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그란 말 - 강석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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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소설]

 

 

동그란 말

 

 

강석희

 

 

 

    라디오를 들었다.
    오늘 밤. 하늘에는 특별한 달이 뜬다고 합니다. 아주 크고 둥근 달이 보일 거라고 하네요. 크고 둥근 것은 아름다우니까 그걸 보는 일은 참 좋을 것 같습니다. 그것이 우리를 위로해 줄 거라고, 밤이 되면 우리는 조금씩 더 행복해질 수 있을 거라고, 바라면서 이 오후를 보냅니다.
    디제이의 목소리는 다정했다. 나는 그의 말처럼 행복해질 수 있기를 바라면서도 그럴 수 있을까, 그런 일이 가능할까, 생각했다. 오후의 햇살이 맺혀 있던 천장에 여러 가지 질문이 밀려 들어왔다. 나는 눈을 질끈 감고 그 질문들이 지나가길 기다렸다. 물음표가 나를 낚아채서 어디론가 던질 것 같았다. 모든 물음들을 흘려보내고 난 뒤에 한 가지 물음이 남았다.
    내가 과연 행복해져도 될까?
    미영이네가 이사를 간 날이었다.

 

*

 

    ‘과학을 얼마나 좋아하니?’에는 나름의 대답을 했지만 ‘과학상자를 사올 수 있니?’에는 아무런 대답을 하지 못한 탓에 과학탐구반에 들어가지 못했던 날, 미영이를 처음 보았다. 미영이는 잔디밭에 앉아서 뭔가를 자꾸 입에 넣고 있었다. 가까이 가서 보니 그건 흙이었다. 더 가까이 가보니 손에 지렁이도 한 마리 쥐여 있었다. 미영이에게도 지렁이에게도 아주 위험해 보였다. 미영이는 흙과 함께 꿈틀거리는 지렁이를 순한 눈으로 보다가 입을 아, 벌렸다. 큰일이야, 생각한 나는 잔디로 뛰어들어 미영이의 손을 쳤다. 지렁이가 몸을 뒤틀며 흙속으로 사라졌고 미영이는 에엥, 울음을 터뜨렸다. 빨간 목장갑을 낀 미영이의 어머니가 뛰어왔다. 나는 미영이를 울렸다는 이유로 혼이 날까 무서워졌다.
    “얘가 지렁이를 먹으려고 했어요.”
    미영이 어머니는 애초에 혼낼 생각 같은 건 전혀 없었다는 얼굴로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폭신하고 따뜻한 손이었다. 정수리에 남은 온기에 손을 갖다 대보는 동안 미영이 어머니는 미영이를 품에 안고 남은 손을 나에게 내밀었다. 그 손을 잡고 간 곳은 109동 203호, 우리 옆집이었다. 집 안에는 아직 풀지 않은 이삿짐이 가득했다. 미영이 아버지와 이삿짐센터 직원들이 땀을 흘리며 큰 짐들을 내려놓는 게 보였다. 제자리를 찾지 못한 물건들 사이에서 주스를 한 잔 얻어 마시고 집에 돌아왔다. 미영이 어머니는 문 앞까지 나와 배웅해 주었다.
    “미영아, 오빠한테 안녕, 해야지.”
    어머니의 품에 안긴 미영이의 동그란 머리통이 나를 보며 방긋방긋 웃었다. 나는 그 웃음을 오랫동안 생각했다.

 

    그때 우리들이 살았던 아파트는 집만 빼고 모든 것이 넓었다. 가로로 길게 지어진 5층짜리 건물 하나당 50개의 현관문들이 서로 어깨를 댄 복도식이었다. 단지 내에 그런 건물이 총 10개가 있었고 건물 사이의 간격이 넓었다. 그럼에도 사람들의 사이는 가까워서 건물과 건물 사이에 사람들이 만드는 소리가 채워졌다. 아침이면 학교에 들어가기 전의 어린아이들이 와아아, 소리를 지르며 참새를 쫓아다녔다. 오후가 되면 집안일을 마친 아주머니들이 모여서 멸치 대가리를 따거나 나물거리를 다듬으며 담소를 나누었다. 일주일에 한 번, 야채트럭이 오면 동네 아주머니들이 모여들었다. 110동에 사시던 아주머니 한 분이 항상 나를 불러다 니 고추 저기 있네, 농담을 하셨는데 그때마다 다른 아주머니들이 어디 확인 좀 해봐라, 하는 게 싫어서 트럭이 올 시간이면 숨어 있었다. 해가 지면 회사에서 돌아온 아저씨들이 모여 술을 마시거나, 할머니들이 둘러앉아 돌아가며 노래를 부르곤 했다. 저녁밥을 먹고 나서 창틀에 턱을 댄 채 그 소리들을 듣고 있으면 배가 따뜻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건물들마다 아무 풀이나 자라는 잔디밭이 둘러싸고 있었고 그 바깥은 아스팔트로 된 주차장이었다. 잔디밭은 좋은 놀이터였다. 주차장을 사용할 수 있는 집이 얼마 되지 않아서 주차장에서도 잘 놀았다. 녹이 슨 놀이기구와 거친 모래가 있는 놀이터보다는 잔디밭이나 주차장에서 노는 것이 더 재미있었다. 그곳에서 같이 자라던 아이들은 밝았다. 누가 누구를 부러워하지도 않고 무시하지도 않고 잘 지냈다. 그런 우리를 보며 어른들은 좋은 동네에 살고 있다고 했다. 우리는 주차장에서 달리기 시합을 하거나 술래잡기를 했고, 지치면 잔디밭에 누워 구름이 움직이는 걸 봤다.
    내가 밖에 나가지 않게 된 것은 초등학교 3학년이 되면서였다. 친구들이 길 건너에 생긴 새 아파트로 이사를 갔기 때문이었다. 그 아파트는 우리 아파트에 뾰족하고 긴 그늘을 드리웠다. 그늘은 각도만 바뀔 뿐 없어지는 법 없이 우리 아파트의 이곳저곳을 찔렀다. 하루 종일 들려오던 이런저런 소리들은 갈수록 작아지더니 결국에는 사라졌다. 학교에 가면 엘리베이터나 지하주차장, 무선전화기, 486 컴퓨터에 대해 이야기하는 아이들 사이에서 점점 할 말을 잃어 갔다. 새 아파트에 몇 번 놀러 가 본 적도 있지만 그늘을 등에 지고 집에 돌아올 때면 뭔가 받았다 뺏긴 기분이 들어서 관두게 되었다. 우리도 이사를 가면 안 되냐고 물었다가 아버지가 부실한 반찬을 타박하며 숟가락을 탁 놓고, 어머니도 젓가락을 던지듯이 내려놓으며 그게 내 탓이냐, 말하는 걸 본 후로 학교를 파하면 집 안에서 시간을 보냈다. 덕분에 내가 아는 그 누구보다 라디오 주파수를 잘 잡을 수 있게 되었고, 조숙한 노래 가사들도 빨리 배울 수 있었지만 그런 건 하나도 기쁜 일이 아니었다.

