가 자는 시간에 일어나, 그 커다란 눈으로 어린 동생을 물끄러미 내려다보며 어떤 끔찍한 생각을 했었을까?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어쨌든 누나가 없었으므로, 므스느그흠이 아버지에게 빵을 갖다 주었고, 그의 아버지는 므스느그흠과 그의 어머니를 두들겨 팼고, 그의 어머니는 므스느그흠을 두들겨 팼다.
    므스느그흠의 어머니는 아버지보다 일찍 죽었다. 그녀는 정비공이었다. 뉘·즈제의 인공 섬들은 대부분 굉장히 노후했고, 그 내부의 동력 장치들은 수백 명에서 수천 명의 정비공들이 매일 조이고 닦아야만 했다. 그의 어머니는 그 정비 작업을 하던 도중, 과열된 장치 내부에 갇혀 있다가 구출된 것이었다. 그녀의 온몸은 고열에 뼈와 힘줄과 근육이 마구 녹아 눌어붙은 채 튀어나와 있었다. 그녀는 그날 이후 매일 침대에만 누워 있었는데, 그건 마치 짓이겨진 내장 덩어리가 침대 위에 얹혀 있는 것만 같았다. 그렇게 그녀는 불에 타 입술이 사라져 버린 입으로, 그래서 바람 새는 목소리로 매일 소리를 질렀다.
    “뜨겁다, 뜨거워.”
    그 소리는 집 안에 들어서기 전부터, 그러니까 골목길 어귀에서부터 들리는 듯했다. 므스느그흠도 그렇게 느꼈고, 그의 아버지도 그렇게 느꼈고, 그들의 이웃들도 그렇게 느꼈다. 아버지는 어머니에게 손을 대지 않았다. 아니 손을 댈 수 없었다. 대신 그는 신경질적으로 그녀에게 욕을 했고, 닥치라고 소리를 질렀다. 그 말에 그의 어머니가 울었다. 그러면 아버지는 므스느그흠을 두들겨 패고 집을 나갔다. 그 모습을 지켜보면서 어머니는 죽어갔다. 사실 보고 있다고 말하기도 어려웠다. 그녀의 안구는 고열에 녹아버렸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침대에 누워, 손가락이 한 개밖에 남지 않은 손을 간신히 들어 므스느그흠의 볼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아가야, 이리로 오너라. 더 가까이. 뜨거워서 견딜 수 없구나. 혹시 내 손이 뜨겁니? 그러니? 아니라니 다행이야. 넌 두 눈이 모두 무사해서 다행이야. 네 누나는 네 아버지처럼 눈이 아름다웠지. 난 그 애가 늘 안쓰러웠단다.”
    그리고 또 이런 말을 하곤 했다.
    “이 엄마의 얼굴도 한때는 열정적으로 빛났지. 모두들 그렇게 말하곤 했단다. 하지만 이젠 찌꺼기가 됐어. 엄마는 찌꺼기야. 그러니? 네 눈에도 그렇게 보이니?”
    므스느그흠이 아니라고 하자, 그녀는 말했다.
    “아니라고? 아니라고? 넌 거짓말을 하고 있구나. 하지만 마음이 아픈 거짓말이야. 넌 착한 애니까. 네 누나도 착한 애였지(그 아이를 생각하는 게 괴롭구나). 엄마도 착했단다. 네 아버지도 착했어. 너를 다시 볼 수 있다면 좋을 텐데. 너는 어릴 때 내게서 떨어지려고 하지 않았단다. 기억나니? 이 엄마가 화장실에 가면 화장실 앞에 쭈그리고 앉아서 나를 기다렸지. 기억나니? 잘 때도 너를 업고 엎드려서 자야 했어. 매일매일. 기억나니? 너는 아직도 네 엄마를 사랑하니? 그러니?”
    그녀가 빠른 속도로 말하자, 그 특유의 바람 새는 소리 때문에 므스느그흠은 그게 무슨 말인지 단 한 마디도 알아먹을 수가 없었다. 알아먹을 수 없었지만, 그는 무조건 그렇다고 대답했다. 그는 어머니를 사랑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몇 번이고 대답했다. 그러자 그녀는 만족한 듯 고개를 돌리고, 다시 평소처럼 뜨겁다고 말했다. 뜨겁다, 뜨거워. 그 말은 집 안을 가득 채웠다. 그리고 얼마 뒤 그녀는 죽었다.
    아버지는 어디선가 날아온 총알에 맞아 죽었다. 그는 오래전 쥴·즈제의 병사로 복무하며 직접 뉘·즈제인을 죽였지만 종전 후에는 다른 자들이 죽인 시체를 수거했다. 아버지의 몸에서는 시체 냄새가 났다. 아버지는 종종 슬퍼 보였다. 므스느그흠을 두들겨 팰 때 특히 그랬다. 아버지는 깊은 눈매로, 그 아름다운 눈으로 므스느그흠의 삐뚤어진 입을 쳐다보며 두들겨 팼다. 두들겨 패면서 오래전 자신이 콤느그·스베크의 12차 소탕 작전에서 얼마나 많은 레지스탕스들을 죽였는지 말했다. 자신은 그릇이 더 큰 남자라고 말했다. 큰 꿈이 있었다고 말했다. 이대로 머물 남자가 아니라고 말했다. 므스느그흠과 꼭 닮은 삐뚤어진 입으로 말했다. 그 아버지가 67번 골짜기에서 쥴·즈제 병사들이 처형한 삼백삼십팔 구의 시체를 잘라서 비행 수레에 담아 넣는 와중에 누군가의 총에 맞아 죽었다. 그는 삼백삼십구 번째 시체가 된 것이었다.
    그때 므스느그흠은 아버지에게 빵을 건네기 위해 가고 있었다. 그날은 즈제인들이 28시간 동안 잠들었다 깨어난 날, 즉 레나스키가 끝난 다음날이었다. 그날은 이른 시간부터 여러 차례 지진이 일어났다. 지진 때문에 므스느그흠은 잠에서 깼다. 그는 엎드려서 누나의 침대를 훔쳐봤다. 그날은 3년 전 그의 누나가 떠난 날이었다. 3년째 이날만 되면 므스느그흠은 견딜 수 없었다. 그에겐 이 지진이 그의 괴로움을 상징하는 것만 같았다. 근데 그 순간 그는 아버지 역시 누나의 침대를 훔쳐보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버지도 슬픈 걸까? 그런 걸까? 아버지도 내가 깨어 있다는 것을, 누나의 침대를 보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걸까? 그래서 그런 걸까? 그날 그의 아버지는 그를 두들겨 패지 않고 일터로 나갔다.
    므스느그흠은 빵을 들고 가고 있었다. 3년 전까지 그의 누나가 들고 가던 검고 푸석푸석한 빵이었다. 이 길도 누나가 매일 걷던 길이었다. 그리고 므스느그흠은 5번 언덕에 접어들 때쯤, 아버지의 동료인 죠르지흠과 마주쳤다. 죠르지흠은 이 불쌍한 아이를 붙잡고 조심스럽게 사고를 알렸다. 이제 이 아이는 이 커다란 푸른 행성에서 혼자 살아가야 할 것이다. 뉘·즈제와 쥴·즈제에 있는 많은 아움들처럼. 그런 종류의 불행은 적어도 두 개의 즈제 행성에선 자연스러운 일이었지만, 자연스러운 만큼 남들에게 보살핌을 받을 수 없는 일이기도 했다. 과연 이 아이는 이 일을 받아들일 수 있을까? 죠르지흠은 그런 생각으로 므스느그흠의 어깨를 꽉 붙잡고 천천히 입을 열었던 것이다.
    므스느그흠은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죠르지흠의 손아귀에서 튕기듯이 뛰어나갔다. 그리고 무시무시한 표정으로 아버지의 시체가 있는 67번 골짜기까지 뛰어갔다. 왜 하필 오늘인가? 왜? 므스느그흠은 뛰어가면서 그런 생각을 했다. 골짜기에 들어서자 사방에 시체가 널려 있었다. 벌거벗은 시체들이 여기저기 쓰러져 있었다. 죽음의 냄새가 고여 있었다. 그 속을 뚫고 뛰어갔다. 왜? 왜 오늘일까? 꿈같았다. 어쩌면 누나가 3년 전 떠난 것도, 잠결에 지진이 일어난 것도 모두 일종의 예언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만큼 비현실적이었다. 그건 바로 오늘이어서 그랬다. 누나가 떠난 날, 바로 그날은 이젠 아버지가 죽은 날이 되었다. 이건 어떤 은유일까? 그런 걸까? 어쨌든 그가 67번 골짜기에서 본 것은 머리가 박살난 채 누워 있는 아버지였고, 비명을 지르던 한쪽 눈이 없는 여자였고, 그리고 이제 혼자가 된 자기 자신이었다. 아버지를 쏜 자는 끝끝내 발견되지 않았다.
    다시 몇 번의 리포호와 몇 번의 레나스키가 찾아왔다. 그리고 어느 날 세상에 낮은 숨소리만 남자 므스느그흠은 조용히 깨어났다. 그는 침대 앞으로 걸어갔다. 침대 위에는 압의 강렬한 햇빛에 비친 커다랗고 낡은 창의 그림자가 유령처럼 드리워져 있었다. 이제 그곳엔 아무도 없었다. 앞으로도 없을 거였다. 그 아무도, 아니 아무것도 없는 침대에 므스느그흠은 몇 방울의 눈물을 떨어뜨렸다.
    예민하고 깡마른, 그리고 입매가 삐뚤어진, 그리고 우울한 어린아이가 혼자 살아가기에 종전 후의 세상은 처참했다. 세계가 처참할수록 역설적인 생존의 에너지가 온 행성을 가득 채웠지만, 그런 유의 역동성이란 많은 경우 폭력적인 거였다. 특히 두들겨 맞는 것밖에 배운 적 없는 소년에게 그랬다. 그가 할 줄 아는 거라곤 경멸과 인내심밖에 없었다. 누나도, 아버지도, 어머니도 사라진 세상에서 그의 경멸은 분노가 되어 갔다. 그래서 그는 쥴·즈제의 군인이 됐다.
    멀리 떠나고 싶었다. 어쩌면 누나는 자기 대신 도망친 것일지도 몰랐다. 그는 그런 생각을 했다. 또 그는 생각했다. 썩은 냄새를 풍기며 힘없이 누워 있던 무시무시한 어머니를, 삐뚤어진 입매를 가진 아버지를. 그리고 무엇보다 누나. 자신의 볼에 축축하게 붙은 못생긴 얼굴. 안달복달 최선을 다하던 누나. 미련한 누나. 멍청한 누나. 떠날 줄 몰랐지만, 지금은 행복하게 살고 있을까? 버둥거리는 뉘·즈제인들의 목을 군홧발로 밟고 눈알에 총알을 박아 넣으며 그런 생각을 하곤 했다.

 

