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기린에게 외 1편 - 김지녀
목록

[신작시]

 

 

나의 기린에게

 

 

김지녀

 

 

 

“등 좀 긁어 줘”
나에겐 닿지 않는 곳이었다

 

좋아하는 목소리는 아니지만
나는 고분고분했다

 

“거기 말고 그래 거기
아니 더 옆에”

 

잘 찾지 못하는 목소리는
한 마리 개처럼 누워 혀만 날름거린다

 

‘너에게도 닿지 않는 곳이었구나’

 

갈증이 났다
한 달도 넘게 물 한 모금 안 마실 수 있는 인내가 내게는 없는데
좋아하지 않는 목소리를 들으며 지낸 저녁들은
목이 길어져 휘어지려 한다

 

긴 혀로 자신의 귓속을 청소하는 기린에게
저녁은 풀냄새가 귓속에 가득한 시간
긁지 않아도 시원한 바람이 불어온다

 

혀를 늘어뜨리고
나는 내가 닿지 못하는 곳을 생각한다

 

어딘지 모르겠는데
자꾸만 간지럽다

 

영원히 닿지 않는 곳이 많아서
나는 엉뚱한 곳만 긁고 있다

 

 

 

 

 

 

 

 

 

 

 

 

 

나무와 나 나무 나

 

 

 

잎이 돋을 때였다 잎들이 다 떨어질 걸 알면서
격앙된 목소리로 나무, 를 불렀다
새들이 날아갔다

 

공원에는 아무도 없다
나무와 나 나무 나무 사이에 나뿐이어서
하늘이 빙글빙글 돌았다

 

나무, 가 된다는 상상이 문학적으로 실패란 걸 알지만
나무, 가 된다면 적어도 오늘은 성공이라고 생각했다

 

나무와 나무 나 나무 사이에 나무는 나와
아는 사이 안경알을 닦고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그새 잎들이 더 넓어졌다 하늘이 조금 보인다
누군가 걸어오고 있다
이 장면은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는다

 

나무와 나무 나무 사이에 나 나무가 흔들렸다
언제 와 앉았는지
새들이 또 날아갔다

 

나무, 라고 불렀지만
나무를 말하려고 한 건 아니었다

 

바닥까지는 아니지만 나는 나무를 천천히 만졌다
손끝에서 얇은 가지 하나가 쑥 돋아났다
기차가 떠날 시간이었다

 

 

 

 

 

 

 

 

 

 

 

 

 

 

 

작가소개 / 김지녀

2007년 《세계의 문학》으로 등단. 시집 『시소의 감정』, 『양들의 사회학』

 

   《문장웹진 2018년 04월호》

 

목록

One thought on “나의 기린에게 외 1편

댓글

답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