 

 

 

    109동 2층의 사람들이 오랜만에 복도에 모인 건 미영이네 집 덕분이었다. 미영이 부모님이 이사 떡을 돌리던 중에 206호 아저씨가 미영이 아버지를 알아보았다. 두 사람은 고향 선후배 사이였고 언제 밥이나 먹자고 약속한 것이 몸집을 키워 다 함께 고기를 구워 먹게 된 것이었다. 친구들이 모두 이사를 나간 후에 동네 사람들과 어울린 건 그때가 처음이었다. 시무룩하게 지내는 게 편하던 시기였지만 삼겹살이 구워지는 냄새와 푸릇푸릇한 채소들에 맺힌 물방울에 기분이 좋아졌다. 오늘은 일단 항복할까, 그런 마음이었다.
    그 자리에 아이는 나와 미영이뿐이어서 어른들은 우리를 귀여워해 주었다. 그런 관심이 조금씩 싫어지고 있던 나와는 달리 미영이는 아버지가 잘게 잘라 준 삼겹살을 오물오물 씹고 작은 손으로 상추에 묻은 물기를 야무지게 털며 어른들을 즐겁게 해주었다. 고백하자면 가장 즐거워한 건 나였다. 동생을 갖고 싶다고 조르는 것조차 지쳐버렸던 나에게 미영이는 경이로운 존재였다. 저렇게 작은 몸이 살아가는 데 필요한 모든 것을 갖추고 열심히 움직이고 있다는 것에 흠뻑 빠졌다. 어른들이 불판을 치우고 과일을 씻으러 간 사이에 선뜻 미영이를 돌보겠다고 나섰다. 미영이를 무릎에 앉혀 놓고 볼에 바람을 넣는 장난을 쳤다.
    “부웁, 푸. 부웁, 푸.”
    미영이는 맑은 침을 흘리며 웃었다. 내가 하는 걸 따라하고 싶었는지 제 볼에도 바람을 잔뜩 넣었다. 그 모습이 귀여워서 볼을 쿡 찔렀다. 연한 볼이 아팠는지 미영이는 아앙, 하고 울었다.
    “손톱 좀 제때 깎으라니까, 얘는!”
    우리 어머니가 달려와서 나의 등을 때렸다. 어쩔 줄 몰라 하는 게 느껴졌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미영이 어머니가 주방에서 달려와 미영이를 안아 올렸다.
    “괜찮아요. 아무렇지도 않은걸요.”
    미영이 어머니는 미소를 지었다. 말은 우리 어머니에게 했지만 얼굴은 내 쪽을 보고 있었다. 미영이는 어머니의 품속에서 울음을 그쳤지만 복도는 금방 다시 시끄러워졌다.
    “조용히 좀 처먹어라! 좀!”
    204호 할아버지가 소리를 버럭 지르고는 대답도 듣지 않고 문을 꽝 닫았다.
    “어휴, 저 괴팍한 노인네.”
    “과일이라도 한 접시 갖다 드릴까요?”
    “됐어. 뭐 주는 것도 없는 영감한테 뭘.”
    어른들이 한마디씩 주고받는 동안, 모든 소란의 시작이 나 때문인 것 같아서 풀이 죽었다. 고개를 숙인 나의 곁에 미영이 어머니가 미영이를 다시 앉혔다.
    “우리 아기랑 조금만 더 놀아 줄래?”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미영이는 울어서 발갛게 부은 눈을 하고서도 내 무릎에 올라오려고 힘을 썼다. 안간힘을 쓰는 미영이의 작은 손과 하얀 정수리를 보니 미소가 지어졌다. 다른 사람들에게 보일까 조심하며 웃었다.

 