    *
    6.7파섹은 138만 2천au이고, 206조 6780억km이다. 만약 즈제인들의 우주선으로 이 거리를 달려온다면, 4700년에서 7900년 정도 걸릴 것이었다. 하지만 므스느그흠은 태양계 외곽에 이르기까지 3년이 걸렸다. 난민들은 대략 7년이 소요됐다. 어떻게 된 것일까?
    오래전 즈제인들은 항성과 항성 간에는 에너지가 흐르는 길이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어쩌면 길이라기보다 그건 터널이라고 불러야 할지도 몰랐다. 그 터널엔 양이온 상태의 에너지들이 흐르고 있었다. 마치 튜브를 통과하는 물처럼 그랬다. 그 에너지의 정체는 밝혀낼 수 없었다. 튜브 밖으로 추출할 수도 없었고, 튜브 외부의 우주에선 발견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다만 그 에너지가 고속으로 흐를 때 푸른빛을 발했기 때문에 ‘누부이’라고 불렀다.
    이 누부이 튜브를 이용한 항성 간 이동을 ‘뛰어넘기’라고 했다. 뛰어넘기를 하면 다른 항성계 외곽에 도달하는 데 서너 달밖에 걸리지 않았다. 왜 서너 달인지 아무도 알 수 없었다. 다만 몇 가지는 확실했다.
    하나는 양이온화 된 누부이를 견디고 앞으로 나아가는 성간 우주선의 설계는 행성 간 우주선과 달라야 한다는 것. 그래서 성간 우주선은 양이온화 된 모르토를 전방에서 대량으로 방출하는 구조로 제작됐다. 전방으로 쏟아져 나온 모르토 양이온은 누부이 양이온과 충돌하며 가벼운 반발을 일으켰다. 그 반발력은 유선형으로 제작된 우주선의 후미로 자연스럽게 흘렀다. 흐름은 그대로 뾰족한 우주선의 후미에서 증폭됐다. 그리고 마치 손가락으로 튜브를 눌러 알맹이를 빼내듯 우주선은 앞으로 나아갔다. 이 과정의 단점은 미세한 방사능이 생성된다는 점이었다. 그래서 성간 여행이 잦은 즈제인들 중에서 피폭으로 사망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누부이 튜브에 대한 또 다른 사실 하나는, 모든 튜브가 분기점이 없이 또 다른 항성과 연결되어 있다는 점이었다. 하나의 항성은 두 개의 항성과 연결되어 있는 셈이었다. 그래서 즈제인들은 압과 누와 듑을 통해 총 여섯 개의 항성계로 뛰어넘을 수 있었다. 그 여섯 개의 항성계에서 또 다른 항성계로 통하는 터널을 발견하고, 그다음 항성계에서 또 다른 터널을 발견하는 식이었다. 태양계는 다소 늦게 발견됐다. 태양계로 오기 위해서는 듑과 연결된 듑·드(듑의 아들이라는 의미였다) 항성계, 듑·드와 연결된 그루스다 항성계, 그루스다와 연결된 태양계, 라는 세 단계를 거쳐야 했기 때문이다. 어쩌면 지구는 즈제인의 입장에서는 비행기를 두 번 갈아타고, 다시 트럭으로 20시간을 달려야 도착할 수 있는 아마존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었다.
    튜브는 3차원에서 보이지 않았다. 그 내부로 진입하기 위해서는 모르토 중성자탄을 이용해 엄청난 규모의 폭발을 일으켜야 했다. 그러면 폭발에 의해 공간이 찢어져서 튜브로 통하는 구멍이 뚫렸다. 외부로 나올 때도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성간 우주선에는 터널 이용에 필요한 중성자 미사일을 탑재하고 있었다. 므스느그흠의 우주선은 총 12발의 미사일을 싣고 있었다. 그 미사일을 정교하게 계산된 각도로 튜브의 입출구를 향해 발사했다. 그래서 언제나 입구와 출구 생성은 항성계 외곽에서 이뤄졌다. 튜브의 출구를 생성하는 위치는 대략 3500만km의 오차가 있었고, 그 오차 범위 안에 행성이 있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 말은 중성자 폭발에 행성이 말려들 수 있다는 말이었다. 물론 그 폭발에는 우주선도 말려들 수 있었다. 그래서 매뉴얼에는 출구로 나가기 300시간 정도 앞서 미사일을 발사하라고 기재되어 있었다.
    하지만 므스느그흠은 그 타이밍을 맞추지 못했다. 튜브 내부는 이상한 곳이었다. 그곳은 순수하고 정제된 에너지의 세계였다. 그곳의 흐름에 들어선 우주선은 마치 얼음 위를 미끄러지듯 어떤 떨림도 없이 앞으로 나아갔다. 튜브 멀리서는 항성이 움직이는 소리가 마치 들숨과 날숨처럼 정기적인 리듬으로 들려왔다. 먹먹하고 아련하게 들려왔다. 그건 어떤 기억들을 불러왔다. 그곳에서 많은 여행자들은 나른한 기분에 사로잡힌 채 잠이 들었다. 자도 자도 잠이 왔고, 잠에서 깨어나면 다시 다정하고 슬픈 기억들을 곱씹었다. 사실 잠이 들어도 무방한 곳이었다. 출구를 향해 중성자탄을 발사하는 것만 잊지 않는다면, 그곳은 거칠고 불확실성이 가득한 우주에서 유일하게 친절한 곳이었다.
    므스느그흠도 그랬다. 그는 튜브에서 오랫동안 잊고 있던 기억들을 떠올렸다. 그를 괴롭게 했던 기억들이었다. 평생에 걸쳐 그를 고통스럽게 했던 것도 있었고, 한때는 괴로웠지만 이제는 무감해진 것도 있었다. 하지만 튜브 속에 있으니 마음이 부드러워져, 오히려 그 기억들은 그 어느 때보다 그의 마음을 따뜻하게 했다. 고통스러운 기억일수록 그랬다. 이번 운항에서 모두 세 번의 뛰어넘기를 했다. 두 번째 뛰어넘기까지는 그도 긴장이 풀어지지 않도록 노력했다. 하지만 세 번째는 달랐다. 세 번 연속 뛰어넘기는 처음이었다. 세 번째는 그도 저항할 수 없었다. 성간 여행에 중독되는 자들이 많다고 들었다. 왜 그런지 알 것 같았다. 여기서 나가면 다시 끔찍한 우주다. 그것도 이번 여행에서 가장 힘들다는 오르트 구름대다. 이 푸른빛은 따뜻하다. 따뜻하다고 생각하고 싶지 않은데, 따뜻하다. 왜 그럴까? 방사능 때문일까? 이온의 움직임 때문일까? 이건 옳은 걸까? 옳은 걸까? 그러자 므스느그흠의 깊은 곳에서 어떤 대답을 준비하는 듯 보였다. 므스느그흠은 간절한 마음으로 그 대답을 기다렸다. 기다렸지만 종내 대답은 나오지 않았다. 그렇게 기다리다 조금 늦게 중성자탄을 발사한 것이었다. 예정보다 30시간이나 늦었다. 아마 튜브를 빠져나갈 때 입구 주변에 폭발 에너지가 다소 남아 있을지도 모르겠다고, 그는 생각했다.
    ‘누부이’라는 말은 즈제어로 푸른색을 의미했다. 뉘·즈제의 ‘뉘’도 이 단어에서 파생된 것이었다. 또 이 말은 희망과 거대함을 의미하기도 했고, 또 헛됨과 일시적 망각을 의미하기도 했다. 그리고 허무를 의미하기도 했다. 투후#12 항성계에 사는 즈제인들은 뉘라는 말을 고통이라는 의미로도 쓴다지? 그들도 난민 출신이 많으니까. 튜브를 빠져나올 때 중성자탄의 잔존 에너지에 흔들리는 기체를 부여잡으며 므스느그흠은 이런 생각도 했다.

 

    *
    므스느그흠이 누부이 튜브에서 나왔을 때, 출구 일대에는 먼지밖에 없었다. 폭발이 일어난 지 270시간밖에 지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폭발 반경 외부를 보면 크고 작은 암석들이 우주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 오르트 구름대는 수조 개의 암석과 얼음 덩어리들로 이뤄진 곳이었다. 암석이라고 해도 크기는 주먹만 한 것부터 직경 10km가 넘는 것까지 다양했다. 혹은 드물게 지름이 1000km 이내인 왜소 행성들도 있었다. 므스느그흠은 그곳에서 일 년을 보냈다. 난민들의 우주선으로는 3년에서 4년이 걸리는 지역이라고 했다.
    사실 이곳이야말로 지난한 지구로의 여정에서도 가장 험난한 곳이었다. 이곳의 암석들은 간격도 좁고 태양계 외부 저중력권이라 궤도도 제멋대로였다. 반면 이곳을 달려야 하는 성간 우주선은 행성계 우주선처럼 기민한 움직임도 불가능했고, 속도도 느렸다. 둘의 설계 목적이 달랐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오르트 구름대에선 아주 천천히 운항해야 했다. 어떤 곳보다 신경을 곤두세워야 했다. 특히 오르트 구름대의 끄트머리에 이르러서는 암석의 간격이 지나치게 빽빽했기 때문에 숨 쉬는 것도, 눈 한 번 깜빡이는 것도 두려울 정도였다. 그래서 많은 운항 매뉴얼에서는 오르트 구름대에선 두 시간 이상의 수면을 취하지 않을 것을 권하고 있었다. 특히 그 지역을 빠져나오기 전 250시간 정도는 완전 무수면을 유지해야만 했다.
    그렇게 오르트 구름대를 빠져나온 즈제인들은 그 지긋지긋한 암석 지대가 끝나자마자 나타나는 101-툼-57의 궤도를 돌았다. 이 가속력을 이용해야 수성의 공전 궤도까지 7달(난민들은 일 년 이상 걸렸다), 그 공전 궤도에서 감속해서 지구로 접어드는 데 4달 정도(난민들은 10개월 안팎이었다) 걸렸다. 만약 이곳에서 가속을 얻지 못한다면 느릿느릿한 성간 우주선으로 지구까지 도달하는 데 또다시 많은 시간을 소요하게 될 것이었다. 우주에서 시간의 문제란 곧 연료의 문제였고, 연료의 문제는 곧 질량의 문제였고, 질량의 문제란 또다시 시간의 문제였다. 그리고 우주에서 시간의 문제가 거듭된다는 건 생존의 문제이기도 했다.
    행성 추진 항법은 오히려 누부이 튜브를 통과하는 것보다 변수가 많았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누부이 튜브는 에너지가 정확하게 날아다니는 세계, 어떻게 보면 수학적 세계, 어떻게 보면 관념적 세계였다. 하지만 튜브 밖은 그렇지 않았다. 우주는 고요한 곳이 아니었다. 행성과 항성, 심지어 은하도 항상 시속 수백 킬로미터에서 수백만 킬로미터의 속도로 공전을 했고 자전을 했으며, 폭발과 충돌이 곳곳에서 쉴 새 없이 일어났다. 그 소란스러운 우주를 날아다니는 것이었다. 대부분의 추진 행성의 궤도를 다섯 바퀴 이상 돌 때면 우주선의 상태는 굉장히 예민해졌다. 시속 40만km라도 일반적인 우주 공간을 운항하는 것과 행성 궤도를 회전하는 것은 차원이 달랐다. 행성을 도는 메커니즘이 훨씬 복잡했다. 특히 뵐 물질 행성처럼 개성이 강한 행성이 그랬다. 어떤 변수가 발생할지 알 수 없었다. 실제로 많은 우주 사고가 궤도에서 일어났다. 많은 아움들이 궤도 위에서 죽었다. 그래서 므스느그흠은 튜브에서 나오는 것이 두려웠다.

 

    *
    삐쩍 마른 남자는 말했다.
    “그러자 바디스두다의 목소리는 사라졌소. 그의 목소리는 사라졌지만 나는 계속 중얼거렸소. 죽은 자는 먹는다, 먹은 자는 산다. 이렇게 중얼거렸소. 입으로도 그랬고, 머릿속으로도 그랬소. 마치 시계의 초침소리처럼 나는 그 말을 흥얼거렸소. 계속 그랬소. 그 이후에도, 다 먹어치운 이후에도, 나는 언제나, 언제나 이 말을 중얼거렸소. 지금까지 그랬소.
    그러지 않고는 견딜 수 없었소.”

 

    *
    우주는 차가운 곳이었다. 우주에서 많은 난민들이 싸늘하게 식어 갔다. 가난한 그들이 구할 수 있는 우주선은 한정적이었다. 전쟁 전에 제작된 폐기 직전의 우주선이었다. 그 시대에는 지구로의 항해가 일반적이지 않았다. 고작해야 간신히 압 항성계를 벗어나는 것에 만족하던 시절이었다. 아니 오래된 우주선들은 누부이 튜브에 들어서는 것조차 힘겨워했다. 쏟아지는 누부이 이온들 틈을 헤치고 다니면서 그들의 유물 같은 우주선은 쉴 새 없이 덜덜 떨렸다. 때때로 어떤 우주선들은 튜브 내부에서 연료가 고갈되기도 했다. 그러면 그들은 그대로 항성에 처박히는 것이었다. 그래서 난민들은 모르토를 아끼기 위해 우주선의 생명 유지 장치들을 저활성화 해야만 했다. 우주는 차가운 곳이었고, 또 추운 곳이었다. 우주 공간의 평균 온도는 3켈빈(영하 270도) 정도였다. 튜브 내부는 대략 20켈빈쯤 됐다. 그 공간을 대략 7년 동안 생명유지 장치를 저활성화 시킨 채 항해하는 건 고통스러운 일이었다. 고통스러운 일일 뿐만 아니라 죽음에 이르는 일이기도 했다. 강인하고 인내심이 강한 즈제인일지라도 그랬다. 아니 애초에 강인하고 인내심이 강한 즈제인이기에 우주선의 연료를 아끼기 위해 우주의 추위를 받아들인 건지도 몰랐다(그 추위를 싫어하는 즈제인이!). 적재 중량을 초과하지 않기 위해 아주 적은 양의 식량만 실은 채로.
    그들은 추위와 굶주림 속에서 죽어갔다. 아들과 어머니가 부둥켜안고, 혹은 홀로 무릎을 부여잡은 채, 고통스러운 표정으로 창밖을 바라보면서. 그들이 죽으면 그 낡은 우주선들은 거대한 관이 되어 수억 년을 날아다닐 것이었다. 이건 두려운 일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또 차후의 문제이기도 했다. 당장의 고통에서 도망가야 했다. 284년에서 벗어나야만 했다. 어쩌면 그들에게 우주의 미아 따위를 걱정하는 건 사치이기도 했다.
    즈제 난민들에게 지구는 희망이었다. 오래전 쥴·즈제에만 아움들이 살던 시절, 그들은 뉘·즈제를 보며, 그러니까 하늘에 떠 있던 이 거대하고 고요한 물방울을 보며 이런 생각을 했다고 했다.
    저 푸른 별에 갈 수 있다면, 이 고통에서 벗어날 텐데!
    그런 꿈을 품고 뉘·즈제에 왔던 것이었다. 그들은 쥴·즈제의 길고 좁으며 메마른 땅 위에서 벌어지는 생존 경쟁에서 도태된 자들이었다. 어쩌면 선천적으로 맞지 않는 자들이었는지도 몰랐다. 그러면서도 희망을 잃지 않는 자들이었다. 그런 아움들이 뉘·즈제를 만들었다. 그들은 즈제인 특유의 끈기로 바다로 뒤덮인 행성에 삼만 개가 넘는 인공 섬을 건설했다. 그리고 4000년이 지나 그들의 아들과 딸들은 다시 자신의 행성을 떠났다. 또 다른 푸른 별을 찾아서. 그곳에 가면 선조들이 그랬던 것처럼 우리들만의 왕국을 세울 수 있다. 그런 희망을 품고 핍박자들은, 반란자들은, 학살자들은, 가족을 잃은 자들은, 허무한 자들은, 그래서 고통을 견딜 수 없었던 자들은 우주선에 몸을 실었다. 단지 살기 위해 간 것만이 아니었다. 살아 있는 존재답게 살기 위해 간 것이었다. 그 염원으로 206조 6780억km를 항해한 것이었다. 그것은 7년의 거리였다. 그것은 백 명이 출발해서 사십 명 정도 죽는 혹독한 여정이었다. 많은 즈제인은 우주에서 가족과 친구와 연인을 잃었다. 살아남은 자들은 어느새 짐승 같은 표정으로, 냉혹한 우주를, 수많은 별빛에도 불구하고 먹먹한 우주를, 낡은 창문으로 지켜보았다. 푸른 별이 나타날 때까지. 4000년 전 조상들이 ‘푸른’이라고도 불렀고, ‘희망’이라고도 불렀으며, ‘약속’이라고도 불렀던 그 별이 다시 나타날 때까지. 자기 품에 안긴 딸과 늙은 아버지가 죽어가는 걸 느끼며. 묵묵히. 그리고 멀리서 푸른 점이 명멸했다가 커져 오면, 그걸 이제 지구라고 확신할 수 있는 그 순간이 오면, 그들은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저게 지구구나.”