    미영이는 울기보다 웃기를 잘하는 아이였다. 나는 그 환한 얼굴을 보러 매일 미영이네 집에 갔다. 복도에서 고기를 먹고 나서 미영이 어머니가 했던 말을 부탁으로 받아들였기 때문이었다.
    “미영이랑 앞으로도 자주 놀아 주면 좋겠어.”
    학교를 마치면 집에 들러 가방만 던져두고 203호의 초인종을 눌렀다. 미영이 어머니와 미영이는 언제나 밝은 얼굴로 나를 맞아 주었다. 하지만 내가 미영이네에서 보낸 시간은 민폐에 가까웠다. 형제 없이 자란 탓에 미영이와 보내는 동안 모든 면에서 서툴렀다. 웃는 얼굴로 반겨 주던 미영이는 나 때문에 많이 울었다. 그 집에서 몇 시간 있다 보면 미영이 어머니가 나까지 돌보아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너 이제 옆집에 그만 가라.”
    어느 날 어머니가 엄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기 보는 일이 얼마나 힘든데 너까지 귀찮게 하면 되겠니?”
    일단 알았다고는 했지만 다시 집에서 보내는 오후는 무척 지루했다. 테이프를 붙인 자리가 갈색으로 변색된 비닐장판 위에 누워서 내가 사는 세계와는 무관한 이야기를 하는 라디오를 듣고 있노라면 시간이 멈춘 것 같았다. 가슴에 두 손을 올리고 누워 구원을 기다리는 사람처럼 천장을 올려다보기만 며칠째, 나는 큰 결심을 하고 책장을 열어 『총천연색 우주의 신비』를 꺼냈다.
    미영이에게 책을 읽어 주겠다는 계획을 말하자 어머니는 그 책들을 아예 미영이네에 선물하는 게 좋겠다고 했다. 낡고 오래된 책이 자리만 차지하고 있어서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이었다고. 왜 진작 그 생각을 못 했는지 모르겠다며 칭찬해 주었다. 오래간만에 칭찬을 들은 나는 어깨를 딱 펴고 미영이 집으로 갔다. 양손에는 노끈으로 단단히 묶은 책 열 권을 들었다. 그 책들은 무거웠지만 하나도 힘들지 않았다.
    “어머. 왜 이렇게 오랜만에 왔니.”
    미영이 어머니는 밝은 미소로 나를 맞아 주었다. 내가 미영이네에 갔던 건 미영이 때문이었지만 매일 갈 수 있었던 건 미영이 어머니의 그 따스한 환대 때문인지도 몰랐다. 그즈음에 나를 반겨 주는 사람은 학교에도 동네에도 별로 없었다.
    “이거…….”
    쭈뼛대며 내민 책들이 미영이 어머니의 손으로 옮겨졌을 때 나는 차마 그것을 선물이라고 말할 수 없었다. ‘총천연색’이라는 말이 무색하게 색이 몹시 바랬고 귀퉁이는 너덜너덜 해진 그 낡은 것이 얼마나 초라한 물건인지, 내 손을 떠난 뒤에야 알게 되었다. 하지만 미영이 어머니는 더욱 활짝 웃으며 고맙다, 정말 고맙다, 했다. 미영이가 정말 좋아할 거라고, 괜찮다면 미영이에게 읽어 줄 수 있겠냐고 했다.
    미영이는 그 책들을 아주 좋아했다. 아직 말도 제대로 못 하면서도 내가 ‘우주의 탄생’이나 ‘별의 죽음’ 같은 글들을 읽어 주면 책 속으로 들어갈 것처럼 몸을 웅크리고 있었다. 이 아이는 뭐가 그렇게 좋을까. 미영이가 말을 할 수 있게 되고 스스로 책 속의 글자들을 읽을 수 있을 때가 되면 물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무엇이 너를 그렇게 웃게 했는지, 어떻게 하면 그렇게 맑게 웃을 수 있는지, 꼭 물어볼 거라고 마음먹었다. 미영이가 무슨 대답을 하든 그건 아주 예쁜 말일 거라는 생각이었다.

 

    『총천연색 우주의 신비』에서 미영이가 가장 좋아한 것은 ‘오래된 친구, 달’이었다. 커다란 달 사진이 표지인 책이었다. 까만 배경은 밤하늘이라기보다는 우주를 그대로 담아 놓은 것 같았고 둥근 달도 하늘에서 늘 보던 것보다 훨씬 사실적이었다. 나는 그 사진 속의 달이 내가 알고 있는 예쁜 그것의 모습과 달라서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하지만 미영이는 그 책의 모든 것을 아주 좋아했고 나도 곧 그렇게 되었다. 오늘은 뭘 볼까, 물으면 미영이는 열에 아홉 번은 그 책 위에 손을 착, 올렸다. 작고 말캉한 손으로 달을 더듬으면서 웃었다. 냄새를 맡기도 했다. 가끔은 입을 벌려 맛을 보려고도 했다. 나는 지지야 지지, 하면서 미영이를 책에서 떼어냈고 그러고 나면 내가 믿을 만한 오빠가 된 것 같아 뿌듯한 기분이 들었다.
    사실 그 책을 읽는 일은 나에게 아주 어려운 것이었다. 방문판매를 나왔던 아주머니는 ‘똘똘한 아이라면 충분히 이해할 만한 책’이라고 말했다지만 그 ‘똘똘한’이라는 수준에 나는 미치지 못한 모양이었다. 어차피 미영이도 그림만 보고 있었겠지만 나는 열심히 책 속의 글자들을 읽었다. 그 집에 당당하게 가려면 그 정도의 노력은 해야 할 것 같았다. 덕분에 그 책에 적힌 글자들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 볼 수 있었다. ‘광년(光年), 크레이터, 표면온도, 개기월식’ 같은 말들은 아무리 읽어도 이해하기가 어려웠지만 ‘고요의 바다’나 ‘맑음의 바다’ 같은 말은 소리 내어 읽는 것만으로도 좋았다. 제일 좋아한 말은 보름달이었다. ‘달의 모양’이 나오는 페이지를 미영이와 나는 손가락을 짚어 가며 읽었다. 그믐달에서 시작해서 그믐달로 끝나는 그림에서 손가락은 한가운데의 보름달에 가장 오래 머물렀다. 내가 보름달, 하면 미영이도 비슷한 소리를 흉내 내 보려고 했다. 할 때마다 달랐지만 아마 ‘오으-아’ 정도에 가까운 소리였을 것이다. 그 소리가 재미있어서 또 보름달, 하면 미영이는 또 비슷한 소리로 답했다. 나는 그 말이 동그란 모양을 가졌다고 생각했다. 미영이가 내는 모든 소리가 그랬다. 말이라고 할 수 없는 그 소리들은 미영이만이 낼 수 있었고 나는 그게 참 좋았다.

 

    동글동글한 몸에서 쏟아내던 동글동글한 소리들에 내 마음을 풀어 놓을 수 있었던 건 나도 그만큼 어려서였을 것이다. 그건 고마운 일이었다. 그때 내가 보낸 시간들에 미영이는 큰 위로였다. 커가는 몸과 함께 자라나던 고민들에 골똘해하던 나에게 미영이는 알아들을 수 없는 말로 나에게 수도 없이 괜찮다고 말해 주었다. 옹알대는 소리, 웃음소리, 때로는 울음소리까지도 연하고 따뜻한 손이 되어 내 어깨를, 등을, 머리를 토닥여 주었다.

 

    그 당시만 해도 내가 미영이를 돌보고 있다는 생각에 의심이 없었지만 정작 그때의 나를 지탱해 준 것은 미영이였다. 심지어는 미영이가 나를 구해 준 적도 있었다. 튕겨나간 기억의 자리에 들어찼던 공포심에 기대어 보자면 미영이는 내 ‘목숨’을 구한 사람인지도 모른다. 낮이 밤보다 길어지던 일요일 저녁에 일어난 일이었다. 또래보다 키가 한참 작았던 나는 그럴 나이가 이미 지났는데도 어머니의 손에 붙들려 여탕에 갔다. 싫다고 떼를 썼지만 천 원 한 장이라도 네가 벌어올 수 있냐는 어머니 말을 이길 수가 없었다. 계산대에서 주인아주머니의 의심 가득한 눈초리를 겨우 견뎌내고 탕에 들어가 물속에 목만 내놓고 앉았다. 집에 가자는 어머니의 말만 기다리며 따끔거리는 온도의 물을 견디고 있을 때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우리 반 여자애였다. 사람이 많지 않았던 시간이라 그 아이의 얼굴을 단번에 알아볼 수 있었다. 나는 본능적으로 잠수를 했다. 들키면 끝장이다, 학교생활이 더 고달파진다, 이런 말들을 스스로에게 집어넣으면서 숨을 참았다. 하지만 가슴이 두근거려서 오래 버티지 못하고 고개를 뺐다. 그 아이는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도망가야 한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고 무작정 문을 향해 달렸다. 몇 발 떼지도 못했는데 발에 뭔가 미끄러운 것이 밟혔다. 공중에 사지가 떴다는 느낌이 들자마자 머리부터 바닥에 부딪혔다. 비명 한번 제대로 질러 보지 못하고 쓰러졌다.
    눈과 입에 비누거품이 가득 찬 것처럼 시야가 부옇게 변하고 혀가 굳었다. 뒤통수에서 뜨끈하고 축축한 것이 번지는 게 느껴졌다. 얼굴 위에 끈끈한 거품이 가득 덮인 것처럼 숨이 잘 쉬어지지 않았다. 한적한 시간이었던 탓일까. 아무도 내가 다쳤다는 걸 모르는 것 같았다. 엄마는 어디 있지. 이대로 죽는 건가. 누가 이 끔찍한 거품 좀 치워 줘. 아프다는 느낌도 없었다. 몸에서 힘이 쭉쭉 빠져나갔다. 눈이 감기고 주변의 소리들이 멀어졌다. 작고 촉촉한 손이 내 얼굴을 만진 건 그때였다. 뒤따라서 엄청나게 큰 울음소리가 들렸다. 정신이 번쩍 들 정도로 큰 소리였다. 눈앞이 맑아지고 막힌 숨이 트였다. 나를 업는 엄마의 등이 보였다. 의사는 조금만 늦었어도 위험했을 거라고 했다. 정신을 잃지 않아서 다행이었다고.
    내 얼굴을 붙들고 운 게 미영이였다는 건 찢어진 뒤통수에 바늘 땀 다섯 개를 달고 난 후에 알았다.
    “그 어린것이 어디서 나타났는지 몰라. 제대로 걷지도 못하는 애가…….”
    어머니는 연신 고개를 갸웃거렸다. 머리에 붕대를 감고 고맙다는 인사를 하러 갔을 때까지 미영이는 울고 울다가 지쳐서 잠들고, 잠에서 깨면 또 울었다고 했다.

 

    비참해서 하마터면 외로워질 뻔했던 날의 기억 속에도 미영이가 있다. 우리 아파트에서 같이 살다가 길 건너 아파트로 이사를 간 친구의 생일이었다. 109동에 함께 살았던 애들 중에서 유일한 동갑내기라서 가장 친했던 친구였다. 친구는 6월이 되자 생일파티에 초대한다는 내용의 카드를 줬다. 그런 식의 생일 초대는 처음 받아 보는 것이었다. 친구가 준 카드에서는 생일 축하 노래가 나왔다. 신기해서 열고 또 열어 봤다. 어떻게 했기에 종이에서 소리가 나올까. 한참 들여다보고 뒤집어도 보고 흔들어도 보다가 아랫면의 두꺼운 종이 밑에서 작은 스피커를 찾아냈다. 그 스피커를 꾹꾹 눌러 보다가 고장을 냈다. 노래는 음정을 잡지 못하더니 더 이상 나오지 않았다.
    생일파티 전날 밤에 3천 원을 주고 산 제도 샤프와 작은 엽서를 포장했다. 태어나서 사본 생일 선물 중에서 가장 비싼 것이었다. 내가 무척 갖고 싶었던 물건이었다. 손가락으로 쥐는 부분이 빛나는 은빛 쇠로 되어 있고, 몸통 아랫부분에는 쓰고 있는 샤프심의 종류를 표시할 수 있는 돌림쇠도 있었다. 학교에서 크게 유행하던 샤프라 그걸 준비한 나는 의기양양하게 학교에 갔다. 파티날 아침에 그 친구를 만났을 때도 여유로운 마음이었다. 하지만 친구가 한 말은 전혀 예상 밖이었다.
    “엄마가 너는 부르지 말래.”
    무슨 말을 들은 건지 고민해야 했다. 친구의 어머니도 우리 어머니와 친한 사이였다. 뭐라 대답을 못 하고 있으니 친구가 다시 말했다. 미안한 얼굴로, 하지만 자기가 잘못한 것은 없다는 투로.
    “우리 아파트에 사는 애들만 부르라고…….”
    “……알겠어.”
    돌아서서 내 자리로 가는데 친구 옆에 있던 다른 아이가 수군거렸다.
    “불쌍하다, 쟤.”
    그날은 토요일이었다. 집에 일찍 돌아가서 내가 겪은 일을 말할 자신이 없어서 미영이 집으로 갔다.
    “무슨 일 있니?”
    아닌 척해도 얼굴에 티가 났을 것이다. 미영이 어머니의 물음에 울먹이면서 학교에서 들은 말을 전했다. 등 뒤에서 들리던 수군거림처럼 누군가 내가 얼마나 불쌍한 애인지 알아주기를 바라는 마음이었다. 그런데 미영이 어머니가 한 말은 뜻밖이었다.
    “불쌍한 건 그 친구야.”
    그 목소리는 아주 단호했다. 그래서였을까, 나는 뚝, 울음을 그쳤다. 걸음마를 막 뗀 미영이가 어느샌가 뒤뚱뒤뚱 걸어와서는 내 바지춤에 매달렸다. 그러고는 머리의 무게를 못 이기고 넘어졌다. 미영이가 다칠까 봐 나도 같이 주저앉는 바람에 엉덩방아를 찧었다. 미영이 어머니가 소리 내어 웃으셨고 나도 웃었다. 미영이는 어리둥절한 표정이었다. 귀엽고 순한 얼굴이었다.
    이 정도면 괜찮지 않나, 견딜 만할지도. 그때 그런 말을 떠올리지는 않았겠지만 기분만큼은 그랬다. 그날 나는 더 이상 울지 않고, 밥도 맛있게 먹었다고, 제도 샤프로 일기를 썼다.