 

    *
    순식간에 우주선은 행성을 사십 바퀴째 돌고 있었다. 기체 내의 온도가 급격히 올라가기 시작했다. 압력도 마찬가지였다. 온도와 압력을 잡기 위해 맹렬하게 장치가 작동했다. 눈에 띄게 모르토가 줄어들었다. 하지만 그래도 소용이 없었다. 원래대로라면 진작에 이 행성의 궤도를 탈출해야 했다. 배면장치가 언제 고장 난 걸까? 폭발의 여파가 남아 있는 튜브의 출구를 나올 때였을 수도 있다. 혹은 101-툼-57에 진입하기 직전, 오르트 구름대를 빠져나올 무렵이었을 수도 있다.
    튜브를 나올 때와 오르트 구름대를 나올 때의 기분은 전혀 달랐다. 므스느그흠은 오르트 구름대에서 일이 벌어졌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그곳이 더 끔찍하게 느껴졌다.
    므스느그흠은 즈제를 출발하기 전 오르트 구름대에 대한 교육을 철저하게 받았다. 하지만 막상 대면하고 보니 듣던 것보다 무시무시했다. 자신을 둘러싼 수조 개의 암석들이 수조 개에 이르는 악의로 보일 정도였다. 그것은 누구의 악의일까? 그것은 무엇을 원하는 걸까? 만약 원하는 것이 있다면 그건 불행이겠지? 그런 생각을 하곤 했다.
    그곳을 통과한다는 건, 결국 자기 자신과의 싸움이라고 할 수 있었다. 보통의 체력과 정신력으로 버티기 힘들었다. 많은 난민들이 여기서 죽었다고 했다. 므스느그흠도 마지막 40시간은 눈을 뜨고 있어도 눈앞이 뿌옇게 변하곤 했다. 잠시 몇 초 정도 정신이 나가곤 했다. 그때 졸다가 우주선을 스쳐가는 우주 쓰레기와 충돌하고 말았다. 무슨 이유인지 그것은 우주선의 곁에서 갑자기 궤도를 바꾸었다. 이유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그건 중량이 작은 쓰레기였다. 사고 직후에는 아무런 이상도 발견되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 우주선은 조금씩 저 암흑의 행성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었다. 그렇다면 역시 그건 악의였어. 그건 메시지였어. 므스느그흠은 이렇게 중얼거렸다.
    지구로의 파견은 그가 직접 회사에 요청한 것이었다. 그의 회사는 삼십칠 년 전 지구의 소유권을 사들였다. 애초에 회사는 지구가 즈제와 유사한 환경이라서 관심을 가졌다. 그들은 지구를 다른 거주 가능 행성처럼 개발할 생각이었다. 현재 즈제인이 찾아낸 즈제 식 행성은 모두 열여덟 개였다. 지구도 그런 곳이었다. 하지만 삼십년 전 지구에 상당량의 모르토가 매장되어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모르토가 채굴되는 어느 행성보다 많은 양이었다. 회사는 계획을 변경해 지구를 광산으로 개발하기로 했다. 광산으로 개발되면 지구는 유독가스로 가득 차게 될 것이었다. 모든 생물은 사라질 것이었다. 최종적으로는 내부에 있는 모르토를 추출하기 위해 지구는 산산이 쪼개질 것이었다.
    그러자 회사와 즈제 연방이 충돌했다. 어쨌든 지구는 즈제인이 이주할 수 있는 열여덟 개 행성 중 하나였다. 개발 소유권은 회사에 있었지만, 즈제의 법은 거주 가능 행성을 거주 불가능할 정도로 파괴하는 개발은 연방과 협의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었다. 둘의 입장은 좁혀지지 않았다. 그렇게 삼십 년이 흘렀다. 표면적으로 회사는 연방 정부와 협상 테이블을 지속했다. 하지만 십칠 년 전부터 회사는 지구에 거주 중인 즈제인에 대한 인터뷰와 조사를 하고 있었다. 그 결과를 바탕으로 그들은 지구의 즈제인들에게 개발 동의를 받을 심산이었다. 즈제 연방법상 그 동의가 67%에 이른다면, 정부의 허가 없이도 개발이 가능했다.
    회사는 지금까지 세 차례, 모두 49명의 조사관을 파견했다. 근데 그들이 모두 8년 전 연락이 끊겼다. 이를 조사하기 위해 4명의 조사관을 두 차례 파견했지만 그들도 4년 전 지구에서 연락이 끊겼다. 감쪽같이 사라졌다. 이 실종 사건들은 위험한 냄새를 풍겼다. 이해할 만했다. 지구 개발을 원하지 않는 아움들은 많았다. 특히 죽음을 무릅쓰고 지구까지 다다른 자들이 그랬다. 그래서 회사는 이를 조사하기 위해 육체적으로 강인하고, 기민한 판단력을 가진 아움을 파견하길 원했다. 필요하다면, 방해가 되는 자들을 단숨에 죽일 수 있는 그런 아움을 원했다. 그때 군인 출신인 므스느그흠이 자원한 것이었다.
    면접 자리에서 회사 측은 므스느그흠에게 말했다.
    “필요에 따라선 방해가 되는 아움을 죽여야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자 므스느그흠은 이렇게 대답했다.
    “그거야말로 제가 원하던 일입니다.”

 

    *
    마르죠욘은 말했다.
    “제겐 아이가 있었어요. 작은 아이였어요. 그 아이의 이름은 말하지 않을래요. 왜냐하면 그 아이는 이제 이름이 없기 때문이에요. 무슨 말인지 아시겠어요? 이름이 없다는 건 죽었다는 말이에요. 그건 우리 사이에서 쓰는 말이죠. 우린 시체를 이름이 없는 자들이라고 불렀어요. 그런 표정 짓지 마세요. 오래전 일이에요. 들어 주세요. 우리 아이는 죽었어요. 막 걷기 시작한 아이였어요. 그 아이가 어느 날 집에 돌아오지 않았어요. 걷기 시작한 아이이니 걷기 좋아한 아이였고, 그래서 그 아이는 눈만 뜨면 걸으려 했어요. 저는 종종 그 아이를 찾아 집을 돌곤 했어요. 하지만 그날은 집을 아무리 돌아도, 돌아도 아이는 발견되지 않았어요. 우리 집엔 작은 창문이 세 개 있었는데, 집을 돌면서 그 아이의 이름을 부르다가 혹시 싶어서 그 창문으로 집 안을 들여다보곤 했어요. 그 휑한 집 안을요. 그때 저는 이미 불길한 생각을 했던 거 같아요. 왜 그렇게 우리 집이 먹먹해 보였는지 몰라요. 남의 집처럼, 아니 집이 아닌 것처럼, 그곳은 아무런 인정도, 아무런 온기도 없는, 그래요, 뭐랄까 지구로 오는 우주선 같은 그런 끔찍한 기분을 느끼게 했어요. 그건 그러니까 엄마의 직감이나 뭐 그런 거였나 봐요. 그렇게 아이는 돌아오지 않았어요. 제게 남편은 없었어요. 그 아움은 일찌감치 제 인생에서 사라져 버렸어요. 오직 그 아이만이 제 곁에 있었어요. 우린 매일 꼭 끌어안고 잤어요. 일어나면 저는 아이의 눈을 뚫어지게 쳐다봤어요. 저와 달리 두 눈이 모두 크고 아름답고 생기에 넘쳤어요. 전 그걸 보고만 있어도 즐거웠어요. 너무 사랑스러워서 견딜 수 없었어요. 그러면 그 아이는 아이다운 심술궂은 표정을 지으며 두 손으로 제 왼쪽 눈을 가렸어요. 우리 아이는 손이 너무 작아서 두 손을 모아야지만 간신히 제 한쪽 눈을 가릴 수 있었거든요. 제가, 어두워 아가야, 엄마는 어두운 게 너무 무서워. 그렇게 엄살을 떨면 아이는 키득키득 웃었어요. 그러다 곧 다시 제 품으로 파고들었어요. 그 아이가 사라졌어요.
    저는 멍하니 집에서 그 아이를 기다렸어요. 며칠을 그랬어요. 아이가 돌아올 때까지, 그것이 이름이 있든 없든 돌아올 때까지요. 그리고 며칠 뒤 아이는 마을 뒤에 있는 산 중턱에서 발견됐어요. 머리가 박살이 난 채였어요. 누가 그랬는지는 잡히지 않았어요. 우리를 증오하는 아움들이 너무 많았기 때문에 잡을 수도 없었어요. 제가 열아홉 살에 이 일을(죽은 뉘·즈제인들을 토막 내 바다에 던지는 일 말이에요) 하겠다고 말했을 때, 우리 아버지는 울면서 말했어요. 아가, 넌 이제 모두가 싫어하게 될 거야. 이렇게 말했어요. 그러니까 그건 어쩌면 제 운명이라는 생각을 했어요. 잡아 봤자란 생각도 했어요. 잡는다 한들 그게 무슨 소용 있겠어요? 저는 매일 죽은 자들을 치웠어요. 그 아움들이라고 죽을 날을 알았을까요? 어차피 즈제에선 매일 누군가가 죽고, 매일 누군가를 죽여요. 죽은 자는 살아나지 않아요. 죽은 자는 그저 돌멩이예요. 우린 철학자들이에요. 우린 즈제에서 누구보다 죽음에 대해 잘 알고 있는 자들이에요. 다만 이 일의 유일한 불행이라면, 그 아이가 뉘·즈제의 배신자, 농부, 돌아다니는 아움, 가져오는 자와 가져가는 자, 그리고 시체(이 말을 할 때 그녀는 잠시 머뭇거렸다)인 제 품에서 태어났다는 것뿐이에요. 전 울지 않았어요. 입을 다문 채 우리 집에 있는 모든 창문을 막아버렸어요. 그랬어요. 그게 제가 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었어요.”
    그녀는 말을 하면서 바다로 향해 난 캘리포니아 식 창을 쳐다봤다. 크고 아름다운 왼쪽 눈으로. 그녀는 다시 말했다.
    “그때부터였던 거 같아요. 저는 매일 꿈을 꿨어요. 같은 꿈을 꿨어요. 꿈속에서 저는 시체를 치우고 있었어요. 열심히 팔다리를 자르고 머리를 자르고 있었어요. 토막 난 시체들을 비행 수레에 담았어요. 하루 종일 자르고 자르고 또 자르고 있었어요. 꿈속이었지만 저는 생각했어요. 이제 쉬고 싶다. 제발 그만 하고 싶다. 꿈속이었지만 그랬어요. 그러면 그 순간 우리 아이가 나타났어요. 대여섯 발자국 정도 떨어진 곳에서 나타났어요. 저는 아이를 보고 말했어요. 나직하게 말했어요. 잘못하면 아이가 다시 사라질까 무서워서 아주 나직하게 말했어요. 아가야, 어디 갔다 온 거야. 그러면 아이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무서운 표정을 짓고는 뒤돌아 달아나기 시작했어요. 저는 그 아이를 쫓아갔어요. 쫓아가다 보면 어느새 주변은 어두워져 있는 거예요. 이상한 일이에요. 그렇지 않나요? 전 지구에 오기 전까진 밤이란 걸 아예 몰랐어요. 어두워진다는 게 시간이 흐른다는 의미라는 걸 몰랐어요. 하지만 제 꿈속에서 자연스럽게 주변이 어두워지는 거예요. 전혀 억지스럽지 않게요. 그러면 꿈속의 전 시간이 흐른다고 생각했어요. 이상한 일이에요. 지금 생각해 봐도 그래요.
    우리는 그렇게 한참을 쫓고 쫓겼어요. 어둠 속에서요. 아이는 꼭 대여섯 발자국 떨어진 위치에서 제 앞을 달려갔어요. 저는 쫓아가며 소리쳤죠. 이리 돌아오렴, 제발, 나는 너 없인 살 수가 없어. 울면서 소리쳤어요. 그러다 저는 쓰러지는 거예요. 매번 그랬어요. 매일 같은 지점에서 저는 쓰러졌어요. 제가 쓰러지면 아이는 달리기를 멈추고 공포에 질린 표정으로 쳐다봤어요. 제가 걸려 넘어진 그것을 쳐다봤어요. 저는 어떤 여자 시체에 걸려 넘어진 것이었어요. 시체의 다리는 단단했고, 머리는 저 멀리 어둠 속에 묻혀 있었어요. 제 아이가 그 어둠 속을 쳐다보고 있던 거였어요. 저는 당황해서 말했어요. 아가야, 시체의 얼굴을 보면 안 된단다, 죽은 아움의 얼굴을 보는 건 불길한 짓이야. 예쁜 두 눈을 감으렴, 엄마는 무서워. 하지만 이상하죠? 그래요, 이상하게도, 아이에게 그렇게 말하고 나니까 저는 시체의 얼굴이 보고 싶어 견딜 수가 없는 거예요. 마치 당장이라도 그 시체가 누군지 확인하지 않으면 모든 걸 잃을 것 같은 조바심이 나는 거예요. 그래서 저는 시체의 머리로, 어둠 속으로 더듬더듬 기어갔어요.
    그리고 저는 그 얼굴을 보고 마는 거예요. 그 얼굴은 오른쪽 눈이 없었어요. 눈이 있어야 할 자리에 검은 구멍이, 마치 구덩이 같은 깊은 구멍이 있었어요. 또, 그 근심 가득한 입매와 커다란 왼쪽 눈. 이 얼굴은 저도 알고 있는 얼굴이었어요. 이 얼굴은 제가 모를 수 없는 얼굴이었어요. 그건 바로 저였어요. 제가 죽어 있었어요. 제가 벌거벗은 채 엎드려 있는 거였어요. 분하다는 듯이 왼쪽 눈을 감지도 않은 채로요. 그 눈으로 저 깊은 어둠 어딘가를 쳐다보면서요.
    저는 공포에 질려 덜덜 떨었어요. 소리를 지를 수도 없고, 일어설 수도 없고, 눈을 감을 수도 없었어요.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작은 생물처럼 덜덜 떠는 거였어요. 근데 그 순간 제 아이가 저에게 무슨 말을 했어요. 아주 다급하게. 아이의 말은 아주 천천히 제게 날아왔어요. 그것은 마치 우주를 유영하는 돌멩이 같았어요. 하지만 저는 아이의 말을 들을 수 없었어요. 들어 보세요. 왜냐하면 겁에 질린 제게 아이의 말이 도달하려는데, 갑자기 저와 아이를 둘러싼 모든 어둠이 쪼개지면서 빛이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기 때문이에요. 그건 행성이 폭발하는 거였어요. 그건 뉘·즈제가 폭발하는 거였어요. 뉘·즈제의 폭발이 계속되는 가운데, 쥴·즈제가 폭발했어요. 두 행성이 경쟁하듯 엄청난 빛을 쏟아내며 폭발했어요. 마치 누와 듑처럼요. 마치 아름다운 두 눈처럼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어요. 저는 더듬거리며 아이를 찾아 헤맸어요. 펑펑 울면서요. 어차피 빛 때문에 아무도 제 모습을 보지 못할 테니 맘껏 울어도 된다고 생각하면서요. 하지만 아이가 없었어요. 제 울음소리도 들리지 않았어요.
    그게 그 무렵 잠이 들면 꾸던 꿈이었어요. 잠이 들 때마다 같은 꿈을 꿨지만, 어찌 된 셈인지 매번 우리 아이가 꿈에서 제게 하는 말을 들을 수 없었어요. 그 빌어먹을 폭발이 너무 요란했거든요.
    그렇게 6년이 지났어요. 6년 동안 제 꿈 얘기를 몇몇에게 한 적이 있었어요. 그러면 내 친구 조가욘은 이렇게 말했어요.
    마르죠욘, 마음이 아파. 마음 아픈 일이야. 하지만 마르죠욘, 그 창문 막은 것들이나 떼 봐. 보기만 해도 무서워. 그게 네 마음을 갉아먹고 있는 거야.
    아까 말했나요? 그래요. 6년이 지났어요. 이런 말이 있어요. 6년 동안 바뀌지 않는 건 284년 동안 바뀌지 않는다. 이 말이 뭔지 아세요? 당신, 정말 어쩔 수 없는 뉘·즈제인이군요. 이 말은 쥴·즈제에서는 아주 일반적인 관용어구라고 하더라고요. 그래요. 그 6년이 지났어요. 하지만 아무것도 바뀌지 않았어요. 저는 여전히 창문을 막은 집에서 살았고, 내 아들은 여전히 꿈속에서 내 앞으로 달려가고, 난 내 시체에 걸려 넘어지고, 두 개의 즈제 행성은 대폭발을 일으키는 거. 그것도 여전했죠. 여전했어요. 그러니까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다는 거예요.”