 

    새로운 아파트들이 근처에 많이 생기면서 우리 아파트를 지키던 사람들이 점점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우리가 살던 2층도 사정이 다르지 않아서 서로의 사연을 알 만한 사람들이 얼마 남지 않게 되었다. 다들 비슷한 만큼 착하고, 또 그만큼 서로에게 폐를 끼치던 사람들이었다.
    대학로에서 밴드 보컬로 활동했지만 폐가 망가져서 그만뒀다는 207호 삼촌은 한쪽 다리가 휘어진 철제 의자를 복도에 내놓고 앉아 줄담배를 피웠다. 나와 마주치면 이리 오라고 손짓을 하고서는 이해가 안 되는 말을 잔뜩 했다. 삼촌은 기타를 꼭 ‘키타’라고 했는데 키타에서 중요한 건 왼손이 아니라 오른손이라며, 그러므로 광석이 형이 보고 싶다고 했다. 내가 멀뚱히 서 있으면 옆에 세워 둔 키타를 들고 ‘잊어야 한다는 마음으로’를 불러 주었다. 나중에 좋아하는 여자가 생기면 불러 주라면서. 이거 아주 백발백중이라면서.
    호피무늬 원피스를 입고 사자 같은 헤어스타일을 한 210호 아주머니는 중학생 누나 둘을 혼자 키웠다. 내가 아주 어릴 때 곧잘 놀아 주고 단것도 먹여 주었다던 누나들은 집 밖에 거의 나오지 않았다. 그 집 아저씨가 음주운전 차량에 치여 돌아가신 후 아주머니는 동네 미용실에 보조로 들어갔다. 일하면서 들은 동네 사람들의 사건들을 잘 알고 있었는데 늘 몸에서 풍기던 파마약 냄새를 흘리듯이 들은 이야기를 여기저기 놓고 다녔다. 그 때문에 다른 아주머니와 큰 소리로 다툰 적도 종종 있지만 그분이 우리 집에 다녀가면 집 안 곳곳에 이야기들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는 것 같아서 좋았다.
    미영이 아버지의 고향 선배였다는 206호 아저씨는 화물차 운전을 하는 분이었다. 얼굴에 피곤함이 묻어 있었지만 항상 웃는 얼굴이었고 기분이 좋은 날에는 주머니에 든 동전을 죄다 꺼내 나에게 주기도 했다. 아저씨는 꽤 오랫동안 어머니와 둘이서만 살다가 미영이네가 이사 오기 1년 전에 국제결혼을 했다. 아주머니는 필리핀에서 오신 분이었다. 한국말에 서툴러서 웬만한 의사표현은 여러 가지 종류의 눈웃음으로 대신했다. 그 눈이 좋아서 말을 걸어 보려고 기웃거리기도 많이 했다. 한번은 용기를 내서 우리 집에 놀러오라고 말을 붙였다. 아주머니는 눈을 활짝 뜨고 웃었다. 덕분에 아주 기뻤는데 그 집 할머니가 나타나자 웃음을 거두고 서둘러 가버려서 아쉬웠다.
    204호 할아버지는 무척 무서운 분이었다. 나는 그분이 인상을 펴고 있는 걸 본 적이 없었다. 할아버지는 치매를 앓는 할머니와 지내셨다. 할머니는 늘 집에만 계셨기 때문에 내가 직접 만난 적은 없었다. 그런 204호는 우리 2층 사람들에게 큰 고민거리였다. 집 청소를 전혀 하지 않고 살아서 맡기에 역한 냄새를 복도 전체에 퍼뜨렸다. 문을 열어 놓고 지내야 하는 여름에는 매일 아침마다 204호가 내놓는 악취와 함께 잠이 깰 정도였다. 아주머니 몇 분이 대신 청소를 해주겠다고 찾아간 적이 있었지만 할아버지는 몹시 화를 내면서 사람들을 내쫓았다.
    “원래 저런 분이 아니었는데…….”
    아버지는 한숨을 쉬었다. 할아버지는 우리 중에서 109동에 가장 오래 사신 분이었는데 사고로 아드님을 잃은 후에 사람들을 싫어하게 되셨다는 것이었다.