 

    *
    다시 순식간에 우주선은 삼십 바퀴를 또 돌았다. 소름끼칠 정도로 빠른 속도였다. 일찌감치 시속 150만km를 넘어섰다. 그에 반해 므스느그흠은 압력에 짓눌려 팔을 들어 올리는 것조차 고통스러웠다. 우주선의 외부에 노출된, 부피에 비해 표면적이 넓은 부분들이 먼저 녹기 시작했다. 스물다섯 개의 센서 중 일곱 개가 망가졌다. 이제 방법이 없었다. 중성자탄을 101-툼-57의 행성 띠에 발사해 연쇄 폭발을 일으켜야만 했다. 그 폭발의 힘으로 우주선을 띄워서 궤도를 벗어나야 했다.
    조종 훈련을 받을 때 이런 상황에 대해 배운 적이 있었다. 하지만 이 순간을 맞이하기 전까지 까맣게 잊고 있었다. 이건 굉장히 위험한 시도였다. 현재 우주선의 속도라면 미사일보다 빨랐다. 발사 후에 미사일은 자연스럽게 우주선의 후방으로 뒤처질 것이었다. 정교한 계산이 필요했다. 계산이 잘못돼도, 행성 띠의 연쇄 폭발이 예상보다 커도 폭발의 한가운데로 우주선이 처박힐 것이었다. 궤도 탈출에 성공한다 하더라도 우주선은 방사능을 흠뻑 뒤집어쓰는 것이었다. 하지만 할 수밖에 없었다. 이대로 저 어둠 속으로 끌려 들어갈 수 없었다.
    늘, 므스느그흠은 아버지를 보며 아버지의 삶으로 끌려 들어가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그의 아버지는 즈제를 떠나고 싶어 했다. 그래서 몇 년에 한 번씩 정부나 기업에서 주관하는 행성 이민 계획에 신청했지만 번번이 떨어졌다. 전쟁 중 그는 뉘·즈제의 스파이 혐의로 조사를 받은 적이 한 번 있는데 그 기록 때문이었다. 삐뚤어진 입도 그때 받은 고문 때문이었다. 그래서 그는 자기 아들, 므스느그흠의 삐뚤어진 입을 보며 생각했다. 기묘하다, 기묘해, 내 입은 빌어먹을 고문으로 이 모양 이 꼴인데, 저 빌어먹을 놈은 뱃속에서부터 저 모양이구나. 어쩌면 그래서 더 이 즈제라는 세계를 떠나고 싶다고도 생각했다. 그는 지구에 가고 싶어 했다. 지구의 즈제인들은 다른 행성들과 다르게 불법으로 밀항한 즈제인들이 대부분이었다. 또한 즈제 정부의 관리인들이 파견되지 않는 곳이기도 했다. 그곳이라면 자신과 같은 전력의 아움도 정착할 수 있었다. 다만 그는 가족만 두고 떠나거나 낡은 우주선을 타고 갈 생각은 없었다. 혼자가 되는 것도, 개죽음도 두려웠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그는 돈을 모았다. 튼튼하고 세련된 최신 우주선을 구입하는 것이 그의 꿈이었다. 매달 월급이 나오면 그는 그걸 은행에 저금하고 남은 돈으로 포르게소(뉘·즈제의 전통 과자를 쥴·즈제 식으로 변형한 것. 뉘·즈제 아이들에게 특히 인기가 많다)를 양손에 들고 집에 돌아왔다. 그러고는 므스느그흠과 므스느그흠의 누나를 앞에 앉혀 놓고 종일 지구 이야기를 했다. 그곳이 얼마나 아름다운 곳인지, 그곳의 음식들이 얼마나 달콤한지. 그날은 그가 가족을 두들겨 패지 않는 유일한 날이었다.
    누나가 떠나고, 엄마가 죽고, 종종 므스느그흠은 잠든 아버지에게 몰래 다가가 그의 머리에 총을 갖다 대고는 했다. 므스느그흠은 아버지가 죽었으면 좋겠다고, 아니 할 수 있다면 자기 손으로 그의 머리에 총알을 박아 넣고 싶다고 생각했다. 아버지가 죽으면 아버지의 모든 기록은 말소될 것이고, 그러면 자기에게도 지워진 연좌제도 해금될 것이었다. 그러면 떠날 수 있었다.
    어디로?
    어디로든!
    자신의 누나처럼, 많은 아움들처럼. 하지만 매번 방아쇠에 걸린 손가락을 당기지 못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므스느그흠은 그의 아버지처럼 입이 삐뚤어진 남자였고, 그 역시 혼자 되는 것이 두려웠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그가 고민하는 사이 누군가가 아버지를 죽였다. 므스느그흠은 하지 못한 걸 그 누군가는 해냈다. 그 누군가는 왜 아버지를 죽인 것일까? 그는 어떤 마음이었을까? 그 누군가는 누구일까? 므스느그흠은 그 누군가는 왠지 전혀 모르는 사람은 아닐 거라는 생각을 했다. 어쩌면 아주 가까운 사람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다. 반면 나는 얼마나 약한 아움인가. 나는 왜 결심을 하지 못한 걸가? 나는 사실 떠날 마음이 없었던 걸까? 그런 생각도 수없이 했다. 하지만 이젠 할 수 있다. 할 수 있어. 이젠 해야만 한다. 그런 생각도 했다.
    할 수 있다니! 해야만 한다니! 뭘? 어느 순간부터 그는 이유도 모른 채 멀리 멀리 가고 있었다. 원심력처럼 애초의 목적 따윈 찾을 수 없는, 그런 원심력처럼, 움직이는 힘에 의지한 채 가고 있었다.
    “가야만 해.”
    므스느그흠은 다시 한 번 무심코 중얼거렸다. 그는 중얼거리면서 크루잎에 수치를 입력했다. 현재 우주선의 속도와 뵐 행성의 대기 분석 끝에 발사 각도와 속도가 결정되었다. 계산대로라면 32%의 확률로 궤도 밖으로 탈출할 수 있었다. 다시 크루잎은 중성자 미사일을 발사할 최적의 타이밍을 계산했다. 앞으로 열 바퀴 하고도 조금 더 가야 했다. 므스느그흠은 발사를 지시했다. 크루잎은 카운트다운을 시작했다.

 

    *
    창백한 여자는 다시 말했다.
    “제가 어둠을 모른다고 말하지 마세요. 저는 전쟁 때 굴을 파는 아움이었어요. 뉘·즈제의 숲 아래, 깊은 곳에 굴을 파는 아움이었어요. 우리는 하루 종일 굴만 팠어요. 때로는 한 달 내내 굴을 팔 때도 있었어요. 그곳에 침실을 만들고 화장실을 만들고 부엌을 만들었어요. 쥴·즈제 군인들이 우리 위에서, 저 땅 위에서 우리를 찾아 헤맬 때면 굴에서 숨을 죽인 채 키득거렸어요. 그러다 그들의 등 뒤로 나가 총을 갈겼어요. 즈제인들이 어둠을 모른다고요? 잘 알고 있어요. 어쩌면 지구인들보다 잘 알고 있어요. 이런 일이 있었어요. 그때는 전쟁 막바지였어요. 쥴·즈제는 우리의 땅굴을 눈치 채고 있었어요. 곳곳의 땅굴을 무지막지하게 들어냈어요. 그리고 굴로 들어와 우리를 쫓았어요. 그곳은 가비아노였어요. 잘 아실 거예요. 살론 열도에 있는 뉘·즈제에서 가장 거대한 섬, 가장 많은 즈제인들이 죽은 섬, 붉게 물든 섬, 땅속까지 피 냄새가 배어 있는 섬. 그곳에는 섬 전역에 걸쳐 수없이 많은 굴이 있었어요. 우리는 그 끝없이 이어진 굴을 뛰었어요. 정신없이 도망쳤어요. 그렇게 다섯 달을 굴에서 도망 다녔어요. 그러니까 제가 어둠을 모른다고 하지 마세요. 다만 우주가 너무 거대한 거예요.”
    꼽추가 말했다.
    “우리 우주선은 거대했다. 그렇게 거대한 우주선은 처음이었다. 그 우주선에 350명이 타고 있었는데, 원래 정원은 70명이라고 했다. 놀라울 정도였다. 지구에 와서 만난 다른 즈제인들도 이 얘기를 들을 때마다 놀랐다. 버러지 같은 난민이라도 이런 경험은 일반적이지 않은 것이었다. 우리는 잘 때도 마치 생선을 쌓아 놓은 것처럼 빽빽하게 누워야 했다. 자고 일어나 보면 내 위에 누군가 포개져 있곤 했다. 하지만 지구에 도착했을 때 우린 열두 명이었다. 다시 한 번 말해 본다. 열두 명. 이 숫자는 놀라운 숫자이다. 하지만 당신은 왜 놀라는가? 왜 당신은 그런 표정을 짓는가? 동정하지 마라. 이 숫자에 슬픔은 없다. 이것도 기적이다. 이건 비극이 아니라 축복이다. 열두 명이나 살아남은 거였다. 어떤 우주선은 우주에서 영영 사라져 버리곤 한다. 나는 알고 있다. 그러니 그렇게 나를 쳐다보지 마라.”
    삐쩍 마른 남자는 이렇게 말했다.
    “과연 당신이라면 어떻게 했을 것 같소? 6년 정도 항해를 했을 때 식량이 20%밖에 남지 않았소. 우리 우주선은 느렸소. 다른 우주선보다 느렸소. 그래서 6년을 왔는데도 3년을 더 가야 한다고 그랬소. 우리 중에 바디스두다라는 수학자가 있었소. 그는 키가 크고 마른 노인네였소. 하지만 무서운 눈빛과 지친 표정 때문에 우리는 그가 수학자가 아닐 거라고 생각했소. 그는 몸이 아주 약했소. 늘 추위 때문에 덜덜 떨면서 창문에 붙어 있곤 했소. 그는 우릴 스쳐가는 돌멩이들을 세고, 멀리서 반짝거리는 별들의 위치를 계산하곤 했소. 우리에게 즈제 식 날짜 계산의 관습적 오류나 새로운 수식에 대해 말해 주곤 했소. 그는 수학자처럼 보이진 않았지만, 그래도 우린 그가 굉장히 똑똑한 아움이라는 건 알 수 있었소. 우리 중 가장 똑똑하다는 걸 알 수 있었소. 어쨌든 그는 무슨 얘길 하든 그 창에 붙어서 그렇게 중얼거리듯 말하곤 했소. 왜 그렇게 그 빌어먹을 창을 좋아하는지 모르겠지만 언제나 그랬소. 언제나 그의 입김이 창문에 허옇게 들러붙어 있었소. 그 똑똑한 그가 그렇게 말한 거요. 3년을 더 가야 한다고. 3년이라니! 6년을 왔는데! 우린 모두 일곱 명이 그 좁은 우주선에 욱여넣어져 있었고, 그렇게 6년을 함께했소. 하지만 결국 식량이 떨어져 가는 게 눈에 보이고 있는 거요. 당신이라면 이럴 때 어떻게 했을 것 같소?”
    팔이 없는 아이는 말했다.
    “지구에 도착했을 때 저는 혼자였어요.”
    창백한 여자는 말했다.
    “저는 굴에서 태어났다고 했어요. 그 굴들은 제 어머니와 제 할머니와 그들의 어머니와 할머니들이 판 굴이었어요. 그녀들처럼 저도 하루 종일 굴을 팠어요. 종종 땅 위로 나가서 쥴·즈제인을 죽이고, 그 자리에 불을 피운 뒤 잠이 들기도 했어요. 하지만 저는 굴이 편했어요. 제 친구들은 제 눈이 언제나 아름답다고 말했어요. 굴속의 어둠에서 반짝반짝 빛난다고 했어요. 하지만 땅 위로 나오면 제 눈은 압의 강렬한 빛에 파묻히기 일쑤였어요. 저는 그게 속상했어요. 그러면 라두가 제 눈을 들여다보며 말했어요. 아냐, 속상해 하지 마, 이렇게 밝은 곳에서 봐도 여전히 니 눈은 반짝거리고 있어. 그러고는 키스를 했어요. 하지만 우주에선 그렇지 않았어요. 우주의 어둠은 달랐어요. 저는 라두에게 종종 물어봤어요. 라두, 라두, 내 눈 오늘은 어때? 그러면 그는 대답했어요. 여전히 반짝거리지. 하지만 그렇지 않다는 걸 저는 알고 있었어요. 우주에서 저는 빛을 잃었어요. 제 눈은 먹색이 됐어요. 그래서 저는 더 자주 물어봤어요. 내 눈은 어때, 라고. 그리고 라두가 죽고 나서는 물어볼 아움이 없었어요. 저는 멍하니 창에 비친 제 눈을 바라봤을 뿐이에요. 이제는 반짝거림이 없는 제 눈을. 그러니 제가 어둠을 모른다고 하지 마세요.”
    삐쩍 마른 남자는 또 말했다.
    “당신이라면 어떻게 했을 것 같으냐고 물었소. 아니 우리가 어떻게 했을 것 같소?”
    꼽추가 말했다.
    “일어나면 내 위에 포개져 있던 자가 죽어 있곤 했다. 우주선은 추웠지만, 시체는 더 차가웠다. 차가운 돌이 내 위에 올려져 있는 기분이었다. 처음엔 울면서 깼다. 소리를 지르기도 했다. 하지만 삼백삼십팔 명이 죽었다. 어느새 우린 우리 배 위에 시체가 있어도 놀라지 않았다. 눈곱을 떼듯 그걸 들어 올려 우주 밖으로 내보냈다. 그렇다. 우린 할 건 했다. 어떤 자들은 죽은 자들을 절여서 먹는다고 들었다. 누군가는 그게 끔찍하다고 말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난민들은, 이 지구에 살고 있는 자들은 그걸 끔찍하다고 하지 않는다. 우린 저 어둠을 뚫고 왔다. 우린 그들이 야만적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우주에선 뭐든지 가능한 법이다. 우주에선 현재가 없다. 우주에선 과거도 없다. 우주에선 미래도 없다. 그래서 뭐든지 가능하다. 죽은 자를 먹어도, 죽은 자가 산 자를 먹어도 우주에선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우린 먹지 않았다. 우린 시체들을 우주로 장사 지냈다. 그게 우리 열두 명이 살아남은 비결이었다.”
    삐쩍 마른 남자는 말했다.
    “그래, 잘 알고 있군. 어디서 들었소? 그렇소. 우린 먹었소. 죽은 그들을 먹었소. 그건 비열한 짓이었지만, 그리고 역겨운 짓이었지만, 어쩔 수 없었소. 제일 처음 먹힌 건 그 수학자 노인네였소. 어느 날 그가 창문에 얼굴을 맞대고 있는데도 김이 서리지 않는 거요. 우린 그가 죽었다는 걸 알 수 있었소. 그리고 그가 죽기 전 회의했던 대로 했소. 우린 누군가 죽으면 죽은 자를 먹기로 했소. 단지 합의한 게 아니라 우린 함께 맹세를 했소. 우린 많은 말을 하지 않았소. 최소한의 단어만을 골라 맹세를 했소.
    죽은 자는 먹는다! 먹은 자는 산다!
    그럼에도 그 노인네의 살점을 입에 집어넣으려는데, 내 마음속에서 바디스두다의 목소리가 들리는 거요. 그는 외쳤소. 그만둬, 아움은 아움을 먹지 않아, 너흰 아움도 아니야! 라고 외쳤소. 창에 붙은 볼이 빨갛게 눌린 채로 말했소. 그래서 나는 말했소. 화가 나서 말했소. 아움이 아닌 건 우리가 아니라 너야, 왜냐하면 넌 이제 우리 식량이니까! 그러자 바디스두다의 목소리는 사라졌소.”
    팔이 없는 아이는 말했다. 아이는 나직하게 말했다.
    “아니요. 아니에요. 우린 함께 왔어요. 엄마와 아빠와 함께 왔어요. 하지만 도착했을 땐 저 혼자였어요. 슬프냐고요? 모르겠어요. 그 말을 해본 적이 너무 오래됐어요.”
    꼽추는 또다시 말했다.
    “마음을 유지하고 싶었다. 마음을 잃고 싶지 않았다. 그뿐이었다."

 

    *
    7
    6
    5
    4
    3
    2
    1
    덜컥!

 

    *
    노인은 슬퍼 보였다. 노인은 그의 곁에 누운 커다란 개를 쓰다듬었다. 개는 검은색이었다. 개는 자고 있었다. 노인은 말했다.
    “어느 날이었습니다. 그날도 여느 때처럼 그의 집에서 밥을 먹고 있었습니다. 그는 식사 내내 고민이 있는 듯 보였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식사가 끝날 때쯤 굳은 표정으로 제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어쩌면 이게 마지막 식사가 될 수도 있겠구나.
    그 순간의 느낌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요? 그 말을 듣고 저는 너무 놀라서 그날 먹은 걸 모두 토해 내고 싶은 기분이었습니다.
    아저씨, 무슨 말이에요?
    아무래도 이 도시에는 군인이 할 일이 별로 없으니까. 좋은 말로 평화롭다고나 해야 할까? 아무튼 이 지역에서 장교의 수를 줄이는 안이 어제 통과되었단다. 아마 그럼 위의 몇 명만 남기고 모두 전선으로 보내질 거 같구나.
    확실히 콤느그·스베크는 전쟁통에도 불구하고 안전하고 활기가 넘치는 편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도 그 도시로 간 것이었죠. 인생이란 그런 것입니다. 저는 제 고향 섬과 다르게 안전하고 먹을 것도 있는 곳으로 갔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아저씨를 만났습니다. 근데, 그는 그곳이 안전하고 먹을 것도 있다는 이유로 다른 곳으로 가야만 한다는 겁니다.
    전선이라면 어딘가요?
    아마 동쪽의 살론 열도로 보내지지 않을까? 지금 쥴·즈제는 그곳에 병력을 집중하고 있는 모양새거든.
    저도 알고 있었습니다. 샬론 열도, 뉘·즈제 최대의 소금 산지, 4년간 최악의 격전지, 지옥. 병사들은 그곳에 가면 돌아오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살아남은 병사들은 마치 귀신처럼 변한다고 했습니다. 깨진 항아리에 물을 들이붓듯, 뉘·즈제도 쥴·즈제도 쉬지 않고 병력을 투입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만약 그가 그곳으로 간다면, 우린 어쩌면 다신 볼 수 없을 것입니다. 저는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 생각을 하자 견딜 수 없었습니다. 아니다, 그렇게 보낼 순 없다. 납득할 수 없다. 받아들일 수 없다.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 감정들이 치밀어 올랐습니다. 그러자 나도 모르게 불쑥 이렇게 말하고 말았습니다.
    이 도시에 군인이 할 일이 없다고요? 흥, 그런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누가 한대요?
    그게 무슨 소리냐?
    그의 대답에 퍼뜩 정신이 들었습니다. 제가 무슨 말을 하려고 한 걸까요? 확실히 저는 이 도시의 이야기를 많이 알고 있었습니다. 누구라도 무시하는 시골 출신의 고아였으니까요. 누구라도 무시한다는 건, 때때로 많은 비밀을 알게 될 수도 있다는 얘깁니다. 도시에는 당연하게도 뉘·즈제의 첩자나 레지스탕스, 그리고 그들을 후원하는 자들까지, 쥴·즈제의 적이 가득했습니다. 도시의 많은 뉘·즈제 아움들은 쥴·즈제의 군인들과 웃고 떠들면서도 마음속으론 그 군인들을 죽도록 미워하고 있었습니다. 어찌 보면 쥴·즈제만 모르고 있었습니다. 자신들이 적들에게 둘러싸여 있다는 사실을요. 그리고 그런 모습들을 전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레지스탕스들은 종종 제가 곁에 있다는 사실을 잊어버리고는 밀담을 나누곤 했습니다. 그러다 문득 제 존재를 깨닫고는 이렇게 호통을 쳤습니다.
    저리 꺼져! 어디 가서 말하면 죽여 버리겠다!
    그 말은 죽일 생각이 없다는 말이라는 걸 저는 알고 있었습니다. 만약 제가 레지스탕스였다면 꼬맹이라도 그 자리에서 당장 죽여 버렸을 겁니다. 게다가 근본도 없는 시골뜨기 꼬맹이라면요. 하지만 그들은 그러지 않았습니다. 아니 그러지 않은 정도가 아니라, 저를 비롯해 도시의 어린 부랑자들은 첩자들과 레지스탕스들의 훌륭한 동료였습니다. 우린 그들의 총과 밀서를 전달했고, 망을 봤으며, 때때로 도시의 숨은 길을 안내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면 그들은 문득 국기가 휘감긴 제 배를 툭툭 두드리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고맙다, 이 꼬마 애국자야.
    이런 사실들을 저도 모르게 그에게 말하려고 한 겁니다. 그가 다시 물었습니다.
    얘야, 방금 한 말이 무슨 의미지? 뭔가를 알고 있는 게냐?
    말하면 안 된다. 이 자는 쥴·즈제의 군인이다. 나는 내 옷 속의 국기를 쓰다듬었습니다. 하지만 왜 그런 걸까요? 제 입은 또다시 제멋대로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무슨 의민지 아저씨도 알지 않아요? 이 도시는 조용한 곳이 아니에요. 이 도시는 평화로운 곳이 아니라고요. 군인이 할 일 따윈 매일매일 벌어지고 있다고요. 왜 아저씬 그걸 몰라요? 진짜 몰라요?
    아니 어렴풋이 우리도 알고는 있단다. 다만 꼬리를 잡을 수 없었던 것뿐이야. 왜 모르겠니. 어느 도시든, 아니 뉘·즈제의 구석에 있는 작은 섬이라도 언제나 우리를 미워하는 아움이 있단다. 그래, 말해 줄 수 있니? 우리를 도와줄 수 있겠니? 네가 말해 준다면, 어쩌면 이 도시의 군인들이 할 일이 많아질 수도 있겠구나.
    우아한 자들은 이런 상황에서도 이렇게 말합니다. 잘 들어두십시오, 젊은 양반. 분명 그도 전선으로 가기 싫었을 겁니다. 그리고 그는 제 증언에 따라 전선으로 가지 않을 수도 있다는 걸 알았습니다. 그럼에도 그는 ‘나’가 아니라 ‘우리’를, 그것도 도와달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도시의 군인들도 할 일이 있을 거라고 했습니다. 어쩌면 저를 거꾸로 매달아 놓고 두들겨 패면서 물어볼 수도 있었을 겁니다. 그러면 저는 그와의 우정이든 뭐든, 애국이든 뭐든 단숨에 다 떠벌렸을 겁니다. 하지만 그는 그러지 않았습니다. 그는 제게 정중하게 물었습니다. 물론 제 이 비열한 주둥이는 그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대답했습니다.
    그래요. 좋아요. 아저씨, 잘 들어두세요. 87번 구역의 므이타리안이라는 남자가 있어요. 그는 작은 중력조절기 가게를 운영하고 있거든요. 그가 레지스탕스예요. 혹시 작년에 단-마드에서 벌어진 장성 파티 폭탄 테러를 아세요?
    그래 알다마다, 오 하느님, 내 친구도 그날 죽었단다.
    그 폭탄 테러를 저지른 게 므이타리안이에요.
    그래, 놀랍구나. 아니 놀랍지 않아, 듣고 보니 일리가 있다. 이미 우리 쪽에서도 조사가 어느 정도 진행됐거든. 그 테러에 쓰인 폭탄이 매우 정교해서 기계에 능통한 자일 거라고 잠정적으로 결론이 나 있었단다. 근데 중력조절기 엔지니어라면 충분히 할 수 있지.
    그는 제 손을 잡고 몇 번이나 고맙다고 말했습니다. 저는 그의 따뜻한 손을 맞잡으면서, 왠지 눈물이 날 것 같았습니다.
    다음날 므이타리안은 바로 붙잡혔습니다. 그가 지독한 고문 끝에 동료를 불었다는 소식도 전해졌습니다. 그리고 일주일 동안 군인들이 온 도시를 들쑤시고 다니는 걸 자주 볼 수 있었습니다. 결국 그의 동료 두 명도 붙잡혔다고 했습니다. 열흘이 지나고 광장에는 므이타리안과 그의 동료 두 명이 목이 매달린 채 전시되었습니다. 저는 그 앞을 황황하게 지나쳤습니다. 므이타리안은 조용하고 친절한 남자였습니다. 그는 잘 웃지 않았지만, 언제나 우리 같은 비렁뱅이 꼬마들을 위해 가게 뒷문 옆에 꼼꼼하게 포장된 빵 두 덩어리를 놓아두는 남자였습니다. 그의 빵은 언제나 부드럽고 깨끗해서 우린 모두 그 빵을 차지하고 싶어 했습니다. 그래서 우린 순번을 정해 그 빵을 먹었습니다. 우린 모두 그를 좋아했습니다. 그 므이타리안을 제가 팔아먹은 겁니다.
    며칠 뒤 남자와 저는 다시 만났습니다. 그는 식사 도중에 품에서 픤그로(金) 두 덩어리를 꺼내 제게 내밀었습니다. 제 덕분이라고, 덕분에 이 사건을 진두지휘 했던 그는 훈장을 받았다고. 픤그로, 저는 사실 그 당시까지 한 번도 가져 본 적 없는 큰돈이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걸 받지 않았습니다. 저는 도리어 화를 냈습니다.
    아저씨, 우린 친구 아니에요? 전 그런 걸 바라지 않았어요. 지금 아저씬 제 얼굴에 가래를 뱉고 있다고요.
    제 기세에 놀랐는지 그는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이렇게 말했습니다.
    미안하다. 우린 그래, 친군데, 그래, 너는 우리의 우정을 증명하고 싶었던 거야, 진짜 친구, 진정한 친구였던 거야, 어린 너보다 내가 못났구나, 미안하다.
    그래도 저는 분이 풀리지 않았습니다. 무언가 참을 수 없는 것들이 제 몸을 뜨겁게 만들었고 머리가 어지러웠습니다. 화가 나서 미쳐버릴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그런 건지 저는 마구 지껄였습니다. 매일 군인들의 이불을 세탁하는 도라 아줌마의 정체와 뒷골목에 숨어 사는 첩자들과 각종 음모와 배신에 대해 정신없이 말했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렇게 된 겁니다.
    그리고 역시 다음날 어김없이 도라 아줌마를 비롯한 많은 아움들이 체포되었고, 처형되었고, 며칠 뒤에 저는 또 다른 정보를 그에게 넘겼고, 또다시 많은 아움들이 광장에 매달렸습니다. 그게 바로 콤느그·스베크의 1차 소탕 작전입니다. 그 첫 번째 소탕 작전은 2년 동안 지속됐습니다. 그 2년 동안 도시는 쑥대밭이 됐습니다. 매일같이 누군가가 체포되거나 고문당하거나 처형됐습니다. 도시는 준 계엄 상태에 돌입해 도시 어느 곳을 가든 군인들이 긴장한 낯빛으로 서 있었습니다. 이제 콤느그·스베크는 중부에서 군인들이 가장 바쁜 도시가 된 것처럼 보였습니다.
    모두 그 군인이 제게 해준 말이었습니다. 그는 저를 진정한 애국자라고 불렀습니다. 진정한 벗이라고도 불렀습니다. 때때로 내 아들이라고도 불렀습니다. 그렇습니다. 세상은 고통에 빠졌지만, 우리의 우정은 더 깊어졌던 겁니다.
    어느 날, 그는 제게 이런 말을 했습니다.
    얘야, 아무래도 곧 전쟁이 끝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드는구나. 너도 잘 알겠지만, 이 전쟁은 그저 시간의 문제란다. 전쟁이 뉘·즈제에서 벌어지는 이상 결국은 우리가 이길 수밖에 없단다. 그때가 되면 나도 우리 행성으로 돌아가겠지.
    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너는 무얼 할 생각이냐? 계획이 있느냐?
    없어요. 아무것도 없어요. 내일이라고 불리는 건, 주어진 적도 배워 본 적도 없어요.
    그래, 그건 슬픈 일이지만, 내겐 오히려 다행이라는 생각이 드는구나. 얘야, 말사토야, 혹시 괜찮다면 전쟁이 끝난 후 나를 따라가지 않겠느냐? 내 아들이 되어다오.
    그건 생각할 여지도 없었습니다. 전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그러자 그는 기쁜 표정으로 손가락에 끼고 있던 두꺼운 반지를 빼서 제 엄지손가락에 끼워 줬습니다.
    이건 우리 집안에서 대대로 내려오는 반지이다. 이건 내 약속의 증거란다. 네가 이제 내 큰아들이라는 증거란다.
    그러고 그는 저를 따뜻하게 안아 주었습니다. 자, 보십시오. 이게 바로 그 반지입니다. 당시에는 엄지에 맞았던 반지입니다.”
    그는 개를 쓰다듬던 손을 들어 보였다. 그러자 검은 개는 잠에서 깨어 불안한 눈빛으로 노인의 손을, 그리고 노인의 왼쪽 얼굴과 오른쪽 얼굴을 번갈아 쳐다봤다. 노인은 계속 말했다.
    “이젠 살이 쪄서 약지가 아니면 들어가지 않습니다. 전 이 반지를 단 한순간도 몸에서 뗀 적이 없습니다. 113년이 지난 지금도 이럴진대, 당시에는 어땠을지 생각해 보십시오. 마침 그날은 그 계절의 열두 번째 레나스키였습니다. 그는 제게 당장 그 집에서 잠을 자도 좋다고 했지만, 저는 그날 혼자 있고 싶었습니다. 나도 내 나름대로 정리할 것이 있다고 했습니다. 그날 종탑이 보이는 옥상으로 돌아온 저는 잠을 잘 수 없었습니다. 처음 그를 봤을 때를 떠올렸습니다. 그의 부드러운 갈색 피부를 떠올렸습니다. 그의 우아한 표정과 단정한 말투를 떠올렸습니다. 그의 부드러운 침대와 배려를 떠올렸습니다. 그런 집에서 살고 싶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남자의 아들이 되고 싶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막상 현실에 이르자 무서워졌습니다. 이게 진실일까? 어디선가 사실은 거짓말이라고, 너는 속고 있다고 누군가 가르쳐주지 않을까? 만약 그런 거라면, 만약 누군가 내게 진실을 가르쳐준다면, 되도록 일찍 그런 일이 생겼으면 좋겠다고. 이 반지를 쓰다듬으며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그날도 시간마다 종탑의 종이 울렸습니다. 종이 울릴 때마다 제 기쁨도 두려움도 배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제게 달려든 행복에 지쳐 한참만에 잠이 들었습니다. 잠이 들자, 눈을 감자 저는 편안한 어둠 속으로 들어갔습니다.”