 

    여름의 한가운데로 들어가던 어느 날에 나와 미영이는 204호 할아버지에게 몹시 혼이 났다. 할아버지는 미장 기술을 이용해 간간이 공사장에 나가셨고 그날도 그런 날이었다.
    “저 양반이 기술이라도 있어서 다행이다.”
    207호 삼촌은 그렇게 말했지만 내 생각은 조금 달랐다. 도구함을 손에 든 날의 할아버지는 늘 취해 있었고 반드시 동네를 시끄럽게 했다. 배드민턴을 치던 신혼부부에게 시비를 걸기도 하고, 평상에서 맥주를 마시는 아저씨들과 싸우기도 하고, 술집 앞에서 쓰러진 걸 일으켜 데려다준 대학생의 따귀를 때리기도 했다. 주정을 부릴 상대가 보이지 않으면 높이 솟은 건너편 아파트에 대고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내 아들 내놔라, 우리 아들 돌려내!”
    쉰 목소리로 악을 써댔다. 그럴 때 할아버지는 정말 무서웠다.
    할아버지가 입구로 들어오는 모습을 미리 봤다면 미영이를 데리고 얼른 도망쳤을 것이다. 하지만 미영이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는 일에 푹 빠져 있어서 그러지 못했다. 책을 읽어 주면서부터는 미영이와 있으면 나도 꽤 쓸 만한 사람이 된 것 같았다. 그래서 미영이가 알아듣지도 못할 말에 스스로 취해서 많은 이야기를 했다. 그날도 저녁을 먹은 후에 미영이를 데리고 나와 건물 입구 계단에 앉아 있었다. ‘오래된 친구, 달’을 펴놓고 맞은편 아파트의 머리 위에 솟은 둥근 달을 보며 여기저기서 주워들은 이야기를 했다.
    “어때. 멋있지?”
    이야기의 끝에 하늘을 향해 손가락을 들자 미영이도 따라했다. 하지만 손가락 끝에 걸린 건 할아버지의 거나한 얼굴이었다.
    “저게 어떤 아파트인지 알고나 떠드는 게냐?”
    할아버지가 벌게진 얼굴로 말했다. 겁에 질려 아무 대답도 못 하고 있는데 할아버지가 큰 소리로 욕을 하기 시작했다. 다 알아듣지는 못해도 하나같이 유독하게 느껴지는 말이었다. 깜짝 놀란 미영이가 발작하듯 울었고 할아버지는 내 머리통을 마구 쥐어박았다. 내가 머리를 감싸 쥐자 할아버지는 미영이에게 조용히 하라며 소리를 질렀다. 곧 미영이 어머니가 뛰어 내려왔다. 그렇게 화난 모습은 처음이었다. 미영이 어머니와 할아버지가 말다툼까지 하게 되었고 다른 어른들이 모두 나와서 한참을 말린 뒤에야 싸움이 끝났다. 그사이에 미영이는 계속 울었다. 터질 듯이 빨개진 얼굴로 숨도 고르지 못하는 미영이를 보면서 그 아이를 울게 만든 가장 큰 잘못은 나에게 있는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모두가 무서웠고 모두에게 미안했다.

 

    할아버지의 아드님이 길 건너 아파트의 공사 현장에서 일을 하다 죽었다는 걸, 할아버지가 현장 책임자와 멱살잡이를 하다가 그 사람을 넘어뜨려 합의금까지 물었다는 걸, 미영이 어머니는 며칠이 지난 뒤에야 알게 되었다.
    “저 아파트가 할아버지한테 뭔데요!”
    소리를 쳤던 미영이 어머니는 곧바로 204호에 갔다. 잘못했다고, 몰랐다고, 죄송하다고, 거듭 고개를 숙였다. 할아버지는 말없이 그 모습을 보고 있다가 쾅, 문을 닫아버렸다. 그날 이후로 할아버지는 더욱 집에서 나오지 않으셨고 복도의 악취는 견디기 힘들 정도가 되어 갔다.
    109동의 아주머니들이 건물 앞 평상에 모였다. 낮 동안 소나기와 햇볕이 번갈아가며 쏟아진 탓에 찜통 같던 저녁이었다. 204호의 악취는 이제 2층을 넘어서 건물 전체로 퍼지기 시작했고 어떤 식으로든 대책이 필요하다는 취지의 회의가 열렸다. 의장을 맡은 210호 아주머니의 주도로 저녁은 자장면을 먹었다. 달이 떠오르고 배달원이 빈 그릇을 수거해 갈 때까지 회의는 이어졌다. 싫다는 사람의 집에 들어가는 일에 뾰족한 방법이랄 게 있을 수 없었고 이미 한번 실패한 일의 해결 방법을 찾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게다가 오랜만에 모인 사람들 사이의 다정한 이야기들이 자꾸 끼어들어 회의는 끝도 없이 길어졌다. 나는 미영이와 함께 어른들로부터 조금 떨어져 앉아 책도 보고 달도 보았다. 미영이가 좋아하는 일들이었지만 밤이 깊어 가자 미영이는 점점 힘들어했고 결국에는 울기 시작했다. 이리저리 달래 보아도 그칠 기미가 없었다. 진땀을 쏟던 중에 미영이 어머니와 눈이 마주쳤다. 다른 아주머니들은 204호와 무관한 이야기로 바빴다. 초조한 얼굴로 우리 쪽을 보고 있던 미영이 어머니가 아랫입술을 한 번 깨물고 입을 열었다.
    “제가 어르신께 말씀드릴게요.”
    주위가 일순에 조용해졌다. 미영이 어머니가 이어서 말했다.
    “청소해 드리겠다고 해볼게요. 제가 말씀드리면 허락해 주실 거예요.”
    “그래. 그럼 수고 좀 해줘. 결자해지라는 말도 있으니까.”
    210호 아주머니가 이렇게 말함으로써 회의는 결론이 났다. 사람들이 박수를 쳤다. 미영이 어머니는 칭얼대는 미영이를 안고 집으로 올라갔다. 아주머니들은 회의가 잘 끝나서 기쁘다며 맥주를 사왔다. 새로운 이야깃거리를 찾아서 웃고, 화내고, 울고, 또 웃고, 그러기를 한참을 한 뒤에 헤어졌다. 그동안에 나는 과자를 먹으면서 하늘을 봤다. 초승달이 건너편 아파트 뒤로 숨었다가 나타나는 것을 봤다. 방학식 전날이었다.