 

    *
    우주선이 부르르 진동했다. 하지만 미사일은 발사되지 않았다. 몇 번이나 크루잎이 발사를 지시했지만, 덜컥 하고 발사 장치가 답답하게 작동하는 소리만 들리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어쩌면 고열에 장치가 망가진 것일 수도 있었다.
    다시 우주선은 여덟 바퀴를 돌았다. 우주선은 뵐 행성으로 가라앉고 있었다. 므스느그흠의 머리카락이 타기 시작했다. 우주선 내부의 고열 때문이었다. 므스느그흠은 힘겹게 팔을 들어 좌우에 있는 박스를 열고 두 개의 레버를 잡았다. 3차 추진 장치를 분리하는 레버였다. 우주선은 총 열두 개의 모듈로 구성되어 있었다. 여러 상황에 따라 각 모듈을 분리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건 위험이 크기 때문에 언제나 수동 레버와 크루잎의 승인이 동시에 이뤄져야 했다. 이 3차 추진 장치에 미사일 수납고가 있었다. 분리된 수납고가 101-툼-57의 대기로 날아가면 계산된 타이밍에 크루잎은 원격으로 미사일의 폭발을 지시할 것이었다. 그러면 여섯 개의 중성자탄이 동시에 폭발할 것이었다. 그 폭발을 우주선이 감당할 수 있을까? 혹은 그 폭발을 크루잎이 계산할 수 있을까? 이 결정은 므스느그흠의 어떤 직감이었다. 생존율은 그러므로 계산할 수 없었다. 하지만 이제 다른 선택은 없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면,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었다. 그는 크루잎에 3차 추진 장치까지 한꺼번에 분리하라고 지시했다.
    우주선의 속도는 경이로울 정도였다. 므스느그흠이 경험해 본 속도 중 가장 빠른 속도였다. 어쩌면 이게 우주의 감각일까? 그는 그렇게 생각했다. 피부가 타는 냄새를 맡으며 그렇게 생각했다. 피부뿐만이 아니었다. 눈앞이 뿌옇게 보이는 걸 보니 그의 안구도 익어 가고 있는 것 같았다. 우주선 창으로 멀리 별들이 보였다. 손상된 각막 위로 별들은 하얀 선처럼 늘어져 보였다. 수천억 개의 하얀 선이 창문에 새겨졌다. 그는 언제나 도망가고 싶었지만, 깨닫고 보면 한 발자국도 벗어나지 못했다. 알고 있었다. 그는 늘 누나의 품속에서 떨던 그 시간에 머물러 있었다. 아니 오히려 더 깊이 더 깊이 그때로 돌아가고 있었다. 아니 돌아가고 싶었다. 보이지 않는 행성, 저 어두운 공간으로 가라앉고 있는 지금처럼.
    뜨겁다.
    온몸이, 그리고 눈이 타들어가는 고통이 므스느그흠을 파고들었다. 뜨겁다. 뜨거워. 엄마도 그랬을까? 그래서 매일 뜨겁다고 소리를 질렀던 걸까? 죽기 직전의 엄마는 고깃덩어리 같았다. 쥴·즈제의 병사로 근무할 때 많은 반란군을 죽였다. 하지만 그 누구도 엄마보다 끔찍하지 않았다. 마치 칼로 후비는 듯 고통이 선명해질수록 정신도 명료해졌다. 그때 엄마는 죽고 싶었을까? 차라리 죽고 싶었을까? 그럼 나는? 나는 그래도 살아야 하나?
    그러자 깊은 곳에서 어떤 목소리가 들려왔다. 마치 그의 내면의 귀가 있다면, 그 귀에 직접 입을 갖다 대고 말하는 듯했다. 그 목소리는 마치 속삭이는 듯했고, 고함을 치는 듯도 했다. 그건 말 같기도 했고, 신음 같기도 했다. 어쩌면 그건 언어화되기 이전의 목소리였다. 하지만 그것은 마치 손끝의 촉감처럼 명료한 목소리였다. 그건 누부이 튜브에서 므스느그흠이 기다리던 목소리였다. 그가 계속 기다려 온 목소리였다. 그 목소리는 므스느그흠이 들었다고 느끼는 순간, 어느새 그의 내부에 똬리를 틀었다. 마치 언제나 그 자리에 있던 것처럼 그랬다. 어쩌면 그 대답은 언제나 그 안에 있어 왔는지도 몰랐다. 알 수 없지만 그랬다. 오래전처럼 그랬다. 그랬을지도 모른다, 라고 므스느그흠은 생각했다.
    므스느그흠은 레버를 힘껏 잡아당겼다. 그러자 덜컹 하고 3차 추친 장치가 분리됐다. 여섯 발의 중성자탄과 함께 분리됐다. 이제 곧 거대한 폭발이 일어날 것이었다.

 

    *
    가자.

 