 

    그늘도 바람도 없었던 운동장에서 여름방학식을 했다. 숨을 쉴 때마다 건조한 흙먼지가 코로 들어왔다. 집에 돌아오는 내 작은 몸에 버거우리만치 많은 뙤약볕이 쏟아졌다. 여름에게 공격을 받는 느낌이었다. 건물 안팎의 온도 차가 커서 109동에 들어섰을 때는 한기가 돌아 오소소, 소름이 돋았다. 계단을 올라 2층 복도로 돌아서자 뜨거운 기운이 다시 덮쳐왔다. 숨이 턱에 걸리는 것 같았다. 복도에 미영이 어머니와 204호 할아버지가 있었다.
    “감사합니다, 어르신.”
    등에 미영이를 업은 미영이 어머니가 허리를 숙여 인사했다. 할아버지는 무표정한 얼굴을 한 채로 문을 반만 열고 비켜섰다. 집 안은 복도에 내린 밝음과 대조적으로 컴컴했다. 미영이와 미영이 어머니가 그 속으로 들어갔고 문이 닫혔다. 쿵, 소리가 복도에 오랫동안 울렸다. 울림이 사라질 때까지 닫힌 204호의 문을 보고 있다가 나도 집에 들어갔다. 베란다 문턱에 발을 걸치고 앉아 아이스크림을 먹었다. 냉기로 얼얼해진 입을 벌리고 바깥을 보았다.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사람들과 그들이 만들어내던 소리와 이야기가 가득하던 때로 다시는 돌아갈 수 없을 거라는 예감이 들었다. 미영이가 털썩 앉아 풀을 뜯던 잔디밭에도, 아장아장 뛰어다니던 주차장에도, 함께 동화책을 읽던 평상 위에도, 뜨거운 햇빛만이 꼼꼼하게 쏟아졌다.
    슬프지는 않았다. 외로운 방학이 될까, 걱정은 되었다. 미영이와 미영이 어머니를 생각했다. 아주머니는 청소를 하고 계시겠지. 힘들지 않을까. 날씨가 이렇게 더운데. 미영이는 잘 있을까. 할아버지가 무섭지 않을까. 내가 가서 데리고 나올까. 하지만 나도 할아버지가 무서운데. 진짜 너무 무서운데. 그래서 나는 꼼짝 않고 집에 있었다. 몸집에 비해 너무 큰 소리를 내는 선풍기를 틀어 놓고 낮잠을 잤다. 미영이가 좋아하는 레몬맛 캔디가 주머니 안에서 녹는 줄도 모르고 잤다. 마른 거품 자국을 목까지 묻힌 채 노란 얼굴이 된 미영이가 할아버지의 등에 업혀 타는 듯한 바깥으로 나가는 동안, 새파랗게 질린 미영이 어머니가 그 뒤를 따라가는 동안, 나는 그저 자고 있었다. 텅 빈 동네를 달리며 할아버지는, 미영이 어머니는, 그리고 미영이는 어떤 마음이었을까. 그 작고 귀한 숨을 빼앗기는 동안의 미영이를 보지 못한 건, 그래서 아무것도 하지 못했던 건, 나의 무엇에 대한 벌이었을까.

 

    불길하게 입을 벌린 204호 안으로 경찰들이 들어가고 나오는 걸 2층 사람들과 봤다. 누군가는 팔짱을 꼈고, 누군가는 고개를 숙였고, 누군가는 울었고, 누군가는 담배를 물었다. 나는 활짝 열린 문과 정면으로 마주 보는 곳에 서서 어두운 집 안을 보았다, 현관 바로 옆에 작은방이 있고 그 맞은편에는 욕실 겸 화장실이 있는, 더 들어가면 거실이 있고 거실의 오른쪽 구석에 큰방이, 거실과 이어진 왼쪽 벽면에 주방이 있고 더 들어가면 베란다가 나오는 그 집을 보았다. 109동의 모든 집과 똑같은 구조로 되어 있을 그 집의 어디에서 미영이가 죽어 갔는지, 보면 알 수 있기라도 한 것처럼 계속 보았다. 고통스러웠지만 할 수 있는 건 그것뿐이었다. 눈이 시큰거릴 즈음에 큰방의 문이 조금 열렸다. 형체보다 냄새로 그 사실을 먼저 알았다. 미영이 어머니가 미처 치우지 못했을 그 방에서는 고약한 냄새가 났다. 그곳에 앉아 있는 사람이 보였다. 초점 없는 눈을 한 할머니였다. 머리 하나 겨우 보일 만큼만 문을 연 할머니가 입을 달싹였다. 나는 한참 동안 할머니의 입이 하는 말을 보고 있다가 우리 집으로 도망쳤다. 할머니가 입을 움직여 반복했던 말은, 얘야, 이거 먹어라, 였다.