    *
    마르죠욘은 말했다.
    “어느 날이었어요. 그날도 저는 같은 꿈을 꿨어요. 하지만 그날은 꿈을 끝까지 꾸지 못하고 일어났어요. 왜냐하면 지진 때문에 중간에 잠에서 깨야 했기 때문이에요. 잠결에 갑자기 땅이 우르르 울렸어요. 제가 잠에서 깨고 나서도 두세 차례 땅이 울렸어요. 이상했어요. 불길했어요. 하지만 더 이상한 일이 곧 생겼어요. 제가 침대에서 내려와 신발을 신으려고 보니까 제 신발 앞에 제 아이의 신발이 가지런히 놓여 있는 게 아니겠어요? 그 신발은 제가 창가 선반에 올려놓은 신발이었어요. 근데 그게 제 신발 앞에 떨어진 모양이었어요. 이상하지 않아요? 지진 때문에 떨어진 신발이 그렇게 가지런히 놓여 있다니. 하지만 더 들어 보세요. 아직 끝나지 않았어요. 아니 한참 남았어요.”
    그녀의 목소리는 고조되어 있었고, 그녀의 왼쪽 눈은 꿈속으로 들어가는 듯했다. 그녀는 빠른 목소리로 말했다.
    “제가 신발을 신고 일어서자마자 다시 지진이 일어났어요. 이번에는 아까보다 더 크게 우르르르 하면서 말이에요. 그러자 아이의 신발이 진동 때문인지 제 앞에서 타다닥 하고 걸어가듯이 저 앞으로 가는 거예요. 그건 마치 제 아이의 영혼이, 그러니까 꿈처럼 돌아온 것만 같았어요. 저는 저도 모르게 말했어요. 어디 있니, 내 아가야, 엄마 옆에 있니? 하지만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어요. 저는 다시 한 번 말했어요. 제발, 이 엄마의 왼쪽 눈앞으로 와주렴, 오른쪽에 있으면 엄마는 널 볼 수 없단다. 역시 대답이 없었어요. 저는 울어버리고 말았어요. 침대에 주저앉아서 한참을 울었어요. 그렇게 부은 눈으로 출근을 했어요. 제가 출근하자, 조가욘이 말했어요.
    마르죠욘, 눈이 왜 그래? 또 울었구나. 불쌍한 내 친구, 불쌍한 마르죠욘.
    제가 조가욘에 대해 말했나요? 그녀는 정말 좋은 친구였어요. 그녀는 쥴·즈제인이었어요. 우린 오랫동안 함께 일했어요. 제가 지구에 오고 나서 어느 순간부터 그녀의 소식을 들을 수 없었어요. 제가 글자를 계속 보냈지만, 어느 순간부터 답장이 없었어요(성간양자통신기로 지구-즈제 간 성간 통신은 가능하다. 하지만 글자 개수에 제한이 있고, 메시지가 도달하기까지 일주일 정도 걸렸다. 이 메시지를 ‘글자’라고 불렀다). 그녀는 늘 이 땅에 자기를 좋아하는 아움이 없다고 울었어요. 외롭다고 울었어요. 어쩌면 그녀도 지구로 떠났을 수도 있어요. 그렇다면 그녀는 우주에서 죽었을 수도 있어요. 그녀가 행복했으면 좋겠어요.
    그날 전 실수를 많이 했어요. 시체를 자르지 않고 비행 수레에 넣는가 하면, 매뉴얼과 다르게 잘라서 내장이 조가욘에게 튀기도 했어요. 마침 그날은 많은 아움이 처형된 날이었어요. 콤느그·스베크에서부터 활동했던 레지스탕스들이 일제히 잡혔다고 했어요. 그들은 대단한 아움들이라고 했어요. ‘1차 소탕 작전’ 때부터 지금까지 살아남은 자들이라고 했어요. 종전 이후 가장 집요하게 저항한 자들이라고 했어요. 그들의 시체는 모두 삼백삼십팔 구였고요. 5번 언덕에서 맞은편에 있는 67번 골짜기까지 그들의 시체가 널려 있었어요. 그 많은 걸 겨우 우리 열두 명이서 치우고 있었어요. 그때였어요. 총소리가 들려왔어요. 67번 골짜기에서 들려오는 거였어요. 그곳은 특히 시체가 많은 곳이었어요. 그곳에서부터 소란스러운 소리들이 들렸어요. 조가욘과 저는 손을 놓고 불안한 눈빛을 주고받았어요. 저는 말했어요.
    조가욘, 무슨 일일까? 난 무서워.
    마르죠욘, 아무 일도 없을 거야. 우리가 걱정할 일은 없을 거야. 걱정할 일이란 가진 놈들의 일이거든.
    조가욘은 웃었지만, 전 웃을 수 없었어요. 저는 다시 말했어요.
    조가욘, 오늘 나한테 무슨 일이 있었는지 말하면 너도 웃을 수 없을 거야.
    무슨 일이 있었는데?
    제가 조가욘에게 오늘 잠에서 깨어났을 때의 일을 말하려고 하는데, 한 소년이 저를 스치고 지나갔어요. 아주 절박한 기세로 달려가고 있었어요. 저기 67번 골짜기로요. 총소리와 좌절과 죽음의 냄새가 고여 있는 그 흉측한 골짜기로요. 그 아이가 저를 지나간 그 순간, 저는 저도 모르게 제 앞의 아이를 쫓아서 뛰고 있었어요. 왜 그랬을까? 정말 왜 그랬을까요? 저는 뛰어가면서도 제가 그러는 이유를 알 수 없었어요. 어쩌면 지진 때문일 수도 있고, 어쩌면 제 아이의 신발 때문일 수도 있어요. 어쩌면 그 모든 것 때문일 수도 있을 거예요. 어쨌든 그건 저항할 수 없는 거였어요. 저항하기는커녕 그건 이미 제 온몸을 지배하고 있었어요. 그때 조가욘은 놀라서 저를 따라오면서 수십 번도 더 불렀다고 해요. 하지만 저는 이미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 상태였어요. 제 모든 감각은 닫혀 있었고 오직 왼쪽 눈만 살아서 그 아이의 뒤꽁무니를 쫓고 있었어요.
    그리고 67번 골짜기로 접어들 때쯤, 그 꿈처럼, 저는 시체에 걸려 냅다 넘어지고 말았어요. 제가 넘어지는 소리가 요란했는지, 그 아이가 멈춰서 고개를 돌렸어요. 그 아이는 제 아이와 닮지 않았어요. 지금 생각해 보면 그건 분명해요. 하지만 이상해요. 정말 이상해요. 전 제 눈으로 제 아이와 닮지 않은 그 아이를 멍하니 쳐다보면서도, 그 작고 빼빼 마른 아이가, 그 입이 삐뚤어진 아이가, 우리 아이처럼 보였던 거예요. 달려가는 아이, 넘어진 나. 이건 꿈, 확실히 꿈. 그게 꿈이라면, 정말 꿈이라면 이제 저는 제가 걸려 넘어진 시체를 확인해야 하는 거였어요. 제가 걸려 넘어진 건 어떤 여자의 시체였어요. 넘어지자마자 알고 있었어요. 아니요, 아이를 쫓아가면서부터 알고 있었어요. 어쩌면 저는 그날 지진 때문에 잠에서 깨면서 이미 알고 있었는지도 몰라요. 내가 여자 시체에 걸려 넘어질 거라는 사실을요. 그래요, 그건 꿈이니까요. 어쨌든 제 몸은 이미 움직이고 있었어요. 지난 6년간 수백 번 반복해 온 그 짓을 알아서 하고 있었어요. 저는 확인하지 않을 수 없었어요. 제가 어떻게 확인하지 않을 수 있겠어요? 저는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그 엎어져 있는 시체의 얼굴을 뒤집었어요.
    그러자 오른쪽 눈이 없는 얼굴이 드러났어요. 오른쪽이 어둡게 패어 있는 그 얼굴이 드러났어요. 그녀의 남아 있는 왼쪽 눈은 감기지 않은 채 어느 먼 곳을 바라보고 있었어요. 그 먼 곳이 어딘지 모르겠지만, 아마 꿈속에서 제가 보고 있던 곳과 같은 곳이었겠죠? 저는 비명을 질렀어요. 너무 끔찍한 광경이었으니까요. 지르지 않을 수 없었어요. 비명을 지르며 고개를 젖히자 하늘에 떠 있는 압의 햇살이 제 왼쪽 눈에 꽂혀 들어왔어요. 눈앞이 하얗게 번져 갔어요. 그리고 제 아이의 말이 들렸어요.
    엄마, 도망가!
    그제야, 그제서야, 6년 동안 들리지 않던 제 아이의 말이 들렸던 거예요. 제 아이의 말은 들렸다 싶은 순간 이미 제 온몸으로 흡수됐어요. 어쩌면 그 말은 이미 제 안에 있었던 건지도 몰라요. 그건 들려온 게 아니라 제 안에서 끄집어내진 건지도 몰라요. 어쨌든 그건 기쁜 일이었어요. 제 아이의 말을 드디어 들었으니까요. 하지만 그건 또 무서운 일이기도 했어요. 그 꿈은 무서운 꿈이었으니까요. 그래서 저는 어떤 감동과 무서움 때문에 경직됐고, 이내 정신을 잃고 말았어요.
    눈을 떠보니 제 침대 위였어요. 조가욘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저를 돌보고 있었어요. 저는 울면서 허겁지겁 그날 있었던 일을 조가욘에게 말했어요. 그녀는 말했어요.
    불쌍한 내 친구, 불쌍한 마르죠욘, 내 마음이 너무 아파. 이 집은 너무 어두워. 마르죠욘, 나는 너무 마음이 아파.
    그리고 그녀는 말해 줬어요. 제가 본 한쪽 눈이 없는 여자 시체는 유명한 레지스탕스라고 했어요. 그 콤느그·스베크 사건 때, 레지스탕스 소탕을 주도했던 악명 높은 쥴·즈제 장교를 때려죽인 여자라고 했어요. 늘 작은 손도끼를 들고 다니던 여자라고 했어요. 늘 배에 뉘·즈제의 국기를 두르고 다니던 여자라고 했어요. 오랫동안 반란을 주도하던 여자라고 했어요. 하지만 이제 제게 그런 건 아무 소용이 없었어요. 그 여자가 제가 아니라고 말해도 아무 소용이 없었어요. 사실 그건 표면적인 거예요. 그래요. 그건 아무 소용이 없는 거예요. 그날의 사건들은 징조인 거예요. 징조 말이에요. 징조! 6년, 6년 동안, 그래요 6년 동안. 제 아이는 말해 왔어요. 지난 6년 동안 제 아이는 제게, 끊임없이 말해 왔던 거예요. 이 불쌍한 엄마에게, 창문을 모두 막은 채 살던 엄마에게, 한쪽 눈으로 아무것도 없는 곳을 쳐다보던 엄마에게, 말했던 거예요.
    뉘·즈제를 떠나라고, 도망가라고.
    도망가라고.”
    얘기가 모두 끝났다. 얘기가 끝나자 그녀는 주스가 가득한 아이보리색 잔을 두 손에 쥐고, 창밖을 쳐다본 채 입을 다물었다. 그녀는 마치 텅 빈 오른쪽 눈으로만 보고 있는 것만 같았다. 창가 너머, 캘리포니아 바다 너머, 지구와 태양계 너머 어느 곳을. 그러고 문득 그녀는 정신이 돌아온 듯 잔에 든 주스를 단숨에 마셨다. 그제야 그녀는 원래의 평온하고 부드러운 낯빛으로 돌아왔다.
    마르죠온은 말했다.
    “말하자면 지구는 제 아이가 제게 마련해 준 곳이에요.”
    그녀는 다시 말했다.
    “저기요, 물어볼 게 있어요. 이제 즈제인들의 서명은 많이 모였나요? 아무래도 지구는 없어지는 건가요?”
    또다시 말했다.
    “그렇군요. 그렇게 되는 거군요. 저는 이해할 수 있어요. 제가 이해하지 못하는 건 없어요. 부탁이 있어요. 내일 다시 한 번 저를 찾아와 주세요. 내일 서명을 해드릴게요. 아니요, 오늘은 할 수 없어요. 그냥 그래요. 내일 할게요. 약속해 줘요. 꼭 와줘요.
    그래요. 고마워요. 가세요. 그리고 내일 같은 시간에 와주세요. 내일 저를 꼭 다시 찾아와 주세요. 고마워요, 고마워요.”
    그리고 여자는 미소를 지었다.
    다음날 그녀를 다시 찾아갔을 때, 그녀는 목을 매달고 죽어 있었다. 그녀의 식탁 위에는 커다란 아이보리색 잔과 속이 빈 커다란 오렌지주스 통이 있었다.

 

    *
    노인은 다시 말했다.
    “잠에서 깨자 다시 뉘·즈제였습니다. 하늘이 고통스러울 정도로 밝고 푸른, 그 뉘·즈제 말입니다. 저 하늘 너머 삭막한 쥴·즈제가 커다랗게 걸려 있는 그 뉘·즈제 말입니다. 저는 쉴 새 없이 울려대는 종소리에 놀라 눈을 뜬 것이었습니다. 보통 종은 시간마다 한 번씩 쳤습니다. 근데 무슨 일인지 그 종소리가 그치질 않았습니다. 뿐만 아니었습니다. 종소리보다 더 큰 소리가, 함성과 비명이, 고함이 들려오고 있었습니다. 저는 옥상 난간 밖으로 몸을 빼서 저 아래 광장을 보았습니다. 광장엔 아움들이 가득했습니다. 마치 이 도시의 모든 아움이 모인 것만 같았습니다. 그들 앞에는 높은 단상이 있었고, 그 연단에 키가 크고 마른 남자가 올라서서 연설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가 말을 잠시 멈출 때마다 관중은 환호성을 질러댔습니다. 저는 그 남자를 알고 있었습니다. 그는 바디스두다라고 불리는 남자였습니다. 그는 콤느그·스베크 레지스탕스의 주요 인물 중 하나였습니다. 그는 수학자 출신이었고, 생선을 파는 남자였습니다. 그는 항상 누군가를 만나면 즈제의 관습적으로 잘못된 날짜 계산법에 대해 떠들어대곤 하는 남자였습니다. 하지만 언제나 눈빛이 무서운 남자였습니다. 저는 그 역시 고발했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극적으로 포위망을 뚫고 사라진 후 일 년간 보이지 않았습니다. 근데 그 바디스두다가 돌아왔던 겁니다. 돌아왔다니! 그가 돌아왔다니! 레지스탕스가 아움들 앞에 저렇게 당당하게 서 있다니! 그러면 아저씨는? 아저씨는? 저는 금세 그 생각에 도달했습니다. 그리고 정신없이 옥상에서 내려와 아저씨의 집으로 달려갔습니다. 가는 길 곳곳에서 아움들이 노래를 부르거나 국기를 흔들거나 폭죽을 터뜨리고 있었고, 죽은 군인들과 죽은 시민들이 여기저기 쓰러져 있기도 했습니다. 혹은 발가벗겨진 누군가가 두들겨 맞고 있기도 했습니다. 그의 집 앞에서 한 외눈박이 소녀가 저에게 아는 척을 했습니다. 그녀의 손에는 피 칠갑이 된 손도끼가 들려 있었습니다. 그녀는 담배를 피우며 제게 말했습니다.
    이봐, 애국자 꼬마야, 마침 잘 왔어. 얼른 네 품의 국기를 꺼내 봐, 어서.
    저는 대답 없이 그녀 옆을 지나 계단을 올랐습니다. 그의 집이 있는 5층까지 단숨에 올라갔습니다. 그리고 그 집에 이르러서야, 물론 짐작하고 있었지만, 모든 게 끝났다는 걸 알 수 있었습니다. 문은 박살이 나 있었고, 집 안은 엉망진창이었습니다. 그곳에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이게 바로 그 유명한 콤느그·스베크 사건입니다. 이후의 이야기들은 당신도 아는 바대로입니다. 해방과 기쁨, 하지만 학살과 배신, 뒤이어 찾아온 고난과 슬픔, 그리고 절망들. 하지만 지금은 제 개인적인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제 이야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여기저기 수소문해 보니 아저씨는 레지스탕스들에게 잡혀간 것이 맞았습니다. 그리고 네 번째 식사가 끝날 시간에 광장에서 교수형에 처해질 거라고 했습니다. 그는 특히 도시 내 반군 소탕에 앞장섰던 인물이니만큼 죽음을 피할 수 없을 거라고 했습니다. 종일 저는 온 도시를 걸어 다녔습니다. 어딘가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곳으로, 그러니까 어둠 속으로 들어가고 싶었지만, 아시다시피 뉘·즈제에 그런 곳은 없었습니다. 저는 아저씨가 제 손에 끼워 준 반지를 손에 쥐고, 그 손에 쥐가 날 때까지 걸어 다니면서 울었습니다. 저는 납득할 수 없었습니다. 세상을 납득할 수 없었습니다. 빌어먹을 세상, 역겨운 세상. 할머니는 제게 언제나, 행복하길 바라는 건 천박한 마음이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그런 걸 바라지 못한다면 대체 왜 살아 있어야 하는 걸까요? 그땐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물론 지금은 이해합니다. 할머니가 하고 싶은 말은 그런 게 아니었던 겁니다. 지금은 알고 있습니다. 저기 저 양동이가 보이시나요? 제 아이들과 손자들이 태어났을 때 저는 저 양동이로 몸을 씻겼습니다. 하지만 제 가족이 모두 죽고 난 지금, 저 양동이는 제가 종종 거위의 멱을 딸 때 사용하곤 합니다. 이런 게 아닐까요? 인생이란 이 양동이 같은 게 아닐까요? 할머니는 그걸 말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요?
    계속 말을 해도 괜찮을까요? 이제 다 끝나 갑니다. 그래요 이제 다 끝난 얘기입니다. 걷고 걷다가 광장에 돌아온 것은 늦은 시간이었습니다. 네 번째 식사가 끝나고도 한참 뒤였습니다. 도시에서는 축제가 계속되고 있었습니다. 도시 골목길 깊은 곳에서도 유쾌한 웃음소리가 들려왔습니다. 그런 하루였습니다. 광장은 특히 그랬습니다. 광장 곳곳에 아움들이 주저앉거나 춤을 추면서 술을 마셨습니다. 그 승리의 행복이 넘실대는 광장 한가운데, 연단 위에, 서른 구의 목 매달린 시체 속에, 햇빛 아래에, 아저씨가 있었습니다.
    아저씨, 내 아버지.
    저는 멍하니 그에게 다가갔습니다. 가까이에서 보니 그는 죽기 전에 이미 심한 고초를 받은 듯 보였습니다. 그 잘생긴 얼굴은 심해어처럼 퍼렇게 부풀어 있었고, 두 팔은 부러져 있었습니다. 그리고 허벅지와 옆구리는 작은 손도끼에 여러 번 찍힌 듯이 피로 젖어 있었습니다. 무슨 말을 더 해야 할까요? 저는 그 도시에서 유일한 제 친구와 제 가족을 잃은 것입니다.
    교수대 아래에 몇몇 아움들이 둥글게 둘러앉아 술을 마시고 있었습니다. 그 가운데 낮에 마주친 외눈박이 소녀, 오른쪽 눈이 없는 그 소녀가 있었습니다. 그녀는 저를 보고 다시 말했습니다.
    이봐, 애국자 꼬마야, 마침 아주 잘 왔어. 네 품안에 있는 그 국기 좀 꺼내 봐. 그 유명한 국기를 꺼내 보란 말야.
    저는 제 배를 감싸고 있던 낡은 국기를 풀었습니다. 그건 할머니가 물려주신 거였습니다. 그 국기는 제 아버지의 품에서 꺼낸 거라고 했습니다. 검은 얼룩은 아버지의 피라고 했습니다. 저는 그 국기를 소녀에게 주었습니다. 술에 취한 소녀는 비틀거리며 교수대의 기둥을 기어올랐습니다. 아마 거기에 국기를 매달려는 것 같았습니다. 그 모습을 지켜보다가 저는 그곳을 떠났습니다. 아니 이미 저는 뉘·즈제를 떠난 거였습니다.
    그 군인의 이름은 꼬뚜라고 했습니다. 그날 이전까지 제 이름은 말사토였습니다. 하지만 이제 저는 꼬뚜라고 불립니다.”