 

    미영이의 숨길을 막은 건 할머니가 건넨 노란 단추들이었다. 아무 맛도 나지 않았을, 그저 노랗고 동그랗기만 한 단추를 하나 입에 넣자 그게 귀여웠던 할머니가 하나 더, 그것도 입에 넣자 잘 먹는구나 하며 또 하나 더, 쓰러진 미영이에게 얘야, 이거 먹어라, 사탕 더 먹어라, 했을 할머니의 얼굴이 떠올랐다. 무서웠다. 할머니가 아니라 내가 무서웠다. 모두가 미영이의 죽음을 슬퍼하고 있는 동안, 그 슬픔의 원인에서 내가 자유로울 수 없다는 생각이 떨쳐지지 않았다. 모든 것의 시작이 나인 것 같았다. 확신할 수 없는 이야기에 도취되어 있던 많은 순간들이 자꾸만 되살아났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할지, 누구에게 빌어야 할지, 그러면 용서 받을 수 있는 건지, 그래도 되는 건지, 모든 게 혼란스럽고 무서워서 미영이의 영정사진을 똑바로 볼 수가 없었다.
    산 사람은 살아야 한다, 넌 잘못이 없다, 그런 말들이 몸서리치게 싫었다. 2층 사람들이 미영이 부모님을 위로했다. 안타깝고 슬픈 일이지만 어쩔 수 없다고, 누구도 바라지 않은 일이었다고, 우리도 마음이 찢어진다고, 하지만 기운을 차려야 한다고. 이해해서는 안 될 것 같은 말들이었다. 할아버지는 장례 내내 식장을 지키며 일을 도왔고 잠시라도 틈이 나면 무릎을 꿇었다. 그때마다 미영이 부모님은 할아버지를 일으켰다.
    “아닙니다, 어르신 잘못이 아닙니다.”
    난 입을 꾹 다물고 누구도 위로하지 않았다. 위로에 답도 하지 않았다. 정말 잘못한 사람이 없을까. 나도, 할아버지도, 할머니도, 미영이 부모님도, 204호를 그저 보고만 있었던 다른 이들도, 건너편 아파트의 사람들도, 그 아파트를 지은 사람도, 모두 아무 잘못이 없는 걸까. 다 착한 사람들이었고 그래서 미영이에게 일어난 일은 사고였다고 하면 끝인 걸까. 경찰도 그렇다고 했으니까 그걸로 된 걸까. 그럼 미영이는? 그 아이가 원망해도 좋을, 그 어린 목숨이 분노를 터뜨릴 나쁜 사람이 한 명도 없어도 괜찮은 걸까. 원망스럽다고, 나한테 어쩜 이러냐고, 너무했다고, 말할 대상조차 없는 죽음은 어쩌면 더 슬픈 게 아닐까. 입을 꾹 다물고, 그런 생각을 했다.

 

*

 

    라디오 디제이가 말했던 것처럼, 미영이가 세상을 떠나고 처음으로 뜬 보름달은 아주 크고 둥글었다. 태어나서 본 것 중에 가장 완벽한 모양의 달이었다. 달이 차오르는 사이에 미영이 부모님은 떠날 준비를 했다.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고, 그럴 것 같은 내색도 비치지 않았다. 사람들이 생각이나 계획 같은 걸 물어볼 틈도 주지 않고 서둘러서 떠났다. 나는 그들의 마지막 모습을 봤다. 밤새 짐을 싸고 이른 새벽에 나가는 것 같았다. 복도에 까치발을 하고 서서 트럭에 짐을 싣는 그들을 봤다. 미영이 어머니가 잠시 내 쪽을 봤지만 아무런 말도, 어떤 표정도 없이 하던 일을 마저 하고 트럭에 올랐다. 그들이 탄 차가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진 다음 나도 돌아섰다. 뒤에는 할아버지가 서 있었다. 할아버지는 조용히 204호의 문을 닫고 들어갔다. 204호에서는 나쁜 냄새가 나지 않았다. 203호는 그렇게 빈집이 되었고, 잠긴 문 앞에 『총천연색 우주의 신비』가 남아 있었다.

 

    그날 밤, 2층 사람들이 복도에 나와 달구경을 했다. 사람들의 얼굴 위로 노란 빛이 공평하게 내렸다. 그 얼굴들은 왠지 시원하게 울고 난 사람의 것처럼 개운해 보였다.
    “참 예쁘네요.”
    “달빛이 만져 주는 것 같지?”
    “큰일을 겪느라 다들 힘들었죠.”
    “이젠 다 괜찮을 겁니다.”
    “그래, 그래야지.”
    어른들은 그런 대화를 나눴고 어머니가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나는 어머니의 손에서 슬며시 빠져나와 집으로 들어갔다. 방에 들어가서 ‘오래된 친구, 달’을 펼쳤다. 그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아 책장을 넘겼다. ‘달의 모양’ 페이지가 나오자 왈칵 눈물이 쏟아졌다. 그치려 해도 잘 되지 않았다. 누군가 우는 소리를 듣고 찾아올까 봐 숨을 눌러야 했다. 그건 아주 고통스러운 일이었다. 쏟아지는 눈물을 호흡이 감당하지 못했다. 한참을 그렇게 울었다. 가슴에 손을 올리고 몸을 웅크린 채로 울음이 지나가길 기다렸다. 아주 긴 시간처럼 느껴졌다.
    젖은 시야 사이로 노란 빛이 보였다. 달빛이 내가 앉은 자리로 가득 들어온 것이었다. 달빛에 올라탄 느낌이었다. 눈물이 멈추었다. 거칠었던 숨이 가라앉았다. 눈을 감고 몸이 편해지는 것을 천천히 느꼈다. 몸을 일으키고 눈을 떴다. 나를 감싼 달빛이 그렇게 만들어준 것 같았다. 그런 기분은 처음이었다. 달빛의 온도를 재보고 싶다는 생각에 책에 그려진 보름달을 손가락으로 만져 보았다. 누군가 손끝을 대준 것처럼 따뜻했다. 책을 덮었다. 달빛 아래에서 빛바랜 달의 색이 살아났다. 책을 무릎 위에 올렸다.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크고 둥근 달을 마주 보았다. 그 자리에서 그 자세로, 오랫동안 가만히, 달을 봤다.

 

 

 

 

 

 

 

 

 

 

 

 

 

 

 

작가소개 / 강석희

2018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단편소설 부문 당선.

 

   《문장웹진 2018년 0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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