 

    *
    밤이 되었다.

 

    *
    꼬뚜 노인은 말했다. 그는 의자에 앉아 있었다. 실내는 어두웠고, 그의 곁에 서 있는 검은 개의 이빨이 반짝거렸다.
    “다시 오실 줄 알았습니다. 밤이 찾아오면 당신도 찾아올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밤은 모든 것을 덮어버리니까요. 밤은 죽음의 시간이니까요.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으십니까? 즈제인이 밤의 의미를 깨닫는다는 것을요. 하지만 당신도 아시다시피, 우리 즈제인들은 모두 밤을 알고 있습니다. 284년은 밤이 아닌가요? 두 개의 즈제 행성 사이에 있는 우주는 밤이 아닌가요? 귀를 기울여 보십시오. 전 때때로 우주의 소리를 듣습니다. 그 소리는 마치 종탑의 종처럼 댕댕 하고 제 고막까지 다다릅니다. 그러면 저는 깨닫게 됩니다. 우리는 지구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주에 있는 거라고 깨닫습니다. 역시, 역시 그 손도끼를 선택하셨군요. 아까 양동이 옆에 있는 손도끼를 유심히 쳐다보는 것도 눈치 채고 있었습니다. 당신이 누군가를 죽이는 것에 익숙한 아움이라는 것도 눈치 채고 있었습니다. 그 손도끼는 제가 거위의 목을 칠 때 쓰던 겁니다. 알고 계시겠지요? 자, 저는 모두 준비되었습니다. 괜찮습니다. 괜찮습니다. 저는 두렵지 않습니다. 어쩌면, 지금에 와서 하는 말이라 우습겠지만, 저는 이 순간만을 기다려 왔다는 생각마저 듭니다. 저는 지구에서 늘 행복해지지 않으려고 노력해 왔습니다. 하지만 이제 끝낼 수 있게 됐습니다. 이제 지쳤습니다. 제가 없어진다면, 당신 일은 여러모로 수월해지겠지요.
    끝내기 전에 부탁이 하나 있습니다. 마지막 부탁입니다.”
    노인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자 창으로 들어온 달빛이 그의 얼굴을 비췄다. 그의 왼쪽 얼굴은 움직이지 않았고, 오른쪽 얼굴은 침울하게 웃고 있었다.
    “제 개가 보지 않는 곳에서 죽여주십시오.”
    그러고 노인은 달빛이 미치지 않는 골방으로 들어갔다. 남겨진 검은 개는 어둠 속을 불안한 듯이 빙글빙글 돌았다.

 

    *
    며칠 전이었다. 므스느그흠은 오르트 구름대에 있었다. 그는 한 달 동안 한숨도 자지 못했다. 우주선은 지루할 만큼 천천히 이 지대를 통과하고 있었다. 므스느그흠은 우주선 창에 얼굴을 기댔다. 창문은 우주의 냉기가 서려 차가웠다. 차갑고 어두웠다. 그리고 넓었다. 오르트 구름대 또한 넓었다. 넓고 섬뜩했다. 사방에 널린 수많은 돌덩어리들은 행성이, 항성이, 그리고 은하가 죽어가면서 남긴 흔적들이었다. 암석들 사이사이에 우주선의 잔재들이 있었다. 대부분 난민들의 구형 우주선이라고 했다. 많은 난민들이 오르트 구름대에서 표류한다고 했다. 그리고 우주선과 함께 죽어간다고 했다. 그 우주선들도 암석들도 제멋대로 움직이고 있었다. 무시무시한 속도로 날아가는가 하면 제자리에서 빙글빙글 도는 것도 있었다. 또는 미동도 하지 않는 것도 있었다. 이곳은 태양계와 다른 항성계 중간 어느 지역쯤이었다. 중력이 묘하게 일그러진 곳이었다. 이곳에 남아 있는 것들, 그것들은 어디로도 가지 못한 채 묶여 있는 것이었다. 그건 남아 있는 어떤 사고들이었다. 마치 이전 생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처럼 보였다. 므스느그흠도 그랬다. 그 역시 정밀한 항도 계산 장치가 없었더라면, 자신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 가늠이 되지 않았다. 아니 우주선이 움직이는지도 알 수 없었다. 이 어둠 속에 가만히 멈춰 서 있는 것만 같았다. 하지만 가고 있었다. 그건 분명했다. 멈춰 있는 것 같지만, 가고 있었다. 지구로 향하는 항로에 부유하는 암석들과 우주선의 파편들이 뒤로 물러나는 걸 보면 분명했다.
    그때였다. 우주 쓰레기 사이에서 커다란 주황색 공 하나가 우주선 쪽으로 흘러왔다. 그것은 유영하듯이 천천히 다가왔다. 거리가 가까워지자 므스느그흠은 비로소 그것이 주황색 우주복을 입은 시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 시체는 다리를 가슴으로 모아 몸을 둥글게 말고 있었다. 그래서 멀리서 보면 공처럼 보였다. 잠시 후 그것은 더 가까이 다가왔다. 보이는 것보다 빠른 속도였다. 그 정도 거리쯤 되자 헬멧 사이로 시체의 얼굴이 보였다. 그는 여자였다. 젊은 여자였다. 여자는 우주 속에서 수분이 모두 빠져나가 미라가 되어 있었다. 얼굴이 육포처럼 변해 있었다. 하지만 살아 있을 적에 어떻게 생겼을지 짐작할 수 있었다. 아주 못생긴 얼굴이었다. 므스느그흠은 그 얼굴을 알고 있었다. 그는 자기도 모르게 소리쳤다.
    “누나.”
    그랬다. 그 시체는 누나였다. 그녀의 얼굴은 49년 전과 다르지 않았다. 우주여서 늙지 않았다. 저 시체를 구해야 한다. 므스느그흠은 그렇게 생각했지만 이상하게 몸이 무거웠다. 그는 창문에 뺨을 댄 채 움직일 수가 없었다. 심지어 몸이 점점 무너져 내려, 창문에서 얼굴이 떨어지려 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다리에 힘을 주고 필사적으로 버텼다. 우주의 쓰레기가 된 누나의 얼굴을 조금이라도 더 보고 싶었다. 누나는 그보다 다섯 살이 많았다. 그녀는 정비공이 되고 싶어 했다. 그녀는 그를 안고 눈물을 흘리곤 했다. 그의 뺨에 뺨을 꼭 갖다 댔다. 그럴 때면 뺨 사이로 차가운 눈물이 고였다. 그녀는 그의 아버지가 되려고 했고, 어머니가 되려고 했다. 그녀는 부모의 딸이 되려고 했다. 그녀는 그녀를 필요로 하는 모든 이들을 위해 무언가 하고 싶어 했다. 그녀는 모든 일에 최선을 다했다. 그녀의 눈은 크고 아름다웠다. 하지만 그녀의 냄새는 말하고 있었다. 이제 어디로 가지, 라고. 언제나 그랬다. 그리고 그 순간 누나의 냄새가 났다. 우주선에 어느새 누나의 냄새가 고여 있었다. 므스느그흠은 누나의 냄새, 슬픈 냄새를 맡으며 누나의 얼굴을 조금이라도 더 보기 위해 눈을 부릅떴다. 꽃씨처럼 부유하던 모습과 다르게 누나의 시체는 순식간에 우주선을 지나쳤다. 이제 다시는 볼 수 없을 것이었다. 그는 누나가 떠난 뒤 늘 두려움에 휩싸여 있었다. 그래서 군인이 되었고, 우주개발회사에 입사했다. 그는 언제나 아주 먼 행성으로 떠나야 했다. 우주에서 홀로 지내야만 했다. 언제나 그랬다. 창으로 보이는 우주는 언제나 어두웠다. 즈제에는 어둠이 없었다. 반면 우주는 대부분 어두웠다. 그가 즈제를 벗어나면 벗어날수록 깊은 땅속으로 들어가는 기분이었다.
    그는 종종 생각했다. 누나를 다시 만나면 어떻게 될까? 누나와 함께 즈제에서 살아야지. 누나는 정비공을 하고, 나는 무엇이라도 해야지. 아버지처럼 시체를 치워도 상관없다. 하지만 그게 무엇이든, 지금보단 나을 것이다. 그땐 정말 끝날 것이다. 이제 더 이상 이 끔찍한 우주로 나오지 말아야지. 끝이다. 정말 끝이다. 그런 생각을 종종 했다. 어떤 외로움이 사무쳐 잠이 오지 않을 적이면(즈제에서든, 우주에서든) 그런 생각에 더 골몰했다. 그래서 임무로 혹은 업무로 새로운 행성에 갈 때마다, 늘 누나의 행적을 뒤져 보곤 했다. 습관처럼.
    하지만 누나와 이렇게 마주칠 줄은 몰랐다. 이런 식이라면 차라리 평생 보지 않는 편이 나았을 것이다.
    끝낼 수 없는 건가?
    피로했다. 아니 늘 피로했다. 이제 끝났다. 끝낼 수 있다는 바람들이 끝났다. 그렇게 생각하자 가슴이 뻥 뚫린 것만 같았다. 므스느그흠은 가슴을 부여잡았다.
    그럼 대체 끝은 어디인가?
    그 순간, 우주선 후미에서 ‘쿵’ 하는 소리가 났다. 무언가 묵직한 게 부딪힌 게 틀림없었다.
    그리고 므스느그흠은 잠에서 깨어났다. 아주 짧은 잠이었다. 몇 초의 잠이었다. 그는 여전히 창문에 뺨을 맞댄 채였다. 창문 밖은 잠들기 전과 다름없었다. 여전히 어두웠고, 여전히 끝이 보이지 않았고, 그래서 여전히 세상 모든 게 멈춘 것처럼 보였다. 방금 난 꿈을 꾼 것일까? 꿈일지도 몰랐다. 하지만 꿈이 아닐 수도 있었다. 우주에서는 어제도 오늘도 같았다. 꿈도 현실도 같았다. 그 순간, 그가 비몽사몽 하는 그 순간, 주황색 덩어리 하나가 빠른 속도로 우주선을 지나쳐 갔다. 그게 무언지 확인할 겨를도 없었다. 그리고 잠시 후 우주선 후미에서 쿵 하고 무언가와 충돌하는 소리가 났다. 우주선이 덜덜 떨렸다. 창문이 파르르 진동했다. 그 진동으로 냉기가 므스느그흠의 뺨에 스며들었다.
    므스느그흠은 다시 눈을 감았다.

 

 

 

 

 

 

 

 

 

 

 

 

 

 

작가소개 / 임승훈

서울 출생. 2011년 《현대문학》 등단

 

   《문장웹진 2018년 0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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